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대장간의 후계자
각국의 언론들은 최초의 세컨드 직업이 등장했다는 소식을 앞다투어 내놓기 시작했다.
한국.
『여러분은 세컨드 직업이라는 것을 아십니까? 세컨드 직업을 얻게 되면 사용할 수 있는 무기의 폭이 넓어지고 새로운 스킬과 능력치가 생성된다고 합니다. 또한 레벨 업을 할 때마다 얻게 되는 능력치 포인트가 2개씩 추가된다고 하는데요. 자세한 이야기는 조성진 기자를 통해서 들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조성진 기자.』
『조성진입니다. 한국 시간으로 금일 새벽 1시, Satisfy 최초의 세컨드 직업 획득자가 탄생했다는 정보가 S.A그룹으로부터 공개되었습니다. 세컨드 직업의 종류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무궁무진한 콘텐츠를 자랑하는 Satisfy의 특징상 무수한 종류의 세컨드 직업이 존재할 거라고 전문가들은 예측하고 있습니다. 세컨드 직업을 획득하게 될 경우 가장 큰 이점은 레벨 업을 할 때마다 얻는 능력치 포인트가 10개가 아니라 12개가 된다는 점인데요, 이는 매우…….』
미국.
『제임스, 이번에 등장한 최초의 세컨드 직업의 정체는 뭐라고 합니까?』
『S.A그룹에서는 이번에 등장한 세컨드 직업의 정보를 공개할 의향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세컨드 직업 획득자의 신상 정보 보호를 위한 결정으로 보이며…….』
영국.
『방금 들어온 놀라운 속보입니다. 최초의 세컨드 직업 획득자는 몽골인이라고 합니다.』
『몽골이라고요? 몽골인들은 Satisfy가 뭔지도 모르지 않나요?』
『하하, 확실히 이 통계를 보면 몽골인들은 Satisfy에 관심이 없군요. 일반적인 선진국 같은 경우는 전체 인구의 약 60퍼센트 이상이 Satisfy를 플레이하고 있는 반면, 몽골은 전체 인구의 약 3퍼센트만이 Satisfy를 플레이하고 있네요.』
『Oh dear……. 이 통계에 따르면 우리 영국은 전체 인구의 68퍼센트가 Satisfy를 플레이하고 있다는데요? 그 68퍼센트의 영국인 중 단 한 사람도 획득하지 못한 세컨드 직업이 몽골에서 등장하다니……. 영국인들이 게임에 재능이 없다는 걸 전 세계에 광고한 꼴이로군요.』
중국.
『고객의 신상 정보를 철저하게 관리하기로 유명한 S.A그룹에서, 이번에 등장한 최초의 세컨드 직업 전직자가 몽골인이라는 정보를 유포시킨 이유는 몽골이라는 국가에 Satisfy를 홍보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추측입니다.』
『S.A그룹이 Satisfy를 이용해서 세계를 지배할 의도가 있음이 여실히 밝혀지는 대목이지요. 그들은 세계의 모든 사람들을 Satisfy의 노예로 만들 작정입니다. 훗날 지구가 S.A그룹의 손아귀에서 놀아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인민 여러분께서는 지금부터라도 Satisfy 중독 치료를 받으셔야…….』
일본.
