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템빨-30화 (26/1,794)

제2장

서릿빛 오크 사냥

북쪽 설원은 매우 추웠다. 방한복을 입지 않은 사람은 몇 분 만에 독감에 걸리고 급기야 동상에 걸려 버릴 정도였다.

하지만 거대 불곰 가죽 세트를 온몸에 무장한 그리드의 현재 냉기 저항력은 무려 60퍼센트였다.

“하하하! 시원하군!”

휘몰아치는 눈보라 속에서, 그리드는 마치 한여름 에어컨 앞에 서 있는 사람처럼 상쾌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거대 불곰 가죽 세트의 효과가 탁월함을 증명하는 대목이다.

“저긴가 보네.”

눈보라를 헤치며 설원을 헤집고 다닌 끝에 서릿빛 오크들의 부락을 발견한 그리드가 이상적인 단검을 뽑아 들었다.

<이상적인 단검>

등급:유니크

내구력:168/168

공격력:242~264

공격 속도:+11%

*희박한 확률로 대상이 즉사.

*민첩성+20.

*스킬 ‘칼바람’ 생성.

*스킬 ‘신속한 몸놀림’ 생성.

대단한 실력과 잠재력을 지녔지만 경험과 명성은 턱없이 부족한 이름 모를 장인이, 명망 높은 대장장이 칸과 합심하여 만든 작품입니다.

사용한 재료와 제작법은 특별할 게 없지만, 이름 모를 장인의 실력과 칸의 협조성이 그야말로 이상적인 단검을 탄생시켰습니다.

사용 조건:레벨 180 이상. 민첩성 450 이상. 고급 대거 마스터리.

<칼바람>

전방에 칼날 같은 바람을 쏘아 냅니다. 바람은 현재 공격력의 60퍼센트의 위력을 발휘합니다.

스킬 마나 소모:100

스킬 재사용 대기 시간:40초

<신속한 몸놀림>

1분 동안 회피율을 30퍼센트, 민첩성을 2배 상승시켜 줍니다.

스킬 마나 소모:80

스킬 재사용 대기 시간:100초

“오크 따위, 이 무기만 있으면 한 방이지.”

그리드는 너무나도 손쉽게 생각하며 서릿빛 오크의 부락에 정면으로 당당하게 쳐들어갔다.

“나와라, 이 오크 놈들아! 그리고 얌전히 내게 실피드의 비늘을 내놔라! 안 그러면 이곳에서 피의 향연이 펼쳐질 것이다!”

만화에서나 나올 법한 오글거리는 대사를 큰 소리로 외치는 그리드!

그를 발견한 망루 위 오크들이 수군거렸다.

“꾸익, 꾸에윽끼긱?(뭐야, 저 가죽 뒤집어쓴 인간 놈은?)”

“엑윽익윽끼꾸욱. 꾸루루꾹엑끽.(아무래도 미친 인간인가 보다. 겁도 없이 정면으로 우리 부락으로 쳐들어오다니.)”

“에루루깍! 끼욱엑끽!(미친놈 상종할 시간 없다! 빨리 쫓아내자!)”

부락 입구에 세워진 2개의 망루!

그 위에서 활을 무장한 채 보초를 서던 오크들이 아무런 경고도 없이 그리드를 향해서 활시위를 당겼다.

쐐액!

“응?”

그리드는 망루에서 날카로운 파공성이 들리는가 싶더니 작은 빛이 번쩍이자 무엇인가 싶어 확인하다가, 이내 화살이 날아오는 것을 보고 질겁했다.

“히익! 화, 화살이라고?! 신속한 몸놀림!”

[신속한 몸놀림 효과가 발동합니다. 1분 동안 민첩성과 회피율이 비약적으로 상승합니다.]

푸푸푸푹!!

반사적으로 스킬을 사용하고 황망히 자리를 벗어난 그리드는 간신히 화살들을 피할 수 있었다. 그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이 서 있던 자리에 박혀 있는 화살들을 보고 섬뜩함을 느꼈다.

“오크 따위가 활을 사용하다니?”

오크에게도 지능은 있다. 자신들만의 언어가 있고 부락을 이뤄 살기도 한다. 하지만 손재주가 없기로 유명하다. 애초에 손가락이 3개뿐이라 활처럼 섬세한 무기는 잘 다루지 못한다고 알려졌다.

한데 서릿빛 오크들은 활을 쓰고 있었다.

