소설리스트

템빨-39화 (35/1,794)

제2장.

행정관의 퀘스트를 수행하면서 제작한 2개의 신성의 방패.

그중 레전드리 등급의 방패는 두 눈 뜬 채 강도 당해버렸지만, 그리드에게는 아직 레어 등급의 방패가 남아있었다.

<신성의 방패>

등급:레어

내구력:360/360 방어력:189 마법 저항력:150

*희박한 확률로 암흑 계열 마법에 완전 저항.

대단한 실력과 잠재력을 지녔지만, 경험과 명성은 비교적 부족한 이름 모를 장인이 제작한 방패입니다.

레베카교의 사제, 카서스의 신성력을 통해서 빛의 여신 레베카의 가호가 깃들었습니다. 암흑 계열 마법에 강력한 면모를 보이며, 마족과 야탄의 신도들은 이 방패와 마주하게 되는 것만으로도 괴로워합니다.

사용 조건:레벨 190 이상. 근력 500 이상. 신성력 1,000 이상. 레베카교의 성직자.

무게:800

“뭐지, 저 방패는?”

그리드가 번쩍번쩍 빛나는 황금의 방패를 꺼내든 순간 무서울 것 없이 날뛰던 저 광견들이 일제히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마치 맹수 앞의 똥강아지처럼 위축되어 낑낑 앓는다.

체다카 길드원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특히 지슈카는 극도의 흥분상태에 빠졌다.

그녀는 아까부터 놓지 못하고 있던 일말의 희망을 부여잡은 채 그리드에게 질문했다.

“그 방패… 네가 만든 거야? 특급 야파 화살처럼?”

“……!”

그리드가 특급 야파 화살의 제작자라고?

체다카 길드원들이 귀를 의심했다. 그리고 목숨을 지키는 것에만 몰두하고 있던 그리드는 아무 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가 만들었다. 하지만 이건…”

꽈드득!!

그리드가 갑자기 이를 갈았다. 그러더니 도끼눈을 치켜뜨고 포효했다.

“이건 실패작이라고! 제기랄!! 진정한 완성품은 어떤 빌어먹을 새끼한테 도둑맞았어!!”

“헉…”

체다카 길드원 중에서 방패를 보는 안목이 가장 뛰어난 토반!

신성의 방패의 가치를 한 눈에 알아보고 경탄하던 그가 ‘실패작’이란 말에 경악했다.

“저, 저런 대단한 방패가 실패작이라고? 저 방패는 여태까지 내가 봤던 방패 중에 세 손가락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데?”

술렁이는 길드원들! 그들을 헤집고 나아가 지슈카의 곁에 선 폰이 말했다.

“그리드가 착용하고 있는 단검과 갑옷은 범상치 않아. 둘 다 뛰어난 성능을 가졌음이 분명하다. 저 단검을 장착하려면 페이커급의 높은 민첩성이 필요해 보이고, 심지어 갑옷은 기사들이나 착용할 수 있는 헤비 아머야. 무엇보다도 그리드가 아까 전 펼쳤던 검무의 위력은 엄청났지. 근데 대장장이라고? 그것도 특급 야파 화살을 제작한… 우리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이름 모를 장인이라고?”

세상의 어떤 대장장이가 저만한 단검과 헤비 아머를 무장할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이름난 블레이드 댄서들보다도 뛰어난 검무까지 추지 않았던가?

의심하는 폰에게 지슈카는 섣불리 대답하지 못했다. 하지만 부정하지도 않았다.

“그리드는 한눈에 특급 야파 화살을 알아보더니 자기가 제작한 거라고 말했어. 굳이 그가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는 상황이었고. 그러니 일단은 그가 이름 모를 장인일 수도 있다는 가정을 세워두는 거야.”

“흠…”

폰은 L.T.S시절부터 쭉 지슈카의 판단력을 신뢰하고 따라왔다. 그녀는 비록 연하였지만 신용할 수 있는 인물이었고, 그렇기에 마스터로 추대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예외였다.

저 그리드라는 청년은 어떻게 봐도 대장장이라고 여기기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폰에게 말락서스가 쐐기를 박아주었다.

“그건 신성의 방패…! 설마 네가 윈스톤 영주와 거래한다는 소문의 대장장이였던 것이냐!!”

말락서스는 명백하게 동요하고 있었다.

“신성의 방패가 네 손에 있다는 것은… 머스타가 임무에 실패했다는 뜻이군… 어쩐지 도착이 늦어진다 하였더니, 그 한심한 놈!”

그리드는 이제야 모든 상황이 이해가 갔다.

행정관을 세뇌해서 신성의 방패를 제작하도록 시키고, 완성 된 신성의 방패를 강탈해갔던 그 야탄교의 신도는 바로 저 말락서스의 부하였던 것이다.

“이 씨발! 너였냐! 네가 방패 훔쳐오라고 시킨 새끼였냐!!”

말락서스가 자신을 개고생 시킨 장본인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쌍욕을 시전하는 그리드!

일반인은 상상조차 해본 적 없을 저급한 욕들을 조합해서 마구 퍼붓는 그를 바라보는 폰의 몸이 부르르 경련했다.

주체할 수 없이 강한 희열을 느낀 탓이다.

‘저 말락서스조차도 그리드를 대장장이라 칭하고 있다.’

정황상 그리드의 정체는 지슈카의 예상대로일 가능성이 높았다.

‘대장장이이면서 저렇게 뛰어난 단검과 헤비 아머를 무장하는 게 가능하고, 거기에 더해서 상태 이상을 유발하는 검무까지 출 수 있다면…’

생각한 폰이 지슈카에게 확인을 요구했다.

“마스터. 너는 그리드를 히든 직업 전직자라고 판단한 거구나?”

“그렇게 볼 수밖에 없겠지?”

고개를 끄덕이는 지슈카!

그에 들뜬 폰의 억양이 높아졌다.

“그리드의 정체를 확실하게 알기 위해서는 일단 이 레이드부터 빨리 끝내야겠어. 그치? 레가스.”

“아아, 그렇네요.”

호명 된 레가스가 구석에서 슬그머니 일어났다. 그는 길드원들의 도움으로 모든 생명력과 상처가 회복되어 있었다.

그리고 표정에는 자신감이 역력했다.

“이미 말락서스의 공략법은 알았으니까 단번에 끝내죠.”

말락서스의 바로 곁에서 전투를 관람했던 레가스!

순수한 전투능력만큼은 폰조차 한 수 접어두는 그가 다른 누구도 아닌 그리드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리드 님, 저 강아지들이 그리드 님의 방패를 두려워하는 것 같으니 저희를 좀 도와주시면 좋겠습니다”

모든 이들의 시선은 아까부터 그리드에게 고정되어있었다.

의문, 혼란, 기대 등의 감정이 복잡하게 섞여 있는 그들의 시선을 느끼면서 그리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락서스가 드랍하는 아이템의 50프로를 저한테 주신다고 약속하면 도와드릴게요.”

한쪽에 쭈그리고 앉은 채 물약의 재사용 대기 시간이 돌아올 때마다 물약을 복용하고 있던 반트너가 발끈해서 소리쳤다.

“야! 우리 17명에다가 너 1명을 더하면 총 18명인데, 그러면 드랍 아이템을 18등분해야지 왜 너 혼자 50프로를 가져간다는 거냐? 애초에 레가스한테 무료로 봉사 받고 있던 주제에 더럽게 뻔뻔하네? 도움 받을 땐 무료지만 도움 줄 땐 유료냐? 엉?”

