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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한 게임 개발자가 너무 유능함-129화 (129/147)

퇴사한 게임 개발자가 너무 유능함 129화

82. 태연의 제안(1)

태연은 결론을 내놓기 전, 학생들의 표정을 살폈다.

혹시나 하는 기대감이 가득하다.

‘어떻게 해야 최대한 상처를 주지 않고 좋게 끝낼 수 있을까?’

고개를 젓는다.

‘이런 마당에 그런 일이 가능한 일이 없지.’

그렇다면 자신의 스타일대로 간다.

‘언제나처럼 직구. 정면돌파다.’

태연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스낵 엠파이어에 대해 투자할 마음은 없습니다. 정말 미안한 이야기지만, 그 정도의 게임은 아닙니다.”

“아…….”

“……!”

충격받은 얼굴들.

“제가 한 가지 묻고 싶은데, 스낵 엠파이어 총 개발비, 분기 업데이트 단가를 정확히 어느 정도로 잡고 있죠?”

“네? 어어…….”

“그, 그게…….”

시선이 디렉터 역할을 했던 학생에게 쏠린다. 학생이 더듬거리며 말했다.

“개발 기간을 총 2년으로 잡고, 여기 있는 개발팀의 연봉을 업계 평균 정도로 계산하면 그게 그러니까…….

“깊게 생각을 해본 적은 없군요. 왜냐면 졸업 프로젝트로, 학교에서 지원을 받아 제작하는 거니까.”

“…….”

“프레젠테이션을 받아봤고, 플레이를 해봤으며 여러분과 박경연 교수님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본 입장에서 제 생각을 말하자면…….”

흘러 나온 이야기는 충격적이다.

“여러분의 역량을 고려, 최소 5년간 수십 명이 수십억을 써서 만들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는군요. 참고로 오픈베타 스팩만 포함한 겁니다.”

“……!”

경악을 하는 멤버들.

박경연이 더듬거리며 물었다.

“아, 아니…… 그건 좀 너무 간 것 같은데…….”

태연은 게임이 켜져 있는 휴대폰 화면을 보여주며 말했다.

“그러면 정말 이 퀄리티로 승부를 보겠다고? 진짜로?”

“…….”

“당장 아트만 해도 상업용으로 제대로 만들겠다면 처음부터 모든 것을 뜯어고쳐야 해. 싹 바꿔야 한다고. 그걸 모르지는 않을 텐데. 박팀도 그게 아쉬워서 제대로 기회 한 번 주려고 나 찾아온 거 아니야?”

“…….”

말을 못 하는 박경연에게서 고개를 돌리고, 태연이 학생들에게 말했다.

“왜 그 정도 돈과 인력이 필요한지 말해줄 테니 잘 들어봐요.”

이후 들려준 이야기는 업계에서 구를 때로 굴러본 개발자, 프로듀서, 그리고 회사 경영자가 아니면 알 수 없는 내용들이었다.

“대학교에서 감당해 줄 수 있는 건 한계가 있어요. 법인을 만들고 본격적인 개발사로 시작해야 하는데…… 여러분, 법인 회사를 운영할 수 있겠어요? 세무회계, 인보이스 작성, 이런 거 다 처리할 수 있겠어요? 이것도 개발의 일환이에요.”

“…….”

“박팀, 학교에서 이런 것도 알려주나?”

그는 고개를 저었다.

“자세히 알려주지는 않지. 개발 관련 교육만도 갈 길이 머니까.”

태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학생들에게 말을 이어갔다.

“아마 여러분은 이걸 기대했을 거예요. 라이징 스톰 스튜디오와 스낵 엠파이어를 넥플이 받아주고 본격적으로 개발, 런칭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것. 맞죠?”

“네에.”

“맞아요.”

태연이 손뼉을 치며 말했다.

“자, 그러면 그렇게 했을 때 상황을 계산해 봅시다. 여기. 다섯 명이서 끝까지 개발할 건 아니죠?”

“…….”

머뭇거린다.

그럴 생각이었나 보다.

태연은 고개를 저었다.

“어림도 없어요. 제가 보기에 이 정도 사이즈면 전문 인력으로 수십 명은 필요해요.”

더헙!

다들 헛숨을 집어 삼킨다.

“여러분이 디렉터로, 장급으로 그 인력들 제대로 컨트롤해서 스튜디오 운영할 수 있겠어요?”

아무도 대답을 못 하는 상황에 디렉터 학생이 손을 치켜들었다.

“하, 할 수 있습니다.”

“정말요?”

“네! 할 수 있습니다! 기회만 주시면 해보이겠습니다!”

패기가 넘친다.

젊음의 특권이다.

