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템빨-8화 (4/1,794)

제7장

아이템 제작

[레벨이 1이 되었습니다. 마이너스 레벨의 페널티로 인하여 최소치로 고정되었던 능력치들이 정상적으로 복구됩니다.]

[파그마의 후예의 기본 능력치가 적용됩니다.]

가슴을 설레게 만드는 문구들이다.

두근두근!

빨리도 뛰는 심장이 어찌나 쿵쾅거리는지, 심장 소리가 귓전까지 들려올 지경이었다.

극도로 흥분한 나는 서둘러 상태창을 열어 보았다.

이름:그리드

레벨:1 (45/100)

직업:파그마의 후예

*아이템 제작 시 추가 옵션을 더하는 확률이 상승합니다.

*아이템 강화 확률이 상승합니다.

*모든 장비 아이템을 조건 없이 착용할 수 있습니다. 단, 아이템 등급에 따른 페널티가 발생합니다.

칭호:전설이 된 자

*상태 이상에 잘 걸리지 않습니다.

*생명력이 최소치일 때 잘 죽지 않습니다.

*쉽게 인정받습니다.

생명력:280/280 마나:75/75

근력:20+5 체력:18 민첩:12 지력:25

손재주:50 끈기:16

평정:10 불굴:11 위엄:10 통찰력:10

능력치 포인트:40

무게:3,035/820

*소지 무게 한도가 200퍼센트를 초과하여 이동속도가

100퍼센트 하락합니다.

몸이 무거워서 제대로 된 능력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상태 이상 ‘쇠약’에 걸릴 확률이 극도로 높아집니다.

“꿈?”

속을 것 같냐?

나는 당황하지 않았다. 현실이었다면 볼을 꼬집어 봤겠지만, 게임 속이니 침착하게 로그아웃을 했다.

잠시 후 눈을 뜨니 내 집, 내 방 안의 캡슐에 누워 있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잠들었던 거겠지.”

가수면 전환 모드를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다.

화장실에서 생리 현상을 해결하고 머리까지 감은 나는 냉수 한 잔을 원샷한 뒤 캡슐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로그인을 해 보았다.

꿈에서와 마찬가지로, 나는 대장간 안에 서 있었다.

“설마 꿈이 아니었던 건가……? 아니, 괜한 기대는 금물이야.”

나처럼 재수 없는 놈이 헛된 기대만 품어 봤자 마음의 상처만 늘어날 뿐임을 뼈저리게 알고 있다.

나는 감흥 없이 상태창을 열어 보았다. 그리고 그대로 굳어 버렸다.

“…좆나 대박.”

상태창의 내용에 변동은 없었다.

아무래도 꿈이 아니었던 것 같다.

심장이 다시금 빨리 뛴다.

“개쩌네…….”

1레벨 캐릭터의 기본 스탯은 근력이 6, 체력은 7, 민첩과 지력이 각각 4와 5다. 즉, 1레벨 캐릭터의 스탯 총합은 22라는 뜻.

하지만 대단하게도 파그마의 후예의 기본 스탯은 총합이 165였다. 여기에 내가 별도로 성장시킨 16개의 끈기 스탯과 불굴 스탯 1개를 더하면 무려 182다.

단순히 계산하면, 보통 유저들은 레벨 15 이상이 되어야 가질 수 있을 스탯을 1레벨부터 가졌단 뜻이니 그야말로 압도적인 혜택이라고 할 수 있겠다.

레전드리 직업의 위용을 실감할 수 있는 부분이다.

게다가…

‘기본 스탯도 스탯이지만…….’

나는 스탯 포인트 40개에 주목했다.

‘나한테 왜 스탯 포인트가 주어진 거지?’

스탯 포인트는 레벨을 하나 올릴 때마다 10개씩 오르기 때문에 1레벨은 스탯 포인트가 0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40개의 스탯 포인트가 주어진 이유에 대해서 나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여러 가지 경우가 떠올랐지만, 납득할 수 있는 가설은 하나밖에 없었다.

‘설마… 마이너스 레벨일지라도 레벨 업을 할 때마다 능력치 포인트를 얻을 수 있는 거였나?’

마이너스 3레벨이었던 나는 1레벨이 되기 위해서 4번의 레벨 업을 했다. 그리고 40개의 스탯 포인트가 들어온 상태니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눈을 비볐다가 다시 봐도 스탯 포인트 40개는 사라지지 않았다.

감격에 몸이 부들부들 떨리며 코끝이 찡해졌다.

‘내가 마이너스 레벨이 됐던 건 헛된 일이 아니었어!’

그간 내가 겪어 온 고생들에는 다 의미가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나는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운 없는 놈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큭! 크큭……!”

이 기쁨을 표현할 수 있는 언어가 세상에 존재할까?

나는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다.

“푸하하하하하하하핫~~~~!!!”

웃음소리는 기쁨의 크기와 비례했다. 나는 대장간이 떠나가라 큰 소리로 웃어 젖혔다. 나중엔 하도 웃어서 배가 당겨 올 지경이었지만 도무지 멈출 수가 없었다.

한참 후.

“헷! 캑캑! 푸힛……! 으으윽…….”

숨넘어가는 고통에 허덕이며 간신히 웃음을 그치는 내게 스미스가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웠다.

