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사한 게임 개발자가 너무 유능함-132화 (132/147)

퇴사한 게임 개발자가 너무 유능함 132화

82. 태연의 제안(4)

‘이건 진짜 회복이 안 되겠네.’

라이징 스톰…… 아니, 4학년 전체의 분위기가 꽁꽁 얼어붙었다. 이건 어떤 수단으로도 녹일 수 없다는 사실을 박경연은 짐작했다.

‘그래도 어느 정도는 나올 줄 알았는데…….’

저자본 아마추어의 색을 지우지 못했던 걸까?

아니면 단순히 게임이 재미가 없고 부족한 게 너무 많아서……?

‘좋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지. 유팀도 괜찮다고 말했고.’

넥플 챌린지 리그 심사까지 갔던 게임이 아닌가?

떨어진 했지만 전체 평가는 꽤나 준수했다.

그런데.

‘완전 박살 났네.’

산산조각이 난 수준이었다.

정말 야심 차게 만들었던 게임.

스낵 엠파이어는 완전히 망했다.

보름이 넘는 시간 동안 다운로드를 받아간 사람 수가 천 명이 넘지 않는다. 그래도 이 정도면 학생들이 만든 것치고 나쁘지 않은 것 아니냐고?

최고 동접률이 100도 안 나왔다.

수익은 어떠냐고?

‘내가 웹소설을 써서 연재해도 이것보다는 훨씬 많이 나왔을 거야.’

하여튼 게임 시장은 굉장히 냉정하다.

입으로야 얼마든지 힘내라, 미래가 기대된다. 열심히 응원하겠다. 등등. 좋은 말을 해준다고 해도 결제율과 동접률, 평균 플레이 타임 등의 지표가 현실을 말해준다.

‘이 게임은 망했다.’

처절하게.

‘이렇게 끝이라고?’

뭔가 납득이 안 됐다.

직접 프로듀싱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가장 신경 쓴 제자들이 처음으로 만들었던 게임인데.

못 만들었냐. 퀄리티가 그 정도로 참담하냐 하면 절대 그건 아니었다.

“…….”

잠시 혼자 생각에 잠겨 있던 박경연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 * *

“…….”

라이징 스톰 스튜디오의 분위기가 말이 아니었다. 박경연이 왔음에도 누구도 시선조차 주지 않는다.

총괄 디렉터이자 프로듀서였던 4학년 정지민은 책상에 얼굴을 박고 있었다.

박경연이 옆에 앉아 그 상태로 묻는다.

“뭐가 문제였을까요?”

“…….”

애들에게 뭘 어떻게 말해줘야 하나.

생각을 정리하던 박경연이 입을 열었다.

“내가 보기에 게임은 나쁘지 않았어.”

“……그럼 뭐가 문제예요?”

“우선 한 가지. 홍보.”

“……?”

시선이 몰린다.

“통상적으로, 영화도 그렇고 게임도…… 홍보 제대로 하면 제작비에 상응하는 수준의 비용을 마케팅에 쏟아붓거든. 그런데 우리가 한 마케팅이라고는 커뮤니티, 뮤튜브, SNS…… 이런 걸 활용한 게 전부였잖아.”

“뭐…… 마케팅 비용이 따로 책정되는 것도 아니니까요.”

“홍보 전문 회사에 맡기면 그나마 나았겠지만 그 비용이…….”

“이것도 나름 노력한 거예요.”

학생들이 한 한마디 말.

알지. 그걸 왜 모르겠나? 내가 곁에서 지켜봤는데.

“그런데 문제는 너희들의 노력이나 사정 같은 걸 시장은, 소비자들은 고려하지 않는다는 거야.”

“…….”

이게 경력 없고 기반 없고…… 심지어 제대로 업계 인맥조차 갖춰놓지 않은 학생, 아마추어들의 한계다.

만들긴 열심히 만들었고 마켓에도 어찌어찌 올려놓은 것은 성공했는데, 뭘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 인맥을 가동할 때가 됐지.’

사실 이것도 엄연히 개인의 자산이자 능력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팀원도 아니고 투자로 엮인 게 아닌 이상 이렇게까지 해줄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해주는 이유?

‘내 제자들이잖아.’

애들이 힘들어하고 있는데 스승으로서 도와주지 않을 이유가 있나?

“따라와. 지금부터 뭘 해야 하는지를 내가 직접 알려줄 테니까.”

게임 회사에 근무하고, 창업하고, 투자를 위해 발로 뛰어다니며 얻은 게 있다면 바로 인맥이었다.

창업 막바지, 돈과 개발 때문에 잠시 외부와의 연락망을 끊고 일에만 몰두했던 전적이 있었다. 그렇다고 모든 인맥이 끊긴 건 아니다.

