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템빨-19화 (15/1,794)

제10장

구출

‘이런 염병, 씨부럴.’

퀘스트 클리어를 목전에 두고 있던 상황에서 체포당한 나는 곧장 윈스톤 성으로 끌려왔다. 그리고 취조실에 갇힌 게 벌써 1시간째다.

“네가 칸의 대장간 앞에서 후로이와 대화하고 있는 장면을 목격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너는 이미 그때부터 후로이가 스테임 백작님과 접촉하려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

“알고 있었으면 뭐, 어쩌라고?”

“…후로이에게 스테임 백작님과 접촉하라는 의뢰를 맡긴 건 필시 윈스톤 주민 중 한 명일 터. 너는 평소부터 주민들과 가까이 지냈으니까 후로이에게 의뢰를 맡긴 인물이 누구인지 알고 있을 테지?”

“알면 뭐, 어쩌라고?”

“네가 그들과 한패라고 보아도 좋겠지?”

“아닌데? 이 멍청아?”

“…….”

나는 에리나라는 여자애보다 훨씬 더 좋은 단검을 제작했다. 즉, 아이템 제작 승부 퀘스트는 당연히 나의 승리로 끝날 예정이었으며, 나는 600골드를 획득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염병할 호로 자식들한테 말도 안 되는 죄목으로 체포당한 탓에 퀘스트가 흐지부지 끝나 버렸다.

이 개자식들 때문에 내 72만 원이 허공에 날아간 셈이다!

“네가 자신이 처해 있는 입장을 잘 모르나 본데… 자꾸 그렇게 버릇없이 굴면 후회하게 될 거다.”

나는 협박을 지껄이는 기사 놈에게 엿을 날려 주었다.

“닥쳐, 이 썩을 놈아. 내가 지금 얼마나 빡치는 줄 알아? 당장 너희들 모가지를 날려 버리고 싶을 지경이라고! 나는 후로인지 개뿔인지랑 아무 연관도 없어! 그러니까 당장 날 내보내라!”

이렇게 기사들에게 까불어 대다간 감옥에 갇혀 고문을 당할 수도, 아니면 그대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72만 원을 날려 버리고 분노의 화신이 된 내게 그딴 뒷일은 두려워할 게 못 된다.

‘72만 원이면 짜장면이 몇 그릇이냐고!’

나는 이미 한껏 열 받아서 붉으락푸르락하고 있는 기사들에게 쉬지 않고 욕설을 뱉었다.

“에라, 이 쥐부랄 같은 새끼들! 내가 네들 못생긴 면상 다 기억해 놨다! 언젠가 뒤통수 맞고 질질 짜기 싫으면 당장 600골드부터 뱉어 내고 나를 풀어 줘!!”

“이놈이 보자 보자 하니까! 자꾸 함부로 지껄일 테냐!”

기사 중에서 가장 젊은 놈이 급기야 검을 뽑아 들었다.

나는 순간 쫄아서 움찔했지만, 이내 태도를 바꿨다.

“죽이려면 죽여라, 호로 새끼야!”

“이 저급한 자식이 끝까지 무서운 줄 모르고!”

내가 배 째라는 식으로 나오자 더욱더 광분한 기사 놈이 급기야 달려들었다.

나는 겸허히 죽음을 받아들이고자 눈을 감았다.

왜냐? 차라리 죽는 게 나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죽으면 광장에서 부활하게 된다. 여기에 이렇게 멍청하게 갇혀 있느니, 경험치에 손실을 보더라도 죽고 부활한 뒤 도망치는 게 나아.’

칸이 걱정이다. 최악의 경우, 내가 제작 승부에서 패한 것으로 간주되어 메로 상단이 대장간을 갈취해 갔을 수도 있다.

만약 그렇게 되면 칸은 화병으로 죽어 버릴 수도 있다. 내가 칸에게 받아 놓은 전직 퀘스트도 자연스럽게 소멸할 것이고!

“빨리 죽여, 이 새끼야!”

지금 로그아웃이 안 된다. 어서 죽고 부활해서 칸과 만나야만 한다.

그렇게 초조해하고 있는데, 눈치 빠른 중년 기사가 나서서 젊은 기사를 말렸다.

“이보게, 레오, 화를 가라앉히게. 자네도 알고 있잖은가? 이들은 불사의 몸을 가진 존재. 죽여 봤자 들판에 풀어 주는 꼴밖에는 안 돼.”