“오크 따위가 10미터 정도 바깥 거리에서 활을 쐈는데 이 정도 적중률을 발휘해?”

망루 위를 살피면서 생각해 본 그리드가 뒤늦게 칸의 충고를 상기했다.

‘서릿빛 오크는 북쪽 설원에 부락을 이루고 서식하는 몬스터일세. 놈들은 초록색 피부를 가진 일반 오크와 다르게 새파란 피부를 가졌고 지능이 더 뛰어나며 몸집도 1.5배는 더 크지. 추위에 강하고 엄청난 괴력을 발휘하지만 불에는 취약하다는 약점을 가지고 있다네.’

‘이보게, 그리드, 혹시라도 방심하지 말게. 앞서 말했듯이 서릿빛 오크는 일반 오크들과 달라. 매우 강력한 존재일세. 약점을 잘 파고들지 않았다간 큰코다치는 수가 있어.’

그리드는 불길함에 휩싸였다.

“설마 나 엿 되는 건가? 아니, 아니야. 활 좀 써 봤자 오크는 오크지. 괜찮을 거야.”

애써 불안을 달래고 있는 그리드 앞으로 어느새 망루에서 내려온 오크 한 마리가 다가왔다.

“꾹, 꾸익엑끅! 꾸구라!(야, 가죽 뒤집어쓴 인간 놈! 여긴 웬 일이냐!)”

딱 봐도 키가 2미터는 넘어 보이는 새파란 피부의 오크가 도끼눈을 치뜨고 뭐라 지껄여 왔다.

오크의 언어를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대충 뜻을 파악한 그리드가 용건을 밝혔다.

“좋은 말로 할 때 실피드의 비늘을 내놔라!”

평온하게 잘 살고 있는 남의 마을에 다짜고짜 찾아와서는 물건을 내놓으라고 윽박지르는 그리드의 모습은 날강도나 다름이 없었다.

분노한 오크가 다시금 활시위를 당겼다.

“쿠룩! 쿠에우루룩!!(미친! 지랄하지 말고 꺼져라!)”

슈욱!

눈보라를 헤치고 날아오는 화살의 기세가 매섭다.

바람의 저항을 무시하고 저토록 빠르고 정확하게 활을 쏠 수 있다는 것은, 서릿빛 오크의 궁술과 팔 힘이 수준 높다는 반증이었다.

신속한 몸놀림 덕분에 이번 역시 화살을 피할 수 있었던 그리드가 바로 반격에 나섰다.

“칼바람!”

날카로운 바람이 눈보라를 헤치고 나아가 서릿빛 오크에게 적중했다.

휘리리릭!!

갑옷으로 무장한 병사 NPC들을 한 방에 중상 입혔던 칼바람 스킬!

그것에 적중된 서릿빛 오크의 가슴에서 피부색과 똑같은 파란색 선혈이 튀어 올랐다.

하지만 상처가 깊지는 않았다. 서릿빛 오크의 방어력이 병사들을 훨씬 더 상회한다는 뜻이다.

“갑옷도 안 입은 놈이 무슨……. 가죽이 대체 얼마나 두꺼운 거야?”

경악하는 그리드에게 분노한 오크가 소리쳤다.

“크륵… 크엑윽익!(이 새끼… 아프잖아!)”

활을 버리고 손도끼를 꺼내 든 오크가 서슬 퍼런 안광을 내뿜으며 내달려 왔다. 그리고 그리드의 안면에다가 도끼를 내리찍었다.

그리드는 이상적인 단검으로 공격을 방어했다.

까앙!

“윽?”

그리드의 미간이 좁혀졌다. 오크의 공격력이 매우 막강해서 팔이 저려 온 탓이었다. 북부의 신성이라고까지 불리던 기사 레오의 검을 막아 냈을 때와 비슷한 감각이었다.

‘강하다!’

이제야 그리드는 인정했다. 서릿빛 오크는 상상 이상으로 강력한 오크라는 것을!

그야 당연하다.

그리드는 몰랐지만, 서릿빛 오크의 레벨은 무려 120이었다. 그리고 민첩성은 뒤떨어질지라도 공격력과 체력이 레벨에 비해서 월등히 뛰어났다.

45레벨인 그리드는 원래라면 서릿빛 오크의 상대가 안 된다. 한 방에 나가떨어져야 정상이다.

