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템빨-3화 (1,549/1,794)

제2장

파그마의 후예

임철호는 가상현실 시스템을 구축한 33인 과학자의 핵심이자, S.A그룹을 설립해 Satisfy의 개발을 진두지휘한 인물이었다.

신의 지식을 품은 자, 가상현실 시스템 구축 계획의 발안자, 세상을 바꾼 자, Satisfy의 아버지, 일국의 부를 쌓은 자,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해마다 세계 각국으로부터 수십 회의 귀화 요청을 받는 인물, 대한민국의 자랑 등등.

보유한 수식어가 셀 수 없이 많은 그는 국제 행사에 참석할 때마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았고, 미국 대통령을 초월하는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의 인생은 전 세계인의 선망을 샀다.

하지만 실상 그의 삶은 언론에서 다뤄지는 것처럼 화려하기만 한 게 아니었다.

Satisfy를 서비스하는 S.A그룹의 총수이면서 Satisfy의 개발팀장까지 역임하고 있는 그는 하루 평균 수면 시간이 4시간이 채 못 될 정도로 일에 치여 살고 있었다.

그렇다고 불행하다?

아니다. 스스로 원해서 하는 일이다.

임철호는 20억 인구의 마음을 사로잡고 그들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Satisfy를 개발하고 서비스하는 일에서 자부심과 충만감을 느끼고 있었다.

“으음.”

임철호는 연속해서 울리는 전화벨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깨어났다. 시간을 확인해 보니 새벽 2시 50분이다.

잠들고 20분밖에 지나지 않은 것이다.

한 달째 계속된 야근 탓에 누적된 피로는 임철호의 육체와 사고력을 무겁게 짓눌렀다.

전화를 받는 그의 음성이 다소 날카로웠다.

“무슨 일인가? 뭐?”

전화기 저편 너머로 들려오는 다급한 목소리.

임철호는 잠결에서 번쩍 깨어났다.

“내 당장 가도록 하지! 도착하는 즉시 보고를 들을 수 있도록 준비해 놓게!”

옷가지를 대충 걸친 임철호는 즉시 엘리베이터에 올라 저택 지하로 내려갔다.

지하에는 고가 브랜드의 한정판 자동차들이 종류별로 주차되어 있었다.

평소에는 잘 끌지 않던 버터플라이 도어 형식의 스포츠카에 올라탄 그는 최고 출력에 가까운 속도로 회사를 향해 직행했다.

“어떻게 됐나?”

Satisfy 운영팀 사무실.

허겁지겁 달려 들어온 임철호가 숨 돌릴 틈도 없이 물었다.

그에게 고개를 숙인 운영팀장 최나희가 주황색 뿔테 안경을 고쳐 쓰며 대답했다.

“5분 전에 전직했습니다.”

“재미있군!”

격앙된 임철호가 자리에 앉았다.

그가 벽면에 설치된 거대한 모니터로 시선을 돌리자 멈춰 있던 영상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영상의 주인공은 73레벨의 전사 플레이어였다.

그 동양인 청년이 북쪽 끝의 동굴을 발견해서 파그마의 기서를 손에 넣고, 그것을 사용하게 되는 과정까지가 담겨 있었다.

급히 나오느라 대충 걸치기만 했던 와이셔츠 단추를 여미면서 영상을 지켜보는 임철호에게 직원이 두 장의 서류를 건네주었다.

그것을 읽어 본 임철호가 턱을 매만졌다.

“현실에서도, Satisfy에서도 특출한 부분이 전혀 없이 평범한 자로군. Satisfy를 접한 뒤에는 자제력 부족으로 중독 현상을 겪어 최하위층의 인생이 되었고. 이 정도 인물이 복잡한 알고리즘을 구성해서 은폐시켜 놓은 북쪽 끝의 동굴을 어떻게 찾아낸 거지? 스스로도 모르고 있던 탐사적 재능을 자각하고 발휘한 건가?”

슈퍼컴퓨터 ‘모르페우스’와 개발팀의 분석에 의하면, 북쪽 끝의 동굴이 유저들에게 발견되는 시기는 앞으로 1년 10개월 후였다.

즉, 레전드리 전직서 ‘파그마의 기서’가 세상에 등장하는 시점이 원래라면 1년 10개월 후였다는 뜻이다.

