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한 게임 개발자가 너무 유능함 118화
75. 확장!
마지막 날 PVP 결승 무대.
“골드 파인애플! 몰립니다! 몰리고 있어요!”
“이럴 수가 있나요? 저 귀여운 초등학생 선수가 천재 플레이어 골드 파인애플을 사정없이 몰아붙이고 있습니다. 피지컬과 전략이 굉장합니다!”
개인전에서 반전이 펼쳐졌다.
골드 파인애플과 한국의 초등학교 6학년생, 정아람이 대결을 시작했다.
사람들은 당연히 골드 파인애플이 압도하리라 예상했지만 결과는 정반대, 정아람이 놀라운 플레이를 펼쳐 보인 것이다.
심지어 대세인 근접 캐릭터가 아니라 원거리 궁수 캐릭터로 올린 성과라 더 놀라웠다.
태연과 개발자들은 현장을 지켜보며 전율했다.
“와, 저런 방식의 컨트롤은 우리도 생각 못 했는데…….”
“둘 다 정말 대단하네요. 모든 기능을 100% 이상으로 활용하고 있어요!”
상황은 정아람에게 유리한 시점.
결국 우려하고, 한편으로 기대했던 상황이 펼쳐졌다.
[정아람 선수! 네! 정아람 선수가 이겼습니다! 개인전 최후의 승리자는 대한민국 여수 출신 초등학생 플레이어. 정아람 선수입니다!]
골드 파인애플의 패배!
멍해 있던 그는 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눈물까지 흘리며 기뻐하는 정아람에게 다가가 악수를 청한다.
손을 맞잡더니, 아예 끌어안고 높이 들어 올려 헹가래를 해주자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굉장히 보기 좋은 광경이 연출되고 있습니다! 감동적이네요. 패배를 인정하고 진심으로 축하해 주는 모습. 네. 우리 사회에 필요한 자세가 아닐까 싶습니다!]
우승 상금 10억!
준우승 상금 5억!
상금과 별도로 결승전에 진출한 두 사람. 그리고 두 팀에게는 팀 창설 지원금과 더불어 고급 승용차가 지급된다!
추가로 첫 국제 PVP 대회 기념 스킨 패키지를 제작, 판매하여 수익금의 10%를 분배한다.
모두가 지켜보는 자리에서.
이번 대회의 우승자이자 톱스타로 떠오른 초등학생 플레이어, 정아람이 다음과 같은 소감을 밝혔다.
“피디 아저씨! 질문이 있는데…… 엘크로스 프로 리그 창설되는 거죠? 친구들이 창설될 거라고 막 그러던데…….”
마이크를 타고 울려 퍼지는 질문에 모든 질문이 수여자인 태연에게 집중된다.
쏟아지는 엄청난 관심, 기대감 속에…….
“빠르면 내년. 늦어도 2년 안에 엘크로스 Re와 몬스터 이터의 프로 리그 협회를 창설할 계획입니다.”
[우와아아아!]
터져 나오는 함성.
이번 페스티벌에서 가장 열광적인 반응이었다.
무대 위에 있던 선수들 역시 서로 하이파이브를 하거나 주먹을 움켜쥐며 기뻐했다. 골드 파인애플 역시 마찬가지.
정아람은 앙증맞은 주먹을 쥐며 소리쳤다.
“저 엘크로스 프로 리그 최고의 플레이어가 될 거예요! 모두 응원해 주세요!”
당돌한 선언에 관객들이 뜨거운 환호를 보낸다.
재미와 감동.
수많은 꿈과 목표를 던져준 첫 번째 엘크로스 페스티벌은 그렇게 끝났다.
태연은 일주일간의 유급 휴가 공문을 발송했다.
덧붙여 수고비로 인당 백만 원씩을 지급했다.
직원 수가 워낙 많아 적잖은 비용이 소모됐지만…….
“벌어들인 돈이 워낙 많아서 티도 나지 않아.”
“그래요?”
“그래. 그러니까 앞으로 내 의견 같은 거 물어보지 말고 이런 대표 권한으로 질러 버려.”
이태영 이사는 그렇게 말했지만 태연의 생각은 달랐다.
“그래도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죠. 혹시라도 제가 잘못된 판단을 내리고 있는데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면 이사님께서 제재해 주셔야 합니다.”
“흠.”
이태영 이사는 대답은 안 했지만 내심 뿌듯한 표정이었다.
“그건 그렇고……. 넌 요사이 좀 어떠냐?”
