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템빨-36화 (32/1,794)

제8장

이게 뭐냐

무사히 케산 협곡에서 돌아온 나를 칸이 매우 반겼다.

“케산 협곡의 무시무시한 몬스터들로부터 생환하다니! 과연 자네는 굉장하군! 그래서 어떤가? 파그마의 검무는 제대로 익혔는가?”

“물론이죠.”

“나의 선조를 감격시켰다는 그 위대한 검무를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내게 줄 수 있겠는가?”

“좋습니다. 여기는 좁은 감이 있으니까 뒤뜰로 나가죠.”

칸의 대장간 뒤뜰.

땔감이 잔뜩 쌓여 있는 그곳에서 나는 이상적인 단검을 뽑아 쥐었다. 그리고 파그마의 검무를 활성화시킨 뒤 스킬을 사용했다.

“파그마의 검무, 파(波)!”

내가 춤을 춤에 따라 파란 검광이 사방으로 물결친다. 그 화려한 광경에 매료당한 칸이 감동하여 환호했다.

“오오오오! 대단해! 아름답고 강렬하군!”

“사실 이 외에도 네 가지 검무가 더 있지만 오늘은 이 정도로 끝내죠.”

“어째서인가? 나는 나머지 검무도 다 감상하고 싶다네.”

나도 칸에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다. 하지만 나의 현재 마나는 불과 630!

파그마의 검무를 활성화시키고 파(波)를 사용한 것만으로 마나가 고작 260밖에 남질 않았다. 그리고 이 정도 마나로는 그 어떤 검무도 이어서 출 수가 없다.

결국 나는 솔직하게 밝혔다.

“마나가 부족해서 연속적으로 사용하기엔 무리가 있어요. 마나 물약을 먹으면 되지만 함부로 사용하기엔 돈이 아깝죠.”

“허, 그런가.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자, 따라오게나.”

칸은 나를 대장간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그리고 2층에 소중하게 전시해 놓고 있던 다인슬레프를 집어서 내게 건네주었다.

“약속했던 보상일세. 자네는 파그마의 후예로서 그 누구보다도 다인슬레프의 가치를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으리라 믿네.”

[다인슬레프(모작)을 획득하였습니다.]

[퀘스트 성공!]

<다인슬레프(모작)>

등급:유니크

내구력:500/500 공격력:451~635 공격 속도:-8%

*대상의 현재 방어력의 10퍼센트에 해당하는 수치만큼 추가 피해.

*적의 숫자가 많을수록 공격력 증가.

*스킬 ‘금빛 섬광’ 생성.

아직 파그마가 등장하기 이전의 시대, 인류 최초로 ‘대장장이 장인’의 호칭을 얻었던 알바티노가 신화 속 무기인 다인슬레프를 재현하고자 만든 작품입니다.

결과적으로 다인슬레프에는 한참 못 미치는 작품이지만 다인슬레프의 특징 중 일부를 복원하는 것에는 성공하여, 다인슬레프 모작은 이미 그 자체로도 뛰어난 명품입니다.

에트날 왕국의 시조, 북방의 패왕 로란으로부터 ‘인류 역사상 최고의 걸작’이라는 찬사를 받았을 정도입니다.

전설의 대장장이 파그마도 이 작품에서 큰 영감을 얻었다고 전해집니다.

사용 조건:레벨 250 이상. 근력 1,800 이상. 고급 소드 마스터리.

무게:1,580

사용 조건이 상당히 높기는 하지만, 기능만으로 놓고 따져 보면 무아지경의 검을 상회하는 무기가 바로 다인슬레프다.

아마, 현재 Satisfy에 존재하는 모든 무기 중에서도 다인슬레프는 최상급일 것이라고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최상위 랭커들 중에서도 이 정도 무기를 보유한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일 거야.’

나는 다인슬레프가 매우 마음에 들었다. 첫째로 대검이라는 게 좋았고, 둘째로 성능이 뛰어나다는 것이 좋았고, 셋째로 생김새가 좋았다.

총길이가 무려 3미터 20센티미터에 달하는 다인슬레프. 그 외관은 압도적이다.

흑철로 제작된 검신은 묵색으로 번들거려 기품과 강인함을 동시에 표현하고 있었고, 미스릴로 제작된 손잡이는 너무 과하지 않은 은빛을 발하며 묵색 검신과 절묘하고 고급스러운 조화를 이뤘다.

이걸 등에 메고 다닌다면 모든 사람들이 선망의 눈길을 보내 올 게 분명하다.

‘여기에 강화까지 하면 이팩트를 발생하면서 더 멋있어지겠지?’

짜릿한 상상을 해 보면서 전율한 나는 힘차게 소리쳤다.

“좋아! 다음은 발할라다!”

칸은 가보인 다인슬레프와 발할라의 가치를 알아보고 훌륭하게 사용해 줄 수 있는 존재의 출연을 기다려 온 인물이다.

그리고 그 인물은 다름 아닌 나다.

“칸! 다음은 뭘 할까요? 뭘 하면 발할라를 주실 거죠?”

허허 웃은 칸이 내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우선은 푹 쉬도록 하게나. 여독부터 풀어야지, 자칫 무리하다가 병이라도 날까 걱정일세.”

칸의 반응을 보아하니, 아직 두 번째 전직 퀘스트 생성 조건이 갖춰지지 않은 듯하다.

나는 언젠가 자연히 때가 찾아오리라 믿으며 칸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

여덟 번째 종의 등장!

야탄교에 속한 모든 유저들의 경험치 획득률이 일정 기간 동안 20퍼센트 증가!

그로 인해 신규 유저들의 야탄교 가입률이 폭발적 증가!

결국 모든 것이 야탄교의 성장으로 귀결!

Satisfy에 존재하는 모든 세력 중 가장 불순하고 사악하다고 알려진 야탄교의 성장이 향후 Satisfy의 행보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세상은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그리고 대부분 부정적인 해석을 내놨다.

“이대로 야탄교가 수월하게 성장한다면 Satisfy의 치안 유지가 어려워질 겁니다. 지금만 해도 야탄교에 희생당하는 NPC의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인구가 눈에 띄게 줄어드는 도시들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아예 사라진 마을은 셀 수도 없이 많고요. 연합국은 반드시 야탄교와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정의로써 혼란을 잠재워야만 합니다.”

유라의 성장을 경계하는 무리들도 있었다.