한데 웬 청년이 모두의 예상을 깨뜨리고 시기를 훌쩍 앞당겨 버렸다.

2차 전직을 해낸 유저의 숫자조차 채 100명이 안 되는 시점이건만 홀로 레전드리 전직이라니.

엄청난 의외성을 발휘한 그에게 임철호는 지대한 흥미를 느꼈다.

하지만 최나희는 청년을 특별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가 북쪽 끝의 동굴을 발견해 낸 것은 순전히 우연과 집착의 산물일 뿐입니다.”

“과연 그럴까.”

그리드라는 아이디를 사용하는 저 신영우라는 청년은 자그마치 1년 동안이나 하나의 도시에만 머물면서 도시 내 명성을 8천 이상 쌓았다. 그리고 마침 지력 수치가 50 이하였다.

이로써 아슈르 백작에게 퀘스트를 부여받을 조건을 완성해 낸 것이다.

200레벨 이상의 몬스터들이 득실거리는 위험 지역들을 80레벨도 안 되는 몸으로 누비게 되어 수십 번이나 죽음을 맛보았음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석 달간 탐험했다.

북쪽 끝의 동굴을 발견한 이후가 가장 인상적이다.

퀘스트 아이템을 감정하고, 욕심에 눈이 멀어 로그아웃을 선택함으로써 레전드리 전직서를 소유할 수 있는 연계 퀘스트의 발동 요구 조건을 충족시켰다.

‘로그아웃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이 아니라도 발동 요구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 방법은 많다만.’

어쨌든, 최나희의 말대로 청년의 행보에는 우연과 집착이 부각되어 있었다.

하지만 우연도 한두 번이지, 청년은 긍정적인 우연이 겹치면 천운이 될 수도 있음을 증명해 보였다. 포기하지 않는 끈기와 노력이 얼마나 귀중한 것인지도 되새겨 주었다.

‘운도, 끈기도 하나의 훌륭한 능력이야.’

반짝이는 눈빛으로 모니터 속의 청년을 주시하는 임철호에게 최나희가 질문했다.

“마이너스 레벨은 어떻게 된 거지요?”

“그 또한 천운.”

“네?”

명색이 과학자가 운을 언급하니 어폐가 있는가?

실소를 흘린 임철호가 설명해 주었다.

“자네도 알다시피 레벨 10 이하의 플레이어는 초보자 혜택을 받기 때문에 죽어도 경험치가 감소하질 않는다네. 그래서 레벨 다운 현상을 겪을 수가 없지. 하지만 사실은 숨겨진 시스템이 존재해. 퀘스트 실패로 인한 레벨 다운은 초보자 혜택과 관계없이 강제적으로 적용된다는 내용일세. 하지만 실패 시 레벨이 다운되는 고난이도 퀘스트를 초보자가 얻을 수단이 없기 때문에 영영 숨겨진 시스템으로 남아 있을 가능성이 높았지.”

직원에게 커피를 건네받은 임철호가 향을 음미한 뒤 이어 말했다.

“개발팀에서는 정상적으로 게임을 진행한 유저가 ‘아슈르 백작의 은밀한 부탁’ 퀘스트를 얻게 되는 시점의 레벨을 최소 350으로 예측하고 있었네. 350레벨 이상의 유저라면 ‘아슈르 백작의 분노’ 퀘스트를 클리어하고 살아서 파그마의 기서를 차지할 가능성이 높았어. 즉, 저 청년처럼 능력이 부족해서 퀘스트 도중 어쩔 수 없이 전직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란 뜻일세. 오직 저 청년이었기 때문에 이 퀘스트를 통해서 숨겨진 시스템을 발견할 수 있었던 걸세.”

최나희는 정리해 보았다.

그리드는 힘들게 얻은 전직서를 잃게 될까 염려하여 퀘스트 도중 전직을 해 버리는 극단적인 선택을 감행했다. 이때 레전드리 전직에 대한 페널티가 적용되어 레벨이 1이 되어 버렸다.

본래 10레벨 이하는 초보자 혜택 덕분에 죽어도 경험치 하락을 겪지 않는다. 하지만 퀘스트 실패에 따른 레벨 다운만큼은 예외.

