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템빨-25화 (21/1,794)

제6장

불운의 아이콘

나는 지난 한 달 동안 대장간에서 단 한 걸음도 나가지 않았다.

Satisfy에 접속해서 로그아웃할 때까지 무조건 대장간에 틀어박혀서 망치질만 해 댔다.

그러는 동안 나는 몇 가지 사실들을 새롭게 알게 되거나, 어렴풋이 알고 있던 사실들을 보다 확실하게 정립할 수 있게 됐다.

첫째, 똑같은 아이템만 반복해서 만들면 제작 스킬의 경험치가 잘 오르지 않는다. 매번 다른 아이템을 제작해야지만 스킬 경험치가 잘 올랐다.

둘째, 좋은 재료로 만든 아이템일수록 높은 등급의 아이템으로 완성될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서, 똑같은 제작법을 토대로 2자루 철검을 만들 경우, 질이 나쁜 강철을 재료로 사용한 철검은 거의 100퍼센트에 가까운 확률로 노멀 등급이 되는 반면, 최상급 강철을 재료로 사용한 철검은 비교적 높은 확률로 레어 등급이 됐다.

셋째, 아이템을 제작할 때 똑같은 품질의 재료를 사용해서 똑같은 아이템을 만들지라도 제작 시간을 길게 투자한 쪽의 아이템이 높은 등급으로 완성될 가능성이 높다.

내가 아이템 제작 승부에서 단 3시간 만에 유니크 등급의 단검을 만든 것은 굉장히 운이 좋았던 것으로, 현실적으론 레어 등급 이상의 아이템을 만들고 싶다면 최소 대여섯 시간 이상 투자해야 했다.

즉, 하루에 제작할 수 있는 아이템의 숫자가 굉장히 한정적이게 되므로 스탯 노가다가 원하는 만큼 수월하게 진행되지 못했다.

넷째, 정말로 일 잘하는 대장장이가 되고 싶다면 스탯을 손재주뿐만 아니라 근력과 체력에도 충분히 투자해야만 한다.

대장간에서 다루는 장비들과 광물은 대부분 무게가 상당했기 때문에 효율적으로 일하려면 높은 근력을 요했고, 아이템 하나를 만들 때마다 체력 소모가 심했기 때문에 하나라도 더 많은 아이템을 만들고 싶다면 체력도 높아야 했다.

그래서 나는 내 높은 근력과 체력 스탯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헉헉… 아직 젊어서 그런가? 자네는 지치는 법이 없구먼.”

아이템 하나를 완성할 때마다 진이 빠져선 휴식을 취하는 칸과 달리, 체력이 남아돌았던 나는 Satisfy에 접속해 있는 동안 휴식을 거의 취하지 않고 끊임없이 아이템을 제작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지난 한 달 동안 내가 제작한 아이템은 무려 73개나 되었다. 하루 평균 2개 이상의 아이템을 제작한 꼴이다.

그리고 그 73개의 아이템 중 11개가 레어 등급, 3개가 에픽 등급으로 완성되었다. 그로 인해 내 모든 스탯은 각각 34씩 상승했다.

내가 보유한 스탯의 종류는 근력, 체력, 민첩, 지력, 손재주, 끈기, 평정, 불굴, 위엄, 통찰력, 용기로 총 11개다.

11개의 스탯이 각 34씩 상승했다는 것은 총 374의 스탯이 올랐단 것으로, 레벨을 37번 이상 올려야 획득할 수 있는 수치다.

하지만 나는 불만족스러웠다.

왜냐고?

나는 아이템을 무려 73개나 만들었다. 그것도 아이템 하나를 만들 때마다 장장 6시간 이상씩 투자해서 심혈을 기울였다. 재료도 가능한 범위 안에서 최대한 좋은 걸 사용했다.

한데 그중에 레전드리 등급의 아이템은커녕 유니크 등급의 아이템 하나조차 만들어지지 않았다.

이건 정말 해도 너무한 거 아니냐?

“심지어 에픽 등급 아이템도 고작 3개……. 미친, 이게 무슨 전설의 대장장이야? 아, 열라 빡치네.”

