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템빨-6화 (2/1,794)

제5장

아이템 창조

“무바이드 유적에 가실 130레벨 이상 법사님 모십니다!”

“회색 숲 외곽에서 사냥하실 분들 모셔요~ 103렙 전사랑 96렙 신관 대기 중입니다~”

“숲의 수호자 레이드 가실 분 대거 모집! 190레벨 궁사님과 181레벨 무도가님을 비롯한 상위 랭커들이 대거 합류할 예정입니다! 클래스, 레벨 안 따집니다! 아무나 오세요!”

접속해 보니, 나는 어느 마을 광장에 서 있었다.

야탄교와 적대하게 된 탓에 야탄의 신전에서 부활하지 않게 된 것이다.

‘바이란 마을?’

이곳은 일전에 아슈르 놈의 퀘스트를 진행하면서 들러 본 바 있는 곳이다.

지난 기억을 떠올린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돌겠네.”

바이란 마을 근처에 서식하는 몬스터들의 레벨은 최소 100이 넘었다. 거기다 모든 몬스터들이 선공을 일삼는 난폭한 놈들이다.

이곳을 찾는 유저들의 레벨은 최소 80 중반 이상이고, 사냥을 할 때면 무조건 파티를 맺었다. 120레벨 이하 유저는 혼자서 마을 밖으로 나갈 엄두조차 못 내는 위험한 곳이다.

과거의 나도 북쪽 끝의 동굴을 찾겠답시고 혼자 돌아다니다가 이 근처에서 수두룩하게 죽었었다. 그때 내구력이 0으로 감소해서 박살 난 부츠와 건틀렛이 떠오르면서 치가 떨렸다.

“부활을 해도 하필이면 이딴 곳이냐.”

나는 아마 전생에 어떤 멍청한 신이었을 거다. 전생의 나는 행운의 여신을 욕보이게 만들고, 그 죄로 기억이 지워진 채 인간계로 추방된 것 같다. 이후로 행운과 거리가 멀어진 인생을 보내게 되었고.

‘사실일 거야. 행운의 여신에게 직접적인 죄를 짓지 않은 이상 이렇게까지 재수 없을 리가 없지.’

벽에 이마를 붙이고 선 채 전생의 나를 원망하길 한참. 언제까지고 이대로 있을 수는 없었기에 나는 다시 마음을 추슬렀다.

“일단은 다른 마을로 가자.”

당장 급한 건 레벨을 올리는 일이다. 마이너스 레벨에서부터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다. 사냥이 불가능한 마을에 굳이 머무를 이유가 없다.

나는 광장 구석에 마차를 세워 둔 채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마부를 발견하고 다가갔다.

“근처에서 가장 안전한 마을이 어딥니까?”

“윈스톤 마을이오. 초보 여행자들도 많이 들르는 곳이지. 모셔다 드릴까?”

“얼만데요?”

마부는 손가락 하나를 들어 보였다.

도둑놈 같으니라고.

역시 마차는 부자들이나 이용할 수 있는 교통수단이다. 나 같은 빚쟁이에게는 어마어마한 사치다. 통닭 한 마릴 시켜서 한 끼에 다 먹어 버리는 것과 비견될 정도로 큰 사치!

하지만 어쩌랴. 지금의 나로서는 자력으로 다른 마을로 이동하는 게 불가능하다.

혹여 마을 바깥으로 나갔다간 얼마 걷지도 못하고 죽을 것이다.

나는 피눈물을 흘리면서 1실버를 지불했다.

마부가 나를 노려보았다.

“뭐 하는 짓이요? 10골드라니까.”

나는 정말로 모르고 있었다는 듯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헉! 10골드라고요? 10실버도 아니고 10골드?!”

“이 사람이 마차 처음 타 보나. 안전지대에서도 마차의 기본요금은 5골드로 책정되어 있소. 이처럼 흉악무도한 몬스터들이 득실거리는 곳에선 최소 그 배는 받아야 우리도 목숨 걸고 일할 가치가 있는 거지. 이것도 싼 거요. 윈스톤이 여기서 그나마 가까우니까 기본요금만 받는 거라고.”

“고작 마차 몰기를 무슨 목숨을 건답시고 이렇게 대책 없이 바가지를 씌웁니까!”

“쯧쯧, 이래서 초보 여행자들은 안 된다니까. 이 근방의 모든 몬스터들은 인간을 발견하는 즉시 공격해 온다는 사실도 모르오?”

“압니다! 마차 속도를 따라올 만큼 발 빠른 몬스터가 없다는 사실도 알고요!”

마부가 움찔한다. 내가 정곡을 찌른 것이다.

헛기침을 뱉은 마부가 애써 태연한 척 설명했다.

“분명 이 근방의 몬스터들이 발이 느리긴 하지. 하지만 놈들은 지리를 훤히 꿰뚫고 있고, 천부적인 사냥꾼으로서의 본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칫 방심하다간 따라잡힐 수도 있소.”

어디서 약을 팔아.

“방심 안 하면 되죠.”

“크음… 그럼 9골드만 내시오.”

좋아. 가격 흥정이 시작됐다.

흥정의 기본은 우선 최대한 많이 깎고 보는 것!

“10실버에 해 주세요.”

“…….”

“저기요?”

“…….”

뭐지? 왜 아무 말도 없지?

반응이 예상과 다르다.

‘10실버는 너무 싼 것 같으니 한 8골드로 함세.’라고 반응해야 하는 게 정상 아닌가? 그럼 그때 난 다시 20실버를 제안하고, 마부는 7골드를 제시한다. 그다음 난 30실버, 마부는 6골드…….