그리드는 레벨이 1임에도 불구하고 퀘스트 실패로 인해 강제적으로 레벨이 2 다운되었다. 그 결과 마이너스 1레벨이 되어 버렸다.

임철호가 이 현상을 굳이 천운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설마, 마이너스 레벨일지라도 정상적인 레벨 업이 가능하고, 레벨을 올릴 때마다 능력치 포인트를 획득할 수 있는 건가요?”

임철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네. 현재 마이너스 1레벨인 그가 플러스 1레벨이 되기 위해선 2번의 레벨 업을 해야 한다네. 그렇다면 얻게 되는 능력치 포인트가 20일세.”

“…같은 레벨 캐릭터보다 기본 스탯이 20이나 높아진다는 뜻이군요.”

“그렇지. ‘아슈르 백작의 분노’ 퀘스트를 정상적으로 클리어할 수 있는 수준의 플레이어였다면 결코 얻을 수 없었을 혜택을 청년은 손에 쥔 것일세. 그야말로 행운의 사나이로군.”

직원들의 술렁임이 커졌다.

최나희가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예상보다 2년가량이나 빨리 등장하게 된 레전드리 직업입니다. 그렇잖아도 레전드리 직업은 매우 강력한데, 스탯까지 동급 레벨 캐릭터보다 20 높게 보유하게 된다면 밸런스를 붕괴시킬 우려가 있지 않을까요?”

염려하는 그녀에게 임철호는 신영우의 정보가 나열된 서류를 팔락여 보였다.

“그래프를 보니 그는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사냥에 매진한 시간에 비례해 레벨이 꽤 낮은 편이더군.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쾌적한 환경을 찾기 위한 모험도 떠나지 않고 1년이나 한 도시에 머물렀던 미련한 인물일세. 이를 보아 랭커들처럼 게임에 큰 재능이 있는 이가 아니야.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네.”

“정말로 괜찮을까요? 아무리 그래도 다른 유저들의 눈에는 그가 충분히 특별해 보이게 될 텐데요.”

“설령 괜찮지 않다면 어쩔 텐가? 우리가 게임 진행에 직접 개입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게. 랭커가 아닌 평범한 유저가 전직하게 된 것이 천만다행 아닌가? 더군다나 파그마의 후예는 레전드리 직업 중에서 전투 능력이 비교적 약한 편이고……?”

모니터 속 청년의 모습을 주시한 채 말해 나가던 임철호가 움찔하며 입을 다물었다.

그 모습에 최나희가 의아해하자 그는 고개를 저으면서 일어났다.

“아니, 별일 아닐세. 나는 이만 가 봐야겠군. 자네들이 야심한 시각까지 고생이 많아. 내 조만간 보너스를 거하게 쏘도록 하지. 조금 더 고생들 해 주시게.”

보너스라는 말을 듣자 들뜬 직원들이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임철호는 그들에게 웃어 준 뒤 사무실을 떠났다.

‘왜 저러시지?’

소란스러운 직원들 사이에서 최나희만은 침묵했다. 갑자기 놀라 말문을 닫은 임철호의 모습이 신경 쓰였기 때문이다.

한편, 엘리베이터에 오른 임철호는 신영우의 이름을 곱씹으며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

파트리안에서 추방당한 탓에 거주지를 잃은 나는 사망 장소 인근의 신전에서 부활하게 되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암흑의 신, 야탄을 모시는 신전이었다.

어두운 일대에 음산한 기운이 넘실거렸고, 칙칙한 로브를 뒤집어쓴 흑마술사들이 음침한 표정으로 배회하고 있었다.

펄떡펄떡 뛰는 심장을 올려놓은 제단을 둘러싸고 영문 모를 주문을 외치는 이들도 있었는데, 보고 있노라니 섬뜩해서 외면하게 됐다.

끼야아아악!

고통에 찬 여인의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지하에서부터 아득하게 들려왔다.

“…뭐, 악명에 비해서 별거 없는 곳이군.”

나는 군복무까지 마친 대한의 건아다. 옆에 누구 한 명만 같이 있으면 공포 영화도 감상할 수 있는 일반적인 담력을 소유했다.

발 잘못 들인 여성 유저들을 끝내 울리고 만다는 야탄의 신전일지라도 내겐 아무런 두려움도 주지 못한다.

