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사한 게임 개발자가 너무 유능함-128화 (128/147)

퇴사한 게임 개발자가 너무 유능함 128화

81. 태연의 선택(2)

박명훈, 최종학을 불러 <스낵 엠파이어> 테스트 빌드를 건네주고 말했다.

“지금부터 일주일 동안 게임을 플레이하고 이걸 어떻게 할지 정해보자.”

흔히 하드 게이머를 자처하는 이들이라면 게임 파악에 어지간해서는 하루를 넘길 일이 없다.

이 자리에 있는 세 명도 그에 속했지만, 평가 위원 명함을 단 이상, 최대한의 성의는 보일 필요는 있었다.

세 명은 일주일 동안 각자의 방식대로 게임을 플레이하며 많은 대화를 나눴다.

“이거 캐릭터가 너무 많아서 밸런스 잡는 게 쉽지 않겠어.”

“뭐, 이런 게임이 다 뻔하지. 등급 제일 높은 거 뽑아서 일단 모두 키워보는 형식으로…….”

“밸런스는?”

“업데이트하고 신규 캐릭터 발매할 때마다 달라지겠지 뭐.”

하루가 뭔가?

몇 시간 플레이했을 뿐인데 벌써 최종 업데이트까지 머릿속에 다 그려진다.

이 게임은 어떤 식으로 덱을 구성하고 플레이를 해야 할지.

“이런 게임은 너무 많아서…….”

“그래도 스토리와 기반 설정이 제대로 갖춰진 건 큰 장점이야. 무엇보다도 스낵 제국이라니, 뭔가 기발하잖아.”

“그 기발함을 센스 있게 못 살린 게 아쉽군. 결정적으로 아트를 싹 바꿔야 해. 더 귀엽고 깜찍하게. 성우도 흔히 말하는 일뽕 느낌 잘 낼 수 있는 사람들로 바꾸고…….”

“어, 이거 작업 규모가 너무 커지는데…… 이럴 거면 차라리 다른 주제와 아이템으로 새로 만드는 게 낫지 않을까?”

“아니, 이런 게임 이미 많다니까? 난 사실 지금도 이거 하는 내내 예전에 하다 말았던 진저 쿠키 대격전이 하고 싶어 죽을 지경이라고.”

“아, 그거 재미있지.”

최종학과 박명훈은 쉴 새 없이 게임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았다.

커피샵에서.

입은 빨대에, 시선은 휴대폰에.

피식.

태연은 속으로 생각했다.

‘그야말로 완벽한 직장인 게이머의 모습이로군.’

태연도 휴대폰 게임 화면에 시선을 주며 생각했다.

‘모두 맞는 말이야. 우리가 가져오기에는 아쉬운 점이 너무 많아.’

그래도 아이디어가 좋고 이 게임에 대한 애정이 가득 느껴진다.

‘그렇다면 차라리……?’

* * *

박경연과 라이징 스톰 개발팀은 판교 넥플 사옥에 방문했다.

“와…….”

“진짜 크고 거대하다.”

“우리도 이런 곳에서 게임 만들면 참 좋겠다.”

제자들의 대화를 들으며 박경연은 속으로 생각했다.

‘넥플, 확실히 예전에 방문했을 때와 비교하면 많은 것이 달라졌어.’

정말 많은 것이 바뀌었다.

1층에 거대한 규모의 팝업 스토어와 카페가 생겼는데 손님이 굉장히 많았다. 평일 낮이었음에도 말이다.

‘대부분 해외 관광객들이군.’

그리고 엘크로스 Re와 디즈니 판타스틱 월드의 유저들로 보인다.

‘엘크로스 Re가 얼마 전, 최대 동접 100만 명 달성해서 난리가 났었다지?’

디즈니 판타스틱 월드는 판매량 1,000만 장을 넘겼다고 했다. 이외에 다른 게임들 역시 좋은 평가를 받으며 매출이 급상승하는 상황이다.

이와 더불어 넥플의 재계 순위 역시 빠르게 올라가고 있었다. 이는 게임 업계뿐만 아니라 재계에서도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다.

국내, 해외 투자자들이 몰리고 있다고 한다.

중동 석유 재벌들은 돈을 싸 들고 오는 상황이라고…….

“어? 박팀!”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리는데 익숙한 음성이 들려왔다.

“종학 씨 아냐?”

최종학이었다.

카페테리아에서 팀원들과 커피를 마시고 나오는 길인 듯싶었다.

“어, 최, 최종학 피디님이다!”

“와, 진짜 존경하는 분인데…….”

“저분이 우리나라 매출 신기록 달성한 그분 맞지?”

제자들의 수군거림에 괜히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저렇게 굉장한 사람이 자신과 친하고, 먼저 알아보고 반갑게 다가와 줬다는 사실에.

최종학은 악수와 포옹을 하며 묻는다.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박팀 형이랑 치킨도 먹고 그랬다면서요? 나만 빼고!”