“17명과 1명으로 계산하면 안 되죠. 당신들 17명은 한 조직이잖아요? 하나의 조직과 1명으로 계산해야 셈이 맞는 거 아닙니까? 그리고 나와 레가스 님과의 일은 별개 아닌가? 내가 레가스 님한테 도움 받았지 당신들한테 도움 받았수? 왜 아저씨가 생색을 내는 건데?”

“뭐라고? 하, 나! 폰보다 더한 철면피는 내 생전 처음보네! 야! 세상에 그딴 셈법이 어디 있냐! 애초에 넌 우리 아니었으면 이미 진즉에 말락서스한테 죽었을 텐데 우리한테 고맙지도 않냐? 양심도 없어?!”

“고마워해야하는 건 당신들이지. 내 덕에 말락서스를 레이드할 기회를 얻었잖아? 그리고 레이드 실패 직전에 내 방패 덕분에 살아남았고.”

“허참!”

“그만해, 반트너.”

그리드의 성깔이 보통내기가 아님을 파악한 폰이 빠르게 판단을 내렸다.

반트너를 진정시킨 그가 그리드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 말이 맞다. 자네가 제시한 조건대로 드랍 아이템을 5대 5로 나누도록 하지. 기억해줘. 우리는 자네에게 무조건적으로 호의적이라는 걸.”

폰은 그리드를 길드로 회유하기 위해 미리 밑밥을 깔아놓고 있었다.

하지만 속내를 전혀 몰랐던 그리드는 다르게 착각했다.

‘말락서스를 해치우기 위해서는 내 신성의 방패의 도움이 어지간히도 필요한가보군. 이런 제길… 아이템 배분을 5대 5가 아니라 7대 3으로 하자고 해볼걸 그랬다.’

땅을 치며 후회하고 있는 그리드를 지슈카가 파티에 초대했다.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파티를 수락한 그리드는 파티원 목록을 보고 경악했다.

‘레벨이 죄다 200대라니!’

체다카 길드가 소수정예의 엘리트 집단이라는 사실은 그리드 또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설마 이 정도 수준일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지슈카는 레벨이 251… 폰은 243… 레가스는 239… 이 정도면 셋 다 통합랭킹이 20위권 내외겠는데? 그 외 100위권에 포진할 수 있는 레벨대의 사람도 많고… 뭐 이런 괴물 집단이 다 있냐?’

Satisfy에는 무수한 길드가 존재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강하다고 정평이 난 길드에는 통합랭킹 1,000위권의 최상위 랭커가 한두 명. 많으면 최대 5명 정도씩 소속되어 있었다.

그런데 체다카 길드는 17명의 길드원 전원이 최소 200위권 랭커들이었으니 과연 소수정예로 유명할만했다.

비록 수는 적지만, 현존 최강의 전력을 보유한 길드 중 하나임이 확실했다.

한편 그리드의 레벨을 확인한 체다카 길드원들은 복잡 미묘한 표정이었다.

‘95라니… 낮아.’

‘대장장이치고는 높은 거 같기도 하지만… 마스터와 폰의 예상대로라면 순수한 대장장이가 아니라 히든 직업 전직자인거잖아?’

‘만약 히든 직업 전직자인데도 95렙인거면…’

‘진짜 노답이다. 게임 더럽게 못하나봐.’

“뭐야? 왜들 그래?”

그리드는 자신을 바라보는 체다카 길드원들의 표정에서 왠지 불쾌감을 느꼈다.

하지만 남들과 달리 그저 상쾌하게 웃고 있을 뿐인 레가스가 그를 이끌어주었다.

“가보죠!”

“엇? 자, 잠깐…!”

레가스가 그리드의 몸을 번쩍 들어올렸다. 그리고 당황하는 그리드를 말락서스와 지옥의 파수꾼들 사이에 그냥 집어 던져버렸다.

“으아아아악~~! 사람 죽이려고 작정했냐!! 우와아아앗!!”

쾅!

“아오! 엉덩이야!”

낑! 끼잉!

신성의 방패를 무장한 그리드가 하늘에서부터 떨어지자 지옥의 파수꾼들이 겁먹고 사방으로 흩어졌다. 하지만 말락서스는 웬 떡이냐 싶었다.

“그 방패, 고맙게 받아가마! 음?”

마법을 사용하려던 말락서스가 정면에 나타나는 레가스를 보고 당황했다. 하지만 이내 비웃었다.

“내게 정면으로 덤비다니? 큭큭! 네놈이 실성했구나!”

그에게 레가스의 정권이 꽂혔다.

퍼엉!!

“…컥!”

말락서스의 입에서 피가 쏟아져 나왔다.

절대방어를 자랑하던 칠흑의 실드가 레가스의 철권 앞에 무너진 것이다.

‘뭐지?’

말락서스는 실수하지 않았다. 공격받는 지점에 정확하게 실드를 전개했다. 하지만 레가스의 주먹은 실드에 막히지 않고 급소에 꽂혀왔다.

어찌 된 영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또 한 번!

뻐억!

“크억!!”

말락서스의 안면을 레가스의 팔꿈치가 찍어 눌렀다.

말락서스는 두 번의 피해를 입고 나서야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이 녀석의 공격, 날아오는 도중에 궤도가 바뀐다!’

정확했다.

레가스는 말락서스의 방어법을 파훼할 수단으로서 ‘공격 궤도의 실시간 변경’이라는 단순무식한 방법을 택하고 있었다.

퍼억!

“꺽!”

주먹이 아래서부터 턱으로 날아오기에 턱 밑에다가 실드를 전개하였건만, 망할 놈의 주먹이 도중에 멈추고 목젖에 꽂혔다.

빠각!

“윽!”

주먹이 왼쪽에서부터 머리로 날아오기에 머리 옆에 실드를 전개하였건만, 망할 놈의 주먹이 도중에 꺾여서 턱에 꽂혔다.

“아다다다다다닷!!”

퍼퍼퍼퍼퍼퍼퍼퍽!!

‘상대의 방어력을 33프로 무시’하는 패시브를 보유한 권성 레가스의 두 주먹이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말락서스의 급소들을 강타한다.

퍼어어억!!

마지막엔 깔끔한 뒤돌려 차기가 가슴을 가격, 말락서스의 몸이 숲으로 날아가 버렸다.

쿠당탕탕탕!

몇 그루의 나무를 꿰뚫고 날아간 말락서스의 몸이 마지막에 커다란 바위에 깊숙이 꽂히고 나서야 멈췄다.

“끄… 끄억…”

바위에 처박힌 말락서스는 온 몸의 뼈가 부러지고 피투성이였다. 하지만 금세 거짓말처럼 회복되어갔다.

마력을 기반으로 한 압도적인 재생능력이 발휘된 것이다.

하지만 이는 곧 마력의 과도한 소비를 뜻했다.

바위에 박힌 몸을 빼내어 숲에서부터 빠져나온 말락서스가 레가스에게 애써 태연한척 말했다.