하지만 파그마의 후예의 우월한 기본 스탯을 바탕으로 온갖 퀘스트를 수행하고 수많은 아이템을 제작하며 성장시킨 그리드의 현재 스탯은 100레벨 중반대 유저와 비견해도 좋을 정도로 사기적인 상태! 거기에다가 템빨까지 갖췄으니 서릿빛 오크와 정면으로 맞서도 꿀릴 게 전혀 없었다.

“오크 따위가!”

뻑!

거친 콧김을 뿜으며 점점 압박해 오는 오크의 배를 걷어차서 일단 거리를 벌린 그리드가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어떡하지? 일단 도망쳐야 하나? 아니, 아니야! 여기까지 왔는데 빈손으로 돌아갈 순 없어! 게다가 실피드의 비늘을 얻지 못하면 케산 협곡에 가기도 어려워진다고!’

그리드는 결심했다.

“제대로 해 보자! 스킬들을 잘만 활용한다면……!”

본래 대장장이에게는 전투 스킬이 전무하다. 하지만 그리드는 달랐다.

파그마의 후예로 전직한 이후 온갖 퀘스트를 수행했고, 이상적인 단검까지 무장한 그는 이제 여러 개의 전투 스킬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대장장이의 분노>

Lv.1

20초 동안 모든 공격력을 10퍼센트, 공격 속도를 30퍼센트 상승시켜 줍니다.

스킬 마나 소모:50

스킬 재사용 대기 시간:60초

<꺾을 수 없는 정의>

Lv.1

물리 공격력 300퍼센트의 광역 피해를 입힙니다.

스킬 마나 소모:350

스킬 재사용 대기 시간:100초

“대장장이의 분노!”

[대장장이의 분노 효과가 발동합니다. 20초 동안 공격력과 공격 속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그리드는 끓어오르는 힘을 느꼈다. 그리고 서릿빛 오크와 정면에서 당당하게 맞섰다.

“칼바람!!”

“꾸엑!”

10퍼센트 상승한 칼바람의 공격력이, 앞서 사용했을 때와 달리 서릿빛 오크에게 조금 더 큰 타격을 입혔다.

서릿빛 오크가 괴로워하는 틈을 노리고 파고든 그리드가 오크의 목에다가 이상적인 단검을 꽂아 넣었다.

전사 시절 숱하게 몬스터들을 사냥해 오면서 익힌 검술이 발휘된 순간이다.

[크리티컬!]

[대상에게 923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대상의 급소를 정확하게 노렸기 때문에 출혈 효과가 발생합니다. 대상은 지속적인 피해를 입습니다.]

“꾸에에에에엑!!”

서릿빛 오크가 두꺼운 목에서 파란색 피를 뿜어내며 고통에 몸서리쳤다. 피가 뿜어지는 열기 탓에 주변에 휘몰아치는 눈이 증발하면서 수증기가 발생했다. 하지만 오크는 그 와중에도 계속해서 손도끼를 휘두르며 반격을 멈추지 않았다.

[807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1,005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아파! 젠장! 아프다고, 이 오크 새끼야!!”

서릿빛 오크의 공격력은 매우 막강했다. 그래서 세트 아이템으로 무장해서 방어력을 제법 갖춘 그리드라고 해도 공격을 허용할 때마다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드는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계속해서 반격했다. 한 대 맞을 때마다 물러서지 않고 한 대 똑같이 때렸다. 완전 너 죽고 나 죽자, 하는 식으로 그리드와 오크의 개싸움은 이어졌다.

[대상에게 501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1,051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대상에게 607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988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중급 물약을 복용하였습니다. 체력이 1,500 회복됩니다.]

[대상에게 700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890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과연 누가 먼저 죽느냐!

그리드와 서릿빛 오크의 한 치 양보 없는 진검 승부가 지속되면서 그리드의 붉은 피와 서릿빛 오크의 푸른 피가 사방으로 난무했다. 그리고 피의 열기 탓에 눈발이 증발하면서 주변에는 적색과 청색의 핏빛 안개가 펼쳐졌다.

도중에 그리드에게 먼저 위기가 찾아왔다.

생명력이 거의 바닥을 향해 가고 있었는데 물약의 재사용 대기 시간이 아직 한참 남은 것이다.

‘이런!’

그리드는 물약의 재사용 대기 시간을 벌기 위해서 어떻게든 시간을 벌어 보려고 했다. 하지만 서릿빛 오크는 그리드에게 여유를 주지 않고 끈질기게 추적해 왔다.

[929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큭!”

결국 공격을 허용하면서 남은 생명력이 10퍼센트 이하로 떨어져 버린 그리드가 바짝 긴장한 그때였다.