그렇게 반복하면서 결국엔 2골드쯤으로 흥정을 완료하는 것이 나의 원대한 계획이었다.

그런데 마부가 나를 그냥 무시해 버림으로써 계획이 틀어지게 생겼다.

“흥정 안 해 주는 겁니까?”

“세상에 누가 너 같은 도둑놈하고 가격 흥정을 하겠냐? 에라이, 염치없는 자식! 깎아도 정도가 있지, 9골드라는데 흥정 금액을 10실버로 제시해? 네가 나라도 흥정할 맛이 나겠냐! 눈 뜨고 코 베일 놈이 아닌 이상 누가 너 같은 자식이랑 상종을 하겠냐고!”

“손님은 왕이거늘 어찌 막말을 하는 거요! 마부 연합에다가 당신 고소해서 백수로 만들어 버리는 수가 있어!”

“고소하려면 해라, 해! 연합에서 네 편을 들어줄 것 같냐? 썩 꺼져! 정신 나간 놈 같으니라고!”

파트리안에서는 모든 주민들과 호감도가 최대치에 가까웠고 명성도 높았기 때문에 나의 막무가내 흥정 방식이 아주 가끔씩은 통했었다. 설령 통하지 않더라도 웃음으로 넘겼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완전 새내기인 탓에 상종 자체를 안 해 준다.

큰일이다. 이대로라면 마차를 못 탈 수도 있다. 현재 내 소지금은 고작 3골드 11실버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아슈르 놈의 퀘스트를 진행할 당시, 극악의 난이도로 인해 물약 값으로 많은 돈을 지출한 탓이 컸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윈스톤 마을에 병든 노모가 홀로 계신단 말입니다……. 당장 오늘내일하고 계시는데, 하나뿐인 아들이란 놈이 어머니의 마지막 가시는 길을 지켜봐 드리지 못한다면 이 얼마나 서글픈 패륜입니까……. 사정을 딱하게 여겨서 흥정 좀 해 주세요.”

나는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짓고 가슴 아픈 사연을 말했다.

하지만 냉혹한 마부는 도리어 콧방귀만 뀌었다.

“뻔한 거짓말을 지껄이는군. 처음부터 윈스톤 마을로 가려던 것도 아니었으면서 이제 와 그딴 말을 하면 내 믿어 줄 것 같은가?”

“…쳇, 멍청하게 생긴 것과 다르게 똑똑하군.”

“뭐, 뭣이! 이 싸가지 없는 놈이!!”

가능성 없는 상대에게 언제까지 얽매일 수는 없는 법. 나는 얼굴을 시뻘겋게 붉힌 채 잡아먹을 듯이 쫓아오는 그로부터 도망치고 다른 마부들을 찾아갔다.

하지만 처음처럼 무식하게 굴지 않고 최대한 조심해서 흥정해도 3골드 내로는 도저히 흥정이 불가능했다. 아무리 가슴 아픈 사연으로 무장을 해도 8골드 90실버까지 깎는 게 한계였다.

현대사회만큼이나 야박한 Satisfy의 인심에 나는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어쩌지?”

바이란 마을이라는 이름의 외딴 섬에 고립된 채 평생을 마이너스 3레벨로 썩어야 하는 것인가!

“그럴 수는 없지.”

나에게는 마차 값을 마련하는 동시에 렙업도 할 수 있는 수단이 있다.

바로 아이템 제작!

아이템을 제작하면 일정 경험치를 획득할 수 있고, 제작한 아이템은 노멀 등급의 경우 상점에 판매하면 되고, 레어 이상 등급의 경우에는 유저들에게 판매하면 돈이 될 것이다.

스킬창을 연 나는 우선 ‘대장장이 장인의 기술’ 스킬의 정보를 확인했다.

<대장장이 장인의 기술>

Lv.마스터

제작법을 알고 있는 장비 아이템을 제작합니다.

일정 확률로 레어 등급의 아이템이 제작됩니다.

낮은 확률로 에픽 등급의 아이템이 제작됩니다.

희박한 확률로 유니크 등급의 아이템이 제작됩니다.

*스킬 마스터의 효과가 적용되어 제작하는 아이템의 모든 능력치가 10퍼센트 상승합니다.

*레어 등급의 아이템 제작 시 모든 스탯이 +2 영구 상승,

대륙 전역에 명성이 +30 상승합니다.

*에픽 등급의 아이템 제작 시 모든 스탯이 +4 영구 상승,

대륙 전역에 명성이 +80 상승합니다.

*유니크 등급의 아이템 제작 시 모든 스탯이 +12

영구 상승,

대륙 전역에 명성이 +300 상승합니다.

“개쩐다…….”

대장장이 랭킹 1위가 밝힌 바에 의하면, 현재 그의 대장장이 기술은 막 중급에 오른 수준이라고 했다.

레벨 110을 찍으면서 수천수만 개의 아이템을 제작했는데도 불구하고 간신히 중급에 올랐다면서 제작 기술 레벨 올리는 게 참 힘든 일이라고 토로했었다.

하지만 나는 ‘중급 대장장이 기술’보다 상위 등급인 ‘고급 대장장이 기술’을 넘어선 ‘대장장이 장인의 기술’을 기본적으로 마스터하고 있다.

대장장이 랭킹 1위라는 사람이 나의 존재를 알게 된다면 억울해서 게임 접고도 남을 것이다.

‘그 사람하고 비교해 보면 레전드리 직업의 위대함이 실감나네.’

나는 이어서 ‘전설적 대장장이의 기술’ 스킬 정보를 확인했다.

<전설적 대장장이의 기술>

Lv.1

제작법을 알고 있는 장비 아이템을 제작합니다.

