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한 게임 개발자가 너무 유능함 146화
92. 3년 후
[축제는 끝났다. 정리해고 폭풍이 몰아치는 국내 게임사들.]
[브릭 게임즈 50명, 퍼스트 콜 소프트 60명, 적게는 팀 단위, 많게는 자회사 폐업까지…….]
새해, 대한민국 게임 업계는 정리해고의 폭풍이 휘몰아치는 중이었다.
언론에서 떠들어대는 이유로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국제 금융시장의 불안정과 달러 강세 등등.
그러나 언론이 아닌 네티즌들은 딱 한 가지 이유를 꼽고 있었다.
-신작들도 망하고 꾸역꾸역 어떻게든 이어가던 캐시 카우 게임들은 서버 종료 위기니 그런 거지 뭐.
└근래에 pc, 모바일 게임 시장은 중국에 의해 완전히 압도당한 듯…….
└중국산 게임이라고 무시할 게 아니더라. 특히 모바일은 앱 마켓 글로벌 유료 차트 보면 죄다 중국산 게임임. 혹은 중국에서 투자한 회사의 게임…….
└솔직히…… 일부 기업 빼고 대한민국 게임사 반성해야 함. 뭔 놈의 게임이 그래픽만 다르지, 내용물은 죄다 신화 라이크임.
└그런데 그게 돈이 되니까…….
└그렇게 돈이 돼서 지금 이 모양임? 여기저기 인원 감축에 폐업에…… 난리 났네, 아주.
휘몰아치는 피바람에 업계인들은 죽상이지만 유저들은 비웃을 뿐이다.
오늘의 상황은 너희들 스스로가 자초한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신화 온라인.
한국에 대 온라인 게임 시대의 문을 열었고, 엄청난 상술과 성공으로 수많은 양산 게임을 만들어낸 장본인이다.
그 위력과 영향력은 PC에 이어 모바일에서도 줄곧 발휘되는 듯 보였지만 최근에는 크게 주춤하는 모양새였다.
이를 가장 좋아한 것은 대한민국 유저들이었다.
-저런 똥망게임 때문에 한국 게임계가 이 모양이 된 거.
└진짜 생명력 강하다. 절대 안 망하네.
└내가 보기에 가상현실 시대가 본격적으로 도래한다고 해도 신화 모바일만큼은 절대 안 망할 듯. 돈 있는 아재 유저들의 충성도가 어마무시하게 높아서…….
그래도 게임 업계가 아예 희망이 없고 어둡기만 한 것은 아니다.
[넥플 다시 한번 사상 최대 매출 신기록 갱신!]
[휘청이는 대한민국 게임 업계 속 유일한 희망은 넥플?]
넥플.
유태연 대표 체제가 시작된 이후, 체질 개선에서 비롯된 무서운 성장세가 꺾일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단 한 번도 주춤한 적이 없었고, 기업문화든 게임이든…… 도무지 나쁜 이야기가 나오지 않으니 수많은 주주와 유저들의 사랑을 독차지한다.
넥플 용산 신사옥 투어는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반응이 좋았고, 넥플이 서비스 중인, 혹은 런칭을 예고한 게임들은 전 세계를 열광케 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기대감을 끌어모으고 있는 것은 역시 차세대 VR 기기!
국내 최대의 대기업 서성를 비롯, 전 세계 빅 테크 기업들도 고전 중인 분야에서 압도적으로 치고 나오는 중이었다.
주주 입장에서 조금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 원천 기술이 넥플이 아닌 ‘미러 컴퍼니’의 것이고, 넥플은 협업사 관계일 뿐이라는 점이지만…… 이 부분도 큰 문제는 되지 않는다.
전 세계가 주목하는 신흥 기업, 미러 컴퍼니의 대표가 바로 넥플의 대표이사 유태연이기 때문이었다.
넥플과 유태연의 관계는 따로 떼고 보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가깝다.
현재 넥플을 칭송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넥플은 곧 유태연이라는 공식을 인정하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넥플이 아닌 유태연이 신기술과 천재 개발자를 확보한 것을 다행으로 여기는 분위기였다. 유태연 이전의 넥플은 한국 게임 업계 악의 축으로 평가는 네로 소프트와 크게 다를 것이 없었으니까.
이런 이유로.
다른 모든 게임 회사들이 새해를 정리해고로 시작했을 때 넥플은…….
[넥플, 전 직원과 주주들에 화끈하게 쐈다!]
[역대급 성과급과 고배당으로 떠들썩!]
