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한 게임 개발자가 너무 유능함 119화
76. 투자(1)
일주일간의 휴가를 끝마친 태연은 다시 집무실 의자에 앉았다.
“해야 할 일이 태산이군.”
많은 일을 두 이사와 회장이 분산해서 처리해 줬지만 그럼에도 일이 가득하다.
태연이 직접 해결해야 할 일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당면한 과제 중 가장 큰 일은 바로 투자 문제.
넥플이 투자 중인 중·소 게임 기업이 총 다섯 군데가 있었고 여기에 사용된 비용이 무려 500억이었다.
태연이 대표가 되기 이전에 진행되었던 내용으로, 현재 넥플에게는 큰 골칫거리로 여겨지고 있었다.
“슬슬 이 문제를 처리해야겠군.”
바닐라 소프트.
강남 역삼동에 위치한 회사로, 유니크 엔진을 이용한 MMORPG를 제작 중이다.
개발 기간만 4년째!
투입된 자금은 300억 규모.
불행히도 아직 게임은 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었다.
휴가 전.
유진성 회장이 태연을 불러 말했다.
“네가 직접 확인해 보고 정 방법이 없다 싶으면 정리해 버려.”
유진성 회장의 얼굴이 고통스러워 보였다.
이유는 이곳의 회장이 바로 넥플의 전 대표이사이자 유진성 회장의 친한 후배였기 때문이었다.
* * *
바닐라 소프트 역삼동 사옥에 도착했다.
첫 소감은 다음과 같았다.
‘비싼 곳이군. 투자금 상당 부분이 이 사옥 임대료로 나가겠어.’
신축 건물이라 외관이 굉장히 깔끔하고 멋지다.
대로변에 위치해 있고 바로 앞에 버스 정류장과 전철역이 있어서 통학도 좋다.
‘이거 우리 사옥보다 더 좋은 것 같은데?
내부는 더 가관이다.
회사 로고색인 바닐라 색을 적극 활용해 굉장히 예쁘고 아기자기하게 꾸몄다. 캐릭터 조형물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고 카페테리아는 게임 속에 등장하는 상점의 인테리어를 그대로 본떴다.
‘의자는 모두 백만 원이 넘는 허먼 에어 제품이고 최고급 전동 책상에 모니터, 키보드, 마우스…….’
직원에게 지급된 장비값만 인당 천만 원은 넘는 것 같다.
사무실 곳곳에 크고 작은 화분이 적절히 배치되어 있는데 이 역시 사람을 써서 관리하는 물건들이었다.
‘개발 인력은 백여 명.’
과하다.
300억이 결코 적은 돈이 아니지만…….
‘그 강건 대표도 돈을 이런 식으로 쓰지는 않았는데.’
넥플 강남 사옥과 비교해도 지지 않을 정도라면 문제가 있는 거다.
버는 돈 없이 쓰기만 하는 회사가 올해만 벌써 수천억 이상을 벌어들이고 있는 곳과 비슷하다니…….
집무실을 열고 들어가니 중년의 사내가 앉아 있었다.
“오, 어서 와요. 유 대표. 이렇게 보는 거 처음이죠? 제가 이 회사 대표 김상영이에요.”
넥플의 전 대표이자 유진성 회장의 지인.
현 바닐라 소프트 대표 김상영과의 만남이었다.
점잖은 외형과 달리 눈앞의 중년 사내는 굉장히 말이 많았다.
“내가 넥플 대표였던 시절에는…….”
그리고 과거 이야기를 굉장히 좋아한다.
벌써 수십 분 동안 본인이 가장 빛나던 넥플 대표이사 시절 이야기만 하고 있었다.
‘허세도 많아.’
원래 집이 잘살아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정장과 구두를 비롯한 착용한 모든 것이 명품이다.
집무실도 아늑한 서재 형식으로 꾸몄는데 모든 가구와 소품의 때깔이 범상치 않았다.
‘개인 물품일 수도 있으니 편견은 갖지 말자.’
어쨌든 넥플 대표이사 출신이니 돈은 많을 것 아닌가?
자기 돈을 어떻게 쓰던 제 마음이다.
‘투자금 유용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오늘은 단순히 게임만 보려는 게 아니다.
투자금을 어떤 명목으로 썼는지 자세히 확인할 예정이었다.
대화 시작 20분이 된 시점에 태연은 그의 말을 잘랐다.
“오늘은 과거 이야기를 하러 온 게 아니니 사적인 이야기는 나중에 하도록 하겠습니다.”