“호쾌하게 웃는 모습에서 영웅의 풍모가 엿보이는군! 자네같이 걸출한 인물을 애송이라 오인했던 어제까지의 나를 스스로도 이해할 수가 없을 지경일세. 내 안목이 한없이 부족했던 게야. 그저 미안하고 부끄러울 따름일세.”

미친놈처럼 웃었건만 영웅의 풍모라니.

스미스는 내게 절대적인 호의를 보이고 있었다.

마이너스 레벨에서 벗어나 친화력이 올라가고, 두 번의 퀘스트 성공을 통해서 높은 호감도를 쌓았으며, 바이란 마을 내에서 명성이 200 상승했다고는 하지만 나를 대하는 태도가 지나칠 정도로 과분했다.

‘쉽게 인정받는다는 칭호 특성이 있다고 해도 이건 너무…….’

스미스와 눈이 마주쳤다. 그러자 스미스가 살그머니 시선을 낮추는 게 아닌가? 마치 상전을 보는 듯한 태도!

‘설마 위엄 스탯의 효과? 이제 막 10이 되었을 뿐인데 벌써 효과가 나타나나?’

스미스의 수준이 그리 높지 않다는 점을 고려해 보면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일이다.

‘NPC의 레벨이나 직급이 높다면 또 모를까, 평범한 NPC에겐 위엄 스탯이 높지 않더라도 효과가 조금 정돈 반영되는 건가.’

그토록 꼬장꼬장하던 영감탱이가 하루사이 이리 변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었다. 통쾌함을 넘어 짜릿할 지경이다.

‘…우선은 진정하자. 진정하고 스탯 포인트를 어떻게 찍을지 부터 생각해 보자.’

잠시 고민하던 나는 곧 관뒀다.

깊이 생각해 보지 않고 즉흥적으로 행동하다가 엿 먹은 게 어디 하루 이틀 일인가?

특히 지금처럼 일이 잘 풀리는 상황일수록 신중해질 필요가 있다. 방심해서 섣부른 행동을 했다간 엉킨 실타래처럼 꼬여서 망하는 수가 있으니까.

‘1레벨에 이 정도 스탯이면 이미 충분히 과분하니까 스탯 포인트를 조급하게 분배할 이유도 없어.’

나는 지금 내게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 떠올려 보았다.

그야 단연…

“돈!!”

그래, 돈이다. 마차비를 벌어서 마을부터 이동해야 한다.

내가 갑자기 생뚱맞게 돈을 외치자 스미스가 움찔했다. 나는 그런 그에게 곧장 본론을 꺼냈다.

“처음 찾아왔을 때 말했었죠? 저는 최대한 많은 이윤이 남고 수요가 높은 아이템을 제작해서 판매하려고 합니다. 적합한 아이템으로 뭐가 있죠?”

판매 물품을 진열해 놓은 곳으로 향한 스미스가 화살 하나를 집어 왔다.

“이걸세.”

고작 화살?

화살은 장비 아이템과 달리 소모성 아이템이라 거래 가격이 쌀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이윤이 높더라도 판매 가격이 낮은 이상 판매해야 하는 물량이 많다는 뜻이다. 영 내키질 않는다.

내 표정을 읽은 스미스가 설명했다.

“이는 평범한 화살이 아니야. 강철에 소량의 야파를 섞음으로써 적의 방어력을 일부 무시하고 데미지를 입힐 수 있도록 특수 제작한 화살일세.”

방어력 일부 무시 효과!

궁사가 숲의 수호자 레이드에 참가할 경우 필수적으로 갖춰야 할 것이 화살일 것이다. 아니, 굳이 레이드가 아니더라도 회색 숲에 서식하는 골렘의 종류와 숫자가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수요가 굉장히 높을 터.

“야파라면…….”

내가 관심을 보이자, 스미스가 창고에서 연보라색의 광물을 꺼내왔다.

“산소 함유량이 적어 제련 과정이 용이하고, 철과의 상성이 놀라울 정도로 뛰어난 광물일세. 경도와 강도가 약하다는 단점이 있어서 야파만으로 무기를 만들기엔 부적합하지만, 강철에 혼합할 경우 신비하게도 내구력이 높아지고 관통력은 극대화되지. 각국의 돌격 기병들은 강철에 야파를 혼합한 창을 기본으로 무장하고 있을 정돌세.”

“비싸겠군요.”

“원석이 킬로그램당 2골드를 호가하네. 자네가 캐 온 철광석들이 함철량 높은 최상품이라고 해도 야파 앞에서는 싸구려 돌덩이에 불과하지.”

“더럽게 비싸네……. 그러면 야파 화살은 개당 막 몇십 실버씩 합니까?”

“아니, 그건 아닐세. 야파 화살을 만들 때 필요한 야파는 소량에 불과해. 야파 화살 하나의 제작 원가는 약 3실버. 하지만 판매 시세는 6실버로 고정되어 있어. 두 배가량의 이윤일세. 그리고 우리 마을에서 야파 화살만큼 수요 높은 아이템은 없다네. 어때, 제작법을 배워 보겠는가?”

감정 스킬을 통해서 이해도를 단번에 올릴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어제 오전까지의 나라면 냉큼 고개를 끄덕였을 거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아니다. 적합한 아이템을 추천받았으니 이제 제작법 따위는 스스로 익히면 된다.

“잠시 그 화살 좀 보여 주시죠.”

스미스는 순순히 화살을 건네주었다. 나는 곧바로 감정 스킬을 사용했다.