[지난해 사상 최대의 실적을 경신한 것이 주효했던 것으로 분석.]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였다.
* * *
“우리 게임 잘되는 거야 워낙 당연한 거라 이젠 그리 놀랍지도 않아.”
회의실의 임원들은 유진성 회장의 말에 공감했다
“제일 놀라운 부분은 오프라인 매출 증가 추이야. 여기서 현금이 미친 듯이 쏟아졌네. 이거 왜 이렇게 높은 거야?”
“굿즈가 잘 팔렸습니다.”
“거 참…… 긴가민가했는데…… 아니, 더 솔직히 말하면 그런 게 돈이 되겠나 싶었거든.”
유진성은 표정 변화 없이 앉아 있는 태연을 보며 말했다.
“틀린 건 나였구먼.”
재작년 말.
국내 중견 장난감 제조, 유통 업체를 인수.
굿즈 제작을 전담하는 부서를 조직하여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했다.
회사가 직접 제작해서 유통까지 하게 되니 디자이너, 기획자의 의도가 확실히 반영된…… 고품질의 상품이 즉각적으로 제작될 수 있었다. 유통 역시 인터넷 앱과 신사옥 스토어를 통해 진행하게 되니 보다 저렴한 가격에 공급할 수 있었다.
좋은 품질의 굿즈를 보다 저렴한 가격에 신속하게 제공한다!
반응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더해 고퀄리티 피규어 제조업체를 인수하고 업계 유명 제작자들을 추가 영입으로, 저렴한 가격대부터 비싸지만 퀄리티가 매우 뛰어난 피규어들도 공급이 가능해졌다.
“태연아. 너 지금 어디까지 보고 있는 거야?”
이목이 과묵하게 앉아 있던 유태연에게 집중됐다.
주위를 한 번 둘러본 태연이 담담하게 말했다.
“반다이처럼 만들고 싶습니다.”
경악하는 사람들.
유진성 회장이 더듬거리며 물었다.
“반다이라면…… 일본의 그 유명한 완구 회사 맞지?”
“세계적인 캐릭터 프랜차이즈 기업이라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습니다.”
“캐릭터 프랜차이즈 기업?”
“일본의 디즈니라는 별명이 붙었을 정도로 엄청난 양의 판권을 소유하고 있으니까요.”
“그 정도야?”
사업총괄 이태영 이사가 말했다.
“상상 이상입니다. 드래곤볼, 원피스, 세일러문, 건담, 포켓몬스터 등등…… 이름 들으면 알법한 초대형 미디어 프랜차이즈의 판권, 혹은 완구화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반다이…… 이름은 많이 들어봤는데 그렇게 굉장한 회사였어?”
“엄청 대단한 회사였구나.”
태연을 향한 시선이 새롭게 변한다.
굿즈 사업을 반다이 수준으로 키우겠다는 발언의 무게감이 다시금 느껴진 것이다.
유진성 회장도 흥미를 드러냈다.
“가능하겠냐? 아니, 우리가 그 반다이처럼 엄청난 양의 판권을 확보하는 게 가능할까?”
태연은 고개를 저었다.
“사실 매출만 생각하면 그렇게까지 많은 판권이 필요한 건 아닙니다. 건담 시리즈와 드래곤볼이 완구 총 매출의 상당 지분을 먹고 있으니까요.”
태연이 임원들에게 말했다.
“확실한 킬링 콘텐츠만 확보하면 된답니다. 규모는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죠.”
한마디로 지금 서비스 중이거나, 서비스 예정 중인 게임을 제대로 키워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바로 여러분, 넥플 컴퍼니 주요 부처의 리더급들이 책임지고 해내야 할 일입니다.”
“……!”
침을 꿀꺽 삼키는 사람들.
이어 태연은 여유 있게 웃는 유진성 회장에게도 일침을 가했다.
“좋은 씨앗을 선별하는 일이야말로 굉장히 중요한 업무입니다. 넥플의 미래는 회장님의 안목과 열정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자식이 갑자기 부담 주고 그러네. 인마! 그런 말 안 해도 요즘 죽어라 일하고 있어!”
맞는 말이다.
요 근래에 유진성 회장은 대한민국을 넘어 일본, 중국, 동남아시아까지 누비며 좋은 인디 게임 제작팀을 찾고 있었다.
유진성 랩.
그리고 넥플의 인디 게임 브랜드, 챌린지 리그는 아마추어 제작자들의 등용문으로 각광받는 중이었다.
