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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한 게임 개발자가 너무 유능함-124화 (124/147)

퇴사한 게임 개발자가 너무 유능함 124화

79. 챌린지 리그의 시작(2)

아포칼립스 폴리스의 데모 버전은 전 세계적으로 수백만 명이 넘는 게이머들이 다운했고 호평했다.

갈수록 더 많은 관심이 쏠리더니, 결국 일이 터졌다.

세계 최고의 게임 스트리머, 골든 파인애플이 리뷰를 한 것이다.

[이거 정말 재미있는 게임이야! 온갖 요소가 다 있고 시나리오와 세계관 설정도 굉장히 튼튼하다고. 한국의 인기 웹소설이 원작이라던데, 원작 활용을 굉장히 잘한 예라고 봐!]

이 영향으로 다운로드 수가 순식간에 천만 회를 넘어섰다.

데모 버전으로서는 이례적인 성과였다.

그 직후 유진성 회장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챌린지 리그’의 출범을 발표했다.

[챌린지 리그에서 요구하는 것은 단 하나, 재미!]

[비즈니스 모델이나 트렌드 따위는 상관없이, 오로지 재미만 있으면 된다.]

덧붙여 이 사실 또한 공표됐다.

[아포칼립스 폴리스 오리지널 버전은 챌린지 리그의 첫 번째 라인업이 될 것.]

[이후로도 신선하고 재미있는 게임들을 골라 라인업을 준비 중이니 많은 기대를 해달라.]

업계에 인디 게임 바람이 불기 시작하려는 순간이었다.

* * *

인터뷰 이후 유진성 회장은 새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저, 회장님. 안녕하십니까? 저 8년 전에 회장님 밑에서 게임 만들었던 백한성인데…….]

[유진성 랩과 챌린지 리그에 대한 이야기 들었습니다. 제가 정말 좋은 게임을 만들고 있는 인디팀을 알고 있는데, 소개해 드려도 괜찮을까요?]

사방에서 온갖 제안이 쏟아지고 있는 것.

얼마 전 게임 협회에서는 이런 제안을 하기도 했다.

[그러시지 말고, 차라리 인디 게임 대회를 열어서 상금과 좋은 조건을 제시하고 인재를 모집하는 게 더 좋지 않을까요? 우리 협회가 함께 전력으로 돕겠습니다!]

혼자서 결정할 수도 있는 일이지만, 유진성 회장은 태연을 찾아가 조언을 구했다.

“이런 상황인데, 어떻게 하면 좋겠냐?”

태연의 대답은 간단한다.

“서두를 필요 없습니다. 그냥 지금까지 해온 대로 하시면 됩니다.”

“흔들리지 말고 마이페이스로 밀고 나가라는 거지?”

“그렇습니다. 지금 당장이야 이게 화제가 되고 있으니 어떻게든 콩고물을 얻어먹어 보려는 어중이떠중이들이 마구 밀려들 겁니다. 거기에 휘말리다 보면 본질을 잃게 될 뿐이죠.”

“음, 아무래도 그렇겠지.”

“우리 넥플은, 그리고 회장님은 이런 관심 정도에 들뜰 수준은 진작 벗어났습니다. 그냥 묵직하게, 서두르지 않고 차근차근 인재를 찾아 충분히 검증한 뒤 투자를 결정하면 됩니다.”

“그래. 사실 관심이나 돈을 더 벌자고 이런 걸 하는 것도 아닌데……서두를 필요 없지! 그러면 내 하고 싶은 대로 계속한다?”

“그렇게 하시면 됩니다.”

유진성 회장이 돌아가고 태연은 유진성 랩에 속해 있는 다른 게임들의 상태를 확인했다.

이미 랩 소속 회사들로부터 게임의 테스트 빌드 버전을 넘겨받았으니 하나하나 플레이하며 투자 여부를 결정하면 된다.

“생각보다 쓸 만한 작품들이 많이 없어. 하긴, 아포칼립스 피플 같은 작품이 계속 나올 리가 없지.”