이런 젠장, 이대로는 계획이 어긋나게 생겼다.

나는 젊은 기사 놈이 이성을 잃기를 바라면서 계속 도발했다.

“야, 죽이라니까? 못 죽이냐? 내가 무서워? 쫄았구나? 기사라는 놈이 뭐 그리 간덩이가 작아? 한심한 자식, 고추는 달려 있냐? 평생 장가도 못 가고 총각으로 늙어 죽을 자식! 죽고 나면 총각 귀신 될 놈! 총각 귀신 돼서 여자들 목욕하는 모습이나 훔쳐볼 놈!”

“윽… 이, 이놈이…….”

레오라는 이름의 젊은 기사 놈이 손에 쥐고 있는 검이 바들바들 떨린다. 당장 내 심장을 찔러도 결코 이상할 상황이 아니다.

하지만 레오는 참고 또 참았다. 입술을 질끈 깨물어서 피를 철철 흘리면서까지 화를 억눌렀다.

조금만 더 욕하면 될 것도 같은데.

“이런 빙신… 읍? 으읍!!”

나는 레오를 더욱더 도발하려고 시도했지만 입에 재갈이 물리는 바람이 닥칠 수밖에 없게 됐다.

‘썩을, 치사한 자식들!’

내가 눈을 부릅뜨고 노려보았지만, 내 입에 재갈을 물린 중년 기사는 눈 하나 깜빡 안 했다.

“너는 후로이와 한패라는 혐의도 인정할 생각이 없고, 후로이에게 의뢰를 맡긴 자가 누구인지 고할 생각도 없는 게지?”

“웁웁!!”

질문을 할 거면 재갈부터 풀어라! 라는 뜻을 담고 노려보자 멋대로 해석한 중년 기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대답할 생각이 없다는 건가? 그렇다면 투옥시키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네가 후로이에게 의뢰를 맡긴 인물이 누구인지 순순히 고한다면 대접이 달라질 수도 있지.”

감옥에 갇히기는 싫다. 보통 이런 경우 감옥에 갇히게 되면 몇 날 며칠을 감옥에서 썩어야 한다. 석방되기 전까지는 아무리 재접속을 하더라도 계속 감옥에 갇힌 채다.

‘일단은 불자. 그래서 칸이 붙잡히더라도 구출해 낼 방도를 찾아보면 되니까.’

칸은 현실에서도, Satisfy에서도 친구 하나 없는 내게 소중한 존재다. 비록 NPC이지만 친구나 다름없다.

하지만 친구는 친구일 뿐!

친구가 아무리 소중해 봤자 나 자신보다는 안 소중한 법!

나는 칸을 팔아먹기로 결심했다.

“우웁! 웁!!”

누가 후로이에게 의뢰를 맡긴 건지 순순히 말하겠다! 그러니까 우선 이 재갈부터 풀어라! 라는 뜻으로 노려보자 또 멋대로 해석한 중년 기사가 감탄했다.

“대단한 녀석이군. 감옥에 갇힐지언정 결코 동료를 팔아넘길 생각은 없다니? 비록 입버릇은 고약하다만 그 의리만큼은 존경스러울 지경이다.”

“읍읍! 우으으읍!!”

뭔 개소리야! 후로이에게 의뢰를 맡긴 인물이 누구인지 알려 줄 테니까 재갈 좀 풀어 줘! 라는 뜻으로 노려보자 또다시 멋대로 해석한 중년 기사 놈이 병사들에게 명령했다.

“이자를 투옥시켜라. 후로이처럼 독방에다가.”

도, 독방?!

안 그래도 감옥에 갇히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서 심심해 미칠 지경이 되는데, 독방이라고?! 같은 죄수 동료도 없이 혼자 갇혀 있으라니!

“우읍! 우우우웁!!”

기겁한 내가 제발 재갈부터 풀어 달라는 뜻으로 몸부림쳤다. 하지만 또라이 같은 중년 기사 놈은 내 외침을 무시했다.

결국 난 성의 지하로 끌려가게 되었다.

‘젠장,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난 언제까지 감옥에 갇혀 있어야 하는 거지? 그리고 칸 영감의 대장간은 어떻게 됐지? 칸 영감이 죽으면 안 되는데……. 아니, 그보다 후로이 그 멍청한 자식은 왜 바보같이 퀘스트를 실패해서 남한테까지 피해를……!’