“네놈, 무리를 하는구나. 공격의 궤도를 도중에 바꾸면 네놈의 근육이 모조리 찢어질 텐데? 반면 난 보다시피 아무리 공격 받아도 금세 치유된다. 나를 때리면 때릴수록 너만 손해다 이거지. 더군다나…”

말락서스가 말하고 있는데 레가스가 다시금 주먹을 휘둘렀다. 레가스는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 전신에 실드를 전개했다.

그리고 오만하게 웃었다.

“내가 실드를 이렇게 사용하면, 네놈의 주먹이 궤도를 바꾸던 말던 상관없지. 네놈의 주먹은 결코 내 몸에 닿지 못한다!”

“그래. 이렇게 된 이상 내 주먹은 무용지물이지. 하지만 말이야…”

레가스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에 아차 싶었던 말락서스에게 화살이 날아왔다.

쩌어엉!!

“……!”

실드를 꿰뚫은 화살이 그대로 말락서스의 미간까지 뚫어버렸다.

뇌수를 쏟아내며 쓰러지는 말락서스에게 레가스가 말했다.

“당신의 실드, 전개 범위가 넓어질수록 경도는 약해진다는 사실을 아까 곁에서 지켜보면서 파악했거든. 그리고 약해진 실드 따위로 우리 마스터의 화살은 막을 수 없어.”

궁사는 전사 클래스 중에서도 특별하다. 방어력이 마법사급으로 형편없는 탓에 접근전은 최약체로 평가 받지만, 그 대신 극단적으로 높은 공격력을 발휘한다.

Satisfy의 모든 직업을 통틀어서 물리 공격력이 궁사보다 뛰어난 클래스는 드물 정도이다.

그리고 지슈카는 궁사의 정점에 선 존재.

신궁이라 찬양받는 여자다.

레가스는 말락서스가 폰의 마하 스피어를 방어할 때는 3겹의 실드를, 지슈카의 화살을 방어할 때는 2겹의 실드를 전개하는 걸 목격하고 지금의 전략을 세웠던 것이다.

“이… 이놈들!”

치명상을 입은 탓에 상처의 재생이 더뎌졌다.

잠시나마 무방비 상태가 된 말락서스에게 체다카 길드원 전원이 온갖 공격 스킬을 퍼부었다.

“크아아아아악!! 신벌!!”

콰르르르릉! 쾅쾅!!

하늘에서 검은 벼락이 수백 가닥 떨어졌다.

위기를 느낀 말락서스가 비장의 수단을 사용한 것이다.

그리고 그 비장의 수단은 체다카 길드원들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안겨주었다.

“어마어마한 공격력이다…”

토반과 반트너가 간신히 쓰러지지 않고 버티고 섰다. 하지만 그 둘 외의 다른 길드원은 모조리 스턴 상태에 빠져 무방비 상태가 되었다. 심지어 마법 저항력이 약한 길드원들은 즉사해서 잿빛으로 화했다.

각종 버프 스킬과 물약으로 생명력과 마나를 비롯한 모든 스테이터스를 상승시킨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일격에 전멸 직전의 위기를 겪은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거리를 유지하고 있던 지슈카와 신성의 방패의 가호를 받은 그리드만은 무사했다.

그리드는 파티원들의 생명력이 단 일격으로 바닥이 된 것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희박한 확률로 암흑 계열 마법에 완전 저항…이라는 옵션 효과가 발동해주지 않았으면 난 당연히 즉사였겠군. 크… 희박한 확률이 발동하다니, 이따가 로또 사러 가야지.’

“놈들…”

말락서스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반 시체나 다름없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게도 대부분의 상처가 치유되어가고 있었다.

‘마지막 기회야!’

말락서스가 완벽하게 치유 되서 반격을 해오기 전에 끝장을 내야만 했다.

지슈카는 길드원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마나 100퍼센트를 소비하는 최강의 공격 스킬을 사용했다.

“피닉스 애로우!”

바람을 타고 날아가는 특급 야파 화살의 주변으로 불길이 치솟는다 싶더니 급기야 거대한 불사조로 변모한다. 그리고 그 불사조는 주변의 모든 것을 불태우며 날아가 말락서스를 집어삼켰다.

콰아아아아앙!!

지축을 뒤흔드는 폭발!!

체다카 길드원들은 말락서스의 최후를 바랐지만, 시스템 창에는 아무런 메시지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리고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신체의 절반을 잃은 말락서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끄…꺽… 계집…! 죽…여주마…!”

말락서스의 전면에는 5겹으로 전개 된 실드가 반파된 채 떠올라있었다.

지슈카의 피닉스 에로우가 5겹의 실드를 모조리 박살내고 말락서스에게 피해를 입혔던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말락서스는 살아 있다.

과연 보스 몬스터답게 어마어마한 생명력이었다.

토반과 반트너가 나섰다.

“저놈이 완전히 회복되기 전에 끝장을 내야 돼!”

토반의 철퇴와 반트너의 쌍도끼가 말락서스의 몸을 사정없이 베고, 부셨다.

하지만 그들의 공격은 말락서스에게 피해를 입히기는커녕 말락서스의 재생력을 억제하는 역할조차 못했다.

스턴에 빠진 채 그 모습을 지켜보는 레가스와 폰이 한탄했다.

‘저 둘로는 마무리할 공격력이 부족해…!’

한 번에 모든 마나를 소진한 탓에 정신적인 한계가 찾아온 지슈카는 다음 공격을 시도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토반과 반트너를 제외한 길드원들은 아직 스턴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말락서스가 토반과 반트너의 공격을 안마로 치부하며 광소를 터뜨렸다.

“크하하하하! 좋다! 좋아! 지옥의 파수꾼들이여! 이 같잖은 것들을 모조리 먹어치워라!!”

크르릉!

컹! 컹컹!

끝이다.

레이드는 실패하고 말았다.

서서히 엄습해오는 지옥의 파수꾼들을 바라보면서 모두가 절망하는 그때였다.

“파그마의 검무.”

어느새 단검 대신 대검을 무장한 그리드가 춤을 추기 시작했다.

부웅! 부웅!!

길이가 3미터를 초과하는 거대한 대검이 들리지 않는 선율을 타듯 움직이며 주변의 공기를 무겁게 가라앉혔다.

“네놈…?”

말락서스의 안색이 굳었다.

그리드로부터 익숙한 기운을 감지한 탓이다.

이것은 살의.

그야말로 완벽한 살의다.

공기마저 위축시킬 정도의 살의를 그리드는 검무라는 형태로 표현하고 있었다.

“네, 네놈… 이런 말도 안 되는!”

수천, 수만의 처녀를 산 제물로 바쳐온 말락서스.

그는 온갖 증오와 살의를 겪어보았지만 이토록 순수하고 위협적인 살의는 처음이었다.

“노오옴!!”

엄청난 게 온다.

말락서스는 그에 대비하고 싶었다. 하지만 여전히 몸은 회복되지 않아서 행동이 자유롭지 못하다.

그리고 그리드의 검무가 끝났다.

“살(殺)!!”

파티에 들어온 후, 다른 길드원들과 마찬가지로 버프 스킬을 받아서 온갖 스테이터스가 상승한 상태인 그리드!

덩달아 마나의 양까지 늘어난 그가 여태까지 마나가 부족해서 사용해보지 못했던 살(殺)을 발동시켰다.

쿠오오오오!!

극한의 증오와 살의가 깃든 칠흑의 대검이 직선으로 날아가 말락서스의 심장을 꿰뚫었다.

