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파그마의 검무
“룰루랄라~”
콧노래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캡슐에서 빠져나오자마자 향한 화장실의 변기에 앉아서도.
“루룰룰룰루~”
부엌에서 찬밥에 물을 말아 먹을 때도.
“라라랄랄라~”
소파에 누워서 TV를 볼 때도.
콧노래는 멈추지 않았다. 실실거리는 웃음도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너무나도 기쁘니까!
우연히 얻게 된 히든 퀘스트 덕분에 전투 버프 스킬을 습득했고, 퀘스트를 무사히 클리어함으로써 연계 퀘스트로 향하는 길까지 열렸다. 덤으로 짧은 시간 만에 폭렙까지 해 버렸다.
“건달 몇 마리 잡고 21레벨이 되다니, 진짜로 대박이란 말이야? 아무래도 요즘 운이 너무 좋은데?”
히든 퀘스트라는 것은 결코 쉽게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1년 이상 Satisfy를 플레이한 나조차 이번에 처음 접해 봤을 정도다. 아마, 현재 Satisfy를 플레이하고 있는 수억 명의 인구 중 히든 퀘스트를 획득해 본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일 것이다.
파그마의 후예가 된 후로 많은 일들이 잘 풀리고 있다.
정말이지 복덩이 같은 직업이다.
“그간의 불행은 다 이유가 있었던 거야. 오늘날의 행운을 위해서 인내하는 세월을 보내라는 신의 계시였던 게지. 아하하핫핫~!”
대장장이 칸은 내게 과연 어떤 퀘스트를 줄까? 그리고 그 보상은?
아주 어쩌면 아까 잠시 사용해 봤던 그 엄청난 유니크 아이템들이 보상일 수도…….
만약 그렇다면!
“나는 억만장자가 될 수 있어! 크하하하하하!!”
다인슬레프와 발할라의 성능은 내가 설계한 ‘실패작’의 유니크 등급과 거의 비슷한 레벨이다.
그러면서도 사용 조건은 실패작과 다르게 매우 정상적이기 때문에 유저 간의 거래가 가능하고, 그 가치는 천문학적일 수밖에 없다.
‘실패작이 왜 실패작인지 다시금 일깨워 주는 아이템들이었어.’
알바티노라는 대장장이는 정말 대단하다. 전설의 대장장이 파그마에게 영감을 전해 줬을 정도라니…….
“그처럼 대단한 사람도 전설의 대장장이 장인은 못 됐건만, 대장장이의 대 자도 모르는 나는 퀘스트 하나 잘 만난 덕분에 곧바로 전설의 대장장이 장인으로 전직해 버리다니……. 거참, 세상은 요지경이라니까.”
우연히 얻게 된 레전드리 직업에 대해 재차 감사함을 느껴 본다.
“하으음.”
하품을 하다가 시계를 보니 캡슐에서 나온 지 2시간이 지나 있었다.
“Satisfy 세계의 시간으로는 8시간이 지났군. 슬슬 칸이 깨어났을까?”
의원의 말에 따르면, 칸의 건강은 알코올 중독과 과도한 스트레스로 인해서 심각한 수준으로 나쁘다고 한다.
하지만 퀘스트의 스토리대로 진행된다면 칸은 알코올 중독을 극복하고 건강을 되찾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좋을 터.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Satisfy에 접속했다.
“로그인.”
어두워지는 시야. 그리고 잠시 후 쏟아지는 따스한 빛과 함께 두 눈이 떠진다.
“…진료소였지.”
내가 마지막으로 로그아웃한 장소는 칸을 입원시킨 진료소였다.
나는 곧바로 사이먼이라는 이름의 의원을 찾아갔다.
“영감님 상태가 좀 어떻습니까?”
사이먼이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쇠약해진 상태로 급격히 혈압이 올라 위험하다고 생각했는데, 예상외로 빨리 호전되셨습니다. 퇴원하셔도 될 정도예요. 신께서 가호를 내려 주신 게 아닐지…….”
“그것참 다행이군요.”
“앞으로 술만 멀리하시면 더욱 건강해지실 수 있을 겁니다.”
나는 사이먼과 함께 칸의 병실로 향했다.
잠시 후, 나를 발견한 칸이 활짝 웃었다.
“오오, 왔는가. 내 자네에게 여러모로 큰 신세를 지는구먼.”
나도 미소로 화답해 주었다.