‘전설적 대장장이의 창조’ 스킬로 제작법을 창조한 장비 아이템을 제작할 수 있습니다.

일정한 확률로 레어~에픽 등급의 아이템이 제작됩니다.

희박한 확률로 유니크 등급의 아이템이 제작됩니다.

매우 희박한 확률로 레전드리 등급의 아이템이 제작됩니다.

*제작 아이템의 모든 능력치가 10퍼센트 상승합니다.

*레어 등급의 아이템 제작 시 모든 스탯이 +2 영구 상승, 대륙 전역에 명성이 +30 상승합니다.

*에픽 등급의 아이템 제작 시 모든 스탯이 +4 영구 상승, 대륙 전역에 명성이 +80 상승합니다.

*유니크 등급의 아이템 제작 시 모든 스탯이 +12 영구 상승, 대륙 전역에 명성이 +300 상승합니다.

*레전드리 등급의 아이템을 제작 시 모든 스탯이 +25 영구 상승, 대륙 전역에 명성이 +1,000 상승합니다.

*레전드리 등급 아이템의 제작 횟수가 5회가 될 때마다 특수한 일이 발생합니다.

“헐…….”

‘전설적 대장장이의 기술’ 스킬 레벨은 고작 1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마스터 상태인 ‘대장장이 장인의 기술’ 스킬보다 뛰어났다.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다.

흥분한 나는 곧장 ‘전설적 대장장이의 창조’ 스킬을 확인했다.

<전설적 대장장이의 창조>

‘전설적 대장장이의 기술’ 스킬 레벨이 하나 오를 때마다

장비 아이템 제작법을 3개 창조할 수 있습니다.

현재 창조할 수 있는 아이템 제작법 횟수 3/3.

*이 스킬을 사용해서 창조한 아이템을 생산 시,

아이템에 창조자의 이름이 자동으로 새겨집니다.

“제작법을 만든다? 어떤 방식인 거지?”

설명만으로는 쉽게 이해가 안 된다. 백문불여일행. 사용해 보면 알 수 있겠지.

나는 망설임 없이 대장장이 장인의 창조 스킬을 사용했다.

[어떤 아이템을 창조하시겠습니까?]

아이템 중에서 가장 중요한 건 당연히 무기라고 생각한다. 무기빨이야말로 빠른 사냥을 가능하게 해 주고, 이는 광렙과 직결되니까.

그리고 무기 중에서 가장 좋은 건 역시 대검이다.

굵고, 크고, 아름다운 그것…….

갑옷째로 적을 박살 내 버리는 대검이야말로 남자의 로망이 아니겠는가!

이때까지 난 어떤 게임을 하든지 대검 외의 무기를 선택해 본 적이 없다. 그러니 우선은 대검부터 만들어 보자.

“대검.”

[결정하시겠습니까?]

“오냐.”

[어떤 재질을 사용하시겠습니까?]

오호~ 그렇군. 지금 난 제작법을 만들고 있는 거니깐 재료부터 선정해야 하는 거구나.

재료는 당연히 특별하고 좋은 거로 써야 하겠지?

나는, 광장에서 ‘숲의 수호자’라는 보스 몹 레이드를 가자면서 파티원 구하던 사람을 떠올리고 생각해 보았다.

‘숲의 수호자가 현재까지 등장한 광물 중에서 가장 뛰어난 광물을 드롭한다고 들었던 거 같은데… 그거 이름이…….’

떠올린 나는 대답했다.

“푸른 오리하르콘.”

[결정하시겠습니까?]

“어.”

[설계해 주십시오.]

눈앞에 공백의 설계도가 떠올랐다.

당황스럽다.

‘설계? 어떻게 하는 건데?’

해 봤어야 알지.

그보다 탱크나 전투기 같은 현대 무기도 아니고, 고작 검 만드는 데 설계씩이나 필요한 건가? 그냥 모양만 얼추 만들면 되는 거 아닐까?

나는 어렵지 않게 생각하면서 손가락으로 설계도에 그림을 그렸다. 보정 효과가 붙은 것인지, 그림은 내가 생각하고 뜻하는 바대로 완벽하게 그려졌다.

‘기왕지사 멋있게 만들자.’

나는 우선 검신의 길이를 2미터로, 폭을 80센티미터로 정했다. 두께는 8센티미터. 이후 손잡이의 길이는 40센티미터로 정했다.

“…고작 이 정도로는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대검의 모습이잖아.”

완성된 그림을 보고 있자니 빈곤한 상상력의 한계를 절실히 체감하게 된다.

나는 잠시 고민해 보다가 좋은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검신의 모양새를 일자로 하지 않고 곡선으로 수정했다. 마치 언월도처럼 말이다. 그리고 덩달아 검신의 길이를 3미터로 대폭 늘렸다.

“괜찮은데?”

완성된 그림이 마음에 든다. 손잡이가 짧은 대형 언월도를 보는 듯하다. 대검답게 묵직함을 가졌지만 동시에 날렵함이 느껴진다.

‘상어의 옆모습이 연상되기도 하네. 기왕이면 칼등 부분에 상어 지느러미처럼 뾰족하게 튀어나온 부분도 표현하고, 손잡이 끝부분은 상어 꼬리처럼 만들자.’

잠시 후, 완성된 작품을 보면서 나는 감탄했다.

‘내가 만들었지만 참 세련되고 멋지군!’

헤엄치는 한 마리 상어를 생동감 있게 표현한 작품이다.

이거 들고 다니면 상어 들고 다니는 줄 알고 착각해서 놀라는 사람들도 생길 것 같다.

‘내가 디자인에 소질이 있을 줄은 몰랐네. 돈 벌어서 빚 갚고 복학하면 디자인으로 전공을 바꿔야겠어.’

