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템빨-17화 (13/1,794)

제8장

아이템 제작 승부!

윈스톤 중앙 광장!

본래 항시 인파로 북적이던 곳이긴 했지만, 오늘따라 더욱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이곳에서 대장간을 건 아이템 제작 승부가 펼쳐질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반드시 그리드가 이겨서 칸 영감님의 대장간을 지킬 수 있으면 좋겠군. 대장간이야말로 우리에게 남아 있는 마지막 자존심과 같은 거니까.”

“그렇지. 대장간마저 메로 상단의 손아귀에 들어가게 되면, 윈스톤에 우리가 마음 놓고 있을 수 있는 장소는 완전히 사라지게 돼.”

“그리드 힘내라! 절대로 지면 안 돼!”

한 명도 빠짐없이 모인 윈스톤 주민들의 마음은 간절했다. 그들은 반드시 그리드가 승부에서 승리하기를 바라면서 기도했다.

하지만 유저들의 태도는 달랐다. 승부의 결과 따위야 어찌 되든 그들과는 전혀 관계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이템 제작 승부? 별달리 흥미는 안 생기지만, 그래도 흔히 있는 일은 아니니까 잠시 구경이나 할까?”

“그러자. 딱히 할 일도 없으니까. 보다가 재미없으면 그냥 가면 되는 거고. 여~ 아무나 이겨라. 이기는 놈이 우리 편이다~”

이처럼 대부분의 유저들은 아무런 감흥 없이 이 승부를 그저 술안주쯤으로 여겼는데, 이는 그나마 나은 편이었다.

“야, 생각해 보면 웃기지 않냐? 고작 대장장이들이 아이템 만드는 승분데, 그딴 걸 뭔 재미로 관람하라고 이렇게 사람들 많은 데서 거창하게 개최한 거래?”

“그러게. 대장장이가 일하는 모습 따위 구경해 봤자 눈곱만큼도 재미없고 지루하기만 한데 말이야. 기껏 아이템 만들어 봤자, 끽해야 하급 에픽 템일 테니까 결과물에 흥미도 안 생기고.”

“하급이라도 에픽이 어디냐? 레어 아이템이나 제대로 만들면 다행이지. 소문 들어 보니까 유명한 대장장이들이 참여하는 승부도 아니라고 하더라고.”

“뭐야? 골 까네. 허접 나부랭이들 데려다가 승부하는 거였어? 야, 시간 아까우니까 그냥 사냥이나 하러 가자. 어차피 망해 버린 대장간 누가 차지하게 되든 뭔 상관이야?”

이처럼 승부 자체를 하찮게 여기고 조롱하며 외면하는 유저들도 부지기수였다.

하지만 잠시 후.

승부의 참가자들이 모습을 드러내자, 남성 유저들은 차마 떠나지 못하고 자리를 끝까지 지키리라 마음먹게 된다.

“자! 이번 승부의 주인공들을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메로 상단의 에리나! 그리고 칸의 후계자 그리드!”

“오오오오오!!”

무대 위로 올라서는 금발 소녀를 목격한 남성 유저들의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급기야 곳곳에서 환호성이 터졌다.

“우와! 진짜 예쁘다!”

“나 너한테 첫눈에 반했냐?”

“내 이상형이다…….”

금발 소녀는 벙거지를 깊이 눌러쓰고 있었다. 그래서 얼굴이 완전하게 드러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결코 숨길 수 없는 미모를 뽐냈다.

탐스러운 입술이 특히나도 매력적이었다.

승부의 결과에는 관심조차 없던 남성 유저들이, 그녀를 목격한 이 순간 모두 그녀의 열렬한 지지자가 되어 버렸다.

“에리나! 이 오빠가 응원해 줄게!”

“에리나 이겨라~!”

“에리나! 에리나! 에리나!”

급 결성된 삼촌 부대!