“여덟 번째 종은 유라가 확실합니다. 야탄교의 간부가 된 그녀는 야탄교가 강성해질수록 엄청난 해택을 누리게 될 겁니다. 일반 유저들은 상상조차 못 할 정도의 해택 말입니다! 그러면 랭커들 간의 정정당당한 대결이 퇴색되고 일방적인 게임이 되고 말 것입니다!”

뭐, 이 외에도 수많은 우려들이 난무하는 중이다.

하지만 나는 돌아가는 일들에 전혀 관심이 없다.

‘먹고살기 바빠 죽겠구만 별걸 다 신경 쓰네. 유라가 혼자 잘 먹고 잘 살게 되었다는 점은 배 아프지만, 그 악독한 계집이야 원래부터 잘 먹고 잘 살았잖아? 이제 와 새삼스럽게 질투하기도 우습다.’

케산 협곡에서 돌아오고 3일이 지났다.

그동안 나는 오로지 아이템 제작에 열중했다.

하지만 3일 동안 내가 만든 아이템은 노멀 2개와 레어 1개가 고작…….

“제작 확률 진짜 더럽네. 이래서야 사냥해서 돈 버는 게 더 낫겠다, 염병. 이래 가지고 언제 돈을 벌어서 빚을 갚냐. 에휴.”

당장에 북쪽 설원으로 달려가고 싶다. 그리고 서릿빛 오크들을 사냥해서 레벨을 올리고 동시에 실피드의 비늘을 수집하고 싶다.

‘실피드의 비늘 20개를 모으고 후드짚업을 제작하면 좋을 텐데……. 겸사겸사 레벨도 올려서 지력도 높이고.’

하지만 실피드 비늘의 드롭 확률은 최악이다.

현실 시간으로 바로 5일 뒤면 빚의 이자를 상환해야 하는 날이기 때문에 낮은 확률에 기대기가 난처하다.

‘5일 동안은 아이템 제작에 집중하자. 그리고 안정적인 수익을 올려서 이자를 갚자. 이자 제때 안 갚았다간 또 차압 들어오니까.’

“그리드 님 계십니까?”

지긋지긋한 빚쟁이 인생에서 언제쯤 탈출할 수 있을까, 한숨을 푹푹 내쉬는 그때 병사 2명이 대장간을 찾았다.

“뭡니까?”

안 그래도 기분이 나빴던 나는 퉁명스럽게 물었고, 그들은 내게 곧바로 용건을 꺼냈다.

“행정관님께서 급히 찾으십니다.”

“오……?”

아무래도 행정관과의 거래 연계 퀘스트가 발생하는 시점인 듯하다.

‘이번엔 뭘 만들어 달라고 하려나?’

또 큰돈을 벌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나는 기대를 품고서 영주 성에 입성했다.

행정관의 집무실.

내가 입실하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행정관이 두루마리를 건네 왔다.

“한시가 급하네. 혹시 이 제작법대로 물품을 제작해 줄 수 있겠는가?”

“이게 뭔데요?”

나는 두루마리를 펼쳐 보았다.

<‘신성의 방패’의 제작법>

습득 조건:고급 대장장이 마스터리 3레벨 이상.

*신성의 방패:빛의 여신 레베카의 가호가 깃든 방패입니다. 암흑 계열 마법에 강력한 면모를 보이며, 마족과 야탄의 신도들은 이 방패와 마주하게 되는 것만으로도 괴로워합니다.

사용 조건:레벨 190 이상.

“헉…….”

설마 이 귀한 아이템 제작법을 내게 익히게 해 주겠다는 건가?

반신반의하고 있는 내게, 행정관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설령 자네라도 그 제작법을 이해하고 습득할 실력은 못 되는 건가?”

나는 냅따 고개를 저었다.

“아뇨, 충분히 이해하고 습득할 수 있습니다.”

“오오! 그렇다면 당장 그 제작법을 습득해서 방패를 만들어 주시게!!”

190레벨 제한 아이템의 제작법을 공짜로 익힐 수 있게 된 천금 같은 기회다. 내게 거절할 이유 따윈 전혀 없다. 하지만 한 가지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제작법대로 방패를 만드는 거야 가능하지만, 그 방패에 신의 가호를 각인시킬 만한 신성력이 제게는 없습니다.”

신성력 혹은 마력이 깃든 아이템은 대장장이 혼자서 완성시킬 수 없다. 반드시 사제나 마법사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것은 행정관도 잘 알고 있는 부분이었던 듯하다.

“걱정 말게. 이미 사제분을 모셔 놨네.”

행정관이 한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쪽을 바라보니, 레베카 여신을 섬기는 자임을 상징하는 백색 의복을 몸에 두르고 있는 사내가 서 있었다.

‘뭐야, 이 기분 나쁜 놈은?’

같은 방 안에 함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태까지 전혀 기척을 감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 이렇게 시선을 마주 보고 있어도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는, 기묘한 남자다.

본능적인 불쾌감이 느껴졌다.

경계심을 표출하는 내게 사제가 꾸벅 인사했다.

“카서스라고 합니다. 빛의 여신 레베카를 섬기고 있는 몸이지요.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카서스의 머리 위에 떠올라 있는 이름은 녹색이었다. 즉, NPC라는 뜻이다.

나는 필요 이상의 경계를 거뒀다.

“아, 네. 저도 잘 부탁합니다.”

퀘스트 정보가 떠올랐다.

<행정관과의 거래(2)>

난이도:AA

전쟁에서 연패하고 병력에 큰 손실을 입은 윈스톤은 현재 무방비 상태나 다름이 없다.

행정관 블라디는 야탄교의 역습에 대비해서 신성의 방패를 필요로 하고 있다.

당신은 레베카를 섬기는 사제 카서스와 힘을 합쳐서 신성의 방패를 완성해야만 한다.

퀘스트 클리어 조건:최소 에픽 등급의 신성의 방패를 제작해서 이틀 내로 납품.

퀘스트 수락 보상:신성의 방패의 제작법.

퀘스트 클리어 보상:납품하는 아이템의 수준에 따라 다름.

퀘스트 실패 시:행정관과의 거래가 파기되면서

연계 퀘스트 소멸.

[퀘스트를 수락하시겠습니까?]

거절할 이유가 없는, 오히려 고대하던 연계 퀘스트다.

그런데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야탄교의 군대가 윈스톤을 침략할 가능성이 있는 겁니까?”