“힘든 처지에 서로 돕고 살아야죠. 자, 퇴원하시죠. 그리고 치료비는 영감님 앞으로 청구했으니까 계산하시고요.”
“…….”
뭐야, 저 영감 왜 대답을 안 해?
나는 왠지 모를 불쾌감을 느끼면서 경계했다.
그리고 칸은 청천벽력과 같은 말을 했다.
“미안하네만… 내가 지금 알거지일세…….”
이, 이럴 수가……!
마치 벼락을 맞은 듯한 충격이 뇌리를 관통한다.
“설마… 치료비를 지불 안 하겠단 말인가요?”
“지불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걸세. 알거지라서 돈이 없어.”
“그럼 어떡하려고요? 진료소도 외상 되나?”
나는 슬그머니 사이먼을 쳐다보았다. 그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계속해서 유지하고 있던 인자한 표정을 어느새 완전히 거두고 있었다. 그리고 지극히 사무적인 표정으로 말했다.
“외상은 불가합니다.”
“…….”
마음 같아서는 저 영감탱이를 그냥 버려두고 혼자 떠나고 싶다만, 그랬다가 일이 잘못돼서 퀘스트를 받지 못하면 낭패다.
“빌어먹을… 우라질! 내가 운이 좋기는 개뿔! 재물 운은 그야말로 최악이다!”
나는 피 같은 1골드를 칸의 치료비로 지불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 하루 동안의 지출액은 계산하기조차 두려울 지경이다.
칸의 대장간.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하겠네.”
칸은 대장간에 도착하자마자 내게 90도로 허리를 숙여 진심으로 감사함을 전했다.
다행히 양심은 있는 인간이다. 치료비 1골드를 떼어먹을 인물 같지는 않다.
“고맙네. 정말로 고마워. 내 자네 덕분에 다시금 희망이라는 것을 엿볼 수 있었네. 7대째 이어 온 가업을 내 손으로 내려놓는 무지한 짓을 되돌릴 수 있었으이. 내 대체 자네에게 어찌 보답해야 할지…….”
칸은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젊은이 못지않게 우람한 체격을 가진 노인네가 생김새와 달리 눈물도 참 많다.
“영감님…….”
나는 칸의 거칠거칠한 손을 꼭 쥐어 주었다.
보통 이럴 때 드라마 속 주인공들은 ‘그저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했을 뿐입니다. 어려운 이웃을 돕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닙니까? 예를 거두시죠, 어르신. 이러시면 제가 민망합니다. 저는 뭔가 보답을 바라고 도움을 드린 게 아닙니다.’라는 식의 비상식적이고 비현실적인 개소리를 지껄였을 터.
하지만 나는 드라마 속 주인공이 아니다! 그저 자연의 섭리를 따를 뿐인 세렝게티와는 비할 바 없이 잔혹하고 냉혹한 현대사회의 패배자일 뿐! 나는 보상을 원한다!
“진심으로 감사하다면 제게 뭔가 보답을 해 주세요. 어서요.”
“그래, 맞아. 보답은 당연히 해야지. 하나 너무나도 큰 은혜를 입다 보니, 나 같은 알거지가 대체 어떤 보답을 해 줄 수 있을는지 감도 못 잡겠네.”
지금 깨달은 건데, 이 양반 혹시 고단순가? 아까부터 알거지라는 단어를 아주 적재적소에 잘 사용한다?
정신 바짝 차려야겠다. 방심했다간 아무것도 못 챙기겠어.
“영감님, 아까 그 건달 놈들에게 그대로 이 대장간을 빼앗겼다면, 당신은 결국 마지막까지 술독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채 급기야 건강이 악화되어 죽음에 이르셨겠죠?”
“암, 그렇지.”
“영감님이 갑자기 혈압 올라서 쓰러졌을 때, 자칫 죽을 수도 있었는데 제가 의원에게 데려다 주고 치료비까지 지불해 준 덕분에 살 수 있으셨죠?”
“그렇고말고.”
“그러니까 전 영감님의 생명의 은인이 맞지요?”
“그치.”
나는 논리적으로 설파했다.
“생명의 은인에게는 목숨과도 같이 귀한 보물을 보답으로 주는 게 인지상정입니다!”
어느새 눈물을 멈춘 칸이 매우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었다.
“목숨과도 같이 귀한 보물이라……. 나 같은 알거지에게 그런 건 없다네. 이거 아쉬워서 어쩌지? 크응…….”