“……?”
“회사도 잘 되고 있고 게임도 잘 만들어지고 있는데……. 가장 중요한 소식이 안 들려오고 있잖아.”
“어떤……?”
영문 모를 표정의 태연에게 이태영 이사가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아기. 아기 안 가질 거야?”
“아……!”
태연의 멋쩍은 얼굴에 이태영 이사가 웃음을 크게 터뜨린다.
극소수에게만 보여주는 이런 인간적인 모습이 좋은 것이다.
“너 설마…… 거기 기능에 문제라도 있는 건 아니지?”
“그럴 리가요! 아무 문제 없습니다!”
태연이 정색했다.
문제는커녕, 오히려 너무 힘이 넘쳐서 탈이다.
“그러면 뭐 하느라 소식이 없는 거야? 다른 이유라도 있어?”
“이유라면…….”
태연은 그녀를 떠올렸다.
“그녀의 꿈을 위한 선택이죠.”
“오빠는 아기 갖고 싶지 않아?”
저녁 식사 중 김윤아가 던진 말이었다.
태연은 갑자기 왜 이러나 싶어 물었다.
“왜?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
“일이 있었다기보다는…….”
머뭇거리던 윤아가 말했다.
“결혼한 동료들이 아이를 낳았는데……. 그렇게 예쁘고 사랑스러워 보일 수가 없더라.”
“흠.”
“다들 힘들다고, 애 보느라 죽겠다며 투덜거리는데 굉장히 행복해 보여서…….”
“그게 부러웠던 거야?”
“응.”
태연은 그녀를 쳐다봤다.
눈동자에 이전에 보이지 않던 뜨거운 열망이 담겨 있었다.
‘사실 나 역시 윤아 닮은 아이를 갖고 싶긴 하지만…….’
현역에서 은퇴한 지 몇 년이 지났다고는 하지만, 실상 그녀는 아직 나이가 어렸다.
이제 겨우 이십 대 중반을 넘긴 나이인 것이다.
그야말로 꽃다운 나이.
가장 아름답고 활동적이며 꿈이 많을 때였다.
그리고 그녀는 목표하고 있는 것이 있었다.
“아이를 갖게 되면 꿈에서 조금 멀어지게 될 수도 있어. 몸 상태도 예전 같지 않을 테고.”
“상관없어. 몸 컨디션이라면 어떻게든 되돌릴 수 있으니까!”
“하지만 세월은 되돌릴 수 없지.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을 때의 부담감은 나보다는 네가 더 크게 느낄 거야.”
그녀는 아무 말을 못 했다.
“하고 싶었던 거 원 없이 해보고 난 뒤에도 늦지 않아.”
“그럴까?”
“그래.
“오빠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만…….”
수긍하는 듯하던 그녀가 갑자기 눈을 가늘게 뜬다.
“그래도 괜히 섭섭하네. 오빠는 나만큼 아기가 간절한지 않은 것 같아서……. 혹시 부담으로 여기는 건 아니지?”
“…….”
태연의 얼굴에 표정이 사라진 순간 그녀는 아차 하고 말았다.
자신이 아주 살짝 선을 넘었다는 것을 인지한 것이다.
“내가 왜 아기를 부담으로 여겨야 하는데…….”
“아니, 그게…….”
“솔직히 말할까? 난 아기보다는 너를 더 소중하게 여기기 때문에 이런 결정을 내리는 거야. 네가 꿈을 이루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고 싶으니까.”
“오빠…….”
평상시라면 그냥 기분 좋게 넘길 수 있었던 말인데……. 혼낼 것처럼 냉기를 뿜어내다가 갑자기 기습적으로 치고 들어오니 코끝이 찡해진다.
“미안해. 내가 말이 좀 심했어.”
태연은 안겨 오는 윤아를 말없이 다독여 주며 생각했다.
‘쉴 시간이 필요해.’
그동안 윤아나 자신이나 너무 정신없이 지냈다.
태연이 조심스레 물었다.
“우리 여행이나 갈까?”
대표 이사가 휴가를 써야 직원, 임원들도 마음 놓고 휴가 일정을 정할 수 있다.
태연은 일주일간의 휴가를 내고 이를 공지했다.
그것을 기점으로 사방에서 휴가 계획이 올라왔다.
국내 여행지는 물론, 일본이나 중국, 심지어 미국이나 유럽 등으로 여행을 계획하는 이들도 있었다.