<야파 화살>

등급:노멀

공격력:20~26

강철에 소량의 야파를 섞어 제작한 화살입니다.

강철과 야파의 합성 효과로 인해 극도로 상승한

관통력이 적의 방어력을 일부 무시합니다.

무게:0.1

[숨겨진 기능이 존재하지 않는 아이템입니다.]

[야파 화살을 구성하고 있는 재료와 제작법, 제작자의 의도를 파악했습니다.]

[야파 화살에 대한 이해도가 89퍼센트가 되었습니다. 야파 화살을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

아쉽게도, 야파 화살은 감정만으론 이해도가 100퍼센트에 도달하지 못했다. 그러니 제작법도 추가되지 않는다.

‘고작 화살 따위가…….’

스미스는 말없이 화살을 노려보고 있는 나를 의아하게 쳐다보더니 다시금 물어보았다.

“야파 화살의 제작법을 배우지 않을 텐가?”

‘아이템 분해 스킬을 사용하면, 남은 11퍼센트의 이해도를 올릴 수 있을 법도 한데……. 하지만 화살 시세가 6실버랬지?’

함부로 분해했다가는 무려 6실버를 물어 줘야 할 것이다. 내겐 그만한 사치를 부릴 여유가 없다.

‘이참에 직접 제작법을 배워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야.’

결정한 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작법을 배우겠습니다.”

스미스가 반색했다.

“잘 생각했네. 우선은 광물의 제련 방법부터 배워 보도록 할까?”

스미스는 Satisfy의 모든 대장간에서 공통적으로 사용되는 구식 용광로의 구조부터 시작해서 제련 과정에 필요한 요소들과 과정의 원리를 상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전문 용어와 화학 용어들이 가끔씩 튀어나왔지만 혼란은 없었다.

Satisfy는 현실성을 추구하지만 기본적으론 게임이며, 더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기를 바라여 진입 장벽을 높지 않게 설정했다.

Satisfy에서 요하는 대장장이 지식은 Satisfy의 다른 전문 직종과 마찬가지로 일반인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거기다 나는 미리 예습까지 하고 온 상태다.

1일 2회 사망에 대한 페널티 탓에 게임에 접속하지 못하고 있을 때, 남는 시간을 이용해 대장장이에 대한 공략 글들을 찾아봤었다.

공략 글을 통해 접했던 제련 방법과 지금 스미스의 강의 내용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그러니 더 쉽게 와 닿는다.

예습과 복습의 효과를 실감한다.

중학생 시절 전교 1등을 도맡아 했던 친구에게 ‘예습과 복습’이 가장 중요하다는 공부 비법을 들어두었길 천만다행이다.

‘하지만 그 녀석도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나서는 만년 2등을 벗어날 수 없었지.’

‘수업 시간에만 집중해서 공부했다’고 주장하는 여학우의 벽을 넘지 못하고 고등학생 시절 내내 전교 2등 자리만 지킨 안타까운 녀석이었다.

2학년 2학기 기말고사의 결과가 발표된 날, 옥상에 올라 ‘왜 하늘은 저년과 나를 같은 시대에 태어나게 하셨나이까!’라고 절규하던 녀석의 피 토하는 심정을 나는 뼈저리게 이해할 수 있었다.

재능 없는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결코 따라잡을 수 없는 뛰어난 놈들이 주변에 허다했었으니까.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레전드리 직업을 얻었다. 이번에는 내가 뛰어난 놈일 차례다. 노력하는 만큼의 성과를 얻을 수 있으리라.

나는 웃었고, 스미스는 강의를 마쳤다.

“말로만 설명해 봐야 이해하기 어렵지? 내 직접 보여 주도록 하겠네.”

스미스는 용광로 상단에 다량의 철광석과 코크스, 석회석을 비율을 맞춰 층층이 쌓아 넣고 풀무질을 시작했다.

스미스의 얼굴과 단단한 상체가 땀에 흠뻑 젖어 갈 무렵, 하단에서부터 올라온 열풍이 용광로를 서서히 장악하면서 코크스가 연소하기 시작했다.

이때 발생한 환원 작용으로 인해 철광석이 쇳물로 서서히 녹아내렸다.

함께 연소된 석회석은 철과 분리된 불순물과 반응하여 슬래그(쇠똥)를 형성, 스미스는 풀무질과 슬래그를 걸러내는 작업에 번갈아 가며 열중했다.

그러자 용광로 하층의 틀에 차오른 쇳물에서 검은 이물질들이 점차 사라지고 서서히 주황빛을 띠었다.

저것이 그대로 응고되면 선철이 된다.

선철은 탄소를 많이 함유하고 있어 경도가 높고 취약한 성질이 있다. 무기를 만들기에 적합하지 못한 것이다.

그것을 무기 만들기에 적합한 강철로 만들기 위해선 탄소의 함유량을 줄여야 하는데, 그 과정을 제강 공정이라 한다.

묵묵히 작업에 열중하던 스미스가 물었다.

“제련이라는 게 무엇인지 이제는 확실히 알겠는가?”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은 스미스가 임무를 맡겼다.

“지금 본 대로 야파 원석을 제련해 보도록 하게. 야파 원석은 불순물이 적고 용융점이 낮아 철광석에 비하면 손이 덜 갈 걸세. 야파 원석과 코크스, 석회석의 비율은 12 대 2 대 4로 하게나.”

