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한 게임 개발자가 너무 유능함 121화
77. 아포칼립스 피플(2)
유진성 회장이 선택한 인디 게임 회사.
아포칼립스 피플!
사실 여기까지는 그다지 큰 화젯거리가 되지 못했다.
유진성 회장이 넥플이라는 거대 게임 회사의 오너이고, 대단한 거부이긴 하지만 일반인, 특히 게이머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부분이었다.
요즘에는 경영 참여도 잘 안 하기로 알려져 있으니까.
그런데 다음 대목에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유태연 프로듀서가 선택한 단 하나의 게임. 아포칼립스 폴리스!]
업계와 커뮤니티가 들썩였다.
-태연이 형이 선택했다고? 뭔데? 무슨 게임이야?
-인디 게임을 유 피디님이……?
-아니, 대체 어떤 게임이길래?
* * *
자고 일어났더니 스타가 되어 있더라.
정정환은 요 근래에 그 사실을 깊이 체감하고 있었다.
[정 대표. 뭐야, 대체 무슨 마법을 부렸기에 유태연 대표님 눈에 든 거야?]
[대체 얼마나 굉장한 게임을 만들었기에 유태연 대표를 반하게 만든 거야? 응?]
[회사 찾아가도 될까? 우리 모처럼 커피나 좀 마시자고!]
작은 커뮤니티 카페.
홈페이지 유지 비용을 아끼려고 만든 회사 전용 커뮤니티에 갑자기 사람이 몰려든다.
-이 회사가 유태연 대표님이 찍었다는 그 게임 만든 회사 맞죠?
-아포칼립스 폴리스. 진짜 기대 많이 하고 있습니다!
겨우 수십 명뿐이었던 회원이 하루아침 만에 수천 명으로 늘었다.
그뿐인가?
뮤튜브 공식 계정에 홍보용으로 올렸던 짧은 티저 영상은 조회수가 45였던 것이 10만 회까지 치솟았다. 댓글도 회사 직원들과 지인들 것뿐이었는데 수백 개가 우수수 달렸다.
이 상황은 현재 진행형이다.
“대표님. 이게 대체 무슨 일이에요?”
“갑자기 제 지인들이 저보고 너 아포칼립스 피플에 다니지 않냐고, 어떻게 유태연 대표님 알게 된 거냐며 막 물어보는데…….”
직원들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
“특히 업계 지인들이 난리 났어요. 이제 대박 나는 거냐며…….”
말이 안 되지만, 유태연이라는 이름 하나가 가져다준 파급력이었다.
그가 주목했고, 점찍었다는 기사가 나가자마자 이런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정정환 대표는 냉랭한 분위기의 미남자를 떠올리며 침을 꿀꺽 삼켰다.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엄청난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구나.’
* * *
얼마 후.
정정환은 넥플 판교 본사를 방문했다.
전화를 받고 마중 나온 사람은 미녀 모델을 연상시킬 정도로 훤칠한 키에 스타일이 굉장히 좋고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정정환 대표님 맞으시죠? 저는 유태연 대표님 전담 비서 이미연이에요. 이제부터는 제가 안내해드릴게요.”
조곤조곤한 어조에 기품이 느껴진다.
‘엄청난 미인!’
와, 세상에 이런 미녀가 현실에 존재했구나!
아직 총각인 정정환은 한껏 긴장한 채 로봇마냥 그녀의 뒤를 따랐다.
도착한 곳은 사옥 최상층 집무실.
그녀가 먼저 문을 열고 들어가 알린다.
“대표님. 정정환 대표님 오셨습니다.”
곧 문이 열렸고, 햇살을 등지고 고급 원목 테이블에 앉아 집무 중이던 남자, 유태연과 다시 마주했다.
태연이 빙긋 웃으며 반겨줬다.
“방문해 줘서 고마워요.”
‘기, 긴장된다.’
처음 만났을 때 이상으로 긴장감이 밀려온다.
자신이 미처 몰랐던, 눈앞의 이 남자. 유태연의 진정한 위상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이 사람이 단 한 번 거론된 것만으로 작은 회사가 엄청나게 주목을 받게 되었다. 오죽하면 돈을 줘야 구독할 수 있는 유료 경제 전문지에서도 계속 인터뷰가 쏟아지더라. 주식 커뮤니티에서도 갑자기 많이 거론되고 있고.
비로소 알았다.
유태연이라는 남자가 자신을, 아니…… 아포칼립스 폴리스를 어떻게 대우하느냐에 따라 자신의 인생이 꽃필 수도, 허무하게 저버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오늘은 그것이 결정되는 자리였다.