‘원래 이 업계가 이러니까.’

박경연이 제자를 이끌고 찾아온 곳은 광화문 광장에 위치한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샵이었다.

“여긴 무슨 일로 오신 거예요?”

“기다려 봐.”

단 한 마디로 의문을 차단한 박경연.

잠시 후.

“이여, 박팀! 이게 대체 얼마 만이야?”

“일 년 만이지? 반가워. 그동안 잘 지냈어?”

“나야 뭐 항상 똑같이 지내지.”

정장을 입은 사내는 깔끔한 캐주얼 복장과 선한 인상이 인상적인 젊은 사내였다.

박경연과 반갑게 인사를 나눈 뒤 제자들에게 시선을 준다.

“이쪽은……?”

“내 제자들.”

“응?”

“한국대학교 게임 교육원 4학년 졸업반이야. 라이징 스톰 스튜디오 멤버들이지.”

“아…….”

그 소개로 그간의 사정을 모두 파악해 버린 그였다.

“결국 회사 접었구나.”

“그렇게 됐어.”

“내가 특집 기사까지 내줬는데도 말이지. 이 회사에서 만드는 게임이 정말 기대작이라고, 주목해야 한다며…….”

“알아. 나도 봤어. 장문으로…… 굉장히 성의있게 써줬더라. 얼마나 고마웠는지 몰라. 그래서 문자랑 기프티콘까지 보냈는데…….”

“뭐,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고.”

자리에 앉고, 스마트폰을 꺼내며 묻는다.

“날 왜 찾아왔는지는 대충 짐작되니까.”

게임 전문 잡지 기자가 아니라, 국내 메이저 언론사의 유능한 기자였다.

그 사실을 알고 학생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주요 일간지 기자라면 진짜 엘리트들인데…….’

이런 인맥이 있었을 줄이야.

“아, 이 게임이야?”

“유팀 알지?”

“태연이야 뭐 친구니까 잘 알지. 저번 주에도 만나서 식사 한번 했었는데…… 그 친구는 왜?”

“태연이도 이 게임 칭찬했었어. 챌린지 리그라고…….”

“아, 그거 나도 잘 알지. 넥플 인디 게임 브랜드 아니야. 아포칼립스 폴리스 그거 나도 재미있게 하고 있어.”

“그러면 말이 빠르겠네. 사실 이 친구들이…….”

여러 가지 재미있는 이슈들을 던져주며 인터뷰를 이어나간다. 학생들도 묻는 말에 최선을 다해 대답해 줬고.

“좋아. 이거, 내가 힘 좀 써볼게. 엄청나게 도움이 될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반응이 있을 거야.”

그럴 것이다.

주요 일간지에서 취급하는 기사들은 수많은 언론사와 블로거들이 인용하니까.

“오늘 정말 고마웠어. 혹시 이번 주 금요일 저녁에 시간 되면 유팀하고 같이 얼굴이나 보자고. 식사나 하자.”

“오, 그거 좋지. 아무튼…….”

기자는 학생들을 쳐다보며 한마디 한다.

“지금 당장 시장 반응이 없다고 실망하고 포기할 필요 없어요. 무엇이든, 물건을 만들어 시장에 내놓았을 때부터가 진짜 승부가 시작되는 거예요. 이제부터라는 거죠.”

“아…….”

“저도 도울 테니 최선을 다해봐요. 기대하고 있을게요. 화이팅!”

이후 주요 일간지뿐만 아니라 대형 게임 커뮤니티의 기자들과도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학생들로부터는 쉽게 만날 수 없는 이들이었다.

‘교수님이시니까 이런 기회를 마련해 줄 수 있는 거야.’

‘이게 정말 쉽지 않은 일인데…….’

‘우리 교수님. 이제 보니 정말 대단한 분이셨구나!’

비록 회사가 접혔지만 누구도 무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굉장히 안타까워하며, 정말 운이 없었다고 위로와 격려를 해준다.

자신들이 알던 사회의 반응과 조금 달랐다.

어려서 배우기로, 사회는 성공한 이들에게만 따스한 곳이고 망하고, 실패에 냉담하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하나같이 엘리트에 해당하는 이들이, 아무리 지인이고 안면이 있다지만 그 누구도 박경연을 무시하지 않고 오히려 존중했다.

덕분에 언론 인터뷰만 십수 번이 넘게 진행할 수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각종 게임 커뮤니티 메인 화면, 심지어 대 배너에 자신들의 게임과 특집 인터뷰 관련 내용이 걸려 있었다.

인터넷에 게임 이름, 혹은 스튜디오 이름을 검색하면 기사가 수도 없이 쏟아졌다.

이는 곧 시장 반응으로 연결됐다.