하늘을 꿰뚫을 기세로 목청 높여 응원하는 그들을 보면서 으쓱해진 에리나, 즉 유페미나가 우아한 몸짓으로 손을 흔들어 주었다.

“응원해 줘서 고마워요.”

“우오오오오오!!”

그녀는 나지막이 말하며 자그마한 미소를 그렸을 뿐이건만, 남자들은 마치 여신에게 은총이라도 받은 양 좋아 죽겠다며 자지러졌다.

군인들이 자대에 방문한 여자 아이돌을 향해 보이는 반응을 연상하게 만들 지경이다.

이를 본 그리드가 김칫국을 마셨다.

‘다음은 내 차례인가?’

남성 유저들은 여성 출전자를 열렬히 지지하며 응원하고 있다. 그렇다면 여성 유저들이 남성 출전자를 지지하고 응원해 주는 일 또한 자연스러운 이치일 터!

유페미나를 따라 한답시고 미소를 머금은 그리드가 관중석의 여성 유저들을 향해서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리드는 여성 유저들의 환호와 응원을 기대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그의 예상과 전혀 달랐다.

“저 사람 뭔데 다짜고짜 썩소를 날리는 거야? 으으, 기분 나빠.”

“조금 전에 먹었던 빵이 역류하려고 해…….”

“진짜 비호감으로 생겼다…….”

응원은커녕 최악의 반응을 보이는 여성 유저들!

‘이 더러운 외모 지상주의 사회 같으니라고! 내가 희대의 꽃미남이었다면 제대로 응원해 줬을 거면서!’

단 한 명의 여자도 응원해 주질 않자 좌절하는 그리드를 향해서 윈스톤의 주민들이 소리쳤다.

“그리드! 우리가 있잖은가! 우리는 자네를 응원하고 있다고! 우리는 자네를 믿는다네! 반드시 이겨 주시게!”

“칸 영감님의 후계자다운 실력을 보여 줘!”

“그리드 이겨라! 그리드 이겨라! 그리드 이겨라!”

그리드가 치를 떨었다.

“입으로는 나를 응원한다면서 시선은 왜 저 여자애를 좇는 건데……?”

NPC도 남자는 다 똑같이 늑대였다.

윈스톤 주민들 중에서도 남자들만큼은 금발 소녀가 적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그녀로부터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칸조차도!

“저 영감탱이, 알면 알수록 주책바가지네 진짜.”

정력이 고갈된 고령의 NPC마저도 반하게 만들 정도로 고혹적인 금발 소녀!

그녀와 나란히 섰다는 이유만으로 오징어가 되고 병풍 취급을 받게 된 그리드가 분개했다.

“너! 내가 반드시 이겨 주마! 그리고 그 예쁘장한 얼굴이 처참하게 일그러지는 꼴을 보면서 즐겨 주마!”

그리드의 그와 같은 선전포고가 유페미나를 놀라게 만들었다.

비록 적으로 만났을지언정 남자이건만, 어떻게 자신의 미모를 보고도 저리 냉담하단 말인가?

‘게이나 장님이 아닌 이상, 세상 모든 남자들은 모두 내 미모에 반해서 여왕님으로 받들어 모시는 게 정상 아니었어?’

유페미나는 괜한 오기가 생겼다.

‘어디 한번 내 미모를 제대로 맛보라고.’

유페미나가 아이디를 숨기기 위해서 푹 눌러쓰고 있던 벙거지의 챙을 살짝 위로 들어 올렸다. 그러자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이 완연하게 드러났다.

그리드는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와, 이렇게 보니까 예쁘긴 진짜 예쁘네. 유라 그 악독한 마녀랑 맞먹겠는데?’

유라가 고고한 기품의 성숙한 여인이라면, 유페미나는 발랄하고 상큼한 느낌의 소녀였다.

발산하는 분위기가 전혀 다르지만, 둘 모두 초월적인 미모를 보유했다는 점만큼은 꼭 닮았다.

‘저게 인간이야 인형이야?’

