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한 게임 개발자가 너무 유능함 133화
82. 태연의 제안(5)
-안녕하세요! 시이나 미니미예요! 오늘은 조금 특별한 시간을 가져볼까 해요!
라이징 스톰 스튜다오 멤버들은 보고도 믿을 수 없었다.
198만 구독자를 자랑하는 일본 톱 클레스 인플루언서. 닌텐도 출신 원화가이자, 현재 넥플 최대 기대작 중 하나를 담당하고 있는 시이나 미니미가 게임 방송을 올린 것이다.
다름 아닌 스낵 엠파이어를!
이 순간만큼은 박경연도 조금 으스댈 수밖에 없었다.
“어때? 이제 내가 좀 다르게 보여?”
“…….”
다르게 보이는 정도가 아니라, 그냥 딴 사람 같다.
한 여학생이 중얼거렸다.
“아니. 이렇게까지 해주실 줄은 정말 몰랐는데요.”
프레젠테이션용 TV에 띄워놓은 게임 방송에 몰입했다. 실시간 방송으로 편집해서 올려놓은 내용이었는데, 영상 속에 표기된 실시간 구독자 수만 무려 십수만 명이 넘는다. 편집본 조회수는 20만이 넘어가고 있었고.
또 다른 학생이 중얼거렸다.
“게임 스트리밍으로 이 정도 성적이라면 정말 굉장한 건데…….”
“어쩐지 갑자기 실시간 동접률이 오르더라고.”
“갑자기 서버 증설 준비하라고 지시하시기에 대체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방송의 결과는 놀라웠다.
동접이 처음으로 네 자릿수를 찍은 것이다.
그 수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유지되고 있었다. 유료 아이템 구매율 역시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진 상태!
한편 다른 스튜디오의 학생들은 이 광경을 굉장히 부러워하고 있었다.
“우리도 저렇게 해주시려나.”
“해주시겠지. 우리도 제잔데.”
“박 교수님이 사람 차별하며 대하시는 분은 아니잖아.”
메이저 언론 인터뷰부터 인플루언서 게임 방송까지.
지금까지 게임 교육원에서 공부하며 이렇게까지 도와주는 교수님은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능력이 좋다는 거야 진작 알고 있었지만…….
“저 교수님 대체 왜 망한 거야? 저번 특강 때 보니 해저왕국 아틀란티스, 그거 퀄리티가 진짜 굉장하던데…….”
“게임만 잘 만들어서 성공할 수 있는 바닥이 아니라는 거지. 게임 회사 차려서 성공하려면 회사 운영부터 팀 관리까지…… 정말 알아야 할 게 많은 것 같아.”
“나 4학년 되고서야 처음으로 이 학교 들어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고 있어.”
부럽긴 하지만, 한편으로 저런 조력을, 가르침을 자신들도 받게 될 거라고 생각하니 기운이 샘솟는다. 이렇게까지 지원을 받는다면야 설령 결과가 안 좋더라도 크게 억울하지 않을 것 같았다.
‘우리에게 기회가 주어지면 정말 열심히 해보자.’
‘우리는 쟤네들보다 잘해야지!’
학생들은 곧 다가올 미래를 알지 못한 채, 꿈과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 * *
한편 태연은 스낵 엠파이어의 성과를 주시하며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지금이야 시류를 타고 반짝 뜨고 있지만 팀 규모와 역량적 한계를 고려하면 금방 다시 수치가 떨어지겠지.”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엄청난 매니아를 양산할 힘이 있는 게임이라면 모를까, 대개 소수의 개발팀에서 서비스하는 게임은 물리적 한계로 서비스의 끝을 맞게 된다.
‘생각할 수 있는 최고의 엔딩이라면 이 상태로 매출이 지속적으로 증가해서 라이징 스튜디오 법인을 키우고, 게임을 더 키워서 큰 회사에 좋은 가격으로 지분을 넘기거나 아니면 회사를 계속 성장시키는 방향이 있겠지.’
하지만 학생들의 역량만 놓고 보면 이 두 가지는 생각하기 어려운 내용이다.
‘박팀이 아예 작정하고 뛰어들어 제 회사처럼 키워준다면 또 모르겠지만…….’
아무리 제자들을 아껴도, 거기까지는 오버였다.
‘박팀이 정에 한없이 약해 보이는 사람 같아 보여도 실은 분명한 선을 그어놓고 사는 사람이니까.’
학생들에게는 정말 어마어마한 자산이 됐을 것이다.
최고의 스승 밑에서 놀라운 경험을 쌓지 않았나?
‘아무튼, 이것으로 검증은 끝났다.’
태연은 생각했다.
‘그는 교육자로서 최고의 자질을 가지고 있어.’
개발자로서도 충분히 좋은 사람이지만, 그보다는 교육자 포지션이었을 때 더 진가를 발휘하는 사람으로 보인다.
‘해저왕국 아틀란티스는…… 개인 팀을 셋업해 주고 겸사겸사 운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면 되겠지.’