또 하나 점찍었던 작품이 있었으나 플레이 결과 후반 부분이 많이 아쉬웠다. 레벨 디자인이 많이 무너졌고 시스템에 결정적인 약점이 있었다.

그것을 모두 안고 가기에는 이슈들이 하나같이 크리티컬해서 결국 투지를 미룰 수밖에 없었다.

‘내 안목이 너무 높은 건지…….’

어떻게 해야 할까?

테스트 목적으로 빌드 버전을 넘겨받았으니 이에 합당한 피드백은 꼭 필요하다.

문제는 수위였다.

“……이 정도에 나가떨어질 거라면 애초 게임을 만들지 말았어야지.”

필터링 없이 모두 쏟아낸다!

그렇게 결정한 태연은 플레이에 대한 평가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챌린지 리그 출범이 후 한 가지, 재미있는 현상이 발생했다.

넥플 내부의 일이었다.

“대표님 저…….”

“……?”

“그 챌린지 리그…… 우리도 할 수 있는 걸까요?”

“자세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회사 내부에 인디 게임 동아리 있는 거 알고 계시죠? 거기서 개발 중인 게임이 있는데…… 혹시 대표님 컨펌 받으면 스튜디오 승급이 가능한 건가 싶어서요.”

내부 개발자들의 문의가 이어진 것.

넥플 내부에 있는 게임 개발 동아리뿐만 아니라, 개인 시간을 쪼개서 작은 게임, 혹은 소프트웨어를 개발 중인 이들이 문의를 해온 것이다.

이에 대해 태연은 아예 내부에 공문을 돌렸다.

[챌린지 리그는 누구나 도전할 수 있습니다. 단 평가 기준은 똑같이 엄중히 적용될 것입니다. 보다 자세한 문의는 저에게 해주시면 되지만 제가 어렵다면 최종학 PD, 박명훈 CP에게 해주시면 됩니다.]

최종학과 박명훈이 찾아와서 물었다.

“아니, 이건 또 무슨 이야기야? 나보고 챌린지 리그 평가위원이 되라는 이야기야?”

“아무 말도 갑자기 이러시면 곤란하죠!”

태연은 담담하게 말했다.

“이제 알았으니 됐겠지? 내용은 따로 설명할 필요 없을 듯하니 두 사람이 챌린지 리그 평가위원 노릇 해주면 될 것 같군.”

“…….”

“…….”

난데없이 날벼락을 맞은 얼굴!

최종학과 박명훈은 서로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한마디씩 했다.

“와, 진짜……. 아오, 대표만 아니었다면…….”

“아, 이런 식으로 부려먹으려고 비싼 돈 주고 날 이 자리에 앉힌 거였구나!”

챌린지 리그 3인의 평가위원이 결정된 순간이었다.

태연은 유진성 랩 개발자들에게 줄 목적으로 작성한 평가서들을 공유했다.

이걸 기준으로 평가서를 작성하라는 것이다.

최종학, 박명훈의 감상은 다음과 같았다.

“잔인하네.”

“나라면 이거 받고 좌절하고 상처받아서 울 것 같은데…….”

팩트를 폭격 수준으로 뿌려댄 잔혹한 평가서였다.

“이 정도도 딛고 일어서지 못할 거라면 어렵게 인디 게임 만들 필요 없지.”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이건 수위가 너무 높은 것 같은데…….”

태연은 난감해하는 두 사람에게 말했다.

“나한테 한창 배웠을 때를 생각해 보지. 내가 이것보다 훨씬 더 잔혹하게 굴었던 것 같은데…….”

“그래서 많이들 못 버티고 떨어져 나갔잖아.”

“우리도 뒤에서 얼마나 울었는데…….”

태연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단순히 좋은 게임을 뽑겠다는 목적뿐이 아니야. 키울 가치가 있는 싹을 골라 제대로 키워보겠다는 거지.”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는 두 사람.

