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한 게임 개발자가 너무 유능함 141화
88. 거인의 조언
“흠. 가상현실이라…….”
사업 내용 자체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유진성 회장은 관망하고 있던 상태였다.
넥플 경영에 대한 모든 권한을 태연에게 부여했기 때문이었다. 자신은 몇 발자국 물러서서, 유진성 랩으로 신생 회사 발굴에 힘을 쏟는 상황이었다.
현 상황에 대한 자세한 상황을 전해 들은 유진성 회장이 말했다.
“다 떠나서, 넌 괜찮겠냐?”
“어떤……?”
“이렇게 덩치가 큰 사업을 아무 대가 없이 넥플에 안겨줘도 괜찮겠냔 말이야. 내가 보기에는 이게 바로 미래 먹거리의 시작이 될 수도 있거든. 애플에게 있어 아이폰 같은 존재가 될 거란 말이야.”
“……그 정도로 크게 보십니까?”
“난 오히려 네가 신기하다. 이 고글, 조금만 더 개량하고 응용하면 스마트폰 대체도 어렵지 않을 것 같은데…… 기술력 자체가 차원이 다르잖아.”
“음…….”
“잘 들어봐라. 나라면 아마 이런 식으로 사업을 진행했을 거야.”
지금은 고글 형태지만 기술이 더 발전하면 안경 형태로 축약이 가능해질 것이다. 혹은 드래곤볼에 등장하는 스카우터 방식이라던가.
“필요할 때만 액정을 꺼내서 사용하는 방식 말이지.”
“아하.”
그렇게 되면 인류는 더 이상 스마트폰을 들고 다닐 필요가 없어진다.
과거 벽돌 휴대폰이 스마트폰에 밀려 사라진 것처럼, 스마트폰 역시 그 수명을 다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처음 스마트폰이 등장했을 때처럼 세상이 바뀌는 거지.”
이번에는 속도가 더 빠를 것이다. 이미 스마트폰이라는 전례가 있었고 그로 인해 구축된 인프라가 남아 있을 테니까.
“게임은 말할 것도 없고 보다 진보된 AR 기술은 실생활에서 굉장히 유의미하게 사용될 거다. 건축, 인테리어, 군사훈련, 스포츠, 모터 산업 등등.”
AR 기술이 처음 등장했을 때 사람들이 꿈꾸던 것들이 비로소 실행되는 것이다.
“이 시점부터 대변혁이 시작되는 거지.”
그야말로 엄청난 이동이 발생할 것이다.
부가 새로운 흐름을 타고 이동할 것이고, 사회는 기술의 진보에 맞춰 새로운 형태로 발전한다.
“교통 쪽에도 엄청난 변화가 발생할 거야. 왜냐면 그야말로 완벽한 자율주행이 가능해질 거거든!”
이 외에도 일어날 변화는 셀 수 없이 많다.
“그 중심에 이 기술이 있게 되는 거라고.”
“아…….”
“글라스 형태에서 더 발전된…… 정말 미디어 매체 속에서나 등장하던 가상현실…… 이게 과연 구현 가능한 건지는 지금도 의문이긴 하지만 아무튼!”
눈을 번뜩인다.
“너, 그리고 안경원이가 그 영역에까지 발을 들이게 된다면 VR 글라스, VR 스카우터의 등장 때와 비교도 안 될 대혁신이 지구적으로 발생하게 되는 거지. 그때부터가 바로 지금 사람들이 헛소리처럼 떠들고 다니던 진정한 메타버스 시대가 개막되는 순간일 테고.”
“…….”
“이런 어마어마한 물건을, 정말 아무 대가 없이 넥플에게…… 아니, 나에게 넘길 셈이냐? 참고로 넥플 지주 회사 지분을 나와 가족들이 다 가지고 있는 거 일고 있지?”
“…….”
“이게 무슨 뜻이냐면, 죽 쒀서 개 주는 꼴이라는 거다.”
태연은 의문을 느꼈다.
“정말 그렇게 된다면 회장님과 가족들에게는 굉장히 좋은 일 아닙니까? 이렇게 열을 낼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그 말에 유진성 회장이 황당한 표정이 되었다.
“넌 인마 그게 문제야. 너무 욕심이 없어. 네 머릿속에는 게임밖에 없지? 재미있는 게임 만들 생각, 그걸 즐길 생각!”
멋쩍은 표정을 짓는 태연.
유진성 회장은 피식 웃었다.
“그런 이유 때문에 내가 널 아끼고 좋아하는 거야 인마. 이렇게 열을 내는 이유이기도 하고. 짜샤! 네놈이 이런 좋은 걸 남에게 고스란히 가져다 바치려고 하는데, 내가 기분이 좋겠냐? 어떻게든 너와 안경원이 다 먹을 생각을 해야지!”