병사들에게 끌려가면서 한창 후로이를 욕하고 있을 때였다.

[퀘스트 <정의의 사도>가 생성되었습니다.]

<정의의 사도>

난이도:S

스테임 백작에게 윈스톤의 소식을 알리려고 했던 후로이가 임무를 실패하고 도리어 붙잡혀 버렸다.

현재 그는 지하 감옥의 독방에 긴 시간 동안 갇혀 있는 상태다.

후로이의 사정을 알고 있는 사람은 당신이 유일하기에, 후로이를 도울 수 있는 사람은 당신밖에 없다!

반드시 후로이를 구출하여 정의를 관철시켜라!

퀘스트 클리어 조건:지하 감옥의 가장 깊은 곳에 갇혀 있는 후로이를 7시간 안에 구출.

퀘스트 클리어 보상:칭호 ‘정의의 사도’. 윈스톤 주민들과의 호감도 최대치. 윈스톤에서의 명성 최대치. 후로이와 함께 진행할 수 있는 연계 퀘스트가 생성.

*정의의 사도:용기 능력치가 개방됩니다. 모든 능력치 +10. 스킬 ‘꺾을 수 없는 정의’ 생성.

퀘스트 실패 시:레벨 ?2. 칭호 ‘비겁자’ 생성.

*비겁자:NPC와의 친화력이 하락. 퀘스트 획득 확률 하락.

정의로운 성향을 가진 NPC들에게 멸시당함.

‘보상 내용이 왠지 익숙한데? 아!’

후로이가 내게 정보를 공유해 줬었던 <윈스톤의 주민들을 위하여> 퀘스트의 보상과 같은 보상이다. 후로이와 함께할 수 있는 연계 퀘스트가 생성된다는 점만 제외하고 말이다.

‘어쨌든, 새로운 칭호를 얻을 수 있다니 욕심이 생기긴 하네.’

하. 지. 만.

‘퀘스트를 수락할 생각 따위 없지만!’

지금 나도 포박당한 채 독방에 갇히게 될 신세인데, 무슨 수로 후로이를 구출하겠는가? 그것도 7시간 안에!

무조건 실패하는 퀘스트다. 내가 병신도 아니고 이딴 퀘스트를 왜 수락하냐?

‘퀘스트에 실패하면 얻게 되는 페널티가… 소름 돋는다. 레벨 하락도 모자라서 비겁자? 진짜 쓰레기 같은 칭호다.’

비겁자는 ‘귀족 살해자’라는 칭호보다 못한 칭호였다.

결코 이 퀘스트를 수락해선 안 된다.

근데…

[이 퀘스트는 거절할 수 없습니다. 퀘스트가 진행됩니다.]

왜?

나한테 왜 이래 만날!

“우우읍! 우오! 우오오!! 우오오옥!!”

나는 열 받아서 지랄발광을 했다. 있는 힘껏 쌍욕이라도 지껄여야 속이 조금이나마 풀릴 텐데, 입에 재갈이 물려 있는 탓에 욕마저 할 수가 없으니 답답해 죽을 노릇이었다.

내가 입에 문 재갈 사이로 침을 질질 흘리면서 아주 발악을 하자, 나를 호송하던 병사들이 창대로 내 등짝을 후려쳤다.

“이 자식이 돌았나! 조용히 안 해?!”

“흥! 독방이 무서운 거겠지. 멍청한 녀석, 그러게 기사님들이 기회를 줬을 때 말 잘 들었어야지. 이리 겁낼 거면서 무슨 멋을 부리겠다고 의리를 지키는 척하고 있어?”

“우읍! 으으읍!”

나는 의리를 지킬 생각 따위 눈곱만큼도 없었다. 멋대로 오해하고 지껄이는 병사들을 보니까 답답해서 더욱더 환장할 노릇이다.

“우윽!”

지하의 깊은 곳까지 내려온 나는 병사들에게 떠밀려서 결국 독방에 갇히고 말았다.

근데 재갈을 안 풀어 준다?

병사들끼리 대화한다.

“야, 재갈 안 풀어 줘?”