나는 큰 만족감을 느끼면서 설계도 하단의 확인 버튼을 눌렀다.

[결정하시겠습니까? 설계도를 완성할 경우, 사용 가능한 창조 스킬 횟수가 1회 소멸합니다.]

“어.”

내가 대답하자, 빠른 속도로 설계도 곳곳에 숫자와 언어들이 멋대로 추가되었다가 지워지기를 반복했다.

살펴보니 이런저런 수치들이 연산되고 있었다. 시스템이 내가 만든 허접한 설계도의 내용을 보완하고자 세세한 부분들을 계산해 주는 것 같았다.

그리고 잠시 후, 나는 완벽하게 개선되어 완성된 설계도와 마주할 수 있었다.

전문 용어들과 수치들이 설계도에 빼곡하다.

“어?”

무슨 영문인지, 설계도에 서술된 용어들과 수치들이 뜻하는 바를 나는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설계 내용에 납득을 했으며, 혹 결점은 없는지 찾아보게 된다.

놀라운 일이다. 배운 적도 없고, 심지어 접해 본 적도 없는 아이템 설계도의 내용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다니.

‘직업의 보정 효과!’

실로 대단하다. 정말로 내가 대단한 대장장이가 된 기분이었다.

그렇게 감탄하고 있을 때 알림창이 떠올랐다.

[아이템의 특징을 설명해 주십시오.]

“그렇군!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게 남아 있었구나!”

나는 흥분해서 떠들었다.

“이건 지존 무기다. 공격력은 100만… 아니, 1,000만도 넘고 무게는 고작 1. 레벨 제한 없음. 옵션은 공격할 때마다 생명력 만땅 흡수. 메테오 떨어짐. 적이 무조건 한 방에 죽음. 당연히 방어력은 무시. 어쨌든 이 무기만 있으면 혼자서 드래곤도 잡는다.”

[불가능합니다. 아이템의 성능과 옵션은 임의로 정하실 수 없습니다. 성능과 옵션은 사용되는 재료, 설계도의 내용, 특징의 설명을 종합해서 결정됩니다.]

…아쉽네.

나는 최대한 설명을 좋게 하려고 노력했다.

“대검이지만 그 특이한 모양 덕분에 절삭력이 엄청 뛰어나. 상어 지느러미처럼 뾰족하게 튀어나온 부분이 의외의 공격, 혹은 방어도 가능하게 해 주지. 푸른 오리하르콘을 재료로 사용했기 때문에 가벼우면서도 내구력은 뛰어나고. 그리고… 그리고… 음… 뭐, 이 정도면 됐겠지.”

내 어휘력이 이렇게까지 부족했었다니? 부끄러울 지경이다.

애초에 푸른 오리하르콘이라는 광물에 대해서 가볍고 튼튼하다고만 알고 있을 뿐, 정확한 정보는 몰랐기 때문에 장점을 서술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근데… 가만…….”

문득, 망치로 뒤통수를 후려 맞은 느낌이 든다.

뒤늦게 떠오른 생각인데, 푸른 오리하르콘을 재료로 설계한 이상, 이 아이템을 제작하려면 당연히 푸른 오리하르콘이 재료로 필요하지 않을까?

‘좆 됐다.’

200레벨 보스 몬스터가 드롭하는 광물을 마이너스 3레벨인 내가 무슨 수로 구한단 말인가!

사람들한테 돈 주고 구입하는 방법밖에는 없을 텐데, 그마저도 공급량이 적고 가격은 어마어마하게 비싸서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기껏 만든 설계도가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다는 뜻!

“취소! 스킬 취소! 전부 취소!!”

[설계도를 완성하면서 창조 스킬의 사용 가능 횟수가 1회 소멸했습니다. 지금 스킬을 취소하더라도 창조 스킬의 사용 가능 횟수는 복구되지 않습니다. 그래도 취소하시겠습니까?]

“…아니.”

낭패다. 너무 안이하게 생각한 탓이 크다. 철저하게 조사하고 생각해 본 뒤 신중하게 사용했어야만 하는 스킬이건만.

[아이템의 이름을 만들어 주십시오.]

“으으… 제기랄…….”

[‘으으제기랄’로 결정하시겠습니까?]

“무슨 개소리냐! 좀 기다려 봐! 뭐가 있지?”

나는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실패작.”

[‘실패작’으로 결정하시겠습니까?]

“어.”

그래, 애초에 만들지도 못할 아이템 따윈 실패작이나 다름없다.

스킬 사용 가능 횟수 1개를 어처구니없이 날려 버린 후유증으로 슬픔에 떨고 있노라니, 완성된 실패작의 멋진 모습이 홀로그램으로 떠오르면서 아이템의 옵션이 나열되었다.

<실패작>

등급:유니크~레전드리

유니크 등급 정보

내구력 699/699

공격력:733~1,621 방어력:50

*민첩성 +30

*낮은 확률로 적의 공격을 차단.

*일정 확률로 ‘5연격’ 스킬 발동.

*높은 확률로 ‘절단’ 스킬 발동.

*착용자보다 레벨이 20 이상 낮은 적에게 공포 효과.

*어두운 장소에서 공격력 +20퍼센트.

레전드리 등급 정보

내구력 1,090/1,090

공격력:874~1,820 방어력:80

*민첩성 +50

*낮은 확률로 적의 공격을 차단.

*일정 확률로 ‘5연격’ 스킬 발동.

*높은 확률로 ‘절단’ 스킬 발동.

*스킬 ‘이등분’ 생성.

*착용자보다 레벨이 20 이상 낮은 적에게 공포 효과.