“어? 그, 그래. 그러자고.”
어느새 말을 놓은 김상영 대표였다.
집무실을 나서서 누군가에게 간다.
“이 친구가 정후상이라고, ‘용살 전기’ PD야. 정 피디 인사해. 내 후배 유태연 대표야!”
언제 봤다고 후배인지…… 태연은 명함을 건네주며 예의를 갖춰 인사했다.
“게임 개발자 유태연입니다.”
“이, 이렇게 유태연 대표님을 뵙게 될 줄은 몰랐는데…… 정말 존경합니다!”
태연은 지금 스튜디오의 분위기가 굉장히 부담스러웠다. 스튜디오의 수많은 이목이 자신에게 집중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냥 보기만 하는 거라면 모르겠는데 흡사 인기 스타라도 보고 있는 양, 굉장히 술렁이고 있었다.
“TV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키 크고 몸도 좋고 잘생겼다!”
“대박, 유태연 대표님이야! 나 진짜 좋아하는데…….”
“사람 자체가 진짜 멋있고 포스 있다. 괜히 국민 여신의 남자가 아니야.”
단순히 주목받는 게 싫은 건 아니다. 이런 건 익숙하다.
문제는 상태창으로 보는 직원들의 전반적인 능력치가…….
‘기준 미달이로군.’
자신이 이끄는 스튜디오라면 절대 뽑지 않았을 정도로 저조하다. 쓸만한 이가 없는 건 아니지만 주목할 수준은 아니었다.
‘이런 사람들이 만드는 게임이라면…….’
상태창만으로 모든 것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지금까지 경험해 의하면 창이 보여주는 능력치는 굉장히 직관적이며 정확하다.
이런 마음도 모르고, 정후상 PD가 잔뜩 들뜬 얼굴로 횡설수설한다.
“프, 프레젠테이션 준비할 테니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사실 방문 소식 이미 알고 준비하고 있었으니까 조금만 기다려 주시면 금방 끝나요!”
신난 것 같기도 하고…….
‘나름 자신이 있나 보지.’
4년 동안 무려 300억을 쏟아부어 만든 게임은 과연 어떨지.
태연은 기대 반, 우려 반의 심정으로 회의실에 들어갔다.
“채팅창에 /댄스 이렇게 입력하면 캐릭터가 걸그룹 댄스를 춥니다! 바로 이렇게!”
갑옷을 입은 바바리안 캐릭터가 섹시 댄스를 춘다.
‘300억…….’
태연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돈과 시간이 아깝다.’
막말로 대학교 게임 동아리보다도 못한 퀄리티였다.
‘모래, 바닥 타일, 나무…… 이거 모두 유니크 에셋 스토어에서 파는 물건들이잖아.’
모델링과 애니메이션 퀄리티는 그럭저럭 준수했지만…….
“플레이어블 캐릭터 외주 쓴 거죠?”
“네? 그, 그걸 어떻게…….”
퀄리티가 그나마 나았으니까.
“얼마 들였나요?”
“그…….”
“빨리 말해보세요.”
“2,800 정도…….”
그렇게 힘이 넘치던 사람이 갑자기 위축된다.
태연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저딴 걸……?”
아차, 혼잣말로 했어야 했는데…….
그 한 마디에 활기찼던 프레젠테이션 분위기가 급속도로 차가워졌다.
하지만 이미 지난 일. 태연은 매서운 눈으로 게임 화면을 노려보았다.
업계 탑 모델러가 받는 외주비가 대략 3,000만 원 정도.
‘2,800만 원은 고사하고 1,500만을 쓸 퀄리티도 아닌데…….’
감이 왔다.
태연의 전신에 한기가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외주 내역 정리한 거 가져와요.”
“……!”
“지금 당장!”
아직 상황 파악을 제대로 못 한 김상영 대표가 어리둥절해하는 가운데 이후상 PD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렸다.
대표이사가 되기 전.
넥플 내에 만연하던 온갖 비위 행위들을 일망타진한 전적이 있던 태연이었다.
그런 태연의 눈에 비위 의심 행위가 포착되었고 자금 사용 내역서가 손에 쥐어졌다.
내역서와 게임 구현 퀄리티를 하나하나 대조해 보며 중얼거렸다.
“적당히 해처먹었야지 이건 뭐…….”
이건 좀 심하다.
이후상 PD는 고개를 파묻은 채 벌벌 떨고 있었다.
김상영 대표가 조심스레 묻는다.