“흠…….”
“벌써 그룹 내부에 눈독 들이며 침 질질 흘리고 있는 녀석들이 많을 거다. 그 자식들은 그런 걸 가질 자격이 없어. 나도 그렇고 우리 가족도 마찬가지고. 그 주인은 너와 안경원이 되어야 한다~ 이 말이지!”
“제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너 지인들 몇몇이랑 같이 만들고 있는 모바일 게임 있잖아.”
“정령사 키우기 말입니까?”
“그래. 거기에 VR 모드를 적용하고, 나한테 보여줬던 것보다 더 고퀄리티로 다듬어서 네 개인 회사 이름으로 출시해. 내가 요즘 그 게임 계속 해보고 있는데, 잘 만들었더라 야!”
“……개인 회사라면 넥플 엔터테인먼트……?”
“인마. 그건 사실상 넥플 자회사잖아. 그거 말고 넥플 자본이 없는 순수한 네 회사! 그래야 내가 개인 투자자 형식으로 들어가고 넥플 본사와 대등한 입장으로 사업을 진행하지!”
“법인이 아니라 개인 투자자로 들어오시려고요?”
“그러면 안 끼워주려고? 내가 이렇게까지 신경 써주는데?!”
“…….”
그런 의도가 아니었는데…….
태연이 잠시 말문이 막혀 버리자 유진성 회장이 또다시 피식 웃는다.
“아무튼 그 정령사 키우기에 더해서 VR, AR 모드로 즐길 수 있는 게임, 그리고 이건 또 하나 팁인데…… 성인 콘텐츠를 적극 활용해봐라.”
“성인 콘텐츠요?”
“너 VR 시장에서 성인 콘텐츠 지분이 굉장하다는 거 몰라? 인마, 굉장히 예쁜 여자들이 실제 눈앞에서 살랑거리는데 혹하지 않을 사람 있을 것 같아?”
“아…….”
“성인 콘텐츠 활용이 우리나라에서는 불법이지만 중국, 일본, 미국…… 이런 나라들에서는 시장 규모가 어마어마하거든. 보다 진보된 이 기기를 활용해 제대로 즐길 수 있다면 너도나도 구입하려고 할 거다, 아마.”
성인 콘텐츠.
이 부분은 정말 생각해 보지도 못했던 문제였기에 태연은 순수히 감탄만 할 뿐이었다.
‘역시 진짜 사업가는 생각부터가 다르구나.’
“나 같으면 유명 성인 미디어 콘텐츠 기업들에 지분 투자를 해서 VR 콘텐츠 제작에 관여할 것 같다. 그런 회사들이 벌이에 비해 시가 총액이나 지분 가치 그런 게 의외로 크지 않거든.”
“…….”
“왜, 성인 콘텐츠가 나오니까 갑자기 거부감이 생기냐?”
“그런 것도 있지만 윤아가 어떻게 생각할지 조금 걱정이 돼서…….”
“성인이 성인물 보는 게 잘못된 거냐? 잘못된 건 이 나라야. 무슨 유교 국가도 아니고, 법적으로 금지하는 게 말이 되는 소리지? 양지로 올려서 정당하게 관리하고 세금 뜯어먹을 생각을 해야지!”
“…….”
혼자 급발진하며 씩씩대던 유진성 회장이 멋쩍게 헛기침을 했다.
“아무튼 성인물 시장 꼭 놓치지 마. 게임도 게임이지만 이쪽 시장은 불멸이야. 죽지 않아. 인간의 본능이 생생히 살아 숨 쉬는 한. 노다지란 말이야!”
태연은 그 말에 동의했다.
성인물 시장은 절대 죽을 수 없는 시장이고 누구나 한 번 두 번 이상은 반드시 접하게 되는 곳이기도 했다.
이후로도 유진성 회장은 다양한 로드맵을 들려줬다.
태연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몰입했다.
늦은 저녁이 되고 저녁 식사를 마쳐서야 유진성 회장이 혀를 내둘렀다.
“내 사업도 아닌 일에 이렇게까지 열을 내보기는 처음이네. 아무튼 이 정도면 미국 빅테크 기업 잡는 것도 시간문제일 거다. 그만큼 미래 가치가 어마어마한 사업 아이템이니까!”
“제가 보기에도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왜, 뭐, 또 남은 게 있어?!”
“제가 감당할 수 있는 사업인지 고민이 좀…….”
유진성 회장은 피식 웃었다.
“네 문제가 뭔지 아냐?”
“……?”
