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템빨-10화 (2권) (6/1,7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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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 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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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역시 또 퀘스트

“이봐, 영감! 아직도 결정 안 했어? 파리만 날리는 이 건물 우리한테 어서 넘기라니까? 그러면 영감탱이 죽을 때까지 매일 술 사 먹을 돈 정도는 챙겨 준다고?”

갑자기 대장간에 난입한 사내들은 하나같이 인상이 험악하고 체격이 좋았다. 엄마 마음 행복 금융의 임직원 일동을 떠올리게 만드는 생김새였다.

그들이 한껏 고압적인 태도를 취하면서 대장장이 노인에게 한 장의 종이를 내밀었다.

‘저게 뭐지?’

힐끗, 그것을 훔쳐보자 대장간 건물과 상권을 메로 상단이라는 곳에 판매한다는 내용의 계약서였다.

나는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최근 귀찮은 사건들에 연달아 휘말린 경험을 토대로 분석해 보자면, 여기 멍청하게 서 있다가는 또 생뚱맞은 퀘스트에 엮일 가능성이 높다.’

그건 절대로 안 될 일이다.

지금 내게 시급한 일은 아이템을 제작해서 돈을 버는 것!

‘원치 않는 퀘스트를 겪으면서 낭비할 시간 따위 없지!’

스스로도 감탄이 나올 정도로 명석한 두뇌를 통해서 빠른 판단을 내린 나는 자리를 피하기 위해 슬금슬금 움직였다.

하지만 세상만사 내 뜻대로 되는 일이 과연 몇이나 될까?

나는 채 몇 걸음 옮기기도 전에 건달들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어이, 애송이 넌 뭐냐? 형님들 사업 내용을 멋대로 훔쳐보더니 이제는 쥐새끼처럼 빠져나가려 들어?”

가만히 있어도 험악한 인상을 가진 놈들이 도끼눈을 치뜨며 추궁하기 시작했다.

“네놈이 우리 계약서 내용을 훔쳐본 거 모를 줄 알았냐? 너, 어디서 보낸 염탐꾼이야? 스카너 상단에서 보냈냐?”

나는 왜 괜히 저 종이 쪼가리의 내용을 훔쳐봐서는 트집을 잡히게 된 걸까! 정말이지 이놈의 쓸데없는 호기심이 문제다.

‘그냥 뒤도 돌아보지 말고 자리를 피하면 됐을걸.’

나는 내 어깨를 억세게 붙잡고 있는 건달의 손을 뿌리치면서, ‘염탐꾼? 그게 무슨 헛소리냐? 그딴 거 아니니까, 괜한 걱정 말고 너희들은 너희들 볼일 봐라! 나는 내 갈 길 가련다!’라고 일갈해 준 뒤 이곳을 떠나고 싶었다.

하지만 힘든 일이다.

꿀꺽.

‘젠장.’

침이 마르고 식은땀이 흘렀다.

Satisfy를 접하고 얼마 안 됐던 저렙 시절.

마을의 인적 드문 뒷골목을 지나가다가, 무리 지어 담배를 뻐끔거리고 있던 10대 양아치 NPC들과 단지 눈을 마주쳤단 이유만으로 붙잡혀서 담배빵을 당하고 삥까지 뜯겼던 두려운 기억이 떠오른 탓일까? 아니면 이들이 엄마 마음 행복 금융의 임직원 일동과 닮은 탓일까!

나는 건달들에게 반사적으로 위축되고 있었다. 함부로 대처할 수가 없다.

‘처신 잘해야 돼.’

무법자 계열 NPC들은 난폭하며 법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자칫 놈들의 심기를 건드렸다간 폭행을 당하거나, 심할 경우 살해당할 수도 있다.

물론 치안대에 신고함으로써 보호받는 방법도 있지만, 언제나 법보다는 주먹이 가까운 법!

내가 이들보다 강하거나, 이들을 뿌리치고 치안대 건물까지 도망칠 수 있을 정도로 잽싸다면 또 모를까, 그게 불가능하다면 심기 건드리지 말고 살살 기는 편이 현명하다.

‘이놈들 생김새랑 기세로 봐서는 뒷골목 양아치 수준이 아니야. 성질 건드렸다간 담배빵 당하는 정도로 끝날 일이 아니라고.’

메로 상단은 에트날 왕국 북부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규모의 거대 상단이다. 그들이 삼류 양아치 따위에게 일을 맡길 리 없다. 이 건달들은 모두 한가락 하는 놈들일 것이다.

‘무장하고 있는 장비들을 보면 레벨이 최소 35씩은 될 거야.’

고작 건달 따위가 레벨을 35나 넘기다니!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을 해치고 괴롭혀야 저만큼 레벨을 올릴 수 있을까? 놈들이 저질러 온 악행을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더군다나 숫자는 다섯……. 그에 반해서 지금 내 레벨은 고작 3에 불과하다. 내가 레벨에 비해서 월등한 스탯을 보유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래 봤자 20레벨대에 불과하고, 나는 혼자야.’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나는 비무장 상태다. 혹시라도 싸움이 났다간 나만 손해다.

‘그래, 여기선 자존심 버리고 나긋나긋하게 행동하자.’