[정의의 사도는 용맹무쌍합니다.]

그리드가 아직 경험해 보지 못했던, ‘정의의 사도’ 칭호의 패시브 효과가 발동했다.

[정의의 사도는 위기에 강합니다. 눈앞의 적들을 해치우기 전까지 쉽게 쓰러지지 않습니다.]

[모든 능력치가 30퍼센트 상승합니다.]

그리드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나를 개고생시켰던 후로이를 더 이상 원망할 수도 없겠군! 정의의 사도라는 칭호가 이렇게 뛰어난 기능을 가지고 있었을 줄이야!’

콰작!!

[대상에게 1,100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쿠에에에엑!! 꾸엑! 으엑꾸이!(으아아악!! 이놈! 갑자기 더 강해지다니!)”

서릿빛 오크의 비명 소리가 처절하게 변했다.

그에 망루 위에서 싸움을 지켜보던 오크들의 표정이 점차 일그러졌다.

“크룩… 익꾸? 꾸루룩…….(뭐지… 저 인간? 강하군…….)”

“익윽꾸엑 푸륵꾸루루룩!(갑자기 더 강해졌다!)”

“꾸루루쿡! 에이오꾸!(방심할 수 없어! 우리도 합류하자!)”

망루 위 오크들이 동료를 돕기 위해서 서둘러 내려왔다. 그리고 핏빛 안개 속으로 들어간 순간 경악했다.

바닥에는 동료가 눈깔을 뒤집은 채 싸늘한 시신으로 변해 회색빛으로 화해 가고 있었고, 곰 가죽을 쓴 인간은 푸른 피를 뒤집어쓴 채 멀쩡히 살아 있었던 탓이다.

“루윽렉?!(이럴 수가?!)”

오크들은 두 눈을 의심했다.

“렉렉푸게으게!(어떻게 상처조차 입지 않은 거지!)

곰 가죽 쓴 인간이 자신들의 동료와 서로 피를 튀겨 가며 치열하게 싸우는 모습을, 오크들은 분명히 보았었다. 인간도 최소 중상을 입은 상태여야만 했다. 한데 괴이하게도 인간의 몸에서는 생채기 하나 찾아볼 수가 없었다.

어째서 그리드는 멀쩡할까?

그 이유는 바로 레벨이 올랐기 때문이다.

[서릿빛 오크를 해치웠습니다.]

[7골드를 획득하였습니다.]

[서릿빛 오크의 가죽을 획득하였습니다.]

[낡고 조잡한 손도끼를 획득하였습니다.]

[266,000의 경험치를 획득하였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Satisfy는 유저의 레벨이 오르면 그 즉시 체력과 마나가 최대치로 회복되는 시스템을 채용하고 있었다.

덕분에 레벨 업한 그리드는 오크와의 사투 속에 입었던 온갖 상처가 회복되어 있었던 것이다.

서서히 걷혀 가는 핏빛 안개 속에서, 그리드는 새롭게 나타난 오크 2마리를 확인하고 진정 기쁘게 웃었다.

“반갑다… 경험치들!”

그리드가 서릿빛 오크와 싸워 본 결과, 오크치고 엄청나게 강하기는 했지만 상대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꺾을 수 없는 정의’ 스킬을 잘만 활용한다면 2마리를 동시에 상대하는 것도 가능하게 여겨졌다.

“아하하하핫!!”

그리드는 뛸 듯이 기뻤웠다.

단 1마리의 오크를 사냥한 것만으로도 레벨이 1개가 오르고, 그도 모자라 경험치 칸이 꽤 많이 찼기 때문이다.

그리드에게 서릿빛 오크는 더 이상 경계의 대상이 아니라 더없는 먹잇감이었다.

“이참에 레벨 좀 올리자! 꺾을 수 없는 정의!”

콰아아아앙!!

그리드는 꺾을 수 없는 정의의 광역 피해를 활용, 2마리 오크를 동시에 가격했다.

그리고 이 와중에 엄청나게 운 좋게도 이상적인 단검의 옵션 효과가 발동했다.

[크리티컬!]

[이상적인 단검의 옵션 효과가 발동하여 대상이 즉사합니다.]

“꾸에에에에엑!!”

광역 스킬을 사용한 상태에서 옵션 효과가 발동한 덕분에 2마리 오크가 동시에 즉사해 버렸고, 그리드는 허무할 정도로 손쉽게 2마리 오크를 해치울 수 있었다.