“다운로드 수가 일만을 넘겼어!”

“별점이 좀 떨어지긴 했지만…… 이건 당연한 거야. 평가하는 사람이 그만큼 많아지고 있다는 소리잖아!”

“어제는 동접률도 오백을 찍었어! 최고 수치야!”

무엇보다도 고무되는 점은 유료 결제율이 조금이지만 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게임 커뮤니티 카페에 글도 많이 올라온다.

그것을 참고하며 패치 노트를 만들고 수정 작업을 진행한다.

‘불이 붙었군.’

노력한 보람이 있다.

‘내 지갑에도 불이 나겠지만…… 뭐 어때?’

자신과의 인연 하나만 보고 큰 도움을 준 지인들이 너무나도 고마웠다. 비록 사업은 망했지만, 인간관계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성공했구나. 감동마저 들었다.

도움받은 만큼 맛있는 술과 음식을 대접하는 것으로 보답해 주는 게 도리지!

‘조금 더 도와주면 더 높이 올라갈 수 있을지도 몰라.’

망설임을 버리고, 자신이 가진 최고의 카드를 사용하기로 한 박경연이었다.

* * *

“홍보 좀 도와줘!”

태연은 난데없이 찾아와 투자나 개발도 아니고, 홍보 서포트를 요청하는 박경연에게 당혹감을 느꼈다.

“어떻게?”

“그건 유팀이 알아서 해줘야지!”

“아니…….”

말문이 턱 막힌다.

표정을 보니 장난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박경연이 간절하게 매달렸다.

“유팀은 대한민국 최고 게임 회사의 수장이자 개발자잖아. 프로듀서기도 하고. 하고자 하면 방법 떠올리는 거 정도는 일도 아니잖아.”

난감한 기분에 얼굴을 찡그리는 태연.

“돈을 달라는 것도 아니고…… 그 정도 부탁도 못 들어줘? 우리가 그 정도 사이밖에 안 돼?”

이렇게 말하면 마음이 약해지는데…….

‘홍보라. 아무리 나라도 돈 들이지 않고 효과 있는 홍보를 해줄 수 있는 방법이…….’

바로 그때, 노크 소리와 함께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저 들어가도 돼요?

“어, 들어와요!”

판데모니움의 AD 한설아였다.

그 옆에 원화 팀장인 시이나 미나미도 있었다. 한설아가 깜짝 놀라 묻는다.

“어? 박팀이 이 시간에 여긴 또 웬일이에요? 왔으면 연락 좀 해주지!”

“어, 여기 유팀에게 부탁할 일이 조금 있어서…….”

“어, 사실 무슨 일이냐면…….”

사정을 설명하는 박경연.

“흐음…….”

이야기를 들은 한설아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거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닌 것 같은데……?”

아무렇지 않은 말에 의아해하는 세 사람.

“여기 백만 구독자를 자랑하는 일본 톱 인플루언서가 있잖아요. 게임 방송 한 번 해달라고 하면 파급력이 굉장할 것 같은데.”

“아…….!”

탄성을 터뜨리는 태연!

게임 회사에서 할 수 있는 최고의 홍보 수단 중 하나가 바로 톱 인플루언서를 활용한 방법이다.

시이나 미나미라면 넥플 이직 이전부터도 유명한 인플루언서이기도 했고, 지금은 발표회 이후 엄청나게 이슈가 되어 스타덤에 올랐다.

게임 홍보에 있어서라면 시이나 미나미만큼 좋은 카드가 없었다.

“확실히…….”

“으음.”

고개를 끄덕이는 태연과 난감한 박경연.

박경연도 그녀를 잘 알고 있었다.

지금 업계에 가장 핫한 유명 인사를 몰라서야 게임 학과 교수라고 말할 자격도 없다.

잘 알아서 난감한 거였다.

‘홍보 비용이…….’

스트리머, 혹은 인플루언서가 가진 영향력의 정도에 따라 의뢰 비용이 증가하는 것은 당연한 원리.

시이나 미나미 정도라면 대체 얼마의 돈을 써야 하는지 감도 잘 오지 않는다.

유태연과의 친분에 기대 무료 홍보를 기대하는 건 정말 염치없고 경우 없는 일이었다.

‘이건 아니야. 거절해야 해.’

이건 태연과 한설에게도 좋은 일이 아니었다.

“저…….”

“게임 방송 할 수는 있어요. 그런데 조건이 있어요.”

또박또박.

조금은 어색하지만 그래도 눈에 띄게 좋아진 한국어로 말하는 시이나 미나미.

모두의 시선 속에 그녀는 생긋, 아이돌을 연상시키는 미소로 말했다.

“게임을 해보고, 매력이 느껴지면 방송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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