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템빨-7화 (3/1,794)

제6장

대장장이 수련

내 수중에 있는 돈은 3골드 11실버.

이 금액으로 아이템을 제작하고 사람들한테 판매하기를 반복해서 마차 값을 벌어야 한다.

재력만 받쳐 준다면 현질을 해서 푸른 오리하르콘부터 산 다음 ‘실패작’을 만들고 봤겠지만, 빚쟁이인 내게 돈을 구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와 같다.

“어?”

대장간에 발을 들이는 순간이었다.

[‘대장장이 장인의 기술’ 스킬 마스터 효과가 발동합니다. 중급 이상의 대장장이 기술 스킬을 익힌 대장장이 NPC가 당신을 알아보고 호의적으로 대할 것입니다.]

[‘파그마의 후예’ 직업 효과가 발동합니다. 고급 대장장이 기술 스킬을 익힌 대장장이 NPC가 당신을 알아보고 경배할 것입니다.]

이런 숨겨진 기능이 있었다니?

설명대로라면 대장장이로부터 원하는 제작법을 쉽게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쩌네.”

이 파그마의 후예라는 직업, 겪으면 겪을수록 마음에 드는 부분이 생긴다. 최초에는 단지 생산직이라는 이유만으로 싫어했던 내가 한심하게 느껴질 지경이다. 과연 레전드리 직업이다.

기쁜 마음으로 대장간에 들어선 나는 화로 앞에서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대장장이를 발견하고 말했다.

“이윤이 제일 많이 남고 수요가 높은 아이템을 제작해서 판매하려 하는데, 그런 아이템으로 뭐가 있겠소? 추천 좀 해 주시오.”

기고만장한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바로 내가 대장장이 장인 기술을 마스터한 파그마의 후예다. 내게 호의를 보이고, 숭배하도록 해라. 그리고 적합한 제작법을 넘겨라!’

한데 기대와 다른 전개가 발생했다.

대장장이가 나를 경배하기는커녕 호의조차 보이지 않고 시선조차 돌리지 않으며 쌀쌀맞게 대하는 게 아닌가?

“흥, 애송이 주제에 버르장머리까지 없군. 너처럼 무례하고 무능력한 놈을 상종할 생각은 없으니 썩 꺼져라.”

“……?”

이는 마치 1레벨짜리 유저를 대하는 듯한 지극히 평범한 NPC의 태도다.

‘나를 못 알아본다?’

중급, 혹은 고급 이상의 대장장이라면 나를 알아봐야만 한다. 하지만 이곳의 대장장이는 나를 알아보기는커녕 홀대를 하고 있다.

이는 이곳의 대장장이가 중급 대장장이 기술조차 익히지 못한, 하급 대장장이라는 뜻이 될 터.

‘아, 나. 하필이면 허접한 놈을 만나네.’

다른 대장간으로 가고 싶지만 이 마을에 대장간은 이곳이 유일하다.

대장간에 입장하는 순간 떠오른 알림창을 보고서 일이 쉽게 풀리리라 기대했건만, 헛된 기대였다.

‘내가 얼마나 재수 없는 놈인지 잠시 망각하고 있었어. 빌어먹을.’

어쩔 수 없다. 나는 급히 태도를 바꾸고 대장장이의 기분을 풀어 주기 위해서 공손히 말했다.

“어르신께서 작업에 너무 열중하고 계시기에, 인사를 건넸다간 자칫 집중력을 흐트러트릴까 염려되어 다짜고짜 용건부터 꺼냈던 것입니다. 혹시 저의 호의가 무례로 받아들여지셨습니까? 그렇다면 용서해 주십쇼.”

“허, 거참. 괴상한 예의범절을 익히고 있는 놈이로군.”

대장장이는 어처구니없어하면서도 흥미가 생긴다는 듯이 눈길을 주었다.

나는 그에게 최대한 예의 바르게 보이기 위해서 서비스직에 종사하는 사람처럼 배꼽 인사를 올렸다.

“그리드라고 합니다. 아이템 제작법을 배우고 싶습니다.”

대장장이가 콧방귀 뀌었다.

“흥, 제작법은 아무나 배울 수 있는 줄 아느냐? 너 같은 애송이는 장작 때는 법부터 배워야 해. 아니, 그나마도 감지덕지지. 나로부터 진심으로 제작법을 배우고 싶다면 뒤뜰로 나가서 우선 장작부터 패 와. 일을 시켜 주는 것 자체를 감사하게 생각하면서.”

“…고작 하급 대장장이 주제에 꼬장꼬장하기는.”

“응? 뭐라고 했냐?”

“아뇨?”

지금 아쉬운 사람은 나다. 이 마을에서 내가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현재로서 이 꼬장꼬장한 대장장이뿐이다. 이자에게마저 쫓겨나서 제작법을 익히지 못하게 되면, 나는 마차 값을 벌 때까지 식당 허드렛일이나 밭일 따위를 하면서 푼돈을 모아야 했다.

“장작을 패 오겠습니다. 얼마나 패 오면 되겠습니까?”

대장장이가 낡은 도끼를 던져 주며 말했다.

“될 수 있는 한 많이.”

<장작 패기>

난이도:E

대장장이 스미스가 당신을 가늠해 보기 위해서 장작 패기 심부름을 시켰습니다. 이 일을 잘 끝마칠 수 있다면 스미스가 당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은 나아질 것입니다.

퀘스트 클리어 조건 : 장작 500개 패기.

퀘스트 보상 : 스미스와의 호감도 +10, 경험치 +10, 20브론.

퀘스트 실패 시 : 스미스와의 호감도 -10.

‘와, 이게 대체 얼마 만에 보는 정상적인 퀘스트 창이냐.’

아슈르 놈의 퀘스트를 시작하고 나서부터 S급이나 SS급같이 터무니없는 퀘스트만 받아 오다가 평범한 퀘스트를 받게 되니 마음이 정화되는 기분이다.

‘다음 레벨 업까지 필요한 경험치는 20……. 이 퀘스트 한 번이면 경험치가 무려 절반이나 오른다.’