“앞으로 두 사람은 많은 중요한 일들을 도맡아 이끌어가게 될 텐데, 그럴 때 믿고 맡길 수 있는 제자라고 해야 할지, 인재가 있으면 편하잖아.”

“그건 그렇지.”

“하긴…….”

“그러니까 고생 좀 하라는 거야. 대부분 일감은 내가 토스해 줄 텐데 게임이 그저 그래도 사람 자체는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들일 테니 잘 보라고.”

“아, 우리보고 모래밭에서 바늘 찾기 하라는 게 아니구나. 형과 유진성 회장님이 골라주겠다는 거지? 그러면 오케이.”

“나도 오케이.”

두 사람은 태연의 사람 보는 안목에 대해서는 절대적이라고 할 정도로 신뢰했다. 당장 지금 주위에서 태연이 뽑아 중용하고 있는 이들만 봐도 하나같이 업계에서 찾아보기 힘든 실력자, 혹은 재능 있는 인재들이었다.

두 사람이 납득하고 돌아가자 태연은 준비한 평가서를 발송했다.

“과연 이걸 딛고 일어설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는지 모르겠군.”

* * *

유진성 랩의 혜택을 받는 게임 회사는 총 열 팀.

그중 아포칼립스 피플은 대대적인 투자를 받아 넥플의 정식 스튜디오로 승격되었으니 남은 회사는 아홉 개였다.

‘슬슬 올 때가 됐는데…….’

‘결과 나올 때가 되지 않았나?’

하루하루가 피말리는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다음 달 돈이 급한데…….’

‘두 달 후면 직원 월급 줄 돈도 없고…….’

‘대출도 모두 끌어다 써서 더 이상 여력이 없는데…….’

물론 넥플만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나름의 수단으로 각자 여러 업체에 줄을 댔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역시 가장 기대하는 곳은 넥플, 챌린지 리그였다.

종종 같이 모여 식사도 하고, 고민도 공유하던 정정환 대표가 어떻게 됐는지 바로 앞에서 지켜보지 않았나?

자신감도 있었다.

‘사실 우리 게임도 아포칼립스 폴리스 못지않지.’

‘우리 게임 퀄리티도 빠지지 않아. 우리 게임도 잘하면……?’

그러다 마침내 기다리던 소식이 왔다.

[안녕하십니까. 유태연입니다.]

‘왔구나!’

‘드디어……!’

유태연 대표가 직접 발송한 메일!

‘빨리 확인해 보자!’

엑셀 파일이 첨부되어 있었다.

떨리는 손으로 클릭, 황급히 내용을 확인해 본다.

‘투자. 투자…….’

‘우리도 아포칼립스 폴리스처럼……!’

그러나 곧, 대표들의 얼굴이 굳어진다.

온갖 참담한 비평으로 가득했던 것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뜬구름 잡기식의 내용이나 문제 제기로 끝난 게 아니라, 나름의 해결 방안까지 작성되어 있다는 점.

하지만 지금 대표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런 게 아니었다.

“그래서…… 돈 못 주겠다는 거야?”

“돈은……?”

그들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직원 월급 주고 임대료를 낼 수 있는 돈이었다. 당장 한 달을 연명할 수 있는 개발비였다.

이런 평가 따위가 아니라…….

납득하지 못한 이들은 태연의 직통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태연은 한마디를 했을 뿐이었다.

[그런 이야기는 얼굴을 보면서 하는 게 좋을 것 같군요.]

* * *

‘예상대로군.’

자신이 혼신의 힘을 기울인 작품이 비평받는데 태연한 반응을 보일 이는 드물다. 인디 게임 개발자라면 더 그렇고 돈과 직결된 평가였다면 더더욱 그렇다.

유진성 랩. 9인의 대표들이 한 명씩 태연을 찾아왔다.

태연은 거기서 영상으로 미리 찍어뒀던 오작동, 혹은 아쉬웠던 부분들을 빔 프로젝트로 쏴서 보여줬다.

“이 부분 보이십니까?”

어떤 점이 문제인지, 왜 문제인지.