아이템을 하나 만들 때마다, 이번에는 제발 최소 유니크 등급이 만들어지길 간절히 기원했었지만 거의 매번 노멀 등급으로 완성되었다. 그때마다 엄청난 실망감과 허무감이 밀려들면서 게임을 때려치우고 싶어졌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점은 제작 관련 스킬들의 레벨이 올랐다는 것이다.

<전설적 대장장이의 기술>

Lv.2

제작법을 알고 있는 장비 아이템을 제작합니다.

‘전설적 대장장이의 창조’ 스킬로 제작법을 창조한 장비 아이템을 제작할 수 있습니다.

일정한 확률로 레어~에픽 등급의 아이템이 제작됩니다.

희박한 확률로 유니크 등급의 아이템이 제작됩니다.

매우 희박한 확률로 레전드리 등급의 아이템이 제작됩니다.

*제작 아이템의 모든 능력치가 12퍼센트 상승합니다.

*레어 등급의 아이템 제작 시 모든 스탯이 +2 영구 상승, 대륙 전역에 명성이 +30 상승합니다.

*에픽 등급의 아이템 제작 시 모든 스탯이 +4 영구 상승, 대륙 전역에 명성이 +80 상승합니다.

*유니크 등급의 아이템 제작 시 모든 스탯이 +12 영구 상승, 대륙 전역에 명성이 +300 상승합니다.

*레전드리 등급의 아이템을 제작 시 모든 스탯이 +25 영구 상승, 대륙 전역에 명성이 +1,000 상승합니다.

*레전드리 등급 아이템의 제작 횟수가 5회가 될 때마다 특수한 일이 발생합니다.

<전설적 대장장이의 창조>

‘전설적 대장장이의 기술’ 스킬 레벨이 하나 오를 때마다 장비 아이템 제작법을 3개 창조할 수 있습니다.

현재 창조할 수 있는 아이템 제작법 횟수 5/6.

*이 스킬을 사용해서 창조한 아이템을 생산 시, 아이템에 창조자의 이름이 자동으로 새겨집니다.

<전설적 대장장이의 숨결>

Lv.2

아이템 제작에 심혈을 기울일 경우, 제작 아이템에 파그마의 후예의 의지가 깃듭니다.

제작 아이템의 모든 능력치가 7퍼센트 상승합니다.

제작 아이템에 희박한 확률로 특별한 기능을

부여합니다.

스킬 레벨이 오른 것 외에도 기쁜 일이 또 있었다.

지난 한 달 동안 칸으로부터 수십 개의 아이템 제작법을 전수받았단 점이다.

칸은 자신이 노쇠하여 일선에서 물러나기 전까지 후계자인 내게 최대한 많은 지식을 물려주고자 했고, 덕분에 나는 그로부터 하루에 하나씩의 새로운 제작법을 전수받았다.

이는 엄청난 수확이었다. 본래 아이템 제작법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특정한 퀘스트를 수행해야만 하며 난이도도 천차만별이다.

그래서 아이템 제작법을 구하기란 굉장히 힘든 법인데, 나는 칸의 후계자가 된 덕분에 별도의 퀘스트 없이도 수많은 제작법을 습득할 수 있게 되었으니 큰 행운이었다.

나는 인벤토리에서 두꺼운 책자를 꺼냈다. 제목은 ‘아이템 제작법 목록’이다. 이 책 안에는 내가 익힌 제작법들이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었다.

책자를 펼쳐서 목차를 확인했다.

내가 직접 창조한 ‘실패작’의 제작법부터 시작해서, 바이란에서 습득했던 야파 화살의 제작법, 그리고 칸에게 배운 수십 개의 제작법에 이르기까지…….

감회가 새롭다.

‘바이란 마을에 있을 때만 해도 도끼, 곡괭이, 야파 화살, 그리고 실패작까지 총 4개의 제작법밖에 가지고 있지 못했었는데 어느새 이렇게…….’

제작법을 살펴보던 중에 유페미나가 떠올랐다.

‘그 계집은 오브 제작법 구해 온다더니 왜 감감무소식이야?’

유페미나는 자신이 직접 사용할 오브를 제작해 주길 원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야말로 최고의 오브 제작법을 가져올 확률이 높다.

그러면 난 공짜로 최고의 오브 제작법을 익히게 되는 셈이다.

상상만 해도 기쁘다.

아니, 근데 가만…….

