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한 게임 개발자가 너무 유능함 123화
79. 챌린지 리그의 시작(1)
직장인 커뮤니티, 갈대나무 숲에 다음과 같은 글들이 올라왔다.
[아포칼립스 폴리스 내가 해봤는데 진짜 잘 만들었음. 대표님이 왜 이 게임을 택했고 백억 이상의 투자를 결정했는지 알 것 같더라. 정말 게임 보는 안목 하나는…… ㄷㄷㄷ]
┗유태연 추종자들 또 나왔네.
┗나도 해봤는데 진짜 잘 만들었음. 이대로 올려도 큰 관심을 받을 것 같지만 투자 더 하면 진짜 물건 하나 나올 것 같음.
┗넥플 애들 요새 왜 이러는지, 다들 무슨 유태연 추종자들이 되어서는…….
┗게임 업계도 독재 시대가 시작되는 건가……?
┗요즘 유태연 까면 여기저기 유빠들 나와서 거품 물고 설치는 거 꼴도 보기 싫음.
┗인디 게임이 거기서 거기지 무슨…… 하, 진짜.
업계 개발자들이 티격태격하는 게시물은 누군가에 의해 캡쳐되어 인터넷 커뮤니티로 전파됐다.
게이머들의 관심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나도 유빠들 설치는 거 보기 싫긴 하지만 게임 잘 만드는 건 사실 아니냐? 저렇게 말할 정도면 뭔가 있다는 거 아니겠음?]
┗유빠들 여기 또 나왔네. 어째 요즘 패턴이 다들 비슷하냐. 자기는 유빠 설치는 거 싫어한다고 먼저 깔고 들어가더라고 꼭…….
┗ㅇㅈ
┗ㅇㅈ은 무슨…… 와, 진짜 억울하네.
┗이런 것도 패턴 비슷함.
┗ㅅㅂ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메이저 언론 매체와의 특집 인터뷰가 공개됐다.
[아포칼립스 피플 대표 정정환! 집중 탐구!]
많은 게이머들, 혹은 관계자들이 궁금해하던 스토리가 공개됐다.
Q [굉장히 어려워서 자살도 고민했다고 들었다.]
A [스타트업 차려본 분들이라면 모두 아시겠지만 자금이 마르기 시작하면 내 피도 같이 말라요.]
Q [유진성 회장으로부터 투자를 받았다고 들었는데……?]
A [투자도 해주셨고 여러 가지 조언도 해주셨어요. 제가 어디가 좋게 보였는지 심지어 지금 쓰는 사무실도 굉장히 저렴한 가격에 임대해 주셨죠. 그래도 근본적인 어려움이 해결되지는 않았죠. 그러다 유태연 대표님과 만나게 된 거예요.]
Q [사실 그 부분이 제일 궁금하다. 자세히 이야기해 달라.]
A [어느 날 갑자기 전화가 왔어요. 게임 좋아하는 분들은 다들 아시죠? 그분 시그니처 대사. 안녕하십니까. 게임 개발자 유태연입니다. 와, 이 한 마디에 전율이 쫙 올라오는데…….]
Q [나도 방금 닭살 돋았다. 성대모사 수준이 장난이 아니다! 똑같다!]
A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아무튼 그러고 우리 회사에 방문하셔서 프레젠테이션도 받으시고, 게임도 직접 플레이해 보시더니 회사로 들어오라고. 제대로 한번 만들어보자고 말씀하시는데…….]
이 과정에서 유진성 랩의 존재가 크게 부각됐다.
[유진성 랩. 대한민국 최고의 게임 거부가 게임 산업 진행을 위해 조직한 개인 투자, 컨설팅 조직!]
이 유진성 랩의 지원을 받고 있는 회사만 벌써 열 군대가 넘고, 아포칼립스 피플이 그중 하나였다는 내막도 공개됐다.
그리고 특집 기사 말미.
Q [추가로 하고 싶은 말은 없는지……?]
A [인터뷰 공개일을 기점으로 오리지널 데모 버전이 넥플 홈페이지에 공개될 거예요. 한 번 플레이해 보시고 많은 피드백 부탁드리고 싶어요. 게임은 개발자와 유저가 함께 만들어가는 거잖아요!]
데모 버전 무료 공개 사실이 밝혀졌다.
공언대로 넥플 홈페이지 메인에 아포칼립스 피플 이벤트 팝업창이 띄워져 있었다. 클릭하면 전용 홈페이지로 넘어가는데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인디 게임 느낌이 물씬 나는 공간이었다.
[아포칼립스 폴립스 다운로드]
옆에 작게 다운로드 수 카운팅 란이 마련되어 있었는데, 벌써 수천 회를 넘어가고 있었다.
업계와 각종 커뮤니티에 소식이 퍼졌다.
[아포칼립스 폴리스 무료 버전 공개됐다. 빨리 가서 다운로드 고고.]
┗까더라고 일단 플레이를 해보고 나서 까자.