멍청한 표정을 지은 채 유페미나로부터 시선을 떼지 못하는 그리드!

그를 본 유페미나가 기고만장해졌다.

‘흥, 그럼 그렇지. 내 얼굴을 제대로 보니까 첫눈에 반해 버리는군. 이제 너도 다른 남자들과 같이 개처럼 날 따르면 된다고?’

내 미모에 반하지 않는 남자가 세상에 존재할 리 없다!

유페미나는 이와 같은 지론을 가질 정도로 외모에 대한 자부심이 엄청 컸다. 그녀가 그리드를 완벽한 사랑의 포로로 길들이기 위해서 쐐기를 박았다.

“그리드 님? 저를 너무 적대하지 마세요.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잖아요? 혹시 또 아나요? 앞으로 우리가 좋은 관계로 발전할 수 있을지? 그러니까 감정 상하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요.”

기다란 눈을 반달로 그리고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교태를 부린다.

그녀가 이렇듯 끼를 부리면 안 넘어오는 사내가 없었다.

하지만 그리드는 콧방귀조차 뀌지 않았다.

“뭐? 좋은 관계로 발전해? 그런 끔찍한 소리 하지 마라, 꼬맹이.”

유페미나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끄, 끔찍해요? 저와 좋은 관계로 발전하는 일이? 게다가 꼬맹이라고요?”

“그래! 나는 너같이 여우같은 계집과 좋은 관계로 발전할 생각 따위 없다! 이 꼬맹아! 하이스쿨은 졸업했냐? 너같이 쪼그만 녀석이 미인계를 써 봤자 나한텐 안 통해! 난 로리콘이 아니니까! 제길! 내가 얼굴 반반한 계집들의 음침한 속을 모르고 있을 것 같아? 나를 홀려서 내가 승부에 집중하지 못하도록 만들 의도인가 본데, 그딴 저급한 수작 이 아저씨한텐 안 통한다!”

그리드는 이상형이 확고하다.

말수가 적고 행동이 조신한 미인! 키는 168센티미터 이상이면서 가슴은 D컵 이상!

유페미나가 확실히 엄청나게 예쁘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리드의 이상형과는 거리가 멀었다.

딱 봐도 타고난 끼가 있으니 조신함과는 거리가 멀 것 같았고, 키는 아슬아슬하게 160센티미터. 가슴은 끽해야 B컵에 불과하다.

아무리 얼굴이 잘나 봤자 그리드에겐 이성으로서 인식되지 않는 것이다.

‘꼬맹이? 여우? 저급한 수작?’

그리드의 폭언을 듣고 귀를 의심하면서 잠시 멍하니 있던 유페미나가 이내 부들부들 떨었다.

여태껏 겪어 보지 못했던 치욕감이 그녀를 극도로 분노하게 만들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난 20살이라고!’

그랬다. 유페미나는 사실 소녀가 아니었다. 나이에 비해서 어려 보일 뿐이지, 어엿한 성인이었다.

키가 작은 편이며 동안이라는 점이 콤플렉스였던 유페미나에게 꼬맹이라는 소리를 하는 것은 역린을 건드린 것과 마찬가지였다.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망신을 당하게 만들어 주겠어!’

분노의 화신이 된 유페미나가 결심했다.

벙거지를 다시금 눌러쓴 그녀가 입가에 서늘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리드에게 한껏 깔보는 시선을 보내며 말했다.

“내 매력을 몰라보는 걸 보니, 당신은 게이임이 분명하군요? 좋아요.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고 게이의 길을 선택한 당신에게 따끔한 맛을 보여 주도록 하죠. 누가 더 좋은 아이템을 만드나 두고 보자고요? 해보나 마나 내가 이기겠지만.”

“뭐, 뭐? 게이? 내가 게이라고?! 대체 어딜 봐서 게이라는 거야! 이 재수 없는 계집! 못생긴 남자 따위는 게이 취급하는 거냐!”

멋대로 해석한 그리드가 고래고래 소리쳤다.