마이너스 1레벨일 때나 3레벨인 지금이나 레벨 업 필요 경험치에는 변화가 없었다. 마이너스 레벨은 필요 경험치가 공통적으로 20으로 정해져 있는 듯하다. 즉, 마이너스 레벨일 때는 이런 잡다한 퀘스트만 하더라도 금방 레벨을 올릴 수 있다는 뜻이다.

‘우선은 마이너스 레벨에서부터 탈출하는 거야.’

긍정적으로 생각한 나는 도끼를 들고 뒤뜰로 향했다. 그리고 한쪽에 잔뜩 쌓여 있는 나무들을 확인한 뒤, 이어서 손에 든 도끼를 살펴보았다.

무진장 낡은 도끼다. 이런 낡은 도끼로 과연 장작을 팰 수 있을까?

‘오히려 나무에 도끼가 박살 나진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돈데……. 혹시 도끼 망가뜨렸다가 덤터기 쓸 수도 있으니까 조심을…….’

나는 낡은 도끼에 ‘전설적 대장장이의 감정’ 스킬을 사용해 보았다.

“감정.”

[전설이 된 대장장이가 범인을 초월하는 뛰어난 안목으로 물품을 감정합니다. 대상 물품에 숨겨진 기능이 존재할 경우 숨겨진 기능을 발견합니다.]

<스미스의 낡은 도끼>

등급:노멀

내구력 6/6 공격력 4~7

대장장이 스미스가 젊어서부터 사용해 온 도끼입니다. 만들어지고 오랜 세월이 지나 매우 낡았지만, 날만큼은 잘 벼려져 있습니다. 내구력이 약하기 때문에 함부로 다루다간

금방 망가질 우려가 있습니다.

무게:40

[숨겨진 기능이 존재하지 않는 아이템입니다.]

많이 낡았다는 점을 제외하면 지극히 평범한 도끼였다. 숨겨진 기능이 없다는 문구를 보자 실망은커녕 안도감이 들었다. 최근 너무 많은 사건 사고를 겪은 바람에 평범함이 그리웠다.

[스미스의 낡은 도끼를 구성하고 있는 재료와 제작법, 제작자의 의도를 파악했습니다.]

[스미스의 낡은 도끼에 대한 이해도가 100퍼센트가 되었습니다. 스미스의 낡은 도끼를 완벽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도끼 제작법을 익혔습니다.]

패시브 스킬, 아이템 이해도의 영향으로 새로운 알림창들이 떠올랐다.

“이해도가 한 번에 100프로가 돼 버리네.”

등급이 낮거나 쉽게 제작할 수 있는 아이템은 단지 감정하는 것만으로도 이해도가 최대치까지 오르는 듯했다.

하긴, 명색이 전설의 대장장이가 고작 도끼를 보고 그 제작 원리에 대해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것도 웃긴 일일 터다.

“어차피 사용 조건도 없는 아이템인데 이해도가 높아져 봤자 좋을 것도 없겠군. 이점이라고는 도끼 제작법이 추가된 것뿐인가.”

내가 사용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아이템을 장비할 경우에는 페널티가 발생한다. 그 페널티를 줄여 주는 역할을 하는 스킬이 바로 ‘아이템 이해도’였다.

스미스의 낡은 도끼처럼 애초부터 페널티가 존재하지 않는 아이템은 이해도가 올라 봤자 제작법 추가 외엔 이점이 없을 것이다.

나는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하면서 도끼를 한쪽에 세워 두고 통나무 한 토각을 똑바로 세웠다. 그리고 어느 옛날 사극에 등장했던 마당쇠를 따라 한답시고 손에 침을 퉤퉤 뱉으며 생각했다.

‘장작을 팰 때는 힘이 중요한 게 아니라 결을 치는 요령이 필요하다던데.’

어디선가 주워들은 지식이지만, 결을 친다는 게 정확히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이래서야 써먹을 수 없는 잡지식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걱정할 건 없다. 대검 한 자루로 덩치가 산만 한 몬스터들을 베고, 박살 내 온 내가 고작 나무 하나 제대로 자르지 못할까?

‘내 검술 실력이라면 나무 따위야.’

나는 세워 두었던 도끼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통나무를 후려치려는 순간이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깨끗하기만 하던 통나무의 절단면 중앙 부근에 검정색 실선이 뚜렷하게 그려져 있는 게 보였다.

“뭐지, 이거.”

수상하다.

게슴츠레한 눈으로 잠시 경계하던 나는, 어떠한 경우를 가정해 보면서 도끼를 손에서 내려놓았다. 그러자 검정색 실선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이번엔 도끼를 다시 손에 쥐어 보았다. 사라졌던 검정색 실선이 바로 다시 나타났다.

마치 도끼가 검정색 실선을 때리라고 알려 주는 듯한 느낌이다.

“아이템 이해도 100퍼센트의 효과인 것 같은데.”

가능성 높은 해석이지만 확신할 수는 없다.

일단 나는 검정색 실선을 피해서 통나무의 정중앙을 도끼로 내리쳤다.

뻐억!

온 힘을 다해서 내리쳤건만, 도끼는 통나무의 반도 가르지 못하고 멈춰 나무에 꽂혀 버렸다. 장작 패기에 실패한 것이다.

덩달아 도끼의 내구도가 1 감소했다는 알림창까지 떠올랐다.

“이, 이런 굴욕이…….”

고작 장작 하나 못 패다니……. 내가 이리도 쓸모없는 존재였던 것인가!

잠시 동안 자괴감에 빠졌던 나는, 낑낑거리면서 통나무에 꽂혀 있는 도끼를 간신히 빼냈다. 그리고 반만 쪼개진 나무토막을 한쪽에 던져 버리고 나서 새로운 나무토막을 집어 똑바로 세웠다.

“이번에는…….”

나는 검정색 실선이 그려진 곳을 노리고 도끼를 휘둘러 보았다.

따악-!

도끼의 날이 실선과 맞닿는 순간, 가슴을 뻥 뚫리게 만들 정도로 경쾌한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짜릿한 손맛을 선사해 주었다.

통나무는 아무런 저항도 없이 반으로 쩍 하니 쪼개졌다.

“오오!!”