휴가비가 무려 백만 원이 나오고 특별 유급 휴가였기에 기존 연차를 조금씩 붙여서 사용하는 사람도 있었다.
물론 태연은 이것 가지고 뭐라고 하지 않았다.
업무에 방해만 안 된다면야 본인 휴가를 어떻게 쓰든 자유니까.
임원 회의에서 태연이 당부했다.
“엘크로스 페스티벌이라는 거대한 행사를 성공적으로 끝마쳤지만 향후 더 엄청난 일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넥플 발표회라든지 프로리그 창단이라든지 밀키웨이 런칭 준비라던지…….”
거론되는 거대한 프로젝트에 일순 표정들이 굳어진다.
태연이 둘러보다가 살짝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쉴 수 있을 때 쉬세요. 안 그러면 나중에 후회할 겁니다. 왜냐면 제가 미친 듯이 부려먹을 거거든요.”
넥플이 휴가 분위기로 들뜨는 동안, 엘크로스 Re는 다시 한번 폭발적인 성장을 기록 중이었다.
아시아, 유럽, 중·남미 지역 서버가 차례대로 오픈한 것.
이번 PVP 국제 대회가 굉장히 이슈 되며 가입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특히 일본에서의 반응 역시 좋았지만 이유가 조금 남달랐다.
[유태연과 타키자와 사토시. 한일 최고의 프로듀서들이 손잡고 게임 프로 리그를 개최한다.]
[엘크로스와 몬스터 이터. 프로 리그 추진 준비 중!]
일본이 자랑하는 최고의 인기 온라인 게임 몬스터 이터.
태연의 디렉팅이 더해지며 새로운 차원으로 도약하게 되었던 자국의 게임이 이제는 세계 규모의 프로 리그를 추진한다!
pc mmorpg게임이 약한 일본 게임 커뮤니티가 큰 관심을 가질 정도의 대사건이었다. 더불어 엘크로스 일본 버전은 타키자와 사토시가 공동 프로듀서 자격으로 현지화를 진행하여 큰 호응을 얻는 중이었다. 몬스터 이터 때 태연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이는 한일 양국을 대표하는 두 게임 프로듀서의 우정이 얼마나 깊은지 보여주는 사건이었고 스튜디오 간의 굳건한 동맹을 의미했다.
이처럼 반응이 긍정적이니 엘크로스 현지 퍼블리셔 및 운영사, 크라잉 소프트는 거액의 마케팅 비용을 책정, 공세를 퍼붓기 시작했다.
그 결과, pc로 게임을 하는 게 익숙하지 않은 일본에서 상당한 규모의 유료 가입자를 확보할 수 있었다.
이는 일본에서도 굉장히 이례적인 상황이었기에 인터넷 여론은 물론, 메이저 방송, 신문사에서도 집중적으로 다룰 정도였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휴가를 앞둔 태연은 고민이 됐다.
‘이런 시기에 내가 휴가를 가는 게 맞나?’
그럴 때 손영상 이사가 나서서 한마디 했다.
“걱정 말고 휴가나 다녀와. 나만 믿으라고.”
“……이사님을요?”
“왜, 못 미더워? 내가 이래 봬도 개발 총괄이야!”
“흠…….”
못 미덥다기보다는 중요한 시기에 막중한 임무를 떠맡기고 간 듯한 탓이다.
그 기미를 알아챈 손영상 이사가 피식 웃었다.
“이제 와서 무슨……. 내가 한 가지 알려줄까? 내가 왜 그토록 은퇴를 바랐었는지?”
“……?”
“간단히 말해서 일이 재미가 없어서였어. 내 능력의 한계를 절감한 것도 있고……. 이상은 저 높은 곳에 있는데 현실은 이 아래니까 그 간극 때문에 답답하고 미치는 거지. 발버둥 쳐도 안 되니 자포자기하게 되고. 이 심정, 이해할 수 있겠어?”
태연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드림 소프트와 블레스 시절 종종 느꼈던 감정이었기에.
“그런데 요즘은 리더가 바뀌니까 회사 전체가 긍정적인 분위기로 바뀌고, 내가 바랐던 것 이상으로 올라가기 시작해서 열정이 되살아났다 이거야. 요즘처럼 회사 출근하는 게 즐거웠던 때가 없었던 것 같아.”
“…….”
“날 믿고 휴가 다녀와. 절대 실망시킬 일은 없을 테니까.”
노장의 불타오르는 열정을 확인한 태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친김에 좋은 소식도 기대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