그리고 그리드의 눈앞으로 온갖 알림창이 떠올랐다.

[크리티컬!]

[최상의 건틀릿의 옵션 효과가 발동하여 대상을 2번 공격합니다.]

[대상에게 77,311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크아아아아악!! 이런 말도 안 되느으으은!!!!!!!”

저 강력한 놈들의 협공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견뎌낸 끝에 드디어 제대로 된 반격의 기회를 잡았건만! 설마 마지막에 와서야 이딴 애송이에게 발목 잡힐 줄이야!

말락서스는 너무나도 억울하고 분해서 눈도 감지 못한 채 최후를 맞이했다.

그리고…

[세상을 공포로 물들였던 야탄의 여섯 번째 종, 말락서스를 해치웠습니다!]

[대륙 전역에 명성이 +3,000 상승합니다.]

[야탄교와 영원히 적대하게 됩니다.]

[레베카교와의 친화력이 +2,800 상승합니다. 레베카 신전을 방문하면 커다란 축복을 내려줄 것입니다.]

[도미니언교와의 친화력이 +1,500 상승합니다. 도미니언 신전을 방문하면 상당한 축복을 내려줄 것입니다.]

[쥬다르교와의 친화력이 +800 상승합니다. 쥬다르 신전을 방문하면 적당한 축복을 내려줄 것입니다.]

[제사장을 잃은 야탄교의 세력이 극도로 약화됩니다. 새로운 제사장이 선출될 때까지 야탄교는 더 이상의 세력 확장이 불가능합니다.]

[파티장 ‘지슈카’가 382골드를 획득하였습니다.]

[파티장 ‘지슈카’가 축복 받은 무기 강화석을 8개 획득하였습니다.]

[파티장 ‘지슈카’가 축복 받은 방어구 강화석을 10개 획득하였습니다.]

[파티장 ‘지슈카’가 최상급 마석을 3개 획득하였습니다.]

[파티장 ‘지슈카’가 말락서스의 망토를 획득하였습니다.]

[파티장 ‘지슈카’가 말락서스의 복면을 획득하였습니다.]

[파티장 ‘지슈카’가 암흑의 마력이 집약된 오브를 획득하였습니다.]

[경험치 1,531,050을 획득하였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

어마어마한 명성과 함께 각 종교와의 높은 친화력을 획득하게 된 그리드!

그가 갑자기 좌절하며 주저앉았다. 얼굴이 창백하고 식은땀을 흘리는 것이 어째 낌새가 심상찮다. 그리고 잠시 후 그가 입을 열었다.

“아…”

“아?”

말락서스를 멋지게 마무리 지음으로서 레이드를 성공시킨 그리드에게 모든 사람의 이목이 집중된 상태다.

그들은 그리드가 과연 무슨 말부터 꺼낼지 궁금해 하면서 마른 침을 삼켰다.

그리고 잠시 멍 때리고 있는가 싶었던 그리드가 드디어 말하기 시작했다.

“아…아이템이…”

“아이템이?”

“아이템이 파티장 습득으로 설정돼있었다니…! 염병 이런 낭패가 있나!”

급기야 머리까지 쥐어뜯으며 몸서리친 그리드가 지슈카에게 삿대질했다.

“이봐, 지슈카! 너희들 혹시 날 속인 거냐? 아이템 반으로 나누기로 했잖아! 근데 파티장 습득이라니?! 혹시 먹튀할 생각이냐! 엉?! 너희 같은 최상위 랭커들이 치졸하게 나 같은 저렙 유저 상대로 사기를 치려는 거냐고!!!”

“…….”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했다.

그리드 본인이 후로이와의 2인 레이드 후 드랍 아이템을 독식한 경력이 있었던 탓에, 그리드는 지슈카들 역시 자신과 같이 행동할까봐 불안해했다.

그러자 고작 95레벨임에도 불구하고 어마어마한 공격력을 발휘, 말락서스를 해치워버린 그리드의 모습에 경탄하고 있던 지슈카가 콩깍지를 벗고 한숨 쉬었다.

‘깬다.’

솔직히 말해서 지슈카는 그리드에게 두근거림을 느끼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레이드에 실패했다고 판단하며 절망하는 순간 반전을 일으켜 레이드를 성공시킨 그리드의 모습이 마치 영화 속 주인공처럼 멋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레이드가 끝나고 그리드의 변변찮은 성격을 다시금 겪게 되자 두근거림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첫인상부터 영 별로더니 역시나 성격이 너무 찌질해. 마음에 안 들어.’

그리드는 뛰어난 대장장이 실력과 그 못지않은 전투능력까지 겸비한 히든 직업 전직자로 추정된다.

그토록 찾아 헤매던 특급 야파 화살의 제작자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거물이었으니, 그를 길드로 회유하고 싶다는 바람이 더욱 더 간절해졌다.

하지만 신용하기 힘든 인물상이었던 탓에 조금 거슬렸다.

‘하긴 성격이 대수겠어? 우리가 필요한건 그의 능력이야.’

아쉬운 입장은 그리드가 아니라 자신들이다. 성격이 저것보다 더 개차반이라고 해도 엎드려 절이라도 해서 그를 꼭 길드로 초빙하고 싶었다.

마음을 추스른 지슈카가 불안해하고 있는 그리드를 안심시켰다.

“약속은 당연히 지킬 테니까 걱정하지마. 그건 그렇고 대단하네. 저 괴물 같던 말락서스를 마무리 짓다니 다시 봤어.”

다른 길드원들도 끼어들었다.

“너 진짜 쩐다! 레벨도 낮으면서 뭐가 그렇게 센 거야? 토반이랑 반트너 합친 것보다 훨씬 난데? 하하하! 대~단해!”

“그리드 님이 아니셨으면 이 레이드는 분명히 실패했을 겁니다. 당신의 활약에 감탄할 따름입니다.”

“멋졌어요…”

체다카 길드원들은 그리드를 칭찬하기에 바빴다. 그리고 그들 중에는 세계적인 스타 라엘라도 포함되어 있었다.

아직 어린 그녀는 그리드의 영화 속 주인공 같은 모습에 반해버려서 황홀경에 빠져있었다. 양 뺨을 붉히고 있는 모습이 귀엽기 그지없다.

하지만 정작 그리드는 다른 이들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혹시라도 먹튀 당할까봐 노심초사하며 경계할 뿐이다.

“당신들 나 정신없게 만든 다음 아이템 갖고 튀려는 거지? 그치? 이런 젠장! 내가 그딴 뻔한 수작에 당할 것 같아? 썩을! 먹튀엔 두 번 다신 안 당한다! 우선 아이템 분배부터 하자고!”

‘깬다.’

결국 분위기가 진정되었다.

지슈카는 3개의 아이템을 감정한 후 파티원 전원에게 아이템 정보를 공유했다.

<말락서스의 망토>

등급:유니크

내구력:35/81 방어력:15

*지력 +200

*피 냄새

말락서스가 애용하던 마법 망토입니다. 원래는 푸른 천으로 제작된 망토이지만 수많은 처녀들이 흘린 피로 물들어 변색되었습니다.

사용 조건:레벨 200 이상.

무게:10

<피 냄새>

항상 피비린내를 풍깁니다. 맹수나 몬스터의 표적이 되기 쉽고 사람들에게는 불쾌감을 줍니다.