빠르게 생각을 정리한 나는 최대한 밝은 미소를 짓고 설명했다.

“저는 염탐꾼 따위가 아닙니다. 단지 지나가던 선량한 손님일 뿐이죠. 그러니까 형님들께서 굳이 경계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헤헷.”

고작 NPC 따위에게 비굴한 모습을 보여야 하다니! 더없는 치욕이지만 어쩌랴!

내 어깨를 붙잡고 있는 건달의 손이 약간 느슨해지는 게 느껴졌다.

“손님? 이 대장간의?”

“네.”

“호오? 이 대장간의 손님이라…….”

내 어깨를 붙잡고 있는 건달의 손에 다시금 강한 힘이 실렸다.

‘아오, 아파.’

고통 탓에 미간이 찌푸려졌다. 순간 욱해서 입 밖으로 욕설이 튀어나올 뻔도 했다. 하지만 나는 인내했다. 욕하기는커녕 미소를 유지하고자 최대한 노력했다.

왜냐? 괜히 인상 썼다가 얻어맞을 수도 있으니까! 웃는 얼굴에는 침 못 뱉는다는 옛말도 있지 않던가!

건달이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은 채 물었다.

“거리에는 메로 상단에서 운영하는 무기 상점이 아주 많아. 그런데 왜 굳이 이런 망한 대장간까지 찾아온 거지? 수상한데?”

“무기 상점은 많지만 대장간은 여기가 유일하더라고요. 저는 무기를 구입하려는 게 아니라 제작 관련 일로 대장간을 찾아야만 했거든요. 그래서 부득이하게 이곳을 찾아온 겁니다. 헤헤, 제가 윈스톤 초행이라 이곳이 망한 대장간인 줄도 몰랐었고요.”

당장에 주연급 배우로 데뷔해서 연말 시상식의 신인상 후보로 꼽혀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완벽한 연기력!

나의 비굴한 표정과 말투가 통했다.

계속해서 웃는 낯과 저자세로 설명하자, 의심을 거둔 건달들이 나를 순순히 풀어 준 것이다.

“어쩐지 괜히 때려 주고 싶게 생겼다 했더니만, 너도 대장장이 나부랭이였냐? 으음, 하긴. 너같이 딱 봐도 허약하고 허술해 보이는 애송이 녀석이 염탐꾼일 리도 없고……. 알았으니까 썩 꺼져라. 두 번 다시는 이곳 찾아올 생각하지 말고.”

괜히 때려 주고 싶게 생겼어? 허약하고 허술해 보여? 이런 거지발싸개 같은 새끼들이 지들 면상은 생각 못하고 남을 생긴 거 가지고 놀려?

머리끝까지 화가 치솟아 올랐다.

그래도 참자.

“헤헤, 믿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장 꺼지겠습니다.”

마지막까지 웃는 낯을 유지하는 데 성공한 나는 한시라도 빨리 이 저주받은 대장간을 떠나기 위해서 걸음을 재촉했다.

그때 뒤에서 대장장이 노인의 분노에 찬 음성이 들려왔다.

“그래… 더러운 것들과 오래 엮이어 봤자 득 될 일 하나 없지. 더러운 건 피하는 게 상책. 이제 나도 지쳤다.”

잠시 멈춰서 돌아보자, 노인은 시뻘겋게 충혈된 두 눈을 부릅뜬 채 이를 악물고 있었다. 쏟아지려는 피눈물을 애써 참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 계약서를 이리 내놔라. 네놈들 소원대로 서명하겠다.”

“어? 지, 진짜야?”

“오오! 잘 생각했어, 영감!”

“쓸데없이 오래도 버티더니만, 드디어 현명한 결단을 내리는군.”

노인의 발언에 건달들이 환호했다. 마치 축제라도 맞이한 듯한 모습이다.

건달 중 리더로 보이는 녀석이 노인에게 계약서와 인주를 건네주었다.

“지장이면 돼. 후딱 찍으쇼.”

“…….”

계약서와 마주한 노인.

잠시 망설이는가 싶더니, 이내 체념하고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들어 계약서에 지장을 찍는다.

그 순간, 노인의 두 눈에서 결국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아아! 7대째 이어진 가업이 내 대에서 이렇게 끝나 버리는구나! 죽어서 조상님들을 뵐 면목이 없다!”

슬피 한탄하는 노인의 모습이 처량하기 그지없다.

건달들은 그가 불쌍하지도 않은지 위로해 주기는커녕 조롱했다.

“어차피 손님도 뚝 끊겨서 진즉에 망해 버린 대장간이잖아? 그리고 노인장, 애초에 당신 자식도 없다며? 아들 하나 있던 거 이미 병으로 뒈져 버렸다더만? 후계자가 없어서 결국 당신이 죽고 나면 이 대장간의 맥은 자연히 끊길 거였어. 끝까지 지키려고 버틸 가치 따위, 처음부터 없었던 거야. 왜 멍청하게 버티다가 빚만 늘린 거지? 한심하다, 한심해.”

“놈! 내 아들을 그 더러운 입에 담지 마라!”

“이 빌어먹을 영감탱이가 어디서 큰 소리야? 또 저번처럼 혼쭐나고 싶어?!”