『같은 아시아인이 최초의 세컨드 직업 획득자라고 하니까 괜히 저까지 들뜨고 자랑스러운데요? 일본에서는 언제쯤 세컨드 직업 획득자가 탄생할까요?』
『아시다시피 일본은 전체 인구의 71퍼센트가 Satisfy를 즐기고 있습니다. 그만큼 Satisfy 내에서 활약하는 일본인의 숫자는 매우 많죠. 심지어 두 달 전에 새롭게 등장한 에픽 직업 전직자도 일본인이 아니었습니까? 일본인이 두 번째 세컨드 직업의 주인이 될 거라고 저는 예상합니다.』
『한국은 전체 인구의 73퍼센트가 Satisfy를 플레이하고 있잖아요? 인구 비율로 따지면 한국인이 Satisfy를 가장 많이 즐긴다고 볼 수 있는데요, 혹시 한국에서 두 번째 세컨드 직업의 주인이 탄생할 가능성은 없나요?』
『…혹시 만에 하나라도 한국에서 두 번째 세컨드 직업의 주인이 탄생한다면 아마도 S.A그룹의 도움을 받아서가 아닐지…….』
『그러고 보니 한국은 통합 랭킹 5위 유라를 제외하면 딱히 활약하는 인물이 없는 듯하군요. Satisfy가 한국 기업에서 만들어진 게임인 점을 감안하면 참 아이러니한 현상이네요.』
『그러고 보니 S.A그룹이 유라를 후원해 주고 있다는 소문이 돌기도 하더군요.』
『그렇습니까? 소문의 근원지가 어떻게 되죠?』
『그게… 넷상에서…….』
『큼큼, 근거 없는 발언은 삼가 주십시오. 자칫 국제 문제로 번질 수가 있습니다.』
『죄송…….』
그야말로 전 세계 모든 국가의 언론들이 최초의 세컨드 직업에 대한 특집 프로그램을 편성했을 정도로 세컨드 직업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도가 높았다.
한편, 지하 감옥에서 탈출하고 라빗과 작별한 후 곧장 로그아웃했던 신영우는 한숨 푹 자고 일어난 차였다.
눈 뜨자마자 라면을 끓여서 TV 앞에 앉은 그는 뉴스를 보면서 치를 떨었다.
“부럽다, 진짜……. 레벨 업 할 때마다 스탯 포인트가 2개씩이나 더 오르다니, 저거 완전 개사기잖아? 대체 어느 염병할 놈이 치사하게 지 혼자서만 세컨드 직업을 얻은 거지? 아, 놔. 부러워서 배 아파 죽겠네.”
신영우는 최초의 세컨드 직업 획득자가 설마 자신도 잘 알고 있는 인물일 거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가 없었다.
***
온 가족이 모인 저녁 식사 시간.
나는 가족들 앞에서 선포했다.
“저 앞으로 인력소 안 나갈 거예요.”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청천벽력과 같은 발언!
“내 아들 영우야! 드디어 취직 자리가 결정 난 게냐? 장하다, 내 아들! 나는 널 믿고 있었다!”
“우와, 오빠! 이제 직장인 되는 거야? 축하해! 축하 선물로 뭘 준비하는 게 좋을까?”
“흑흑, 이 엄마는 그동안 네가 공사판에서 고생하는 게 가슴 아팠단다. 그간 많이 힘들었지?”
나는 가족들의 이와 같은 반응을 예상했다.
하지만 현실은 냉담했다.
식탁 위에 탁! 소리 나게 숟가락을 내려놓으신 아버지께서 호통을 치셨다.
“또 백수 생활을 시작하겠다는 거냐!”
어머니가 한숨을 쉬셨다.
“일이 아무리 힘들어도 그렇지, 일을 관두겠다니……. 앞으로 빚은 어떻게 갚고 장가는 어찌 가려고 그러니…….”
세희가 쯧쯧 혀를 찼다.
“다 큰 성인 남자가 어쩜 그렇게 제멋대로냐? 어떻게 그 나이를 먹고도 부모님 등골을 빼먹을 생각만 할 수 있는 거야? 내 오빠지만 참 한심하다, 한심해.”
이럴 수가……. 이게 정녕 가족이라는 사람들이 할 소린가?
“누가 집에서 놀고먹는답니까?!”
나는 흥분해서 소리쳤다.
“내가 인력소를 관둔다는 걸 어째서 백수가 된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거죠? 내 아들이, 내 오빠가 새로운 일자리를 찾았나 보다, 라고는 생각들 못해요?!”
세희가 정말로 놀란 것처럼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야? 오빠 새 일자리 찾았어? 오빠를 받아 주는 곳이 있다고?”
어머니가 다 들리는 목소리로 혼잣말을 하셨다.
“편의점 알바라도 하려는 걸까……? 편의점 알바야 몸이 편하긴 하겠지만 시급은 노가다 일당이랑 비할 수 없이 적을 텐데…….”