“그렇게 안타깝다는 표정 짓지 마세요. 저는 매우 착하기 때문에 영감님의 목숨과 같은 등급의 보물까지는 바라지 않습니다. 저기, 저거.”
나는 손가락으로 2층을 가리켰다.
“다인슬레프와 발할라를 주시면 제게는 너무나도 충분한 보답이 됩니다.”
흥분돼서 심장이 두근거린다.
정말로 저것들을 선물로 받을 수 있지는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감이 마음속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시나.
세상은 내 욕심대로 돌아가지 않는 법이지.
“저것은 우리 집안 대대로 내려온 가보 중의 가보. 내 목숨 따위와는 비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 보물일세. 내 자네에게 이 목숨을 바칠지언정 저것만은 내어 줄 수 없네.”
단호하게도 거부한다.
싫으면 싫은 거지, 이렇게까지 정색할 건 또 뭐람?
내가 당황한 기색을 보이자 미안했던 것인지, 민망하다는 듯이 헛기침을 두어 번 뱉은 칸이 설명했다.
“저 보물들은 나의 선조 알바티노께서 영혼을 바쳐 제작한 것일세. 그분의 영혼이 담긴 보물을 후손 된 도리로서 함부로 다룰 수는 없는 법. 나는 저 보물들을 죽는 그날까지 우리 가문의 가보로 지켜야만 할 의무가 있다네. 하지만 예외의 경우가 있지.”
칸이 알바티노의 후손이었다니? 피는 못 속이는 법일 터. 알코올 중독을 치료하고 나면 최소한 고급 대장장이의 실력은 발휘하게 되는 거 아닐까? 그보다 예외의 경우라고?
“예외의 경우라는 게 뭐죠?”
칸의 눈빛이 진지해졌다.
“내 자네에게 꼭 묻고 싶었던 게 있네. 자네, 어떻게 저 보물들을 사용할 수 있었던 거지? 그리고 그 가치를 어떻게 한눈에 알아본 것인가?”
그렇게 물은 후 칸은 설명을 이었다.
“다인슬레프와 발할라는 비운의 무구일세. 상상을 초월하는 성능을 지녔지만, 그 탓에 요구 조건이 너무 높아서 만들어지고 수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주인이 나타나질 않았지. 그 어떤 영웅도 저것들을 사용할 수 없었어. 지난 수백 년간 그저 저렇게 한쪽에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을 뿐이야. 그 탓에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져서 지금에 이르러서는 아무도 그 존재 자체를 알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지.”
칸과 나는 2층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다인슬레프와 발할라를 마주하고 섰다.
칸은 그것들을 경건한 손짓으로 어루만졌다.
“나는 다인슬레프와 발할라의 가치를 세상이 알아주길 원했어. 그래서 이처럼 눈에 띄는 장소에 진열해 놓았지. 하지만 극도로 뛰어난 작품을 완벽하게 이해하기 위해선, 그 제작자와 같은 수준의 안목을 갖춰야만 하는 법. 이렇게 진열해 놓은 지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가치를 이해하는 자는 단 한 명도 나타나질 않았네.”
칸이 나와 시선을 마주했다.
“그런데 자네가 나타난 게야.”
긴 이야기가 시작됐다.
“우리 가문에 내려오는 전설이 있다네. 지금으로부터 약 130년 전, 파그마라는 사내가 이곳을 찾아왔지. 그리고 가게 구석에 먼지가 쌓인 채 방치되어 있는 다인슬레프와 발할라를 발견하고 오열했다네. 그는 첫눈에 알아봤던 게야. 이 다인슬레프와 발할라의 가치를…….”
칸의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파그마는 다인슬레프와 발할라의 작품성에 경탄하며 예를 표했다네. 그리고 그 어떤 영웅도 다루지 못했던 다인슬레프와 혼연일체가 되어 검무를 선보였다고 해. 그 아름다움은 가히 파격적이었고, 기세는 하늘을 꿰뚫어 천둥번개를 불러일으켰다고 하지.”
나는 감탄했다.
이렇게 황당무계하면서도 흥미진진한 동화가 있다니!
내 두 눈에 가득 실린 흥미를 읽은 것일까?
칸은 이야기에 더욱더 몰입했다.
