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사한 게임 개발자가 너무 유능함-144화 (144/147)

퇴사한 게임 개발자가 너무 유능함 144화

90. 몰아치는 폭풍

프로젝트를 리드하거나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소리가 있었다.

‘쓸만한 사람이 없어.’

태연은 다시 한번 그 사실을 절감했다.

‘그래도 열 명은 확보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고르고 고른 백여 명의 테스터 중 채용을 하고 싶을 정도로 뛰어난 인재가 겨우 다섯 명뿐이었다.

그중 경력자가 세 명이었는데, 해외 굵직한 AAA급 콘솔 게임에 QA로 참여한 전적이 있었다. 그리고 참고로 이미 회사에 소속된 사람들이다.

‘한 마디로 뽑을 수 있는 건 두 명뿐이라는 거지.’

한 명은 한국인.

또 한 명인 시카고 출신 미국인.

강력한 교통, 숙식비 지원 여부에 대해 문의했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겨우 두 명인지, 무려 두 명인지…….’

심지어 채용에 대한 이야기는 아직 꺼내보지도 못한 상황이다. 1기의 테스트가 이제 막 시작된 상황이기 때문이었다.

현재 기기 부족으로 백 명의 테스터들은 로테이션으로 투입될 예정이다.

테스트를 로테이션으로 돌리다니?!

사정을 모르는 이들이라면 기가 찰 일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지금 존재하는 테스트 기기들은 천재 안경원이 부품까지 하나하나 손수 개발하거나 개조하고, 다듬어서 만든 것들이다.

일단 부품 수급부터가 쉬운 일이 아니었고, 개조하는 것도 누구의 힘을 빌리지 않고 오로지 안경원이 직접 실행한다.

양산 단계가 아니었고, 내부에 어떤 공정 시스템이 갖춰지지도 않았기에 어쩔 수 없었다. 그렇다고 이런 걸 새로 입사한 이들에게 구조를 모두 알려줘서 손을 빌릴 수도 없다.

누군가 중요 정보만 빼돌려서 퇴사해 버린다면?

이런 이유로 개발팀 구성은 많은 시간과 공들여 진행해야 할 일이었다.

지금 입사한 이들도 소프트웨어 개발, 사업, 총무 등의 인력들이다.

최소한 양상 모델이 개발 완료될 때까지.

모든 개발 과정은 안경원이 홀로 담당할 예정이다.

그리고 이것은 안경원의 뜻이기도 했다.

테스트와 기기 체험은 엄중한 보안 속에 진행되고 있었다.

테스트와 체험은 무조건 정해진 공간에서.

철저한 내부 규율에 의거하여!

그러나 누구도 그 사실에 불만을 드러내지 않는다.

시제품도 아니고.

아직 개발이 진행 중인 기기와 콘텐츠를 테스트하는 것 아닌가? 모두 이 부분은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다만 몇 명.

스트리머, 뮤튜버들이 아쉬움을 드러냈다.

나름 큰 계획을 세우고 온 건데, 이렇게 되면 콘텐츠 제작, 유포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태연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계속 금지하겠다는 게 아닙니다. 런칭에 앞서 홍보가 시작되면 제작하신 콘텐츠의 사용을 허가해드리겠습니다.”

“오!”

“일종의 엠바고 같은 건가?”

“나쁘지 않은데?”

반응이 긍정적이다.

여기서 태연은 살짝 불을 질렀다.

“제안서가 정말 좋다면 협찬 광고를 진행할 의향도 있고요.”

“우와!”

“협찬 광고까지?!”

“끝내두는데?!”

태연은 미소 지었다.

테스터 중에는 게임 스트리머와 전문 기자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사실 의도적인 것은 아니었다.

게임 스트리머, 전문 기자들이 매일같이 하는 일이 무엇인가?

업계 동향을 면밀히 관찰하고, 리뷰하여 콘텐츠화하는 것이 아닌가?

한마디로 매일같이 하는 일이 콘텐츠를 테스트하고, 분석하는 일이니 타 지원자들에 비해 능력치가 뛰어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사실 개발 인력 모집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체험존이 국내외로 점점 더 이슈가 되고, 이를 체험해 본 이들로 입소문이 퍼지며 전 세계에서 인재들이 몰려들었다.