“군대가 이곳까지 진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킨바이 요새를 거쳐야만 하네. 그리고 킨바이 요새에는 북부의 정예군이 버티고 있지. 그래서 윈스톤에 적의 군대가 침략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해. 하지만 소수의 파괴 공작단이 잠입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네. 그들에게 대항하기 위해서 신성의 방패가 필요한 것이고.”

“흠… 그렇군요. 제 작은 힘이 보탬이 되기를 바랍니다.”

[퀘스트를 수락하였습니다.]

[신성의 방패의 제작법을 획득하였습니다.]

‘좋아……!’

인벤토리에 들어온 신성의 방패의 제작법을 확인하고 기뻐하는 내게 행정관이 재촉했다.

“지체할 시간이 없네! 성내에 대장간이 있으니 그곳에서 방패를 제작해 주시게!”

칸의 대장간까지 오가는 시간마저 아깝다 이건가?

“제작에 필요한 재료부터 구입해야 하기 때문에 일단 시장부터 들러야 합니다.”

“사람을 붙여 줄 테니 잡일은 그들에게 시키게나.”

“그렇게까지 말하신다면야…….”

행정관의 뜻대로 나는 곧장 성내의 대장간으로 향했다.

대장장이들의 수준은 칸과 비할 바 없이 낮았지만, 시설만큼은 칸의 대장간과 비교해도 손색없는 곳이었다.

나는 두루마리를 펼쳤다.

[신성의 방패의 제작법을 익히겠습니까?]

“어.”

[신성의 방패의 제작법을 익혔습니다.]

<신성의 방패>

등급:레어~레전드리

레어 등급 정보.

내구력:360/360 방어력:189 마법 저항력:150

*희박한 확률로 암흑 계열 마법에 완전 저항.

에픽 등급 정보.

내구력:430/430 방어력:230 마법 저항력:181

*일정 확률로 암흑 계열 마법에 완전 저항.

유니크 등급 정보.

내구력:510/510 방어력:295 마법 저항력:238

*일정 확률로 암흑 계열 마법에 완전 저항.

*스킬 ‘신성한 빛’ 생성.

레전드리 등급 정보.

내구력:680/680 방어력:370 마법 저항력:280

*높은 확률로 암흑 계열 마법에 완전 저항.

*스킬 ‘신성한 빛’ 생성.

*스킬 ‘신의 가호’ 생성.

빛의 여신 레베카의 가호가 깃든 방패입니다. 암흑 계열 마법에 강력한 면모를 보이며, 마족과 야탄의 신도들은 이 방패와 마주하게 되는 것만으로도 괴로워합니다.

사용 조건 : 레벨 190 이상. 근력 500 이상.

신성력 1,000 이상. 레베카교의 성직자.

무게:800

‘최소 레어 등급부터 만들어지는 건가…….’

신성의 방패의 상세 정보를 확인한 나는 이어서 제작 방법과 필요 재료 목록을 확인했다.

‘신성력을 주입할 매개체인 마석을 중심으로 삼아서 미스릴로 뼈대를 세우고 강철을 덧씌운다. 그리고 금으로 도금? 금까지 필요해?’

빛의 여신 레베카를 상징하는 것이 2가지 있었으니 첫째는 태양이요, 둘째는 금이다.

그래서인지 신성의 방패의 제작에는 다량의 금을 필요로 했다.

‘마석이며, 미스릴이며, 황금이며. 재료값이 어마어마하겠군. 이건 그야말로 사치품이네.’

방패 하나를 제작하기 위해 필요한 주재료는 최상급 마석 1개, 미스릴 원석 2킬로그램, 철광석 15킬로그램, 황금 400그램이었다.

나는 행정관이 붙여 준 심부름꾼들에게 방패 2개를 제작할 수 있을 분량의 재료를 사 오라고 시켰다.

잠시 후.

재료를 구해 온 심부름꾼들이 영수증을 제출했다.

“구매 비용은 총 1만 6,935골드 20실버였습니다.”

“…….”

고작 방패 2개 만드는 데 이런 거금이 필요하다니! 이건 내 전 재산에 가까운 액수가 아닌가!

‘최소 레어 등급으로 완성되는 게 보장되는 아이템이라고는 해도… 재료비가 이만큼이나 든다면 레어 등급으로 만들어져도 손해를 입을 수 있겠는데?’

행정관이 필요로 하는 신성의 방패는 최소 에픽 등급 이상이다. 최악의 경우 레어 등급의 방패가 만들어지게 된다면, 난 그것을 다른 곳에다가 가져다 팔아야 하는데 사용 조건이 ‘레베카교의 성직자’로 한정되는 물품이 과연 팔릴지나 의문이다.

‘아, 이런 제기랄.’

왠지 불길하다. 내키지 않는다.

나는 지금이라도 퀘스트를 포기하려다가 한 번 더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재료값이 비싼 대신… 에픽 등급 이상이 뜰 경우엔 이윤도 높을 테지.’

2개의 방패 중 1개는 반드시 에픽 등급이 떠야 하는 상황!

한참을 고심한 끝에, 나는 결정을 내리고 제작용 망치를 꺼내 들었다.

“만든다.”

따앙! 따앙!

퀘스트 제한 시간은 단 이틀!

나는 곧바로 강철과 미스릴을 제련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문득, 내 뒤쪽 벽에 미동 없이 서 있는 카서스를 발견하고 소름 돋게 놀랐다.

‘뭐야? 계속 여기에 있었던 거야?’

아무래도 카서스는 행정관의 집무실에서부터 여기까지 쭉 나를 따라다녔나 보다. 한데 존재감이 워낙 없어서 여태까지 그가 곁에 있다는 사실을 인지조차 못하고 있었다.

일말의 표정도 없는 얼굴! 창백한 피부! 마치 썩은 동태눈깔처럼 퀭한 눈동자!

빛의 여신을 모시는 사제는커녕 야탄 신을 모실 것 같은 생김새를 가진 녀석이 계속 옆에 붙어 있으니 영 찝찝하다.

“저기, 카서스 님?”

“네.”

“어디 가서 쉬고 계시죠? 당신의 차례는 한참 후입니다.”

카서스가 고개를 저었다.

“호의는 감사하지만 그럴 수는 없습니다. 당신 혼자만 고생시킬 수는 없지요. 곁에서 지켜보며 레베카 여신께 기도하겠습니다. 당신이 부디 훌륭한 방패를 제작하실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

인상과 달리 착한 사람이다. 하지만 착하다고 다 좋은 게 아니다.