“그 검무를 눈앞에서 목격하고 혼을 빼앗긴 나의 조상께서는 파그마에게 무릎을 꿇고 청했다고 하네. 부디 이 다인슬레프와 발할라를 거두어 달라고. 그것이 나의 선조께서 바라 마지않는 일일 것이라고.”
“오오! 누구랑 다르게 통 한번 크시네! 그래서요? 그래서 파그마는 그걸 받았답니까?”
“아니지. 그때 파그마가 승낙했다면 다인슬레프와 발할라가 지금 이곳에 있을 리 없지. 파그마는 이렇게 답했다고 하네. ‘저 작품들에는 알바티노 님의 태양과도 같은 기상이 담겨 있습니다. 저 같은 소인배의 그릇에 담기에는 그 위세가 너무도 막강하여 감당할 수 없으니 거절하겠습니다.’ 파그마의 뜻이 너무나도 완고하여 꺾을 수 없었기에, 나의 조상께서는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네.”
파그마라는 양반, 진짜 답답하고 이해가 안 간다. 아니, 왜 공짜로 준다는 걸 마다하는 거야? 갖다 팔아도 얼만데.
‘아, 파그마는 끝도 없는 부자였나 보구나. 그래서 욕심이 없었던 건가?’
나름대로 해석해 보고 있는 사이에도 이야기는 계속됐다.
“파그마는 이곳을 떠나기 전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하네. ‘비록 지금은 저 무구를 다룰 수 있는 영웅이 없으나 훗날 때가 도래하면 수많은 영웅들이 출몰할 것이며, 그 영웅들은 모두 다 저 무구의 주인이 될 자격을 갖추고 있을 것입니다.’”
“…….”
파그마의 말을 해석할 수 있다. 그가 말한 훗날의 영웅들, 그건 우리 ‘유저’를 뜻한다.
유저들의 성장은 빠르며 무한하다. 다인슬레프와 발할라의 사용 조건을 충족시키는 랭커들이 머잖아 속속들이 등장하게 될 것이다.
‘놈들에게 빼앗기고 싶지 않아.’
나는 칸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이렇게까지 장황한 설명을 하신 이유가 뭡니까?”
칸은 피하지 않고 답했다.
“자네의 정체를 알고 싶어서일세.”
“파그마가 말한 영웅들 중 하나가 바로 내가 아닐까, 생각하시는 거군요?”
“그렇다네. 내가 예외의 경우가 있다고 말했지? 만약 자네가 파그마가 말한 영웅이라면, 나는 자네에게 다인슬레프와 발할라를 양도할 의향이 있다네.”
칸의 눈빛에는 강한 기대감이 실려 있었다.
알 수 있다.
그토록 고대하던 연계 퀘스트가 다가오고 있음을.
나는 진중하게 대답했다.
“파그마가 언급한 영웅들과 저는… 아마 다를 겁니다.”
칸의 눈빛에 실망의 기색이 스쳐 지나가는 게 보인다.
이 양반 성격 급하네.
어디, 좀 놀려 줘 볼까?
“굳이 비교하자면, 저는 영웅들을 언급한 파그마와 같은 존재죠.”
“자네와 파그마와 같다고? 그게 무슨 소리……. 아! 설마… 설마 자네는!!”
칸은 뒤늦게 깨달았다.
파그마가 언급했던 영웅들.
그들은 다인슬레프와 발할라를 사용할 수 있을지언정 첫눈에 다인슬레프와 발할라의 가치를 알아볼 수 있을까?
알바티노를 넘어서는 대장장이가 아닌 이상 그 가치를 이해하기란 어려운 법이니 불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 가치를 알아보았다.
그 말인 즉!
“그렇군! 그랬어! 자네는 바로 파그마의 후예였군!”
내 정체를 간파한 그에게 나는 당당히 요구했다.
“다인슬레프와 발할라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잘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뿐! 제게 그것들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시죠!”
“오오……!”
칸은 극도로 흥분했다.
당연히 흥분할 만하다.
130년 전 파그마와 마주했던 조상이 전설의 주역이 되었듯, 지금 이 순간 파그마의 후예와 마주한 자신 또한 전설의 주역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으니 말이다.
“알겠네! 자네가 정녕 파그마의 후예라면 내 자네에게 가보를 넘기도록 하겠네! 하지만 자네가 파그마의 후예라는 것을 내게 증명해 주어야지 않겠나?”
[퀘스트 <파그마의 후예>가 생성되었습니다.]
