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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한 게임 개발자가 너무 유능함-120화 (120/147)

퇴사한 게임 개발자가 너무 유능함 120화

77. 아포칼립스 피플(1)

50억을 투자받아 4년 동안 수집형 모바일 게임을 만들었다는 제로 게임즈.

전 넥플 프로듀서 출신이었다.

“어떻습니까? 재미있지 않나요? 잘 만들었죠?”

백호준 대표.

지금까지 프로듀서로서 총 세 개의 게임을 만들었는데 유의미한 성과를 올린 것은 단 하나. 바로 넥플에서 4년 동안 만들었던 수집형 모바일 게임이었다.

‘2년 만에 실적 저조로 서비스를 종료했지.’

그래서 이 사람의 실력을 잘 알고 있는 태연이었다.

‘프로듀서로서 기본기는 어느 정도 있지만 번뜩이는 무언가가 없다.’

지금 플레이 중인 모바일 수집형 RPG가 딱 그랬다.

용사 나오고, 퀘스트 주고, 스킬 찍고, 가차하고…….

그냥 흔하디흔한 중세풍 판타지 컨셉이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넥플에서 만들었던 것과 거의 비슷하군요.”

바로 이것.

전작과 거의 똑같다!

“그럴 수밖에요. 그 플랫폼을 그대로 적용했으니까요.”

“그렇게 하신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그 기획과 시스템들은 제가 만들어 낸 저만의 무기입니다. 그러니까 그걸 활용하는 건 당연한 일 아니겠습니까?”

스스로에 대해 자부심이 넘치는 모습!

하지만 태연이 보기에 그 정도로 자신감을 보일 만한 게임은 아니었다.

그래서 쓰디쓴 한마디를 던졌다.

“피디님만의 무기라고 하기에는 이미 수많은 모바일 게임들이 사용하지 않았습니까?”

“그, 그건…….”

당황해서 얼굴이 빨개진 백호준 대표.

“그런 기획과 시스템은 저도 일주일 만에 완성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문제를 떠나 전작을 너무 그대로 답습하고 있습니다. 기반 시스템뿐만이 아니라 시나리오, 레벨 디자인 등 모든 부분이요. 누가 보면 후속작으로 알겠습니다.”

“어, 사실 그런 느낌으로 제작한 거긴 한데…….”

태연의 표정이 점점 냉랭해지자 그가 위기를 느끼고 다급히 변명했다.

“돈이나 시간적 여유가 넘쳐나는 것도 아닌데, 일단은 성공해서 충분한 캐시를 확보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성공을 확신하시는군요.”

“네. 왜냐면 이미 검증된 노하우를 그대로 사용하는 거니까요.”

“…….”

“천재 개발자가 아닌 이상. 누구라도 게임 회사를 창업하면 처음은 다 저와 비슷한 선택을 내릴 겁니다. 그게 가장 안전하니까요. 게임 프로듀서는, 회사는 돈을 벌어야 하지 않습니까?”

흥분한 탓에 목소리가 높아져 있었다.

태연은 아무 변화 없이 조용히 그 말에 반박했다.

“틀린 말은 아니죠. 게임이 정말 재미있고 매력이 있어서 성공한 거라면 말입니다.”

“……네?”

“말씀하셨던 전작, 런칭 후 보름 정도 10위권에 안착했던 전적이 있더군요.”

“그, 그렇죠?”

“문제는 이 게임에 들인 개발비만 80억 이상이라는 것. 심지어 마케팅에 그 이상의 돈이 들어갔고 그중에는…… 흔히 말하는 자뻑에 대한 비용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

“설마 몰랐다고 말씀하시는 않겠죠? 넥플이 아무리 사업, 마케팅 부서가 강한 회사라고 하지만 개발 스튜디오와 상의도 없이 일을 저지르는 곳은 아니니까요.”

백호준 대표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자뻑.

차트 순위를 높이고자 회사가 자기 돈을 들여 자사 상품을 구매하는 것을 일컫는다.

어뷰징의 일종으로, 게임뿐만 아니라 수많은 콘텐츠 사업에서 벌어지고 있는 부당한 행위였다. 넥플도 이 방법을 이용해 많은 이득을 챙기기도, 잃기도 했다.

“제가 대표이사가 된 직후 이 행위 자체를 금지시켰습니다. 전 그런 걸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회사 직원들을 시켜 돈을 쓰게 만들고 나중에 계좌로 돌려주는 이벤트 같은 것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건 시장을 교란하고 유저들을 기만하는 행위니까요.”

“그건…….”

반박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해봐야 자신만 더 비참해질 뿐이다.