이 순간, 태연은 마음을 정했다.
박경연을 스카우트해서 미국, 마스 게임즈 아카데미로 보내기로.
* * *
박경연이 큰마음을 먹고 대접하는 자리였다.
옛 동료들.
태연, 한설아, 최종학, 박명훈을 비롯해 스낵 엠파이어를 크게 알려준 시이나 미나미도 초청됐다.
박경연이 시원하게 말했다.
“먹고 싶은 거 마음껏 먹어도 돼요. 제가 살 테니까!”
태연이 진지하게 말했다.
“그 말, 곧 후회하게 될 거야.”
“……?”
두 미녀는 말 그대로 고기를 ‘흡입’했다.
서로 경쟁하듯, 열심히 고기를 구워 먹는 그녀들을 보고 모두들 할 말을 잃었다.
“하, 한팀이야 원래 잘 먹는 거 알고 있었는데…….”
툭 치면 부러질 듯, 가녀리고 청순한 시이나 미나미!
하루에 숟가락 크기의 샐러드 정도만 먹을 것처럼 보이는 그녀!
“아니, 무슨 먹방 뮤튜버를 보는 것 같네.”
“실제 먹방도 종종 한다더군.”
“아하…….”
“내가 후회할 거라고 했지?”
“뭐야, 유팀은 경험 있는 거야?”
“당연하지.”
“얼마나 썼는데?”
“한 끼 식삿값으로 수백만 원 정도?”
“……!”
입을 쩍 벌리는 박경연의 어깨를, 태연이 기분 좋은 미소로 두드리며 말한다.
“카드 결제 한도 미리 확인해 두는 게 좋을 거야.”
식사가 끝나갈 때쯤, 박경연은 정말 궁금했던 내용을 물었다.
“스낵 엠파이어의 어디가 마음에 들었습니까?”
시이나 미나미는 한 입도 음식을 먹지 않은 사람처럼, 깔끔하고 기품 있게 대답했다.
“사실 게임 자체는 제 취향이 아니었어요. 농담으로라도 완성도 높다는 소리도 못 하겠네요.”
그녀는 굉장히 단호하고 냉정했다.
단순히 그림 잘 그리고 예쁘기만 해서 초일류 회사의 원화가나 톱 인플루언서가 된 것이 아니었다.
“그, 그러면……?”
“게임에 대한 애정이 느껴졌어요. 텍스트들을 굉장히 상세히 읽어봤는데, 어느 것 하나 대충 써넣은 게 없더라고요. 작은 잡템조차도 애정을 넣고 설정을 넣은 게 인상 깊었어요.”
다들 공감했다.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성벽 쌓기에 사용되는 벽돌 아이템 한 장에조차도 귀여운 사연과 캐릭터성을 부여하려고 노력했다.
“이 외에 아트도, 기획 전반도…… 게임에 대한 애정이 확실히 느껴져서 기분이 좋았어요. 제 중학교 시절도 떠올랐고요.”
“중학교?”
“그건 또 뭐예요?”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 그녀는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제가 중학교 때 친구들하고 모여서 만든 게임이 딱 그랬거든요.”
“…….”
“보여드릴까요? 지금도 영상 가지고 있는데…….”
그리고 보여주는데…… 농담이 아니라 스낵 엠파이어와 퀄리티가 비슷하거나 더 나았다.
심지어.
“돈도 꽤 많이 벌었어요.”
“그래요?”
“얼마나 벌었는데요?”
“오천만 엔이요.”
“……!”
경악하는 사람들.
“아니, 한화로 5억…… 어떻게 그렇게 많이 벌었어요?”
“원래 게임 커뮤니티에 무료로 공개했는데 모 유명 게임 회사에서 보고 자신들이 다시 개발해서 서비스할 수 있게 해달라고 연락 주셔서…….”
“그래서 돈 받고 넘긴 거예요?”
“네!”
활짝 웃는 그녀.
태연도 호기심을 갖고 물었다.
“그러면 그 게임 혹시 다시 리메이크 출시됐나요?”
“네. 지금 콘솔로 4편까지 나왔는데…….”
콘솔로 4편까지……?
그 정도면 꽤 이름 있는 타이틀이라는 뜻인데…….
“게임 이름이 뭐죠?”
“조디악 나이츠예요.”
“아…….”
“그거……!”
게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알 수밖에 없는 액션 어드벤쳐 게임!
중세풍 판타지 세상.
판테라스 세상에 위기가 닥쳐오자 신은 황도 12궁의 힘을 선택받은 자들에게 내려 악과 맞서 싸우고 세상을 지키도록 도움을 준다.
플레이어는 황도 12궁의 캐릭터 중 하나를 선택해, 세계를 모험하고 악과 맞서 싸워나간다.
귀엽고 아기자기한 캐주얼 그래픽과 빼어난 캐릭터, 재미있는 시나리오, 화끈한 손맛 등으로 상당한 마니아를 구축하고 있는 인기 타이틀이다.