“작년 성과에 대해 자부심을 갖되, 자만심으로 일을 그르치는 일이 없도록 합시다. 폄하할 생각은 없지만…… 작년의 일은 우리가 앞으로 이룩할 업적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니까요.”
* * *
회의를 마친 뒤 태연은 개발실을 쭉 둘러보기 시작했다.
‘벌써 3년이 지났군.’
용산 신사옥에 이전하고 흐른 시간이다.
그동안 엄청나게 많은 변화가 있었다.
무려 열두 개의 신규 게임이 런칭했고, 두 개의 오래된 게임이 서비스를 종료했다. 아무리 태연이라도 더 이상 손을 쓰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오래된 게임이었다.
서비스 종료에 대한 건은 한참 전부터 추진이 결정된 사항이었다. 해당 스튜디오 스태프들은 ‘아름다운 이별’을 위해 모든 시간을 쏟았다. 적잖은 돈과 인력이 소모된 일이었지만 태연 입장에서는 꼭 필요한 일이었다.
그렇게 마무리된 게임의 스태프들은 전원 다른 부서로 배치됐다. 신규 개발을 희망하는 이들은 R&D 부서로 배치하여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할 수 있도록 했다.
게임 규모에 따라 정규팀, 혹은 챌린지 리그 규모의 팀으로 배정될 터였다.
‘다들 표정이 좋아 보이네.’
‘이런.’
어느새 카페테리아 앞에 도착한 태연이 멈칫했다.
바깥에서 얼핏 보기에도 사람이 굉장히 많았다.
용산 신사옥의 카페테리아는 전 직원들의 휴식처이자, 일터였고 회의 공간으로 두루 사용되는 곳이다.
‘내가 등장하면 불편한 분위기가 연출되겠지.’
이런 이유로 어지간하면 카페테리아에는 잘 가지 않는다.
‘돌아가자.’
그런 배려가 무색하게.
“어?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세요!”
우렁찬 인사.
기분 좋은 아침 시간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
주변, 그리고 카페테리아 안의 분위기가 순간적으로 정적이 됐다.
‘이런…….’
태연은 속으로 혀를 차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안녕하세요.”
그리고 재빨리 걸음을 옮겨보지만…….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튀어나와 인사를 하는 게 아닌가?
카페테리아에서 급히 뛰쳐나온 듯한 직원들도 있다. 보나 마나 파트장, 팀장 이상급 직원들일 터였다.
긴장감, 동경심, 설렘…… 눈빛들에 다양한 감정들이 뒤섞여 있다.
이럴 때는 무슨 말을 하기보다는 빨리 자리를 피하는 게 상책이다.
1층부터 3층까지는 외부 방문객을 위한 공간이었다. 개발실 이상으로 중요한 공간이라 태연은 최소 한 번 정도는 무조건 직접 돌아다니며 현장을 파악했다.
3층은 넥플 테마 카페가 마련되어 있었다.
커피 등의 일반적인 음료부터 한식, 중식, 양식…… 다양한 메뉴의 식사를 제공한다.
내부는 넥플 게임을 테마로 한 컨셉에 충실하다.
단순한 벽지, 테이블, 의자, 수저부터 직원들의 복장 등등. 그 자체로 넥플 테마파크나 다름없었다.
카페 중앙에 설치된 세계수와 각종 식물들을 기반으로, 수많은 가지와 잎들이 카페 전체로 뻗어 있다. 그것이 테이블와 의자를 이루고, 각종 주요 소품들의 베이스가 된다.
카페를 이용하는 손님과 직원들의 표정, 청결 상태 등을 꼼꼼히 체크하는데 한 백인 가정의 남자 아이의 표정이 보인다.
식사는 하는 둥 마는 둥, 천장에 마법 거울 테마로 설치된 스크린을 통해 신작 게임 PV에 홀딱 빠져 있었다.
판테온.
마침내 런칭을 위한 디데이 카운트다운에 들어간…… 태연과 넥플의 최고 기대작이었다. 게임을 잘 모르는 어린아이조차 넋을 잃게 만들 정도로 화려한 그래픽이 곳곳의 스크린을 통해 재생되고 있었다.
“……!”
프로모션 비디오가 끝나자 아이가 흥분해서 아빠의 팔을 잡고 흔들어댔다.
가까이 가지 않아도 어떤 대화가 오가는 중일지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판테온에 또 한 명의 소년 모험가가 늘었군.’
기대감을 충족시켜 주기 위해서라도 멋진 게임을 만들어 공개해야겠군.
태연은 그렇게 생각하며 조용히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입가에 흐릿한 미소를 띤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