‘너의 그 무시무시한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아 하는 내 마음을 정녕 몰라주는 거냐?’

나는 입 밖으로 꺼내고 싶은 말을 간신히 눌러 담으며 다시금 제작에 몰두했다.

그리고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밤이 깊어지고, 다른 대장장이들은 진즉에 곯아떨어졌을 무렵.

제련에 상당히 애를 먹은 미스릴 뼈대를 드디어 완성하고, 그 위에 마석을 올려놓은 나는 쭉 기지개를 폈다.

“아우, 미스릴 이거 참 까다로운 광물일세.”

잠시 한숨 돌릴까 싶어서 인벤토리에서 빵과 물을 꺼내노라니…

“이것도 함께 드시지요.”

“히익!!”

나는 등 뒤에서부터 불쑥 들려오는 목소리를 듣고 기겁했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니, 손에 치즈를 든 카서스가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다, 당신! 여태까지 쭉 그 자리에 서 있었던 겁니까?!”

카서스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곁에서 기도하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아니, 솔직히 말해서 기도해 봤자 무슨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고 그냥 가서 쉬라니깐…….”

무표정하던 카서스의 얼굴이 처음으로 변화했다. 아주 살짝 눈썹이 찌푸려진 것이다.

“레베카 여신께서는 빛을 관장하십니다. 여기서 말하는 빛이란 모든 긍정적인 기운을 포괄한 것으로서, 행운도 포함됩니다. 저의 기도는 당신에게 반드시 행운을 불러일으킬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종교인 앞에서 기도를 무시하는 듯한 발언을 뱉은 건 실수였다. 안 그래도 무섭게 생긴 놈한테 원한 사지 말자.

나는 냅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제가 신앙에 대해서 무지한 탓에 말실수를 범하고 말았네요. 죄송합니다. 그리고 부탁합니다. 부디 계속 기도해 주십시오.”

“네.”

대답한 카서스는 곧장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더니 기도를 시작했다.

‘굉장히 행동적인 인물이군.’

나는 카서스가 건네준 치즈를 빵에 발라 먹은 뒤 다시 작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1시간 후.

미스릴 뼈대에 마석을 완전하게 고정시킨 나는 여전히 서서 기도하고 있는 카서스를 불렀다.

“이제 당신 차례입니다. 신성력을 주입해 주십시오.”

카서스는 말없이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마석 앞에 무릎 꿇고 앉아 레베카 여신에게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오~! 그 이름부터 찬란한 레베카 여신이시여!”

어쩌구저쩌구.

참 길게도 이어지는 기도다.

‘밤새 자리에 앉지도 않고 서서 기도했으면서 아직도 저 정도 체력이 남아 있다니……. 대단하군.’

졸음이 쏟아진다.

꾸벅꾸벅 졸고 있던 나는 카서스의 음침한 음성을 듣고 깨어났다.

“그리드 님, 신성력 주입이 끝났습니다.”

“히익!!”

눈 뜨자마자 카서스의 창백한 얼굴과 퀭한 눈을 마주하자 소름이 돋았다. 이 자식, 이름만 성직자지 외모를 보면 볼수록 악마 같다.

“왜 그러십니까?”

몰라서 묻냐? 거울 안 보고 사냐?

의아해하는 카서스에게 나는 그렇게 따지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별일 아닙니다. 자, 다시 시작해 볼까요?”

그리고 나는 다음 날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방패 제작에 매진했다.

방패를 만들면서 소요한 제작 시간은 무려 23시간.

평소에 아이템 하나를 만들 때마다 일부러 20시간 이상씩의 시간을 투자하는 나지만, 이번엔 경우가 많이 달랐다. 내 의지로 23시간을 투자한 게 아니라, 만들다 보니 어쩔 수 없이 23시간이 소요된 것이다.

‘어려워.’

미스릴과 마석을 다루는 일은 굉장히 난이도가 높았다. 경험이 늘어난다면 이야기가 좀 달라지겠지만, 현재의 내게는 많이 힘든 일이었다.

‘고급 대장장이 3레벨 이상이면 익힐 수 있는 제작법의 아이템 제작이 뭐 이리 어려워? 역시 경험도 중요하게 작용하는 건가.’

Satisfy는 현실성을 추구한다.

똑같은 레벨, 똑같은 직업의 유저가 똑같은 스킬을 사용할지라도, 그 스킬을 사용해 본 경험이 더 많은 쪽의 유저가 더 효율적으로 스킬을 사용하는 게 가능하다.

아이템 제작도 비슷한 이치다.

파그마의 후예인 나는 기본적으로 미스릴 제련법을 익히고 있지만, 실제로 미스릴을 제련해 본 경험은 없었기 때문에 제련에 애를 먹고 상당한 시간을 소요하고 말았다.

‘뭐, 이제 어느 정도 경험도 축적됐으니까 다음 방패는 좀 더 빨리 만들 수 있겠지.’

나는 새로운 방패의 제작에 착수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대장장이들이 의문을 표했다.

“이미 하나의 방패를 완성 직전의 단계까지 만들지 않으셨습니까? 금으로 도금만 하면 될진대, 어째서 마무리 짓지 않고 새로운 작업에 임하시는 겁니까?”

“2개를 동시에 완성시키고 싶어서요.”

대장장이들에게는 간단하게 말했지만, 사실은 깊은 뜻이 있다.

‘먼저 만든 방패가 고작 레어 등급으로 완성되면 의욕이 떨어지잖아. 어떤 등급으로 완성될지 차라리 모르고 있는 게 나아.’

방패를 만들 재료는 애초에 2개 구비해 놓은 상태다. 그래서 나는 2개의 아이템을 동시에 완성해서 둘 중 하나라도 에픽 등급 이상으로 뜨기를 기원할 참이다.

***

S.A그룹의 대표이사이자 Satisfy의 개발자인 임철호는 24시간 중 20시간을 일한다고 소문나 있다. 사람들은 임철호가 휴식을 취하는 시간이 오로지 밥 먹을 때와 잠 잘 때뿐이라고 알고 있다.

하지만 그건 다소 과장된 이야기다.

임철호에게도 별도의 휴식 시간은 존재한다.