┗데모 버전이라니…… 분량이 꽤 되는데……. 진짜 싹 갈아엎을 생각인 건가?
* * *
태연은 바로 어제 무료 공개를 시작한 아포칼립스 폴리스, 데모 버전의 반응을 모니터링 중이었다.
pc 화면을 보다가 입을 뗐다.
“참 신기하네요. 벌써부터 게임 스트리머들이 리뷰를 하다니…….”
“그, 그러게요. 이런 반응은 저도 예상하지 못했는데…….”
대표 집무실, 소파에 앉아 있던 정정환은 머쓱해하며 말했다.
“역시 대표님과 넥플의 브랜드 파워가 굉장한 것 같습니다. 별거 아닌 게임도 이렇게 많은 관심을 가져주다니…….”
“물론 회사 영향이 없지는 않겠지만…….”
국내 유명 게임 스트리머의 리뷰 영상을 보며 태연은 생각했다.
‘시작은 그랬을지 몰라도 후기는 굉장히 좋아. 이대로 나와도 구매할 의향이 있다는 의견들이 많아.’
[와, 이거 진짜 잘 만들었다. 유태연 대표님 게임 보는 안목이 굉장하신 것 같아요. 아니, 아포칼립스 피플이라는 회사가 진짜 이름도 없는 작디작은 인디 게임 업체라고 들었거든요? 어떻게 이런 게임을 발굴해서 크게 투자할 결심을 하셨을까?]
열성적으로 떠드는 스트리머는 수십만 구독자를 보유한 인플루언서였다. 그는 다양한 게임을 취급하지만 주로 새 인디 게임을 취급하고 소개하는 부분에서 정평이 나 있는 사람이었다.
[와, 이 게임 진짜 별거 다 있어요! 힐링, 추리, 서스펜스, 액션, 비주얼 노블……. 이게 웹소설 원작이라고요? 웹소설도 이렇게 재미있나? 한번 봐야겠다.]
오버 액션이 어느 정도는 있겠지만 게임이 마음에 든 것은 진짜 같았다. 그게 아니고서야 유료 광고도 아닌데 이렇게 열성적으로 플레이하며 칭찬을 할 이유가 없지 않겠나?
자기 이름을 건 방송에서…….
“…….”
태연은 고민하다가 말했다.
“이거, 일단 인디 버전으로 완성해서 먼저 공개하고 그 뒤에 AA급 콘솔 버전으로 추가 공개하면 어떨 것 같습니까? 오리지널, 그리고 리메이크 버전으로 말이죠.”
“아…….”
멍한 얼굴.
그는 머뭇거리며 말한다.
“사실대로 말씀드리면…….”
“말씀해 보십시오.”
“밤낮을 잊고 열심히 만든 오리지널 버전을 이대로 버리는 게 너무나 아쉽습니다. 정말 제 자식 같아서…….”
황급히 고개를 치켜들며 동의를 구한다.
“대표님은 이 마음 아시죠?”
“물론이죠. 저 역시 학창 시절 인디 게임으로 개발을 시작한 사람이니까요. 그 마음 굉장히 잘 압니다.”
“아포칼립스 폴리스는 정말 제 자식이에요. 천금을 주고도 누구에게 넘길 수 없는 소중한…….”
그는 한숨을 푹 내쉰다.
“아무리 좋은 기회가 왔다고는 하지만…… 미완성 상태로 버리려니 굉장히 가슴이 아프고…… 섭섭하고……. 좀 그랬어요.”
그 모습에 태연이 물었다.
“혹시 스튜디오를 두 개로 나눠서 동시 개발 가능하시겠습니까?”
“어, 어어…… 동시 개발이라면…….”
“두 개의 개발팀을 동시에 컨트롤 해야 한다는 뜻이죠. 가능하시겠습니까?”
“…….”
고민하는 정정환.
대뜸 떡밥을 물지 않는 신중함이 더 마음에 들었다.
태연이 추가 계획을 밝혔다.
“방금 생각한 건데…… 수익을 떠나 적은 개발비로 창의적인 게임만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브랜드를 만드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 인디 게임 브랜드를 말씀하시는 거죠?”
“사실 넥플이라는 거대 자본이 끼어 있는 시점에 인디라는 단어 사용은 적절한 것이 아니죠.”
“아, 그건 그렇네요. 그래서…….”
“브랜드 이름은 나중에 따져보고, 그 첫 게임으로 아포칼립스 폴리스 오리지널 버전을 출시하는 것도 괜찮지 않겠나. 싶은 생각이 들어서요.”
“아…… 그, 그렇게 지원해 주신다면야 저야 뭐…….”
민망함에 머리만 긁적거리는 정정환.
그 나이에, 큰 덩치에도 순수함이 남아 있는 사람이다.
“사실 과거 회사에 다녔을 때 몇 개 프로젝트를 동시에 맡아서 진행해 본 적이 있긴 해요. 그런데 꽤 오래전 일이라…….”