“다음에 같이 먹으면 되죠.”

“다음은 무슨, 그렇게 말하고 또 잠수 탈지 누가 알아? 오늘 끝나고 한번 봅시다.”

슥 제자들을 둘러보며 말한다.

“내가 치맥 쏠게요!”

“우와!”

제자들의 환호성에 박경연은 거절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한숨을 내쉬었다.

“하여튼, 겉보기와 달리 너구리가 따로 없다니까.”

“사람 쉽게 안 변하지. 흐흐.”

그렇게 대화하며 태연의 집무실로 이동했다.

“왔어? 학생 여러분들도 어서 와요. 넥플 방문을 환영해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미래의 투자자, 혹은 최고 상사가 될지도 모를 사람!

학생들은 잘 좀 부탁한다는 마음을 담아 허리를 굽혀 씩씩하게 인사했다.

박명훈이 박경연에게 친한 척을 했다.

“진짜 오랜만이네요.”

“그, 그런가요?”

“네. 정~말 정말 오랜만이에요. 난 어디서 죽은 줄 알았는데 한국대 교수라니…… 사람 참…….”

“하하…….”

섭섭함이 느껴진다. 그만큼 자신을 깊게 생각했다는 의미, 어색하게 웃던 박경연은 이내 한숨 쉬며 사과했다.

“미안해요. 그럴 일이 있었어요.”

“뭐…… 오늘 저녁에 식사하며 들어 봅시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렇게 친하게 지내던 우리들하고도 연락을 끊고 지냈었는지.”

“안 그래도 오늘 내가 치맥 쏘기로 했으니까 그때 가서 보자고.”

“그래? 그러면 되겠네.”

박경연은 땀이 잔뜩 나는 것을 느꼈지만 학생들은 우와, 감탄할 뿐이다.

그 유명한 넥플 3대장이 아닌가?

자신들의 스승이 지금 한참 떠들썩한 업계 톱 3와 이렇게 친한 관계였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태연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갈 길이 머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갑시다. 스낵 엠파이어를 일주일 동안 플레이하고 집중 분석하며 느꼈던 내용들을 모두 알려드리죠.”

“……!”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거기까지.

태연이 입을 여는 순간 긴장감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자, 우선…….”

태연을 비롯한 3인의 평가 위원은 가차 없는 혹평을 쏟아냈다. 물론 장점도 섞여 있었지만, 그보다는 혹평이 더 많았다.

너무 사정없이 몰아치니 열심히 필기하던 학생들은 멘붕이 오는 것을 느꼈다. 박경연도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쓴소리가 꽤 많이 날아들 거라 짐작은 했지만…….’

설마 이 정도로 몰아쳐 댈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원래 인정사정없는 인간들이긴 했지만…… 더 심해졌네.’

대기업의 큰 축을 짊어진 자들의 숙명이라고 봐야 하는 걸까?

야속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날카로운 식견과 꼼꼼한 분석에 전율이 느껴지기도 했다.

‘이 정도는 되어야 스타 개발자 소리 듣는 거구나.’

학생들은 울상이었다.

애정을 담아 최선을 다해 만든 게임이 철저하게 박살 나고 있었으니까.

그때였다.

똑똑.

“……무슨 일이죠?”

“개발 회의 있습니다. 세 분 모두 참석하셔야 합니다.”

“무슨 게임 개발 회의죠?”

“비너스 프로젝트입니다.”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온다.

방금 전까지 울상을 짓던 학생들이 난리가 났다.

“나, 나 그 게임 알아! 국내 탑급 원화가 오영욱 님이 합류했다던 그 게임이잖아!”

“네로 소프트, 넷펀즈 출신 개발자들도 많다는데…….”

“백억 이상 들인 모바일이라고……!”

태연은 그 모습을 보고 결정을 내렸다.

“곧 가겠습니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말했다.

“실제 개발 회의를 견학해 보고 싶지 않나요?”

회의실에 태연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뭐, 뭐야?’

‘무슨 일이지?’

비너스 프로젝트 스튜디오 팀장들이 당황했다.

“빈자리에 앉아요.”

“네!”

학생들에게 그렇게 지시하고 태연 역시 자리에 앉는다.

그리고 프로듀서이자 아트 디렉터인 오영욱에게 말했다.

“한국 대학교 게임 교육원 학생들입니다. 견학 온 거니 신경 쓰지 말고 평소처럼 회의 진행하시면 됩니다.”

“아, 네에…….”

생소한 상황과 쏟아지는 시선이 조금은 부담스러웠지만…….

‘정신 바짝 차리자. 그래야 조금이라도 덜 깨지지!’

그보다는 태연이 더 무서웠다.

저 냉철한 카리스마와 인정사정없는 독설에 당해 본 이들은 모두 같은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어느새 회의실을 장악한 태연이 북풍한설을 연상케 할 정도로 싸늘한 음성으로 말했다.

“준비됐으면 시작하시죠.”