“사, 사, 상태창.”

왠지 목소리가 떨리지만 괘념치 말자.

나는 주변 풍경을 최대한 무시하면서 눈앞에 떠오른 상태창에 집중했다.

이름:그리드

레벨:-1 (0/20)

직업:파그마의 후예

*아이템 제작 시 추가 옵션을 더하는 확률이 상승합니다.

*아이템 강화 확률이 상승합니다.

*모든 장비 아이템을 조건 없이 착용할 수 있습니다. 단, 아이템 등급에 따른 페널티가 발생합니다.

칭호:전설이 된 자

*상태 이상에 잘 걸리지 않습니다.

*생명력이 최소치일 때 잘 죽지 않습니다.

*쉽게 인정받습니다.

생명력:14/14 마나:3/3

근력:1 체력:1 민첩력:1 지력:1

손재주:1

평정:1 불굴:1 위엄:1 통찰력:1

능력치 포인트:0

무게:3,035/20

*소지 무게 한도가 200퍼센트를 초과하여 이동속도가 100퍼센트 하락합니다.

몸이 무거워서 제대로 된 능력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상태 이상 ‘쇠약’에 걸릴 확률이 극도로 높아집니다.

만감이 교차했다.

다시 봐도 납득할 수 없는 마이너스 레벨과 토끼 한 마리랑 싸워도 이길 수 없는 능력치는 나를 절망하고 분노토록 만들었고, 직업과 칭호가 부여한 특수한 기능들은 반대로 나를 벅찬 감동에 떨게 만들었다.

‘일단, 마이너스 레벨이 버그가 아니라는 사실은 알겠네.’

레벨 옆 괄호 안에 적혀 있는 수치는 현재 경험치와 다음 레벨까지 필요한 경험치를 뜻했다.

필요 경험치가 존재한다는 것은 레벨 업이 가능하다는 말일 터.

최악의 경우, 버그에 걸려서 레벨 업을 못하게 되는 건 아닐까도 걱정했었는데 기우였다.

‘버그가 아니라는 점은 다행이다만…….’

기분은 여전히 더럽다.

생각해 보라. 원래 내 레벨은 70이 넘었었다. 그런데 지금은 캐릭터를 갓 생성한 신규 유저들보다 레벨이 낮은 위치다.

‘하지만 이 정도는 감수해야지.’

나는 마음을 추슬렀다. 레벨이야 시간이 걸릴지라도 다시 올리면 된다.

이렇게 긍정적인 사고가 가능한 이유는, 직업과 칭호가 부여한 특성들 덕분이었다.

아이템 제작에 대한 지식은 전무하여 추가 옵션을 붙여 주는 확률 상승에 대해서는 왈가왈부할 수 없지만, 어쨌든 높여 준다니 좋은 걸 테고.

‘강화 확률 상승이라.’

Satisfy의 모든 장비 아이템들은 +10까지 강화가 가능했다.

하지만 강화에 필요한 재료 아이템의 가격이 비싸고, 강화 수치와 아이템 등급이 높을수록 강화 확률이 눈에 띄게 낮아졌다.

또한 강화에 성공하면 강화 수치가 +1이 되는 게 고작인 데 반해, 실패할 경우 -3이 되기 때문에 평범한 유저가 고강화 장비를 얻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다.

강화 수치가 +6이 넘어가는 아이템은 가격이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할 정도.

‘확률을 몇 퍼센트나 올려 주는지 모르겠지만, 잘만 되면 큰돈을 만질 수도 있겠는데?’

언급한 2개의 직업 특성 모두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관심을 끄는 부분은 모든 장비를 조건 없이 착용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이는 불합리할 정도로 큰 메리트였다. 페널티가 얼마나 적용되느냐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자칫하면 게임의 밸런스마저 붕괴시킬 수준인 것이다.

‘설마 사기급 특성?’

Satisfy의 장비 아이템들은 대부분 사용 조건이 붙어 있었다. 그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할 경우 아이템을 착용할 수 없었다.

바로 그 점 때문에 레벨 구간별로 강함의 한계가 존재했다.

하지만 직업의 특성으로 인해서 내게는 적용되지 않는 사항이 될 수도 있었다.

‘정말일까?’

