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한 게임 개발자가 너무 유능함 116화
73. 담화
태연을 주목하는 것은 게임, 주식 시장뿐만 아니었다.
정치계에서는 그 이상으로 관심을 갖고 있는 중이었다.
역사상 가장 젊은 대기업 대표 이사이기도 했고, 경제 부흥과 수많은 일자리 창출이 걸려 있는 사업의 핵심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온 국민의 관심이 쏠려 있었다.
MBC 저녁 뉴스에 특별 초대 손님으로 출연했기 때문이었다.
최근, 특출난 지성미로 주가가 높은 이지애 아나운서가 반짝이는 눈으로 묻는다.
“최근 유태연 대표님에 대한 관심사가 전국민적으로 높아지는 것 같습니다.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한 사람에게 한 번 일어나기 힘든 큰 행운이 저에게는 여러 번 닥쳐왔기 때문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행운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을 말하는 걸까요?”
“여러 가지가 있죠. 당장 여러분이 가장 잘 아실 만한 내용으로는 국민 여신이라 칭송받던 김윤아 씨와 결혼을 한 것이 있겠고…….”
딱딱한 담화가 될 줄 알았지만, 생각 외로 흐름이 부드러웠다.
이지애 아나운서는 속으로 생각했다.
‘냉막한 사람이라고 들었는데…….’
기업가에 퍼진 그의 별명은 하나같이 무시무시하다.
개발 머신, 철혈, 몰살 등등.
그래서 한껏 긴장했는데 이게 웬걸?
“그러면 대표님은 이 모든 일들이 실력보다는 행운이 크게 작용했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네. 전 그렇게 생각합니다. 순전히 제 역량으로 벌어진 일이었다면 20대 때 진작 성공했어야 했는데…… 그때는 정말 무슨 일을 해도 잘 안 됐거든요.”
부드러운 미소와 자상한 목소리로.
자신의 질문을 굉장히 성의있게 답변해 주는 게 아닌가?
긴장한 기색 하나 없이!
‘그래서 그런지 나도 긴장감이 사라지는 것 같아.’
마치 사석에서 인터뷰를 하는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회사 이적 후 거짓말처럼 놀라운 일들을 보여주기 시작하셨죠. 여기서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축하 인사를 드려야 할 것 같은데…… Disney Fantastic World에 이어 엘크로스라는 게임으로도 전 세계 주요 게임쇼에서 상을 휩쓸었죠?”
“좋기도, 민망하기도 합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제가 잘나서가 아니라, 운이 크게 작용했거든요.”
“어떤 식으로 작용한 걸까요?”
“흔히, 게임을 종합 예술이라고 표현합니다. 프로그래밍, 아트, 기획, 마케팅, 운영, 커뮤니케이션…… 수많은 요소들이 긍정적인 조화를 이뤄야 탄생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죠.”
알기 쉽게, 게임에 대해 큰 관심없던 대중들도 금방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한다.
“그 수많은 분야에서 최고의 실력뿐만 아니라 인성마저 겸비한 이들과 만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모릅니다. 그런데 저에게 그런 일이 일어났던 거죠.”
“최고의 스태프들이 있었기에 그런 업적이 가능할 수 있었다. 이렇게 말씀하시고 싶으신 거군요.”
“오, 이지애 아나운서님. 이제 보니 정리 능력이 굉장히 뛰어나시네요. 혹시 우리 회사에 입사해서 일해 보실 생각 없으신가요? 연봉 1억 이상 보장해 드릴 수 있는데…….”
“헛! 그, 그게 정말…… 아, 아니 그게 아니라…….”
과감한 농담까지!
어느새 현장을 주도하고 있는 그를 보고 깊은 호감을 느꼈다.
‘하지만 국민 여신의 남편이지. 아깝다. 이런 남자를 조금 더 일찍 알았어야 했는데…….’
* * *
뉴스 출연 계기는 대한민국 게임 개발자로서 해외에서 큰 성과를 이룬 덕분이다.
Disney Fantastic World에 이어 엘크로스 Re가 사실상 주요 게임상들을 휩쓸어 버린 것이다.
게임쇼 현장에서의 뜨거운 반응들이 인터넷에서 엄청난 화제가 된 덕분에 이 업적이 큰 주목을 받을 수 있었다.
한마디로 모두를 국뽕에 취하게 만든 성과였다.
무려 국내 10대 대기업 대표 이사가 움직인 일이었다.
방송국 국장들뿐만 아니라 사장까지 직접 나서서 인사를 하고, 내부 안내를 담당할 정도로 방송국이 크게 들썩였다.
생방송 뉴스가 진행되고 있을 때에는 카메라 바깥에서 상황을 지켜봤고 태연이 출연을 끝마치고 나왔을 때에는 정말 고생 많았고 성의껏 임해줘서 고맙노라는 인사까지 했다.