“너무 긴장하지 마세요. 보는 제가 다 몸이 굳어질 정도네요.”
“아, 네, 네에…….”
“목부터 축이시죠. 입술이 말랐어요.”
‘괜찮은데…….’
하지만 시키는 대로 해야 할 것 같은 기분!
냉큼 앞에 놓인 아이스커피를 들이키고 혀로 목과 입술을 적셨다.
그리고 허리를 펴고 이등병처럼 굳은 자세를 취한다.
그런 정정환을 보고 태연은 한마디 하려다 말았다.
더 말해봐야 소용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실제로도 지금 정정환의 모든 관심은 자신의 게임과 회사의 미래에 쏠려 있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는 게 좋겠죠?”
“네! 부탁드립니다. 지금은 다른 어떤 말을 하셔도 귀에 잘 들어오지 않습니다.”
언론에서는 떠들썩하지만…… 실은 회사는 하루하루가 위기였다.
자금은 진작 떨어졌고 집을 담보로 대출받아 겨우겨우 회사를 꾸리고 있는 상황이다.
제2금융권까지 돈을 끌어 썼고 그것도 모자라 부모님과 지인들에게도 돈을 최대한 당겨서 쓴 상황이었다.
‘돈이 필요해.’
유진성 회장으로부터 받은 투자금은 사르르 녹아 없어진 지 오래.
돈만 줄 수 있다면 영혼이라도 바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알려진 것처럼 장밋빛 미래가 그려지고 있는 상황이 아니었던 것이다.
“지금 제게 가장 중요한 것은 투자 승인 여부입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바로 말씀드리죠.”
꿀꺽.
어느 때보다 긴장되고 피가 말리는 이 순간.
“총 30억을 투자할 예정입니다. 오늘 계약서 작성이 끝나면 바로 1차 투자금 10억을 입금해 드리겠습니다.”
‘됐다!’
벅차오르는 순간!
정정환 대표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저 돈이면…… 2년은 버틸 수 있어!’
사람도 몇 명 충원하고, 밀린 월급도 모두 지불할 수 있다.
‘나도 드디어 월급을 가져갈 수 있어!’
생활비가 말라 먹고 사는 게 걱정이 되던 참이었다. 식량도 보충하고 월세와 관리비도 내고 또…….
“그런데…….”
“네?”
뭐지? 아직 남은 게 있나?
설마 이제 와서 다른 조건을…….?
다시 피가 마르는 그 순간.
“그 게임. 30억으로 혼자 만들어서 런칭, 유지 보수까지 하는 게 가능하겠습니까?”
“……네?”
“싱글 패키지 게임이죠?”
“그, 그렇습니다만…….”
“지금 그 상태로 수십억의 수익을 확보할 자신이 있습니까?”
“그야…….”
말이 턱 막혔다.
다른 상대 같았다면 허세라도 부렸겠지만…… 눈앞의 남자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실력 있는 게임 개발자요, 대기업의 대표이사였다.
자신 따위가 허세를 부려 속아 넘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닌 것이다.
‘몰라서 물어보는 게 아니야. 저 눈빛은…….’
입이 바짝 마른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아이스 커피잔을 집어 모두 들이켰다.
목구멍으로 넘기며 생각을 해보려하지만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오히려 점점 하얗게 탈색된다.
“후우.”
정정환은 솔직해지기로 마음먹었다.
“아포칼립스 폴리스는…… 그 정도로 어마어마한 매출을 노리고 만든 게임이 아닙니다. 제가 좋아하는 원작으로, 만들고 싶었던 게임을 만든 게 시작이었으니까요.”
“…….”
“그래서 어느 정도 올리겠다. 확답을 드리긴 어렵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분명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는 강직한 눈빛으로 말했다.
“절대 투자를 후회하지 않게 할 자신은 있습니다.”
조용히 듣고 있던 태연이 반문한다.
“저는 100억 이상의 매출을 기대하고 있는데요?”
“네? 그, 그건…….!”
평정심이 깨졌다.
허둥대며 당황하는 정정환 대표의 모습에 태연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런 건 어떻습니까?”
“네? 어떤…….”
“스튜디오를 넥플 본사로 옮기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강남으로요.”
“가, 강남이요?”
“넥플은 이미 서비스 중인 게임을 판교 본사에서, 개발 진행 중인 신작은 강남 사옥에서 관리합니다.”
태연이 담담하게 말했다.
“우리 넥플 그룹의 일원이 되라는 뜻입니다.”
“아……!”
“이왕 하는 거, 제대로 개발해 보시죠. 기획도 더 보강하고 그래픽, 시스템 퀄리티도 업그레이드하고…….”