그 사실을 재빠르게 파악한 백호준 대표는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속마음은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설마 이런 자리가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

“시스템을 그대로 쓸 거라면 하다못해 아트가 조금 더 발전하기라도 해야 하는데 그런 것도 없군요. 퀘스트도 그냥 이거 가져와라, 저거 가져와라…… 세계관 자체가 이해가 안 가는 내용투성이입니다.”

이대로 당하고만 있을 수 없다는 생각에 그는 애써 반박했다.

“하지만 지금도 모바일 스토어 게임 차트를 보면 이런 단순 수집형 게임들이 아직도 차트에 포진되어 있습니다. 이게 뭘 말하는 거겠습니까? 한국 모바일 게임 유저들에게는 아직도 그런 게임이 먹힌다는 증거입니다!”

“자기 편한 대로만 바라보시면 안 되죠.”

태연이 천천히 반박했다.

“지금 차트 상위권에 랭크되는 신작 수집형 RPG 대부분은 유명 IP를 사서 만든 것들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전반적인 퀄리티가 눈이 뒤집어질 정도로 뛰어나거나. 근래 중국에서 나온 대작 모바일 게임들이 그 좋은 예로군요.”

“중국 게임이요?”

순간 그의 얼굴에 불쾌감이 떠오른다.

“어떤 게임 말씀하시는지는 알겠는데, 그거 알고 보면 대부분 일본 유명 게임들을 그대로 베낀……!”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태연이 빤히 쳐다보고 있었는데, 그 시선에 많은 의미가 담겨 있었던 것이다.

“왜 말을 하다 마십니까?”

“…….”

태연은 작게 한숨을 내쉰 뒤 말했다.

이제부터가 본론이었다.

“저는 대표님께서 넥플에 계셨을 때 만든 게임을 플레이해 본 적이 있습니다, 당시 만렙까지 키웠고 과금도 했었지요.”

“그랬…… 습니까?”

이 이야기를 처음에 들었다면 긍정적 분위기인 줄 알고 기뻐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와서는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지금 해보니 그 게임하고 너무 똑같네요. 심지어 일부 그래픽, 리소스는 아예 그대로 가져다 쓴 것 같은데…….”

“그대로 쓰지는 않았습니다. 사람이 양심이 있지요.”

“…….”

“지금 적용된 것들은 작업이 이뤄지고 있는 것들입니다. 외주가 도착해서 픽스가 나면 리소스 교체할 겁니다.”

그럴 것 같지는 않던데?

더 이상의 대화는 불필요하다.

“그렇게 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비록 피디님이 만든 게임이라지만 그 리소스는 우리 넥플의 것이니까요.”

“…….”

태연이 자리에서 일어서자 깜짝 놀라며 당황하다가 조심스레 묻는다.

“저, 그러면 추가 투자 문제는…….”

“하지 않겠습니다.”

“……네?”

“우리 투자는 진작 끝났습니다. 그리고 이 게임, 원래대로라면 작년 초에 발매했어야 했는데 그 기한도 진작 넘겼군요. 그때 당시 추가로 투자된 금액은 회장님 사비에서 비롯된 것이니 딱히 제가 뭐라고 하지는 않겠습니다만…….”

태연의 눈이 게임 화면에 꽂혔다.

“여기서 더 돈을 들이고 싶지는 않군요. 최대한 빨리 발매해서 성과를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아시겠습니까?”

“……알겠습니다.”

태연은 회사를 나서며 중얼거렸다.

“저 회사도 글러먹었군. 투자금 회수는 어렵겠어.”

* * *

넥플이 총 500억을 들여 투자한 기업들 중 성공 가능성이 있는 게임을 만든 회사는 단 하나도 없었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그랬다는 거지.’

기준이 너무 엄격했던 걸까?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500억이면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

‘나는 회사 대표로서 이익 증진에 노력해야 할 의무가 있으니까.’

사실 그렇게 돈과 시간을 썼으면서도 기대 이하, 평작 수준도 못 되는 게임을 만든 것이 납득이 안 되기도 했다.

‘어쨌든 넥플 투자사 일은 이쯤에서 마무리 짓도록 하고…….’

다음 스케줄표를 확인한다.

인디 게임 방문, 대표 면담 일정이 빼곡히 적혀 있다.

‘회장님이 부탁한 일을 쳐내야겠군.’

유진성 랩.

가능성 있는 인디 업체에 최대 1억까지 시드머니를 투자하고 성장을 위한 컨설팅을 제공하는 집단이다.