태연 모시기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그날 간부 대다수가 참여한 저녁 식사 자리.
김성제 사장이 술을 한 잔 따라주며 조심스레 말했다.
“그래도 설마 이번 이슈와 관련된 내용들을 그렇게 직접적으로 터뜨려 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게임물관리위원회 이슈에 대한 이야기였다.
태연은 묻는 질문에 대해, 숨김없이 속 시원히 대답했다.
심지어 전날 게등위 위원이 사전 약속도 하지 않고 찾아와 행패를 부리려다가 쫓겨난 사건에 대해서도.
보는 입장에서야 쾌재를 부를 일이었지만 한편으로는 걱정도 된다.
어쨌든 정부 부처를 적으로 돌린 상황 아니겠나?
“괜찮습니다.”
답변은 굉장히 담백했다.
“제가 모종의 의도를 품고 억지로 꾸민 일이 아니라 누가 봐도 잘못했고, 처벌을 받아야 할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원래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던 곳에 기름을 끼얹었을 뿐이라는 이야기 아닙니까?”
그 말에 사방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태연 역시 미소를 띠며 수긍했다.
“그런 셈이군요.”
태연은 전날 봤던 게등위 전문위원 3인조를 떠올리며 되뇌었다.
‘그런 작자들 수준이라면…… 대군이 몰려와도 두렵지 않아.’
분위기가 무르익을 무렵.
‘음?’
태연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직감했다.
사장을 포함, 간부들이 서로 모종의 눈짓을 교환하고 있었던 것이다.
‘역시…….’
대충 예상은 했다.
단순한 호의로 이런 자리를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태연은 물로 입속을 헹구고 말했다.
“할 말이 있으면 해보시지요.”
“으음, 저기…….”
김성제 사장이 멋쩍은 듯 헛기침을 터뜨리고 입을 열었다.
“지금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게임, 엘크로스의 E스포츠 경기를 추진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딱히 비밀스러운 일도 아니다.
골드 파인애플의 제안으로 계획된 엘크로스 국제 PVP전.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참가자들이 몰리며 벌써부터 큰 이목이 집중되는 상황이다. 태연은 이미 몬스터 이터 월드 챔피언십을 성공적으로 치른 전적이 있기에 누구도 흥행과 운영 안정성에 대해 걱정하지 않고 있었다.
본격적인 E스포츠화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소문에 의하면 엘크로스와 몬스터 이터를 엮은 통합 국제 대회를 준비 중이시라고…….”
이 역시 굳이 기밀로 치부할 만한 상황은 아니다.
E스포츠에 대한 이야기가 거론되면서 동시에 퍼지고 있는 이야기였으니.
“혹시 부탁하시려는 것이 중계권에 대한 내용입니까?”
“네! 맞습니다. 혹시 자체 중계 플랫폼을 만드시려는 게 아니라면 저희와 상의해 보시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어서…….”
“전 세계 독점 중계권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에이, 설마요! 우리가 그렇게 염치없지 않습니다. 한국 내 중계권을 말하는 겁니다. 이미 미국, 프랑스, 등지에서 여러 거대 기업들이 엄청난 조건을 걸고 경쟁 중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명확하게 공시된 내용은 없었지만 게임계가 벌써부터 난리였다. 그만큼 엘크로스 Re의 전 세계적인 인기가 심상치 않은 것이다.
매출, 동접률 등의 다양한 기록을 연이어 갱신하고 있고, 수많은 커뮤니티, 게임 언론 사이트에서는 엘크로스가 사실상 메인을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었다.
단순한 MMORPG가 아니라 PVP를 비롯한 여타 여러 콘텐츠에서 큰 재미를 주고 있다는 뜻이다.
“무엇보다도 엘크로스는 우리나라에서 만든 한국 게임 아닙니까? 우리나라의 반응도 굉장하다고 들었습니다.”
유명 연예인들을 비롯한 수많은 셀럽들이 대놓고 엘크로스를 즐기는 상황이다. 심지어 어떤 유명 스트리머는 자체적으로 대회 콘텐츠를 만들어 큰 관심을 받기도 했다.
태연이 말했다.
“개인적으로는…… 지금 상황이 참 놀랍습니다. 다른 곳도 아니고 무려 지상파 방송국에서 E스포트 중계에 큰 관심을 보이다니…….”
“과거와 다릅니다. 이제 E스포츠가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인기를 끌며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사실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습니다. 고루한 이미지와 관습에서 벗어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나름, 긍정적 변화와 성장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는 뜻이다.
‘지상파 중계라…….’
자체 플랫폼을 만들어서 방영하는 경우도 있지만 처음부터 엄청난 모험을 강행할 생각은 없었다.
‘굳이 그럴 이유도 없지. 이런 건 나중에 얼마든지 할 수 있어.’