나는 인벤토리를 열어 보았다.

<마몬의 대검>

등급:에픽

내구력:88/204 공격력:178~301 공격 속도:-16%

*크리티컬 시 물 속성 데미지 추가.

파미앙 호수의 수호자 마몬이 애용하던 대검입니다. 오랜 세월 동안 호수에 잠겨 있던 영향으로 물의 기운이 깃들어 있습니다.

사용 조건:레벨 65 이상, 근력 260 이상, 체력 150 이상.

무게:1,050

<멩겔의 플레이트 아머>

등급:레어

내구력:51/180 방어력:165 이동속도:-2%

*근력:+10

요새 도시 파트리안의 대장장이 멩겔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작품입니다. 방어력을 살리고 무게를 낮췄습니다. 착용자는 멩겔이 작품에 담은 의지를 감지하고 힘이 솟아남을 느낍니다.

사용 조건:레벨 60 이상, 근력 180 이상.

무게:1,203

현재 내 능력치는 마몬의 대검과 멩겔의 플레이트 아머에 붙어 있는 사용 조건을 하나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즉, 정상적인 경우라면 두 아이템 모두 착용할 수 없다는 뜻이 된다.

하지만 나는 예외였다.

[직업 특성의 효과로 <마몬의 대검>을 장착하였습니다.]

[아이템 사용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여 페널티가 적용됩니다.]

[<마몬의 대검>의 공격력이 30퍼센트 하락합니다. 옵션 효과가 절반만 적용됩니다.]

[<마몬의 대검>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면 페널티가 줄어듭니다.]

[직업 특성의 효과로 <멩겔의 플레이트 아머>를 장착하였습니다.]

[아이템 사용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여 페널티가 적용됩니다.]

[<멩겔의 플레이트 아머>의 방어력이 20퍼센트 하락합니다. 옵션 효과가 절반만 적용됩니다.]

[<멩겔의 플레이트 아머>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면 페널티가 줄어듭니다.]

“대박…….”

Satisfy에는 사용 조건 없는 장비 아이템이 극히 드물었다.

나는 사용 조건 없는 아이템의 대표 격이라고 할 수 있는 초보자 아이템 세트를 떠올려 보았다.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레벨 1 때 지급받는 초보자 대검의 경우 공격력이 5~13 선이고 초보자 갑옷의 방어력은 7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 나는 1레벨도 아닌 -1레벨 주제에 최소 124에서 최대 210가량의 공격력을 발휘하는 무기와, 132 방어력의 갑옷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레벨 복구하는 거 의외로 쉽겠는데?’

레벨이 낮아 근력이 아무리 허접할지라도, 마몬의 대검의 공격력만으로도 레벨 20대 초반까지의 몬스터는 한두 방에 사냥할 수 있을 것이다.

멩겔의 플레이트 아머 덕분에 저렙 몬스터들에게는 맞아 봤자 데미지도 안 들어올 테니까 생명력이 낮은 문제도 해결될 테고.

즉, 나는 템빨 덕분에 동급 레벨의 다른 유저들보다 훨씬 더 빠르고 수월하게 몬스터를 사냥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는 광렙과 직결될 것이다.

‘레어템은 기본 능력치가 20프로 하락, 에픽템은 기본 능력치가 30프로 하락인가. 옵션 효과는 공통적으로 절반만 적용되고…….’

페널티가 의외로 적다. 유니크와 레전드리 아이템에는 이 이상의 페널티가 적용될 테지만, 현 시점에서는 충분히 사기급인 특성이라 할 수 있겠다.

“과연 레전드리 직업……! 근데 이해도가 뭐지?”

전율을 느끼던 나는 알림창에 떠오른 이해도에 대해서 뒤늦게 의문을 품고 상세 정보를 확인해 보았다.

<아이템 이해도>

파그마의 후예는 장비 아이템을 감정, 사용, 분해, 수리, 탐구함으로써 아이템의 구성 재료와 제작 원리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이해도가 높아질수록 아이템을 보다 더 효율적으로 다룰 수 있으며, 이해도가 100퍼센트가 될 경우에는 해당 아이템의 제작법을 습득할 수 있습니다.

“오호~”

이해도가 높을수록 페널티를 줄여 준다는 말이 이제야 이해가 간다.