아버지가 진지한 표정을 짓고 물어보셨다.
“영우야, 너 설마 저번처럼 또 친구한테 속아서 다단계 회사에 끌려가는 건 아니겠지?”
“아, 놔! 그딴 게 아니라고요! 전 엄청나게 좋은 직업을 가지게 됐다고요!”
“그게 뭔데?”
“굳이 말하자면 프로 게이머죠! 전 게임으로 돈을 벌 거예요! 제가 게임에서 대장장이거든요? 근데 이게 진짜로 좋은 직업이라서 제가 만든 아이템을 현금으로 비싸게 팔 수 있어요! 지금 당장만 해도 운만 좋으면 인력소 나가는 것보다 큰돈을 벌 수도 있고, 언젠가는 CEO급 연봉을 벌 수도 있어요! 왜냐면 게임 내에서 엄청난 상인이 저를 지원해 주기로 약속했거든요!”
“…….”
갑자기 흐르는 정적 속에서, 냉수를 벌컥벌컥 들이켜신 아버지가 분노에 찬 음성으로 말씀하셨다.
“…그러니까 넌 방구석에 틀어박혀서 게임만 하고 싶다 이거구나?”
뭐지? 왜 화를 내시지?
“쉽게 말하자면 그렇죠. 게임을 많이 하면 할수록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으니까요. 아마 하루 종일 캡슐 속에서 살아야 할 것 같아요. 헤헤.”
따악!
“커억……!”
이마에 정통으로 숟가락이 날아와 부딪쳤다.
어머니께서는 아버지께 새 숟가락을 가져다주셨고, 아버지께서는 그걸 또다시 내 이마에 집어 던지셨다.
“으악! 왜요! 왜 그래요, 대체!”
“내일 당장 인력소에 출근해라.”
“아니, 왜요? 제 말 못 들으셨어요? 전 게임으로 돈 벌 거라니까요!”
어머니께서 눈물을 닦으셨다.
“아이구, 네 오빠가 이제는 정말로 막 나가는구나. 이를 어쩌면 좋니, 세희야.”
급기야 엉엉 소리 내어 우시는 어머니!
그에 화가 난 건지 입술을 질끈 깨문 세희가 소리쳤다.
“제발 철 좀 들어, 오빠! 오빠가 무슨 수로 게임으로 돈을 벌겠다는 거야? 오빠한테 그런 재주가 있었다면 지난 1년 동안 그렇게 빚만 늘어났겠어? 현실을 좀 직시하라구!”
“아니… 그때랑 지금이랑은 사정이 달라. 나는 전설의 대장장이로 전직을 함으로써 새로운 운명을 개척하게 되었는데… 이런저런 일을 이렇게 저렇게 겪다 보니까 급기야 최고의 상인이 나를 돕겠다고 나서는 상황까지 와서…….”
“게임 이야기 좀 그만해! 이 게임 폐인아!”
“…….”
나는 자세하게 설명하려고 했지만, 누구도 내 말을 들어 주지 않았다.
이 혼돈의 카오스가 펼쳐지고 있는 어둡고 다크한 현장을 바라보고 있자니, 설령 설명을 제대로 하더라도 가족들이 이해하고 믿어 줄지 의문이다.
그리고 다음 날 이른 아침.
나는 울먹이는 어머니 탓에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인력소로 출근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현장에 나가서 일을 하는 내내 앞으로의 계획을 짜 보았다.
레벨 업도 해야 하고, 전직 퀘스트도 해결해야 하지만 그 전에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돈을 버는 일이다.
‘우선 라빗의 제안을 받아들이자.’
라빗이 정확히 어떤 방법으로 날 도와서 부자로 만들어 주겠다는 건지 아직은 알 수 없다. 하지만 괜한 허풍은 아닐 거라고 확신할 수 있다. 그는 거대 상단의 2인자였던 인물이니만큼 분명 대단한 수완가일 테니까. 사업 파트너로서 신뢰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칸의 대장간을 거점으로 삼을 수만 있다면 활동하기에 매우 편하기도 하고……. 음, 역시 게임을 플레이할 시간이 많아지면 좋겠는데. 하지만 그러려면 우선 부모님께 게임으로도 돈을 벌 수 있다는 확신을 드려야 해.’
