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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한 게임 개발자가 너무 유능함-130화 (130/147)

퇴사한 게임 개발자가 너무 유능함 130화

82. 태연의 제안(2)

“아니, 캐릭터 아군 팀 컬러가 블루. 적군이 블랙, 아니, 레드! 몇 번을 말해? 왜 아군이 레드야? 이게 무슨 배틀로얄 게임이냐? 다 죽이게!”

“아니, 여기 기획서에 분명 레드라고……어?”

“아니, 분명히 레드라고 적혀 있었는데…….”

“뭐. 뭐 병신아. 어디 아군 컬러가 레드라고 적혀 있는데? 어?”

“……병신? 너 말이 너무 심하다?”

싸움이 잦아졌다.

화기애애하고 열정이 넘치던 라이징 스톰 스튜디오에 어느 순간부터인가 짜증만 가득했다.

특히 프로듀서는 완전히 의욕을 상실한 모습이다.

“저거 말려야 하지 않아?”

“……냅둬. 저러다 말겠지.”

“…….”

“하아.”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된 건지.

‘이대로 있으면 안 되겠어. 뭔가 해야…….’

아트 디렉터, 최수진은 어디론가로 이동했다.

“흠, 나도 알고는 있었는데 그렇게 심해?”

“네. 하루에 셀 수 없을 정도로 싸우고 냉전이고…….”

“지민이는.”

정지민. 라이징 스톰 프로듀서이자 총괄 디렉터의 이름이었다.

“개는 완전 의욕을 상실했어요. 보고도 말릴 생각 자체를 안 해요.”

“한 번 가보자.”

결국 박경연이 나섰다.

“너희들 왜 이래? 요즘 싸움이 잦다며?”

“…….”

“…….”

학교 바깥에 있는 햄버거 가게에 데려가 중재를 시도했다. 감자튀김, 햄버거, 너겟…… 평소 같으면 좋아라 달려들었을 녀석들이 어색한 분위기에서 깨작거리기만 한다.

“후우.”

박경연은 이유를 알고 있었다.

“너희 넥플에 프로젝트 거절당한 것 때문에 그러지?”

“…….”

반응은 없다.

그러나 무언의 수긍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박경연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것들이 정말…… 그러면 게임 투자받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인 줄 알았어?”

“…….”

“야, 라떼는……!”

울컥할 뻔했다.

차가운 콜라를 들이켜며 속을 식힌다.

그리고 생각해 본다.

‘회사 업무라…….’

그런 것까지 상세히 가르쳐야 하는 생각이 처음에는 없잖아 있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다시 생각해 보면 맞는 말이다.

‘개발과 아무 상관 없다고 생각해서 제대로 가르치지 않았지만…… 사실은 그조차도 개발의 일환이지.’

게임 회사는 정교하게 만들어진 시계와 같다.

일반인이 보기에는 도무지 용도를 알 수 없는 작은 부품조차도, 시계를 잘 아는 전문가라면 이게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 인지하고 있으니까.

‘교육 커리큘럼에 없는 내용이라 언급도 제대로 해주지 않았지.’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다.

이 친구들이 납득하지 못하는 것이 바로 그런 부분과 관련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기회만 준다면 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그건 누구라도 마찬가지다.

‘나도 회사를 접기 전까지…… 아니, 교수가 되고 나서도 한참 동안은 억울하다고 생각했었으니까.’

경험을 공유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내가 여기 오기 전 게임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다는 사실 알려줬었지?”

“……?”

집중되는 시선.

‘아픈 이야기지만 제자들을 위해서라면…….’

성장의 발판이 될 수 있다면 아픈 과거쯤, 얼마든지 공개할 수 있다.

“내가 그 이유를 가르쳐 줄 테니까 일단 빨리 먹자.”

라이징 스톰 스튜디오에게만 들려주기에는 아까운 강의였다.

“좋아. 다들 모였나?”

“네!”

“그러면 특강을 시작하도록 하자.”

이곳에 오고 나서 한 번도 꺼낸 적 없었던 이야기.

강의실 화면에 회사 로고가 뜬다.

[라이징 미디어.]

애써 담담하게 말했다.

“이곳에 오기 전까지 운영했던 내 회사다.”

그렇게 시작되는 이야기.

“처음에는 자신만만했어. 너희들, 유태연, 최종학, 박명훈 이 세 사람 잘 알지? 요즘 업계에서 넥플 3대장이라고 불린다는 스타개발자들. 그 사람들이 내 동기들이다. 내가 그 사람들하고 같이 게임 개발하던 사람이었어.”

그뿐만 아니라 함께한 이들도 상당한 경력과 실력을 지닌 이들이다.

“네로 소프트 신화 온라인에서 중책을 맡았던 친구들도 있었고, 심지어 실리콘밸리에 있는…… 누구나 다 아는 IT 대기업 입사 제안도 뿌리치고 우리 회사에 온 친구들도 있었거든.”