<광물 제련>

난이도:E

광물 제련은 제작의 기본이다. 대장장이를 꿈꾸는 당신에게 스미스가 이 일을 맡긴다.

퀘스트 클리어 조건:야파 원석의 제련에 성공.

퀘스트 보상:스미스와의 호감도 +30, 경험치 +80, 제련된 야파 300g.

퀘스트 실패 시:광물 제련을 처음부터 완벽하게 해내기란 쉽지 않다.

스미스는 당신이 실패하더라도 이해해 줄 것이다.

거절할 이유가 없다. 나는 냉큼 퀘스트를 수락했다.

그리고 주섬주섬 준비물을 챙기고 있노라니, 스미스가 노파심에 말을 덧붙였다.

“혹 실패하더라도 심려치 말게. 보기에 쉬워 보여도 어려운 일이니까.”

나는 재료들을 쌓아 용광로에 넣고 풀무에 발을 올렸다.

그 순간 반투명한 화살표가 떠오르면서 풀무의 한쪽 위치를 가리켰다.

‘직업 보정 효과?’

나는 화살표가 가리킨 위치에 정확히 발을 올렸다. 이후 화살표가 한쪽 방향을 가리켰다. 그 방향을 따라서 풀무질을 시작했다.

화살표가 깜빡였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면서 완급을 알려 준다.

그를 따른 끝에, 나는 십수 분 동안 힘들게 풀무질해서 간신히 용광로를 달궜던 스미스와 달리 채 5분도 안 되는 시간 만에 용광로를 달궈 낼 수 있었다.

이어 알림창이 떠올랐다.

[주변 온도가 급격하게 변화하여 감각이 개방됩니다. 30도. 31도. 31.5도. 32…….]

낯설지만 거부감 없는 음성이 뇌리에 울려 왔다.

-파그마의 후예는 온도의 변화에 민감합니다. 주변에 용광로가 있을 경우, 용광로 내부의 온도를 정확하게 가늠할 수 있습니다.

나는 용광로 위로 손을 가져가 보았다.

[700도. 720도. 740…….]

계속해서 상승하는 온도의 수치가 연속해서 갱신되는 알림창에 떠오른다.

‘1,000도.’

철광석은 대략 1,150도에서 1,250도의 온도에서 제련하는 게 적합하다고 한다. 하지만 야파는 950도에서 1,000도다.

나는 알림창이 1,000도를 가리키는 순간 더 이상 온도를 높이지 않고 유지하도록 노력했다.

서서히 녹아내리는 야파 쇳물. 철광석과 비교해 불순물 함량이 적어 처음부터 강한 주황빛을 띠었다.

나는 불순물을 걸러 내는 작업에 열중했다. 이때도 반투명한 화살표가 쇠파이프를 움직이는 방향을 적절히 알려 주었기 때문에 스미스보다 훨씬 빠르고 정확하게 해낼 수 있었다.

내가 잘하고 있는지 걱정하면서 확인하던 스미스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헉, 허억!!! 캑! 캑캑!”

어찌나 놀랐는지 숨을 힘껏 들이 삼킨 스미스가 일순 호흡 곤란에 빠져 괴로워했다.

잠시 후, 뒤늦게 간신히 안정을 찾은 스미스가 떨리는 음성으로 물어 왔다.

“제련 작업이 어찌 그리 능숙한 겐가?”

노인네 쓰러지는 건 아닐까 걱정될 정도로 안색이 창백하다.

“제련 경험이 있었던 겐가? 처음 해 보는 일이 아니었던 게야?”

“…처음 해 보는 일이 맞긴 한데…….”

스미스는 마치 귀신을 보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허… 정말이지 어처구니가 없군……. 이건 단지 재능이라고 표현할 수도 없는 수준이야. 경험도 없는 자가 나보다 월등히 실력이 뛰어나셨던 내 스승님보다 훌륭한 제련 솜씨를 가졌다니,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구먼그래. 자네는 파그마의 환생이라도 되는 겐가?”

파그마의 환생이라는 표현은 특별한 재능이 있는 대장장이에게 의례적으로 하는 칭찬이었다.

보통 칭찬도 아니고 최고의 극찬!

어떤 대장장이라도 파그마의 환생이란 말을 듣는다면 기뻐서 실실 쪼갤 것이다.

하지만 나는 되레 뜨끔했다.

‘환생은 아니지만 후예쯤은 됩니다.’

속으로 대꾸해 주는 사이, 순도 높은 야파 쇳물이 완성되었다.

[퀘스트 성공!]

스미스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정말 훌륭해. 자네는 참 대단한 친구야.”

[스미스와의 호감도가 30 상승하였습니다.]

[경험치가 80 상승하였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좋았어! 2렙이다!’

수월한 레벨 업이 내게 세상을 다 가진 것만 같은 기쁨을 안겨 주었다.

한때는 80레벨을 목전에 뒀던 나건만, 고작 2레벨 됐다고 이리 기뻐하게 될 줄이야.

이러다 두 자리 수 레벨이 되는 날엔 파티라도 열게 되는 건 아닐까 심히 걱정이 된다.

“제강하지 말고 이리 가져오게.”

스미스는 철을 녹인 쇳물에 야파 쇳물을 부으라 하였다. 비율은 12 대 1. 물론 야파가 1이다.

스미스는 섞은 쇳물을 화로에 넣고 다시 가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중간중간 섞어 주는 작업을 잊지 않았다.