그리고 ‘재수 없다’라는 말을 들은 유페미나는 또 한 번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설마, 남자에게 이런 폭언을 듣게 될 날이 오리라고는 상상조차 해 본 적이 없었던 탓이다.

“재, 재수 없다고요? 내가? 정말이지 상종하지 못할 쓰레기 같은 남자로군요!”

먼저 적의를 보이며 시비를 걸고 사람을 모욕한 쪽은 그리드다. 유페미나 입장에서는 다짜고짜 함부로 지껄이는 그리드가 미친놈으로만 보였다.

그런 미친놈에게 연달아 수모를 당하자 수치심을 감당할 수 없었던 유페미나가 이제는 눈물까지 글썽이며 소리쳤다.

“당신 따위와는 빨리 작별할 거예요! 당장 승부를 시작해요!”

“좋아, 어서 시작하자. 안 그래도 이 일방적인 응원 소리가 거슬리던 참이거든. 내가 오늘 꼭 너를 쓰러뜨려서 외모 지상주의 타파의 시발점으로 삼겠다!”

아직 진행자가 승부의 시작을 알리지도 않았건만, 그리드는 무대에 준비되어 있던 철광석을 타오르고 있는 용광로에 쓸어 넣었다.

일련의 아이템 제작 과정을 과거에 경험해 보았던 유페미나 역시 그에 질세라 강철 제련에 나섰다.

화르륵!

분노를 담아 엄청난 기세로 풀무질하는 두 사람!

용광로의 온도가 빠르게 상승한다.

진행자가 소리쳤다.

“어느새 두 사람의 승부가 시작되었군요! 관중 여러분께 알립니다! 이번 승부의 주제는 ‘단검 제작’입니다! 제한 시간 안에 누가 더 품질 좋은 단검을 만들어 내느냐가 승리의 요건이 되겠습니다!”

단검은 비교적 빠른 제작이 가능한 아이템이다. 진정한 명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당연히 오랜 시간을 들이는 편이 좋지만, 능숙한 대장장이는 2시간 정도만 투자해도 제법 쓸 만한 단검을 완성하는 게 가능했다.

그리고 이번 승부의 제한 시간은 3시간이었다.

“에리나 힘내라!”

소란을 듣고 몰려온 유저들이 계속해서 늘어났기 때문에, 유페미나의 팬은 마치 암세포처럼 빠른 속도로 증식하고 있었다.

그들의 함성 소리에 윈스톤 주민들의 응원 소리는 이제 완전히 묻혀 버렸으니, 그리드는 홀로 적진에 쳐들어와 싸우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일방적인 응원!

하지만 그리드는 기가 죽기는커녕 더욱더 기운을 냈다.

잡초는 밟히면 밟힐수록 강해지는 법이니까!

‘꼭 이겨 주마! 그래서 네놈들을 모조리 닥치게 만들어 주마!’

어느새 강철 제련을 완료한 그리드가 본격적인 단검 제작에 나섰다.

따앙! 따앙!

그가 망치를 손에 쥐고 강철을 두드리기 시작하자 유페미나는 초조해졌다. 아직 그녀는 제련을 끝내지 못한 탓이다.

‘빠르다! 실력 차이가 너무 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애초에 유페미나는 대장장이가 아니잖은가?

‘초조해하지 말자. 마음을 급하게 가져 봤자 좋을 일 없어.’

마음을 추스른 유페미나가 침착하게 제련 과정에 집중했다. 그녀는 그리드가 담금질과 단조 작업을 몇 차례나 반복하고 있을 때서야 비로소 제련을 끝냈다.

그리고 인벤토리에서 한 자루 망치를 꺼내 쥐었다.

이번 퀘스트를 반드시 성공하리라 마음먹고 거액을 들여서 구입한 제작용 망치였다.