당시 함께했던 창업 멤버들의 스팩을 줄줄이 읊자 탄성이 터져 나온다.

그 정도면 어벤져스라는 단어를 붙여도 어색함이 없는, 최고의 실력자 집단이었기 때문이었다.

박경연 교수의 능력은 학생들도 잘 알고 있었다.

도무지 모르는 게 없어서, 무엇이든 물어보면 최선의 답변을 해주는 사람이었으니까.

“모 회사로부터 40억 투자 제안을 받았고, 10억을 먼저 입금받았다. 사실 나보다는 같이 창업을 했던 친구들의 힘이었지. 업계 황금 라인을 타고 있었거든. 카이스트 졸업, 네로 소프트 입사, 신화 온라인 개발 성공…….”

“우와…….”

“사무실을 고민했지. 그리고 사실 여기서부터 망조가 들었어. 그 친구는 곧 죽어도 강남, 판교, 아무리 못해도 분당 밖을 벗어나면 안 된다는 입장이었어. 하지만 나는 DMC, 구로…… 이쪽을 주장했지.”

사무실 구하는 것에서부터 망조가 들었다니?

학생들은 이상해하면서 그 말에 귀를 기울였다.

“자, 과연 누구의 말이 먹혔을까?

“그야 친구분…….”

“왜?”

“그 친구분 덕분에 투자가 성사되었다고 하셨으니까요.”

누군가의 대답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박경연이 말했다.

“맞췄어. 우리는 서현으로 갔다. 아무리 그래도 강남과 판교는 지나치게 비쌌거든.

이유를 상세히 들려줬다.

그냥 비싸서 못 갔다고 말하고 넘어가면 체감이 안 올 테니까.

“초기 멤버가 열 명이었고 모두 각자 회사에서 고액 연봉을 받던 사람들이었어. 그 정도까지 쳐주지는 못해서 1, 2천 정도를 깎아야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용이 꽤 되는 거야.”

아이들이 모르는 사실도 있다.

“흔히 연봉 4,000만 원 개발자를 영입했다고 하면 인건비가 그 정도만 들 것 같지? 안 그래. 통상 연봉의 1.5배에서 두 배가 그 개발자에 들어가는 인건비야.”

“어째서요?”

“개발용 PC 최고 사양으로 맞춰줘야지. 책상, 의자, 전기세, 수도세, 식비, 잡다한 복지비, 회사에서 내주는 4대 보험료…….

“아…….”

“열 명까지는 따로 총무팀 인력을 고용하지 않고 내가 공부하고 몸으로 부딪히면서 어떻게든 처리했는데 그 이상부터는 도저히 안 되겠더라. 그거 전담으로 처리해 줄 사람들 구하고, 개발자 조금씩 늘리고…….”

“…….”

“그 인원이 스무 명이 넘어가면 일 년에 들어가는 총 인건비만 해도 억대를 가볍게 넘기는 거야. 여기에 월세, 관리비…….”

“…….”

“투자를 받은 게 수익으로 책정되거든. 10억을 투자받았다면 거기서 세금을 뺀 만큼의 비용이 우리 개발비가 되는 거야.”

꽤나 담담하게.

학생들 입장에서는 정말 상상하지도 못했던 개발 회사에 대한 적나라한 현실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라이징 스톰 프로듀서이자 총괄 디렉터 정지민을 보고 말했다.

“프로듀서, 혹은 스튜디오 대표라는 말은…… 이 모든 것을 감당하면서 개발까지 지휘하고 있는 사람에게나 붙여줘야 되는 말이야 원래는.”

“…….”

“아무튼, 그렇게 일 년을 버티고 나니 돈이 다 떨어졌어. 우리 공동 대표들은 이 시점에 차 팔고, 아파트 담보 대출받고…… 그것도 안 돼서 인맥들에게 돈 빌리러 다니고…….”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다.

“그때부터는 개발이고 나발이고 아무것도 눈에 안 들어와. 돈. 제발 돈…… 하다못해 1억, 아니, 몇천만 원이라도 제발……!”

침을 꿀꺽 삼키는 학생들.

“여기서 창업 공신들이 하나둘씩 리타이어 하는 거야.”

정지민이 조심스레 물었다.

“그…… 원래 40억 받기로 했던 건 어떻게 된 거예요?”

“안 주더라.”

“네?”

“심지어 공증까지 받았는데 안 줘. 발을 뺀 거지. 아, 얘들 안 되겠구나. 혹은 자기들도 상황이 조금 급해지니까 입장이 바뀌었거나…….”

“…….”

“대기업이었는데…… 그들에게도 40억이라는 게 엄청나게 큰 돈이었던 거지. 네가 생각해 봐.”

정지민을 가리키며 말했다.

“너한테 1억이 있어. 그런데 친구가 출판사 차리겠다고, 5,000만 원…… 아니, 2,000만 원이라도 제발 투자해 달래. 해줄 수 있겠어?”

