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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한 게임 개발자가 너무 유능함-131화 (131/147)

퇴사한 게임 개발자가 너무 유능함 131화

82. 태연의 제안(3)

늦은 밤.

오랜 동료들과의 치맥 타임을 마치고 홀로 집으로 돌아오는 길.

태연은 박경연의 푸념을 떠올렸다

-요즘 뼈저리게 느끼고 있어. 애들 가르치는 게 게임 만드는 것만큼 힘들다는 사실을 말이야.

스킬을 가르치는 것도 가르치는 거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으로서, 게임 개발자로서 멘탈을 만들어주는 것이란다.

-나 어렸을 때는 대학생 형 누나들이라면 다 큰 성인으로 봤거든? 그런데 가르쳐보니까 아니야. 그냥 몸만 큰 애들이야. 어후, 무슨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싸우고, 그게 남아서 프로젝트 진도도 제대로 못 빼고…….

아주 치를 떨었다.

-나 교수 생활 얼마나 할지 모르겠어. 돈이 필요해서 한 일이긴 하지만…… 확신이 안 가. 내가 이걸 해도 좋은지.

본인이야 힘들어 죽을 지경이겠지만, 듣고 있는 태연 입장에서는 여러모로 재미있었다.

교육원에서의 상황들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으니까.

‘확실히 교육에도 재능이 있어. 그러니까 학교에서도 정규 과목 논의를 하는 거겠지.’

4학년 제자들에게 자기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말라고 진행했던 짧은 특강.

그게 굉장히 반응이 좋고 내용도 좋았다는 모양이다.

전 학년 학생들에게 특강 커리큘럼 짜서 가르쳐 보라는 제안…… 을 빙자한 지시사항이 왔다고 하니까. 그 내용도 하는 말을 들어보니 굉장히 좋았다.

어디서도 배우기 힘든 귀중한 경험을, 처절한 실패를 맛본 실력 있는 개발자가 들려주는 것이니까.

한편으로 이런 생각도 들었다.

‘당시 나와 박팀의 개발력 차이는 그렇게 많이 나지 않았어. 만약 내가 팔찌를 얻지 못했다면 분명…….’

박경연과 크게 다르지 않은 처지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보다 더 심했을 수도 있지. 아무튼 중요한 건 이거다.

‘박팀은 가르치는 쪽에 재능이 있다.’

점점 확신이 강해진다.

학생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고, 따스한 관심으로 계속 품어주고, 끌어 줄 줄 아는 지도자는 굉장히 귀하다.

‘적당한 시점에 자리를 만들어 제안을 해봐야겠군.’

* * *

박경연의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으로 라이징 스톰 스튜디오는 예전의 활기를 되찾았다.

“업데이트 완료! 테스트 해봐.”

“오케이. 얘들아! 오늘 안에 각자 담당한 부분 수정까지 끝내자. 집에 일찍 돌아갈 생각은 버려! 대신 떡볶이 사줄게!”

스튜디오 총괄, 정지민의 외침과 함께 스낵 엠파이어의 테스트가 시작된다.

꼼꼼히 테스트하고, 수정해서 업데이트한 뒤 패치를 적용해서 또다시 테스트하고.

개발 막바지에 이른 스튜디오는 대부분 이런 모습이다.

수정, 테스트, 수정, 테스트.

“와, 이건 정말 해도 해도 끝이 없다. 다 됐나 싶으면 뭔가 또 신선한 게 튀어나와!”

“그런데 이렇게 해서 다 됐다고 생각해서 출시하면 또 뭔가가 튀어나올 거 아니야? 진짜 프로들이 만드는 상업용 게임들도 그러던데 하물며…….”

“그런 생각은 나중에 해도 늦지 않아. 수정에 집중하자!”

클로즈 베타 테스트는 교육원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일주일 정도 날을 잡고 교육원 학생, 교수들을 대상으로 테스트를 진행하는 것이다.

이 역시 교육원의 혜택 중 하나로, 이 기간 만큼은 교육원의 모든 이들이 총동원되어 게임을 꼼꼼하게 테스트하고 체크해 주도록 되어 있었다.

개발자 관점에서 타 게임을 테스트하고 아쉬운 부분을 지적해 보는 것 역시 좋은 공부가 될 테니까.

여기서 가장 바쁜 사람은 다름 아닌 박경연이었다.

말이 스튜디오지, 아직은 많은 것이 부족할 뿐인 어린 학생들이었다.

“아니, 그건 그렇게 하면 안 되지. 잘 봐. 여기서는…….”

가르쳐주고, 챙겨줘야 할 요소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여유가 있다면 아예 독립 법인을 차려 회사를 운영해 볼 수 있게 해주면 좋을 텐데.’