‘존슨’이라는 이름의 건달이 노인을 당장 때려죽일 듯한 기세로 위협했다.

그 꼴을 보고 있자니 화가 났다.

‘저 후레자식은 할아버지도 없나? 노인한테 저렇게 싸가지 없는 투로 말하는 것도 모자라 때리려고까지 하다니…….’

그때 ‘움’이라는 이름의 건달이 중간에 나섰다.

“이봐, 계약서에 지장도 찍었겠다, 오늘은 봐주자고.”

그러자 ‘프라가’라는 이름의 건달이 흥분한 망아지처럼 짜증을 내면서 날뛰었다.

“아니, 생각해 보니까 열 받잖아! 저 영감탱이 결국 이렇게 꼬랑지 내릴 거면서 왜 몇 달씩이나 오기를 부리면서 버틴 거냐고! 그간 우리가 얼마나 개고생을 했는지 생각해 봐!”

그에 ‘니엘’이라는 이름의 건달이 동조하고 나섰다.

“내 말이……. 쓰벌, 노인네 하나 제대로 다루지 못하냐고 위에서 얼마나 까대던지. 예정된 일정 안에 일을 해결 못한 탓에 받기로 했던 보수도 적어졌고 말이야.”

그들을 잠자코 지켜보고 있던 건달들의 리더, ‘베일’이 묘안을 떠올렸다는 듯이 서늘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군. 우리는 이 영감에게 손해를 보상받아야 돼.”

베일이 노인의 뺨을 툭툭 때리면서 말했다.

“이봐, 영감, 이 대장간 판매 금액 받게 되면 그중 절반은 빚 갚는 데 쓰고 나머지 절반은 우리한테 넘겨. 당신 탓에 우리가 입은 손해는 당신이 보상해 주는 게 당연한 일이잖아?”

“개소리 작작 해라!”

노인, 칸이 치를 떨며 언성을 높이자 정색한 베일이 살기를 내뿜었다.

“이봐, 먹여 살릴 처자식도 없고 머잖아 뒈질 당신이 큰돈 가지고 있을 필요 없잖아? 불쌍한 젊은이들 돕는 셈 치라고.”

“…….”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나도 그다지 노인 공경 안 하는 편이긴 하지만…….’

나는 버스나 지하철 등등의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노인들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 철면피다.

내가 피같이 번 돈을 지불한 만큼 좌석을 차지하는 권리쯤은 누려도 좋다고 생각하니까! 노인들이 아무리 부담스러운 시선을 팍팍 꽂아 넣어도 결코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래도 난 저 건달 새끼들처럼 노인을 모욕하고 조롱하지는 않는다.

정말로 화가 난다.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한테 젊은 새끼들이 저딴 식으로 대한다고 생각해 보면… 무지 빡치네.’

그래서?

저 건달들을 해치우고 노인을 돕고 싶냐고?

NO~ NO~ 나한테 그런 정의감 따위는 없다. 내가 왜 생면부지 남을 도와? 이득 없는 일에 끼어들 생각 따위 없다.

어린 시절, 누구라도 한 번쯤은 동경하게 되어 있는 슈퍼 히어로들조차도 나는 오히려 혐오했었다.

‘왜 내가 다쳐 가면서까지 남을 구하려는 거지? 병신인가?’

악당을 물리치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는 영웅들의 모습을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들의 무조건적인 희생을 보면, 그 어린 나이에도 손발이 오그라들고 눈살이 찌푸려졌다.

그래서 동네 아이들과 영웅 놀이를 할 때면 일부러 악당 역할을 도맡아 하기도 했다. 악당의 탈을 내세우면 그 어떤 놈이라도 마음껏 괴롭힐 수 있는 명분이 생겼기 때문에, 나는 영웅 역할을 담당한 친구들을 괴롭히면서 그 순간의 쾌락을 즐겼다.

놀이 막바지에 ‘꾸웩~’ 비명을 지르면서 죽은 척해 주는 센스를 선보이면, 놀이 내내 괴롭힌 것에 대한 원망을 사지 않아도 좋아서 참 편리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나라는 놈은 어린 시절부터 음흉했었군. 그래, 원래부터 나는 불의를 보고도 눈감는 데 익숙하잖아.’

그렇게 나는, 7대째 이어 왔다는 가업을 빼앗긴 것도 모자라 손주뻘 되는 놈들에게 수모까지 당하는 노인을 외면하고 걸음을 다시 옮겼다.

확실히, 일말의 아쉬움은 남는다.

‘상황이 이렇게 되어 버린 이상 당분간은 이 대장간에서 아이템 제작하는 건 무리겠네. 염병, 비싼 마차 값 지불하면서까지 마을을 옮긴 보람이 없잖아? 이참에 마을을 또 옮겨? 아니, 마차 값이 아까워서라도 그럴 순 없지. 이 대장간의 새로운 주인이 될 사람이 영업을 개시할 때까지 사냥하면서 레벨이라도 올리고 있자.’

가만?

‘하지만 사냥하려면 장비가 필요하잖아? 이런 썩을! 검이랑 갑옷 괜히 창고에다가 맡겨서 돈만 날렸네! 내 50실버!’

스트레스 장난 아니다. 허공에 날린 돈을 생각하자 위가 쿡쿡 쑤셔 온다.