하루 1시간, 집무실 소파에 편하게 드러누운 채 Satisfy의 유저들을 모니터링하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최근 며칠간 임철호는 그리드를 집중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있었다.

“호오, 그렇지.”

임철호는 연신 탄성을 터뜨렸다. 마치 흥미진진한 애니메이션을 감상하는 어린아이처럼 두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재미있군.”

진심으로 하는 말이다.

임철호는 그리드의 행보에서 강한 흥미를 느꼈다.

그리드는 대부분의 유저들과 다르게 게임을 효율적으로 운영하지 않는다. 편법을 사용하지도 않는다. 단순해 보일 정도로 우직하게 게임한다. 아이템 하나를 만들 때마다 Satisfy 시간으로 20시간 이상씩 투자하는 모습은 압권이다.

순수하게 보일 지경이랄까?

임철호는 그 순수한 맛이 좋았다.

“하하하! 이런 말도 안 되는! 188레벨 기사를 저렇게 운 좋게 해치우다니! 오오, NPC에게 동업 제안을 받는 건가? 신선하군. 허, 역시 그리드의 작품이 가장 높은 경매가에 낙찰되었군. 저런… 기껏 만든 레전드리 아이템을 NPC에게 판매하다니, 저건 너무 심하군. 하지만 저러고도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과연 즐겜 유저답군. 음? 아이린과 도란의 반지를 못 알아보는 건가? 이것 참 아쉬운걸? 만약 알아봤다면 아이린과의 관계가 크게 발전했을 텐데. 호오, 투명 망토의 제작법을 창조하다니, 드물게 현명한 선택을 했군. 음? 결국 투명 망토 제작은 시도조차 못하는 건가? 뭐, 언젠간 만들 수 있을 테지. 오오! 2인 레이드라! 흠, 레벨도 많이 올리고 아이템도 습득해서 결과적으로 잘되긴 했지만 파그마의 검무를 찾는 일에 조금 더 집중해 주었으면 좋았을 걸 너무 돌아가는군. 좋아, 드디어 파그마의 검무를 발견했군! 아니? 하하하! 벽화의 검무를 몇 시간 동안이나 따라 하고 있다니! 걸작이로구만!”

때로는 감탄하고, 때로는 아쉬워하고, 때로는 칭찬하고, 때로는 흥겨워하며, 그렇게 임철호는 그리드를 지켜봤다.

그러다가 한 부분에서 처음으로 화를 냈다.

“아니! 어째서 피아로의 퀘스트를 거절한 게지? 여태까지처럼 무작정 달려들고 보면 좋은 결과로 이어졌을 텐데 말이야!”

피아로가 처단해 달라고 요청한 아스모펠은 현재 심하게 병든 상태다. 그리드가 충분히 해치우고 퀘스트를 클리어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큰 보상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리드는 어울리지 않게 지나치게 경계하여 천운을 놓치고 말았다.

“케산 협곡을 떠나기 전부터 사람이 많이 변했어. 처음에는 무계획적이고 즉흥적으로 행동하더니 이제는 나름 계획도 세우고 절차를 밟아 가. 하지만 아직 미숙해서 아쉬운 쪽으로 전개가 되는군…….”

윤상민 이사는 그리드를 바보라고 지칭한 적이 있다. 레전드리 직업으로 전직하고도 제대로 효율을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에 임철호는 허허 웃을 뿐이었지만, 지켜보고 있자니 윤상민 이사가 답답해한 이유를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언젠가 윤상민 이사가 말했다.

‘제가 그리드였다면, 직업을 내세워서 길드부터 가입했을 겁니다. 레벨이 아무리 낮아도 레전드리 전직자이니만큼 최상위 길드를 입맛대로 골라서 가입할 수 있었겠죠! 그리고 길드의 지원을 받으며 성장했을 겁니다. 아이템 제작비도 지원받고 퀘스트 도움도 받으면서요. 아마 길드에 가입했었다면 전직 퀘스트도 진작 클리어했을걸요? 그리고 지금쯤 더 큰 목표를 가지고 움직이고 있었을 테죠! 하지만 그 녀석은 능력도 없는 주제에 뭘 그리 죄다 혼자 해내겠다고 나대는 건지, 원. 훌륭한 계획을 세워 놓고 계획대로 움직인다면 또 몰라. 대장간에 틀어박혀서 아이템 만드는 것밖에 안 하는 주제에, 어휴.’

일리 있는 말이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윤상민 이사처럼 생각할 것이다. 내가 그리드였다면 훨씬 더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자부할 것이다.

하지만 임철호는 의문을 품었다.

“그렇게 게임해서 재밌나?”

Satisfy는 이미 또 하나의 현실로 인식되고 있다. Satisfy를 단순한 게임으로 여기는 사람은 이제 드물다.

Satisfy에서 성공하면 현실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 그렇기에 Satisfy를 플레이하는 유저들은 효율만 추구한다.

하지만 Satisfy는 근본적으로 게임이다. 임철호가 Satisfy를 제작한 의도는 사람들이 즐기길 바라서였다. 그러니까 유저들은 단순히 즐기기 위해서 플레이하면 되는 거다.

굳이 남들처럼 되기 위해서 남들과 똑같이 플레이하다 보면 오히려 게임에 금방 흥미를 잃게 될 수도 있다.

임철호는 그런 걸 원치 않았다.

“Satisfy는 의무적으로, 강박관념을 가지고 플레이해야 하는 게 아니야. 그리드처럼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즐기면 되는 거라고.”

지금 임철호는 간과하는 부분이 있다.

그리드의 행보를 지켜보면서, 임철호는 그리드가 별다른 욕심 없이 단순히 즐겁게 게임을 즐기는 유저라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전혀 다르다.

그리드는 그 누구보다도 성공을 바라고 Satisfy를 플레이하는 중이다. 하지만 능력이 없어서 우회를 반복하고 있을 뿐!

“응?”

임철호는 윈스톤 성의 행정관의 의뢰를 받고 방패를 제작하고 있는 그리드의 곁에 선 레베카교의 사제에게 시선을 사로잡혔다.

“저건……?”

임철호가 평범해 보이는 손목시계에 입을 가져다 대고 말했다.

“모르페우스.”

잠시 후, 임철호의 손목시계에서 기계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부르셨나요?]

“현재 G-HF06C1E에 있는 NPC 목록을 검색해 주게. 그중에 이사벨이 있는가?”

[없습니다.]

“허?”

