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한 게임 개발자가 너무 유능함 114화
71. 총대를 메다
“다음은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 청년 실업 문제와 관련해 채용 확대를 당부드리고 싶습니다.”
자상하던 눈빛이 돌변, 매섭게 번뜩인다.
“유태연 대표님께 궁금한 게 있는데…….”
“네. 말씀하십시오.”
“유태연 대표님 체제 이후 신규 채용률이 급감한 것으로 나와 있는데, 이 문제에 대해 해명 부탁드려도 될까요?”
확실히 그랬다.
이유는 간단했다.
“신규 프로젝트를 자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확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이미 넥플은 대한민국…… 아니, 전 세계적으로 단일 회사 중 가장 많은 게임 프로젝트를 진행 중입니다. 스튜디오만 무려 수십 개에 달하니까요. 그 인원만이 총 수천 명에 이릅니다.”
“으음……!”
“너무 많죠. 그런데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제가 알기로 몇 년 전에도 고용노동부에서 비슷한 문제로 CEO 간담회를 개최했고, 그때 장관님께서도 채용 확대를 부탁하셨습니다. 당장 그 말을 듣는 시늉이라도 하려면 결국 신규 프로젝트를 늘릴 수밖에 없었죠. 기존 팀은 전부 TO가 가득 찼고, 사실 게임 회사에서 신출내기 직원들이란 그 전력이 무의미한 수준에 가까우니까요.”
“무의미한 수준이다. 그게 정확히 어떤 의미죠?”
“도저히 실전에서 써먹을 수준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건 여기 계신 CEO님들도 모두 공감할 겁니다.”
다들 고개를 끄덕인다.
“공무원도 그렇지 않습니까? 제가 알기로 최소 3년까지는 즉시 전력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육성에 투자하는 개념이라고 들었습니다.”
“그건…… 부정할 수 없군요.”
“보통 대규모 프로젝트라도 100명을 겨우 넘기는 것이 대부분이고, 이럴 경우 팀에서 신입 개발자의 비중은 많아야 30명을 넘기기 힘듭니다. 그 이상이 되어버리면 중심에서 프로젝트를 끌고 가야 할 경력자가 부족하기 때문에 진행 자체가 어렵습니다.”
태연이 자신들이 하고 싶은 말을 속 시원하게 해주니 CEO들은 열심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다 보니 불필요한, 혹은 수준이 떨어지는 프로젝트가 늘어나고, 결국 대부분은 콘텐츠를 런칭하지도 못한 채 목적을 잃어 방황하는 신세가 됩니다. 제가 대표 취임 이후 가장 신경 쓴 것이 그런 직원들을 한 명 한 명, 적성에 맞는 프로젝트에 전환 배치 시키는 일이었습니다. 그 수가 수백 명이었습니다.”
“힘들었겠네요. 음, 그래도 신규 직원 채용 확대는 정말 중요한 일인데…….”
그렇게 말했는데 아쉬움을 드러낸다.
물론 태연도 그들의 반응을 이해했다.
그래서 말했다.
“장기적으로, 우리 넥플 그룹은 지금 총직원 수의 몇 배에 해당하는 인력을 새로 채용할 예정이니 아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
이번에는 모두가 깜짝 놀란다.
고용 노동부 장관이 더듬거리며 묻는다.
“제가 파악하기로 넥플 총직원 수가 수천 명에 달하는데…… 그 몇 배에 해당하는 인력이라면……. 어떻게 가능한 거지요?”
웅성거림이 커진다.
태연은 담담히 말한다.
“과천 테마파크 리조트 사업이 있으니까요.”
“아……!”
“이미 착공이 진행 중이고 공사와 콘텐츠 개발이 빠르게 이루어지는 중이니 수년 안에 파크가 완공될 예정입니다. 그렇게 되면 대규모 신규 인력 채용이 진행되겠지요.”
“오오……!”
“직, 간접 고용 인력을 총 5만 명 정도로 예상 중이며 향후 파크 시티 상황에 따라 그 이상 확대될 수도 있습니다. 전 개인적으로 미래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뉴월드 그룹과 넥플, 디즈니, 세 개의 회사가 전력을 다해 세계적인 테마시티로 만들 각오를 하고 있으니까요.”
태연이 자신감 있게 말했다.
