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사한 게임 개발자가 너무 유능함-113화 (113/147)

퇴사한 게임 개발자가 너무 유능함 113화

70. 테크 간담회

“오빠. 괜찮은 거지?”

이른 아침.

출근 준비를 도와주는 김윤아의 얼굴에 걱정이 가득했다. 태연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청문회도 아니고, 말 그대로 간담회야. 업계에 이런 이런 이슈가 있으니 대표 여러분들이 신경 좀 더 써달라는 말을 하기 위한 자리.”

“알고는 있는데, 내가 알기로 그런 자리가 그냥 그렇게 단순하게 넘어간 적이 없어서…… 특히 IT 대기업인 넥플에 가장 많은 공격이 들어올 것 같아. 이렇게.”

그녀가 눈을 부릅뜬다.

“너희들, 내가 눈 똑바로 뜨고 감시하고 있으니 알아서 기어!”

“하하하!”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모습에 태연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뭐야, 나 진지하거든?”

“걱정 마. 언제 어디서 누가 어떤 공격을 해와도 날 무너뜨릴 수는 없어.”

그것은 각오와도 같았다.

“오히려 하고 싶은 말은 내가 많지.”

* * *

미래 노동 시장 연구회 위원들을 비롯, 주요 테크 기업 최고 경영자들이 전원 참석했다.

‘장관 부르는데 안 올 수가 있나.’

가장 돋보이는 사람은 넥플 대표이사 자격으로 참석한 유태연.

테크 CEO들은 타 기업들과 비교해 나이가 젊은 편이지만 그럼에도 대부분 50대 중년인들이었다. 그에 비하면 키도 훤칠하고, 단단한 근육질에 정장이 굉장히 잘 어울리는 미남자인 태연은 이질적인 존재라 할 수 있었다.

더욱이 요 근래 언론에서 굉장히 자주 거론되는 이슈메이커가 아닌가?

‘젊은 사람이…… 분위기가 심상치 않네.’

‘직접 보니 인물이 굉장하군.’

‘카리스마가…….’

잠시 후 고용노동부 장관이 등장했고, 상석에 앉아 회의를 주도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간담회라는 이름으로 대한민국 주요 테크 기업 CEO 여러분을 초청한 이유는…….”

이태영 이사의 추측이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요 근래에 굉장히 이슈가 되고 있는 사고를 알고 있겠죠?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문제에 대한 대책을 논의하고 강구하기 위함이 첫 번째 이유입니다.”

사각사각.

펜이 종이를 긁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다들 부지런하게 필기하는 가운데 태연은 장관의 모든 말을 뇌리에 저장하고 있었다.

“두 번째 이유에 대해서는 잠시 후 이야기를 하도록 하고…….”

슥, 고용노동부 장관의 시선이 네로 소프트 대표이사를 향한다.

얼마 전 발생한 투신자살 사건이 일어난 곳이기도 했다.

“네로 소프트 김경준 대표님.”

“……네. 말씀하십시오.”

“하고 싶은 말 없습니까?”

“…….”

김경준.

대한민국 게임 신화. 신화 온라인의 총괄 프로듀서이며 그 공을 인정받아 간부, 대표이사 자리까지 올랐다.

현재 네로 소프트의 경영은 디렉터 출신 대표인 김경준이 담당하고 있다.

“일단, 물의를 끼쳐 죄송하다는 말씀부터 드리겠습니다.”

그는 일어서서 정중히 고개를 숙여 보였다.

‘공기가 무겁군.’

남 일이 아니다.

넥플에서도 언제 비슷한 사고가 벌어질지 모르니 마냥 그를 안 좋은 눈으로 보거나 탓할 수도 없는 일이다.

‘네로 소프트는 대표이사보다 창업자인 의장이 영향력이 막강한 곳이지.’

다른 곳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지만 최소한 대표이사의 권한을 존중해주는 척이라도 한다.

네로 소프트는 다르다.

창업자인 백정호 의장과 그 가족의 힘이 막강한 지위다.

‘대표이사가 사실상 허수아비라는 의견도 많지.’

부사장을 비롯, 주요 부처에 배정호 의장의 부인과 그 혈족이 차지하고 있다.