아이템 이해도의 부가 효과를 체감한 나는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아이템 이해도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아이템을 완벽하게 다룰 수 있게 된다는 것이 무슨 말인가 했더니 이런 거였군. 아이템 이해도가 높아지면 생기는 이점은, 단지 제작법을 익힌다거나 페널티가 줄어드는 것뿐이 아니었어.’

물건을 수족처럼 다룬다는 표현이 있다. 만약 내가 어떤 검 한 자루의 이해도를 100퍼센트까지 올린다면, 그 검을 수족처럼 부리는 게 가능해질 것이다.

아이템 이해도는 일종의 웨폰 마스터리 스킬과 같은 개념으로 생각해도 좋을 듯하다.

‘창조 스킬로 지존 아이템들을 만들어서 이해도를 100퍼센트까지 올리면 난 진짜…….’

천하무적!

1년 동안 열심히 게임을 했지만 결코 넘볼 수 없었던 랭킹 자리를 노릴 수도 있으리라!

“좋아, 빨리 돈 벌어서 빚부터 갚자! 그리고 템빨로 랭커가 되는 거야!”

랭커가 되면 각종 매체로부터 섭외가 어마어마하게 많이 들어온다. TV 출연료만으로도 갑부가 될 수 있을 정도. 덤으로 인기와 명예까지 따라온다.

더 이상 아무도 나를 무시하지 못할 것이고, 첫사랑 아영이의 마음을 차지할 수도 있으리라!

의욕이 솟구친다!

“하아아아아압!! 헛! 핫! 흐아압!”

따악! 따악! 따악! 따다닥~!

나는 장장 2시간가량을 쉬지 않고 장작만 팼다. 장작을 패는 손맛이 너무나도 짜릿했기 때문에 도저히 도중에 멈출 수가 없었다.

하지만 즐거움은 잠시였다.

마이너스 3레벨의 저질 스태미너가 금방 바닥나고 말았다. 공복감도 빠르게 몰려왔다.

장작을 150개쯤 팰 때부터 지치기 시작했다. 숨이 벅차고 고통스럽다.

‘이만하고 쉬었다가 할까?’

아니, 아니다.

아슈르 놈의 퀘스트를 진행하던 석 달은 지금과 비할 바 없이 힘들고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고 강행했었다.

그런 경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장작 패기 따위를 쉬어 가면서 할 수는 없다. 고작 이 정도 일로 지쳐 물러나기엔 내가 그동안 겪어 온 일들이 너무나도 크고 무거웠다.

‘이까짓 일은 힘든 것도 아니야. 쉬지 말고 빨리 끝내자. 그리고 다음 퀘스트를 진행하자. 레벨 업도 해야 하고, 제작법을 익혀서 돈을 벌어야 해.’

나는 이를 악물고 장작을 계속 팼다.

장작을 280개째 완성했을 때, 공복감이 더욱 심해지면서 현기증까지 났다. 하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악착같은 점마저 포기한다면, 나는 내가 아니게 된다.’

나는 어릴 때부터 남들보다 잘난 구석이 없었다. 똑똑하지도 못했고, 잘생기지도, 성격이 좋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운동을 잘했던 것도 아니다. 어느 한 분야에 특별한 재능이나 재주가 있었냐면 그것조차 아니다.

아무런 능력도 없으면서 질투는 심하고, 툭하면 남의 탓을 하면서 핑곗거리를 만들고…….

나라는 인간, 그야말로 최악이라고 표현해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학창 시절에 원만한 교우 관계를 쌓을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끈기에 있었다.

똑똑하지 않다. 남들보다 배는 더 공부해야 보통 성적을 유지할 수 있었다.

성격이 나쁘다. 남들보다 배는 더 가식적인 모습을 보여야 욕먹지 않았다.

운동 신경도 별로다. 남들보다 배는 더 열심히 뛰어야 체육 시간에 같이 축구라도 할 수 있었다.

스스로 못났음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노력했다. 포기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수도 없이 했었다.

그렇게 나는 ‘끈기’라는 능력을 얻었고, 오직 그 능력만이 내가 남들처럼 대학을 가고 군대까지 무사히 전역하게 해 준 발판이 되었다.

Satisfy를 접한 이후론 게임 폐인이자 빚쟁이가 되어 간신히 유지해 왔던 평범한 인생을 놓쳐 버렸지만.

어쨌든 막말로 나는 끈기 빼면 시체다.

“렙업… 돈…….”

집념에 사로잡힌 나는 도끼질을 쉬지 않았다.

그렇게 460개째의 장작을 만들었을 때였다. 갑자기 알림창이 떠올랐다.

[끈기 능력치가 개방됩니다.]

“어?”

놀랍게도 새로운 스탯이 생겼다. 나는 끈기 스탯이 무엇인지 곧바로 확인해 보았다.

<끈기>

어려운 일에 직면해도 포기하지 않습니다. 쉽게 지치지 않습니다. 소지 무게 한도가 증가합니다. 포만감이 오랫동안 지속됩니다.

*수치가 높을수록 효과가 상승합니다.

*이 능력치에는 능력치 포인트를 분배할 수 없습니다.

*이 능력치가 10이 될 때마다 ‘불굴’ 능력치가

1포인트씩 상승합니다.

“헐!”

쉽게 지치지 않고, 소지 무게 한도를 늘려 주고, 포만감이 오랫동안 지속되게 만들어 주는 스탯이라니!

그야말로 환상적이다.

더군다나 이 스탯이 10개 오를 때마다 불굴 스탯이 1개씩 오른다니 금상첨화가 아닌가?

‘이 스탯을 올리려면 끈기 있는 행동을 하면 되는 건가?’

나는 쉬지 않고 장작 패기를 한 나를 돌이켜보다가 의문을 느꼈다.

‘아슈르의 퀘스트를 수행할 때는 지금보다 훨씬 더 엄청난 끈기를 보였었는데… 왜 그때는 끈기 스탯이 생성되지 않았던 걸까?’

일반 직업과 레전드리 직업의 차이라고밖에는 생각할 수 없다.

‘같은 행동, 똑같은 노력을 하더라도 일반 직업보다 레전드리 직업의 스탯 성장률이 높은 건가?’

레전드리 직업의 새로운 혜택을 알게 된 나는 들떠서 피로감마저 잊고 다시 장작 패기를 시작했다.

따악! 따악!

