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한 게임 개발자가 너무 유능함 143화
89. 급변의 시작(2)
새 사옥에서 운영하는 VR 체험존에서 제공하는 경험은 극히 한정된 분량뿐이다. 체험을 원하는 사람은 많은데 공간과 테스트 기기는 한정되어 있으니 당연한 사실이었다.
이에 대해 아쉬워하는 이는 유저뿐만 아니다.
안경원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는 태연에게 다음과 같이 요구했다.
-보다 많은 테스트 데이터가 필요하다.
-최대한 상세하고 전문적이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태연은 다음과 같은 상황을 논의했다.
기존 체험존의 경우, 길어야 30분 정도만 플레이 가능했다면, 이번 체험존은 오픈 시작부터 종료 시각까지 테스트가 가능하다.
단, 미리 신청을 해야 하며, 회사에서 제공하는 방대한 분량의 설문 조사에 응해야 한다.
성실하게 응모한 이들에게는 사례금을 제공한다. 또한 넥플 명예 테스터로 임명하며, 임명장과 테스터 신분증을 제공한다.
이 같은 절차를 걸친 이들은 향후 관련 상품이 발매될 때 스토어에서 다양한 혜택을 받게 된다.
반응을 보기 위해 내용을 정리해 공식 사이트를 통해 공문을 올렸다.
전 세계가 뒤집혔다.
한국의 경우.
-와, 그 동안 진짜 오로지 돈만 보는 수집형 모바일 게임들 때문에 한국 게임 회사 욕만 하고 미래를 걱정했는데…… 설마 이런 날이 오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확실히 태연이 형은 로망을 잘 알고 있는 덕후임. 하나가 되어 같이 미래를 개척합시다! 이런 캐치프라이즈가 얼핏 듣기에는 유치해도 제대로만 하면 이것만큼 효과적인 마케팅도 없거든. 지금도 봐. 다들 저거 참여하고 싶어서 난리 났잖아.
└그것도 그렇지만 지금까지 태연이 형이 보여준 것들이 워낙 믿음직스러움. 그리고 저 VR 체험존, 솔직히 진짜 끝내주잖아. 난 몇 번이나 가서 했고 내일도 가서 할 예정인데 저거 정식 출시될 날만 기다리고 있는 중임.
미국이나 일본이 아닌, 무려 국내 개발팀이 첨단 IT 분야에서 선도적인 포지션을 취하려 한다는 사실에 감격스러워했다.
반면 해외의 경우.
-아니, 왜 저런 이벤트를 한국인을 대상으로만 실행하는 거야?
└한국인이 아니면 참여할 방법이 없는 건가? 그리고 겨우 하루뿐이라니…… 시간이 너무 짧아!
└아무래도 납득할 수 없어. 다 같이 항의하자!
한국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이번 이벤트에서 제외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에 분통을 터뜨렸다.
전 세계, 수많은 국가에서 넥플에 항의 메시지를 쏟아냈다. 어찌나 문의가 폭주하는 담당 부서에서 비명을 지르며 해결책을 요청할 정도였다.
태연은 당황했다.
‘해외 유저들이 이렇게까지 반발할 줄은 몰랐는데…….’
태연은 전담 부서에서 올려 보낸 몇몇 항의문을 읽었다.
-저도 가상현실 분야에 관심이 많은 사람으로서, 명예 테스터의 한사람이 되고 싶고 이 이벤트에 지속적으로 참여하고 싶습니다.
-영국 유저입니다. 지금 때가 어느 땐데 이런 국가차별적인 이벤트라니…… 빨리 정정 부탁드립니다. 저를 포함, 영국과 전 세계 여러 나라에서 명예 테스터가 되어 이 끝내주는 이벤트에 참여하고자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이 정도로 폭발적인 관심은 예상하지 못했는데…… 아무래도 전략을 수정해야 할 것 같군.’
대책 회의 끝에 이벤트 내용을 변경하기로 결정했다.
기수당 천 명씩.
신청 양식을 제대로 지킨 이들에 한해 선발하며 테스터 그룹을 로테이션으로 돌린다.
“전용 테스터 공간을 확보하고, 테스트 전략을 더욱 디테일하게 다듬을 필요가 있겠습니다.”
태연의 이 같은 말에 관련 부서 전체가 바쁘게 움직였다.
곧, 넥플 명예 테스터 모집 수정안이 공지됐다.
-여전히 내용이 아쉽긴 하지만 여론을 받아들이고 그에 합당한 조치를 취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줘야겠군,
-그래. 이렇게 소통하니까 얼마나 좋아? 유저를 돈벌이 수단으로만 아는 다른 회사가 좀 본받아야 해.