‘내 인생은 왜 만날 이렇게 꼬이는 거지? 으윽… 위경련이 도진다. 일단 여기서 빨리 나가서 마음을 추슬러야겠어.’

근데 이상하게 발걸음이 떼어지질 않는다.

‘저 영감… 이대로 괜찮을까?’

아! 진짜! 쓰벌!

더러운 일을 목격한 탓에 기분만 찜찜하다.

아무리 내가 선행과 거리가 먼 인생을 꿈꾼다고는 하지만, 인간으로서의 기본 도리가 있지. 인륜을 저버린 저 쓰레기 같은 새끼들한테 둘러싸여 고통받는 노인을 이대로 외면하기엔 양심에 너무 큰 가책이 느껴진다.

‘아니, 하지만 마음 좀 편해지자고 위험을 무릅쓰고 남의 일에 나서자고? 그건 너무 어리석잖아?’

득 될 일 없는 일은 외면하는 편이 현명함을 나는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근데 왜 이렇게 망설여지는 거지?

‘내가 언제부터 오지랖이 넓었었다고? 나답지 않게 행동하지 말자. 언제나처럼 불의는 눈감으면 돼.’

그렇게 다시금 마음을 다잡고 대장간을 떠나려는 순간이었다.

[대장장이에게 악행을 저지르는 무법자들을 목격한 당신의 분노 수치가 최고치에 이르렀습니다.]

[퀘스트 <대장장이의 분노>가 생성되었습니다.]

<대장장이의 분노>

난이도:B

파그마의 후예로서 파그마의 기술은 물론이고 그 의지까지도 이어받은 당신! 당신은 파그마의 유지를 받들어 ‘널리 대장장이를 이롭게 하라’는 홍익대장장이 이념을 가지고 있다.

늙고 힘없는 대장장이를 억압하는 메로 상단과 그 하수인들을 당신은 결단코 용서할 수 없을 것이다.

메로 상단의 계략에 빠져 손님들을 잃고 빚쟁이 신분으로 전락한 대장장이 칸을 도와라!

퀘스트 클리어 조건:메로 상단의 하수인들을 해치우고 대장간 양도 계약서를 파기하라.

클리어 보상:대장장이 칸의 알코올 중독 증세가 호전. 대장장이 칸과의 호감도 최대치.

*칸은 본래 뛰어난 대장장이입니다. 하지만 메로 상단의 계략에 당해서 사업이 망하고 심한 스트레스를 받게 되자 알코올 의존증이 생기고 말았습니다. 그 탓에 현재는 무능력하게만 보이는 평범한 노인이 됐지만, 알코올 중독 증세가 호전된다면 필시 뛰어난 대장장이로서의 면모를 되찾을 것입니다. 그때는 당신의 정체를 알아보고 큰 도움을 줄 수도…….

퀘스트 수락 보상:스킬 <대장장이의 분노> 생성.

퀘스트 실패 시:며칠 후, 대장장이 칸이 화병으로 사망하면서 대장장이 칸과 관련된 모든 퀘스트가 영구히 소멸.

“어엉?”

홍익대장장이?

“홍익인간 패러디냐?”

전설의 대장장이 파그마는 설마 단군할아버지를 모티브로 만들어졌던 건가!

“…100일 동안 마늘과 쑥만 먹으면 진화할 수 있는 히든 직업들도 있는 건 아니겠지?”

아니, 지금 이딴 농담할 때가 아니다.

“이 상황에 퀘스트라니.”

역시나 내 예상이 맞았다.

망한 대장간과 사연 있어 보이는 대장장이. 그리고 갑작스럽게 난입한 건달 놈들은 새로운 퀘스트의 시작을 알리는 전조였던 것이다.

[퀘스트를 수락하시겠습니까?]

적의 숫자는 총 다섯. 레벨은 35 이상으로 추정.

반면 나는 혼자면서 레벨이 3에 불과하다. 그리고 검과 갑옷을 창고에 맡겨 놓은 바람에 비무장 상태.

퀘스트 거절할 거냐고? 아니.

“수락한다.”

내게 이 퀘스트를 거절할 이유는 없다.

비록 내 레벨이 3일지라도 스탯만으로 보면 20레벨 이상이다. 그리고 내겐 ‘전설적 대장장이의 인내심’이라는 스킬이 있다. 무려 1시간 동안이나 집중력과 체력, 그리고 방어력이 극도로 상승하는 어마어마한 스킬이다.

그뿐이랴? 생명력이 최소치가 될 경우 5초간 무적 상태가 되는 사기적인 패시브 스킬이 있으며.

“그리고 사실, 무기가 아예 없는 것도 아니지.”

나는 인벤토리를 열었다. 그리고 기념품으로 남겨 두었던 한 개의 화살을 꺼내 들었다.

<특급 야파 화살>

등급:에픽

공격력:35~42

대단한 실력과 잠재력을 지녔지만 경험과 명성은 턱없이 부족한 이름 모를 장인이 강철에 소량의 야파를 섞어 제작한 화살입니다.

강철과 야파의 합성 효과로 인해 극도로 상승한 관통력이 적의 방어력을 일부 무시합니다.