장작 패는 횟수가 많아질수록 결을 노리고 치는 솜씨가 점점 더 발달한다.

결을 치더라도 장작을 200개 팰 때마다 1씩 감소하던 도끼의 내구도가 어느 순간부터 고정되어 더 이상 감소하지 않게 됐고, 장작 패는 속도 또한 빨라졌다.

그리고 딱 1,000개의 장작을 완성했을 때, 나의 끈기 스탯은 4가 되어 있었다.

[장시간 음식물을 섭취하지 않아 모든 능력치가 절반으로 하락했습니다. 상태 이상에 걸리기 쉬워집니다. 이 이상의 공복감을 느끼게 될 경우, 서서히 생명력이 하락합니다.]

아슬아슬했다.

나는 그대로 바닥에 드러누워 버렸다.

“헉헉…….”

팔다리가 저려 온다. 온몸에 근육통이 생긴 것같이 움직이기가 힘들다.

끈기 효과의 보정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마이너스 3레벨의 스태미너는 여전히 저질이었다.

6시간 동안 장작만 팼을 뿐이건만, 그것만으로도 녹초가 되다니.

인벤토리에서 빵과 물을 꺼낸 나는 딱딱한 빵을 꾸역꾸역 씹어 삼키면서 회색 숲이 위치한 동쪽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레이드 파티는 지금쯤 숲의 수호자한테 도착했을라나? 파티에 끼지 않기를 잘했지……. 만약에 파티에 꼈으면 망신 제대로 당했겠네.’

마이너스 3레벨의 허접한 스태미너로는 다른 파티원들의 행군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혼자 지쳐서 헉헉대다가 결국 사망에 이르렀을 수도 있다.

몬스터에게 맞아 죽는 것도 아니고 걷다 지쳐서 죽으면 얼마나 개망신이었을까?

나는 섣부르게 파티에 끼려고 했던 몇 시간 전의 나를 떠올리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생각해 보면, 푸른 오리하르콘의 드롭률도 제대로 모르는 상태로 푸른 오리하르콘을 먹겠답시고 파티에 끼려던 생각 자체가 너무 단순했어. 앞으론 신중하게 생각하고 행동해야겠다.’

정신적으로 조금은 성장한 기분이다.

잠시 후, 간신히 몸이 회복된 나는 대장간으로 돌아가 대장장이 스미스에게 말했다.

“장작을 패 왔습니다. 최대한 많이 패라고 하시기에 천 개를 팼습니다.”

“뭐?”

스미스가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푸하하하핫! 너 같은 애송이가 고작 6시간 만에 장작을 천 개나 패 놨다고? 네놈, 버르장머리 없는 애송이일 뿐만 아니라 거짓말까지 달고 사는 놈이었구나! 나를 기만하려 드느냐!”

그는 재미있다는 듯이 웃다가 곧장 눈을 부라리면서 성을 냈다.

‘이 양반 조울증인가.’

나는 스미스에게 뒤뜰을 가리켜 보였다.

“장장 6시간 동안 고작 천 개의 장작을 패는 일이 무슨 그리 대수라고 거짓말하겠습니까? 정 못 믿으시겠다면 직접 가서 확인해 보시죠?”

“오냐, 말하지 않아도 내 그럴 참이다. 네놈이 혹 날 속이려 했다면 당장 이곳에서 쫓아낼 테니 각오해라.”

나는 성큼성큼 뒤뜰로 향하는 스미스의 뒤를 졸졸 따라갔다.

잠시 후.

한쪽에 수북하게 쌓여 있는 1,000개의 장작을 꼼꼼히 세어 본 스미스의 입이 쩍 하고 벌어졌다.

“이, 이럴 수가……? 너 같은 애송이가 어떻게 이리도 빨리 천 개의 장작을 팰 수 있던 거지? 그것도 이리 완벽하게……! 아니, 시간이 문제가 아니다. 너 같은 애송이에게 장작을 천 개나 팰 체력이 존재할 리 없어! 네놈, 솔직히 말해라! 이 장작들을 다 어디서 난 게냐! 저기 반스의 목공소에서 사 왔느냐? 아니면 산 중턱에 있는 나무꾼의 집에서 사 왔느냐? 못난 놈! 나는 네게 직접 장작을 패 오라 시켰거늘 이런 편법을 쓰다니!”

“뭐라고요? 사람을 왜 함부로 모함하는 겁니까! 제가 직접 팬 장작들입니다!”

“웃기는 소리! 그럴 리가 없다!”

이 영감탱이가 노망이 들었나? 왜 이리 사람을 못 믿는 거야?

발끈한 나는 도끼를 집어 들었다. 내가 흥분한 상태로 흉기를 손에 쥐자 움찔한 스미스가 뒷걸음쳤다.

나는 그에게 보란 듯이 장작을 팼다.

따아악-!

1,000개의 장작을 패면서 장작 패기 기술이 극의에 달한 나다. 도끼와 나무가 맞닿는 순간, 이제는 경쾌하다 못해 청량하기까지 한 맑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볼품없는 대장간 뒤뜰을 마치 시원한 계곡이라 착각하게 만들 정도로 짜릿한 소리!

스미스는 그 소리에 한 번 놀라고, 2개로 반듯하게 쪼개지는 장작을 보며 두 번 놀랐다.

그리고 잠시 멍하니 있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문을 열었다.

“평범한 초보 여행자인 줄 알았더니, 목공소에서 오랫동안 일한 경력이 있나 보구나.”

“없는데요.”

“그럼 나무꾼 출신이었나 보구나.”

“아닌데요.”

나는 자꾸 헛소리만 늘어놓는 스미스에게 손을 내밀었다.

“우선 보상부터 주시죠.”

“으음……. 그래. 네가 생각보다 일을 더 잘해 주었으니 약속한 보상보다 더 높은 보상을 주도록 하지…….”

스미스는 여전히 의심하는 눈초리를 보내면서도 품에서 40개의 동전을 꺼내 주었다.

그 순간 퀘스트 완료 알림창이 떠오르면서 경험치가 15나 올랐다.

스미스가 나를 바라보는 눈빛도 상당히 바뀌었다. 마치 바퀴벌레를 보는 듯하더니, 이제는 거리의 똥개를 보는 정도로 나아졌달까?