“혹시 비위 행위가 있는 겁니까.”
태연은 대답 없이 그를 바라봤다.
정말 몰랐던 걸까?
아니면……..
“죄, 죄송합니다!”
그때 이후상 PD가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자진 납세를 하려는 것이다.
‘다 알고 계신다. 여기서 잡아뗄수록 손해야!’
태연의 위명은 익히 알고 있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것 하나는 몰살의 유 PD!
넥플에 만연하던 수많은 비위 행위를 단번에 캐내어 인정사정없이 조치한 사실은 개발자라면 모두 알고 있는 내용이다.
그를 속이려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일이다.
“사실 이 모든 일은 김상영 대표님의 지시로 이어진 일입니다! 저는 한 푼도 챙기지 못…… 아니 않았습니다! 정말입니다!”
“뭐 인마? 야! 너 미쳤어?!”
당황한 김상영 대표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선다.
“미친 새끼가 갑자기 무슨 헛소리야? 내가 언제 그런 걸 지시했어? 너 나한테 무슨 원한이라도 있어?!”
험한 욕설을 터뜨리던 그는 태연의 시선을 눈치채고 황급히 변명했다.
“오해야! 난 절대 그런 거 지시한 적 없어! 내가 뭐가 아쉽다고…….”
“안 그래도 더 못하겠다고 말씀드리려고 했어요! 저 녹취록과 증거물도 다 가지고 있어요!”
“뭐, 뭐……?!”
저희들끼리 칼을 겨누고…… 아주 야단이다.
회의실 바깥에 직원들이 몰려와 웅성대고 있었다.
“아주 개판이군.”
* * *
바닐라 소프트 김상영 대표는 투자금 횡령으로 고발됐다. 창업 이후 벌지 않고 쓰기만 했던 바닐라 소프트는 구제 여지가 없었다. 해체 수순을 밟는 건 당연한 절차였다.
문제는 바닐라 소프트 직원들이었다.
시키는 대로 일만 했던 직원들은 아무 죄도 없었다.
‘역량이 하나같이 기준 미달이라…… 어디에 두고 써야 할지 모르겠군.’
현재 바닐라 소프트 직원들은 불안감에 떨면서도 한편으로는 넥플로의 편입을 기대하고 있다. 지금까지 태연의 행보가 그런 기대감을 품게 만든 것이다.
더불어 지금의 넥플이라면 게임 업계 최고의 기업이고 대우도 굉장히 좋으니 오히려 더 잘된 일 아닌가?
‘지분 투자를 하긴 했지만 사실상 다른 회사인데…… 내가 책임질 이유가 없지.’
무작정 혜택을 배푸는 건 오히려 다른 이들에게 불공평한 일이다.
지금의 넥플은 대한민국 수많은 이들에게 꿈의 회사로 선망받고 있다.
경력과 스펙이 훨씬 대단한 이들도 철저히 준비를 하는 판국에 기준 미달의 인원들을 대뜸 들이면 무슨 일이 벌어지겠나?
그럴 의무도 없다.
마침내 태연은 결정을 내렸다.
“입사 지원하는 사람 한정, 면접과 테스트를 볼 기회 정도는 제공하자.”
원래대로라면 서류 면접에서 대부분 탈락일 텐데 이 정도면 정말 큰 혜택이다.
소식이 퍼지자 바닐라 소프트 직원들은 원성을 쏟아냈다.
“우리 일자리를 없애 버린 사람이 누군데?!”
“유태연 대표! 제길, 사람 그렇게 안 봤는데…….”
“됐다. 필요 없어. 자존심 상해서 안 가! 넥플 아니면 갈 수 있는 회사 없을 줄 알고?”
그러나 내부 분위기가 달리 전원 넥플에 입사 지원서를 냈다.
태연이 공언했던 대로 1차 서류 면접 통과!
문제는 면접…… 그중에서도 특히 테스트였다.
넥플에서는 태연이 직접 만들고 피디 급들이 검수하여 완성한 입사 시험이 존재한다.
그 시험이 굉장히 잘 만들어져 있어서 풀이 과정과 결과를 보면 이 사람이 어느 정도의 역량을 지녔는지 금방 체크할 수 있었다.
과거 각 파트의 수많은 이슈들을 모아 시험에 맞는 예제로 재구성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끄응.”
“이건 너무 어려운데…….”
입사 시험에 임하는 바닐라 소프트 직원들은 머리를 부여잡고 끙끙댔다.
그동안, 태연은 또 다른 투자사를 무참히 박살 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