*일정한 확률로 적의 방어력 완전 무시.

무게:0.1

화살은 소모품이다. 하지만 그것은 활로 날렸을 때의 이야기!

“잡아 쥐고 단검처럼 사용하면 소모품이 아니게 되지!”

실제로 엄청난 짠돌이들은 표적에 꽂힌 화살을 다시 회수해서 재사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표적이 단단해서 화살이 많이 손상된 경우 외에는 대부분 재사용이 가능하다고 하는데, 나는 활을 쏴 본 경험이 없어서 모르고 있던 사실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화살이 너무 비싸게 팔린 게 이상해서 지나가는 활쟁이들을 붙잡고 물어봤었지. 덕분에 화살이 무조건적인 소모품이 아니란 사실을 알 수 있었고. 후훗, 정보는 곧 힘! 앞으로도 정보 수집을 소홀히 하지 말아야겠어.’

회심의 미소를 지은 나는 건달들의 무장 상태를 면밀히 살펴보았다.

놈들은 도끼나 대검, 철퇴 같은 위협적인 대형 무기를 지닌 반면 방어구는 가죽 갑옷이 전부였다.

‘하늘이 돕는군.’

놈들이 철갑옷이라도 무장하고 있었으면 또 모를까, 가죽 갑옷 따위를 몇 번 찌른다고 해서 이 특급 야파 화살이 크게 손상될 리 없다.

‘이 화살은 내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물건이다. 보통 화살과는 비할 수 없는 가치를 지녔어. 비록 공격력은 20레벨대 한 손 무기 정도에 지나지 않지만, 난 이 녀석을 믿어. 방어력 완전 무시라는 옵션만 펑펑 터져 준다면 부족한 공격력을 메울 수 있을 거야. 거기에 난 전사 시절에 쌓아 놓은 무수한 전투 경험이 있어.’

레벨보다 높은 스탯과 적당한 무기, 그리고 사기적인 스킬과 전사 시절에 습득한 전투 감각.

이 4가지 요소를 믿고 싸운다면 퀘스트를 클리어할 수 있는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다.

‘그래 봤자 매우 낮은 가능성이지만.’

성공할 가능성보다는 실패할 가능성이 훨씬 더 높은 퀘스트를 흔쾌히 수락한 이유가 뭐냐고? 그야 뻔하지.

첫째, 퀘스트 실패 시 얻게 되는 페널티가 없다. 대장장이 칸이라는 NPC가 죽음으로써 그와 관련된 퀘스트들도 영구히 소멸하게 된다지만, 그 퀘스트들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현재로서는 딱히 두려워할 일이 아니다.

둘째, 퀘스트를 수락하는 것만으로도 보상을 받을 수 있다.

[퀘스트를 수락하였습니다.]

[퀘스트 수락 보상으로 <대장장이의 분노> 스킬을 습득하셨습니다.]

퀘스트 수락 보상은 퀘스트 클리어 보상과 개념이 다르다. 말 그대로 퀘스트를 수락하는 것만으로 받을 수 있는 보상인데, 그것이 무려 스킬이라면? 감히 그 누가 퀘스트를 마다할까!

나는 곧바로 스킬창을 열어서 신규 스킬을 확인했다.

<대장장이의 분노>

Lv.1

20초 동안 모든 공격력을 10퍼센트, 공격 속도를 30퍼센트 상승시켜 줍니다.

스킬 마나 소모:50

스킬 재사용 대기 시간:60초

‘대, 대박이다.’

대장장이 등의 제작 관련 직업은 전투 관련 스킬을 배울 수 없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지금! 나는 대장장이인 주제에 단지 퀘스트를 수락했다는 이유만으로 전투 버프 스킬을 습득하게 됐다.

더군다나 그 성능이 가히 엄청났다.

‘어째… 전사 시절에 익히고 있던 전투 버프 스킬보다 지금 배운 게 훨씬 더 좋다?’

내가 전사 시절에 사용했던 전투 버프 스킬은 지속 시간 동안 공격력만 20퍼센트 올려 줬었으며, 스킬 재사용 대기 시간은 무려 3분이었다. 그런데 지금 배운 전투 버프 스킬은 공격력에다가 공격 속도까지 무려 30퍼센트나 올려 주면서 재사용 대기 시간도 1분밖에 되질 않는다.

‘이게 웬 횡재냐? 크큭……. 아, 혹시 이게 말로만 듣던 히든 퀘스트인가?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에는 퀘스트 등급이 너무 낮은데? 어쩌면 이거… 연계 퀘스트일 가능성이 높겠어. 대장장이 칸이 보유하고 있는 퀘스트라는 게 아마 연계 퀘스트일 거야. 이건 진짜 대박이다.’

대장장이 칸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 이상, 최선을 다해서 퀘스트를 클리어해야 할 의무가 생겼다.

‘마침 새로 생긴 스킬 덕분에 퀘스트를 클리어할 수 있는 가능성도 더 높아졌고……. 좋아.’

결정한 나는 건달들에게 다가갔다.

“뭐야, 저놈?”

내가 떠나지 않고 도리어 되돌아오자 의아함을 느낀 건달들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나는 놈들을 향해서 화살을 겨누었다. 그리고 내가 이 퀘스트를 수락한 가장 큰 이유를 놈들에게 설명해 주었다.