<말락서스의 복면>

등급:유니크

내구력:11/20 모든 속성 저항력:+5%

*마법의 캐스팅 시간을 20퍼센트 단축.

말락서스가 애용하던 검정색 복면입니다. 외관상으로는 별다른 특징이 없지만 말락서스가 보물처럼 아끼던 물품입니다.

사용 조건:레벨 200 이상.

무게:1

<암흑의 마력이 집약 된 오브>

등급:유니크

내구력:90/130 마법증폭력:+14%

암흑 속성력:+20%

저장 가능한 마법의 개수:4

말락서스가 아직 야탄의 종으로 임명되기 전에 애용하던 강력한 오브입니다.

사용 조건:레벨 200 이상. 지력 500 이상.

무게:80

체다카 길드원들은 복면과 오브에 관심을 집중했다.

“복면 옵션 진짜 좋다.”

“그러게. 모든 속성 저항력을 5퍼센트 올려주는 것만으로도 훌륭한데 마법 캐스팅 시간 단축까지 붙어있어. 보기 드문 옵션 구성이다.”

“다른 부위의 아이템도 아니고 복면에 이런 옵션이 붙었다는 게 대단하군. 원래 복면에는 옵션이 붙는 경우가 거의 없잖아? 그래서 사람들이 복면을 단순 치장품 취급하는 거고.”

“오브도 장난 아니야.”

“음, 마법 증폭력은 유니크 등급치고 낮은 것 같지만 암흑 속성력의 상승폭이 엄청 크군. 무엇보다도 저장 가능한 마법 개수가 무려 4개…”

“보통 오브에 저장 가능한 마법 개수가 2개나 3개던가?”

“3개만 되도 사기 소리 듣지. 근데 4개라니…”

“두 아이템 모두 돈 받고 팔기엔 아까워. 반드시 우리 길드원들이 사용해야 된다고 봐.”

체다카 길드에 마법사는 단 두 명뿐이었다.

복합술사 랭킹 2위 라엘라와 바람술사 랭킹 1위 제드노스.

길드원들은 이 두 사람에게 각각 복면과 오브를 배분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리드와 아이템을 5대5로 분배하기로 약속하지 않았던가? 둘 중 하나는 반드시 포기해야할 터였다.

그런데 그리드가 예상외의 요구를 해왔다.

“난 망토 찜.”

“엥?”

모두 다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3개의 드랍 아이템 중 망토의 가치가 가장 낮았기 때문이다.

지력을 200상승 시켜준다는 것은 분명히 훌륭한 옵션이었으나 피 냄새라는 옵션이 큰 단점이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망토는 복면과 달리 여러 가지 좋은 옵션이 잘 붙는 아이템이었다. 말락서스의 망토보다 더 좋은 망토를 구하기는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한데 왜 굳이 망토를 갖겠다는 건가?

‘뭐지? 설마 일부러 우리한테 좋은 걸 양보하는 건가? 그럴 성격으로는 보이지 않는데?’

그리드의 속내를 알 수 없어서 섣불리 반응 못하는 체다카 길드원들에게 그리드가 재촉했다.

“뭐야? 안 돼? 난 망토가 갖고 싶다고요. 말락서스 피 님들이 다 깎아놓긴 했어도 결국 마무리한건 나잖아요? 솔직히 나 아니었으면 레이드 실패할 수도 있었던 거 아닌가? 근데도 나한테 선택권 안 줄 겁니까?”

“그리드 님…”

레가스는 아이템 보는 안목이 없는 그리드가 안타까웠다. 망토의 가치가 가장 적으니까 다른 걸 선택하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이 함부로 말했다가 길드에 손해를 입힐 수도 있었으므로 차마 함부로 입을 열지 못했다. 그게 양심에 걸려 영 불쾌하여 얼굴이 붉어졌다.

‘역시 사실대로 말씀드려야겠어.’

잠시간의 갈등 후.

결국 양심을 버리지 못한 레가스가 그리드에게 솔직히 설명해주려고 할 때였다.

“세 아이템 중 망토의 가치가 가장 낮아. 너는 그래도 망토를 선택할거야?”

지슈카였다.

레가스보다 그녀가 더 먼저 그리드에게 양심선언 하고 있었다.

레가스는 마스터의 그런 모습이 자랑스러워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한편 그리드는 의아해하고 있었다.

‘왜 망토의 가치가 가장 낮다는 거지?’

그리드는 체다카 길드원들과 전혀 다른 발상을 하고 있었다.

체다카 길드원들은 망토의 지력 상승 옵션을 좋게 평가하고 피 냄새를 단점으로 지적하고 있는 반면, 그리드는 오히려 피 냄새를 큰 장점이라 여기고 있었던 것이다.

‘피 냄새로 몬스터들의 표적이 되기 쉽다는 건 즉 쉽게 몰이사냥을 할 수 있다는 뜻이 되잖아? 그렇다면 망토의 옵션이 가진 가치도 복면 못지않게 훌륭한 거 아닌가?’

그랬다.

지금 그리드는 드물게 뛰어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는 그리드가 성장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체다카 길드원들은 그리드 같은 생각을 하지 못한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단지, 체다카 길드원들은 몰이사냥이라는 개념 자체를 염두에 두고 있지 않을 뿐이다.

그들은 그리드와 달리 워낙 레벨이 높아서 잡몹들을 몰이 사냥해봤자 효율이 적었다. 그리고 전투 숙련도와 팀워크를 높이기 위해서 일부러라도 강력한 몬스터들을 단독 혹은 파티 플레이로 사냥하길 즐겼다.

하지만 대장장이 생활을 중심으로 하는 그리드로서는 전투 숙련도를 올릴 필요성을 거의 느끼지 못하고 있었으며 단순히 쉽고 빠르게 레벨업 하고 싶을 뿐이었다. 더군다나 저렙이니 몰이사냥의 효율이 매우 높다.

그런 입장의 차이가 있었기 때문에 그리드와 체다카 길드원들의 발상은 다를 수밖에 없었고, 덕분에 서로가 만족할 수 있는 거래를 완료할 수 있었다.

“난 역시 망토.”

“그러면 우린 우선적으로 복면을 선택할게. 그리고 오브는 어쩔래? 가능하다면 오브도 우리가 가지고 싶은데.”

“돈만 준다면야.”

“좋아. 그러면 오브의 가치의 절반에 해당하는 골드를 지급해주도록 할게.”

말락서스는 주기적으로 리스폰되는 일반 보스몬스터와 다르다. 한 번 죽은 이상 더 이상 부활하지 않는 스페셜 보스몬스터이며 그가 드랍한 아이템 또한 특별하기 때문에 정확한 시세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럴 경우에는 경매장을 이용해야해. 오브를 48시간짜리 경매장에 등록하고 47시간 59분이 지난 시점의 입찰 가격을 시세로 칠게.”

지슈카의 설명을 잠자코 듣고 있던 그리드가 내키지 않는다는 얼굴을 했다.

“낙찰 직전에 경매 물품 등록을 취소하면 벌금을 물어야 되잖아? 그 벌금… 나도 보태줘야 돼?”

“그 정도야 우리가 지불할게.”

“음… 그럼 이제 강화석과 마석을 나눌 차롄가…”

축복 받은 강화석의 시세는 개당 1,200골드. 최상급 마석의 시세는 개당 4,000골드다.