한마디로 김경준은 사건사고가 유난히 많은 네로소프트의 대표 총받이라는 것이다.

‘불쌍한 사람이군.’

“자세한 당시 정황을 설명드리자면…….”

한때 대한민국을 대표했던 스타개발자 김경준.

당시 신화 온라인은 한국 게임 판도를 완전히 바꿔놨다. 지금은 원흉으로 지목받고 있다지만 그가 게임 개발자로서 놀라운 일을 해냈다는 사실만큼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한다.

그랬던 인물이 진땀을 뻘뻘 흘리며 자사에서 벌어진 투신자살 사건과 관련, 테크 경영자들과 고용부 장관, 정치인들이 보는 앞에서 사건 브리핑 중이다.

“회사 내 부조리 센터가 제대로 가동하지 못했고 또한…….”

내부의 치부를 낱낱이 드러내야 한다.

여기서 조금이라도 숨기면 매섭게 물어뜯길 것이다.

‘사실 저런 일이 네로 소프트에서만 있는 일은 아닌데…….’

사람이 모이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발생할 수 있는 부조리였다.

어쩌다 보니 네로 소프트가 이 모든 부조리들을 짊어지게 됐다. 지금 이 자리는 정부가 자신들이 일을 제대로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쇼에 지나지 않는다.

‘김경준 대표는 쇼의 희생양이다.’

물론, 그가 억울하다는 건 아니다.

대표로서, 그 모든 일은 그가 책임져야 할 일임은 분명하다.

‘이번 일이 끝나면 대표직에서 사퇴할지도 모르겠군.’

“죄송합니다. 이미 피해자 유족들에게 몇 번이나 사죄했지만 그 정도로는 씻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지금 어떤 식의 조치를 하고 있나요?”

“당시 최고 담당자들을 징계했고 새로운 인력을 책임자로 임명했으며 매뉴얼을 수정하고 또…….”

이런저런 말을 열심히 던져보지만 고용부 장관의 표정은 어딘가 불만이 가득하다.

“결국 가장 눈에 띄는 조치는 담당자 징계인데…… 그 정도로 문제가 해결이 되겠어요?”

“…….”

“근본적인 부분부터 뜯어고쳐야죠.”

“죄송합니다.”

김경준 대표의 얼굴이 푸르딩딩해 보인다.

‘어쩌면 이번 일을 끝으로 사퇴할 수도 있겠어.’

눈빛이 죽었다.

이후 장관의 시선이 한 사람에게 멈췄다.

태연이었다.

“요즘 넥플의 행보를 보면 참 놀라울 따름이에요.”

모두의 이목이 태연에게 집중된다.

장관은 호감 가득한 얼굴로 묻는다.

“대체 뭘 어떻게 했기에 회사를 이렇게 바꿔 놓을 수 있었던 거죠?”

* * *

뭘 어떻게 했냐고?

‘딱히 대단한 걸 하지는 않았는데…….’

질문 의도는 명백하다.

‘노하우를 공유해 달라는 뜻이군.’

태연은 담담히 입을 열었다.

“저는 직장 내 괴롭힘을 방지하겠다는 목적으로 특별히 무언가를 하지는 않았습니다.”

“……?”

“그저 일에 더 집중할 수 있도록, 일에 스스로 동기부여 할 수 있도록 환경 조성에 힘을 썼을 뿐입니다.”

장관이 웃으며 권한다.

“바로 그런 경험을 공유받고 싶은 겁니다. 말씀 부탁드려도 될까요?”

김경준 대표 때와 달리, 입가에 미소가 가득하고 목소리도 따스하다.

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대략적으로나마 말씀드리겠습니다.

* * *

태연은 그동안 이런저런 일들을 꽤나 많이 해왔다.

자신의 인센티브를 포기하고 함께 고생한 팀을 위해 분배한 것.

업무상 비리와 관련된 수많은 정보를 계속 업데이트하고 이를 토대로 감사, 처벌을 가차 없이 행한 것.

일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복지를 더 나은 방향으로 개선하며 회사의 이익을 여러 방향으로 돌려줄 수 있도록 고심하는 것.

새로운 프로젝트를 통해 새 비전을 제시해 주는 것.