<축복받은 대장장이 망치>

등급:에픽

내구력:299/320 공격력:50~70 레어 등급 아이템 제작 확률:+15% 에픽 등급 아이템 제작 확률:+5%

명망 높은 대장장이가 사용하던 망치입니다. 높은 등급의 아이템을 제작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사용 조건:레벨 150 이상. 근력 100 이상.

중급 대장장이 기술.

[아이템 사용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여 장비할 수 없습니다.]

유페미나가 <축복받은 대장장이 망치>의 사용 조건에서 충족시키는 부분은 레벨과 근력뿐이었다. 대장장이가 아닌 그녀가 중급 대장장이 기술을 익히고 있을 리 만무했으니까.

하지만 그리드의 대장장이 기술을 분석, 복제하게 되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최선을 다해서 단검 제작에 집중하고 있는 그리드를 향해서 유페미나의 ‘스킬 관찰’이 발동했다.

이 순간 유페미나는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똑같은 대장장이 기술을 가지고 아이템을 만든다면, 더 좋은 제작 도구를 가지고 있는 쪽이 승리할 가능성이 높은 게 당연해.’

그리드가 사용하고 있는 제작 망치는 유페미나의 것과 비할 바 없이 낡고 초라했다.

그를 확인한 유페미나는 자신의 승리를 자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기세등등함도 잠시! 눈앞으로 떠오르는 알림창들을 확인한 그녀가 경악했다.

[스킬 관찰의 레벨이 너무 낮습니다.]

[대상의 스킬을 분석할 수 없습니다.]

“뭐, 뭐라구?”

현재 유페미나의 스킬 관찰 레벨은 7이다.

설령 3차 전직한 NPC들의 최상위 스킬일지라도 복제에 실패한 일이 없다.

무엇보다도, 과거 어떤 대장장이 NPC로부터 고급 대장장이 기술을 분석해서 복제했을 당시의 스킬 관찰 레벨은 5에 불과했다.

그런데 7레벨 스킬 관찰로 그리드의 대장장이 기술을 분석하는 게 불가능하다니?

설마 그리드의 대장장이 기술이 고급 이상이라도 된단 말인가?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스킬 관찰! 스킬 관찰!”

[스킬 관찰의 레벨이 너무 낮습니다.]

[대상의 스킬을 분석할 수 없습니다.]

[스킬 관찰의 레벨이 너무 낮습니다.]

[대상의 스킬을 분석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재차 스킬 관찰을 시도해 보아도 똑같은 알림창이 반복해서 떠오를 뿐이다.

“버그라도 걸린 거냐굿! 스킬 관차알!!”

[스킬 관찰의 레벨이 너무 낮습니다.]

[대상의 스킬을 분석할 수 없습니다.]

마나가 전부 다 소모될 때까지 스킬 관찰을 시도했지만 끝내 분석에 실패하고 만 그녀의 얼굴은 이제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이럴 수가…….”

정황상 유페미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저 개념 없고 예의 모르는 멍청한 남자가 고급 대장장이 기술보다 상위의 기술을 익히고 있다는 사실을!

‘장인급이라도 되는 거야? 하지만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구!’

대장장이 랭킹 1위의 대장장이 기술이 고작 중급에 불과하다. 그런데 랭커는커녕 듣도 보도 못해 본 저 그리드라는 남자가 고급을 넘어 장인이라고? 결코 불가능한 일이다.

심지어 NPC조차도 대장장이 장인은 드물 터인데!

‘그래, 대장장이 장인일 리는 없어. 하지만 대장장이 장인이 아니라면 뭣 때문에 스킬 분석에 실패하는 거지? 서, 설마?’

유페미나는 한 가지 가능성을 떠올렸다.

그리드가 평범한 대장장이가 아니라는 것.

딱 봐도 저렙 같은 행색을 하고 있는 저 멍청한 남자가, 어쩌면 자신과 같은 히든 직업 전직자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가 없었다.

‘믿고 싶지 않지만, 현재로서는 그렇게 생각하는 게 타당해. 그게 아니라면 내가 저 남자의 스킬을 분석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설명할 수가 없어.’