섞는 작업을 6번째 했을 때였다.

스미스는 준비해 놓은 거대한 틀에 완성된 쇳물을 그대로 부어 버렸다.

틀 안에서 쇳물이 굳기까지 40분을 기다려야 한다.

그사이 스미스는, 한쪽에 남겨 두었던 야파 쇳물이 식어 굳은 걸 내게 건네주었다.

“자네가 처음으로 제련한 금속일세. 선물로 줄 테니 기념으로 간직하게나.”

[야파 3개를 획득하였습니다.]

야파 원석 1킬로그램당 야파 700그램을 얻을 수 있다. 야파 300그램이면 1골드 정도의 가치이니 E급 퀘스트 보상치고 상당했다.

‘스미스 이 양반 통이 크군.’

겪을수록 마음에 드는 사람이다.

그가 커다란 해머를 들고 오더니 쇳물을 부어 놓았던 틀을 힘껏 때려 부쉈다. 그러자 틀 속에서 굳은 쇳물이 두꺼운 철사의 모양으로 재탄생하여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스미스는 그 철사들을 주섬주섬 챙겨서 한쪽으로 가져갔다. 그곳에는 자그마한 촉틀이 놓여 있었다.

그는 촉틀 위에 철사를 올려놓고 망치를 두드려 모양을 잡았다. 그리고 숫돌을 이용해 날을 갈았다.

그 신중한 작업 끝에 폭이 좁고 끝은 뾰족한, 전형적인 관통형 화살촉이 완성되었다.

두꺼워 무게감이 있으면서도 끝은 굉장히 날카로워 갑옷도 무리 없이 꿰뚫을 위용을 가졌다.

미리 준비해 놓은 화살대에 풀칠한 깃을 조심스럽게 붙이고 화살촉을 고정시킴으로써 완성된 야파 화살.

일련의 작업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내게 새로운 알림창이 떠올랐다.

[야파 화살의 이해도가 100퍼센트가 되었습니다. 야파 화살을 완벽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야파 화살의 제작법을 익혔습니다.]

스미스가 내게 물었다.

“어떤가? 만들 수 있겠는가?”

“네.”

스미스가 너털웃음을 흘렸다.

“지체 않고 대답이라……. 엄청난 자신감이군. 어느 무기나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화살을 만들 때는 균형을 잘 맞춰야만 하네. 깃과 화살촉의 좌우 균형, 화살대와 화살촉의 무게 균형……. 균형이 조금이라도 어긋난 화살은 아무리 힘껏 쏘아도 멀리 날아가지 못하는 법이거든. 매우 섬세한 작업이 필요하단 뜻일세. 그럼에도 정말로 만들 수 있겠는가? 자네는 제작 과정을 단 한 번 지켜보았을 뿐인데?”

“만들 수 있습니다.”

“호오… 그럼 이번에도 믿어 보도록 하지.”

<야파 화살 만들기>

난이도:D

2개의 금속을 혼합하는 과정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화살을 제작할 때는 섬세함을 요한다. 이런 이유로 야파 화살은 경력 짧은 대장장이가 만들기 어렵다.

하지만 대장장이 스미스는 당신을 믿고 고가의 재료들을 맡긴다.

퀘스트 클리어 조건:야파 화살 100개 제작.

퀘스트 보상:스미스와의 호감도 MAX, 경험치 +300, 야파 화살 50개.

퀘스트 실패 시:스미스의 실망.

*의뢰인이 실망할 경우,

한동안 새로운 임무를 맡기지 않습니다.

스미스는 100개의 완성된 화살대와 야파 원석 1킬로그램을 지원해 주었다. 철광석은 내가 캐 온 것을 사용하라고 했다.

높은 호감도 덕분인지 엄청나게 베풀어 준다. 이전까지의 나였다면 헬렐레 하면서 모조리 넙죽 받았을 것이다.

“호의는 고맙지만 화살대 또한 제가 직접 제작할 겁니다.”

100개의 화살대를 돌려주자 스미스는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번거롭게 굳이 왜? 혹 부담을 느끼는 거라면 괜찮으니 거절치 말게나.”

쯧쯧, 그러니까 당신이 여직 초급 대장장이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거야, 이 양반아.

“당신은 앞으로 제가 화살을 제작할 때마다 화살대를 지원해 줄 생각입니까?”

“아니, 그러진 못하겠… 오호, 자네는 이 기회에 화살대 제작법부터 익히겠다 이거군?”

“바로 그겁니다. 가능하다면 화살대 말고 화살대 제작에 필요한 재료들을 지원해 주십쇼.”

튼튼한 나뭇가지와 품질 좋은 깃들을 주섬주섬 챙겨 준 스미스가 머쓱해했다.

“내가 제련에 중점을 두느라 정신이 팔려 화살촉 만드는 과정만 보여 주고 화살대 제작법은 알려 주지도 않았구먼. 지금이라도 화살대 제작법을 가르쳐 주겠네.”

초급 대장장이의 한계인지 엉성하기 짝이 없다.

나는 그에게 알아서 하겠다고 전한 뒤 인벤토리에서 두꺼운 책자를 꺼내 들었다. 제목은 ‘아이템 제작법 목록’이다.

책장을 펼치자 도끼, 곡괭이, 야파 화살, 실패작 총 4가지 제작법이 목차에 떠올랐다.

비록 지금은 소박하지만, 아이템 제작법 목록이 책을 가득 채우는 날이 언젠가 찾아오리라.