“레오 님께서 식사 때만 풀어 주라 하시더라고. 이놈이 어지간한 양아치보다 입이 험하다면서, 이런 놈은 주둥이부터 죽여 놔야 완전히 기가 죽는다 하시더라.”

“그렇군.”

그렇군은 뭐가 그렇군이야!

“으읍! 으으읍!”

재갈이라도 풀어 줘라! 엉?! 이라는 눈빛으로 노려보니 병사들이 질린다는 표정을 지었다.

“와, 재갈 물려서 침 질질 흘리면서도 끝까지 뭐라고 지껄여 대는 것 봐라. 저거 재갈 풀어 놓으면 하루 종일 떠들어 대서 간수장 혈압 오르게 할 놈일세.”

“진짜로 징한 놈이다.”

“우웁! 우우우웁!”

그럼 밧줄이라도 풀어 주든가! 몸을 압박하고 있는 이 밧줄 때문에 손끝 하나 움직이기가 힘들어 답답해 미치겠다!

쾅!

병사들은 나의 간절한 몸부림을 무시하고 그대로 떠나 버렸다.

‘진짜로 돌아 버리겠네.’

몸은 포박당하고, 입에는 재갈이 물린 채 이 컴컴하고 냄새나는 곳에 언제까지고 갇혀 있으라고?

더군다나 지금 이 순간에도 시간이 흐르는 중이다.

후로이 구출 퀘스트는 시도조차 못한 채 두 눈 뜨고 실패해 버리게 생겼다.

‘내 레벨은 어쩌라고!’

그리고 내가 왜 비겁자 칭호를 얻어야 되냐!

내가 일부러 후로이를 구출 안 하는 것도 아닌데 왜 비겁자 소리를 들어야 하냐고!

“우웁! 우우우웁!!”

외치고 또 외쳐 본다.

제발 누가 나 좀 도와달라고.

하지만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는다.

깊고 음침한 지하에는 내 신음 소리만 계속해서 메아리쳤다.

아무것도 못한 채 시간이 흐르고 또 흐른다.

화면 상단에 퀘스트 제한 시간을 알리는 표시창이 어느새 4시간을 가리키고 있다.

감옥에 갇히고 벌써 3시간 가까이 지난 것이다.

‘젠장… 썩을…….’

어쩐지, 나처럼 재수 없는 놈한테 최근 너무 행운이 따른다 싶었다.

그간 계속해서 찾아왔던 행운은 모두 오늘날 찾아올 불행의 전조나 다름이 없었던 것이다.

‘내가 얼마나 재수 없는 놈인지 망각하고 경계하지 못했던 게 죄지…….’

26년을 사는 동안 길에서 10원짜리 하나 주워 보지 못한 놈이 바로 나다! 그런 내가 레전드리 직업을 얻게 되었을 때부터 수상하게 여겼어야 하는 건데!

‘행운의 여신 명치를 세게 때리고 싶다…….’

나를 완전히 버려 버린 행운의 여신을 한참 동안 욕하고 있을 때였다.

“그리드! 그리드!”

웬 여자의 목소리가 위층에서부터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 목소리는?’

익숙한데? 최근에 들었던 것 같은데?

‘아!’

에리나다.

목소리도 얼굴만큼 예쁘다.

이놈의 불공평한 세상! 하나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에게는 열을 주는구나!

아니, 지금 세상 한탄할 때가 아니지.

‘저 꼬맹이가 여긴 왜? 아니, 의문 품을 때도 아니야.’

굉장히 의외의 인물이 찾아오긴 했지만, 그녀가 내겐 유일한 한 줄기 희망이다. 반드시 도움을 받아야만 한다.

나는 사력을 다해서 소리쳤다.

“우웁! 우우우웁! 웁! 웁!”

여기다! 나는 여기에 있다!

아무리 소리쳐 봤자 재갈 물린 입으로는 큰 소리를 내기가 어려웠다.

에리나는 여전히 위층에서 나를 찾고 있었다.

“그리드으! 어딨어요! 이 개념 없는 남자야!”

“우우우웁!!”

목이 쉬어 터져라 외쳐 본다. 하지만 에리나는 나를 쉽사리 찾지 못했다.

화면 상단의, 퀘스트 제한 시간 표시창은 어느덧 2시간을 가리키고 있었다.

앞으로 2시간 안에 반드시 탈출해서 후로이를 구출해야만 한다.