비단 대장장이뿐만 아니라, 현재 모든 제작 계열 직업의 랭커들은 갓 중급 기술을 익힌 수준이다.

심지어 이름난 NPC들조차도 대부분 고급 기술을 익히고 있을 뿐, 장인급 NPC는 지극히 드물었다.

이는 즉, 그리드가 평범한 유저라면 장인급 기술을 익히고 있는 게 결코 불가능하다는 뜻이 된다.

유페미나는 그리드가 평범한 대장장이가 아닌, 에픽 등급 이상의 대장장이 관련 직업 전직자라고 믿을 수밖에 없었다.

‘레어 직업도 아니야. 레어 직업의 스킬을 에픽 직업을 가진 내가 복제에 실패할 리가 없으니까. 최소 에픽 이상 직업 전직자야. 하지만 에픽 직업 전직자는 나를 제외하면 아그너스와 카츠뿐……. 설마, 저 남자는 유니크 직업 전직자라는 거야? 유니크 직업이 대체 언제 등장했던 거지?’

그야말로 최악의 전개다.

난이도를 알 수 없는 퀘스트를 너무 가벼운 마음으로 수락해 버린 게 문제다.

‘완전히 터무니없어! 설마 유니크 직업 전직자와 승부하게 될 줄이야!’

유페미나가 혼란에 빠졌다.

‘어떻게 해야 하지? 이대로는 아무것도 못하고 퀘스트에 실패해 버려!’

대장장이 기술을 복제할 수가 없으니 아이템 제작을 시작조차 할 수가 없다.

제작 방법이야 경험이 있으니 알고는 있으나, 대장장이 기술의 보조 없이 아이템을 제작해 봤자 졸작이 만들어질 게 뻔했다.

‘포기해야 돼? 또?’

<복수의 대행자>에 이어서 연달아 퀘스트를 포기해야 할 상황에 직면했다.

유페미나의 심정은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그녀가 이도저도 못하고 있는 것을 뒤늦게 발견한 그리드가 조소했다.

“뭐야? 완전히 얼어 있네? 아저씨 실력 보고 쫄았냐, 꼬맹이?”

“우우!”

울컥한 유페미나가 독기를 품었다.

‘저런 저급한 남자에게 아무것도 못하고 무참하게 패배할 수는 없어!’

일이 이렇게 된 이상 굳이 그리드가 아니라도 좋다.

상대가 누구라도 일단 대장장이라면, 그의 대장장이 기술을 복제해서 아이템 제작을 시도라도 해 봐야 한다.

‘하지만 대장장이를 어디서 구하지……? 아!’

불현 듯 좋은 생각을 떠올린 유페미나가 관중석의 라빗에게 눈짓했다.

마침 사태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눈치채고 있던 라빗이 그녀에게 다가왔다.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유페미나는 혹시라도 남이 들을세라 라빗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그리드에게는 스승이 있다고 했죠? 그 사람도 무대로 불러 주세요. 그리고 그리드가 단검을 제작하는 걸 도와도 된다고 말하세요.”

어처구니없는 요구다.

라빗의 미간이 좁혀졌다.

“어째서이죠? 의도를 이해할 수가 없군요.”

유페미나가 난처한 표정으로 설명했다.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자세히는 말할 수 없지만, 제 요구를 들어주세요. 제가 이길 수 있는 가능성을 높이기 위함이니까요.”

“흠…….”

적을 늘려야 이길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라빗은 납득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내키지 않아도 어쩌겠는가? 벌써 승부는 시작되었다. 구린내가 난다고 해서 이제 와 출전자를 바꾸겠다고 했다간 엄청난 비난을 살 것이다.

‘애초에 대체할 인력도 없다.’

결국 라빗으로서는 유페미나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해결해보도록 하지요.”

시 후, 라빗으로부터 전파받은 사회자가 관중석을 향해 소리쳤다.