*어두운 장소에서 공격력 +20퍼센트.

전설이 된 대장장이가 설계한 무기입니다. 대검으로 만들어졌지만 검신 특유의 생김새 때문에 절삭력이 매우 뛰어납니다. 바다의 포식자 상어를 닮은 모습이 적에게 공포심을 주며, 검등에 뾰족하게 솟아 있는 작은 검날이 방어에 도움을 줍니다.

푸른 오리하르콘을 재료로 사용하여 가볍기 때문에 공격 속도가 하락하지 않습니다. 푸른 오리하르콘의 특성으로 인해 어둠 속에서 더욱 강한 면모를 보입니다.

사용 조건:레벨 300 이상. 근력 5,000 이상.

고급 소드 마스터리 8레벨 이상.

무게:550

“…딸꾹!”

대박이다. 실패작은커녕 지존 무기다. 세상에 이런 아이템이 존재하다니. 그리고 이런 아이템을 탄생시킨 장본인이 바로 이 나라니. 조금도 실감이 나질 않는다.

“일확천금?”

얼떨떨하게 있던 내 입에서 자동으로 흘러나온 말이다.

그래, 부자가 될 수 있다.

빚을 더 내서 현질을 해서라도 푸른 오리하르콘을 구입한 후, ‘실패작’을 제작해서 거래 사이트에 올린다면 아이템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모든 빚을 갚고도 남을 거액의 돈을 손에 넣을 터!

과연 전설의 대장장이!

내 직업은 예상대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

“…어?”

완성된 ‘실패작’의 능력치와 옵션을 읽어 내려가면서 한껏 들떴던 기분이 급격하게 가라앉았다.

마지막 끄트머리에 붙어 있는 사용 조건을 뒤늦게 확인한 것이다.

“필요 레벨이 300?”

현재 통합 랭킹 1위의 레벨이 250 내외로 추정된다는 뉴스를 이틀 전에 접한 바 있다.

‘그런데 300?’

문제는 레벨뿐만이 아니다.

“필요 근력이 5,000이라고?!”

레벨을 하나 올릴 때마다 얻게 되는 스탯 포인트는 10개에 불과하다.

설혹 레벨 업을 할 때마다 모든 포인트를 근력에만 투자한 사람이 존재하고, 그가 근력 스탯을 올려 주는 칭호와 장비들로만 중무장했을지라도 300레벨에 5,000의 근력을 보유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전직하면 근력 스탯을 추가로 얻게 되는 직업들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어림없을 텐데. 애초에 또라이가 아닌 이상 근력만 찍는 사람이 어디 있어?’

마지막으로 고급 소드 마스터리 8레벨.

현재 대장장이 랭킹 1위의 ‘대장장이 기술’ 스킬이 갓 중급이 된 수준이다. ‘소드 마스터리’ 스킬 고급 8레벨은 과연 어느 세월쯤에나 등장할지 예측조차 할 수 없다.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실패작’을 제작하더라도, 언젠가 먼 훗날이라면 또 모를까 당분간은 그 누구도 ‘실패작’을 사용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는 판매가 불가능하다는 뜻이기도 하고.

일확천금의 꿈이 순식간에 산산조각 나 버렸다.

‘실패작’은 이름 그대로 실패작이었다.

“…그럼 그렇지. 내 생에 봄날이 올 리가 없지. 염병할.”

좌절하고 있던 나는 이내 정신을 바로잡았다. 그리고 내가 창조한 아이템에 어째서 이처럼 터무니없는 사용 조건이 붙게 된 건지 진지하게 추론해 보았다.

결론을 내리는 건 어렵지 않았다.

‘무조건 좋게 만들려고 한 게 실수였어.’

전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은 Satisfy의 개발팀이 삼류, 호구일 리가 없다.

‘실패작’은 사냥, 혹은 레이드를 통해 랜덤하게 획득할 수 있는 드롭 아이템이 아니고 재료만 있다면 무한히 생산 가능한 제작 아이템이다.

단점은 없이 장점만 지나치게 부각된 제작 아이템, 게임 밸런스를 위해서라도 제약이 생기도록 시스템을 구축해 놨을 가능성이 높다. 그 제약이라는 것이 이 기형적인 사용 조건이고.

‘납득할 만한 성능. 그것이 창조 스킬에서 가장 중요한 건가?’

창조 스킬은 사용 횟수가 제한되어 있다. 신중하게 사용해야만 한다.

나는 창조 스킬을 일단 봉인하기로 결정했다.

밸런스를 파괴시키지 않는 선의 적당히 뛰어난 아이템들을 창조, 제작해서 사람들에게 판매한다면 금방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며, 빚을 후딱 청산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까지 서두르고 싶지는 않았다.

고난이도의 퀘스트, 혹은 강대한 적을 만나기에 앞서 스스로를 위해 사용할 궁극기로서 아끼고 싶었다.

‘창조 스킬은 내 전용이야. 사용 조건이고 나발이고, 위기의 상황에 직면하게 되면 그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성능의 아이템을 창조, 제작해서 내가 직접 사용한다.’

간단한 예를 들어, 엄청난 화염 속성 공격력을 발휘하는 보스 몬스터를 잡아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레이드를 떠나기에 앞서 화염 속성을 극도로 높여 주는 아이템을 창조, 제작해 대비한다는 뜻이다.

그처럼 아이템을 판매용이 아니라 내 전용으로 창조, 제작할 경우, 사용 조건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파그마의 후예라는 내 직업의 가장 큰 장점, 바로 아이템 착용에 제한이 없다는 점을 이용하면 되니까.

‘실패작’처럼 사기급 위력의 아이템을 제작한다면 페널티가 붙더라도 현존하는 아이템 중 최상위급의 위력을 발휘할 것이다.