임철호의 얼굴에 의문이 떠올랐다.

퀘스트 제한 시간까지 남은 시간은 이제 2시간!

그리고 나는 1개의 방패의 도금을 끝마쳤다.

완성된 아이템의 정보가 떠올랐다.

<신성의 방패>

등급:레어

내구력:360/360 방어력:189 마법 저항력:150

*희박한 확률로 암흑 계열 마법에 완전 저항.

대단한 실력과 잠재력을 지녔지만, 경험과 명성은 비교적 부족한 이름 모를 장인이 제작한 방패입니다.

레베카교의 사제, 카서스의 신성력을 통해서 빛의 여신 레베카의 가호가 깃들었습니다. 암흑 계열 마법에 강력한 면모를 보이며, 마족과 야탄의 신도들은 이 방패와 마주하게 되는 것만으로도 괴로워합니다.

사용 조건:레벨 190 이상. 근력 500 이상. 신성력 1,000 이상. 레베카교의 성직자.

무게:800

[레어 아이템을 제작하여 모든 능력치가 +2 영구적으로 상승, 대륙 전역에 명성이 +30 상승합니다.]

“아, 이런 씨팔.”

우선 첫 번째 완성품은 레어 등급이었다.

최소 에픽 등급의 완성품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랐던 나는 좌절을 넘어 절망했다.

“…희망 하나가 사라졌다.”

2개의 방패를 제작하는 데 거의 전 재산을 투자했다. 만약 다음 방패도 레어 등급으로 떠서 이번 퀘스트에 실패했다간 본전도 건지기 어려워진다.

화를 견디지 못하고 부들부들 떨고 있는 내게 카서스가 위로의 말을 건넸다.

“나머지 하나는 좋은 결과물로 완성될 것입니다.”

나는 울컥했다.

“기도하면 분명 효과가 있을 거라고 했잖습니까! 근데 이게 뭐죠? 세상에 신이 존재하긴 합니까!”

“…….”

괜히 내 화풀이 대상이 된 카서스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표정은 여전히 변화가 없지만 황당해하고 있는 듯한 기색이다. 이틀 내내 붙어 있었더니 저 무표정한 얼굴을 읽는 것도 어느 정도 가능해졌다.

“쩝… 죄송합니다.”

죄 없는 카서스를 탓해서 뭣하리. 내 운이 더러워서 이 모양 이 꼴인 것을.

카서스에게 사과한 나는 나머지 1개의 방패에 신중히 도금했다. 그리고…

<완전한 신성의 방패>

등급:레전드리

내구력:680/680 방어력:370 마법 저항력:280

*높은 확률로 암흑 계열 마법에 완전 저항.

*스킬 ‘신성한 빛’ 생성.

*스킬 ‘신의 가호’ 생성.

대단한 실력과 잠재력을 지녔지만, 경험과 명성은 비교적 부족한 이름 모를 장인이 제작한 명품 방패입니다.

레베카교의 사제, 카서스의 신성력을 통해서 빛의 여신 레베카의 가호가 깃들었습니다. 암흑 계열 마법에 강력한 면모를 보이며, 마족과 야탄의 신도들은 이 방패와 마주하게 되는 것만으로도 괴로워합니다.

사용 조건:레벨 190 이상. 근력 500 이상. 신성력 1,000 이상. 레베카교의 성직자.

무게:800

[레전드리 아이템을 제작하여 모든 능력치가 +25 영구적으로 상승, 대륙 전역에 명성이 +1,000 상승합니다.]

“커! 커억!”

너무 놀란 나머지 숨이 막혀 죽을 것 같다.

얼굴이 파랗게 질린 채 어찌할 줄 모르고 있는 내 곁에서 방패를 자세히 살펴본 카서스가 처음으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축하드립니다.”

“…….”

무표정할 때는 창백한 피부색과 퀭한 눈동자 탓에 굉장히 더러운 인상이지만, 저렇게 웃으니까 나름 괜찮아 보인다.

나는 카서스에게 처음으로 호감을 느꼈다.

“이게 바로 다 당신의 기도 덕분입니다!”

“제 덕이 아니라 레베카 여신의 가호 덕분인 거죠.”

“네! 맞아요! 레베카 님 만세! 만세! 만만세!”

“레베카 여신은 영원불멸의 존재이십니다. 만세 하지 마시죠.”

“…아, 네.”

“자, 행정관에게 돌아가지요.”

“알겠습니다!”

방패를 인벤토리에 챙겨 넣은 나는 한시라도 빨리 이 방패를 행정관에게 보여 주고 싶다는 마음에 들떠서 전력을 다해 내달렸다. 그런데 카서스는 걷는 듯이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내 속도에 전혀 뒤처지지가 않았다.

‘키가 크니까 다리도 길어서 걸음까지 빠른 건가?’

의문을 느끼는 사이, 우리는 행정관의 집무실에 도착했다.

“왔는가.”

언제나 나를 반갑게 맞이하던 행정관이 오늘따라 무덤덤하다.

‘표정이 영 안 좋은데? 마누라랑 싸우기라도 했나? 하지만 그 우울한 기분도 이걸 보는 순간 날아갈 거요!’

나는 행정관에게 무려 레전드리 등급의 신성의 방패를 보여 주었다.

“자, 어떻습니까? 쩔죠? 아니, 대단하죠?”

“…….”

행정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신성의 방패를 자세히 살펴보기만 했다.

훗, 하긴 말문이 막힐 수밖에 없겠지.

저번 의뢰에는 레전드리 검을 만들어 오더니, 이번에는 레전드리 방패를 만들어 오다니!

세상에 이런 위대한 대장장이가 존재하는 게 가능한 것일까, 하고 감탄하면서 동시에 꿈인지 생신지 혼란스러울 것이다.

‘나조차도 꿈인지 생신지 모를 지경이니까.’

아이템 제작 횟수가 늘어날수록 느끼는 바가 있다.

고등급 아이템을 만들기 위해서는 실력과 재료의 질, 투자한 노력을 뛰어넘는 운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바이란 마을에서 최초로 제작했던 아이템, 야파 화살이 곧장 에픽 등급으로 떴었기 때문에 나는 한동안 에픽 등급 아이템 만들기가 쉬운 줄 알았었다.

하지만 실상은? 착각이었다.

유페미나와의 아이템 제작 승부에서 단시간에 유니크 등급의 아이템이 떴었기 때문에, 나는 또 한동안 유니크 등급 아이템 만들기가 쉬운 줄 알았었다.