“혼자 다 하려고 하는 거야. 요즘 좀 나아지긴 했지만 아직도 멀었어. 사람을 써, 세상은 넓고 인재는 많다. 네 최고 장점이 뭐야?”
인망, 개발 실력…… 여러 가지가 떠올랐다가 사라진다.
그럼에도 쉽게 대답을 꺼낼 수 없었다.
유진성 회장이 답답해서 소리쳤다.
“안목 아니냐! 좋고 나쁨을 확실히 가려낼 줄 아는 비상한 눈!”
“아…….”
“내가 보기에도 그렇고 두 이사나 다른 임원들도 하나같이 하는 말이 그거야. 게임 개발자로서 유태연은 정말 뛰어난 인물이다. 그런데 대표이사로서 유태연은 정말 천재적이다.”
“……!”
“옥석을 가리고, 인력을 적절한 곳에 배치해서 역량을 최대한 끌어내는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다들 이러더라고!”
“……!”
상태창에 기인한 능력이었다.
“그 능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프로젝트를 다 신경 써서 관리하려고 하지 말고 네 안목으로 뽑은 네 사람들을 관리하란 말이야. 잘하면 칭찬하며 상을 주고, 못하면 격려해 주고.”
태연을 향한 눈빛이 따스하고 부드러웠다.
“거상 임상옥이 이런 말을 남겼지. 장사는 돈을 버는 게 아니라 사람을 버는 것이다. 네 사람을 벌어. 돈과 프로젝트는 그 수단일 뿐이야. 수단에 몰입하지 마. 가장 신경 쓰고, 또 즐거워해야 하는 건 바로 좋은 사람들을 곁에 두는 거야. 그게 최고야. 내가 해보니까 그렇더라고.”
그렇게 말하는 유진성 회장의 시선은 바로 태연에게 향해 있었다.
“돈이나 일이 아니라 사람을 벌어. 그러면 안 지쳐.”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태연이 정중히 말했다.
“이제 제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알 것 같습니다.”
* * *
그날 밤.
태연은 윤아에게 유진성 회장과의 대화에 대해 들려줬다.
“성인물?”
내심 걱정했던 대로, 윤아는 해당 부분에 대해 살짝 예민하게 반응했다.
“그거 우리나라에서 불법 아냐?”
“내가 만들겠다는 게 아니라 콘텐츠 확보 차원에서 각국 주요 회사들에 지분 투자를 하겠다는 거지.”
“아하…… 흐음.”
고민하던 그녀가 말했다.
“일단 느낌 좀 확인해 봐야겠어. 그거 좀 보여줘.”
“……?”
바로 이해하지 못해 어리둥절해하는 태연
체조 여신은 당당히 요구했다.
“고글이랑 성인물 가져와서 보여달라고. 말만 들어서는 잘 모르겠단 말이야.”
“아…….”
다음 날.
태연은 안경원과 따로 대화를 나눴다.
안경원은 적극 찬성했다.
“저는 그 말에 동의해요. 왜냐면 넥플이 아니라 대표님과 함께 뭔가 해보고 싶어서 찾아온 거였거든요.”
“그런 거였군.”
“그리고 그런 식의 활용법에 대해서도 실은 고민 정도는 해보고 있었어요.”
“정말? 어떻게?”
“제가 카이스트에서 이거 개발하고 있을 때 친구들도 테스트에 참여해줬었는데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내놓더라고요. 정엽이는 AR 기능을 활용한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 혹은 가상 인간과의 데이트 프로그램 만들면 정말 재미있겠다고 하던데요?”
“오……!”
그런 식의 활용은 좀 신박하게 느껴졌다.
씩 웃는다.
“그래서 몇 개 샘플을 정해서 이것저것 만들어봤는데…….”
다가와서 은밀한 목소리로 속삭인다.
“와우.”
“…….”
태연은 헛기침을 하고 말했다.
“테스트 기기랑 샘플 좀 집에 가져가도 될까?”
“VR, AR 모드 두 개 다 있어요. 제가 가장 좋아하고 작품성도 있는 것으로 추려놨으니 만족하실 거예요.”
“그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테스트 용도야.”
* * *
“이거야? 어떻게 하면 돼?”
“간단해. 고글을 착용하고…….”
그녀에게 VR 고글을 착용시켜 주고 영상 샘플을 재생시킨 뒤, 태연 본인도 테스트를 시작했다.
‘세상에……!’
태연은 깜짝 놀랐다.
과거 호기심에 VR기기로 성인물을 즐겼던 적이 있었다.
그때와 비교조차 안 될 정도로 생동감이 넘쳤던 것이다.
심지어 고글에서 출력되는 최고해상도의 사운드 시스템이 효과를 더 증폭시켜 주고 있었다.
‘이건…… 혁신이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