나는 야파 화살 제작법 페이지를 펼치고 찬찬히 읽어 보았다. 화살대를 만드는 방법이 그림과 글로써 상세하게 서술되어 있었다.

잠시 후, 읽고 또 읽으며 곱씹은 끝에 책을 덮었다.

‘좋아, 할 수 있어.’

처음으로 해 보는 아이템 제작인지라 다소 긴장된다. 아니, 긴장보다는 흥분에 가깝다.

나는 화살대부터 만들기 시작했다.

우선은 나뭇가지를 일자로 곧게 다듬었다. 심하게 휘어 있는 가지들은 불로 살짝 그을린 후 졸대를 이용해 똑바로 세우면 곧게 펴졌다.

그렇게 일자로 만든 가지들의 길이를 일정하게 자르고 윗부분에 오늬(활시위가 걸리는 U자 홈)를 팠다. 마무리로 풀칠한 깃을 붙여 날개를 만든다.

한 개, 두 개, 세 개.

완성되는 화살대의 숫자가 늘어날수록 숙련도가 쑥쑥 올라가면서 금방 능숙해졌다.

섬세한 작업을 가능케 해 주는 손재주 스탯과 아이템 제작에 특화된 직업의 보정 효과가 합해지면서 큰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다.

지켜보는 스미스가 감탄사를 연발했다.

“과연 누가 초보자의 솜씨로 볼꼬……. 완성되어 있는 화살대의 모습을 한 번 본 것만으로 제작법을 완벽히 간파했던 겐가? 가히 장인급의 눈썰미로군. 손재주 또한 뛰어나 정교함이 나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고.”

어렵지 않게 100개의 화살대를 완성할 수 있었던 나는 이어서 화살촉 제작에 들어갔다.

철광석과 야파 원석을 제련하고 비율을 맞춰 혼합한다. 그리고 완성된 쇳물을 틀에 붓는다. 이어 40분의 기다림 끝에 철사를 찍어 낸다.

나는 그 철사들을 물 담긴 양동이에 쏟아 넣었다.

치이이이익!!

달궈져 있던 철사들이 물속에서 요란한 비명을 지르며 급격히 식어 갔다.

담금질이다. 이 과정을 거치면 금속의 경도와 강도가 올라간다.

스미스가 처음으로 실망하는 반응을 보였다.

“자네, 담금질이 뭔지는 알고 하는 겐가?”

“아니깐 하죠. 각종 제작 공법에 대해서 나름 공부를 했었습니다. 난 예습하는 남자거든요.”

“으음, 대체 어디서 무슨 수로 공부했다는 건지 모르겠네만, 독학의 한계인가? 화살촉을 만드는데 담금질이라니? 자네가 잘 몰라서 그러나 본데, 담금질을 하게 되면 금속이 단단해지기야 하지만 취성이 높아져서 내구성이 떨어진다네. 화살이 적에게 꽂히는 순간 적을 꿰뚫기는커녕 적의 방어구에 오히려 화살촉이 부러지는 수가 있어.”

맞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특별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

“뜨임 작업도 할 겁니다.”

뜨임은 담금질한 금속을 다시 가열한 후 공기 중에 서서히 냉각시킴으로써 취성을 낮춰 주는 역할을 한다. 그사이에 단조 작업도 곁들어 주면 금상첨화다. 단조를 통해 철 자체를 강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작업들을 모두 소화하려면 엄청난 시간이 소요된다.

노가다를 싫어하는 내겐 썩 내키지 않는 일!

스미스도 나랑 비슷한 성격인 것인지 눈살을 찌푸렸다.

“밤새 화살만 만들고 있을 작정인가? 고작 화살 만드는 일에 왜 그리 시간을 할애하는지 모르겠군. 화살을 구입하는 사람들 본인조차도 화살을 일회성 소모품으로 여기건만, 자네는 고작 일회용품을 만드는 데 왜 그리 정성을 쏟는 겐가?”

이유?

내가 노가다를 감수하면서까지 사서 고생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나는 담금질 과정을 거친 철사들에 다시 열을 가한 뒤 망치질을 하면서 대답했다.

“조금이라도 좋게 만들어야 더 비싸게 팔리죠.”

“…….”

납득할 수밖에 없는 말을 들은 스미스는 더 이상 내 행동에 토를 달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담금질과 단조, 뜨임 작업을 반복하면서 심혈을 기울여 화살촉들을 제작해 나갔다.

시간이 대체 얼마나 흘렀을까?

피로감이 몰려왔지만, 괴롭게 느껴지던 대장간의 열기에는 오히려 익숙해졌다. 어색하던 망치질 실력이 꾸준히 나아졌다.

[끈기가 상승하였습니다.]

[손재주가 상승하였습니다.]

성장하는 스탯들은 정말이지 고생하는 보람을 느끼게 해 준다. 스탯을 올리기 위해서라면 그 어떤 노가다라도 기꺼이 해낼 것이다.

“…이런.”

빌어먹을! 생업이 노가단데 게임에서도 노가다라니! 그것도 즐겁게 하고 있다니!

“내가 노가다에 중독되는 날이 올 줄이야!”

이러다가 현실에서조차 노가다를 즐기게 되는 날이 오는 게 아닐까?

그랬다간 큰일이다. 인생 말년에 골다공증으로 고생할 수도 있으니깐!

따앙! 따앙!