“만약에… 정말로 만에 하나의 경우인데… 유페미나가 기껏 제작법과 제작 재료까지 가져다줬는데 노멀 등급의 오브가 만들어지게 되면 난 어떻게 되는 거지?”

과연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까?

어쩌면 유페미나는 내가 유니크 등급의 오브를 완성할 때까지 날 어딘가에 가둬 놓고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오브를 다시 만들도록 시키지 않을까?

“그 계집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어…….”

영주의 친위대를 마법 한 방으로 잿더미로 태워 버리더니 상쾌하게 웃던 유페미나의 사이코 같은 모습이 상기됐다.

“…나 어떡하냐.”

더 이상 유페미나가 기다려지지 않는다.

제작법 따윈 필요 없으니까 그냥 영영 찾아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겁에 질려 덜덜 떨고 있노라니 벌컥! 대장간 문이 열렸다.

“히익! 유, 유페미나?!”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는 옛말이 있다. 나는 그 말처럼 유페미나가 제 말 했다고 찾아온 게 아닌지 바짝 쫄았다.

하지만 대장간을 찾아온 손님은 다행히도 유페미나가 아니었다. 한눈에 봐도 엄청나게 레벨이 높아 보이는 2명의 남성 유저였다.

“당신이 대장장이 칸인가?”

“내가 칸 맞소만… 무슨 일로 찾으시오?”

그들이 칸에게 꼬치꼬치 캐묻기 시작했다.

“당신은 한 달 전 에리나라는 여행자와 아이템 제작 승부를 겨뤘었지?”

“그렇소만…….”

“그녀는 정말로 대장장이가 맞았나? 그녀가 아이템을 만드는 모습을 당신이 직접 두 눈으로 목격했어?”

“질문이 이상하구려. 대장장이가 맞냐니? 그녀는 당연히 대장장이였소. 그렇기 때문에 메로 상단에게 고용돼서 제작 승부에 참여한 것이고, 나는 그녀의 훌륭한 대장장이 솜씨를 직접 견식했소이다. 도대체 당신들은 누구요? 무슨 일로 이상한 질문들을 하는 거요?”

칸의 질문을 무시한 사내들이 저들끼리 수군거렸다. 그리고 다시 칸에게 물었다.

“아이템 제작 승부에 연관된 조직은 메로 상단이 유일한 건가? 혹 다른 조직이 엮여 있던 건 아닐지, 의심 가는 부분은 없었나?”

“크흠!”

칸의 얼굴에 불쾌감이 떠올랐다.

그야 그럴 것이, 한눈에 봐도 아들뻘 되는 젊은 녀석들이 처음부터 계속해서 반말하는 것도 모자라, 이쪽의 질문은 무시하고 저들 할 말만 떠들어 댔기 때문이다.

사내들은 칸이 어떤 표정을 짓든지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급기야 칸을 추궁하듯이 말하기 시작했다.

“왜 대답 안 하는 거지? 아는 게 있다면 어서 말해 주지 그래? 시간 끌어 봤자 피차 좋을 거 없으니까.”

마치 협박하는 어투다.

웃기는 일이다.

여기는 칸의 대장간이다. 놈들은 손님일 뿐이다. 그리고 놈들이 칸에게 부탁해야 하는 입장이다. 한데 저 태도는 뭔가?

저놈들, 저들 할아버지 연세뻘인 칸에게 반말할 때부터 알아봤다.

놈들은 칸이 NPC라는 이유로 인격을 존중하지 않고 무시하고 있는 거다. 실제로 저런 유저들이 한둘이 아니다.

확실히 NPC는 인간이 아니다. 단지 인공지능이 탑재된 시스템 프로그램일 뿐이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그것이 설령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진 것일지언정 칸에게도 추억이 있고 감정이 있다.

분노할 줄 알며 체념할 줄도 안다. 뜨거운 눈물을 흘릴 줄도 알며 기쁘게 웃을 줄도 안다.

누군가를 의지할 수도, 증오할 수도 있다.

그리고 때로는 죽은 아들을 그리워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칸을 함부로 대하는 놈들에게 화가 났다.

“어이, 거기 당신들, 그 태도가 대체 뭐요? 무슨 권리로 칸 영감을 추궁하고 협박하는 건데? 엉?”