-기수제라, 그러면 이번 모집에서 떨어져도 2차 모집이 있다는 뜻일 테니…… 기대해도 되겠네.
테스트는 모든 IT 개발의 알파이자 오메가.
주제가 워낙 다양해서 내부 인력만으로는 온전한 정보를 산출하기에 무리가 있었다. 전문 테스터 회사를 고용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그들이 더 나은 퀄리티의 테스트 결과를 제공한다는 보장도 없었다.
실제 태연은 과거 게임 개발 때 유명하다는 QA 회사에 의뢰해서 테스트 결과를 받아낸 적이 있었는데 그 내용이 실망스러웠던 기억이 있었다.
한마디로, 단순히 홍보와 풍성한 데이터 산출만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닌, 다양한 시도의 일환이라는 뜻이다.
‘좋은 정보를 제공해 주는 사람은 채용해야지.‘
이게 바로 이번 이벤트의 가장 큰 목적이었다.
좋은 테스터를 찾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니까.
* * *
전 세계적으로 정말 많은 이들이 명예 테스터에 지원했다.
돈도 벌고, 가상현실 기술이 적용된 새로운 게임들을 누구보다도 빨리 플레이할 수 있고.
무엇보다 차후 테스터에 선정되면 다양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그야말로 꿩 먹고 알 먹고!
게임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있어서 이처럼 매혹적인 이벤트도 없었다.
-테스터 하고 싶다!
-일단 지원은 했는데 결과 발표는 언제 어떤 식으로 나오는 건지 모르겠는데……. 혹시 아는 사람?
수많은 게임 커뮤니티가 떠들썩하다. 심지어 언론도 이번 일을 대대적으로 조명했다. 전 세계적인 관심을 받는 독특하고도 재미있는 이벤트였으니까.
반면 넥플, 미러 컴퍼니 직원들을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이번 테스트는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된다.
기기 성능 테스트.
게임 테스트.
기기의 경우, 계속 개발하고, 보완하며 발전시켜가는 단계였기에 꼭 필요한 과정이었다.
전문가들의 관점과 일반인들의 관점이 많이 다르니 이런 부분에 대한 격차를 최대한 줄여가며 모두가 만족할 수 있을 제품을 만들어가는 게 중요했다.
게임 테스트의 경우 샘플을 세 가지로 뒀다.
판데모니움. 배틀 시티1. 디즈니 판타스틱 월드.
각각 MMORPG. FPS. 콘솔 어드벤쳐 장르로, 다양한 상황에서의 테스트 데이터 수집이 목적이었다. 덧붙여 가장 많은 인력이 투입될 파트이기도 했다.
기기 성능 테스트의 경우 미러 컴퍼니에서 진행하고, 게임 테스트는 넥플에서 주관한다.
이렇게 분류한 이유는 넥플과 미러 컴퍼니는 협력 관계일 뿐, 엄연히 다른 회사였기 때문에. 각자 담당하고 있는 분야도 다르니 훗날, 혹시 모를 잡음을 없애기 위해서라도 명백히 선을 그어두는 게 좋았다.
이런 문제로 미러 컴퍼니가 사용하는 용산 지하 연구소 단지를 넥플에 임대받는 형식으로 진행하고 있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기 마련이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두 회사의 대표이자 이번 프로젝트의 총괄이 태연이었기 때문이었다.
“인력 채용에 대해서 몇 가지 필터링을 만들도록 합시다. 첫째, 신분이 확실할 것. 범죄 사실이 없을 것. 둘째, 제시된 샘플 게임을 오래 즐겨본 유저일 것.”
몇 가지 추가 사항을 말해주고 마지막으로 말했다.
“이걸 통과하면 제가 직접 면접을 볼 겁니다.”
회의실에 함께하고 있던 박경연이 중얼거렸다.
“와우. 사실상 테스트 아르바이트나 다름없는 일에 무려 대기업의 대표 면접이라니…… 사람들 후덜덜하겠네. 굳이 그럴 필요까지 있나요?”
대표가 시간이 남아도는 사람도 아니고, 이런 일에까지 직접 나설 이유가 있냐는 박경연식의 질문이었다. 회의실의 다른 이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왜냐면 내가 직접 봐야 상태창을 확인할 수 있으니까.’
이것만큼 좋은 채용법도 없다. 하지만 이런 걸 말할 수는 없는 일.
태연은 담담하게 말했다.
“제가 주도하는 프로젝트니 가장 중요한 인력 채용에 대해 제가 관여하는 게 맞습니다.”
사실 그다지 납득이 되지는 않았지만 총괄이 그렇게 하겠다는데 누가 뭐라고 할 수 있을까?
마침내 정식 채용 페이지가 오픈됐다.