“너넨 선을 넘었어. 나도 한 싸가지 한다지만 너희들 정도는 아니다. 어른을 공경하지 못할지언정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야 하지 않겠냐? 이 가정교육 못 받아먹은 후레자식들아. 도저히 용서 못하겠다.”

지금 나는 정의의 사도를 흉내 내려는 게 아니다.

단지 저 건달 새끼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일 뿐!

“네놈들이 엄마 마음 행복 금융 임직원 일동과 닮았다는 사실을 원망해라.”

내가 한 발 더 다가가자, 미간을 잔뜩 좁힌 건달들이 무기를 뽑아 쥐기 시작했다.

“너 이 새끼! 방금 후레자식이라고 한 말, 설마 우리한테 지껄인 거냐? 엉? 아니, 저 새끼가 갑자기 뭘 잘못 먹었나? 야, 너! 뒈지고 싶어? 앙?!”

“저 새끼가 기껏 보내 줬더니 감사한 줄 모르고 깝치네…….”

역시 무법자 계열 NPC들은 무시무시하다.

내가 적의를 보이는 순간, 놈들은 곧바로 살의를 보내왔다. 무수한 악행을 저질러 온 놈들답게 살생에 거리낌이 없나 보다.

‘역시 만만찮은 놈들이야.’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놈들이 두렵다고 피할 이유가 없다.

이제 놈들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퀘스트를 클리어하기 위해서 쓰러뜨려야 할 대상이다.

전사 시절의 패기가 끓어오른다.

나는 건달들을 향해 조소를 날려 준 뒤, 마치 똥개를 부르듯이 손을 까딱였다.

“잔말 말고 덤벼, 조옷밥들아.”

그리고 건달들은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저런 미친 새끼가!”

“저 새끼 잡아! 잡아서 찍소리도 못 내게 밟아! 아니, 죽여! 그냥 죽여 버려!”

얼굴을 시뻘겋게 붉힌 건달들이 앞뒤 살피지 않고 우르르 달려든다.

상대는 총 다섯.

넓은 장소에서 싸웠다간 곧장 둘러싸여서 다굴 맞고 뒈질 터!

대장간 내의 지형을 미리 파악하고 있던 나는 2층으로 향하는 계단으로 올라갔다.

계단은 성인 남성 2명이 나란히 서서 오를 수 있을 정도의 폭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그 가운데에 버티고 서서 화살을 세워 보였다.

“눈깔 찔리고 싶은 놈부터 올라와라.”

내가 지형적 이점을 취하자 움찔하던 건달들이, 내 손에 들린 무기의 정체를 뒤늦게 확인하고 박장대소했다.

“뭐야, 그거. 화살이잖아?”

“푸하하하!! 설마 그깟 화살로 우리를 상대하겠다고? 활은 어디다 버려두고 온 거야! 엉? 엄마 치마폭에다가 흘려 놓고 왔냐, 애송아!”

“어차피 대장장이 나부랭이는 활을 못 쓰잖아. 그렇다고 다른 무기를 잘 사용하는 것도 아니고. 그러니까 화살이라도 휘둘러 보자 이거겠지. 진심으로 또라이 새끼군.”

나를 한껏 얕잡아 보는 건달들!

놈들 중에서도 성격이 가장 흉포한 것으로 추정되는 존슨이란 녀석이 성큼성큼 돌진해 왔다.

“대장장이 나부랭이 따위, 단칼에 베어 주마!”

멧돼지처럼 그저 무식하게 직선으로 덤벼드는 존슨과 마주한 나는 방금 막 배운 따끈따끈한 스킬을 사용했다.

“대장장이의 분노.”

[대장장이의 분노 효과가 발동합니다. 20초 동안 공격력과 공격 속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떠오르는 메시지와 함께 화면 상단에 ‘20세컨드’라는 문구가 떠올랐다. 스킬의 지속 시간을 알려 주는 알림창이다.

정상적으로 스킬이 시전되었음을 확인한 나는 잽싸게 팔을 뻗었다.

파팟!

존슨의 도끼가 내 몸에 채 닿기도 전!

내 화살이 놈의 가슴을 두 번 연속으로 꿰뚫었다.

대형 무기류는 높은 공격력과 내구성이라는 장점을 지녔지만, 공격 속도가 느리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반면 나는 무게가 거의 나가지 않는 화살을 사용하는 덕분에 공격 속도가 빨랐다. 거기에 대장장이 분노의 스킬까지 사용했으니, 나는 존슨을 속도로써 압도할 수 있었다.

[크리티컬!]

[특급 야파 화살의 옵션 효과가 발동하여 적의 방어력을 완전히 무시합니다.]

“커… 헉!”

단 두 번의 공격이었지만 충분한 위력을 발휘했다.

한 방은 크리티컬이 터졌고, 또 한 방은 특급 야파 화살의 옵션 효과가 발동한 덕분이다.

지금 이 순간, 천운이 나를 따르고 있음을 확신한다.

설마 화살이 이처럼 큰 타격을 입히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터!

“어, 어떻게……?”

가죽갑옷이 무력하게 꿰뚫리고 치명상을 입은 존슨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이내 피를 토하더니 계단에서 굴러떨어졌다.