때 묻은 천 옷 한 장 걸친 채, 손에 낡은 대장장이 망치를 쥐고 있는 나를 위아래로 훑어본 놈들이 피식 비웃었다.

“넌 또 뭐야? 낄 때 안 낄 때 정도는 구분해라.”

어쭈? 난 NPC도 아닌데 다짜고짜 반말을 해?

“난 지금 낄 때 안 낄 때 구분하고 끼어든 건데? 난 여기 직원이거덩? 왜 남의 영업장 와서 횡포야? 엉? 영업 방해 아니냐?”

“횡포? 웃기는군. 우리는 협조를 구했을 뿐이다.”

“협조를 구하는 사람의 태도가 고작 그거냐?”

“하… 오렌지주스라도 사 가지고 방문했어야 하나?”

놈들 중 하나의 표정이 사나워졌다. 장비를 보면 레벨이 200에 근접한 랭커 같은데, 그런 놈이 노려봐 오자 난 솔직히 쫄 수밖에 없었다.

놈의 동료가 중재했다.

“초보자 상대로 열 내는 꼴 보기 우스우니까 적당히 해.”

“후우, 그래. 진정해야겠군. 빌어먹을, 페이커 녀석들이 당한 사건 이후 신경이 너무 날카로워졌어. 어이, 초보 대장장이, 우리는 어떤 여자에게 용무가 있는 사람들이다. 그녀를 급히 찾아야만 하는 입장인지라 네가 가까이 지내는 NPC에게 실수로 결. 례. 를 범하고 말았군. 미안하게 됐다. 됐지? 그러니까 그만 비켜.”

“사과는 내가 아니라 칸 영감한테 해야지.”

“…….”

놈들은 더 이상 나를 상대하지 않고 무시했다. 마치 공기 취급 하면서 다시금 칸에게 물었다.

“칸, 어서 대답해라. 에리나가 메로 상단 외의 세력과 연관을 맺고 있는 듯한 낌새는 없었나?”

내가 혹 해코지라도 당할까 염려한 것일까?

칸이 나를 자신의 등 뒤로 숨기며 대답했다.

“모르오. 애초에 그녀와는 잠시 만나 제작 승부를 겨룬 사이일 뿐인데 내가 그녀에 대해서 어찌 그리 잘 알겠소?”

“당신과 함께 팀을 이뤄서 승부에 참가했다고 하는 당신의 후계자는? 그 또한 에리나에 대해서 잘 모르는 눈치던가?”

“그렇소.”

사내들은 내가 칸의 후계자일 거라고는 짐작조차 못하는 듯했다.

내 행색이 워낙 초보자 같기 때문일 것이다.

칸처럼 명성 높은 대장장이의 후계자가 초보자일 리 없다고 생각할 테니까.

“…쳇.”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짜증 난 것인지, 아니면 애초에 NPC기 때문에 무시하는 것인지, 사내들은 칸에게 인사도 남기지 않고 그대로 돌아가 버렸다.

나는 인벤토리에서 맛소금을 꺼내 대장간 앞에 뿌렸다.

“어휴, 재수 없는 새끼들. 두 번 다신 찾아오지 마라.”

나를 보면서 칸이 머리를 긁적였다.

“보통 그럴 때는 굵은 소금을 뿌려야 하는 게 아닌가?”

“…아, 그래요? 흠흠, 어서 일합시다.”

다시금 용광로 앞으로 향하는 나를 보며 칸이 혀를 내둘렀다.

“오늘도 쉬지 않고 일만 하는 겐가?”

“당연하죠.”

“보면 볼수록 존경스럽구만. 이미 뛰어난 실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만족하기는커녕 치열하게 수련하다니…….”

뛰어난 실력은 개뿔……

내가 진짜로 뛰어난 실력자였다면, 아이템 73개 만드는 동안 유니크 등급이며 레전드리 등급 아이템을 하나라도 만들어 냈을 터다.

하지만 유니크 등급은커녕 에픽 등급 아이템조차 3개밖에 못 만들었다.

난 아직 부족해도 한참 부족하다. 스킬 레벨을 더욱더 올려야만 한다.

그리고 반드시 엄청난 아이템을 만들어서 돈을 벌고 부모님께 인정받을 거다.