현재 이 팀에 소속된 회사만 무려 열 팀인데, 그 옥석 가리는 일을 태연이 맡게 된 것이다.

-누가 그냥 부려먹겠대? 월급 잘 챙겨줄 테니 좀 도와줘! 게임 보는 눈은 네가 최고라서 부탁하는 거야.

태연은 부탁 이유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라도 나를 더 챙겨주려고 하시는 거야.’

유진성 랩은 돈을 벌기 위해 만든 그룹이 아니다.

재산이라면 대한민국에서 손꼽힐 정도로 많은 사람이 유진성 회장 아닌가?

유진성 랩은 한국 게임 산업 진흥을 위한 투자였다.

‘인디 게임들은 그 나름의 맛이 있지. 어떤 창의적인 게임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되는군.’

공유 오피스를 활용하는 회사도 있었고 오피스텔을 활용하는 회사도 존재한다.

‘어쩔 수 없지. 자본금이라고 해봐야 몇억 되지도 않을 테니.’

대표 본인은 월급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열 명분의 일을 하기도 한다.

인디 게임 업체는 대부분이 그렇다.

‘그럴듯한 사무 환경을 갖춰 놓고 일하는 경우가 오히려 드물지. 나만 해도 혼자 게임을 만들었으니까.’

지금 만드는 정령사 키우기 역시 소자본의 인디 게임이다. 작업장도 사무실이 아닌 신혼집이었고.

‘인원 구성이 특출나게 화려하다는 게 조금 남다르지만 아무튼…….’

넥플 투자사를 돌아다녔을 때와 확연히 느낌이 다르다.

어떻게든 돈을 아끼고 아껴서 좋은 게임을 만드는 데 써야겠다는 의지들이 충만하다.

이런 경우 실은 월급을 받는 이들조차도 자발적 열정 페이인 경우가 많다.

‘이해관계를 떠나 열정과 아이디어만 보고 투자한 업체들이라 그런지 하나같이 질이 나쁘지 않아.’

물론 기대감을 많이 내려놓았고, 실제 개발비나 기간이 적은 영향도 있다.

‘그걸 감안해도 좋은 게임이 최소 두 개 정도는 있어. 그중 쓸만한 인재들도 있고.’

그중 하나는 꽤나 감탄하면서 정신없이 플레이했다.

웹소설 원작인데, 인기가 굉장히 많아서 웹툰으로도 만들어지고 해외에서도 외화를 마구 벌어들이고 있단다.

대체 어떻게 따냈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말하더라.

“그거 쓴 애가 제 친한 친구거든요.”

알고 보니 개발사뿐만 아니라 매니지먼트 출판사를 겸업하고 있었다고…….

제목은 <아포칼립스 폴리스>.

역사상 최악의 팬데믹과 전쟁으로 나라의 치안이 엉망이 되고 도덕적 관념이 흐려지는 최악의 상황.

강원도 작은 마을 파출소 순경인 주인공은 나고 자란 소중한 마을과 가족, 친구, 지인들을 위해 굳건히 자리를 지키며 마을의 치안을 수호한다.

시나리오는 대략 이런 정도고, 모든 수단을 동원해 마을과 사람들을 지키는 것이 이 게임의 목표였다.

시나리오 초반에는 간단한 사건 사고 정도만 벌어지고 이를 수습하면 되지만, 흐름이 장기화되면 외부에서 정말 온갖 사건 사고, 사람들이 유입되며 점점 규모가 커진다.

문제는 이 게임의 개발자가 총 여섯 명 정도라는 것.

‘이들만으로는 시나리오를 감당할 수 없어.’

지금도 충분히 재미있고 잘 만들었지만, 지원을 더 늘려준다면 훨씬 좋은 게임이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도 이 게임의 프로듀서가 전 넥플 기획팀장 출신으로, 역량이 굉장히 뛰어나다.

특히 친구 소설 매니지먼트로 출판, 콘텐츠 개발 업계에 발을 담구며 온갖 일을 해본 경험이 있어서 사업가로서의 역량도 있다.

이는 게임 프로듀서에게 가장 중요한 소양이었다.

‘잘 키우면 최종학…… 까지는 아니지만 훌륭한 게임 프로듀서로 성장할 수 있을지 모른다.’

태연의 눈동자에 설렘과 기대감이 가득했다.

* * *

얼마 후 다음과 같은 기사가 작게 이슈가 되었다.

[유진성 랩. 인디 게임 개발사 ‘아포칼립스 피플’에 대대적인 투자 결정!]]

[게임 거부. 유진성 회장의 선택을 받은 아포칼립스 피플은 어떤 회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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