‘와…….’

‘세상에…….’

팀장들의 프레젠테이션을 보며 학생들은 넋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모바일로 저런 그래픽이 가능하다고?’

‘진짜 재미있어 보여. 캐릭터, 시스템…… 진짜 대박이다!’

‘저건 나오면 무조건 양대 마켓 휩쓸겠다.’

학생들이 보기에는 천상계의 게임이 따로 없었다.

스타급 원화가 오영욱의 아트를 제대로 살린 비주얼은 말할 것도 없고, 뻔한 수집형 모바일을 건 슈팅 RPG로 참신하게 구성한 능력은 정말이지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였다.

보고 있는데 해보고 싶어 미칠 정도였다.

‘나도 저런 게임 만들고 싶어.’

‘진짜 멋지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학생들의 판단.

“레벨 디자인이 엉망이네요. 특히 BM, 제가 지난번에 대폭 수정하라고 분명 지시했을 텐데 크게 변한 게 없네요? 과금하지 않으면 메인 스토리조차 모두 볼 수 없다는 게 말이 되나요?”

“아, 아니…… 볼 수는 있지만 과금을 하면 더 편하게 할 수 있도록 한 것…….”

“어느 세월에요?”

“…….”

“유저들이 그때까지 기다려 줄 것 같아요?”

“…….”

“무슨 허들을 그런 식으로 잡습니까? 물론 난이도 조절은 필요하지만 과금 유무가 메인 스토리 진행에 영향을 끼치면 안 되죠!”

“죄, 죄송합니다.”

“그리고 제가 최적화 신경 써서 구동 스팩 좀 낮추라고 했던 말 기억하십니까? 그거 작업 제대로 됐어요?”

“작업 진행 중입니다.”

“아직도요?”

“…….”

“바로 어제까지 테스트 빌드를 플레이해 봤습니다. 특히 로딩창에서 프레임 드랍, 프리징 때문에 BGM이 심하게 버벅이는 이슈가 아직도 해결이 안 됐더군요. 그게 그렇게 어려운 작업입니까? 제가 직접 뜯어서 해결해 볼까요? 과연 얼마 걸리나?”

“아, 아닙니다. 최대한 빨리 해결하겠습니다.”

“그리고…….”

학생들은 느꼈다.

‘아, 우리는 진짜 봐주신 거였구나.’

‘저게 바로 그 유명한 몰살 모드!’

‘진짜 장난 아니다.’

저게 바로 실전에서의 진짜 유태연이라는 사실을.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이 하나같이 엄청난 경력을 지닌 최고의 개발팀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런 이들이 태연의 독설 앞에 고개를 들지 못한 채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있었다.

한바탕 휘몰아친 태연은 숨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전혀 흥분하지 않고 계속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가장 큰 문제가 서버 쪽인데…….”

태연이 최종학을 바라봤다.

“네가 좀 도와라.”

“나? 판테온 때문에 바쁜데…….”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너한테는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야. 가서 좀 해줘. 사람 몇 명 차출해서.”

“…….”

“판테온보다 이쪽이 더 급해.”

“끄응…….”

담당 서버 프로그래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러나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최종학이야말로 자타가 공인하는 ‘천재 개발자’였기 때문이었다.

“수정 공지 계속 뜨고 친구 추가 창, 상태창 데이터 표기 오류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어. 네가 좀 도와줘.”

“아, 진짜…….”

한숨을 푹 쉬며 최종학이 말했다.

“알았어. 내가 확인해 볼게.”

태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주위를 둘러본다.

분위기가 말이 아니었다.

여기서 태연이 조율을 시작한다.

“지금도 충분히 잘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조금만 더 고생하면 훨씬 더 좋은 게임이 될 수 있어요. 대박 내서 충분히 보상받아야죠. 그러기 위해서 지금 죽을 고생 하는 거 아닙니까?”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

“제가 분명히 약속드리겠습니다. 여러분 모두는 고생한 만큼, 성과만큼의 대가를 받아갈 수 있을 겁니다. 그러니 조금만 더 고생합시다. 알겠습니까?”

“네!”

우렁찬 대답.

“다음에 더 개선된 모습, 기대하겠습니다.”

회의가 끝나고 그 자리에 박경연과 라이징 스톰 개발팀만 남았다.

최종학과 박명훈도 각자 업무를 위해 자리를 떠났다.

“후우…… 응?”

각 잡힌 자세로 앉아 있는 학생들을 보고 태연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박경연이 쓰게 웃으며 말했다.

“회의 때 유팀 모습 보고 다들 얼어붙었어.”

“아…….”

태연이 작게 미소 지었다.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 회사의 개발팀이 아닌 이상 그렇게 호된 모습을 보일 일은 없으니까요.”

“…….”

안심보다는 섭섭함을 느끼는 학생들이었다.

“스낵 엠파이어에 대한 이야기를 마무리 지어야겠죠? 제 선택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