심지어 기존, 페이스북과 벨브에서 VR 개발에 전념하던 인재들까지 입사 신청을 보내왔다.

해당 기기의 시장 장악 가능성과 무한한 미래를 높게 평가한 것이다.

그리고 이뿐만이 아니다.

이태영 이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너는 지금 상황이 쉽게 이해가 되지 않지? 아무리 기술이 좋아도 세계적인 업체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던 이들이 이렇게 쉽게 이직 결심을 하는 게. 왜냐면 연봉도, 대우도 그쪽이 훨씬 높을 텐데 말이야.”

“네.”

“내가 가르쳐 줄게. 그게 네 영향도 있어.”

“……저요?”

“버추얼 리얼리티 기술이 가장 크게 사용될 시장이 어딜까?”

“……게임이겠죠?”

“넥플은 무슨 회사야?”

“국내에 거의 유일한 게임 대기업이죠.”

“너는 누구야?”

“게임 개발자 출신 CEO죠.”

“그것 말고 또 있어. 우선 너는 과천 테마파크 CTO야. 머큐리닷컴 공동창업자이자 부사장인 남자로부터 열렬한 구애를 받았고, 마스 게임즈의 대표이기도 하지. 전 세계적으로 크게 흥행 중인 최고의 온라인 게임, 몬스터 이터, 엘크로스 Re의 프로듀서야. 또한 최고의 기대작이라 평가받는 판테온, 판데모니움의 개발 책임자이기도 하지. 더 말해줄까?”

“……아니요.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 지 이해했습니다.”

이태영 이사의 시선이 태연에게 박혔다.

“네가 있기 때문이야. 네가 만들어온 것. 걸어온 행보. 이 모든 것들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

“VR 개발자로서 안경원은…… 사실 검증받아야 할 것이 많아. 양산 제품을 크게 성공시키기 전까지는 거쳐야 할 과정이 험난하다고 볼 수 있지. 하지만 넌 달라. 개발자로서 세계적으로 입증됐어. 이제 너의 작품이라면 우려보다 기대를 보내는 사람이 더 많아진 게 그 증거야.”

“그건 잘 모르겠군요.”

“그야 그렇겠지. 넌 오로지 개발과 회사 운영, 가정에만 신경 쓰는 녀석이니까. 여론이 어떤지 잘 찾아보지도 않잖아.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도 않고.”

태연의 민망한 얼굴에 이태영 이사는 씩 웃었다.

“그런데 심지어 CEO로서도 굉장히 유능해. 네가 대표이사가 된 직후 회사 가치가 무섭게 성장하고 있어. 표면적인 지표뿐만 아니라 내부 직원들의 인망도 다 너에게 향하고 있고 바깥에서는 외국인들도 입사하고 싶어하는 꿈의 직장이래. 자, 이 말을 듣고 보니 어때? 세계적인 인재들이 너에게 오고 싶어 하는 게 당연하게 느껴지지 않아?”

수긍하는 것도 민망한 일이라 태연은 입을 다물었다.

“기술의 진위 여부야 논쟁 벌일 가치도 없지. 왜냐면 체험존이 있잖아? 미리 신청하고 한국 날아와서 해보면 되는데, 말로만 떠들며 사기 치는 것도 아니고.”

“그렇죠.”

“체험존, 테스트 존을 만들어 운영하기로 한 건 정말 잘한 일이야. 기술, 미래 가능성 같은 것들을 대외적으로 확실히 증명한 셈이니까. 내가 그거 지켜보면서 얼마나 감탄하고 있는지 넌 아마 모를 거다.”

“민망하네요. 사실 계획하고 진행한 건 맞지만 그렇게 대단한 의미를 지니게 될 줄은 몰랐거든요.”

“넌 옥석 가리는 안목이 뛰어나니 원하는 개발 인재를 뽑아 운영하는 건 문제 되지 않을 거야. 문제는 수익이 나올 때까지 개발비용을 감당하는 거야. 앞으로 돈 진짜 많이 들 거다.”

“예상하고 있습니다.”

“네가 생각한 것보다도 더 들 거야. 그래서 하는 말인데, 복지랑 연봉 수준은 좀 낮춰. 너 해외 인력들에게 정착금 지원도 고려 중이지?”