“강화석이 총 18개에다가 마석이 3개니까 값을 다 합하면 3,3600골드… 이걸 나누면…”

그리드가 자신에게 떨어질 돈이 얼마일지 중얼중얼 계산하고 있는데 지슈카가 놀라운 행동을 했다.

모든 강화석과 마석을 그리드에게 그냥 넘겨준 것이다.

“…엉?”

어안이 벙벙해진 그리드에게 지슈카가 싱긋 웃어주었다.

“어차피 네가 아니었으면 실패했을 레이드야. 이 정도는 챙겨야 너한테 수지가 맞지 않겠어?”

당차게도 말하는 지슈카의 웃는 모습은 정말로 아름다웠기에 그리드는 잠시 넋을 잃고 말았다.

지슈카가 그에게 작별을 고했다.

“그러면 일단 해산하고 3일 뒤에 다시 만나도록 하자. 골드 들고 찾아갈 테니까 귓말 하면 바로 응답하도록 해.”

“으, 응… 그래, 알았다.”

“그리드 님, 오늘은 너무 많은 일이 있었으니 좀 쉬도록 하고 강도당한 물건은 내일부터 다시 찾아보도록 하죠.”

“레가스 님, 저를 더 도와주실 수 있는 건가요?”

“당연하죠! 돕기로 약속한 일이니 끝장을 봐야하지 않겠습니까! 그럼 이만!”

그렇게, 지슈카와 레가스를 비롯한 체다카 길드원들은 그리드를 떠났다.

“흐음.”

이어서 하산하려던 그리드는 말락서스가 등장했던 동굴 앞에서 잠시 멈췄다.

‘그 자식은 여기서 뭘 하고 있던 걸까?’

혹시 보물이라도 숨겨져 있지 않을까?

“훗… 이 동굴이 트레저 헌터의 본능을 자극하는군.”

그리드는 북쪽 끝의 동굴에서 레전드리 전직서를 찾아낸 경력이 있어서인지 동굴만 보면 탐사해보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말락서스도 해치운 마당에 위험할 것도 없겠지?’

그리드가 슬그머니 동굴 안으로 발을 들였다.

동굴은 상당히 작았다. 발을 들이자마자 동굴 가장 안쪽에 밝혀져 있는 횃불이 시야에 들어올 정도였다.

“어?”

열 걸음 정도 걸었을까?

동굴 안쪽까지 들어온 그리드가 몸이 구속 된 채 정신을 잃고 있는 은발미인을 발견했다.

그녀는 다름 아닌 윈스톤의 영주 아이린이었다.

“아, 이렇게 됐던 거구만.”

신성의 방패를 제작하도록 만들고 급기야 강탈해간 말락서스의 부하놈!

이미 그가 등장했던 시점에서 윈스톤 성내의 병사들은 대부분 살해당해 있었다.

성에 변고가 발생한 와중에 영주라는 인간은 어디서 뭘 하고 있는가 싶었는데 이런 곳에 붙잡혀 있던 것이다.

“으…음?”

그리드가 혼잣말하는 소리를 들은 것일까?

정신을 잃고 있던 아이린이 서서히 눈을 떴다.

그리고 그리드를 발견하고 안도의 미소를 짓는가 싶더니 이내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당신이었군요… 도란을 도와 나를 구해주셨다던 분이.. 그리고 이번에도 또 나를 구해주시는 군요…”

‘도란이라고? 설마 그때 도란이 구해주었던 백작 영애라는 게 아이린이었던 건가?’

그리드가 아이린의 정체를 알게 된 순간 매우 익숙한 알림창이 떠올랐다.

[퀘스트가 생성되었습니다.]

<영주 호위> 난이도:A벌써 두 번째 야탄교에 납치당한 아이린 영주의 심신은 매우 나약해져 있습니다. 그녀 자력으로는 윈스톤 성에 귀환하는 것이 불가능할 지경이니 당신이 그녀를 윈스톤 성까지 무사히 인도해야만 합니다.말락서스는 사망하였지만 잔당이 남아있을 수 있으므로 주의하십시오.

퀘스트 클리어 조건:아이린과 함께 윈스톤 성에 도착.

퀘스트 클리어 보상:아이린과의 호감도 MAX. 도란의 반지.

*이성 NPC와의 호감도가 최대치가 될 경우 특별한 이벤트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도란의 반지>등급:유니크내구력 10/10 생명력:+1,000암흑 속성 저항력:+10%독 속성 저항력:+10%

*중독되거나 저주에 걸릴 경우 즉시 상태회복.(효과 발동시 재사용 대기 시간 60분 적용)

*받은 피해의 50퍼센트에 해당하는 생명력이 즉시 회복.(효과 발동시 재사용 대기 시간 10분 적용)스테임 백작가문의 그림자 무사였던 도란이 각별히 아끼던 보물입니다.건강과 지혜의 신 쥬다르의 가호를 받았다고 합니다.

사용 조건:없음무게:0.1

퀘스트 실패 시:아이린이 사망할 가능성이 발생. 스테임 백작과의 호감도가 최하로 하락.

*아이린 사망시 이성을 잃는 스테임 백작에 의해 에트날 왕국 북부 전체가 혼돈에 빠집니다.[퀘스트가 진행됩니다.]

“크으…!”

두 주먹을 불끈 말아 쥔 그리드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또 의도치 않은 퀘스트를 진행하게 되어 분노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 오히려 반대다.

‘아싸!! 개굿!!’

그리드는 환호했다.

‘도란의 반지를 얻을 수 있는 기회라니!’

도란과 처음 만났을 때부터 탐났던 반지다. 이 기막힌 옵션의 반지가 설마 자신의 손아귀에 들어오는 날이 올 줄이야!

‘와, 이 반지 진짜 좋네. 이만한 성능에 사용 조건은 없어? 이 반지만 있으면 레벨 1부터 생명력 천 넘게 시작할 수 있는 거잖아?’

그리드의 근력과 체력 스탯은 레벨에 비해서 비정상적으로 높다. 그로 인하여 현재 생명력은 8천 정도인데, 이는 동레벨 탱커형 전사 클래스들의 평균 생명력과 비교해 봐도 오히려 높을 정도였다.

그러니 저레벨 유저나 체력이 약한 직업군의 유저에게 있어서 도란의 반지에 붙은 1천 생명력의 가치란 엄청 높은 것이다. 속성 저항력들과 상태 회복, 체력 회복 옵션들은 굳이 논할 가치도 없이 최고였고.

‘이건 무조건 경매장에 올려서 판다.’

사용 조건 없는 유니크 아이템은 거의 드물다. 그 가치는 현금 수천만 원… 아니, 어쩌면 수억 원을 호가할 수도 있으리라고 그리드는 판단했다….

상황이 웃긴다.

‘이렇게 된 이상, 신성의 방패 강도당한 게 결과적으로 이득이잖아?’

그리드가 이곳 룰프 산에 찾아온 이유가 무엇인가? 오로지 신성의 방패를 되찾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방패 도둑을 찾기는커녕 우연히 말락서스와 조우했다. 그리고 해치워버려서 엄청난 보상들을 획득했다. 이어서 지금은 또 새로운 퀘스트까지 발견했다.

은도끼 떨어뜨렸다가 금도끼 2자루 주운 격이다.

‘잘 될 놈은 길 가다가 뒤로 자빠져도 김태이 가슴 위로 쓰러진다더니, 지금 내가 딱 그 꼴이군.’