TV나 인터넷만 켜면 언제라도 Satisfy 관련 소식을 접할 수 있다.
Satisfy를 통해서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스타나 부자가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부모님도 수없이 접하셨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Satisfy로 돈을 벌 수 있으리란 생각은 하지 않으신다.
그야 그럴 것이, 세희가 말한 대로 난 지난 1년 동안… 아니, 정확히 말하면 1년하고도 1개월 동안 Satisfy를 플레이하면서 돈을 벌기는커녕 빚만 졌었기 때문이다.
‘신용하지 못하시는 게 무리도 아니지……. 이런 내가 부모님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실적이 필요하다.’
그날 저녁.
퇴근하고 집에 돌아온 나는 곧장 Satisfy에 접속했다. 그리고 칸의 대장간을 찾아갔다.
“오오, 그리드 왔는가!”
나를 맞이하는 칸의 표정이 엄청나게 밝았다.
비단 그뿐만 아니라 이곳까지 오는 길에 스쳐 지나갔던 주민들 모두의 얼굴에서 근심이 사라져 있었다.
‘윈스톤에 평화가 찾아온 건가? 아무래도 유페미나와 라빗이 일을 잘 해결했나 보군.’
나는 칸에게 물어보았다.
“혹시 라빗이 찾아오지 않았었나요?”
칸의 표정이 급속도로 어두워졌다.
“음… 그렇잖아도 자네 앞으로 이 편지가 도착했다네.”
칸이 한 장의 편지를 건네주었다.
나는 그것을 펼쳐 보았다.
<그리드 님께.
라빗입니다. 메로 상단의 2인자였던 시절, 윈스톤 주민들에게 악행을 저질렀던 저의 죄가 워낙 크기 때문에 저는 스테임 백작님께 완전한 면죄부를 받지 못하였습니다. 하여 부득이하게 당신과의 사업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리드 님, 당신의 능력이라면 스스로의 힘으로도 최고의 부자가 되실 수 있을 겁니다. 칸 님께 조언을 구하며 멋진 작품들을 만들어 주십시오. 칸 님의 예술 감각은 대장장이들 사이에서도 일품이니 당신께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먼 곳에서나마 당신의 성공 신화를 접할 수 있기를 기원하며 이만 줄입니다.>
“어라?”
이게 무슨 개소리지?
다음화의 계속.
제가 멍청해서 그런지 편지 내용을 이해할 수가 없는데요? 개가 왈왈 짖는 소리로밖에 인식이 안돼요. 이 사람 지금 어디에 가 있는 거죠?”
칸이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스테임 백작님께서 그에게 10년의 징역형을 판결하셨다고 하네.”
어처구니가 없다.
“아니, 왜요? 윈스톤이 활기를 되찾은 건 라빗의 공이잖아요?”
“그가 윈스톤을 구원한 영웅임은 분명하나, 애초에 윈스톤이 위기에 처했던 이유는 메로 상단 때문이었네. 뒤늦게나마 죄를 깨닫고 공을 세웠다고는 하나, 메로 상단의 2인자였던 그의 죄를 완전히 씻어 주기엔 백작님께서도 무리라고 판단하신 것 같네.”
이런 염병.
“제길… 이게 뭐냐…….”
부자로 만들어 주겠다며? 근데 감옥에 갇혀 버려? 이 멍청한 자식이?
웬일로 좋은 일이 생긴다 싶었건만 결국 이렇게 된다.
좌절하고 있는 내 어깨를 칸이 두드려 주었다.
“자네를 구해 준 은인이 감옥에 갇혔다는 소식을 접하고 슬퍼하는 심정은 이해하겠네만, 그래도 기운 내게나. 자네에게도 자네의 인생이 있잖은가. 언제까지고 좌절하지 말게.”