<파그마의 후예>
난이도:전직 퀘스트
당신은 파그마의 대장장이 기술을 확실히 전수받았다.
하지만 당신은 파그마가 누구인지 정확히 알고 있는가? 진심으로 그의 의지를 이었다고 자부할 수 있는가?
파그마란 누구인가! 단순히 실력 좋은 대장장이에 불과했다면, 그와 관련된 무수한 전설들이 대륙 전역에 산재되어 있지는 않을 것이다.
우선은, 하늘을 꿰뚫었다는 파그마의 검무를 단서로 시작하여 파그마의 전설들을 쫓아라. 궁극에 이르러서 모든 전설을 수집할 수만 있다면, 당신은 진정으로 파그마를 이해하고 그 의지를 계승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순간 새로운 전설로서 탄생하게 되리라.
*전직 퀘스트는 제한 시간이 없습니다.
*레전드리 직업의 전직 퀘스트를 수락할 경우, 두 번 다시는 직업을 변경하실 수 없습니다.
*레전드리 직업의 전직 퀘스트는 그 결과에 따라서 Satisfy의 세계관을 변형시킬 수 있을 정도의 파급력을 지녔습니다.
전직 퀘스트 클리어 조건:모든 연계 퀘스트를 성공적으로 완료하라.
전직 퀘스트 클리어 보상:알 수 없음.
*첫 번째 전직 퀘스트:<파그마의 검무>
파그마가 검무를 펼치면 기세가 위대하여 하늘이 꿰뚫릴 지경이었다고 전해진다. 이는 파그마의 기서에조차 서술되어 있지 않은 파그마의 검술과 관련된 단서일 것이다.
첫 번째 전직 퀘스트 클리어 조건:파그마의 검무를 익혀라.
첫 번째 전직 퀘스트 클리어 보상:다인슬레프(모작).
[퀘스트가 진행됩니다.]
파그마의 후예는 모든 장비를 조건 없이 장착할 수 있다는 부분에서부터 눈치챘어야 했는데, 파그마는 대장장이이기 이전에 뛰어난 전사가 아니었을까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그러면 뭐지? 파그마의 후예라는 직업 또한 대장장이로 국한할 수 없는 건가?’
전직 퀘스트를 모두 완료한 후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대장장이이면서 전사? 아니면 그 이상?
아직은 예상조차 할 수 없다.
지금, 아마도 어쩌면 새로운 전설이 태동하나 보다.
“좋았어! 당장에 파그마의 검무를 찾아 떠나자!”
힘찬 발걸음으로 대장간을 떠나려던 나는 문득 의문을 느꼈다.
‘어디로 가야 하는 건데? 그리고 지금 내 레벨은 21밖에 안 되는데 모험을 떠나는 건 대책 없는 짓 아닌가?’
전직 퀘스트의 궁극적인 목표는 대륙 전역에 흩어져 있는 파그마의 전설들을 모으는 것이다. 즉, 대륙 전역을 모험해야 한다는 뜻인데 그게 보통 레벨로 가능할까?
절대 불가능하다.
‘시간을 갖고 천천히 진행해야 하는 퀘스트였군. 마음 같아서야 당장에 퀘스트를 완료하고 싶다만… 어쩔 수 없나.’
김빠진다.
실망해서 주저앉는 나에게 칸이 술을 건넸다.
“밤도 깊었는데 한잔하지 않겠는가? 자네와 많은 대화를 나누고 싶다네. 파그마에 대해서, 대장장이 기술에 대해서, 그리고 이 대장간의 미래에 대해서 토론하며 의논하고 싶어.”
“저기요… 그런 건 됐고, 술 안 끊어요?”
“…큼큼.”
나는 칸의 손에서 술병을 빼앗았다. 그리고 대장간 곳곳에 숨겨져 있는 다른 술병들도 모조리 찾아 챙겼다.
“술은 모두 압수합니다.”
대체 언제쯤에야 완수하게 될지 감조차 잡히지 않는 전직 퀘스트!
언젠가 기껏 간신히 클리어했는데 의뢰인이 죽은 바람에 보상을 못 받는 불상사가 생기면 안 될 일!
내게는 칸이 반드시 술을 끊도록 만들어야 할 의무가 있다.
“오늘같이 기쁜 날엔 딱 한 병만…….”
“안 된다고요.”
