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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1화 (1권 프롤로그) (1,547/1,794)

[소개]

박새날 게임 판타지 장편소설 『템빨』 공사장에서 벽돌 나르고 삽질하는

불운한 인생의 신영우. 그런데 심지어 게임 속에서 노가다라니.

하지만 불운한 인생이라 한탄하던 그에게도 행운이 찾아오는 것인가.

퀘스트 수행을 위하여 북쪽 끝의 동굴로 향한 '그리드'.

그곳에서 '파그마의 기서'를 발견한 그는 레전드리 직업으로 전직하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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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 1권

-프롤로그-

“5분 남았습니다!”

코크로 섬 던전 4층.

통합 랭킹 16위 극검을 필두로 한 상위 랭커 8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그들의 뒤로는 은기사 길드의 정예 200명이 도열해 있었다.

작은 요새를 점령할 수도 있을 전력이 한데 모였으니 실로 장관이다.

하지만 그들로서도 부족하다는 듯이, 모두의 얼굴에는 긴장감과 불안감만이 가득했다.

“4분 남았습니다!”

점차 시간이 다가올수록 길드원들의 초조함이 극에 달했다. 안절부절못하며 다리를 떨거나 손톱을 물어뜯는 이도 있었다.

그들을 둘러본 극검은 말없이 시선을 내렸다. 검을 쥐고 있는 손에 식은땀이 흥건했다.

‘도무지 진정이 안 되는군.’

코크로 섬 던전은 은기사 길드가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었다. 2주에 단 한 번 4층에 출현하는 보스 몬스터, 헬가오를 독식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헬가오가 예상보다 강력하고 패턴이 다양한 탓에, 여태까지 5번의 원정 중 단 한 차례도 공략에 성공하지 못한 실정이었다.

극검과 은기사의 정예들은 다음번엔 기필코 성공하겠다는 일념으로 지난 한 달간 현금으로 아이템을 강화하고 시간을 쥐어짜 레벨을 올려 왔다.

투자한 만큼 확실하게 강해진 전력이건만, 헬가오의 막강함을 절실히 알고 있는 그들은 섣부른 자신감을 가질 수가 없었다.

“3분 남았습니다!”

앞으로 3분 후면 헬가오가 등장하면서 이곳이 온통 불바다로 변하리라. 이 중 몇은 그 불길조차 감당하지 못하고 죽게 되리라.

“2분 남았습니다!”

뜨거운 열기가 서서히 피어오르며 공간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제기랄.’

모두에게 용기를 북돋아 줘야 할 위치인 극검이 오히려 두려움에 휩싸였다.

묵색 불꽃을 전신에 두르고, 열풍을 일으키는 지팡이를 휘둘러 대는 헬가오의 압도적인 모습이 명확하게 상기된 탓이었다.

‘놈을 해치우기엔 아직도 우리의 전력이 부족하지 않을까?’

10위권 최상위 랭커의 힘이 보태진다면 혹 모를까, 자신들만의 힘으로는 이번 원정 역시 실패하리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하지만 길드 내 최고의 랭커인 자신이 나약한 모습을 보일 수도 없었기에 극검은 이를 악물고 공포를 견뎌 냈다.

‘해내자. 해낼 수 있다. 우리는 강하다!’

마음을 다잡은 극검이 각종 버프 물약을 복용하기 시작하자 다른 이들도 그를 따랐다.

바로 그때였다.

“1분 남았… 엇? 침입자! 침입자랍니다!!”

“뭐라고?”

길드원 전원의 시선이 입구로 향했다.

한 청년이 혈혈단신으로 입장하고 있었다.

무기도, 갑옷도 무장하지 않고 망토 하나 휘두른 모습이 이색적이었다.

‘저 꼴로 아래층의 수비 병력을 단신으로 돌파했단 말인가?’

고도로 단련된 어쌔신일까?

아니다. 어쌔신이 저렇게 모습을 드러내 놓고 다닐 리 없다.

극검은 청년의 머리 위에 떠 있는 이름을 몇 번이나 곱씹어 보았다. 하지만 기억의 편린을 아무리 뒤져 봐도 낯설기만 했다.

‘랭커도 아닌데?’

극검이 다른 동료들에게 저치를 아느냐고 눈짓했지만 다들 하나같이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별것도 아닌 녀석을 여기까지 들이다니, 경계병들이 농땡이를 피우고 있었나 보군. 한심한.’

그렇게 결론짓고 얼굴을 찌푸린 극검이 청년에게 경고했다.

“여기는 우리 은기사 길드가 통제하고 있는 구역이다. 어찌 예까지 오를 수 있었는지는 모르겠다만, 죽고 싶지 않다면 썩 돌아가라.”