이 양반은 또 뭐라는 거야.
“아니… 난 지금 라빗을 걱정하는 게 아니고 내 걱정을 하는 건데……. 아, 그건 그렇고 제가 체포당한 뒤에 영감님도 체포당했었다면서요? 뭔가 해코지당한 건 아니죠?”
칸이 허허 웃었다.
“내 탓에 누명을 쓰고 곤욕을 치렀으면서 오히려 내 걱정을 해 주는 건가? 자네의 마음은 참으로 바다같이 넓구만. 크윽…….”
웃던 양반이 이젠 또 눈물을 글썽인다.
“사실은 이야기 들었네. 자네, 기사들에게 둘러싸여 협박을 당하면서도 나를 보호하기 위해 끝까지 입을 열지 않았었다지? 자네에게 다시 한 번 감격했다네.”
취조실에서의 에피소드를 말하는 건가?
후로이에게 영주를 고발하라는 임무를 준 게 누구냐는 기사들의 질문에 칸이라고 대답하려고 했지만, 입에 재갈이 물려서 대답할 수 없었던 당시의 사건이 이런 식으로 미화되다니!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뭐… 영감님을 팔아먹을 순 없으니까요.”
“크흑… 고문이라도 당했으면 어쩌려고……. 그리드! 내 자네에게라면 믿고 맡길 수 있겠네!”
“뭘요?”
“이 대장간을!”
“…네?”
대장간을 맡기겠다니, 이건 또 무슨 말이야?
‘설마?’
에이, 내가 잘못 들었겠지. 괜히 또 김칫국 마시지 말자.
귀를 의심하고 있는 내게 칸이 인자한 미소를 짓고 말했다.
“자네는 이 대장간을 지켜 주기 위해서 내 후계자로 위장까지 하고서 메로 상단과 아이템 제작 승부를 겨루었잖은가. 난 이미 그때부터 자네를 내 진짜 후계자로 점찍어 두고 있었다네. 이 대장간은 훗날 자네의 것이 될 걸세.”
“…말도 안 돼.”
NPC로부터 작위나 직급을 얻는 유저들은 상당히 많다. 하지만 사업체의 후계자가 된 유저가 있다는 소리는 들어 본 적이 없다.
이는 아마 내가 최초일 듯하다.
“뻥 아니죠?”
“하하, 내가 설마 이런 말을 거짓으로 하겠는가? 자네도 알다시피 나에게는 후계자가 없다네. 머잖아 내가 더 늙어서 일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면… 이 대장간은 주인을 잃고 쓸쓸히 방치될 테지. 나는 조상 대대로 이어 온 이 대장간이 그처럼 허무하게 사라져 가는 걸 원치 않아. 자네가 이 대장간을 이어 주길 진심으로 원하고 있다네. 파그마의 후예이면서 인품까지 훌륭한 자네가 대장간의 뒤를 잇는다면 조상님들께서도 기뻐하실 걸세. 그리고 죽은 내 아들도…….”
죽은 아들의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칸의 얼굴에 한순간 그늘이 졌다.
사람의 감성을 자극하는 그에게 나는 확신을 요구했다.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지 말고 계약서라도 써 주시죠! 그러면 믿고 지금부터라도 이 대장간을 위해서 열심히 일할 테니까!”
“…….”
잠시 후, 나는 칸으로부터 대장간 양도 계약서에 사인을 받았다.
그리고 알림창이 떠올랐다.
[지위 ‘대장간의 후계자’를 획득하였습니다.]
<대장간의 후계자>
훗날 칸의 대장간의 주인이 된다는 증표와 같은 지위입니다.
“꿈은 아니겠지?”
있는 힘껏 볼을 꼬집어 보았다.
“아파…….”
너무 힘을 세게 줘 가지고 볼이 얼얼하다.
꿈이 아니다.
“이건 절대로 꿈이 아니야! 현실이라고! 핫…! 핫핫핫! 푸하하하하하!! 아싸! 오예! 야르~!”