하지만 실상은? 그 또한 크나큰 착각이었다.

‘레전드리 아이템을 만든다는 건 로또 당첨되는 것과 같아.’

그렇게 결론을 내리던 나는 문득 카서스의 기도를 떠올렸다.

‘어쩌면 정말로 카서스의 기도가 효력을 발휘한 걸 수도 있겠지.’

내가 아이템을 제작하는 이틀 동안 쭉 곁을 지키며 기도해 준 그의 노고에 뒤늦게 진심으로 감사를 느낀다.

슬그머니 카서스에게 시선을 돌려 보았다. 예의 그 무표정한 얼굴이었지만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나는 카서스에게 웃어 주었다. 그러자 카서스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제게 뭔가 불만이라도 있으십니까?”

“…….”

내 웃는 얼굴이 그렇게 이상한가?

언제 하루 날 잡고 거울 앞에서 웃는 연습을 해야겠다.

그렇게 진지하게 고려해 보고 있을 때 드디어 행정관이 입을 열었다.

“수고했네.”

응? 반응이 너무 심심한데? 원래라면 엄청나게 호들갑 떨어야 하는 거 아니야?

무아지경의 검을 가지고 왔을 때는 스테임 백작 가문의 가보로 삼아야 할 물건이라느니, 뭐니 하며 난리를 치던 사람이 이번에는 너무 쓸데없이 침착하다.

반응이 전혀 예상과 다르자 얼떨떨해서 멀뚱멀뚱 서 있는 내게 행정관이 말했다.

“가격 책정 후 결제는 빠른 시일 내에 해 주도록 하지. 오늘은 이만 돌아가도록 하게.”

“무아지경의 검 때는 바로 가격 책정해서 결제해 주지 않으셨습니까? 근데 왜 오늘은 빈손으로 돌아가라는 겁니까?”

“최근 연이은 전쟁 탓에 재정 상태가 위험해. 영주님과 충분히 회의를 거친 후 가격을 책정해야만 하네.”

“…흠, 알겠습니다.”

납득한 나는 행정관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행정관이 의아해했다.

“이 손은 뭔가?”

뭐긴 뭐야?

나는 행정관이 손에 쥐고 있는 신성의 방패를 가리켜 보였다.

“그거, 돌려주셔야죠.”

행정관이 눈살을 찌푸렸다.

“내가 왜 돌려줘야 하지?”

“엥?”

이 양반이 오늘따라 왜 이래? 약이라도 잘못 먹었나?

“물건을 주인한테 돌려주는 건 당연한 행동 아닙니까?”

“주인? 자네가 이 방패의 주인이라고?”

“그럼 그게 제 거지 행정관님 겁니까?”

“네놈… 네놈이 무슨 말을! 이 방패의 주인은 우리 따위가 감히 넘볼 수 없는 분의……!”

행정관이 얼굴을 시뻘겋게 붉히고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진심으로 화를 내고 있는 것 같다.

‘우리 따위가 감히 넘볼 수 없는 분? 아이린 영주를 말하는 건가? 어쨌든, 아직 돈 주고 판 게 아닌 이상 이 방패는 내 거잖아? 나는 내 물건에 대해서 당연한 소유권을 행사하는 건데 왜 저렇게까지 화를 내는 거야?’

행정관이 정말로 이상하다고 느끼는 그때,

“경비병! 당장 이리 와서 이자를 포박해라!”

행정관이 집무실 바깥에 대기 중이던 경비병들을 소환했다.

그에 창과 갑옷으로 무장한 경비병 4명이 집무실 안으로 뛰어들어 왔다. 그리고 행정관이 지칭하는 대상이 나임을 보고 잠시 망설이는가 싶더니, 결국에는 명령을 어기지 못하고 나를 포박했다.

나는 너무 황당해서 화도 안 날 지경이었다.

“지금 이게 대체 뭐 하는 거죠? 왜 선량한 시민의 물건을 빼앗겠다고 공권력까지 행사하는 겁니까? 직권남용 아닌가요?”

방패를 품에 꼭 안은 행정관이 으름장을 놓았다.

“닥쳐라! 그간의 공적을 생각해서 잘 대해 줬더니 주제 파악 못하고 올라서는구나!”

“아니, 저기요?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요. 지금 누가 잘못하고 있는 건지.”

하지만 행정관은 더 이상 나와 대화할 의사가 없어 보였다.

“그자를 당장 지하 감옥에다가 가둬라!”

“뭐? 이, 이런 미친!”

경비병들에게 명령한 행정관이 신성의 방패를 가지고 그대로 집무실을 떠나려 하는 그때였다.

“거기 서시오.”

카서스가 성큼 나서더니 행정관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그리고 사나운 표정을 짓고 있는 행정관의 머리 위로 다짜고짜 손을 얹고 읊조렸다.

“정화의 빛.”

촤아아아!

그야말로 찬란한 빛이 집무실 안에 번쩍였다.

매우 강렬한 빛이었지만 눈이 아프지는 않았다. 오히려 작은 불빛처럼 평안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행정관이 매우 놀란 표정으로 주변을 살폈다.

“잉? 이게 무슨 상황이지? 다들 여기서 뭘 하는 겐가? 그리고 그리드, 자네는 왜 경비병들에게 붙잡혀 있는 게야? 어라? 이 방패는 또 뭐지? 내가 왜 이런 걸 들고 있는 거야?”

“……?”

행정관, 아직 중년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벌써 치매인가?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는 와중에 갑자기 행정관이 침음성을 흘렸다. 그리고 비틀거리더니 급기야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해, 행정관님?”

경비병들이 달려가 행정관을 부축하는 사이, 내게 다가온 카서스가 말했다.

“역시, 행정관은 야탄교에게 세뇌를 당한 상태였습니다.”

“세뇌?”

“처음부터 수상하지 않았습니까? 신성의 방패를 다룰 수 있는 건 레베카교의 성직자들뿐입니다. 그리고 윈스톤 성에는 신성의 방패를 다룰 수 있는 인물이 없습니다. 신성의 방패를 소유해 봤자 야탄교의 습격에 대한 방비가 안 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행정관은 왜 굳이 신성의 방패를 만들어 달라고 했을까요?”

“듣고 보니…….”