그리드는 일평생 행운과 거리가 멀었다. 원래 뒤로 자빠지면 코 깨지는 팔자였다. 하지만 파그마의 후예로 전직하고부터 연달아 행운을 거머쥐고 있었으니 감동에 벅차올랐다.

‘그리고 지금 눈여겨 볼 건 도란의 반지뿐만이 아니야.’

아이린 영주와 호감도가 최대치로 될 경우, 어쩌면 그녀와 결혼하게 될 수도 있었다.

즉, 백작의 사위이자 영주의 남편이 된다는 뜻이다.

‘영주 남편이면 거의 영주나 다름없겠지?’

이제 윈스톤은 명실상부 최고의 도시 중 하나로 성장하고 있다. 벌어들이는 세금만 해도 천문학적이다.

‘흐흐, 영주가 되면 우선 세금부터 올리는 거야. 그리고 난 금방 부자가 되는 거지!’

아이린과의 호감도 MAX=영주의 남편=영주=세금 다 내꺼.

라는 괴상한 공식을 펼치며 김칫국 마시는 그리드의 눈앞으로 퀘스트가 시작되었다는 알림창이 떠올랐다.

“저만 믿으십시오.”

그리드가 아이린을 구속하고 있던 밧줄을 풀어주었다.

그리고 자력으로는 일어서지 못하는 그녀를 부축해 일으키더니 최대한 멋진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 그리드가 영주님을 반드시 성까지 안전히 모시겠습니다. 그러니 아무 걱정 마시길.”

“고마워요…”

악명이 하늘을 찌르는 말락서스를 물리친 그리드의 자신감은 우주 저편의 안드로메다까지 치솟아 있었다.

그는 설사 야탄의 신도들이 앞길을 가로막더라도 싸워 이길 각오였다.

‘야탄의 신도들은 케산 협곡의 몬스터들과 비슷한 레벨대잖아? 신성의 방패와 말락서스의 망토까지 있는 내게 놈들은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아.’

애초에 레가스가 많은 신도들을 쓰러뜨려 놓은 상태다. 잔당이라고 해봤자 몇 남지 않았으리라는 판단이다.

당면한 문제는 적들이 아니라 아이린이었다.

“못 걸으시겠습니까?”

“미안해요… 당신에게 너무 큰 짐이 되는군요.”

아이린은 스스로 걷는 것조차 힘겨워할 정도로 상태가 매우 나빴다. 그리드는 그녀의 생명력이 바닥 난 것인가 싶어서 생명력 회복 물약을 먹여보았다. 하지만 그녀의 상태는 변하지 않았다. 그 외 각종 상태이상 회복 물약을 잔뜩 먹여보았지만 끝까지 기운을 차리지 못한다.

‘유저가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닌가보다. 성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계속 이 상태이려나 보군. 썩을… 괜히 물약만 날렸네.’

결국 그리드가 아이린을 등에 업었다.

“꺄악!?”

태어나 남자하고는 손조차 잡아본 적 없는 백작 영애 아이린!

아직 어린 시절 아버지 등에 업혀본 경험이 전부인 그녀가, 혼기가 꽉 찬 지금에 와서 외간 남자의 등에 업히게 되자 부끄러워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 그리드 님! 이렇게까지 신세를 질 수는 없어요!”

얼굴을 홍당무처럼 붉힌 채 울상 짓고 몸부림치는 그녀는 깃털처럼 가볍고 녹을 듯이 부드러웠다. 돌이켜보면 태어나 동생 외의 여자를 등에 업어본 경험이 처음이었던 그리드가 묘한 흥분을 느꼈다.

‘이게… 바로 이게 여자의 감촉…!’

연애경험 전무한 그리드…그는 지금 여자를 게임으로 배우게 생길 위기에 처했다.하지만 스스로는 이것을 행운이라 여기는 바!등에 닿는 아이린의 감촉에 잔뜩 고양된 그리드가 힘차게 걸음을 내딛었다.“신세라뇨! 당치도 않습니다! 저는 영주 님… 아니, 아름다운 당신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수고도 마다치 않을 겁니다! 제게 모든 걸 맡기시죠!”

“그리드 님…”

그간 그리드는 숱한 사건사고와 노가다를 겪으면서 250에 육박하는 끈기 스탯을 쌓았다. 덕분에 스테미너 만큼은 어느 누구와 비교해도 부족할 게 없었으니, 아이린을 업고 달리는 것도 가능했다.

‘좋아, 출발해볼까!’

룰프 산에서 윈스톤까지의 거리는 도보로 약 5시간!

그리드는 그 안에 반드시 윈스톤에 도착하겠다는 각오였다.

하지만 역시 A급의 퀘스트!시작부터 위기가 찾아왔다.

“네놈! 말락서스 님을 살해한 것이 바로 네놈이렷다!”

3명의 야탄의 신도가 동굴 앞에 숨어 있다가 그리드를 덮쳤다.

“말락서스 님의 원수를 갚겠다! 죽어라!!”

야탄의 신도들은 그리드에게 몸을 구속하는 저주 마법을 걸었다. 그리고 폐를 썩게 만드는 맹독의 안개를 소환했다.

하지만 상태이상에 저항하는 그리드에게는 그들의 마법이 전혀 통하지 않았다. 공격 마법보다는 상태 이상을 유발하는 마법들에 특화된 흑마술사들에게 그리드라는 존재는 상극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너희가 말락서스보다 세냐? 약한 주제에 무슨 원수를 갚겠다고 까부는 거야? 신속한 몸놀림!”

[신속한 몸놀림 효과가 발동합니다. 1분 동안 민첩성과 회피율이 비약적으로 상승합니다.]

그리드는 파그마의 검무까지 활성화시키지는 않았다. 파그마의 검무는 비활성화시 물리 공격력 20퍼센트와 치명타 확률 10퍼센트를 상승시켜준다. 거기에 다인슬레프를 무장할 경우 발휘되는 공격력은 일개 마술사들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하이야압!!”

한 손으로는 등에 업은 아이린의 엉덩이를 받친 채 다른 한 손만으로 다인슬레프를 휘두르는 그리드!

아직 근력이 부족하여 한 손으로는 다인슬레프를 완벽하게 컨트롤하지 못하였지만, 그 불완전하고 느린 공격으로도 야탄의 신도들을 상대하기엔 충분했다.

“커억!”

“말락서스 니임!!”

“아아! 야탄 신이시여!”

온갖 저주 마법을 피하지도 않고 맞아주면서 우직하게 검을 휘둘러 신도들을 쓰러뜨린 그리드!

제법 짭짤한 경험치와 잡템들을 획득한 그가 그대로 산을 뛰어 내려갔다.

산 도처에 야탄의 신도들이 매복해 있었다.

“지하의 원통한 영혼들이여, 그대들의 분노와 원한을 담아 적을 공포에 빠뜨려라. 공포에 빠진 자는 다리가 구속될 것이며 정신이 분쇄되어 의지를 상실할지니! 영혼 잃은 인형이 되어라!!”

사방팔방에서 저주 마법이 쏟아진다. 전면에는 독의 안개가 자욱했다.

가소롭다는 듯이 콧방귀 뀐 그리드가 인벤토리에 대검을 집어넣고 신성의 방패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아이린과 자신의 몸을 보호했다.

“크악?!”