“…….”
“그 게임은 AA급 게임으로 만들어야 제대로 빛을 볼 수 있습니다. 인디 규모로 머물기에는 아깝죠. 그만큼 엄청난 잠재력과 가능성이 있는 게임입니다.”
머리를 망치로 맞은 기분.
‘우리 게임을 이렇게까지 인정해 주시다니…….’
이런 사람은 처음이다.
지금까지 만난 모든 사람들이 잘 해보라며 격려를 해주거나 내심 비웃을 뿐. 진심을 담은 칭찬 같은 건 제대로 해주지도 않았다.
‘네가 되겠냐?’
‘그 정도로 가능하겠어?’
‘그걸로 만족해?’
그런데 처음으로 엄청난 칭찬을 들었다.
심지어 그 말을 한 사람이 바로 한국에서 가장 유명하고 솜씨 있는 게임 개발자였다.
이제는 목소리까지 떨며 힘겹게 물었다.
“저, 그…….”
“편하게 말씀하세요.”
“제, 제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AA급 게임이라면 정확히 어느 정도 규모를 말하는 걸까요?”
“통상적으로 잘 쓰이지 않는 용어이긴 하죠. AAA급 게임을 보통 적게는 200억에서, 1,000억 이상을 들여 만드는 게임을 말하죠?”
“네.”
“AA급은 그보다는 조금 떨어지지만 메이저 향기는 분명히 나는 게임으로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좀 애매한 구분이긴 하죠.”
“…….”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말씀드린다면 에픽 최신 버전 엔진으로 100억 이상의 개발비를 투입해서, 최소 80명 이상의 규모로 제작할 수 있도록 지원해 드린다는 뜻입니다.”
하나 둘…….
속으로 숫자를 세본다.
버그라도 걸렸는지 정지되어 버린 것이다.
다섯을 세고서야.
“헉!”
비로소 동작한다.
“배, 배, 백억…….!”
그는 빠르게 손을 내저었다.
“무, 무립니다! 저는 그 정도의 게임을 만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배우면 되죠. 제가 가르쳐 드릴게요.”
또다시 버그가 걸렸다.
“대, 대표님이 저를……?”
“싫으시면 멀리서 조언 정도만…….”
“아, 아닙니다! 무슨 소리를 하십니까? 당연히 좋죠! 아주 좋습니다! 다, 다만…….”
그의 눈가가 점점 빨개진다.
“믿을 수가 없어서…… 크흡……!”
결국 눈물을 쏟아냈다.
태연은 미소로 펑펑 우는 그를 바라봤다.
한참 후에야 그가 다시 말을 이었다.
“정말…… 정말 우리 게임을 그렇게까지 높게 평가해 주시는 겁니까?”
“그게 아니라면 왜 이런 제안을 하겠습니까?”
“믿을 수가 없어서…….”
“개발비, 회사 유지비 충당하신다고 빚 많이 지셨죠? 일단 그것부터 모두 갚으시죠. 대략 어느 정도 됩니까?”
“2억 정도…….”
“모두 갚으시고…… 지금 어디에 살죠?”
“왕십리 쪽 원룸에 살고 있습니다.”
“강남역 앞에 있는 최신 오피스텔로 옮기시죠. 회사에서 가깝기도 하고 좋습니다.”
“헉!”
“앞으로 해야 할 일도 많은데…… 최소한 출퇴근 시간만큼은 좀 자유롭고 편해져야죠.”
커다란 눈망울에 다시 눈물이 차오른다.
“강남 사옥에 금방 스튜디오 마련해 드릴 테니 최대한 빨리 이전하시죠. 미연 씨?”
벌컥 문이 열리며 미녀 비서가 모습을 드러냈다.
“네. 대표님. 말씀하세요.”
“아포칼립스 피플은 오늘부터 우리 넥플그룹의 일원이 될 겁니다. 스튜디오를 강남으로 이전할 텐데 미연 씨가 신경 써서 잘 좀 챙겨주세요.”
이미연 비서가 정정환 대표를 보며 방긋 미소 지었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직후, 그녀는 따로 지시하지 않았음에도 계약서를 가져와 세팅했다.
‘이미 준비되어 있었구나.’
즉흥적으로 건넨 제안이 아니라는 뜻.
‘정말 나와 우리 게임을 인정하고 있었던 거야!’
그게 아니고서는 나올 수 없는 준비였다.
계약서에 사인하고 악수를 하며 태연이 말했다.
“넥플 식구가 되신 것을 환영합니다.”
유태연.
황금의 눈 전설이 시작되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