“거기다가 제작법까지 추가해 준다고? 쩌네…….”

보통의 생산직 유저들은 제작법을 구하기 위해서 비싼 돈을 지불하거나 험난한 퀘스트를 수행해야만 했다.

하지만 나는 이해도만 높이면 공짜로 얻을 수 있다 하니 이 또한 기뻐해야 할 일이다.

‘마침 수리 스킬도 생겼고, 아이템 내구력도 떨어져 있겠다, 이따가 시험 삼아 수리를 해 봐야겠군.’

결정한 나는 이어서 칭호 특성을 살펴보았다.

전투 중에 가장 주의해야 할 부분은 최대한 상태 이상에 걸리지 않는 것이다. 잘 싸우다가도 상태 이상 하나 걸려서 상황이 역전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던 탓이다.

그런데 내 칭호가 상태 이상에 걸릴 확률을 낮춰 준다고 한다.

생명력이 최소치일 때 잘 죽지 않는다는 말을 직역하자면 일시적으로 불사신이 된다는 뜻일 테고.

‘쉽게 인정받는다는 건, NPC와의 호감도가 쉽게 오른다는 뜻 정도로 해석하면 되려나?’

“푸후훗…….”

기쁘다. 너무나도 기뻐서 자꾸만 헤실헤실 웃게 된다.

직업 특성과 칭호 특성만으로도 다른 일반 유저들을 훌쩍 앞서는 기분이었다.

나는 특별해졌다. 세 달간의 고생을 제대로 보상받은 기분이다.

“하지만…….”

전직서를 사용하지 않고 현금으로 팔았더라면, 나는 지금쯤 훨씬 더 큰 기쁨을 누리고 있었을 터.

“빚쟁이 신세에서 벗어나 외제차를 끌고 다닐 수 있는 기회를 놓쳐 버리다니!”

그토록 좋았던 기분이 급격하게 나빠졌다.

“아슈르 이 개~#@….!^%*@….!!”

좌절하며 주저앉은 나는 바닥을 때리며 울분을 토했다.

그리고 아슈르를 향해 온갖 욕설을 퍼붓기를 한참. 점차 마음이 달래져 갔다.

진정한 나는 생소한 스탯들을 확인해 보았다.

<평정>

상태 이상에 걸릴 확률이 낮아지며, 상태 이상에 걸릴 경우 빠르게 회복됩니다.

*수치가 높을수록 효과가 상승합니다.

*이 능력치에는 능력치 포인트를 분배할 수 없습니다.

<불굴>

받는 데미지의 일부를 일정 확률로 무효화시킵니다. 생명력이 낮아질수록 확률이 상승합니다.

*수치가 높을수록 효과가 상승합니다.

*이 능력치에는 능력치 포인트를 분배할 수 없습니다.

<위엄>

다른 이들이 함부로 대하지 못합니다. 적의 경우 희박한 확률로 굴종시킵니다.

*수치가 높을수록 효과가 상승합니다.

*이 능력치에는 능력치 포인트를 분배할 수 없습니다.

<통찰력>

대상을 간파합니다. 위험을 예측합니다.

*수치가 높을수록 확률이 상승합니다.

*이 능력치에는 능력치 포인트를 분배할 수 없습니다.

스탯 하나하나가 대단한 효과를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능력치 포인트를 분배할 수 없다면 무슨 수로 수치를 올리란 거야?’

명확한 단점을 가진 꼴을 보아하니, 거창한 설명과 달리 실용성 없는 스탯이 아닐까 걱정이 든다.

이어서 스킬창을 열어 보려는 순간이었다.

“으아악!!”

나는 깜짝 놀라서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무엇인가가 갑자기 내 등을 찔렀기 때문이다.

뒤늦게 이곳이 야탄의 신전임을 상기한 나는 모골이 송연해짐을 느꼈다.

“뭐, 뭐야!!”

나는 황급히 뒤로 몸을 틀면서 반사적으로 마몬의 대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웬 사내가 어이쿠, 하면서 내 공격을 피하더니 두 손을 살짝 들어 보였다.

“어이, 진정하라고. 사람 죽일 일 있어?”

백인 사내였다.

가벼운 무장과 날렵한 몸놀림을 보아하니 어쌔신 계열의 직업을 가진 듯하다.