“이러한 모든 행위는 단 하나의 목적을 위합니다.”

“그게 뭔가요?”

장관의 물음에 태연이 대답했다.

“게임을 즐겁게 만들기 위함입니다.”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집단 내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 손 놓고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은 대개 두 가지 이유에서 비롯됩니다. 나서서 해결하고 싶지만 아무 권한이 없기 때문에, 혹은 아는 게 없어서 뭘 해야 할지를 모르니까. 게임 개발 이슈는 대개 그렇습니다.”

개발자 출신 CEO들이 공감하듯 고개를 끄덕인다.

네로 소프트 김경준 대표 역시 그랬다.

“저는 게임 개발에 있어서 제가 모르거나, 난해한 이유가 발생하는 것을 정말 싫어합니다. 모든 현상을 명확히 알고 통제하고 싶었습니다. 어쩌면 이런 성향이 대표이사로서 업무 수행 방식에도 영향을 끼친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굉장히 솔직한 발언이었다.

장관이 신기한 얼굴로 묻는다.

“정말 유태연 대표는 게임 개발의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건가요?”

“네. 그렇습니다.”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당당히 대답하는 태연.

“물론 저보다 더 좋은 결과물을 낼 수 있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것까지는 아무리 노력해도 따라잡기 힘들죠. 그렇다면 그들이 구사할 수 있는 모든 기술에 대해 명확히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그래야 그들의 가진 능력의 전부를 끌어낼 수 있을 테니까요.”

“전문 분야인 개발이 아닌 다른 분야에 대해서도 그렇습니까? 예를 들면 인사라던가, 총무라던가…….”

“물론 그렇습니다. 왜냐면 그 역시 개발의 일부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말만 그럴듯하게 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태연은 다르다.

말 많고 탈도 많던 넥플을 단시일에 ‘꿈의 직장’으로 바꿔 놓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대한민국 최대의 구인구직 사이트에서 실시한 설문 조사에서, 취업 준비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회사로 넥플이 꼽혀 큰 이슈가 된 적이 있었다.

유수의 대기업들을 모두 제치고 말이다.

태연은 몰랐지만, 태연의 기업 경영에 대해 수많은 이들이 집중적으로 분석하고 다루는 경우도 많아지는 추세였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노동부 장관을 비롯한 정부 부처, 그리고 이 자리의 CEO들이 태연을 남달리 보고 있는 이유였다.

넥플은 혼자서만 별나라의 기업 같은 행보를 보이고 있으니까.

그리고 그 비결이 당사자를 통해 처음으로 공개된 셈이다.

‘나도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아니, 일단 그 전에 이것부터 고민할 필요가 있다.

‘저런 게 가능한가?’

단순히 공부 열심히 하고 노력해서 될 문제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 모두들 고개를 저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감사를 철저히 하고 처벌을 강화하는 것만으로는 근원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겁니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장관님의 말씀에 깊이 동의합니다.”

자신의 발언에 태연이 힘을 실어주니 노동부 장관의 입가에 미소가 가득해졌다.

그가 당당히 말했다.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을 유태연 대표님께서 모두 말씀해 주셨군요.”

따스한 시선.

오죽하면 태연이 부담스러워 슬쩍 고개를 돌릴 정도였다.

장관은 마치 잘 자란 아들을 보는 듯한 표정이었다. 실제 나이 차도 그러했고.

“저는 넥플의 유태연 대표님의 경영 철학이 여기 있는 모두에게 좋은 이정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보여주는 식의 대처 말고, 기업 문화의 근본을 바꿔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생각이 많은 얼굴로 고개를 대답하는 CEO들.

“두 번째 주제는……”

* * *

간담회를 마치고 판교 본사 사옥으로 돌아왔다.

유진성 회장을 비롯한 임원들이 대 회의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거기서 무슨 이야기 했는지 말 좀 해봐라.”

“크게 두 가지 주제를 다뤘습니다. 직장 문화 개선. 그리고 채용 확대.”

두 번째 주제에 비하면 첫 번째는 그나마 나았다.

예상했으면서도 아니길 바랬던 주제.

태연은 당시 분위기를 전하기에 앞서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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