그렇게 마음을 굳힌 뒤 ‘실패작’의 완성된 제작법을 확인해 보았다.

역시 재료가 문제였다.

‘실패작’을 제작하기 위해서 필요한 푸른 오리하르콘의 숫자는 무려 15개.

‘손잡이마저 푸른 오리하르콘으로 만들다니……. 사용 재료로 푸른 오리하르콘 하나만 선택한 게 실수였어. 손잡이만이라도 다른 재료를 사용했으면 푸른 오리하르콘의 필요 개수가 조금은 줄어들었을 텐데.’

‘실패작’의 엄청난 옵션을 보고 있노라니 당장 제작해서 직접 사용하고 싶다는 욕구가 솟구쳤다. ‘실패작’을 손에 쥘 수만 있다면, 나는 남부럽지 않은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될 테니까. 하지만 자력으로는 푸른 오리하르콘을 입수하는 게 불가능하다.

‘헛된 미련은 떨치자. 아니, 가만. 숲의 수호자 레이드 파티에 나도 참여할 수 없을까? 아까 파티원 모집할 때 보니까 레벨은 관계없다고 하던데?’

마침 숲의 수호자 레이드 파티가 생성되어 있다는 사실을 떠올린 나는 광장 중앙으로 향했다. 그리고 ‘토반’이라는 아이디의 흑인 남자를 찾아가서 청했다.

“레이드에 참여하고 싶습니다.”

지금이 아니라면 또 언제 숲의 수호자 레이드 파티를 구할 수 있을지 모를 일!

“파티에 넣어 주세요.”

나는 반드시 파티에 합류해서, 숲의 수호자가 죽을 때까지 살아남았다가 푸른 오리하르콘이 드롭되면 날름 주워 먹을 계획이다. 먹자 행위로 인해서 파티원들에게 즉각 살해당하겠지만 상관없다.

‘어차피 떨어질 경험치도 없으니까 죽이려면 죽이라지!’

지극히 재수 없을 경우, 죽을 때 현재 내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마몬의 대검이나 멩겔의 플레이트 아머를 떨어뜨릴 수도 있지만, 그런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난 반드시 푸른 오리하르콘이 가지고 싶었다.

나는 토반에게 이글이글 타오르는 시선을 보내면서 강력한 의욕을 표출했다.

너무 염치없는 거 아니냐고? 내가 지금 염치 따질 때냐?

그런데 나를 쭉 훑어본 토반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실례지만 레벨이?”

“그건 왜요? 레벨과 클래스는 상관없다고 하지 않았었습니까?”

“처음엔 그랬지만… 예상외로 파티원이 잘 구해져서 지금은 최소 120레벨 이상인 분들로 구하고 있습니다. 기왕이면 신관과 마법사 위주로요. 알고 계실지 모르겠지만, 숲의 수호자는 몸이 광물로 이루어져 있는 몬스터라서 어지간한 물리 공격엔 생채기조차 입지 않거든요.”

토반은 내가 등에 메고 있는 대검을 탐탁찮은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파티에 받아 주기 싫다는 의사가 강하게 전해져 온다.

‘아쉬울 때는 아무나 일단 오라고 지껄이던 놈이 배부르고 나니깐 레벨과 클래스를 따지다니.’

포기해야 하나?

아니, 푸른 오리하르콘을 생각하면 포기할 수 없다. 이빨을 까서라도 파티에 들어가도록 하자.

“그러지 말고 받아 주시죠. 적어도 발목은 잡지 않겠습니다.”

“레벨이 어떻게 되시는데요?”

현재 내 레벨은 -3이다. 하지만 마몬의 대검과 멩겔의 플레이트 아머의 성능 덕분에 실제 전투 능력은 30레벨 이상이다. 그러니까 30레벨이라고 고백… 했다간 바로 쫓겨나겠지.

“30… 아니, 마이너스… 아니, 플러스 100이요.”

“30 마이너스, 플러스 100?”

“노~ 노. 그냥 100요.”

마이너스 3레벨 주제에 100레벨이라고 뻥을 치는 게 대책 없긴 하지만, 그 험난한 아슈르 놈의 퀘스트도 어찌어찌 해냈던 나다. 일단 부딪치고 보자.

실제로 파티에 들어가게 되면 전투에 나서지 않고 후위에서 쥐 죽은 듯이 따라만 다닐 계획이기도 하고.

‘조심만 하면 레벨 속인 걸 들키지 않을 수도 있어.’

토반이 꺼림칙한 표정을 지었다.

“그 무기 마몬의 대검 아닙니까? 렙제 65잖아요? 아무리 에픽 아이템이라지만 100레벨이라고 자처하는 분이 사용하기엔 좀……. 정말로 100렙 맞으신지?”

“당연히 맞죠. 제 마몬의 대검은 +5까지 강화한 거라서 아직까지도 제법 쓸 만합니다.”

안면몰수!

나는 무작정 허풍을 쳤다.

강화가 +5 이하일 경우엔 아이템의 외양에 변화가 없다는 점을 악용해서, +0인 마몬의 대검을 +5라고 거짓말 쳤을 정도로 양심을 팔았다.

하지만 토반은 쉽게 넘어오지 않았다.

“마몬의 대검은 5강이라고 해 봤자 100렙이 쓰기엔 영……. 그리고 그 갑옷도 그다지 안 좋아 보이는 것이 100렙이신 분이 끼고 다닐 만한 장비 같진 않은데요. 거기다 투구는 물론이고 부츠랑 건틀렛, 액세서리도 없으시네요?”

정확하다.

