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사한 게임 개발자가 너무 유능함-126화 (126/147)

퇴사한 게임 개발자가 너무 유능함 126화

80. 게임을 만들고 싶은 사람들

챌린지 리그의 첫 번째 작품.

아포칼립스 폴리스에 이어 두 번째 게임이 발매됐다.

엄청난 성과는 없었지만 예쁘고 아기자기한 도트 그래픽, 힐링과 함께 경영 시뮬레이션으로의 맛을 살려낸 게임성이 호평받았다.

챌린지 리그의 인디 게임들이 이렇게 성과를 내자 기존, 넥플을 안 좋게 보던 시선들이 크게 바뀌기 시작했다.

-넥플이 웬일이냐 정말…….

-요즘 넥플 하는 거 보면 내가 알던 그 돈플이 맞나 싶음.

-유태연 PD가 대표가 되고 나서부터 넥플이 진짜 게임회사다워지고 있는 것 같아서 보기 좋음.

-대작도 중요하지만 이런 인디 게임이 살아나야 대한민국 게임 업계 전체가 살아나는 거임. 넥플이 잘하고 있음.

그중, 넥플의 변화와 성과를 가장 달가워하는 이들은 다름 아닌 게임 교육 단체를 운영 중인 학교, 혹은 학원이었다.

* * *

챌린지 리그 성공 이후 수많은 게임 학교, 학과, 학원에서 방문하기 시작했다.

자매결연을 하고 협업하며 상생하자는 취지였지만…….

‘우리 좀 잘 봐달라는 뜻이로군.’

태연으로서는 좋은 게임, 키울 만한 인재가 있다면 환영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특정 단체와 협약 같은 것을 맺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면 협약을 맺지 못한 곳들이 불만을 갖게 될 테니까.’

태연이 할 수 있는 말은 정해져 있었다.

“좋은 게임을 가져오시죠. 평가위원회로부터 긍정적인 평가를 받으면 챌린지 리그 소속으로 지원을 받을 수 있을 테니까요.”

“야, 요즘 내가 살맛이 난다. 그거 다 내가 발굴한 게임들 아니냐? 엉?”

확실히, 근래 유진성 회장의 얼굴은 굉장히 밝고 건강했다. 본인이 좋은 의도로 진행 중이던 유진성 랩이 결과적으로 인디 게임 업계의 빛이요 희망과 같은 존재가 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점심시간.

갑자기 불려 나오긴 했지만 그가 그렇게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태연도 기분이 좋아졌다. 초밥을 하나 입에 넣고 우물거리며 물었다.

“요즘 청탁이나 제안 같은 게 많이 들어옵니까?”

“어휴, 말도 마라. 어떻게 알았는데 사방에서 온갖 연락이 온다. 제발 우리 게임 좀 한 번 만 봐달라고, 혹은 자기 좀 살려달라고.”

“어떻게 처리하고 계십니까?”

갑자기 태연을 향한 시선이 진지해진다.

젓가락을 놓고 픽 웃으며 말한다.

“왜, 혹시라도 내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서 앞뒤 분간 못 하고 막 도와줄 것 같아서 그러냐?”

“……솔직히 말하면요?”

“자식아! 내가 이래 봬도 넥플 창업자야! 넥플을 일으킨 사람이 바로 나란 말이야! 나 아직 안 죽었어!”

“조금 과하다 싶을 만큼 들뜨신 것 같아서 걱정이 되네요.”

“야, 내가 살다 살다 게임 투자 문제로 걱정받는 날이 다 오네.”

“엘크로스 오리지널 투자 사건 때를 생각하면 당연한 일 아닐까요?”

“짜식아, 그게 내 실수냐? 그건 영상이 녀석이……!”

“최종 결정권자는 회장님 아닙니까?”

“…….”

“회장님은 스스로가 굉장한 기분파라는 사실을 납득하지 못하시는 것 같아서 드리는 말씀인데…….”

태연의 눈빛이 싸늘하게 번뜩였다.

“투자하기 전에 냉정하게 세 번 정도는 생각해 보시고, 그래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저에게 먼저 상세 자료를 보내주십시오.”

“뭐?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 거야?”

“그래야 쓸데없이 돈 쓰는 일이 줄죠. 그리고 아무리 상황이 급하다지만 자기가 지금 무슨 게임을 만들고 있는지도 정확히 알지 못하고 있는…… 마음만 앞선 사람들에게는 돈을 줘서는 안 됩니다.”

태연은 그동안 넥플과 유진성 회장이 투자한 업체들을 상대하며 깨달은 게 있었다.

“일단 돈부터 벌고 보자는 사람들은 상대해서는 안 됩니다. 여기저기, 인기 요인만 잔뜩 따와서 급하게 만든 게임이 제대로 됐을 리가 없거든요.”

“아…….”

“그리고 저보고 그 역할을 해달라며 비싼 돈 주고 유진성 랩에 고문으로 고용하신 게 아닙니까?”