뿌듯하다.

연달아 발생한 SS급 퀘스트와 S급 퀘스트에서 무력감만 느끼다가 오래간만에 받은 정상적인 퀘스트는 내게 잊고 있던 성취감을 안겨 주었다.

그렇게 여운에 젖어 있노라니, 스미스가 곡괭이를 던져 주었다.

“뒷산에 오르면 광산이 있다. 그곳에서 철광석을 캐 와!”

“얼마나요?”

“최대한 많이!”

<철광석 캐 오기>

난이도:E

대장장이 스미스는 당신을 의심하고 있습니다.

요리 보고, 저리 보고, 다시 봐도 애송이에 불과한 당신이 스미스 본인보다도 장작을 더 잘 패니 납득할 수 없는 것입니다.

스미스는 당신을 제대로 파악해 보고자 임무의 난이도를 대폭 늘렸습니다.

퀘스트 클리어 조건:철광석 80개 캐 오기.

퀘스트 보상:스미스와의 호감도 +30, 경험치 +55, 50브론.

퀘스트 실패 시:스미스와의 호감도 -30.

경험치 55!

이 퀘스트를 클리어하게 되면 레벨이 단번에 3개나 오른다. 그러면 내 레벨은 드디어 마이너스를 벗어나 0이 된다. 기쁘다.

아니, 가만.

‘남들은 시작할 때부터 1레벨인데, 나는 0레벨 되는 걸 기뻐해야 하다니 뭔가 억울한데…….’

나는 묘한 기분을 느끼면서 퀘스트를 수락했다.

“다녀오도록 하죠.”

곡괭이를 쥐고 있는 손에 힘이 들어간다.

나에게는 아이템 이해도라는 엄청난 패시브 스킬이 있다. 이를 잘 활용한다면, 처음 해 보는 채광일지라도 어렵지 않게 해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지체 않고 대장간을 나섰다. 그리고 마을 뒤편에 자리 잡고 있는 작은 산을 시야에 담던 중, 마침 지나가는 꼬마를 발견하고 붙잡아 세웠다.

“꼬마야, 저 산에 혹시 몬스터 나오냐?”

8살이나 되었을까? 콧물 질질 흘리는 꼬맹이 녀석이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걸 질문이라고 하는 거야? 마을에 붙어 있다시피 서 있는 산에 몬스터가 있을 리 없잖아? 마을 지척은 영주님의 병사들과 자경단이 주민들의 안전을 위해 철통같이 수호한다고 우리 아빠가 그랬어. 그러니 벌벌 떨지 않아도 돼, 겁쟁이 초보 여행자 형씨.”

“거, 겁쟁이? 혀엉씨?”

짓궂은 표정과 싸가지 없는 말투!

있는 힘껏 꿀밤을 먹여 주고 싶다는 충동을 불러일으키는 얄미운 놈이다.

나는 코찔찔이 꼬마 녀석의 버르장머리를 고쳐 주고자 주먹을 말아 쥐었다가, 꼬마의 아버지로 추정되는 덩치 큰 사내가 다가오는 걸 보고 그냥 참았다.

나와 꼬마를 번갈아 본 사내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꼬마를 꾸짖었다.

“요 녀석, 어찌하여 저런 애송이 여행자와 어울려 주고 있는 게냐? 수준 낮아지니까 상종하지 말거라!”

“웅. 안 그래도 고작 한마디 나눴을 뿐인데 너무 한심해서 답답했어.”

“허허, 우리 아들이 고생이 많았구나. 그런데 저런 애송이 여행자가 어찌 우리 마을까지 찾아왔다더냐? 우리 마을은 저따위 인간이 쉬이 올 수 있는 곳이 아닌데.”

“그러니깐……. 하지만 물어보고 싶어도 말 섞었다가 속 터질까 봐 못 물어보겠어.”

“하하핫! 그래그래. 그만 신경 끄고 밥이나 먹으러 가자꾸나. 엄마가 기다리신다.”

“웅, 아빠!”

나는 저들끼리 잘도 지껄이면서 멀어져 가는 부자를 향해 감자를 날려 주었다.

빌어먹을, 이젠 꼬맹이한테까지 무시당하다니.

“이건 너무 심하잖아.”

나를 대하는 NPC들의 태도가 가관이다.

1~10레벨 초보 시절에는 NPC들이 호감을 보이진 않더라도 이것저것 가르쳐 주면서 성장에 도움을 주고자 나름 신경 써 줬었다.

하지만 마이너스 레벨인 지금은 무조건 무시하면서 일말의 호의조차 보이질 않는다. 오히려 나랑 눈을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짜증을 부릴 정도.

파그마의 기서를 발견한 대가로 전 대륙에 명성이 500 상승했고, 전직 후 위엄 스탯까지 생성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이 꼴인 것을 보면 마이너스 레벨 자체가 NPC와의 친화력이 최악인 듯하다.

‘그러고 보면 도란은 참 괜찮은 녀석이었어.’

도란처럼 날 고렙으로 오인하는 NPC가 차라리 나았다. 강제로 퀘스트를 떠안기긴 했지만 적어도 날 무시하지는 않았으니까.

‘도란 생각하니깐 도란의 반지가 생각나네.’

증발해 버렸을 도란의 반지를 떠올리자 안타까워 가슴이 먹먹하다.

나는 잠시 노을 진 하늘을 바라보며 마음을 달랬다. 그리고 산으로 이동하기에 앞서 상태창을 확인해 보았다.

이름:그리드

레벨:-3 (15/20)

직업:파그마의 후예

*아이템 제작 시 추가 옵션을 더하는 확률이 상승합니다.

*아이템 강화 확률이 상승합니다.

*모든 장비 아이템을 조건 없이 착용할 수 있습니다. 단, 아이템 등급에 따른 페널티가 발생합니다.

칭호:전설이 된 자

*상태 이상에 잘 걸리지 않습니다.

*생명력이 최소치일 때 잘 죽지 않습니다.

*쉽게 인정받습니다.

생명력:34/34 마나:3/3

근력:1+5 체력:1 민첩:1 지력:1

손재주:1 끈기:4

평정:1 불굴:1 위엄:1 통찰력:1

능력치 포인트:0

무게:3,075/200

*소지 무게 한도가 200퍼센트를 초과하여 이동속도가

100퍼센트 하락합니다.