현재 내가 착용한 멩겔의 플레이트 아머는 고작 60레벨 제한의 레어템에 불과했다.

투구, 부츠, 건틀렛, 액세서리는 모두 아슈르 놈의 퀘스트를 수행하는 석 달 동안 끊임없이 죽은 끝에 잃었었고…….

‘내 피 같은 아이템들…….’

부츠랑 건틀렛 같은 경우는 내가 내구도 관리를 제대로 못한 바람에 파괴된 것이니 그나마 덜 억울하다. 하지만 투구와 액세서리들은 내구도 관리도 잘했건만 죽을 때 떨어뜨렸기 때문에 잃은 게 너무 억울했다.

나는 악몽 같은 과거들을 회상하게 만든 토반을 노려보면서 말했다.

“방어구와 장신구 따윈 실력 없는 자들에게만 필요할 뿐, 나처럼 컨트롤이 뛰어난 플레이어에겐 무기 한 자루면 됩니다. 사실 이 갑옷도 사냥할 때는 벗습니다. 사냥할 때는 오로지 맨몸에 대검 한 자루만 무장하죠.”

컨트롤은 나와 거리가 먼 단어다. 나는 무조건 스킬빨, 물약빨로 사냥해 왔을 뿐이다.

TV에서 고수들이 사냥하는 모습을 보면 몬스터의 허점을 절묘하게 노려서 일반 공격으로도 스킬처럼 강력한 위력을 발휘하며, 동시에 뛰어난 회피 동작으로 몬스터의 공격을 쉽게 피하던데, 평범한 나는 그런 게 불가능했다.

그냥 닥치는 대로 때리고, 맞고, 맞다가 생명력 떨어지면 물약 먹고. 그렇게 사냥해 왔다.

하지만 당장 레이드 파티에 끼기 위해선 아주 약간(?)의 허풍이 필요했고, 나는 고수들의 발언을 인용해서 컨트롤의 달인인 양 말했다.

근데 그게 큰 실수였다.

전신을 중갑옷과 방패로 단단히 무장하고 있던 토반이 발끈하는 모습을 보였다.

“호오… 방어구를 착용하는 사람들은 죄다 허접들이라 이거군요?”

입은 웃고 있지만 눈빛은 서늘하다.

진심으로 화난 듯하다.

문제는 이자뿐만 아니라 주변에 모여 있는 파티원들 대부분이 공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젠 방어구랑 액세서리 착용하면 실력 없는 놈이란 소리 듣는 세상이네.”

“그러게 말입니다. 내 참, 서러워서 갑옷도 못 입겠네요.”

“방어구랑 액세서리 주렁주렁 달고 다니면 허접 인증인 셈인가? 허접이라고 무시당하고 싶지 않으면 벗고 다니든가 해야겠네, 원…….”

나는 화내면서 비꼬는 사람들을 진정시키기 위해서 노력했다.

“너무들 비약하는군요. 나쁜 뜻으로 한 말이 아닙니다. 다만 고수일수록 방어구에 덜 의지한다는 거고, 제가 방어구를 무장하지 않는 이유를 해명하기 위해서 이런 발언이 나온 거죠.”

“그러니까 어쨌든, 방어구를 무장한 우리는 고수가 아니란 뜻이잖아! 우리보다 레벨이 낮은 너는 고수고!”

우락부락하게 생긴 털투성이 중년인이 고성을 지르면서 끼어들었다.

번쩍이는 2자루 도끼와 갑옷, 그리고 화려한 장신구들을 보아하니 상당한 고렙인 듯하다. 그가 볼 땐 한참이나 저렙인 내가 함부로 말하자 남들보다 더 화가 난 것 같다.

“그리드? 생판 처음 보는 놈인데. 네놈, 이 주변의 사냥터에서 사냥해 본 적은 있냐? 이 지역 몬스터들이 얼마나 강력한지 알고 있다면 방어구 없이 사냥한다는 허풍 따윈 늘어놓을 수 없을 거다.”

그 말에 다른 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웬 듣보잡이 저리도 대책 없이 이빨을 까대나 했더니, 이 지역에 처음 온 신참이라 그랬던 거군.”

“혹시 그리드 저 사람 본 적 있는 분?”

“근처 사냥터에서 한 번도 못 봤어요. 초행인 듯?”

“솔직히 딱 봐도 허접 같은데……. 사실은 100렙도 안 될 것 같아요.”

“제가 볼 땐 혼자 사냥한답시고 까불다가 죽고 아이템 다 떨군 사람 같은데요. 아무래도 파티에 들어오려는 의도가 불순해 보여요. 이미 잃을 것도 없겠다, 먹자나 하자는 식으로 끼려는 듯한…….”

분위기가 점점 험악해진다.

‘예리한 놈들……. 이제 어쩌지? 파티에 끼는 건 포기해야 하나?’

내가 당황하고 있을 때였다. 상의를 입지 않아 맨몸을 드러내고 있는 금발 사내가 등장하며 중재했다.

“다들 그만하시죠.”

사내의 등장에 파티원들이 술렁였다.

“무도가 랭킹 1위 레가스다.”

“장비 아이템 착용 제한이 심해서 레벨 올리기가 그렇게 힘들다는 무도가로 벌써 렙이 180 넘은 사람이잖아?”

“별명이 권성입니다, 권성. 주먹 한 번 내지르면 몹들이 기냥 녹는다던데요?”

“우와~! 온다더니 진짜 왔네! 파티에 끼길 잘했어! 무도가 스킬 중에 방어력 무시하고 급소 공격하는 타격기가 있다는데, 그 기술이라면 숲의 수호자에게도 큰 데미지를 입힐 수 있을걸?”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레가스가 내게 다가왔다.