급히 먹는 밥이 체하는 법.
사실 지금이야 드러나는 인기가 굉장해 보이지만 막상 대회에서는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미래는 장담할 수 없으니까.
‘나쁘지 않아.’
돈을 떠나, 지상파에서 게임 대회를 방영해 준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득이 될 것이 분명하다.
만약, 게임이 크게 흥행한다면 MBC에게는 신의 한 수가 될 수도 있는 일이다.
“저 혼자서 결정할 수 없는 일입니다.”
“아…….”
어두워지는 표정들.
그러나 말은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긍정적으로 고민해 보고 답변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태연의 미소에 ‘어쩌면……?’이라는 생각을 하는 모두였다.
* * *
다음 날은 청와대에서 고용노동부 장관. 문화체육부 장관과 함께 대통령을 접견했다.
고집스러운 중년 남자 인상의 대통령은 심각한 얼굴로 태연의 두 손을 맞잡았다.
“날이 갈수록 안 좋아지는 경제 상황 속에서 최근 넥플이 들려주고 있는 소식은 국민에게 희망과 즐거움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 정도로 활약이 굉장했던가?
태연은 얼떨떨했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
“테마시티 직간접 고용 인력 추산을 5만 명, 혹은 그 이상이 될 수도 있다고 자신하셨었죠?”
“네. 간담회에서 그런 말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 명확한 배경이 궁금한데, 이 자리에서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현 정부가 출범 때부터 가장 강조한 공약이 청년 실업 문제 해소와 경제 회복이었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 회복될 기미는 보이지 않고 실업 문제는 가속화되고 있었다.
이미 예상했던 이슈였기에, 태연은 침착하게 현 상황들을 몇 가지 풀어놓았다.
“먼저 시티의 전반적인 구조에 대해 말씀드려야 하는데…….”
대통령과 장관들은 나랏일로 바쁜 사람들이었다.
그런 사람들이 무려 한 시간이나 시간을 할애해 줬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태연은 뉴월드 그룹, 디즈니, 넥플. 세 개의 회사가 연합해서 작업 중인 과천 테마파크 시티 프로젝트에 대해 요약정리를 시작했다.
“테마파크는 두 개의 거대한 테마구역으로 나뉠 예정이며 그 주위에 넥플과 드림씨어터, 뉴월드 그룹 신사옥이 들어설 예정입니다. 이 사이를 잇는 거대한 테마단지가 도시 형태로 들어설 예정인데, 이를 드림씨어터 시티라 합니다.”
“드림씨어터 시티라……!”
“참고로 드림씨어터는 테마파크 시티의 기획, 운영을 전담할 회사입니다.”
“유 대표님이 그 회사의 대표인가요?”
“그런 제안을 받긴 했습니다만 제가 당장은 할 일이 많은 관계로 우선은 CTO직을 맡기로 했습니다.”
“기술 개발에만 관여한다는 건가요?”
“운영에도 관여합니다.”
대통령과 장관들이 고개를 갸웃한다.
문화체육부 장관이 물었다.
“그 정도면 사실상 일을 다 하는 게 아닌가요?”
“제가 관여하는 것은 기술, 운영적인 부분에 한합니다.”
“아, 회사 운영이나 행정적인 부분까지 관여하지는 않는다는 거지요? 이해했습니다.”
“당장은 그렇지만…… 사업이 본격화되면 제가 본격적으로 관여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모두들 제가 전면에 나서서 적극적으로 리드해 주기를 원하고 있는 데다가 사업 규모가 워낙 거대하니까요.”
“사실상 드림씨어터라는 그룹의 수장이라고 봐도 무방하겠군요.”
“그렇게 보셔도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제가 대략적으로나마, 직간접 고용 가능 인원에 대해 말씀드릴 수 있는 이유입니다.”
“그렇군요.”
“가장 궁금해 하실 고용 계획에 대해 말씀드려보자면…….”
삼십 분만에 대략적인 계획을 설명할 수 있었다.
“대단하네요. 어쩌면 하나도 이렇게 막힘없이 복잡한 계획을 설명할 수 있는 걸까요? 머리가 굉장히 뛰어난 것 같아요.”
“제가 처음부터 참여하고 리딩한 계획들이 대부분이라 잘 알고 있는 겁니다.”
“저도 수많은 계획에 참여하며 지시하지만 그 많은 것들을 정확히 숙지하지는 못해요.”
대통령의 고집스러운 인상이 온화하게 바뀌었다.
“유태연 대표님은 여러 면에서 범상치 않은 인물임은 확실해 보이는군요.”
“…….”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남은 시간이 많지 않은 듯하니…… 슬슬 유 대표님의 말을 듣고 싶은데.”
대통령의 눈이 번뜩였다.
“혹시 이 자리에서 꼭 하고 싶은 말이 몇 가지 있지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