“행정관이 신성의 방패 제작을 위한 사제를 보내 주기를 교단에 요청해 왔을 때부터 교단은 수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행정관이 정말로 신성의 방패를 이용해서 윈스톤을 수호할 심산이었다면, 그는 신성의 방패 제작을 도와달라고 요청할 뿐만 아니라 신성의 방패를 사용할 수 있는 성기사까지 함께 지원해 주기를 요청하는 게 정상이었으니까요.”

“그렇군. 내가 작은 실수를 범했어. 그래서 쓸데없이 의심을 사고 말았군.”

쓰러진 행정관을 부축하고 있던 4명의 경비병 중 하나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나와 카서스의 시선은 그 경비병에게로 향했고, 경비병의 몸은 어둠의 기운으로 휩싸였다.

그리고 잠시 후 어둠이 걷히자 젊은 경비병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인상 더러운 늙은이가 나타났다.

“잉?”

나는 당황했고, 나머지 경비병들은 경악했다.

“너, 너는 누구냐! 로이는 어디로 간 거지?”

동료가 갑자기 늙은이로 변해 버렸으니 난리가 날 만도 하다.

늙은이는 창을 겨눠 오는 3명의 경비병들에게 귀찮다는 듯이 손을 휘저어 보였다.

그러자 칠흑의 손톱이 허공에 갑자기 나타나 번쩍이더니 경비병들을 일격에 죽여 버렸다.

그를 본 카서스가 이를 갈았다.

“더러운 이교도여, 감히 레베카교의 사제 앞에서 무익한 살생을 저지르는가?”

행정관이 쓰러지면서 바닥에 떨어뜨렸던 신성의 방패를 주워 든 늙은이가 카서스를 비웃었다.

“내 입장에서 보자면 네놈이 더러운 이교도다.”

퍼엉!

늙은이가 말을 채 끝맺기도 전!

갑자기 폭발이 일어나면서 집무실의 벽면이 부서졌다. 그리고 흙먼지 속에서 은발의 소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머리 위에 ‘이사벨’이라는 녹색 이름을 달고 있는 그 소녀는 흑실로 자수를 놓은 청색의 원피스를 입고 있었는데, 예쁘장한 얼굴과 화려한 의상이 절묘하게 잘 어울리면서 만화 속 히로인을 연상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카서스가 이사벨을 책망했다.

“어찌하여 멀쩡한 문을 놔두고 벽을 부수며 등장하시는 겁니까?”

이사벨이 상쾌하게도 웃었다.

“이 편이 멋지잖아?”

“…….”

뭐냐, 지금?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야?

당최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어서 멍청하게 서 있는 사이, 이사벨이 손을 위로 뻗었다. 그러자 허공에 금색의 마법진이 펼쳐지면서 그곳으로부터 은백색의 창이 솟아 내려왔다.

그를 본 늙은이가 경악했다.

“리파엘의 창……? 서, 설마 너는!”

“자아, 야탄교가 어째서 신성의 방패를 원하고 있는 건지, 그 이유를 좀 들어 볼까?”

창을 손에 쥔 이사벨이 흰 이를 드러내며 웃는다.

“이럴 수가! 어째서 레베카의 딸이 이곳에……!”

이사벨로부터 주춤주춤 뒷걸음질 치던 늙은이가 급기야 전력으로 내달려 도망친다.

“헤, 술래잡기라도 하자는 거야?”

선홍빛 혀로 창날을 스윽, 한 번 핥은 이사벨은 신이 난다는 듯이 껑충 뛰어서 늙은이를 뒤쫓았고, 카서스 또한 그녀의 뒤를 따랐다.

그리고 나는 반파된 집무실에 혼자 남게 되었다.

“뭐였지 대체? 아니, 가만…….”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야, 이 미친 노인네야! 방패 내놓고 가!”

늙은이가 신성의 방패를 가지고 갔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나는 당장에 집무실을 박차고 뛰어나갔다.

복도 저 끝 편에 이사벨과 카서스가 보였다. 저들을 따라가면 늙은이를 쫓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라고 생각하지만 도저히 따라잡을 수가 없다. 둘이 달리는 속도는 일반인과 차원이 달랐던 탓에, 내가 전력을 다해서 달려도 도통 거리가 좁혀지질 않았다.

‘이대로는 놓치겠어!’

나는 진짜로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 달렸다.

하지만 결국 카서스와 이사벨을 시야에서 완전히 놓쳐 버리고 말았다.

“허억… 허억… 어디지? 어느 쪽으로 간 거지?”

윈스톤 성은 매우 넓다. 방만 해도 수백 개다.

나는 카서스와 이사벨이 몇 층으로 내려갔는지, 아니면 올라갔는지, 좌측 복도로 이동했는지 우측 복도로 이동했는지조차 파악이 불가능한 사태에 이르렀다.

“크윽……! 목격자라도 있으면 좋았으련만!”

어째선지 시체가 즐비해 있는 윈스톤 성의 3층.

복도에 덩그러니 혼자 남게 된 나는 새로운 알림창이 뜨길 기다렸다.

무슨 알림창을 기다리냐고?

당연히 새로운 퀘스트의 알림창이지!

내가 막대한 재료비를 투자해서 제작한 레. 전. 드. 리. 급. 신성의 방패를 강탈해 간 늙은이로부터 그것을 되찾아 오라는 내용의 퀘스트 같은 거!

하지만…

“…….”

5분이 지나고,

“…….”

10분이 지나고,

“…….”

30분이 지나도 새로운 퀘스트는 떠오르질 않았다.

“진짜 엿 같네.”

평소에는 원하지 않아도 멋대로 퀘스트가 떠오르더니 왜 정작 원하는 상황에는 퀘스트를 안 주는 거야?

“제길! 제기랄! 거짓말이겠지? 어?”

설마, 어렵사리 만든 레전드리 아이템을 이대로 잃게 되는 건가? 그걸 갖다 팔면 최소 수억 원일 텐데?

“말도 안 돼…….”

두 눈 뜬 채 레전드리 아이템을 강탈당하다니!

주체할 수 없는 분노가 끓어오른다.

“으아아아아아아아!!! 내 방패 내놔, @~#$!새끼야!! 그것만 무사히 가져다가 팔면 빚의 절반은 갚을 수 있단 말이야, 이 #$!~^새끼야!!”

나는 그야말로 피 토하는 심정으로 소리쳤다.

하지만 내 외침은 공허하게 메아리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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