태연은 조목조목 지적했는데 가장 심각했던 부분은 바로…….

“이건 2년 전 스웨덴에서 출시돼서 소소하게 인기를 끌었던 모 인디 게임의 것을 그대로 따 왔더군요.”

“아…….”

바로 이런 부분.

모를 거라고 생각하지만 태연 같은 게임 덕후라면 도저히 지나칠 수 없는…… 표절에 대한 내용이었다.

“이런 부분, 그대로 나가면 국제 망신 당하고 끝나는 수준이 아니라 출시하고 투자한 회사, 더 나아가 한국 게임계까지 욕 먹이는 겁니다.”

“…….”

“그래도 이런 부분만 제대로 수정하면 나쁘지 않은 게임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그런 제안을 드렸던 거고요. 유진성 회장님은 나이가 많으시고 게임을 저처럼 깊고 넓게 즐기시는 분이 아니라 잘 모르셨던 것 같습니다만…….”

여기서 박명훈과 최종학을 평가위원으로 선택한 이유가 나온다.

그들 역시 태연 못지않은 게임 덕후였던 것이다.

잘 알려진 메이저 회사 게임은 기본.

이름 모를 국가의 인디 게임까지 챙겨서 해볼 정도로 게임에 인생을 바친 덕후들이 그 두 명이었다.

괜히 태연의 수제자라 지칭되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고치시든가, 정 납득이 안 된다면 지금이라도 유진성 랩에서 발을 빼고 다른 투자처를 찾아보시든가요.”

사실 수많은 인디 게임이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다.

초반에는 참신하고 그럴듯하지만 이 패턴이 계속 반복되면서 긴장감을 무너뜨리고 지루해진다는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볼륨이 너무 짧다거나.

말 그대로 현실적인 문제 탓이다.

돈은 없지, 인력은 부족하지. 그러다 보니 작업 기간도 부족할 수밖에 없고…….

아포칼립스 폴리스가 그래서 물건이라는 거다.

이런 태생적인 한계를 이겨내고 메이저 게임 못지않은 재미와 플레이 타임을 확보했으니까.

물론 이런 이들이 전부가 아니다.

세금, 심의……. 이런 개념들이 모두 부족해도, 어떻게든 알바를 하고 악착같이 공부를 해서 게임을 만들어가는 이들도 있었다.

그리고 개발 진도가 굉장히 많이 나간 상태였다.

2인, 혹은 3인이 1년여 시간 동안 죽자고 만든 게임들이다.

“얼리 액세스로 출시하기에는 이미 너무 멀리 온 것 같군요. 한 달 치 지원금 드릴 테니 제가 지적했던 부분만 빠르게 개선해서 출시하시죠.”

“그, 그러면 그 후에는 어떻게……?”

“아이디어 가지고 와서 저와 평가위원회 앞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하세요. 기획은 준비했겠죠?”

“네? 네! 그, 그야……. 하지만 기획만 있을 뿐이라…….”

“상관없으니 프레젠테이션 해보시죠. 좋으면 출시까지, 사무실과 모든 지원금을 챌린지 리그를 통해 지원하겠습니다.”

“…….!”

어디까지나 좋은 방향으로 성장할 수 있는 인재를 뽑아 키워주려고 시작한 프로젝트였다.

당장의 결과물이 아쉽다고, 잠재력을 보지도 않고 쳐내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들에게는 최소한의 기회 정도는 제공해 주기로 했다.

힘들어도 꽁수를 부리지 않고 정정당당하게 승부를 한 인재들에 대한, 태연만의 대우 방식이었다.

“가, 감사합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희망을 얻어간 이들은 세상을 다 얻은 듯 행복한 표정으로 회사를 나섰다.

방금 나간 30대 초반, 젊은 개발자 세 명을 보며 태연은 미소 지었다.

‘누구 밑에서 배웠는지 모르지만 상태창 능력치가 준수한 편이야. 열정도 충만하니 잘 키우면 좋은 개발자로서 써먹을 수 있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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