‘내 등을 찌른 것은 저 털투성이 손가락인가.’

고작 손가락 따위에 깜짝 놀라서 비명을 지르고 다짜고짜 검을 휘두르는 추태를 보이다니, 민망하다.

“뭡니까?”

사내가 어깨를 으쓱였다.

“삭막하군. 사람 죽일 뻔해 놓고 사과도 안 하는 겐가?”

능글능글한 미소가 영 거슬렸다. 내가 싫어하는 유형의 사람이다.

‘이 인간이 초면에 자꾸 반말이네.’

확실히, 사내는 나보다 나이가 많아 보였다. 언뜻 봐서는 서른 중반 정도 같다.

하지만 나는 백인이 얼마나 겉늙어 보이는 인종인지 지난 1년간의 경험으로 충분히 깨닫고 있었다.

언젠가는 나보다 7살이나 어린 놈한테 형이라고 불렀던 적도 있다.

그 자식, 겉모습은 분명 30대였었는데…….

“크흠.”

수치스러운 과거를 떠올리고 만 나는 바들바들 떨리는 주먹을 간신히 진정시키며 말했다.

“그 점은 미안하게 됐군요. 하지만 그쪽도 예고 없이 사람 등을 찔러서 놀라게 만들었으니 사과하는 게?”

사내가 하하, 소리 내서 웃더니 악수를 청했다.

“당돌한 청년이로군. 자네가 워낙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기에 말을 걸어도 듣지를 못하더라고. 그래서 실례를 범하게 되었으이. 미안하게 됐네.”

나는 사내의 악수를 거부하며 물었다.

“그래서 왜 불렀냐고요.”

괜히 머쓱한지 머리를 긁적인 사내가 손을 거두며 말했다.

“자네도 알다시피 이 야탄의 신전에는 악의 기운이 넘실거리고 있지. 하여 평범한 사람들은 잠시만 머물러도 공포에 빠지지 않나? 하지만 내가 관찰한 결과 자네는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멀쩡하더군. 혼자 낄낄거리며 웃기까지 하는 모습을 보아 여유까지 느껴지던데. 자네, 사실은 엄청난 실력자지?”

‘가만, 이거 설마…….’

불길함을 감지한 나는 사내의 머리에 떠올라 있는 그의 이름을 확인해 보았다. 때마침 사내의 눈이 반짝였다.

“내 이름은 도란. 스테임 백작 가문을 은밀히 보위하는 그림자일세. 한데 내가 휴가를 다녀온 이틀 사이에 백작 영애께서 납치를 당하셨더군. 계속 추적한 끝에 현재 영애께서 이 신전의 지하에 갇혀 계심을 알게 되었다네. 혹 내게 힘을 보태 줄 수는 없겠는가? 충분한 사례를 할 테니 꼭 좀 부탁하겠네.”

“…설마 했더니만.”

유저인 줄 알았더니 사실은 NPC였다.

워낙 완벽한 인공지능 탓에 유저와 NPC의 구분이 모호하여 이런 착각을 가끔씩 하게 된다.

사내의 머리 위에 떠 있는 이름 색깔이 NPC를 상징하는 녹색임을 뒤늦게 확인한 나는 곧이어 떠오르는 퀘스트 알림창을 읽어 보았다.

<백작 영애 구출>

난이도:S

스테임 백작의 외동딸 아이린은 아름답고 순결한 처녀다. 야탄의 신도들은 신성한 처녀의 피를 제물로 바치기 위해서 아이린을 이곳 지하로 납치해 왔다.

퀘스트 클리어 조건:퀘스트 수락 후 1시간 이내에 아이린을 구출.

클리어 보상:3천 골드, 낮은 확률로 백작의 사위.

*백작의 사위:품위 능력치 개방, 모든 능력치 +20.

백작 영애를 신부로 맞이하여 준자작으로 대우받습니다. 권력과 명예가 상승합니다. 귀족들의 사교계에 진출할 수 있습니다. 매달 품위 유지비를 받습니다. 고위직, 혹은 영주로 올라갈 수 있는 지름길이 될 수도 있습니다.

퀘스트 실패 시:레벨 -2.

[퀘스트를 수락하시겠습니까?]

내가 미쳤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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