“대검 전사는 공격 속도가 매우 느리고 모션이 커서 전투 중 방어 동작과 회피 동작을 살리기 어려울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갑옷도 입지 않고 사냥하신다니 놀랍군요.”

레가스는 날렵하고 이상적인 근육과 잘생긴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직업 특성상 매일 상의를 탈의하고 다니는 바람에 여성들에게 놀라울 정도로 인기 많은 랭커다.

실제로 이렇듯 가까이서 보니 잘생기긴 했다. 나란히 있으니 내가 오징어가 된 기분이 든다.

나는 미남이 싫다는 본능에 따라서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별로 대단한 일도 아닌데요.”

“호오, 대단한 일이 아니다라……. 실력이 한층 더 기대가 됩니다. 그 놀라운 실력을 직접 견문하고 싶군요.”

레가스가 다른 이들에게 시선을 돌리고 말했다.

“이분도 파티에 껴 주죠. 본래 이 파티는 레벨과 클래스에 제한이 없었습니다. 이미 파티원 분들 중에 90레벨 미만인 분들도 계실 텐데, 이제 와 100레벨 한 분 더 받는다고 해서 딱히 문제는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여전히 탐탁찮은 반응을 보이자 레가스가 말을 덧붙였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숲의 수호자에게 제대로 된 타격을 입힐 수 있는 레벨은 최소 170 이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벨 제한 없이 최대한 많은 분을 파티로 모셨던 이유는, 숲의 수호자가 끊임없이 소환하는 수정 골렘들을 마크해 줄 인원이 필요해서였습니다. 어차피 숲의 수호자는 여기 있는 토반과 반트너를 비롯한 저희 길드원 17명이서 상대할 겁니다. 저희가 숲의 수호자에게 집중할 동안 수정 골렘들의 발을 묶어 줄 인원을 저희는 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 그리드 님의 실력이라면 저희의 바람에 충분히 응해 주실 것 같고요.”

“…….”

“본인부터 파티에 들기를 희망하고 계시는데, 굳이 거부해야 할 이유를 저는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의 염려대로 혹 의심 가는 행동을 하신다면 그때 가서 제지하면 될 것을, 어찌하여 미리부터 사람을 의심하시는 겁니까?”

명망 있는 자의 발언력은 강하다.

레가스가 그렇게까지 말하자 파티원들 사이에 나를 받아들이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하지만 의도가 불순했다.

“그럼 얼마나 컨트롤을 잘하는지 한번 구경이나 해 보자고요.”

“제대로 못 싸우기만 해 봐라……. 허풍쟁이로 동네방네 소문내고 다닐 테니까.”

“저 사람 갑옷까지 벗고 싸운다고 그랬었죠? 혹시 갑옷 입으려고 하면 못 입게 합시다.”

“먹자 하지 못하게 잘 감시하고요.”

적의로 똘똘 뭉친 파티!

누가 보면 숲의 수호자 레이드 파티가 아니라 그리드 레이드 파티인 줄 알겠다.

‘이 파티에 들어가면 안 돼.’

지금 상태로 파티에 가입했다간 내가 전면에 나서서 싸우는 모습을 파티원들에게 보여 줘야만 한다.

마이너스 3레벨인 나는 당연히 금방 죽어 버릴 테고, 푸른 오리하르콘은커녕 숲의 수호자조차 구경하지 못할 것이다. 덤으로 망신도 딸려 온다.

“됐어요. 파티에는 들어가지 않을 겁니다.”

내가 한 걸음 물러나자 털투성이 중년인이 비웃었다.

“허풍이 들킬까 봐?”

사람을 개처럼 무시하는 태도!

하지만 그의 말이 사실이기 때문에 굳이 열 받을 필요가 없다.

나는 태연하게 설명했다.

“날 믿어 주지도 않는 사람들과 파티를 맺어 봤자 좋을 일 없을 거라는 판단이 서서 그렇습니다.”

본래 파티원끼리는 서로를 믿고 등을 맡길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저들은 모두 나를 의심하며 탐탁찮게 여기고 있다.

파티원들은 내 말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뭐… 그야 그렇지.”

“생각해 보니 우리가 너무 쓸데없이 흥분해서 저자를 나쁘게만 몰아갔군.”

“그러게 말이야. 사실대로 말한 것일 수도 있는데, 직접 겪어 보지도 않고 무작정 욕만 해 댔으니 미안하게 됐어.”

“맞아. 실제로 저 사람이 우리에게 무슨 잘못을 저지른 것도 아니잖아요? 말을 좀 기분 나쁘게 했을 뿐이지.”

나는 더 이상 나를 붙잡지 않는 파티원들을 뒤로하고 자리를 떠났다. 그런 나를 레가스가 뒤쫓아 왔다.

“뭡니까?”

쌀쌀맞은 태도로 물었지만 레가스는 오히려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악수를 청해 왔다.

“다음에 인연이 닿으면 또 봅시다. 방어구를 사용하지 않는 대검 전사. 무도의 길을 걷는 사람으로서 당신에게 큰 관심이 갑니다.”

이자는 나를 의심하지 않는다. 허풍쟁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진심 어린 눈빛으로 마주해 온다.

나는 그와 악수하며 생각했다.

‘뭐가 이렇게 순진해?’

빚보증 잘 서 주게 생겼다. 언젠가 기회가 닿는다면 친분을 쌓았다가 돈 빌리기 딱 좋을 상대다.

“그럼 또 언젠가.”

훗날 돈을 떼어먹… 아니, 신세 좀 지기 위해, 나는 레가스에게 여태까지와 달리 호감을 줄 만한 미소를 지어 주면서 작별의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곧장 대장간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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