이 2층짜리 대형 신식 대장간이 언젠가 나의 것이 될 거라고 생각하자 기쁨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미친 듯이 웃는 나를 보면서 칸이 뿌듯해했다.
“기뻐해 주니 나도 좋군. 자네라면 필시 이 대장간을 잘 이끌어 갈 수 있을 테지.”
“당연하죠! 자! 어서 일합시다! 훌륭한 물건들을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우리 대장간이 얼마나 대단한 대장간인지 미리미리 알려 주는 겁니다!”
“오! 그거 좋은걸? 나도 의욕이 넘치는군!”
부모님께 인정받기 위해서, 그리고 이 대장간과 나의 미래를 위해서.
나는 그 후 수일 동안 아이템 제작에 몰두했다.
오전부터 오후까지는 인력소에 출근해서 공사장 노가다를 뛰고, 밤부터 새벽까지는 Satisfy에 접속해서 아이템 제작 노가다를 했다.
“투잡을 뛰어도 노가다로만 뛰다니……. 역시 난 노가다의 수렁에서 벗어날 수 없는 건가…….”
의욕 과다로 인하여 하루 수면 시간이 4시간밖에 안 됐던지라 몸이 많이 피로했지만, 차근차근 쌓여 가는 돈과 스탯, 그리고 스킬 경험치를 보면서 나는 견뎌 낼 수 있었다.
***
길드원의 숫자는 고작 17명에 불과하지만, 그들 전원이 상위 랭커로 구성되어 있는 소수 정예 체다카 길드!
17명 중에서도 가장 출중하여 길드의 장을 담당하게 된 여인, 지슈카는 최근 매일 경매장을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
지금으로부터 약 두 달 전 구입했던 특급 야파 화살의 성능에 중독된 탓이다.
현존하는 화살 중에서 최고의 공격형 화살이라고 알려진 야파 화살!
특급 야파 화살은 일반 야파 화살보다 공격력이 무려 2배가량 높으며, 일정 확률로 적의 방어력을 완전히 무시한다는 어마무시한 옵션까지 갖추고 있었다.
신궁이라고 불리는 지슈카가 사용해 보고 그 파괴력에 전율을 느꼈을 정도로 특급 야파 화살은 탁월한 성능을 발휘했다.
하지만 처음 그날 이후, 경매장에 특급 야파 화살이 올라오는 일은 두 번 다시 없었다.
‘왜지?’
보통 대장장이들은 화살을 한 번 만들 때 수천 개씩 만든다.
즉, 특급 야파 화살도 수천 개 이상 존재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하지만 특급 야파 화살의 제작자는 단 99개의 화살만을 경매에 내놓았을 뿐이다.
‘설마… 다른 길드에서 이미 그를 찾아서 매수한 건가?’
지슈카는 초조해졌다.
실력이 뛰어난 대장장이를 다른 길드에게 뺏겨서 그들이 독점하게 내버려 둔다면, 그녀와 그녀의 길드원들은 상대적으로 도태된다는 뜻이 됐기 때문이다.
“지슈카다.”
“우와, 직접 보니까 몸매가 더 끝장나네.”
“한번 대시해 볼까?”
“아서라, 인마. 혼쭐날라.”
지슈카는 언제나처럼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을린 피부와 육감적인 몸매가 뭇 남성들의 심장을 벌렁거리게 만들었다.
날카로운 눈빛과 도톰한 입술의 매력에 이끌려 구애하는 남성 유저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지슈카는 그들을 파리 보듯 하면서 무시로 일관했지만 한계가 있었다.
경매장에 지슈카가 있다는 소식을 접한 유저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경매장이 포화 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좀 비켜 줄래요?”
반달로 그려지는 눈매가 남성들의 심금을 울린다.
하지만 고압적인 말투와 위압감이 보이지 않는 벽을 만들어 놓고 있다.
결국 남자들은 더 이상 그녀에게 치근덕대지 못하고 길을 내어 주었다.
아쉬워하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경매장을 떠난 지슈카가 홀로그램 키보드를 소환했다.
그리고 길드 채팅창에 선포했다.