놈이 회색빛으로 화해 버림과 동시에 여러 개의 메시지가 눈앞에 떠올랐다.

[윈스톤의 무법자 존슨을 해치웠습니다.]

[윈스톤 마을 내에서 명성이 60 상승하였습니다.]

[윈스톤의 무법자들과 적대 관계가 되었습니다.]

[윈스톤의 무법자들은 당신을 발견할 시 살해할 것입니다.]

[경험치 4,300을 획득하였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헐.”

내가 예상했던 눈앞 건달들의 레벨은 최소 35!

내 예상이 맞았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존슨이라는 놈 한 명을 해치운 것만으로 레벨이 무려 5개나 한 번에 올라 버렸다.

‘지금 내가 레벨 35 이상의 적을 단 두 방에 해치웠다고?’

스스로도 믿기질 않는다.

아무리 크리티컬이 터지고 특급 야파 화살이 적의 방어력을 완전히 무시했다지만, 단 두 방 만에 해치울 수 있을 줄이야!

‘이 건달 놈들, 겉모습과 다르게 생명력이 후달리나 본데?’

있을 법한 이야기다.

건달 놈들의 공격적인 성향을 고려해 보면, 모든 스탯이 근력에만 편향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좋아.’

퀘스트를 클리어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명확하게 엿보이기 시작한다.

“상태창.”

이름:그리드

레벨:8 (125/1,400)

직업:파그마의 후예

*아이템 제작 시 추가 옵션을 더하는 확률이 상승합니다.

*아이템 강화 확률이 상승합니다.

*모든 장비 아이템을 조건 없이 착용할 수 있습니다. 단, 아이템 등급에 따른 페널티가 발생합니다.

칭호:전설이 된 자

*상태 이상에 잘 걸리지 않습니다.

*생명력이 최소치일 때 잘 죽지 않습니다.

*쉽게 인정받습니다.

생명력:316/316 마나:87/87

근력:24 체력:22 민첩:16 지력:29

손재주:55 끈기:21

평정:14 불굴:16 위엄:14 통찰력:14

능력치 포인트:110

무게:842/1,000

5개의 레벨이 더 오른 지금, 내가 보유하고 있는 스탯 포인트는 무려 110개가 됐다.

‘지금이야말로 스탯을 분배할 타이밍이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근력과 민첩성에 모든 스탯을 투자했다.

[능력치 포인트 50개를 근력에 투자합니다. 맞습니까?]

“어.”

[한번 투자한 포인트는 되돌릴 수 없습니다. 이대로 진행합니까?]

“그래.”

[능력치 포인트 60개를 민첩성에 투자합니다. 맞습니까?]

“어.”

경고 문구를 넘김과 동시에 내 근력과 민첩성이 큰 폭으로 올랐다.

동료가 순식간에 당해 버리는 모습을 목격하고 놀란 건달들은 함부로 계단을 오르지 못하고 있었다.

“저, 저 자식 뭐야? 어떻게 존슨을 저렇게 쉽게 해치운 거지?”

“존슨 한심한 놈이 방심하다가 심장을 두 번이나 찔렸거든.”

“아니, 아무리 심장을 찔렸다지만 저놈의 무기는 고작 화살이라고? 그것도 활로 쏘는 게 아닌, 손으로 휘두르는 화살이 레더 아머를 뚫고 저렇게 큰 데미지를 입힌다고? 말도 안 돼.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저 대장장이 놈이 무기에 구애받지 않아도 될 정도로 엄청나게 강한가 보지. 애초에 대장장이가 아닐 거야. 놈은 전사다. 내가 확신해.”

“그게 무슨……. 생긴 것만 보면 코찔찔이같이 약해 보이는데.”

“겉모습만 보고 방심하지 마.”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면서도 신중하게 경계하는 건달들.

나는 대장장이의 분노 스킬 지속 시간이 10초밖에 남지 않았음을 확인하고 놈들을 도발했다.

“뭐 하냐? 안 덤비고. 설마 넷이서 나 하나한테 쫄은 건 아니겠지? 덩치 값은 해라, 이 삼류 양아치 새끼들아.”

“사, 삼류 양아치? 이 자식이 우리를 뭐로 보고!”

“기다려, 프라가!”

동료들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프라가라는 이름의 건달 놈은 곧바로 도발에 넘어와 덤벼들었다.

이번 놈의 무기는 초대형 철퇴!

그 공격 속도가, 앞서 도끼를 사용했던 존슨과 마찬가지로 매우 느리다.

콰자작!!

계단의 난간을 때려 부수면서 휘둘러진 철퇴가 내 안면으로 꽂혀 온다.

나는 최대한 정신을 집중해서 그것을 피한 뒤, 온 힘을 다해 화살을 앞으로 찔렀다.

파파팟!

상승한 민첩성은 곧바로 효과를 보였다.

이번에는 적이 한 번 공격할 동안 나는 화살을 무려 세 번이나 찌를 수 있었다.

“아야야야!!”

가슴을 세 번 찔린 프라가가 아파 죽겠다고 발악하며 뒤로 물러섰다.

‘이런 젠장.’