“그거 원작이 시이나 미나미 씨가 중학교 때 만든 게임이었어요? 그거 프로듀서가 누구였어요?”
“제 친군데, 그 회사에 입사해서 조디악 나이츠 3편부터 계속 프로그램 팀장을 맡고 있어요!”
“…….”
역시 게임 왕국 일본!
최종학이 감탄했다.
“확실히 일본이 스포츠도 그렇고 게임 쪽도…… 유소년 시스템이 굉장히 잘 구축되어 있네. 그래서 그런지 범상치 않은 재능의 소유자가 많이 출몰하는 것 같단 말이지.”
“일본이 게임, 애니메이션 대국의 명성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지.”
박경연은 민망해했다.
“이거 참, 이제 보니 우리 애들도 아직 멀었어요. 일본에서는 중학생들도 만드는 게임을…….”
“아니에요. 당시 우리 그룹…… 그러니까 프로듀서였던 진 짱이 굉장히 대단한 친구였어요.”
태연을 흘끔 보며 말한다.
“대표님 같은 천재 타입이거든요.”
“아…….”
“저도 그 친구에게 아트, 프로그램, 개발 같은 걸 배워서 오늘날까지 개발할 수 있었던 거예요.”
태연이 물었다.
“프로그램과 기획도 할 줄 아시나요?”
“네!”
한설아가 첨언했다.
“워낙 다재다능해서 회사 프로듀서, 디렉터들이 굉장히 좋아했어요. 아마 그 회사에서 TF팀을 제일 많이 경험해 봤을 거예요.”
방긋방긋, 예쁘고 깜찍한 미소를 짓는 그녀가 새롭게 보인다.
“이제 보니 시이나 미나미 씨도 천재 과였군요.”
“대표님이나 진 짱에 비하면 전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재주가 조금 있을 뿐이죠!”
대체 그 진 짱이란 어떤 사람인지…….
‘기회가 되면 만나보고 싶군.’
저렇게까지 반응할 정도면 정말 굉장한 천재임에 분명하다.
‘마니아틱했던 조디악 나이츠가 대중성을 갖추고 판매량이 부쩍 올라가게 된 게 3편부터인데…… 그때부터 프로그램 팀장을 맡은 거라면 천재라 불릴 자격이 있지.’
그건 그렇고.
“박팀.”
“응?”
“교수 일, 언제까지 할 생각이지?”
“뭐…… 자금에 여유가 생길 때까지는 해야지.”
“취업할 생각은 없나?”
“왜, 나 써주려고? 그런데 내 연봉 감당할 수 있겠어?”
“쓰지 않을 이유가 없지. 연봉 문제는…….”
태연이 슥 웃었다.
“박팀이 신경 쓸 문제가 아니지. 우리 회사가 어딘지 잊은 건 아니겠지?”
“아…….”
박경연은 민망해했다.
잠시 잊고 있었는데, 상대는 넥플의 수장이었다.
대한민국 재계 서열 10위 권에 진입한 게임 대기업의 수장.
“박팀. 미국으로 가.”
진지한 이야기가 시작되자 분위기가 엄숙해진다.
“이제 확실히 알았어. 박팀은 개발자로서도 충분히 유능하지만, 가르치고 이끌어주는데 재능이 있는 사람이야.”
“내, 내가?”
“그동안 계속 지켜봤어. 아마 모두가 동의할 거야.”
그 말에 최종학, 박명훈, 한설아……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마스 게임즈 알지?”
태연은 마스 게임즈 아카데미에 대해 설명했다.
박경연이 경악과 설렘이 섞인 얼굴로 물었다.
“지, 지금 나보고 그 아카데미의 총학장을 맡기겠다는 거야?”
“아니.”
“…….”
“뭘 보고 총학장을 맡겨. 그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박팀은 가서 교수를 해.”
“에이, 난 또…….”
“능력 있고 열정 넘치는 지도자들을 뽑아서 계속 보내줄 테니, 박팀은 가서 시스템을 만들어 줘.”
“무슨 시스템?”
“사실 얼마 전부터 구상하고 있는 게 있었는데…….”
이야기가 끝나자 모두가 탄성을 터뜨린다.
“아니, 나한테도 말 안 했던 내용이잖아? 이런 건 또 언제 구상한 거야?!”
마스 게임즈 대표로 내정된 최종학조차도!
태연이 묻는다.
“어떻게, 미국으로 갈래?”
“…….”
“집, 차, 개인 집무실, 연봉 3억.”
마지막 말에 반응을 보인다.
“해저왕국 아틀란티스 개발팀 셋업.”
“할게.”
“응?”
“한다고. 언제 갈까? 다음 주? 아니, 그건 좀 힘들 것 같고…… 다음 달에는 가능할 것 같은데. 짐 싸면 되지?”
“…….”
갑자기 의욕적으로 변한 모습에 사람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하여튼 저 인간도 천성은 개발자라니까.’
태연은 모처럼 만에 보는 동료의 활기 있는 모습에 미소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