“은신이 갑자기 왜 풀렸나 했더니 헬가오에게 감지당한 탓이었나?”

극검의 경고를 가볍게 무시한 청년이 혼잣말을 하면서 망토를 벗어던졌다.

“오오!”

곳곳에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빠른 속도로 청년의 전신에 장착되기 시작하는 갑옷의 외관이 상당히 멋졌기 때문이다.

금속 재질임에도 불구하고 맞춤 정장인 양 착용자의 핏을 완벽하게 살려 주었고, 매끄러운 표면은 어찌나 반들거리는지 거울로도 활용할 수 있을 듯했다.

적색과 흑색, 그리고 금색이 격조 있는 조화를 이루어 품격을 표출했다.

특히 개성적인 점은 꼬리뼈 부근에 뻗어 나온 1미터 길이의 꼬리였다. 칼날처럼 날카로운 그것은 놀랍게도 스스로 움직이고 있었다.

“뭐, 뭐야, 저 갑옷?”

“겁나 멋있네……. 유니크인가?”

생전 처음 보는 형식의 갑옷을 목격하고 놀란 길드원들이 흥미를 억제하지 못하고 수군거렸다.

그에 발끈한 극검이 언성을 높였다.

“지금 그딴 게 중요하냐! 당장 저놈을 쫓아내지 않고 뭐 하는 거냐!”

잠시 후면 헬가오가 등장한다. 그리고 던전에서 탈출할 수 없게 된다. 그 전에 거슬리는 외부인을 처리해야만 했다.

갑옷에 대한 관심을 일단 접어 둔 길드원들이 극검의 명령을 받들어 실행에 옮기려는 순간이었다.

쿠오오오오오!!!

[지옥불의 주인 헬가오가 출현합니다.]

[헬가오의 포효로 인해 공포, 혼란, 쇠약 효과가 적용됩니다.]

[헬가오의 열기로 인해 화염 저항력이 50퍼센트 하락합니다.]

[솟아오른 불기둥이 당신을 덮칩니다.]

“크악!!”

“히이익!”

전신을 휘감고 있는 묵색 불길 탓에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는 괴수가 등장하자 길드원들 중 절반이 빈사 상태에 빠지거나 불타 죽어 버렸다.

간신히 버티고 선 절반의 인원 중에서도 멀쩡한 이가 드물었다.

극검은 떠오른 알림창을 보고 경악했다.

‘화염 저항력을 86프로까지 올렸는데도 이 정도 피해라니……!’

이번에도 실패다.

그것을 직감한 극검이 절망하던 중, 문득 자신의 두 눈을 의심했다.

정체 모를 청년.

다른 이들은 모두 화염에 휩싸여 어찌할 바 모르고 있는 와중에, 그는 홀로 멀쩡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걸음걸이에서 여유가 느껴질 정도로 그는 태연했다.

“어, 어떻게… 헉?”

이어진 광경을 목격한 극검은 어처구니가 없어서 말문을 닫아 버렸다.

헬가오가 날뛰며 다른 이들을 무참하게 살육하고 있는 이때 청년은 곡괭이를 쥐어 들었다. 그리고 한쪽 벽에 다가가서는 곡괭이질을 시작하는 게 아닌가?

까앙! 까앙!

매우 능숙한 폼으로 곡괭이질을 하던 청년이, 턱 선을 타고 흘러내린 땀방울을 닦아 내면서 투덜거렸다.

“어휴, 더워! 우라질, 노가다가 점점 더 빡세지잖아? 어떻게 생겨 먹은 광물이 보스 몹 뜰 때만 나타난다는 거야? 이러다간 곡괭이 들고 드래곤 레어에 찾아가야 하는 날도 오겠네!”

때마침 헬가오가 휘두른 지팡이의 열풍이 청년의 뒤를 덮쳤다.

극검은 빈틈이 완벽하게 노려진 청년이 당연히 커다란 피해를 입고 쓰러질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믿겨지지 않게도 청년은 아주 경미한 상처만 입었을 뿐이었다.

“저기요, 아저씨.”

곡괭이질을 멈춘 청년이 처음으로 극검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짜증스러운 표정을 짓고 말했다.

“저 자식 좀 어서 어떻게 해 봐요. 안 그래도 더워 죽겠는데 더 더워지잖아요.”

지금 자신이 헛것을 보고 있는 것인가?

멍하니 있던 극검이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물었다.

“너는 어떻게 멀쩡할 수 있는 거지?”

청년은 뭐 그런 당연한 걸 묻느냐는 듯이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템빨요.”

채챙! 챙!

청년의 갑옷에 달린 꼬리가 스스로 움직이며 헬가오의 지팡이에 맞서 싸우고 있었다.

그 모습에 극검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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