“…….”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사실이었으니까.

“그 역할에 충실하려는 겁니다. 어마어마한 연봉을 받으면서 일을 허투루 하고 싶지는 않거든요.”

초밥을 다시 한입에 넣고 조용히 씹다가 꿀꺽 삼킨 뒤 말을 끝맺었다.

“그리고 회장님의 자산은 회장님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뭐? 야 인마! 내 돈이 내 게 아니면 누구 거야?”

태연은 씩 웃었다.

“넥플의 비상금이죠.”

“……야 인마!”

태연은 따뜻한 차를 마시며 식후의 노곤함을 즐겼다.

앞에서 뭐라고 따지든 전혀 개의치 않고.

* * *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다.

“여, 유팀!”

“박팀?!”

드워프를 연상시키는 굵직한 근육질 몸매 험상궂은 얼굴.

박경연 팀장.

과거 블레스 시절, 프로그램 팀장으로 잠시 동안 함께 동고동락했던 관계였다.

동갑내기 친구이기도 해서 최종학과 더불어 말을 놓고 지내는 몇 안 되는 지인이었다.

“요즘 뭐하고 지내? 통 연락도 안 되고 말이야.”

씩 웃는다.

“나 한국 대학교 게임 교육원 교수로 재직 중이야.”

“……!”

한국 대학교.

대한민국에서 알아주는 4년제 명문대학교로, 이곳 게임 교육원이 꽤나 유명했다.

“언제부터?”

“올해부터.”

태연은 그의 우락부락하지만 정감 가는 얼굴을 보며 진지하게 물었다.

“개발은 포기한 거야?”

“음…….”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레 말한다.

“친구들과 공동 창업한 회사가 망했거든.”

“……그것도 몰랐는데?”

“2년 만에 망했으니 뭐…….”

그래서 연락이 잠시 끊겼구나.

“빚이 많아?”

“유팀이 신경 쓸 정도는 아니야.”

단호하다.

박경연은 예전부터 그랬다.

외모와 달리 천사 같은 마음씨를 지니고 있었지만 그에게는 분명한 선이 있었다. 오죽하면 그 선을 자주 넘는 강건 대표와 매일같이 싸우다가 못 견디고 퇴사할 정도였으니.

그가 나가고 꽤나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정말 실력 있는 프로그래머였으니까.’

지금까지 그렇게 힘들게 지냈으면서 주위에 내색 한 번 안 했다니…….

태연이 물었다.

“종학이랑 명훈 CP 여기서 근무하는 거 알고 있어?”

“잘 알지. 방송, 인터뷰에도 나오고…… 업계에서는 넥플 3대장으로 명성이 자자하더만?”

“알고 있었네.”

“계속 주시하고 있었지. 사실 강건 밑에서 계속 고생하는 유팀이 제일 안쓰러웠는데…… 이렇게 잘돼서 얼마나 기쁜지 몰라. 아, 맞다.”

“그렇게 기뻤다면 결혼식에도 참석 좀 하지 그랬어.”

“미안, 당시 집안 상황이 안 좋았어. 정말로.”

표정이 안 좋았다.

태연은 깊은 속사정이 있음을 짐작했지만 깊이 캐묻지 않았다.

‘괜히 약한 모습 보이는 걸 싫어하는 친구니까.’

어두워진 분위기를 전환하려, 태연이 손뼉을 치며 활기차게 물었다.

“칙칙한 이야기는 그쯤 해두고, 날 찾아온 이유가 있을 텐데, 무슨 일이야?”

그제야 박경연의 얼굴이 원래의 표정으로 돌아온다.

“진지하게 살펴봐 줬으면 하는 게임이…… 정확히는 팀이 있어서.”

* * *

그 다음 주 월요일.

태연은 오전 회의를 마치고 관악로에 위치한 한국 대학교로 이동했다.

“여기야, 여기!”

정문 앞에 박경연이 마중 나와 있었다.

그를 태워 안내에 따라 교수 전용 주차장으로 이동한다.

그가 차를 살피며 수선을 떨었다.

“와, 이거 벤츠 S클래스잖아? 이거 보니 진짜 성공한 느낌 나네. 응? 하하하!”

친구의 성공을 자신의 것처럼 기뻐하는 모습이 변한 게 없구나 싶었다.

주차를 마치고 나란히 교내로 이동하는데.

“어?”

“우와!”

“유태연 대표님이다!”

태연을 알아본 학생들이 몰려들기 시작한다.

박경연이 도리어 당황한다.

“뭐야, 연예인도 아닌데 왜 이렇게 인기가 많아?!”

반면, 이 같은 상황을 많이 경험해 본 태연은 담담히 사인, 사진 촬영 요청을 받아줬다.

그런데 아무리 응해줘도 사람이 줄지 않는다.

오히려.

“유태연 피디님 왔다며? 어디야? 나 그분 팬이란 말이야!”

“유태연 대표님! 저 엘크로스 빠돌이예요! 대회도 나갔어요!”