“제가 이 거대 프로젝트의 기술 총괄입니다. 지금까지 알려드린 정보에 허언이나 과장이 없다는 점. 분명히 말씀드리겠습니다.”
더욱더 커지는 탄성 소리.
급기야 박수가 터져 나온다.
고용노동부 장관을 비롯한 정부 부처 사람들의 표정이 굉장히 밝았다.
“이외에도 다양한 프로젝트가 진행 중입니다. 아직 언론에 공개하지 않고 저와 극소수의 인물만이 알고 있는…… 깜짝 놀랄 일들이 여럿 있습니다.”
태연은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넥플은 온 힘을 다해 대한민국 청년 실업 해소와 고용 안정에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드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야 회사가 세계적인 규모로 도약할 수 있기 때문에 저 역시 죽을힘을 다할 생각입니다.”
“…….”
넥플 회의실에 침묵이 감돌았다.
너무나도 엄청난 이야기가 아닌가?
유진성 회장이 팍 한숨을 내쉬었다.
“아주…… 간담회장을 회사 미래 성장 계획 발표회로 만들고 왔구나.”
“그렇게 해야 할 이유가 있었습니다.”
“이유가 있었어?”
“네.”
발표 막바지.
“각자 정부에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한 마디씩 해보시지요.”
장관이 힘을 줬다.
“제가 모두 해결하겠다는 약속은 차마 못 드리겠지만, 힘이 닿는 선에서 최대한 노력해보겠습니다.”
이에 CEO들이 돌아가며 한마디씩 하는데 크게 부각되는 내용은 없었다.
마치 사단장이 일개 병사를 세워놓고 군부대 발전을 위해 문의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해보라는 것과 마찬가지인 상황이었다.
“자, 유태연 대표님의 발언을 마지막으로 간담회를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태연이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저는 게임물 관리 위원회와, 게임 산업 진흥 법률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
게임 회사 CEO들이 크게 놀란 표정을 짓는다.
‘설마……?’
모두 짐작 가는 게 있었던 것이다.
태연은 거침없이 내질렀다.
“현재 게임법은 게임물관리 위원회, 약칭 게등위의 심의를 받지 않고 유통하는 것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태연의 눈이 매섭게 번뜩인다.
“그런데 사실 이와 같은 심의 제도는 과거 헌법재판소에 의해 위헌 판결이 난 전례가 있습니다. 국가가 출판물을 검열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게임은 유해 매체라는 인식 때문에 정부에서는 이 문제점을 분명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눈감아주고 있습니다. 왜냐면 그래야 아이 가진 부모님들이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억눌린 신음이 터져 나온다.
“여기에서 파생된 또 하나의 문제가 있죠. 바로 셧다운 제도입니다. 이는 미성년자들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자유 민주주의 국가에서 나온 법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악법입니다. 미성년자는 내 돈 주고 산 제품을 마음대로 취급하지도 못합니까? 우리가 후진국입니까?”
태연에게서 찬바람이 쌩쌩 몰아친다.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은데, 장관님과 이 간담회를 지켜보고 있을 정부 부처의 도움을 바라는 마음으로, 딱 한 가지만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침 넘어가는 소리조차 들릴 만큼 고요한 간담회장.
태연은 당당하게 요구사항을 이어갔다.
“몇 년 전, 게임물 관리 위원회는 수십억의 혈세를 투입해서 게임물 자체 등급 분류 통합 관리 시스템을 구축했고, 재작년 이미 시스템 구축이 끝난 상태입니다. 그러나 이 시스템은 전혀 작동하지 않았고, 혈세는 증발해 버렸습니다.”
웅성임이 커진다.
다들 그런 일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눈치였다.
“처음 듣는 이야기인데…… 그런 일이 있었나요?”
“지상파 뉴스에서도 보도되었는데 어찌 된 일인지 조용히 묻혀 버린 사건이었습니다. 하지만 기록은 분명 남아 있으니 확인이 어렵지 않을 겁니다.”
정부 부처의 사람이 황급히 정보를 찾아보니, 그런 일이 실제 있었노라는 답변을 준다.
장관의 얼굴이 심각하게 굳어졌다.
“프로그램 구축을 용역 업체를 선정해서 진행했다는데, 엉터리 시스템을 만든 업체는 게등위로부터 어떤 배상도 요구 받지 않았다고 합니다. 왜냐면 사전에 배상 요구 금지 각서를 받아뒀기 때문입니다.”