무슨 수로 구하냐고? 몰라, 젠장! 어떻게든 해 봐야지!

“우웁! 우웁!!”

“그리드!”

아, 드디어…

내가 갇혀 있는 아래층으로 내려온 에리나가 간신히 내 목소리를 듣고 달려왔다.

아아! 아까까지만 해도 재수 없게만 보이던 계집애가 지금 이 순간 천사처럼 보인다.

에리나에 대한 호감도가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하는 그때, 철창 사이로 내 꼴을 확인한 에리나가 말했다.

“구해 줄게요. 그뿐만이 아니에요. 이 단검도 돌려드리죠.”

“웁! 우웁!”

에리나의 손에는 미노타우르스의 뿔로 만들어진 칼집에 들어 있는 단검이 들려 있었다.

내가 그녀와의 승부 때 제작한 단검이다.

에리나는 생김새뿐만 아니라 성격도 천사 같은 아이였던 것이다.

‘정말로 착한 애구나.’

내가 에리나에게 감격하고 있을 때 그녀가 말을 이었다.

“대신 조건이 있어요.”

역시 예쁜 여자애치고 마음씨 고운 애는 드물다.

“웁! 우으읍!”

이 빌어먹을 계집! 지금 이 상황에 조건 같은 거 걸고 싶냐! 구해 주러 온 거면 곱게 구해 주든가! 라는 뜻으로 노려보자 멋대로 해석한 에리나가 빙긋 웃었다.

“어떤 조건이든 들어줄 테니까 빨리 말하라는 거죠? 시원시원해서 좋네요. 당신, 제게 최대한 많은 마법을 보관시킬 수 있는 오브를 제작해 주세요. 최소한 이 단검과 동급의 성능을 가진 오브를 원해요. 당신의 대장장이 기술이라면 그쯤 가뿐하겠죠?”

오브? 만들어 본 적 없는데?

그보다 오브는 마법 물품 아닌가? 마법사한테 가서 부탁할 일이지 왜 나한테… 아니, 지금 그딴 거 따질 때가 아니다.

나는 무작정 고개를 끄덕였다.

그를 확인한 에리나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좋아요. 그리고 또 다른 조건은, 앞으로 절대 제게 꼬맹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말라는 거예요. 내게는 유페미나라는 이름이 있으니까요. 꼭 유페미나라고 불러야 해요. 알았죠?”

저 계집애가 어디서 낮술을 한잔했나? 아까는 에리나라고 하더니 이제는 유페미나라고? 자기 이름도 까먹었나?

…애초에 가명이었던 건가?

그딴 거 어찌 됐든 좋다!

나는 또다시 무작정 고개를 끄덕였고, 에리나, 아니 유페미나는 그를 확인하고 나서야 열쇠 꾸러미를 꺼내 감옥 문을 열어 주었다. 그리고 내 몸과 주둥이를 압박하고 있던 포박과 재갈을 풀어 주었다.

“푸핫!”

드디어 살 것 같다.

나는 입가에 말라붙어 있는 침부터 닦아 낸 뒤, 몇 시간째 묶여 있던 몸을 풀어 주면서 유페미나에게 물었다.

“어떻게 된 일이지? 네가 왜 여기까지 찾아와서 날 구해 주는 거야?”

유페미나가 내게 단검을 던져 주었다.

“대화는 일단 탈출부터 하고 나서 나누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 계단을 타고 수십 명의 병사들이 개떼처럼 몰려 내려왔다.

나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야, 꼬맹… 아니, 유페미나, 이게 뭐야? 병사들을 처리했으니까 여기까지 올 수 있던 거 아니었어?”

“병사가 좀 많아야죠. 100명도 넘게 해치운 것 같은데 여전히 바글바글해요. 탈출하려면 고생깨나 할 거예요.”

“풋!”

황당한 말을 지껄이는 유페미나 탓에 실소가 터졌다. 그런 나를 유페미나가 게슴츠레한 시선으로 노려봤다.

“왜 웃죠?”

“아니, 네가 병사를 100명도 넘게 해치웠다고 하니까 웃기잖아. 대장장이가 무슨 수로 그렇게 싸움을 잘한데~? 응? 허풍을 쳐도 좀 적당히…….”

“나는 대장장이가 아니거든요.”

“어?”