“그렇다면 하실 수 있을 겁니다. 저도 도와드릴 거고 좋은 조력자들을 붙여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해주신다면…… 네. 해볼게요. 그런데 정말 그렇게 하시려고요? 아직 반응이 좋은지 어떤지도 잘 나오지 않았는데…….”
태연은 pc 모니터를 보며 웃었다.
“좋을 겁니다.”
* * *
게임 커뮤니티에 아포칼립스 폴리스가 많이 거론되기 시작했다.
[구매해 둔 게임이 한가득한데…… 다 제쳐두고 요즘 이것만 하고 있다. 이거 스마트폰으로도 나오면 좋을 것 같은데…… 아무튼! 이거 이대로 버리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진짜 좋은 게임이야. 인디 감성이 충만한…… 다른 사람은 어때?]
┗나 솔직히 유빠들 진짜 욕했는데 이번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거 우리나라 인디 업체에서 만들었다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퀄리티야.
┗지금 외국에서도 주목하고 있음. 레딧 같은 곳에서 보니까 평가가 좋던데 이거 정식 출시 안 될 거라고 하니 다들 깜짝 놀라더라.
잘 만들었고 내용도 알찬 게임이다!
좋은 평가가 쌓이고 쌓이며 태연뿐만 아니라, 유진성 회장에 대한 극찬이 늘었다.
[유진성 랩을 통해서 발굴하고 투자한 게임이라며? 그 냥반, 돈에 미친 돈플의 화신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안목도 좀 있는 모양이여?]
┗지금의 넥플을 만든 사람이고 본인도 개발자 출신임. 게임에 대한 애정 없이 이런 회사 못 만들지.
┗참고로 넥플 초창기 히트작들 중 유 회장이 찍어서 투자한 게 상당히 많아. 게임 안목 수준이 상당한 사람임.
이런 여론이 많아지자 게임 전문 언론에서 유진성 회장에 대한 인터뷰를 시도하기 시작했다.
“태연아, 이거 어쩌지? 인터뷰 요청이 쇄도하는데……. 받아야 해, 말아야 해?”
태연은 고민 후에 말했다.
“이렇게 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뭐?”
“사실 새 브랜드를 출시할 계획인데…….”
태연은 정정환에게 바로 이 집무실에서 했던 이야기를 고스란히 전했다.
유진성 회장이 흥미를 보인다.
“브랜드 이름이 뭐냐?”
“회장님께서 지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내가?”
“네. 왜냐면 이 브랜드에서 회장님의 역할이 중요할 테니까요.”
“내가 뭘 해야 하는데?”
“유진성 랩을 본격적으로 운용하시는 거죠. 열정과 실력이 가득한 이들을 발굴해서 시드머니를 넣고, 컨설팅도 좀 해주고.”
“그래서?”
“제가 지켜보다가 괜찮은 프로젝트를 골라서 그 브랜드로 승격시키는 겁니다. 그리고 제대로 밀어주는 거죠. 제작부터 런칭까지.”
“오호…… 그러니까 야구로 따지면 스카우터가 되라, 뭐 이런 이야기야?”
“그렇습니다. 회장님이 좋아하시는 일 아닙니까?”
유진성 회장은 그 나이에도 아직 게임을 사랑한다.
그러니까 애정을 갖고 돈만 쓸 게 뻔한 유진성 랩을 만들어 인재를 발굴하고 투자를 해주는 것이다.
기회를 얻기 어려운 이들에게 구원 줄을 내려주기 위해서.
시드머니 1, 2억이 적은 돈처럼 보이지만, 소규모 그룹의 인디 게임 개발자들에게는 꿈을 위해 용기를 내서 모든 것을 불살라볼 수 있을 큰 금액이다. 사막의 오아시스이기도 하고.
“아포칼립스 피플이 좋은 예시가 될 겁니다. 성공하면 더할 나위 없겠죠. 유진성 랩에 들기만 하면 더 큰 기회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음…….”
“어차피 요 근래에 딱히 할 일도 없으시지 않습니까? 회장님도 제 입장에서 한번 부림 당해 보이시죠. 제가 노년을 불태울 수 있도록 해드리겠습니다.”
“자식이 별소리를…… 얌마! 그렇게 말하면 내가 피가 끓고 그럴 줄 알아?”
“네.”
씩 웃는다.
“역시 너는 나를 잘 알아. 그거 마음에 든다. 한번 해보자.”
“브랜드 네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음…….”
씩 웃는다.
“챌린지 리그.”
“도전하는 장소…… 라는 뜻입니까?”
“그런 뜻도 있고……. 챌린지. 어감이 좋지 않냐?”
“나쁘지 않군요. 그러면 그렇게 하시죠.”
“좋아. 인터뷰 어떻게 해야 할지 가닥 잡혔어!”
얼마 후.
유진성 회장은 인터뷰를 통해 넥플의 새 브랜드, 챌린지 리그를 발표했다.
그리고 그 첫 라인업은 많은 이들이 극찬 중인 아포칼립스 폴리스 오리지널 버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