야탄의 신도들은 신성의 방패를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 틈에 방패를 회수하고 이번에는 단검을 꺼내 쥔 그리드가 마법들이 날아온 방향들을 노리고 칼바람을 시전했다.

쿠콰콰콰쾅!!

산 곳곳에 칼바람에 의한 폭발이 발생했고, 야탄의 신도들의 비명이 메아리쳤다.

“가, 강하다…!”

야탄의 신도들은 방패와 단검, 그리고 대검을 스위칭해가면서 싸우는 그리드에게 완전히 농락당하고 있었다. 그리드는 감회가 새로웠다.

‘도란과 만났을 때까지만 해도 내게 야탄의 신도들은 어마무시한 적들이었는데 이제는 완전히 입장이 반대가 됐잖아?’

“괴물 같은 놈! 억!”

“키약~!”

기괴한 투구를 쓴 채 말락서스의 망토를 휘날리며 날아다니는 그리드 앞에 속수무책으로 쓰러지는 야탄의 신도들! 개중에는 도무지 그리드를 이길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거의 울상 짓고 싸우는 신도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결코 물러서지 않는다. 죽음마저 불사하는 그들의 광적인 모습이 아이린을 두렵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리드는 오히려 즐거워하고 있었다.

그는 해치우고 또 해치워도 계속해서 나타나는 신도들을 향해서 광소를 터뜨렸다.

“하하하핫! 더 와라! 계속 와! 너희 덕분에 광렙한다!!”

이번 전투로 인해서 그리드는 크게 깨달은 바가 있다.일반적인 유저들은 상태이상을 유발하는 몬스터들을 상대하기 꺼려하지만, 자신은 그들과 전혀 반대라는 사실을 말이다.

‘상태이상에 특화 된 몬스터들은 공격력이나 방어력이 약한 경우가 많지? 나한텐 완전 밥이잖아? 앞으로 나는 되도록 그런 녀석들만 골라서 사냥해야겠다.’

파그마의 후예라는 직업이 가지고 있는 특성과 특수 스탯들 덕분에 상태이상을 거의 100퍼센트 저항하는 그리드!

그는 레전드리 직업이 발휘하는 사기성이 얼마나 막강한지 다시 한 번 절실히 체감하면서 룰프 산의 모든 야탄교 신도들을 처리했다. 말락서스의 망토가 풍기는 피 냄새를 맡고 달려온 몬스터 수십 마리는 덤이었다.

그리고 3시간가량이 지나서야 하산한 그리드의 레벨은 97이 되어 있었다.

“적이 계속 나타나는 바람에 시간이 지체됐군요. 죄송합니다.”

“…그리드 님은 도란의 말대로 의지할 수 있는 분이군요. 당신은 정말로 강하시네요.”

아이린은 북부 최강의 기사를 부하로 두고 있다. 그리고 그녀의 아버지 스테임 백작 또한 훌륭한 무인이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전투를 보는 안목이 높았는데, 그런 그녀가 보기에도 그리드의 실력은 뛰어났다.

그래서 더욱 더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그리드 님은 대장장이시잖아요? 그런데 어쩜 그렇게 강하실 수 있죠?”

그리드가 쉽게 대답했다.

“템빨이죠.”

“템…빨요?”

“음, 풀이하자면 훌륭한 무구의 덕을 보고 있다는 겁니다.”

“실력이 없는 자는, 훌륭한 무구를 가지고 있더라도 다룰 수 없잖아요? 당신은 강할 뿐만 아니라 겸손하기까지 하시군요.”

아이린은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호감도가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영주의 남편이 되기까지 머지않았다고 생각한 그리드가 잔뜩 들떴다. 그리고 아이린을 등에 업은 채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며 무사히 윈스톤에 도착하였다.

“영주님께서 사라지시고 벌써 반나절이 지났다! 한데 아직까지도 행방을 모르다니? 이런 무능한 녀석들 같으니라고! 더 이상 말리지 마라! 내가 직접 영주님을 찾을 것이다!!”

피닉스는 여덟 번째 종 유라와의 전투에서 패배하여 중상을 입었다. 그리고 병석에 누워 정신을 반쯤 잃고 있는 동안 윈스톤 성에 변고가 일어났다.

은밀하게 침투한 야탄의 고위 신도에게 행정관이 세뇌 당하고 병사들이 살해당하는가하면 아이린은 행방불명된 것이다. 피닉스는 침대에서 스스로 몸을 일으키는 일조차 할 수 없는 와중에 직접 아이린을 찾아 나서겠다며 계속 발작을 일으켰고, 기사들은 그를 말리느라 진땀을 빼야만 했다.

“단장님 상처가 심해지고 있습니다! 부디 진정하십시오! 영주님은 저희가 반드시 찾아 무사히 모셔오겠습니다!!”

“닥쳐라! 지금 내 안위 따위가 중요하더냐! 그리고 너희들은 아까부터 같은 소리만 반복할 뿐 실적을 못 내고 있지 않느냐!”

어느새 밤이 깊어졌다. 피닉스는 아이린이 지금 어디서 무슨 일을 겪고 있을지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아가씨께서는 이미 야탄교에 납치당한 경험이 있다. 그 트라우마가 아직 채 가시기도 전이건만… 어찌나 두려우실꼬.’

과거에는 도란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도란은 없다.

‘아가씨, 근심 말고 기다리십시오. 신이 바로 달려가겠습니다!’

“우오오오!!”

이를 악 문 피닉스가 괴성을 질렀다. 그리고 젖 먹던 힘까지 쥐8어짜 침상에서 몸을 일으켰다.

“단장님!!”

기사들이 기겁했다. 피닉스의 가슴에 칭칭 감겨있는 붕대에 피가 흥건하게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이러다가 돌아가시겠다!’

피닉스는 심장 바로 옆에 큰 상처를 입었다.

그가 워낙에 튼튼해서 이렇게 언성도 높이고 몸도 움직일 수 있는 것이지, 사실은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심각한 부상을 입은 상태다. 기사들이 피닉스를 설득했다.

“영주님께서 안 계시고 행정관은 의식조차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지금 단장님마저 쓰러지게 된다면 성은 누가 지킵니까? 정황상 영주님께서 위기에 처하셨을 가능성이 높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무사하실 수도 있는 것입니다. 당장 단장님께서 움직인다 하셔봤자 결과가 바뀌기는커녕 사태만 악화될 뿐이니 부디 진정하십시오!”

“닥쳐라!”

기사들은 옳은 판단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피닉스는 아무 소리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어질어질한 시야 속에서 그저 아이린을 찾고야 말겠다는 일념만으로 검을 챙겼다. 한데 그때 병사 하나가 방으로 뛰어 들어왔다.

“영주님께서!! 영주님께서 돌아오셨습니다!!”

“……!”

***

“신 피닉스가 영주님을 지켜드리지 못하였습니다! 이는 3대를 멸하여도 씻을 수 없는 죄! 신을 죽여주시옵소서!!”

아이린 앞으로 달려온 피닉스가 무릎 꿇고 외쳤다. 반송장이나 다름없는 몸으로 뛰어다니고 있으니, 기사와 병사들은 그가 괴물 같아 보였다.

“피닉스 경…”

피닉스의 가슴에 감겨있는 붕대 안쪽에서부터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과도한 출혈 탓에 안색은 창백하고 입??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