유페미나가 나와 똑바로 시선을 마주했다. 그녀의 깊고 푸른 눈동자는 어떠한 보석과도 비할 바 없이 아름다웠다.

그래 봤자 꼬맹이지만.

뭐, 밥 많이 먹고 커서 키랑 가슴이 커지면 그럭저럭 봐줄 만하려나?

“어딜 봐요?”

눈살을 찌푸리면서 가슴을 가리는 유페미나에게 나는 설명을 요구했다.

“난 작은 가슴에 흥미 없으니까 걱정 말고 하던 말이나 마저 해 봐. 대장장이가 아니라니? 무슨 뜻이야?”

“정말이지, 너무 싫은 사람이야.”

유페미나는 투덜거리면서도 설명해 주었다.

“나는 특수 직업 전직자예요. 제 직업은 복제술사죠. 대장장이인 척할 수 있었던 것도 복제술사의 스킬을 이용해서 칸의 대장장이 기술을 복제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예요. 당신도 저와 비슷하죠? 평범한 대장장이가 아니잖아요?”

복제술사?

완전히 처음 듣는 직업이다.

설마…

“레어 직업이냐?”

유페미나가 버럭 화를 냈다.

“고작 레어 직업 따위가 아니에요! 에픽 직업이지!”

“헉!”

Satisfy에 단 3개만 존재한다는 에픽 직업의 주인공이 이 꼬맹이였단 말이야?

이 상황에 얘가 괜히 허풍 칠 이유도 없고, 사실이긴 사실일 텐데…….

“너는 자신의 정보를 철저히 감추고 지내 오지 않았어? 근데 왜 내게 굳이 정체를 밝히는 거야? 그것도 이런 상황에?”

“이런 상황이니까 밝히는 거예요. 당신도 히든 이상 등급의 직업 전직자죠? 다 알고 있으니까, 혹 정체를 숨긴답시고 평범한 대장장이인 척하지 말고 모든 능력을 발휘해서 싸워요. 안 그랬다간 당신이나 나나 여기서 죽게 될 거니까.”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어.”

납득한 내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단검을 뽑아 쥐었다.

[직업 특성의 효과로 <이상적인 단검>을 장착하였습니다.]

[본인이 제작한 아이템입니다. 그에 따라 이해도가 100퍼센트가 됩니다.]

[본인이 제작한 아이템의 경우, 이해도가 최대치일지라도 아이템 사용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페널티가 적용됩니다.]

[<이상적인 단검>의 공격력이 20퍼센트 하락합니다. 옵션 효과가 절반만 적용됩니다.]

<이상적인 단검>

등급:유니크

내구력:168/168 공격력:242~264 공격 속도:+11%

*희박한 확률로 대상이 즉사.

*민첩성 +20.

*스킬 ‘칼바람’ 생성.

*스킬 ‘신속한 몸놀림’ 생성.

대단한 실력과 잠재력을 지녔지만 경험과 명성은 턱없이 부족한 이름 모를 장인이, 명망 높은 대장장이 칸과 합심하여 만든 작품입니다.

사용한 재료와 제작법은 특별할 게 없지만, 이름 모를 장인의 실력과 칸의 협조성이 그야말로 이상적인 단검을 탄생시켰습니다.

사용 조건:레벨 180 이상. 민첩성 450 이상.

고급 대거 마스터리.

본인이 제작한 아이템은 이해도가 최대치라도 페널티가 적용된다니! 이런 젠장! 이 얼마나 한탄할 노릇이란 말인가!

‘하지만 유니크 아이템에 붙은 페널티가 20퍼센트밖에 안 된다면, 그렇게 회의적인 것도 아닌가? 그래도 역시 아쉽긴 아쉽다.’

단검을 장착한 나를 보고 유페미나가 경악했다.

“당신의 진짜 직업은 어쌔신 계열이었던 건가요? 민첩성이 450 이상에다가 고급 대거 마스터리까지 익히고 있다니……. 근데 이상하네요? 어떻게 장인급 대장장이 기술까지 보유한 거죠?”

이 단검 이상의 오브를 제작해 달라고 말했을 때부터 눈치챈 거지만, 유페미나는 이 단검의 정보를 확인한 게 분명하다. 그러면서도 욕심내지 않고 이것을 내게 돌려준 걸 보면 상당히 착한 녀석이다.