한편으로 간절함도 보인다.

여기서 물러서면 좋은 기회를 놓쳐 버릴 것 같다는 다급함에 나온 행동이다.

무모하게 보이긴 하지만 태연은 마냥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다.

혹시라도, 정말 뛰어난 재능이나 숨겨진 무언가가 있어 해낼 수 있을 지도 모를 일 아닌가?

해주려던 말을 모두 지우고, 태연이 말했다.

“그러면 거기서부터 시작해 봅시다.”

태연은 챌린지 리그 개발실로 데려갔다.

“아포칼립스 폴리스 개발팀이에요. 이쪽은 한국 대학교 게임 교육원 4학년 학생들이에요.”

인사를 시켜주고, 태연이 정정환 대표에게 말했다.

“지금부터 이 친구들하고 프로그램 개발 회의를 진행해 주세요.”

“아하. 무슨 말씀이신지 잘 알겠습니다. 사실 저도 대학교나 교육원 특강 같은 거 많이 해봤어요.”

씩 웃는 정정환 대표와 스튜디오 멤버들.

직후 태연이 비켜준 상태에서 개발 회의가 시작된다.

“어떤 걸 만들고 싶은 거죠?”

“아, 그러니까…….”

“흠, 그것보다는 이런 식이 훨씬 낫지 않나요?”

“아, 듣고 보니…….”

“제 생각에는 그 기획은 제가 말한대로 작업하고 나머지 문제에 대해서는…….”

학생들은 회의가 끝나고 나서야 느꼈다.

‘주도가 역전됐다!’

정신 차리고 보니 회의를 자신이 아닌 그가 이끌고 있었다. 기획, 프로그램 설계도 그가 제시하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중이었다.

학교에서 이런 일은 종종 발생하곤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역량 차이가 너무 커.’

이런 경우라면 차라리 낫다.

서로 다른 의견의 충돌은 골치 아프다.

사실은 별 차이도 없는데, 그걸 알면서도 자존심 싸움을 하다가 프로젝트가 뭉개지는 경우가 흔하다.

개발자들의 세계에서 리더십이란, 압도적인 경험치와 개발 역량에서 비롯되는 게 일반적이다.

‘어느 것 하나, 내가 주도할 수 있는 게 없어.’

프로그래머들이 기획을 모른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오히려 기획을 구현해 주는 사람들이라, 기획서를 한 번 보고 대화를 조금만 해보면 역량 파악쯤이야 한순간이다.

역량을 파악당한 시점에서 주도권은 넘어갔고 기세 싸움에서 졌다.

질질 끌려다니기만 해서야 어찌 디렉터를 할 수 있겠나?

정정환 대표가 그 마음을 알고 조금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넥플에서 실제 업무에 투입되면 지금보다 더 심한 상황에 처하게 될 거예요.”

“……?”

“현시점에서 이 회사에 입사했다는 것 자체가 업무 역량이 상당히 뛰어나다는 소리거든요. 그 사람들은 하나같이 공통점이 있어요. 이 회사에서 내가 뭔가를 해보겠다는 거.”

씩 웃는다.

“야망이 엄청나다는 뜻이에요. 여기 있는 우리를 포함해서.”

“아…….”

“어쭙잖은 사람이 프로젝트를 맡고 있어? 그런데 나보다 못해? 애송이야? 자, 과연 어떤 꼴이 날 것 같아요?”

“…….”

“프로듀서, 혹은 디렉터는 야심 있는 개발자라면 누구나 꿈꾸는 직책일 거예요. 게임 개발을 진두지휘한다. 얼마나 멋져요? 누구나 하고 싶지.”

하려면야 어디서든 할 수 있는 일이다.

“문제는, 자본이 들어가게 되면 이야기가 많이 달라진다는 거예요.”

직원들 월급을 주지 못해서.

혹은 그럴까봐 괴로워해 본 적이 있나?

“그래 본 적이 없다면 프로듀서 자격이 없는 거예요.”

수십, 수백 번의 분해, 재조립 과정을 반복하며 최상의 개발 방향을 모색해 본 적이 없나?

“그래 본 적이 없다면 디렉터로서의 자격이 없는 거죠.”

그게 갖춰져 있어야 프로듀서, 디렉터로서 팀을 끌고 갈 수 있다.

“이 세계에서 실력이란, 이 모든 것을 통틀어서 일컫는 거예요.”

어느새 정정환의 얼굴에 표정이 사라져 있었다.

그 모습에 학생들은 넘을 수 없는 거대한 격차를 느꼈다.

마지막으로, 학생들에게 평생 지워지지 않을 조언을 건넨다.