몸이 무거워서 제대로 된 능력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상태 이상 ‘쇠약’에 걸릴 확률이 극도로 높아집니다.

‘이 느린 걸음으로 산을 오르려면 한참 걸리겠군.’

걸음이 너무 느려 속이 터질 지경이다. 아이템들을 모조리 창고에 맡겨 버리고 싶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란 없다. 창고를 이용하기 위해선 꽤 부담스런 액수의 사용료를 지불해야만 했다.

‘마차비 마련이 시급한 이때 창고비로 지출할 순 없지.’

돈도 돈이지만, ‘느린 걸음을 인내한다’는 행위 자체가 끈기 스탯을 성장시키는 데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었다.

“좋아, 그냥 이대로 이동하자.”

나는 느린 걸음으로 산을 향했다.

대장간에서부터 산까지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다. 보통 성인 남성의 걸음 속도로 약 30분이면 도착할 정도?

하지만 나는 이동속도가 무려 100퍼센트나 하락한 상태! 장장 1시간이 지나서야 겨우 산자락에 도착할 수 있었다.

“어휴.”

남들보다 배는 느리게 걷다 보니 굉장히 지루하고 지쳤다. 거북이나 굼벵이 같은 생물들은 평소에 그 느린 이동속도를 어떻게 감내하며 살아가는 건지, 놀라울 지경이다.

그리고 3시간 후.

“헉헉…….”

나는 간신히 산 중턱까지 오를 수 있었다. 산길이 잘 나 있고 경사가 조금도 가파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곳까지 막말로 기다시피 하여 도달했다.

어느새 밤이 깊어 어두웠다.

“조금만 더 가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보이는 광산 입구의 조명을 확인하면서 힘을 내려 했지만, 걸음이 쉽사리 떨어지질 않았다.

저질 스태미너가 벌써부터 바닥난 것이다.

“제기랄…….”

여기까지 와서 지체하고 싶지 않다.

나는 쉬고 싶다는 본능을 간신히 억누르면서 힘겹게 걸음을 옮겼다. 한 걸음, 한 걸음이 천근만근 무겁다. 두꺼운 솜옷으로 무장한 몸을 깊은 물에 잠근 채 걷는 듯한 감각이다. 하지만 나는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광산에 도착한 순간!

[끈기가 상승했습니다.]

“예상이 맞았어!!”

상승하는 스탯을 보자 웃음이 절로 나온다. 극도로 지쳐 있던 정신력이 순식간에 회복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레벨 업을 통해 획득한 스탯 포인트를 투자하여 올리는 게 아닌, 일정한 행동을 통해 자연적으로 성장시킨 스탯은 내게 엄청난 성취감과 쾌락을 선사해 주었다. 마치 마약 같다.

내가 장담하건대, 나는 앞으로 평생 스탯 노가다를 멈출 수 없을 것이다.

기쁜 마음으로 광산에 들어온 나는 그대로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빵과 물을 먹으며 휴식을 취하자 스태미너가 서서히 회복되는 느낌이 들었다.

“그럼 곧장 시작해 볼까? 감정.”

충분한 휴식을 취했다고 판단한 나는 곡괭이를 꺼내 들고 전설적 대장장이의 감정 스킬을 사용했다.

<스미스의 곡괭이>

등급:노멀

내구력:19/19 공격력:7~9

대장장이 스미스가 사용하는 곡괭이입니다. 스미스가 실력을 쌓은 후 제작했기 때문에 제법 쓸 만합니다.

내구력이 매우 뛰어나, 스미스는 이 곡괭이로 하루 만에 120개의 철광석을 채집한 경험도 있습니다. 마을의 광부들이 그날 이후 스미스를 대단하다 인정했습니다.

무게:40

[숨겨진 기능이 존재하지 않는 아이템입니다.]

[스미스의 곡괭이를 구성하고 있는 재료와 제작법, 제작자의 의도를 파악했습니다.]

[스미스의 곡괭이에 대한 이해도가 100퍼센트가 되었습니다. 스미스의 곡괭이를 완벽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곡괭이 제작법을 익혔습니다.]

곡괭이의 설명을 읽어 본 나는 커다란 자극을 받았다.

‘그 꼬장꼬장한 늙은이가 하루 만에 120개의 철광석을 캐냈다 이거지?’

나는 80개의 철광석을 캐 오라는 퀘스트를 받았다. 기간 제한도 없다. 그래, 단순히 퀘스트를 완료하기 위해선 며칠이 걸리더라도 80개의 철광석만 캐다 주면 된다.

하지만 스미스가 하루 만에 120개의 철광석을 캤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도 느긋할 순 없었다.

‘나는 하루 만에 200개를 캐겠어. 그래서 그 영감탱이가 나를 인정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 주지!’

나는 곡괭이를 손에 쥔 채 광산 내부를 쭉 둘러보았다. 벽 곳곳에 붉은 점이 반짝이고 있었다.

‘저길 때리면 되는 거겠지.’

붉은 점을 따라서 이동하자, 한쪽에서 쉬고 있던 광부들이 나를 발견하고 도끼눈을 떴다.

“어이, 애송이, 손에 쥔 곡괭인 뭐냐? 설마 여기서 채광을 할 생각은 아니겠지?”

“그럴 생각 맞는데요.”

“뭐? 푸하하하핫!!”

광부들이 배를 잡고 웃었다. 어떤 이는 눈물까지 찔끔거리며 바닥을 뒹굴었다.

내가 기분 나쁘단 표정을 짓자 그들 중 하나가 말했다.

“아서라. 너 같은 애송이가 온종일 곡괭이를 휘둘러 봤자 광석 하나 캘 수 없을 것이다.”

그러자 다른 이들이 동조했다.

“손목이나 부러지지 않으면 다행이지.”

“우리가 걱정해 줘서 해 주는 말이니까 새겨듣고 썩 집에나 가라고, 애. 송. 이.”

‘그래, 지금은 비웃어라.’

나는 그들에게 일일이 대꾸하지 않았다. 행동과 결과로 보여 줄 뿐!