{너희들, 이번 달 안에 그 대장장이 찾아내지 못하면 지옥 훈련에 돌입할 거니까 각오해.}
{오우! 난 지옥 훈련 대환영!}
{레가스! 개소리하지 마! 우리는 지옥 훈련 따윈 사양이라고!}
{대장, 솔직히 말해서 그렇게 작은 단서만 가지고 사람을 특정 짓는 건 Satisfy에선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야. Satisfy의 유저가 몇 명인 줄 대장도 잘 알잖아?}
{안 되도 되게 해.}
{으… 너무한다…….}
길드원들의 불만이 폭주했다. 그들에게 지슈카가 진지하게 말했다.
{우리 같은 소수 정예 길드가 존재 가치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남보다 강해야만 해. 우리가 강해지기 위해서는 그 대장장이가 필요하고. 그러니까 부탁한다.}
{알았어. 반드시 찾아낼게.}
{야! 우리 내기하자! 먼저 찾아내는 사람한테 한 사람당 100골드씩 쏘기!}
{뭐? 우승하면 1천6백 골드 버는 거잖아? 좋아, 내가 꼭 찾아낸다!}
지슈카는 언제나 강인하다. 그야말로 강철 같은 여인이다. 그녀가 남에게 무언가를 ‘부탁’하는 경우는 지극히 드물었다.
그렇기에 길드원들은 사태의 시급함을 절실히 깨달을 수 있었고, 이처럼 의욕적으로 나서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 와중에 레가스만 불만을 토로했다.
{난 수련에 매진하고 싶은데…….}
{너 어디니?^^}
이모티콘이 입력된 지슈카의 채팅!
그를 본 길드원들 전원이 동시다발적으로 생각했다.
‘대장 화났다.’
‘레가스 죽었다.’
그때 길드 채팅창에 알림이 떠올랐다.
[반트너 님께서 접속하셨습니다.]
바로 5일 전, 드디어 수호 기사 랭킹 1위 자리를 차지하게 된 반트너의 등장이었다.
{어서 와, 반트너.}
{야, 무슨 잠을 7시간이나 자냐? 너무 나태해진 거 아니야? 랭커 자리 뺏길라.}
{인터넷에서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접해서 말이야. 그 에피소드에 대한 관련 글들을 찾아보느라 좀 늦었네. 너희들 혹시 윈스톤이라는 곳 아냐?}
{에트날 왕국 북부에 있는 마을?}
{아~ 거기? 바이란 마을 가던 길에 한 번 들러 본 적 있어. 근데 왜? 무슨 일인데?}
{거기서 아이템 제작 승부가 있었는데, 그중 한 명이 3시간 만에 에픽 등급 단검을 만들었다고 하더라?}
{NPC가 아니라 유저가?}
{어.}
{그놈이다!}
{드디어 떴다!}
{잡았다, 요놈!}
길드원들이 흥분하기 시작했다.
단 3시간 만에 에픽 등급 아이템을 제작할 수 있는 대장장이가 어디 흔할까?
설사 대장장이 랭킹 1위 판미르일지라도 불가능할 일이다.
지슈카가 명령을 내렸다.
{지금부터 전원 윈스톤으로 집결하도록 해! 우리는 윈스톤을 중심으로 조사에 나선다!}
{알았어!}
{하필이면 윈스톤이야……. 나 거기 가는 데 3일 정도 걸릴 듯.}
{난 일주일.}
{…가장 늦게 오는 사람은 혼날 각오해. 그리고 레가스, 넌 반나절 안에 도착 못하면 진짜 죽인다?^^}
{대, 대장! 나 지금 번스 공국에 있어! 윈스톤까지 가려면 말을 타고도 이틀은 걸릴 거라구!}
{말한테 의지하지 말고 두 다리로 직접 달려! 그러면 어떻게든 하루 안엔 올 수 있겠지?}
{오, 오오! 하루 안에 도착하면 되는 거야?!}
{반나절 안에 도착 못하면 죽일 거야.}
{뭐 어쩌라는 건데!!}
체다카 길드원들이 윈스톤으로 집결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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