단호하게 말한 나는 술병을 모조리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좋아, 이 술을 모조리 갖다 팔면 족히 2골드는 나오겠군.’
공돈이 생긴 것에 기뻐서 주먹을 불끈 말아 쥐고 속으로 쾌재를 부르는 그때, 대장간 문이 벌컥 열렸다.
그리고 호리호리한 사내 하나가 안으로 들어왔다.
얇은 은테 안경을 고쳐 쓰면서 나를 위아래로 훑어본 사내가 칸에게 시선을 돌리더니 정중하게 인사했다.
“칸 님이시죠?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메로 상단의 라빗이라고 합니다.”
메로 상단?
‘죽은 건달들의 임무를 대행할 놈인 건가? 그렇다고 하기엔 너무 신사적으로 생겼는데?’
나는 잠자코 추이를 지켜봤다.
긴장한 칸은 라빗이라는 사내를 경계하고 있었다.
온화한 표정을 지은 라빗이 입을 열었다.
“당신께서는 우리 메로 상단에게 600골드의 빚을 지고 있으시죠. 하지만 일설에 의하면 당신에게 빚을 변제할 능력이 없다고 하더군요.”
“그러니 어서 대장간을 넘기라 이건가?”
라빗이 빙그레 미소 지었다.
“저는 칸 님의 능력을 높이 사고 있기에 한 가지 기회를 드리고 싶습니다.”
“기회… 라고?”
“예. 칸 님의 대장장이 기술이 뛰어남은 익히 유명한 바, 그 기술을 사고 싶습니다. 어떻습니까? 이 대장간의 소유권은 우리 메로 상단이 가져가겠지만, 운영권은 당신께 양도해 드리겠습니다. 높은 봉급도 약속하지요.”
메로 상단이 유화책을 내밀었다.
대장간을 인수하되, 칸을 대장간에서 내쫓지 않고 바지사장 자리에 앉혀 주겠다는 거다.
“즉, 내게 메로 상단의 개가 되라 이거군?”
“하하, 난폭한 화법을 구사하시는군요.”
“거절한다면?”
라빗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거절하시겠다고요? 어째서죠? 전과 비할 바 없이 좋은 조건 아닙니까?”
“나는 일자리를 잃는 걸 두려워하는 게 아니다! 조상 대대로 지켜 온 이 대장간을 남에게 넘기고 싶지 않은 게지!”
“흐음… 그렇군요.”
안경을 고쳐 쓴 라빗이 턱에 손을 괴고 혼잣말했다.
“여태까지처럼 무력을 사용할까? 아니, 그런 야만적인 방식은 부끄러운 짓이야. 빚을 갚지 않는다고 고소해서 대장간을 압류시킬까? 아니, 여러 가지 절차를 밟았다가는 영업을 개시하기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칸을 설득해서 고집을 꺾는 게 가장 현명한데, 어떻게 설득을?”
중얼중얼.
자신의 생각을 말로써 표면에 드러내는 특이한 놈이다.
그가 곧 묘안을 떠올렸다.
“칸 님, 당신에게 대장간을 지킬 자격이 있는지 묻고 싶군요. 어떻습니까? 우리 상단에서 고용하는 대장장이와 진검 승부를 겨루시는 겁니다. 당신이 우리 측 대장장이보다 좋은 물건을 만들어서 승부에 이긴다면 대장간의 주인으로서 자격이 확실함을 인정하고 물러나 드리죠. 그리고 빚 또한 변제해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만약 당신이 승부에서 패배한다면 당신은 대장간의 주인으로서 자격이 없음을 스스로 인정하고 대장간을 우리에게 양도해야만 합니다. 어떤가요?”
얼핏 좋은 조건인 듯이 보이나, 당연히 거절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상대가 칸 이상의 실력을 가진 대장장이를 고용할 게 불 보듯 뻔한 일이기 때문이다.
현재 칸이 대장간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선, 메로 상단의 계략에 당해서 억울하게 빚더미에 앉았다는 사실을 영주에게 고하고 법적으로 도움을 청해야만 한다.
하지만 칸은 대체 무슨 믿는 구석이 있어서인지 라빗의 제안을 흔쾌히 수락했다.
“알았네!”
“오오, 잘 생각하셨습니다.”
기뻐하는 라빗에게 칸이 조건을 붙였다.