나는 투덜거리면서도 작업에 열중했다. 내 망치질에 맞춰서 화살촉으로 탈바꿈해 가는 철사들의 모양이 망치질에 요령이 붙으며 더욱 정교해져 간다.

“후우. 후우.”

숨이 차올랐다. 팔이 저리고 피부가 뜨겁지만 인내할 수 있다. 떨어지는 체력에 비해 집중력은 오히려 더 상승한다.

[전설적 대장장이의 인내심 효과가 발동합니다. 1시간 동안 집중력과 체력, 방어력이 극도로 상승합니다.]

피로감이 몰려오던 육체에 갑자기 호랑이 기운이 솟구쳤다. 시리얼에 우유를 타 먹을 때야 비로소 느낄 수 있었던 그 기운!

“우오오오오옷!!”

나는 숫돌과 망치를 번갈아 사용하면서 화살촉 제작에 박차를 가했다.

극도로 상승한 집중력의 효과인지 화살촉의 완성도가 눈에 띄게 높아졌다. 내가 직접 만든 거라 콩깍지가 씌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일개 화살촉이 아름답게 보일 지경이다.

기쁘다. 불 앞에서 땀 뻘뻘 흘리게 만드는 이 고역이 내게 충만감을 안겨 주었다.

‘무엇인가를 만든다는 건 단순한 노가다가 아니었어. 오히려 예술에 가깝다.’

현실에서는 아무런 재능도 없어서 무슨 일을 하든지 곤혹을 치렀고 즐거움을 느낄 겨를이 없었다. 그저 뒤처지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발악해야만 했다.

하지만 이제는 내게도 재능이 생겼다. 비록 Satisfy 안에서만 발휘되는 재능이지만 그래도 충분히 벅찼다.

따앙! 따앙!

망치와의 혼연일체!

마치 내가 있어야 할 장소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는 듯한 안정감과 만족감이 마음을 사로잡는 그 순간!

[전설적 대장장이의 숨결이 제작 아이템의 효과를 증폭시킵니다.]

<전설적 대장장이의 숨결>

Lv.1

아이템 제작에 심혈을 기울일 경우, 제작 아이템에 파그마의 후예의 의지가 깃듭니다.

제작 아이템의 모든 능력치가 5퍼센트 상승합니다.

제작 아이템에 희박한 확률로 특별한 기능을

부여합니다.

그리고 완성된 100개의 화살!

<특급 야파 화살>

등급:에픽

공격력:35~42

대단한 실력과 잠재력을 지녔지만 경험과 명성은 턱없이 부족한 이름 모를 장인이 강철에 소량의 야파를 섞어 제작한 화살입니다.

강철과 야파의 합성 효과로 인해 극도로 상승한 관통력이 적의 방어력을 일부 무시합니다.

*일정한 확률로 적의 방어력 완전 무시.

무게:0.1

[에픽 아이템을 제작하여 모든 능력치가 +4 영구적으로 상승, 대륙 전역에 명성이 +80 상승합니다.]

[퀘스트 성공!]

[스미스와의 호감도가 최대치가 되었습니다.]

[경험치가 300 상승하였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퀘스트 성공과 렙업에 기뻐할 겨를이 없다.

“…에픽 등급 화살?”

화살은 무조건 노멀 등급이 아니었나?

‘에픽 화살이라니, 듣도 보도 못했다고.’

형용할 수 없는 허무감이 밀려왔다.

“소모품 따위가 에픽이라니……. 하필이면 화살 만들었을 때 에픽이 뜨다니…….”

검이나 갑옷 종류처럼 원가가 비싼 아이템이었다면 엄청난 이윤을 챙길 수 있었을 테지만, 화살은 원가 자체가 싸고 소모성이기 때문에 에픽이라도 큰 이윤을 남기기엔 한계가 있을 것이다.

나는 기껏 만들어 놓고도 찝찝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빌어먹을 영감탱이! 검이나 갑옷을 만들라고 할 것이지!’

급기야 야파 화살을 만들라고 추천한 스미스가 미워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내가 만든 화살을 보며 경탄하는 모습을 보자 점차 화가 풀렸다.

“견습 과정조차 거치지 않은 자네가 이토록 훌륭한 물건을 만들어 내다니! 그야말로 이상적인 화살일세! 거기에 예술성까지 있어, 고작 화살을 보면서 아름답다는 느낌을 받은 적은 내 생에 처음일세! 자네는 정녕 파그마의 환생임이 분명해! 아아! 이제는 놀라기도 지겨워! 자네는 대단해! 훌륭해! 위대해!”

나는 정신을 차렸다.

그래, 처음으로 만들어 본 아이템이 에픽이다. 실패하지 않은 게 어딘가? 이는 충분히 기뻐하고 감사해야 할 일이다.

에픽 등급 아이템을 제작한 대가로 모든 스탯이 무려 4씩이나 증가하고 명성도 올랐다.

또한 화살의 성능은 놀라울 따름이다. 현존하는 화살 중에 공격력이 40을 넘기는 화살이 과연 또 있을까?

게다가 특수 옵션까지 붙어 있다.

‘레벨 제한 20대의 한 손 무기보다 오히려 이 화살이 더 좋네.’

화살의 특성상 다른 장비 아이템에 비하면 이윤이 적은 게 사실이라 아쉬운 감이 크지만, 이 성능을 본다면 분명 제법 돈이 될 것이다.