이번에는 크리티컬이 터지질 않았다. 그리고 특급 야파 화살의 옵션 효과도 발동하질 않았다.

그래서일까?

근력을 50이나 올린 덕분에 공격력이 전보다 크게 오른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프라가는 죽지 않고 목숨을 연명했다.

“이봐, 괜찮아?”

“끄윽… 죽을 정도는 아니야.”

“흠… 저 자식이 존슨을 단 두 방에 해치웠던 건 아무래도 우연이었던 것 같군. 공격력이 우리들 예상보다는 약한 듯하다.”

건달들이 내 전력을 조금씩 파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베일이 부하들에게 설명했다.

“지금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건 저놈의 공격 속도다. 대형 무기를 사용하는 우리보다 압도적으로 빠른 게 사실이니까 일대일 구도로 싸우는 건 확실히 불리해.”

“그러면 어떡해?”

“뭘 어떡해? 다구리 넣으면 간단하지.”

베일이 손짓하자 건달들이 단체로 계단 밑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계단에 홀로 남아 멀뚱멀뚱하게 서 있는 내게 콧방귀를 뀌면서 말했다.

“굳이 네놈을 잡으러 위로 올라가지 않겠다. 평생 거기 버티고 있을 순 없을 테니, 언젠간 그곳에서 내려와야겠지? 그때 잡아 죽여 주마.”

헉… 저렇게 똑똑할 수가.

‘저놈들이 몬스터였으면 붕어 새끼처럼 아무 생각 없이 덤볐을 텐데.’

지형적 이점을 취하고 싸운다는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 버렸다.

‘남은 적은 넷. 그중에 한 놈이 중상을 입었다지만 싸우지 못할 정도는 아니야. 제길… 아무리 생각해도 혼자서 넷을 한꺼번에 상대하는 건 너무 위험한데. 퀘스트 클리어는 무리인가?’

이번 퀘스트를 통해서 새로운 스킬을 습득했다는 사실 자체로 충분히 만족할 수 있다.

대장장이 칸으로부터 받게 될 연계 퀘스트의 내용과 보상이 매우 궁금하고 탐나지만, 굳이 위험을 무릅써야 할까?

‘무리하게 퀘스트를 진행하다가 개죽음을 당하느니 그냥 도망치는 게 현명하다. 하지만…….’

저 눈빛은 뭐란 말인가.

나는 한구석에 서 있는 대장장이 노인, 칸과 시선을 마주친 순간 움찔 놀라고 말았다.

나를 바라보는 노인의 눈빛에서부터 기대와 희망, 그리고 고마움을 느낀 탓이다.

저건 마치 영웅을 올려다보는 선망의 시선이다.

‘그런 눈빛 보내지 마. 나는 영웅 따위가 아니라고.’

나는 노인의 시선을 애써 무시했다. 그리고 로그아웃을 시도하려다가 멈췄다.

‘단지 수락한 것만으로도 새로운 스킬을 보상으로 준 퀘스트다. 이게 히든 퀘스트라는 사실은 100퍼센트 확실해. 저 노인네한테 받게 될 연계 퀘스트의 보상은 상상을 초월할 거야. 언제 또 찾아올지 모르는, 이처럼 희귀한 퀘스트를 끝까지 노력도 안 해 보고 포기하는 건 너무 어리석잖아?’

에라, 될 대로 되라지.

나는 계단을 내려갔다. 그리고 나를 기다리고 있던 건달들에게 곧바로 포위당해 버렸다.

‘내 방어력은 제로에 가깝다. 그리고 생명력도 낮아. 아마 놈들에게 공격을 허용한다면, 치명상이 아닐지라도 두세 방에 죽을 거야. 최대한 맞지 않고 싸우는 게 중요해. 신중하자, 신중해.’

최대한 정신을 집중한 나는, 대장장이 분노 스킬의 재사용 대기 시간이 끝났음을 확인하고 다시 스킬을 사용했다.

“대장장이의 분노.”

[대장장이의 분노 효과가 발동합니다. 20초 동안 공격력과 공격 속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좋아. 다음은.

“전설적 대장장이의 인내심.”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잉……?”

스킬이 발동하지 않는다?!

당황한 나는 황급히 스킬창을 열어 보았다. 그리고 전설적 대장장이의 인내심 스킬 설명을 자세하게 읽어 보았다.

<전설적 대장장이의 인내심>

1시간 동안 생명력과 방어력, 그리고 손재주가 200퍼센트 상승합니다.

*이 스킬은 마나를 소모하지 않습니다.

*이 스킬은 의도적으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지속적으로 인내하는 행위를 할 경우 자연 발동됩니다.

“…아, 나.”

이런 썩을? 조건부 발동 스킬이었어?

‘스킬 설명 좀 자세히 읽어 둘 것을……. 글씨 읽기 귀찮다고 대충 읽었다가 이게 무슨 낭패냐.’

믿고 있던 구석 중 하나가 사라진 탓에 혼란을 느끼는 사이, 거리를 좁혀 온 건달들이 무기를 혀로 날름거리며 위협해 왔다.

“어이, 뒈질 각오는 됐냐?”

“내 동료들을 죽이고 다치게 만든 네놈한테 지옥이 뭔지 보여 주마.”

엿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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