‘빨리 부모님께 인정받아야 인력소를 때려치우지…….’

인력소 출근하느라 게임할 시간이 적어지는 점이 매우 큰 문제다.

따앙! 따앙!

내가 아이템 제작에 몰두하는 사이, 칸은 카운터에 자리 잡고 서서 손님들에게 내가 제작한 아이템들을 판매했다.

매우 바람직한 시스템이다. 다른 유저들이 이 광경을 본다면 굉장히 부러워할 것이다.

왜냐?

일반 유저들이 같은 유저에게 아이템을 판매할 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은 총 3가지다.

첫째, 노점상을 펼쳐 놓고 유저들을 상대로 직접 장사한다.

둘째, 판매할 아이템을 경매장에 올린다.

셋째, 판매할 아이템을 현금 거래 사이트에 올린다.

첫 번째 경우, 손님을 기다리거나 호객 행위를 하면서 시간을 낭비하게 된다. 또한 일일이 손님을 상대해야 하기 때문에 흥정도 빈번하고 스트레스를 받는다.

두 번째와 세 번째 경우엔 시간 절약이 되는 반면 높은 수수료를 지불해야만 한다.

즉, 일반 유저가 아이템을 판매하기 위해서는 시간이나 돈에서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나는 다르다.

칸이 내 대신 아이템을 판매해 줌으로써 내 시간은 절약되었고, 칸은 내게 판매 수수료를 요구하지도 않았다.

난 그저 아이템만 만들고 있으면 칸이 알아서 장사해서 내게 수익금을 순전히 돌려주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꾸준히 하루 2개 이상씩의 아이템을 만들면서 돈을 벌게 되면 언젠가 반드시 부자가…

“…되기는 개뿔! 썩을! 아니, 쓰벌! 이게 진짜 말이 되냐! 난 레전드리 직업 전직잔데 왜 레전드리급 아이템이 만들어지질 않는 거야!”

그날, S.A그룹 본사 운영팀 앞으로 한 통의 이메일이 도착했다.

제목:님들 좀 봐 보셈

내용: 저기요, 님들아, 내 정보 보면 알겠지만 나는 전설의 대장장이로 전직한 사람이거든요? 근데 왜 레전드리급 아이템이 만들어지지가 않는 거죠? 전설의 대장장이면 레전드리급 아이템을 잘 만들어야지 정상 아닌가요? 아니, 진짜 구라 안 까고 내가 한 달 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아이템만 만들어 가지고 아이템을 73개나 만들었는데 그중에 어떻게 레전드리급 아이템이 하나도 없을 수 있냐고요. 네? 심지어 유니크급 아이템도 하나도 안 만들어졌고, 에픽급 아이템도 고작 3개밖에 안 떴는데 이거 조작이죠? 네? 당신들이 확률 조작질한 거 맞죠? 엉? 맞지?! 아, 놔. 진짜 씨Ⅹ. 사람 욕 나오게 할래?? 내가 거기로 찾아가서 현피 뜰까?? 어? 좋은 말로 할 때 알아듣고 조작질 관둬라, 이 #[email protected]들아.

메일을 확인한 운영팀 직원들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조작은 무슨……. 일단 자기 레벨부터 올리고 말할 것이지…….”

10레벨 유저와 100레벨 유저.

둘 모두 똑같은 수치의 손재주 스탯을 보유했고, 똑같이 중급 대장장이의 기술 1레벨 스킬을 보유했다고 가정해도, 100레벨 유저가 10레벨 유저보다 높은 등급의 아이템을 제작할 가능성이 좀 더 높다.

즉, 제작자의 레벨이 높을수록 보다 뛰어난 아이템을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건 제작 계열 직업군 유저들 사이에 당연하게 전해지는 상식이다.

한데 유일한 레전드리 직업 전직자라는 유저가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

직원들이 단체로 한숨을 쉬었다.

“직업이 아깝다, 직업이 아까워…….”

그때 누군가가 말했다.

“이 메일의 내용이 거짓 안 보탠 사실이라면, 정말로 운이 나쁜 사람이긴 하네. 전설적 대장장이의 기술 스킬을 가지고 아이템 73개 만들면서 에픽템이 고작 3개밖에 안 떴다고? 유니크템하고 레전드리템은 워낙 제작 확률이 희박하니까 안 떠도 그러려니 한다지만, 에픽템이 저 정도 확률로밖에 안 뜬 걸 보면 그야말로 저주 캐릭인데?”