진짜 법인을 차려줘도 되고, 실제로는 동아리 형태지만 법인 형태로 회사를 운영하도록 해도 된다.

중요한 건 실제 개발사를 운영하는 감각을 길러주기 위함이니까.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무리겠지?”

“교육원 재정으로는 무리지.”

“나도 알아. 그냥 답답해서 해본 소리니까. 아무리 소규모라도 개발사 하나 운용하려면 최소한 몇억은 필요하잖아. 하지만 애들도 이런 걸 알아야 보다 현실적인 개발 공부를 할 수 있다고 봐.”

박경연은 맥주를 마시며 태연의 눈치를 본다.

“이런 건 뜻 있고 돈 많은 대형 개발사가 지원해 주면 참 좋을 텐데 말이지.”

“흠…….”

“아, 너무 부담 갖지는 마. 유팀에게 뭔가 바래서 하는 소리는 아니야! 자자, 마시자고!”

실컷 말해놓고 이제 와서…….

태연은 웃으며 잔을 부딪치고 맥주를 마셨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학생들로 하여금 개발사를 운영할 수 있도록 해준다. 나쁘지 않군. 많은 지원이 필요하겠지만 넥플과 머큐리 게임즈라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야.’

아니, 마스 게임즈 자체 매출만으로도 충분하다.

지금 마스 게임즈가 서비스하고 있는 엘크로스 Re는 북미 매출만 하더라도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거대하니까.

‘고민을 해볼까?’

실제 법인을 차리도록 하는 건 많은 무리가 뒤따르는 일이다. 아카데미에서 자체적으로 시스템을 마련해서 운용하는 것이 그나마 최선이다.

‘회사 사무실 용도로 쓸 건물을 매입하거나 지어서 최소 금액만 받고 월세를 내주는 거지.’

하지만 모든 것을 돈으로 처리하는 것은 너무 무식하다.

‘이 교육 시스템 안에서만 통용되는 가상 크레딧을 만들어 제공해서 돈처럼 사용할 수 있도록 하면 되지.’

아카데미 안에 가상의 경제 체계를 만드는 것이다.

활동 기간에 한계가 있긴 하겠지만, 그 기간 안에 현실을 반영한 시장 논리를 파악하고, 이에 대응하는 방법들을 몸으로 학습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학비를 어떻게 책정하느냐가 문제인데…….’

국가 지원 같은 건 일단 기대도 하지 말고.

순수하게 마스 게임즈 자금으로만 운영한다고 하고, 기존 미국 대학교 등록금 체계를 따라 한다고 했을 때 얼마를 받아야 효율이 높을까?

‘마치 게임을 만드는 기분이군. 재미있겠어.’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그때 들려오는 박경연의 목소리가 태연을 현실로 되돌려놨다.

태연은 박경연을 빤히 보다가 물었다.

“그 해저 왕국 아틀란티스라는 게임. 정말 계속 완성할 생각이 있는 건가?”

“당연하지. 이건 내 비전 프로젝트라고. 유팀에게 있어서 판테온, 판데모니움과 같은 거란 말이야!”

“학생들 가르치는 것은 언젠가는 그만두고 싶고?”

“나는 천성이 개발자라니까.”

그렇게 말하던 그가 살짝 말을 바꾼다.

“그런데 요즘 느끼는 거지만…… 학생들 가르치는 것도 꽤 재미있어. 두 가지 중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당연히 개발자의 길을 걷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이것도 계속 하고 싶어.”

씩 웃는다.

“팀원들 가르칠 때와 달라. 어린 제자들을 끌어주며 그들이 성장하는 모습 지켜보는 게 정말 뿌듯하더란 말이지.”

“혹시 진짜 재능은 교육 쪽에 있었던 거 아닌가?”

“그런가? 그럴지도 모르겠네 하하하! 마시자고!”

“그래.”

입으로는 지겹다. 힘들어 죽겠다 노래를 불러도 진심은 이거였다.

‘그 마음 내가 잘 알지.’

벌써 몇 명의 제자를 길러낸 태연이었다.

태연은 슥 웃었다.

‘빼어난 개발 실력에 인성도 빼어나고, 거기에 교육에 대한 열정과 재능까지 갖추고 있으니…….’

그야말로 마스 아카데미를 이끌기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닌가?

입이 근질근질했지만 꾹 참았다.

‘아직은 때가 아니야. 더 지켜봐야지. 시간이 필요해.’

자신에게나, 그리고 박경연에게나.

* * *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

아포칼립스 폴리스 오리지널 버전은 첫 번째 대규모 업데이트를 진행했다.

유저들로부터 제보, 혹은 제적 받았던 이슈들을 모두 해결하고, 몇 가지 시나리오와 콘텐츠를 추가한 것이다.