‘계획했던 것보다 훨씬 더 대단한 물건이 나와 버려서 잠시 당황했어.’

내게는 전설적 대장장이 장인의 기술 스킬이 있다. 그 효과로 인해서 내가 제작하는 아이템은 모든 능력치가 10퍼센트 상승한다.

즉, 기본 야파 화살의 공격력은 20~26이지만, 내가 제작하는 야파 화살의 공격력은 22~28이 된다는 뜻이다.

그러니 구매자 입장에서는 일반 야파 화살보다 내가 만든 야파 화살을 구입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더 많은 돈을 지불하기는 꺼려할 것이 뻔했다.

왜냐? 고작 2의 공격력만 더 붙어 있는 화살을 돈 더 얹어 주고 사기엔 아까운 감이 있을 테니까!

그래서 나는 내 스킬의 효과를 극대화시킬 방법을 강구해 보았고, 그것이 담금질과 단조, 뜨임 작업을 하게 된 계기였다.

나는 능력치 10퍼센트 상승효과에다 정성 어린 제작 과정을 더하면 상당히 뛰어난 화살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했고, 기대대로의 결과가 나온다면 시세보다 확실히 비싼 값에 화살을 팔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리고 완성된 화살은 숨결 스킬의 발동으로 인해 내 기대보다 월등히 뛰어난 성능을 보유하게 됐다.

내가 만든 야파 화살은 기존의 야파 화살보다 공격력이 무려 15 이상 높으며 적의 방어력 완전 무시라는 옵션까지 붙어 버렸다.

고레벨 헤비 유저라면 내가 만든 야파 화살이 아무리 비싸더라도 구입하게 될 것이다. 그만한 가치가 있고도 남으니까.

“푸~~~~~~ 핫핫핫핫핫핫!!”

파그마의 후예가 기본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우월한 스탯과 스킬!

마이너스 레벨을 통해 획득한 40개의 스탯 보너스!

에픽 아이템 제작으로 상승한 스탯들!

그리고 비싼 값에 팔 수 있을 화살까지!

오늘이 내 생에 최고로 기쁜 날이라고 단언할 수 있음이다!!

“생일보다 더 좋아!”

어차피 내 생일을 기억하고 먼저 챙겨 주는 사람은 동생 하나밖에 없다. ‘생일인데 또 집에서 혼자 뒹굴거리고 있는 거야?’, ‘정말이지 오빤 친구도 없냐?’, ‘귀찮지만 어쩔 수 없지. 올해도 오빠 생일은 내가 챙겨 줘야겠네~’라는 말들을 꼭 덧붙이면서!

그렇게 수치스럽고 고독한 생일보다야 오늘이 수백 배 더 기쁜 게 당연했다.

미친 듯이 웃고 있노라니, 스미스가 내게 완성된 100개의 야파 화살을 전부 다 건네주며 말했다.

“원래는 절반만 주기로 약속했었네만… 이처럼 훌륭한 물건을 내가 빼앗는 건 못할 짓이겠지. 전부 다 자네가 챙기게나.”

호감도 최대치의 효과!

참으로 아름다운 호의가 아닌가?

가슴이 뭉클해졌다. 스미스가 사돈 팔촌의 당숙의 할아버지처럼 정겹게 보였기에 나는 그를 와락 껴안아 주었다.

“내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으니 복 받을 겁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평생 당신을 잊지 않겠습니다!”

내 품에 안긴 스미스가 우락부락한 몸집에 어울리지 않게 눈물을 훌쩍였다.

“크응, 벌써 떠나려는 겐가? 아쉽구먼.”

“인연이 닿는다면 금방 또다시 만날 수 있겠죠. 너무 서운해 마십쇼.”

“자네가 떠나지 않았으면 하네…….”

얼굴에 홍조를 띄운 채 그윽한 눈빛을 보내오는 스미스.

암컷을 유혹하기 위해 화려한 꽁지깃을 펼치는 수컷 공작새처럼, 양손에 망치와 집게를 들고 단단한 상체의 근육을 꿈틀거리며 나를 유혹해 온다.

이 양반, 홀아비 냄새가 진동한다 싶더니 독신으로 지낸 지 오래됐나 보다. 많이 외로운 상태에서 나와 호감도가 최대가 되자 게이가 되어 버렸고……?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게이였을 수도.

설마 하면서도 오만 정이 떨어진다. 정색한 나는 곧장 등을 돌렸다.

“그럼 이만.”

100개의 에픽 화살을 단단히 챙긴 나는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이동속도 100퍼센트 감소 효과 탓에 마음과 달리 대장간에서 빨리 떠날 수가 없었다.

엉금엉금 걷는 내게 바짝 다가온 스미스가 뒤로부터 와락 껴안아 왔다.

“자네 또한 나와의 이별이 아쉬워 발길이 떨어지지 않나 보구먼! 나를 생각하는 자네의 그 뜨거운 마음! 애틋한 미련! 관에 들어가는 그날까지 잊지 않겠네! 아니, 관 속에서도 내 그대만을 생각할 게야!”

“이런 빌어먹을 영감탱이가! 그 끔찍한 말 당장 거두쇼!”

도란 때도 그렇고, 소지 한도 무게를 초과한 탓에 자꾸만 오해를 산다.

간신히 스미스를 떨쳐 낸 나는 화살을 팔고 마을을 이동하는 즉시 창고부터 찾아야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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