까앙! 까앙!

[철광석을 획득하였습니다.]

붉은 점을 노리고 서너 번 곡괭이를 휘두르자 철광석이 떨어져 나온다.

그 광경에 광부들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 아니? 저런 애송이가 어찌 저리 쉽게 채광을…….”

“에이, 우연이겠지.”

까앙! 까앙!

[철광석을 획득하였습니다.]

“헐…….”

“뭐지, 저 녀석? 딱 봐도 무능하게 보이는 것이, 무슨 일이든지 못하게 생긴 주제에 채광은 어째서 잘하는 거야?”

“바보들. 저건 녀석의 실력이 아니야. 저 곡괭이가 특별한 거라고.”

저들끼리 수군거리던 광부 중 하나가 성큼 다가왔다. 그러더니 내게 다짜고짜 손을 내밀었다.

“그 곡괭이, 내가 한번 써 봐도 될까?”

지금 내 실력을 인정 못하고 내가 템빨로 채광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내 곡괭이가 평범한 것임을 알게 되었을 때 변하게 될 광부들의 표정이 보고 싶었던 나는 순순히 곡괭이를 빌려 주었고, 나로부터 곡괭이를 건네받은 광부는 동료들을 돌아보며 장담했다.

“잘 보라고. 이 곡괭이가 평범한 곡괭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해 줄 테니까.”

자신 있게 말하고 곡괭이를 휘두르는 광부!

까강! 까가강! 깡! 까앙! 깡!

“헉헉… 그냥 평범한 곡괭이 맞네…….”

수차례 곡괭이질을 반복한 끝에 간신히 철광석 하나를 채취한 광부가 어색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를 본 광부들이 동요했다.

“그렇다면 저 녀석이 채광을 잘한 건 순전히 실력이 맞는 건데…….”

“사람을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되는 거였어. 큼, 퇴근 시간일세. 이만들 내려가자고.”

광부들은 나를 애송이라며 무시했던 게 머쓱해졌는지 슬그머니 광산을 떠났다.

아직 확실히 인정할 순 없는 것인지, 아니면 친화력이 최악이라 그런지 오해해서 미안했다는 사과 같은 건 일절 하지 않았다.

어쨌든 덕분에 광산을 독차지하게 된 나는 본격적인 채광 작업에 들어갔다.

[철광석을 획득하였습니다.]

“정말 간단하군.”

아이템 이해도 100퍼센트의 효과가 곡괭이 다루는 자세를 보정해 주고, 곡괭이로 노려야 할 위치를 정확하게 알려 주었기 때문에 채광이 매우 쉽게 느껴졌다. 하루 동안 철광석 200개는커녕 300개도 캘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 자신감은 잠시뿐.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녹초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반쯤 밀폐된 답답한 공간에서 벽을 부수는 행동은 장작 패기와 비할 바 없이 체력 소모가 심했던 탓이다.

“헉헉… 이런 염병…….”

고작 26개의 철광석을 캐고 호흡이 가빠졌다. 허리와 팔이 욱식욱신 경련을 일으켰다.

마이너스 3레벨의 저급한 육체가 내게 휴식을 취하라 비명을 지른다.

하지만 나는 쉴 수 없었다. 쉬고 싶은 마음보다는 빨리 레벨을 올리고 싶은 바람이 더 간절했기 때문이다.

호흡을 가다듬고 애써 똑바로 자세를 잡은 뒤 다시 곡괭이질을 시작했다.

까앙! 까강!

“으윽…….”

41개의 철광석을 캐내는 시점에서 손목과 허리의 감각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땀은 비 오듯 흘러 온몸이 흠뻑 젖었다. 다리엔 힘이 풀려서 곡괭이를 지팡이 삼고 버텼다. 고개를 들어도 하늘을 볼 수 없는 컴컴한 천장이 답답하기만 하다.

쉬고 싶다. 하지만 빨리 제작법을 배워서 돈을 벌고 싶은 바람이 더 크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곡괭이를 다시 고쳐 쥐었다.

까강! 카자작!!

“허억… 허억… 아고, 나 죽네.”

58개의 철광석을 캐내는 시점에서 피로로 시야가 뿌옇게 변했다. 온몸이 비명을 질렀다. 바들바들 떨리는 손이 곡괭이를 꽉 쥐지 못한다. 나는 빵과 물로 허기를 달래면서 간신히 버텼다.

이젠 한계다. 당장 곡괭이를 손에서 던져 버리고 싶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곡괭이를 고쳐 쥐었다.

“고작 곡괭이질 좀 하기를 포기할 것 같냐! 내 생업이 노가다닷!! 으랴아아앗!!”

까강! 까강! 까가강!

빚쟁이에 게임 폐인.

현실의 나는 참으로 별 볼일 없는 놈이다.

어느 날, 친구들로부터 고등학교 동창들이 날 무시하고 비웃고 다닌다는 소식을 접했다.

씁쓸하게도, 그 소식을 전해 준 친구들 또한 내가 없는 자리에선 동창들과 마찬가지임을 그 당시에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군대와 대학 동기들? 연락이 끊긴 지 오래다.

아, 군대 동기 중 한 놈으로부터는 넉 달 전에 연락이 왔었다. 취직자리를 주선해 준다기에 기쁜 마음으로 한달음에 달려갔더니 다단계 회사였다.

나를 무시하고 쉽게 보는 이들.

나는 그들에게 나를 함부로 무시하지 말라는 말 한마디조차 해 주지 못했다.

현실을 등지고 게임에 미쳐 사는 주제에 게임 안에서조차 아무런 성과를 보이지 못하는 한심한 놈이 뭐라 지껄여 봤자, 그들은 콧방귀만 뀔 뿐임을 알았으니까.

내 자신이 너무 한심하고 쪽팔려서 동창회도 2회째 참석하지 못하고 있다. 첫사랑 아영이와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기 때문에 군바리 시절엔 휴가를 맞춰서라도 꼭 참석했던 동창회인데…….

막말로 기쁜 일 하나 없는 현실이다. 나는 Satisfy에 접속해 있을 때야 비로소 현실을 잊고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도 얼마 전까지의 일일 뿐.

지금은 Satisfy마저도 현실과 다를 바가 없다.