[서릿빛 오크를 해치웠습니다.]

[8골드를 획득하였습니다.]

[서릿빛 오크의 가죽을 획득하였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서릿빛 오크를 해치웠습니다.]

[10골드를 획득하였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큭……! 크크큭! 크하하하하하!!”

그리드는 전율하며 미친 듯이 웃었다.

숨겨 왔던 사냥 본능이 각성하는 순간이었다.

“오늘 씨를 말려 주마! 이 오크 자식들아!”

오래간만에 맛본 사냥의 쾌감!

실피드의 비늘을 얻겠다는 본연의 목적도 잊은 채, 그리드는 서릿빛 오크들의 부락으로 쳐들어갔다.

***

후로이는 사냥을 끝내고 마을로 돌아오는 날이면 언제나 칸의 대장간부터 찾았다. 그건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나흘 동안 사냥터에 머물다가 오래간만에 마을을 들러 곧장 칸의 대장간을 찾아온 후로이는 그리드가 보이지 않자 의아함을 느꼈다.

“만날 일만 하시던 분이 어디를 간 거지?”

“오, 후로이가 아닌가?”

반갑게 맞이해 주는 칸에게 예의 바르게 인사한 후로이가 질문했다.

“주군… 아니, 그리드 님께서 보이질 않는군요? 어디 가신 건지 알 수 있겠습니까?”

“그는 3일 전에 북쪽 설원으로 떠났다네.”

“북쪽 설원이라니요? 어찌하여 그곳을……?”

“서릿빛 오크들을 사냥하기 위함일세.”

“서릿빛 오크요?!”

서릿빛 오크는 일반 유저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몬스터다. 하지만 후로이는 과거 어떤 퀘스트를 수행하던 중에 우연히 서릿빛 오크들과 대면한 적이 있다. 그리고 그 강함에 치를 떨었었다.

“아니, 그리드 님께선 갑자기 왜 서릿빛 오크를?!”

“제작 재료를 구하기 위해서일세.”

“그런 어리석은!”

후로이는 그리드가 대장장이임에도 불구하고 어째선지 기사를 압도하는 인물임을 직접 목격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걱정을 지울 수가 없었다.

‘서릿빛 오크들은 단체 활동을 한다. 제아무리 그리드 님이라 하셔도 놈들을 상대하기엔 위험하다!’

후로이는 얼마 전 칸의 대장간에서 구입했던 장검과 방패를 장착했다.

본래 웅변가라는 직업은 검과 방패를 사용할 수 없다. 하지만 후로이는 세컨드 직업 ‘정의의 사도의 파트너’로 전직한 이후 검과 방패를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제가 그리드 님을 도우러 가겠습니다!”

“오오, 그것 참 든든하군! 부디 잘 다녀오시게!”

칸에게 인사한 후로이는 서릿빛 오크의 부락으로 향하기에 앞서 잡화점에 들렀다. 그리고 무려 50개의 화염병을 구입했다.

서릿빛 오크들이 불에 엄청나게 취약하다는 약점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군! 제가 갑니다!”

그렇게 후로이도 북쪽 설원으로 떠났다. 그리고 몇 시간 후 서릿빛 오크들의 부락에 도착할 수 있었다.

“뭐지?”

후로이는 이질감을 떨칠 수가 없었다.

서릿빛 오크들이 온데간데없고 부락이 쥐 죽은 듯 조용했기 때문이다.

혹시 함정은 아닐까 염려하며 조심스럽게 이동하던 후로이가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오크의 비명 소리를 접했다.

“주군!”

본능적으로 그곳에 그리드가 있음을 파악한 후로이가 걸음을 재촉했다. 그리고 보았다.

“쿠엑!! 쿠엑엑윽!! 키라르라락!!(이놈! 이 악마 놈! 우리 마을을 몰살시키다니!)”

“쿠루엑! 꾸에에엑!!(죽어서도 원망하겠다!!)”

상처투성이로 저항하는 서릿빛 오크 잔당들과, 그들을 그다지 어렵지 않게 해치워 나가는 그리드의 모습을!

“과연 주군……. 제가 헛된 근심을 하였던 거군요…….”

서릿빛 오크의 두꺼운 가죽을 작은 단검 하나로 꿰뚫고 해치워 버리는 그리드의 압도적인 강함을 보면서, 후로이는 잡화점 주인을 어떻게 구슬려야 화염병을 환불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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