“칸 님! 무대 위로 올라오시죠! 당신이 그리드에게 힘을 보태 주었으면 좋겠다는 에리나 양의 전언입니다!”

“뭐?”

그야말로 충격스러운 선포!

그리드의 얼굴이 일그러졌고, 관중석은 소란스러워졌다.

“뭐지? 에리나는 2 대 1로 겨룰 생각인건가?”

“아무래도 저 그리드라는 놈이 굉장히 허접한가 보군. 그러니까 시시했던 에리나가 그리드의 스승까지 무대로 부르는 거고.”

“사제지간이 힘을 합쳐야지만 그제야 비로소 제대로 된 승부가 성립된다고 말하고자 하는 건가?”

“우와, 진짜 엄청난 자신감이군. 멋진 여자야.”

착각한 관중들은 유페미나에게 더욱더 반하고 말았다.

자신감과 자비심을 겸비한 여왕이라도 받드는 양 그녀를 숭배하기에 이르렀다.

반면 자존심이 구겨진 그리드는 유페미나에게 더욱더 강한 적개심을 품게 되었다.

“저 빌어먹을 계집이 감히 내가 누군 줄 알고……!”

흥분하는 그리드에게 어느새 다가온 칸이 말했다.

“진정하게. 이는 우리에게 좋은 기회야. 그녀의 요구대로 힘을 합쳐서 함께 싸우도록 함세.”

그리드가 발끈했다.

“뭐라고요? 설마 영감님은 제가 저딴 계집에게 질 거라고 생각하는 겁니까?”

“그럴 리가 있는가? 자네가 승리하리라는 사실을 나는 누구보다도 확실히 믿고 있네. 자네는 다른 누구도 아닌 파그마의 후예가 아닌가?”

“근데 왜 저 계집의 요구를 따르겠다는 겁니까!”

“나는 대장장이로서 자네를 존경하고 있다네. 자네와 함께 일할 수 있는 영광을 얻고 싶어. 그리고 또한, 내 대장간을 지키는 일을 구경만 하기보다는 작게나마 일조하고 싶은 게 내 마음일세. 그리드, 부탁함세. 결코 자네의 발목을 붙잡지 않을 터이니, 내게 자네와 함께 일하는 영광과 스스로 대장간을 지킬 수 있는 기회를 주시게나.”

칸이 그렇게까지 말하자 그리드도 더는 어쩔 수가 없었다.

“…기왕 함께하게 된 이상 아주 제대로 본때를 보여 주죠. 많은 사람들 앞에서 저 계집의 잘난 콧대를 뭉개 주자고요.”

“음!”

두 사람이 의기투합했다. 특히 칸은 이처럼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리드와 함께 일할 수 있게 됐음이 꿈같이 기뻐서 의욕이 더욱 불타올랐다.

“자네가 실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도록 내 최선을 다해서 보조하겠네! 자, 명령을!”

반드시 대장간을 지키리라.

결사의 각오를 다진 칸이 그리드를 도와 일을 시작하는 순간, 유페미나의 스킬 관찰이 발동했다.

[스킬 <고급 대장장이 기술> Lv.2의 분석에 성공하였습니다.]

계획대로 됐다.

칸의 대장장이 기술을 순식간에 분석해 낸 유페미나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스킬 복제!”

[스킬 <고급 대장장이 기술> Lv.2의 복제에 성공하였습니다.]

[스킬 <고급 대장장이 기술> Lv.2를 1회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사용하기 전까지는 영구적으로 보유할 수 있습니다.]

애초에 대장장이 승부의 결과는 확률에 기댈 수밖에 없다.

설령 그리드가 장인급 대장장이 기술을 가졌다고 해도, 고급 대장장이 기술보다 무조건 높은 등급의 아이템을 제작하는 건 아니라는 뜻이다.

그리고 유페미나에게는 축복받은 대장장이 망치가 있었다.

‘아직 승산은 있어.’

유페미나가 제작에 돌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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