“……어렵겠죠?”

“500만 원은?”

“그것도 조금…….”

“똑같아. 보유 자금이 많고 적고를 떠나서…… 투자 업무를 대행하는 직원들은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라고. 기업 돈이 자기 돈이 아니야. 그건 회사 법인명의 자금이고, 그래서 단돈 백만 원이라도 함부로 쓸 수 없는 돈이란 말이야.”

“아…….”

“그리고 그런 투자 관련 일이 국내 정세에 굉장히 영향을 받아. 지난번, 미국이 자국 인플레이션 잡겠다며 기준 금리를 올렸어. 달러 가격이 올라갔지? 그러면 주변국에서 금리를 따라서 올리게 될 거 아니냐. 안 그래?”

“그렇겠죠.”

“우리나라도 금리를 올렸어. 대출 이자가 올라갔겠지? 서민뿐만 아니라 기업들도 똥줄이 타는 거야. 이 대출금을 우리 기준으로 생각하면 안 돼. 주택 담보 대출이야 많이 받아봐야 몇억이지 회사들은…….”

“아…….”

“그렇게 되면 돈 새는 걸 어떻게든 막아야 해. 투자 줄이거나 아예 없애 버리고, 심한 곳은 인력 감축도 하고…….”

지금까지 이런 문제를 단 한 번도 깊이 생각해 본 적 없던 학생들이었다.

“이런 상황이니 우리 같은 작은 회사 투자를 못 받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 물론 약속해 놓고 안 줬다는 생각 때문에 미친 듯이 원망스럽고 막 그랬지만…….”

어느새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결국 돈을 끌어다 줬던…… 카이스트, 신화 온라인 출신 공동 대표가 GG를 치고 나가 버렸어. 도무지 행방을 찾을 수가 없더라. 이제 모든 짐이 나 한 명에게 넘어온 거야. 어떻게 했을까?”

돈 구하기 위해 미친 듯이 돌아다녔다.

“이때 진행한 투자 관련 미팅만 수백 건은 될 거다.”

“어떻게…… 됐어요?”

한 여학생의 조심스러운 물음에 피식 웃는 박경연.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걸 보면 모르겠니?”

망했다. 정말 처절하게.

하필이면 집안 문제까지 겹쳐서 상황이 더 악화됐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그 집안 문제가 자살충동을 억눌렀다.

내가 가버리면 가족은 누가 돌본단 말인가?

“그…… 게임은요?”

“보여줄까?”

“네!”

우렁찬 대답.

게임을 보여준다.

게임이 큰 화면으로 드러나자 탄성을 터뜨린다.

환상적인 해저 왕국의 풍경!

수많은 어인들이 모여 살고 전설의 인어 왕족들이 다스리는 환상의 왕국 아틀란티스!

이야기는 인어왕이 죽고 벌어진 왕위 계승전쟁에서, 패배하여 달아난 막내 인어 왕자, 혹은 공주의 탈출에서부터 시작된다.

멀리 벗어나 나만의 왕국을 건설하는 게 목적이다.

모바일용 소셜 RPG였다.

“어떠냐?”

“와…….”

학생들은 시선을 떼지 못했다.

짧은 기간, 적은 규모의 개발팀이 자금난에 허덕이며 만든 것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뛰어났다.

그래픽, 시스템, 시나리오, 구성…… 모든 면에서 학생들이 감히 쳐다볼 수 없을 정도였다.

특히 라이징 스톰 스튜디오 멤버 전원이 큰 충격을 받았다.

자신들의 구성과 비슷했는데, 퀄리티는 비교할 수조차 없을 정도였던 것이다.

“이런 걸 가지고도 투자가 안 돼서 결국 접어야 했다. 참고로 이거 원화 그리고 캐릭터 만들고 프로그램 짰던 친구들, 지금 넥플, 네로, 넷펀즈 같은 국내 대기업 게임 회사에서 근무 중이다. 메인급으로.”

실력이나 퀄리티도 중요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뜻이다.

“시운도 맞아야 하고, 영업 능력도 좋아야 해. 너희가 학생이라고 예뻐하고 봐주면서 돈을 대줄 투자자는 없어.”

“…….”

“나나 아포칼립스 피플의 정정환 대표 같은 사람들이 바로 너희의 경쟁자들이야. 그 사람들을 압도하는 뭔가가 있어야 투자를 받아낼 수 있는 거야. 운도 좋아야겠지만…… 아무튼 알겠어?”

“네!”

우렁찬 대답에 씩 웃는다.

“비록 회사는 망했지만 난 아직도 포기하지 않았어. 언젠가는 이 게임을 완성시키고 말 거다. 다시 흩어진 동료들을 모아서. 그게 안 되면 나 혼자서라도.”

시간이 다 됐다.

박경연은 특강 종료를 알리기 전, 마지막으로 말했다.

“그러니까 너희들도 끝까지 포기하지 마.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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