그러는 동안 챌린지 리그에서 두 번째, 세 번째 게임이 런칭했고 나름 좋은 성과를 얻었다. 스튜디오 일원들은 휴가비를 제공받아 기분 좋게 유급 휴가를 다녀왔다.

넥플 공식 발표회가 진행됐다.

장소는 삼성역 코엑스.

담당자들의 발표를 직접 보고, 듣고, 실제 게임도 플레이해 볼 수 있도록 게임쇼 형태로 진행됐다.

여기서 가장 주목을 받은 게임은 크게 두 가지였다.

비너스 프로젝트.

스타 원화가 오영욱이 총괄 디렉팅을 맡은 게임으로, 건슈팅 RPG 게임이었다. 예전부터 육감적인 여체를 굉장히 잘 그려내는 것으로 명성이 자자했던 그가 이번 작에서 전심전력을 드러냈다.

육감적인 미소녀 용병들이 특기와 속성에 맞는 화기로 무장한 채 전쟁터를 누빈다!

또 가챠 모바일이냐며, 넥플 클래스 역시 어디 안 간다고 욕을 퍼붓는 이들이 많았지만 그만큼 주목을 받기도 했다.

판데모니움.

차후 공개될 판테온과 세계관을 공유하는 PC MMORPG로, 만마전에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다.

이번 발표회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지대한 관심을 받고 있었다.

이 게임의 프로듀서가 태연이었고, 기획팀장이자 디렉터 역할을 맡은 이가 바로 매출 신기록의 주인공 최종학이었기 때문!

두 스타 개발자의 이름값만으로도 기대할 가치는 충분했다. 더욱 오랜 기간 내부 테스트를 진행하며 게임성과 퀄리티를 입증했다.

지금도 인터넷에 검색하면 내부 플레이 영상과 리뷰 분석 콘텐츠가 수도 없이 쏟아진다.

비너스 프로젝트는 이미 예전부터 많은 홍보 자료를 공개하기도 했고, 장르 자체가 워낙 뻔했다. 특히 일본과 중국에서는 예전부터 인기를 끌고 있던 장르였다.

분명 큰 주목을 받았고 기대작으로 평가받았지만 그게 전부였다.

판데모니움은 달랐다.

일단 개발자부터가 굉장히 화려하다.

넥플의 주축인 유태연과 최종학.

닌텐도 출신 미녀 AD, 한설아와 원화가 시이나 미나미.

이 네 명의 존재만으로도 굉장히 빛을 발한다.

그런데 게임이 그보다도 더 빛난다.

한설아와 시이나 미나미의 개성이 담긴 화려하고 귀여운 동화풍 아트!

판데모니움.

만마전의 세계관을 적절히 녹여내서 눈이 즐거운 세계를 구현했다.

예전에 떠돌던 내부 테스트 영상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빼어난 퀄리티였다.

“이거 언제 출시된다고?”

“캐주얼 MMORPG는 정말 오랜만인데…… 마음에 들어. 이건 무조건 해야겠다.”

테스트 현장은 수많은 이들로 북적였다.

평판도 굉장히 좋았고 사은품으로 준비된 마우스 패드, 캐릭터 인형, 노트, 파일첩 등의 굿즈는 퀄리티와 풍성한 구성으로 엄청난 호평을 받았다.

오죽하면 중고 장터에서 현금으로 거래될 정도였으니……

그 외에 게임들은 두 게임만큼은 아니었지만 나름 상당한 주목을 받으며 존재감을 각인했다.

이번 쇼에서 한설아와 시이나 미나미는 스타덤에 올랐다.

외모. 스팩, 실력.

이 세 가지가 굉장히 특출났기에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특히 시이나 미나미의 경우는 이미 인플루언서로서도 상당한 명성을 지니고 있었는데, 그녀가 한국 게임 시장에 진출해 크게 활약 중이라는 소문이 퍼지자 고국인 일본에서도 엄청난 주목을 받게 됐다.

‘스타 개발자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

업계를 위해서도, 회사와 소속된 프로젝트를 위해서도!

태연은 이를 긍정적으로 봤고 또한 적극 밀어줄 생각이었다. 단, 개발 일정을 방해받지 않는 선에서.

* * *

이렇게 한국 게임 업계가 신작, 기대작으로 떠들썩하고 있을 때.

“올라왔다. 빨리 확인해 보자.”

“어디…… 오, 진짜 올라왔네. 우리 게임이 앱 스토어에 올라오다니……!”

“신기하다.”

한국 대학교 게임 교육원.

4학년 졸업반이 만든 게임이 앱에 공개됐다.

라이징 스톰 스튜디오의 스넥 엠파이어!

마침내 결과물을 세상에 내놓은 학생들은 기대 반 두려움 반의 심정으로 지표를 주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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