모든 직원들이 공감했다.

“진짜로 운 더럽게 없는 인간일세…….”

“조작질이냐고 의심할 만하네요…….”

“정말로 확률 조작이 가능하다면 불쌍해서라도 제작 확률 좀 높여 주고 싶다.”

이날부터 그리드는 운영자들 사이에서 불운의 아이콘으로 유명세를 타게 됐다.

***

내가 제작한 73개의 아이템은 레벨 제한 60대의 무기와 방어구들이었다.

그것들의 판매 금액은 총 1,590골드로, 재료값을 제한 순이익은 1,079골드다.

이를 현금으로 환산하면 정확히 129만 4천8백 원이 된다.

하루 평균 대여섯 시간 플레이한 게임으로 한 달 동안 번 돈이 130만 원에 육박하는 것이다. 만약 인력소에 출근하지 않고 하루 종일 게임할 수 있었다면 최소 그 3배 이상의 돈을 벌 수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운이 좋아서 유니크템이나 레전드리템이 하나라도 만들어졌었더라면 천만 단위의 돈을 벌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설파해 봐도 부모님께서는 못마땅해하셨다.

게임을 하면서 수익을 올리는 사람이 실제로 매우 드물다는 사실을 두 분께서는 이미 알고 계셨던 것이다.

더군다나 내가 1년 넘게 게임을 하면서 빚만 져 온 탓에 쉽사리 신용을 얻을 수 없었다.

그렇다. 사회에서도 신용불량자인 나는 가정에서조차 신용불량자 취급을 당하고 있다.

부모님이 나를 거부했던 제1, 제2금융권과 겹쳐 보이기 시작하면서 원망스러웠다.

‘이상적인 단검을 팔아 버려? 아니, 아니야. 아직은 때가 아니다.’

나는 부모님께 Satisfy를 통해서도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이상적인 단검’을 판매하여 급전을 버는 방법을 선택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난 이상적인 단검을 판매하지 않고 소장 중이다. 그 이유는 이상적인 단검의 사용 조건 때문이다.

이상적인 단검의 사용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고급 대거 마스터리’라는 패시브 스킬을 익히고 있어야만 한다.

하지만 현재 각 직업 최상위 랭커들은 마스터리류 스킬을 중급까지밖에 익히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상적인 단검을 아이템 거래 사이트에 경매 물품으로 올려 봤자, 훗날을 대비해서 매입해 두려는 장사꾼들만 대거 몰려들 게 뻔했다. 안 그래도 시세가 제대로 잡혀 있지 않은 아이템이기 때문에 장사꾼들은 최대한 싼값으로 경매에 낙찰하려 할 것이며, 결국에는 만족스럽지 못한 가격으로 낙찰될 가능성이 높았다.

하여 나는 이상적인 단검의 판매를 보류했다.

새벽 4시.

인력소에 출근하기 위해서 눈을 뜬 나는 인내심의 한계를 느꼈다.

“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되는 거야…….”

새벽 4시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직 꿈나라에 있을 시간이다.

근데 난 고작 일당 9만 원 벌자고 매일같이 이 시간에 일어나서 오후 6시까지 공사판에서 뼈 빠지게 고생한다.

예전 같았으면, 노가다가 내게 있어서는 거의 유일하게 돈을 벌 수 있는 수단이기 때문에 감지덕지했었지만 지금은 다르지 않은가!

인력소에 출근하는 것보다 게임해서 돈을 더 벌 수 있게 된 마당에, 언제까지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인력소에 출근해야 하는 것인가!

“제길… 유니크템이나 레전드리템까진 안 바란다. 에픽템이라도 많이 만들어지면 수익이 확 올라서 부모님을 설득하는 데 도움이 될 텐데……. 어휴, 젠장. 눈 뜨자마자 열불이 나네. 안 되겠다. 찬 공기라도 쐬고 와야지. 응? 이건…….”

동네나 한 바퀴 돌 생각으로 현관을 나서려던 나는, 막 도착한 신문 사이에 끼워져 있는 전단지에 흥미를 느끼고 펼쳐 보았다.