“허어……!”
“아니, 그런 일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일투성인데 정부는 조용합니다. 게등위는 여전히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며 대한민국 게임 업계를 병들게 하고 있습니다.”
“........”
“심의 기준, 사후 관리, 등급 분류에 대한 기준과 과정은 소비자인 유저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투명해야 하고 공개적이야 합니다. 그러나 누구도 이를 알지 못하며, 밀실 심사는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태연이 으르렁거렸다.
“한마디로 말해 엉망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게임 산업 발전에 있어 암적이고, 해로운 존재일 뿐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말이 좀 심하…….”
“21세기 대한민국에 밀실 심사와 출판물 검열이라니요?”
“…….”
장관은 입을 다물었다.
‘여기서 말 한번 잘못하면…….’
벌써부터 간담회 이후의 여론이 걱정될 지경이었다.
할 수 있는 것은 입을 꾹 다물고 있는 것뿐!
“특히 혈세 횡령은 굉장히 심각한 사안입니다.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났던 문제는 더 심각한 문제입니다. 대한민국 게임…… 아니, 콘텐츠 시장의 발전을 위해 진상 조사를 철저히 해줄 것을 요청합니다.”
간담회는 얼어붙은 분위기 속에 끝났다.
“어이고…….”
여기저기서 한숨이 터져 나왔다.
“이놈의 대표가 아주 산불을 질러 버렸네. 그래서, 어떻게 할 생각이야?”
“대기업 대표가, 무려 장관이 주최하고 테크 대기업 CEO들이 모인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불을 질렀으니 언론과 유저들이 들고 일어설 겁니다.”
태연이 작게 미소 지었다.
“특히 유저들이 가만히 있지 않겠죠. 다들 아시지 않습니까? 무언가에 미쳐 있는 자들의 단합, 행동력이 얼마나 무시무시한지.”
[넥플 유태연 대표. it ceo 간담회 에서 게등위 혈세 횡령 논란 점화!]
[게임산업 진흥 법률 시대를 역행하는 악법! 특히 셧다운 제도는 미성년자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위험한 행위! 강렬 비판!]
언론부터 후끈 달아올랐다.
너도나도 간담회 기록들을 쏟아냈는데 대부분이 태연에 대한 이야기들이었다.
이 문제에 대해 오래전부터 불만을 가지고 있던 수많은 유저, 게임 커뮤니티에서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크으, 역시 태연이 형. 누가 몰살의 유태연 아니랄까 봐, 넥플 내부 정리 끝내고 정부에 칼을 세우는구나!]
[이 새키들, 그렇게 난리를 쳐도 회의록 공개도 안 하고 계속 밀실 심사에…… 이제는 혈세 횡령까지? 놀랍다 정말.]
[확실히 대기업 대표가 총대 메고 나서서 지르니 유저, 렉카 뮤튜버들과 다르게 파급력이 어마어마하네.]
[글로벌 서버에서는 7세부터 12세 게임인 게 저새키들 심위만 거치면 성인 게임으로 분류됨. 그런데 그 기준도 굉장히 이상함.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라 진작 족쳤어야 됨.]
인터넷 커뮤니티 온종일 뜨겁게 달아올랐다.
뿐만 아니라 직장인 커뮤니티, 특히 게임 업계에서도 현직 개발자들이 온갖 불만 사항을 쏟아냈다.
민원이 폭발하자 게임 등급물 관리 위원회에서 공식 사이트를 통해 공지를 올렸다.
내용을 축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며칠 전부터 똑같은 민원이 수백, 수천 통 넘게 쏟아지고 있다. 대부분 똑같은 민원이다. 어디서 오더 받았는지 모르지만 자제를 부탁한다.]
이 내용이 더욱 불을 붙였다.
[오더? 정신 못 차렸구나? ㅋㅋ]
[생각하는 꼬라지가…… 지금 본인들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고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이해 못 하는 건가?]
[나도 민원 넣었는데……. 그러면 나도 어디서 오더 받아서 집단 행동을 하는 건가? 미친놈들이네.]
[게등위 문체부 산하 공공 기관 아님? 지들이 잘못해서 민원 쏟아지는 걸 저따구로 대응한다니……. 실화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