“하지만 현재의 나는 오랫동안 일을 멀리하고 술만 마신 탓에 예전의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네. 그래서 내 대신 내 후계자를 승부에 출전시키고 싶은데, 그래도 되겠는가?”
라빗의 표정이 굳어졌다.
“당신에게 후계자는 없다고 들었습니다만?”
“잘못 알고 있는 거겠지. 저기 있잖은가. 내 후계자.”
“호오… 그런가요? 당신의 후계자라고 보기에는 매우 무능력해 보입니다만. 고작 저런 자를 승부에 출전시키시겠다고요? 진심으로 하는 말씀입니까?”
“자네는 내가 농담 따먹기나 할 사람으로 보이는가?”
“뭐, 저희야 좋습니다. 오히려 감사할 지경이군요.”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칸은 손가락으로 왜 나를 가리키고 있는 거야?
[퀘스트 <메로 상단과의 아이템 제작 승부!>가 생성되었습니다.]
“…대체 뭔데?”
칸 저 영감탱이가 미쳤나! 당사자한테는 허락도 안 맡고 멋대로 퀘스트를 떠넘기다니! 뭐 저런 염치없는 인간이 다 있어?!
“아니, 이봐요, 칸… 응?”
분개해서 칸에게 따지려고 드는 순간 퀘스트 창이 떠올랐다.
<메로 상단과의 아이템 제작 승부!>
난이도:A
메로 상단은 칸에게 대장간을 건 진검 승부를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칸의 컨디션은 최악!
직접 출전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판단한 칸은 당신에게 승부를 맡겼습니다.
퀘스트 클리어 조건:메로 상단과의 승부에서 승리.
퀘스트 클리어 보상:윈스톤 내에서의 명성 +500. 윈스톤 주민들과의 호감도 상승. 상금 600골드.
퀘스트 실패 시:윈스톤 내에서의 명성 최소치로 하락.
칸의 대장간이 메로 상단에게로 넘어감.
[퀘스트를 수락하시겠습니까?]
방금 전까지 칸을 욕했던 거, 취소해야겠다.
퀘스트 성공 보상을 보라!
600골드! 무려 600골드다!
600골드면 현금으로 얼마야? 100골드당 12만 원이니까…
“치, 칠십이만 원!”
72만 원이면, 8일 내내 하루도 쉬지 않고 풀로 노가다 뛰어야만 비로소 얻을 수 있는 어마어마한 거액이 아닌가!
이 엄청난 성공 보상에 비해서 실패 시에 입는 손해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손해 보는 건 실질적으로 내가 아니라 칸이다.
세상에 이런 꿀 같은 퀘스트가 예고도 없이 찾아오는 날이 있을 줄이야!
“거부할 리가 있냐! 퀘스트를 수락한다!”
[퀘스트를 수락하였습니다.]
라빗이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호오? 제자분께서 승부를 피할 줄 알았건만? 의외로 자신감 넘치는 분이로군요.”
“의외는 뭐가 의외야? 나의 이 용맹하게 생긴 얼굴을 봐라. 딱 봐도 자신감 넘치게 생겼잖아?”
“후훗, 그 패기가 당신께 득이 될지 독이 될지 모르겠군요……. 좋습니다. 그러면 가까운 시일 내에 승부 장소와 날짜를 전달해 드리도록 하지요. 그럼 그날까지 안녕하시길.”
그렇게 라빗은 떠났고.
칸은 내게 다가와 무릎을 꿇었다.
“미안허이! 정말로 미안해! 내 자네에게 아무런 상의도 없이 멋대로 이런 짓을……. 하지만 어쩔 수 없었네! 나는 꼭 이 대장간을 지키고 싶었어!”
나는 칸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그를 꽉 끌어안았다.
“미안하다뇨? 당치도 않습니다. 우리 사이에 미안할 일이 어딨습니까? 제가 당신을 돕겠습니다. 그러니 걱정 붙들어 매세요.”
“아아… 고맙네……. 정말로 고마워! 세상에 자네 같은 천사가 또 있을까! 흑흑!”
칸의 눈물이 내 옷을 적신다.
마음 같아서는 세탁비를 요구하고 싶지만 그렇게까지 매정히 굴 필요는 없다고 본다.
칸은 내게 72만 원을 벌 수 있는 기회를 선사해 준 은인이니까.
“큭큭큭… 크하하하하!”
윈스톤이여! 축복의 땅이여! 참으로 사랑스럽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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