“지금 상태로는 출시는커녕 테스트 단계도 버거워요. 공부 열심히 해서 실력을 더 쌓도록 하세요.”

* * *

학생들은 멘붕 상태로 돌아갔다.

박경연은 태연, 최종학, 박명훈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하러 이동했다.

최종학이 밥을 먹으며 묻는다.

“박팀이 대체 거기서 하고자 하는 게 뭐야? 내가 보기에는 천성 게임 개발자 해야 하는데.”

머뭇거리던 박경연이 사연을 털어놓는다.

“친구들과 창업했던 회사가 망하면서 사정이 좀 어려워졌어. 설상가상으로 어머니가 쓰러지면서 집안 형편도 좀 어려워졌고.”

“저런…….”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태연이 조용히 말했다.

“그래서 연락을 끊고 지냈군.”

“수습하느라 정신이 없었거든. 다행스럽게도 게임 교육원 교수 제안을 받고 월급이 넉넉해지면서 한숨 돌릴 수 있게 됐지.”

“회사는 어쩌다가……?”

“투자를 해주겠다던 회사가 사정이 나빠지니 갑자기 입장을 바꾸더군.”

“아…….”

“그 후로 자금 구하겠다고 여기저기 뛰어다녔어. 다들 외면하더라고. 같이 창업했던 녀석은 손 털고 도망가 버린 탓에 내가 다 감당해야 했어. 어렵게 마련한 아파트까지 넘겼는데도 월급 다 못 주겠더라.”

“그래서 어떻게 된 거야?”

“뭐…… 버는 족족 일부는 생활비, 일부는 병원비, 일부는 대출금, 일부는 월급…… 이렇게 나가고 있지.”

“월급이 아직도 나간다고?”

“날 믿고 몇 달 무급으로 일했던 사람들이 있었어. 그 사람들, 어떻게든 돈은 돌려줘야 할 거 아냐.”

박경연은 한숨을 내쉬었다.

“회사 아무나 하는 거 아니더라. 게임 잘 만들 자신 있었거든. 그런데 그게 문제가 아니었어. 직원 하나둘 들어오고, 회사, 투자사…… 이것저것 신경 쓸 게 많아지니 공부도 해야지, 몸을 부딪혀서 알아봐야지…… 하하.”

태연을 향한 시선이 경이로움이 가득 찬다.

“대기업을 이끌며 게임 프로젝트를 몇 개씩이나 진행하고 있는 유팀이 신기할 따름이야.”

“교육원 월급은 어때?”

“나쁘지 않지만…… 딱히 좋지도 않아. 적당한 편이지 뭐. 교수라고 다 같은 교수가 아니잖아?”

“…….”

“무슨 원대한 꿈을 품고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건 아니야. 하다 보니 열정이 생긴 거지. 지금으로써는 빚을 갚고 병원비를 대는 게 시급하니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고.”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최종학이 잔을 들어 올렸다.

“마시자고!”

“죽어 봅시다!”

박명훈이 호응하며 술자리 분위기가 다시금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태연은 애써 웃는 박경연을 보며 생각했다.

‘기준점에 미치지 못했지만 분명 학생들 작품치고 상당한 수준이었어. 가르치는 쪽에 더 재능이 있는 것 같은데…….’

일단은 그렇게 보이지만…… 역시 중요한 건 결과물.

‘사실 개발팀에게 가장 중요한 건 이제부터지.’

어떻게 위기를 넘기느냐.

‘지도 교수로서 어떻게 그들을 가르치며 리드하느냐.’

사실 말을 안 했지만, 평가위원회 3인이 합의한 것이 있었다.

결과물과 그에 대한 대중의 반응까지 지켜본 뒤 평가를 내린다.

스낵 엠파이어. 발상은 귀엽지만 결국은 흔한 모바일 수집형 게임이었다. 퀄리티도 그저 그랬다. 하지만 소수의 학생들이 학교의 지원만으로 여기까지 끌고 왔다는 건 분명 주목할 일이다.

그래서 나머지도 지켜보기로 했다.

위기를 수습하여 프로젝트를 끌고 가는 과정.

테스트, 출시. 시장 반응. 후속 대처.

그리고 나서야 결정할 것이다.

상당한 재능을 지닌 학생들에 대한 처우를.

‘다른 길로 가겠다면 어쩔 수 없는 거고…….”

입사하고 싶다면 받아주는 거고.

‘중요한 건 학생들이 아니야.’

바로 박경연의 처우.

‘정말 가르치는 쪽에 재능이 있다면 더 크게 써먹을 수 있는 곳이 있지.’

그것을 위한 검증 기간이기도 하다.

‘그때까지 잘 해내기를.’

태연은 옛 동료의 건투를 진심으로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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