고작 NPC들조차 날 무시하다니!

이건 진짜 아니다. 한시라도 빨리 성장해야 한다.

레벨을 올리고, 돈을 벌어서 빚쟁이 신세에서 벗어날 것이다. 그리고 랭커가 될 것이다. 그리고 얼마 전 카츠 놈처럼 방송에 출현해서 당당하게 인터뷰를 할 것이다.

내가 파그마의 후예라고!

20억 유저를 경악에 빠뜨린 에픽 직업? 레전드리 직업 전직자인 내 앞에선 잔챙이일 뿐이라고!

“전 세계를 향해 외쳐 주마아아앗!!!”

까아앙!!

[철광석을 획득하였습니다.]

“나는 반드시 성공한다.”

빚쟁이 일용직 노가다 신세에서 벗어나 떵떵거리며 살 것이다. 그리고 나를 무시했던 모든 이들에게 말해 줄 것이다. 두 번 다시는 나를 함부로 무시하지 말라고. 사실은 너희도 그다지 잘난 것 없었다고!

나는 곡괭이질에 박차를 가했다. 끈기 스탯이 느리게나마 꾸준히 오르면서 스태미너가 성장했다. 채광 기술이 점점 익숙해지면서 곡괭이의 내구력이 떨어지는 속도가 점차 줄어들었다.

그리고 어느덧 아침이 밝았다. 출근한 광부들이 나를 보고 경악했다.

“저 녀석 설마 밤새 일을 한 거야?”

“보기와 달리 어마어마한 체력을 가졌군. 아니, 정신력으로 버틴 건가? 거참, 굉장한 녀석이구만.”

“헉! 저 녀석이 캔 철광석의 양 좀 보세요! 잘하면 스미스 씨의 대기록을 깨겠는데요?”

“에잉, 아무리 그래도 설마 스미스의 기록을 깨겠어? 지금까지 잘하고 있는 건 솔직히 인정한다만… 어? 이, 이봐, 저 녀석 채광 솜씨가 하룻밤 사이에 더 좋아졌는데?”

그날, 나는 몇 번의 빈사 상태를 겪으면서도 쉬는 시간을 최소한으로 하고 채광에만 열중했다. 위험 상황이 몇 번이나 닥쳐 와 채광 중 사망이라는 끔찍한 개쪽을 당할 뻔도 했지만, 침착하게 위기를 넘기면서 점심 무렵에 철광석 170개를 캘 수 있었다.

목표한 200개에는 한참 못 미치는 성과였지만 마실 물이 다 떨어진 바람에 더 이상 강행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비틀비틀. 휘청휘청.

힘이 전혀 들어가지 않는 몸을 간신히 이끌어 광산을 떠나자 광부들이 배웅해 주었다.

“이거야 원, 대단하군……. 인정할 수밖에 없겠어. 어제 겉모습만 보고 무시했던 것 사과한다. 우리들의 무례를 용서해 다오.”

“너는 분명 엄청난 광부가 될 수 있을 거야! 아니, 그 대단한 근성이라면 어떤 일을 하든지 성공할 수 있겠지!”

어제까지만 해도 애송이라며 무시하던 광부들이 이제는 나를 확실하게 인정해 주었다.

누군가에게 인정받는다는 것, 내 생에 몇 번 없는 귀중한 경험이다. 상대가 비록 NPC일지라도 뿌듯했다.

나는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산에서 내려왔다.

하룻밤 사이 내 끈기 스탯은 16이 되어 있었다. 전날과 비할 바 없이 스태미너가 상승했기 때문에 지치지 않고 산을 내려올 수 있었다.

묵직한 철광석 자루를 질질 끌며 대장간을 향하는 길. 나를 바라보는 마을 주민들의 시선이 상당히 변했음이 느껴졌다. 광부들이 내 이야기를 마을에 퍼뜨린 모양이다.

“어, 어제는 미안했어, 멋쟁이 광부 형.”

싸가지 없던 꼬맹이가 전날과 180도 다른 태도로 사과를 해 왔다. 그 애의 아버지도 멋쩍은 미소를 보였다.

아직 내 레벨은 마이너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대놓고 무시하던 이들 부자와 광부들의 태도가 고작 하루 만에 급격하게 변한 것을 보면, ‘쉽게 인정받는다’는 칭호의 특성 효과가 적용된 듯했다.

‘기분 좋군…….’

마이너스 레벨이 된 후 현실과 다를 바 없이 삭막하게 느껴졌던 Satisfy의 세계가 다시금 안식처가 되어 간다.

웃으면서 꼬마 녀석에게 가벼운 꿀밤을 먹여 준 나는 잠시 후 대장간에 도착했다.

이미 소식을 접한 것일까. 벙찐 얼굴을 하고 있는 스미스에게 나는 170개의 철광석이 들어 있는 보따리를 건네주었다.

“어때요? 이래도 날 애송이라고 부르실 겁니까?”

“허허…….”

내가 캐 온 철광석의 개수와 상태를 꼼꼼히 확인해 본 스미스가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아니, 자네는 애송이는커녕 엄청난 거물일세. 그 대단한 근성과 재능이라면 앞으로 어떤 고난과 역경에도 이겨 내면서 훌륭한 인물로 성장할 테지.”

스미스가 내게 악수를 청했다.

“자네 같은 인재가 대장장이를 꿈꾼다니, 대륙의 모든 대장장이들이 기뻐할 만한 일일세. 내게 자네를 가르칠 수 있는 영광을 주어 감사하네.”

나는 스미스와 기꺼이 악수를 나눴다.

스미스가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자네는 참 잘해 주었어. 그리고 그 누구도 깨지 못했던 내 채광 기록을 깨기도 했지. 약속했던 보상의 두 배를 주겠네.”

퀘스트 성공을 알리는 알림창이 떠오르더니 보상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바이란 마을 내에서 명성이 200 상승하였습니다.]

[1실버를 획득하였습니다.]

[스미스와의 호감도가 60 상승하였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1이 되었습니다. 마이너스 레벨의 페널티로 인하여 최소치로 고정되었던 능력치들이 정상적으로 복구됩니다.]

[파그마의 후예의 기본 능력치가 적용됩니다.]

드디어…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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