“그렇게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니야. 네가 그렇게까지 안 해줘도 알아서 정착 잘할 거야. 자금 운용 잘해야 해. 넥플이 아니라 미러 컴퍼니로 사업을 진행하기로 한 이상 미러에 대해서만큼은 짠돌이가 되어야 한다고. 쓸 때는 써야겠지만…… 무슨 말인지 알겠지?”

타당한 조언이었다.

태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또 다른 생각을 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 안경원의 의지가 중요하지.’

이 사업은 안경원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자신이 아무리 심혈을 기울여 추진을 한다고 해도 중간에 안경원이 다른 노선을 타버리면 미러 컴퍼니도, 가상현실도 아무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다.

‘최대한 보호하겠지만 아무래도 내가 막을 수 없는 부분이 있겠지. 안경원의 의지가 꺾이지 말아야 할 텐데.’

* * *

대한민국 재계 서열 1위.

서성 전자는 불과 2년 전, 열정적으로 추진했던 VR 기기 사업을 철수한 전적이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하드웨어 개발과 콘텐츠 확보에 어려움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대신, AR 사업에 집중 투자하기로 결정하고 쭉 연구 개발을 진행해오고 있었다.

VR이 현실의 간섭 없이, 디스플레이를 통해 가상의 세계를 구현하는 기술이라면 AR은 현실을 기반으로 3D 이미지를 겹쳐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이다. 안경 형태의 디자인으로, 스마트폰을 대신하도록 하겠다는, 나름 야심찬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날 놀라운 소식을 접하게 됐다.

“넥플이 VR, AR이 동시 적용되는 기기를 개발 중이라고요?”

처음에는 다들 코웃음을 쳤다.

자신들을 비롯해 세계적인 기업들도 대부분 포기하고 철수한 시장이 VR 개발 시장이었다. 그런데 그뿐만 아니라 AR 기술까지 동시 적용되는 기기를 개발하겠다고?

그것도 전자 회사도 아닌 게임 개발사인 넥플이?

업계 현황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웃어넘길 수밖에 없는 루머였다.

그런데 루머라고 생각했던 일이 현실로 드러났다.

[넥플, 용산 신사옥에 차세대 VR 기기 체험관 오픈!]

[깜짝 놀랄 VR, AR 기술의 진보! 세계적인 IT 대기업들도 백기를 든 시장에 과감하게 도전장을 던진 넥플!]

[넥플의 차세대 VR 기기의 정체는……?]

‘아니, 그 소문이 사실이었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즉각 체험관을 통해 기기의 실체를 파악하고자 했다.

그 결과는 놀라웠다.

“아니, 이렇게 가볍고 디자인도 예쁜데 성능까지도 뛰어나다고?”

“소문이 사실이었잖아?!”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몇 세대 앞선 진보라는 타이틀은 결코 허위 과장 광고 따위가 아니었다.

꾸밈없는 사실 그대로의 표현이었던 것이다.

“빨리 알아봐!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보란 말이야!”

서성뿐만 아니었다.

재계 2위 기업이자, 모든 면에서 서성 전자와 경쟁 구도를 이루고 있는 NG 역시 뒤집어지기는 마찬가지였다.

NG 전자는 서성보다 빠른 3년 전, VR, AR 사업을 철수했던 전적이 있었다.

사실을 확인한 그들 역시 어떻게 게임 회사인 넥플이 느닷없이 이런 기술을 보유하게 되었는지 조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알게 됐다.

카이스트 학생 안경원.

“설마…… 그 안경원?”

“그 천재 소년 말하는 거야?”

“맙소사!”

서성, NG 전자가 이미 알고 있던 존재였다.

천재 소년 안경원.

어린 시절에 이미 해커로 전 세계 두각을 드러냈고, 서성, NG 같은 국내 1, 2위 전자 기업을 포함, 실리콘 밸리 빅테크 기업에 초청을 받아 거대 프로젝트에 용병으로 참여한 전적도 갖추고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모습을 감췄던 그가 난데없이 넥플, 유태연 대표와 손을 잡고 엄청난 기기를 시장에 선보이며 등장하다니…….

“잡아!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 회사로 끌어들여!”

“접촉해 봐. 수단 방법을 가리지 마!”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