넥플과 미러.
두 회사의 홈페이지, SNS, 뮤튜브 등. 공식 소통 창구에 이벤트 페이지가 마련됐다.
이번 명예 테스터 1기는 총 백 명을 뽑게 됐다.
원래는 더 많은 인원을 뽑고 싶었지만 처음부터 그렇게 일을 벌이다가 감당할 수 없는 변수가 터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규모를 조절한 것이다.
사전에 약속했던 테스터 혜택은 그대로 유지.
삼시 세끼를 제공하고 간식과 음료 역시도 마음껏 먹을 수 있도록 한다.
교통비도 제공한다.
마지막 부분에 특히 해외 유저들의 문의가 쏟아졌다.
-일본 사람에게도 교통비를 제공해줍니까?
-시카고 출신으로 이번 이벤트에 지원할 생각입니다. 교통비와 숙식비가 제공되는지 궁금합니다.
“은근슬쩍 숙식비를 껴넣기는…….”
“아니, 진짜 양심 없네. 테스트 지원해 줄 테니까 비행기 티켓도 끊어주고 숙소도 잡아달라 이건가?”
넥플 직원들은 어이없어하거나 분통을 터뜨렸다.
태연은 조금 다르게 생각했다.
“그들에게는 정말 심각한 문제일 수도 있죠. 당장 우리도 해외에 가려면 많은 지출을 감당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음…….”
“그만큼 뽑아내면 될 일입니다. 이건 단순한 홍보성 이벤트가 아니라 정말 다양한 상황에서 방대한 데이터를 뽑기 위해 진행하는 업무의 일환이니까요. 그리고 그들 중 우리가 원하는 인재가 있을 수도 있는 일이죠. 그런 사람이 있다면 어차피 숙식비를 지원해 줘야 합니다.”
“음…….”
“이왕 하는 이벤트, 제대로 합시다. 테스트 비용 절반은 미러 컴퍼니에서 부담하기로 되어 있고 해외 테스터 TO는 50명 수준이니 큰 부담은 없을 겁니다.”
이 문제로 지원을 망설이고 있을 이들을 위해서라도 필요한 일이었다.
이 내용이 추가 공지로 올라가며 많은 호응을 얻었다.
특히 북미 쪽 초대형 커뮤니티에서는 테스트 기간 동안 항공, 숙식까지 모두 책임진다는 말에 지원자가 속출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야 더 이상 망설일 필요 없겠네. 사실 미국에서 한국까지 비행기 티켓값만 200만 원이 넘는데…… 그 정도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크잖아. 거기에 숙식비까지 포함하면 엄두도 안 나는 수준이었는데…….
-저 정도라면 단순한 홍보가 이벤트가 아니라 진짜 뭔가를 해보겠다는 의지로 보이네. 지원할 가치는 분명히 있어 보여.
-최대의 고민거리가 해결됐으니 망설일 거 없지. 지원해서 한국에 가볼 거야!
무려 수십만 명이 넘는 인원이 이번 이벤트에 지원했다.
그 많은 지원자들 중 백 명을 뽑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태연의 지시로 사전에 완성한 필터링 시스템이 큰 도움이 됐다.
필터링 시스템을 통해 걸러진 지원서를 수작업으로 확인했고 이를 통해 삼백 명이 뽑혔다.
담당자가 태연에게 물었다.
“면접은 어떻게 진행하시겠습니까?”
“…….”
“개인적으로는 화상 면접이 비용 절감 측면에서도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해외 면접자만 백 명인데…….”
“그렇게 하시죠.”
“……네?”
“아예 며칠을 비워 놓고 화상 면접에만 집중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질질 끄는 것보다 몰아서 한 번에 끝내는 게 더 좋겠죠.”
상태창 확인은 비대면이라도, 실시간으로 얼굴을 마주 보고 대화하는 상황이라면 충분히 가능했다.
“네. 그러면 그렇게 진행하겠습니다.”
다시 집무실에 홀로 남은 태연은 자리에서 일어서서 창밖 풍경을 내려다봤다.
용산의 전경이 방대하게 펼쳐져 있었다.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한 도전이라…….’
미소가 나온다.
‘쉽지 않은 길이고 고단하겠지만…… 재미는 있겠군. 도전할 가치가 있는 일이다.’
게임을 만들게 된 것은 상상만으로 품고 있는 세상을 구현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어떻게 보면 이번 프로젝트 역시 그것과 비슷하다.
테마파크 구현도 그랬다.
상상만 하던 세계를 구현하여 수많은 이들을 즐겁게 한다!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자신은 그것에 매력을 느껴 개발자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열심히 해보자.’
태연은 다시 한번 각오를 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