‘나였으면 날름 먹었을 텐데… 멍청할 정도로 착하군. 역시 꼬맹이라 세상의 무서움을 몰라. 아니, 이 단검 이상의 오브를 만들어 달라는 조건을 제시한 걸 보면 착하다고 보는 건 아닌가? 가만… 오브를 만들 때 필요한 재료비는 지원해 주는 거야? 서, 설마 공짜로 만들어 내라는 건 아니겠지? 사, 사악한 계집…….’

아니, 아직 단언하기에는 이르다.

유페미나에 대해서는 눈앞에 닥친 일들부터 처리하고 판단해도 충분하다.

“칼바람!”

나는 병사들이 잔뜩 몰려 있는 방향을 향해서 스킬을 사용했다. 그러자 단검에서 생성된 날카로운 바람이 병사들을 덮치며 피가 난무했다.

10여 명의 병사들이 중상을 입고 비틀거림을 확인한 유페미나가 휘파람을 불었다.

“아이템에 장착된 스킬이 이 정도의 파괴력을 발휘하다니, 대단하네요.”

원래는 고작 이 정도 파괴력이 아니다.

내가 이 단검의 사용 조건을 충족시켰다면, 칼바람의 위력은 지금보다 2배 더 강했을 것이다.

‘옵션 효과가 절반만 적용되는 점이 너무 아쉽다.’

다시금 한탄하면서 유페미나에게 말했다.

“이봐, 유페미나, 일단 사람을 하나 구출해야겠어.”

“에? 사람이라뇨? 아, 혹시 칸을 말하는 건가요? 칸이라면 여기 오기 전에 이미 구출…….”

“칸 영감도 붙잡혔었어? 구했다면 다행이네. 근데 지금 내가 말하는 건 칸 영감이 아니야. 바로 후로이지.”

“…그게 누군데요.”

짜증 난다는 표정을 짓는 유페미나에게 나는 간단하게 설명했다.

“나도 이름이랑 면상밖에 모르는 놈이야.”

“…….”

유페미나의 심정을 읽을 수 있었다.

아무래도 똥 밟은 것 같다고 생각할 테지.

뭐, 그녀의 기분 따위 어찌 되든 상관없다.

앞으로 남은 시간은 1시간 45분!

그 안에 반드시 후로이를 구출해야만 한다!

‘그 개자식, 구하고 나면 귀싸대기를 날려 주겠어!’

대체 지가 뭐라고 나를 이딴 식으로 엮이게 한 건지! 화가 치밀어 오른다!

“와아아아!”

병사들이 일제히 덤벼들었다.

숫자가 족히 서른을 넘겨 보였다.

나는 긴장했지만 유페미나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그저 앞으로 손을 뻗었다.

“멸살의 창.”

파치직!!

유페미나의 손끝에서 검붉은 기운이 스파크처럼 튀어 올랐다. 그리고 급기야 묵색 창이 생성되더니 병사들을 덮쳤다.

퍼퍼퍽! 쾅!!

병사들의 몸을 거침없이 꿰뚫고 날아간 묵색 창이 곧 이어서 폭발을 일으켰고, 서른이 넘던 병사들이 일제히 회색빛으로 화해 버렸다.

주문도 외우지 않고 가볍게 사용한 마법이라고는 믿기지 않게 강력하다. 어쩌면 유페미나는 유라 그 마녀에 버금가는 실력자가 아닐까?

내가 미쳤다고 이런 분께 까불어 댔단 말인가!

“딸꾹!”

너무 놀라서 딸꾹질이 나올 지경이었다.

‘아까 내가 얘한테 뭐라고 지껄였었지? 말실수 많이 했었나? 나한테 많이 화났으려나?’

후환이 두려워서 얼음장처럼 굳어 있는 내게 유페미나가 사늘히 말했다.

“뭐 해요? 후로인지 후라인지 어서 구하러 가야 한다면서요?”

“…가, 가려고 했… 어.”

여태까지 계속 반말하다가 갑자기 존칭 사용하면 어색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반말로 대답하긴 했지만, 이래도 되는 건지 의문이 든다.

‘절대로 꼬맹이라고 부르지 말자. 오브도 꼭 만들어 주자. 얘는 여태까지 충분히 참아 줬다. 더 이상 자극해선 안 돼.’

나는 몇 번이고 결심하면서 지하의 깊은 곳으로 내려갔다.

3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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