더 많이 모여든다.

특히 남학생들이 열정적인 모습을 보인다.

마치 존경하는 톱스타를 바라보는 것 같았다.

‘이게 유팀의 위상이구나!’

박경연은 전율을 느꼈다.

대한민국 그 어떤 게임 개발자가 이런 위상을 보인 적이 있었던가?

오히려 게이머들에게 역적 취급이나 당하지 않으면 다행이지.

‘굉장하다!’

업계, 수많은 개발자들에게 좋은 본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갖는 의미가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 오랫동안 개발자로 활약해 온 박경연은 잘 알고 있었다.

존경할 가치가 있는 롤 모델이 있고 없고의 차이.

이것은 생각보다 크다.

‘우리 학생들에게도 분명…….’

간신히 무리에서 벗어나 게임 교육원 본관 건물에 진입할 수 있었다.

“흠.”

얼핏, 평범한 학관 같았다.

‘나름 유명한 게임 교육원이라고 해서 뭔가 특별한 점이 있을 줄 알았는데…….’

그런 건 전혀 없다. 작업용 PC가 적절히 갖춰져 있긴 했지만 그조차도 크게 와닿지는 않는다.

“투자가 대대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지는 않군.”

“어쩔 수 없지. 이 정도만으로도 감지덕지해야 할 판이라고.”

대한민국에서 알아주는 명문대학교였고 그래서 타 학교 대비, 예산이 풍족한 편이라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원래 예산은 덩치를 따라가는 법이다.

“내가 교수가 되어 보니까 학교 입장을 알겠더라. 여기저기 쓰면 남는 게 없는데, 게임 교육원 덩치를 이 정도로 키우고 유지하고 있는 것도 정말 대단한 결단인 거야. 한국대학교 학장님과 교수님들 중에 깨어 있는 분들이 많은 덕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고.”

“흠…….”

“유팀이 더 잘 알겠지만 게임 개발이 돈이 좀 많이 들어가는 작업이잖아.”

“그렇지, PC 사양도 어중간한 것으로는 턱도 없고 필수 소프트웨어 구독료만 해도 가격이 상당히 나가니까.”

“상당히가 아니라 어마어마하게 나가지. 아무튼…… 그래도 다들 열심히 하고 있어.”

박경연이 씩 웃는다.

“지금부터 내가 보여줄 개발팀은 내가 본 모든 팀을 통틀어 재능과 열정이 뛰어난 팀이기도 하고.”

모든 학생…… 이 아니라 모든 ‘팀’이라고?

박경연은 평가가 후한 사람도, 그렇다고 인색한 사람도 아니다.

본 그대로.

자기가 경험한 그대로 냉철하게 평가할 줄 아는 인물이다.

‘박팀이 이렇게까지 말할 정도라면 기대해도 좋다는 뜻이겠지?’

“안녕하십니까! 4학년 개발 2팀. 라이징 스톰 스튜디오입니다!”

라이징 스톰 스튜디오라…….

태연은 작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스튜디오 이름은 누가, 어떤 식으로 짓는 겁니까?”

의문형이지만 시선은 이미 말을 하고 있는 금테 안경 청년에게 향해 있었다.

그가 무리의 리더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대답은 예상과 조금 달랐다.

“원래 정해져 있는 이름입니다. 스튜디오를 선배들에게 물려받는 방식이거든요. 이곳 개발실을 포함해서요.”

락커룸 사이즈였지만, 개발에 필요한 최소한의 장비는 모두 갖춰져 있었다. 이 외에 냉장고, 선풍기, 에어컨…… 학교 부실치고 꽤나 훌륭했다.

“그러면 이 모든 것들이 학교에서 지원받은 게 아니라……?”

“선배님들이 물려주신 거예요. 아니면 기부해 주셨거나!”

참 재미있는 전통 아닌가?

“참고로 넥플에 다니는 선배님들 중 우리 라이징 스톰 스튜디오 출신 선배님도 계십니다! 작년 중순, 판데모니움 개발실 아트팀으로 입사했다고 하셨어요!”

순간 떠오르는 얼굴이 있었다.

“원화가 김나경 씨를 말하는 건가요?”

“네! 나경 선배님이 바로 저 이전 라이징 스톰 스튜디오 피디이자 아트 디렉터셨어요! 저번 달 방문하셔서 맛있는 것도 사주시고 선풍기도 한 대 기증해 주셨어요!”

어조에 선배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하다.

“꼭 넥플에 입사해서 같이 근무하자고 격려도 해주셨어요!”

‘김나경 씨라면 이영애 AD님이 칭찬했던 신입 원화가였지. 아트뿐만 아니라 기획, 프로그램 쪽에서도 상당한 식견과 재주가 있었고.’

그 이유가 바로 이곳 스튜디오에서의 경험이 있었던 것이다.

‘이 학교,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좋은 학교일지 모르겠어.’

태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시간이 많지 않으니, 빨리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하도록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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