<9월 10일! 대망의 오픈!

최고의 캡슐방이 떴다!

최고급 캡슐 150대 구비!

카페 시설 완비!

5성급 호텔 주방장 출신이 끓여 주는 맛있는 라면!

미인, 미남 알바생들의 향연!

*알바생에게 전화번호를 요구하지 말아 주십시오.

9월 10일 단 하루! 회원 가입을 하시는 손님에 한해서 캡슐방 이용료를 평생 30퍼센트 할인해 드립니다!>

헉… 캡슐방 이용료를 평생 할인해 준다고?

캡슐방 이용료는 시간당 6천 원이다. 그걸 30퍼센트 할인해 주면…….

“이거다!”

굿 아이디어가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좋아!”

나는 방으로 되돌아갔다. 그리고 노가다용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안방 문을 열었다.

“응? 웬 작업복이야? 설마 벌써 출근하는 거니? 아직 4시 10분밖에 안 됐는데?”

의아해하시는 어머니께 나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저 출근합니다! 하하하하하!”

“…아침부터 기운이 넘치는구나?”

“푸하하하하! 그럼요! 저는 젊으니까 언제고 기운이 넘쳐야죠! 그럼 아버지, 어머니! 소자는 이만 출근하겠나이다! 푸하하하하하핫!!”

“영우가 어디 아픈 걸까요……?”

“음… 걱정이군…….”

나는 부모님의 근심 어린 눈초리를 뒤로하고 집을 나섰다.

오늘은 다름 아닌 9월 10일!

나는 신규 오픈한다는 캡슐방을 찾아갔다.

캡슐방의 오픈을 알리는 화려한 현수막이 걸려 있는 빌딩 앞!

“오늘부터 여기가 내 직장이다! 푸하하하하하핫!!”

그래, 나 오늘부로 인력소 때려치운다.

이제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저녁에 잠들기 전까지 Satisfy만 할 거다.

오전과 오후엔 캡슐방에서! 밤엔 집에서!

“캡슐방비를 뽑기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아이템을 만들자! 푸하하하하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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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칸의 대장간은 중레벨 유저들의 가장 큰 관심 대상이 되어 있었다.

칸의 대장간에서 판매되고 있는 아이템 중에, ‘대단한 실력과 잠재력을 지녔지만 경험과 명성은 턱없이 부족한 이름 모를 장인’이 만든 60레벨대 장비 아이템들이 있었는데, 그가 만든 장비들은 다른 동레벨 장비보다 성능이 무려 20퍼센트 가까이 더 뛰어났다. 그가 만든 것은 심지어 노멀 등급일지라도 동레벨 레어 등급 장비와 비슷한 성능을 보유했을 정도였다.

하여 유저들은 그 장비들을 ‘이름 모를 장인 시리즈’라고 부르며 매우 애용했다.

성능이 좋은 대신 값이 다소 비쌌지만, 가격은 문제가 아니었다. 없어서 못 살 지경이었다.

유저들은 매일같이 칸의 대장간을 찾아왔다.

“이름 모를 장인님이 만든 장비 더 없나요?”

“그분이 만드신 아이템 제가 다 삽니다! 돈은 얼마든지 드릴 테니까 제발 저한테 파세요!”

“그분의 이름 좀 알려 주세요. 제가 개인적으로 아이템 제작 부탁을 하고 싶어서 그래요. 네? 어디로 가면 만날 수 있죠?”

유저들은 이름 모를 장인이 만든 아이템을 하나라도 더 가지고 싶어 했으며, 이름 모를 장인의 정체를 궁금해했다.

하지만 칸으로선 대답해 줄 수 있는 부분이 없었다.

이름 모를 장인, 즉 그리드는 무엇을 만들어도 항상 심혈을 기울였던 탓에 그가 만든 아이템의 개수는 매우 한정되어 있었고, 그 본인이 다른 이들에게 정체를 알리길 원치 않아 했기 때문이다.

따앙! 따앙!

카운터에 구름처럼 몰려든 손님들은, 바로 저 뒤편 용광로 앞에서 쉴 새 없이 망치질을 하고 있는 초보자 행색의 유저가 자신들이 찾는 인물일 거라고는 상상조차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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