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한 게임 개발자가 너무 유능함 112화
69. 마스 게임즈(3)
근래에 게임 관련 스트리머들 사이에 단골 주제는 유태연이었다.
구독자 150만 명을 자랑하는 대형 게임 크리에이터, ‘게임탱크’ 최진석이 새로운 영상을 업데이트했다.
한 시간 만에 수십만 조회 수를 기록한 영상의 내용은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여러분! 넥플이 발표회를 한답니다! 세계적인 IT 기업들이 하는 그런 것처럼요!
정확한 정보는 공개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까지 넥플이 간접적으로 흘려 놓은 정보들이 많았다. 기사, 구인 구직, 업계에 퍼져 있는 내용 등등.
그것들을 토대로 작성한 정보는 꽤나 그럴 듯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가장 큰 기대작이라면 역시 판테온과 판데모니움이겠죠. 그런데 갑자기 왜 이런 식으로 발표회 규모를 키운 걸까요? 제가 생각해봤는데, 이게 엘크로스 북미 흥행과 깊은 관련이 있어요. 물 들어올 때 노를 젓겠다는 거죠!
바로 여기서 마스 게임즈에 대한 정보가 공개된다.
-북미 엘크로스의 놀라운 흥행 가도에 세계 최대의 게임 퍼블리셔 머큐리 게임즈가 있습니다. 그런데 더 깊게 파고 들어가 보면 마스 게임즈라는 곳이 나와요. 여기가 뭐 하는 곳이냐? 지금부터 그걸 정리해서 알려드릴게요.
엘크로스 북미 전담 운영을 위해 유태연이 세운 회사.
넥플과 머큐리 게임즈가 지분을 절반씩 가지고 있고, 태연이 한동안 북미에 머무르며 기반을 다졌다. 엘크로스 Re의 북미 서비스가 호평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앞으로 넥플에서 서비스되는 게임들은 이곳, 마스 게임즈를 통해 운영된다는데 특이 사항으로 머큐리 게임즈와의 합작 게임도 만들어질 예정이라네요.
단순히 회사의 비전만 좋은 게 아니라는 사실도 전한다.
-게임 운영자에 대한 대우가 남다르다고 합니다. 일단 직원들의 증언에 의하면 연봉, 대우가 좋은 건 물론이고 게임 개발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도 지원된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게임 운영자를 위한 천국이라고나 할까요?
이것이 바로 수많은 인재들이 주목하고 몰려드는 이유!
더 좋은 대우를 받고, 더 나은 미래를 거머쥐고자 하는 열망을 가진 인재들이 전국, 아니, 전 세계에서 지원을 하고, 이를 통해 좋은 인재를 뽑아 실무에 배치하니 서비스 질이 올라가는 효과가 발생한다.
-엘크로스 Re의 북미 매출이 갈수록 증가하는 게 단순히 마케팅을 잘해서가 아니라는 겁니다!
그래서 넥플의 게임들이 덩달아 기대를 받게 되고 흐름을 타게 되었다는 것.
-이때다 싶어서 제대로 관심 좀 받아보겠다는 게 바로 넥플이 발표회의 규모를 키운 배경이라는 겁니다!
이 같은 사실이 뮤튜버, 게임 기자들의 취재 등을 통해 상세히 전해지며 관심이 더 크게 몰린다.
넥플 발표회와 마스 게임즈.
이와 관련해 직장인 커뮤니티 앱, 갈대나무 숲에서 다음과 같은 글이 올라왔다.
제목 : 넥플 게임 운영 본부 직원입니다.
지금 마스 게임즈 파견 준비 중인데 조건이 굉장합니다. 연봉 1억 이상에 집과 교통 지원. 물론 여기서 집은 파견 직원들이 함께 사는 숙소 개념이고 차는 통근 버스입니다만 그게 어딘가요?
더 중요한 건 근태에 따라 마스 게임즈 정규직 전환이 가능하다는 건데…… 회사에서 미국 비자 문제와 영주권까지 해결해 주겠다는 겁니다. 이것 때문에 지원자가 몰리는 중입니다. 물론 하고 싶다고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대표님과 본부장님들이 정하는 거지만…… 아무튼 말뿐이 아니라 정말 게임 운영자에 대한 인식 자체를 바꿔주고 있는 게 피부로 와닿네요.
저도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 미친 듯이 게임 개발 공부 중입니다. 이것도 회사에서 프로그램을 지원해 줘요.
넥플에 있기를 잘했습니다.
전 게임 운영자로서 끝을 볼 생각입니다.
꿈을 가진 게임 운영자 지망생분들, 넥플에 도전하세요.
처음에는 진실 여부에 대해 말이 많았다.
조건들이 너무 터무니없이 좋았던 탓이다.
하지만 미국 파견 근무가 결정된 또 다른 직원들이 등장하며 사실이 확정됐다.
해당 게시물은 크게 이슈가 됐고 인터넷에 빠르게 퍼져 나갔다.
그 여파는 넥플 인사팀에 고스란히 닥쳐왔다.
* * *
“으아, 지원 서류가 끊이지 않아!”
“아니, 우리 나라에 게임 운영자 지망생들이 이렇게 많았어?”
“지망생뿐만 경력자도 굉장히 많아요! 심지어 다른 직군에서도……!”
특정 직군에서만 검토가 불가능할 정도로 서류가 몰려오는 건 결코 흔치 않은 일이었다.
“안 그래도 요즘 과도한 업무 때문에 스트레스 받고 있는데…….”
“일복 터졌네 아주…… 에효.”
넥플의 게임이 잘되고 명성이 올라가면서 지원자들이 더 많아졌다.
“이걸 언제 다 살펴보냐.”
“국내는 그렇다 치고, 해외에서 왜 지원을 하는 거야? 미쳤어 아주…….”
잘하면 굉장히 좋은 조건에 미국에 보내주고 성과에 따라 해당 회사에서 계속 근무할 수 있도록 여건을 봐준다니 난리가 났다.
아메리칸 드림을 이 기회를 통해 이뤄보겠다는 욕망이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분출되고 있었다.
‘나나 좀 보내주지.’
‘나도 미국 가고 싶은데.’
‘억대 연봉의 뉴요커라…… 나부터 하고 싶다.’
‘우리에게는 기회 안 주나?’
꿈은 이루어진다!
인사팀을 방문한 태연이 말했다.
“잠시 주목해 주세요.”
쏟아지는 시선.
“박정연 씨, 유지한 씨.”
“네!”
“넵!”
단발의 미녀와 정장 차림의 미남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정연 씨가 하버드, 지한 씨가 스탠포드를 졸업했죠?”
“네!”
“그렇습니다!”
태연은 바짝 긴장한 두 사람을 보고 작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누가 보면 군기 잡는 줄 알겠어요. 여기 그런 곳 아니니 어깨에 힘 좀 빼고 긴장 풀어요.”
“네, 네에에…….”
“알겠습니다!”
억지로 힘을 빼보지만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존경하는 최고 상사인만큼 어려움도 컸기 때문이었다.
“두 분은 각각 구글과 모건스탠리에서 근무한 전적이 있으시고…… 혹시 다시 실리콘 밸리와 뉴욕으로 출장 갈 생각 없어요?”
“……?!”
두 사람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방금 전까지 장난삼아 이야기하던 게 실제로 이루어지려는 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마스 게임즈 인사 관리를 해줄 사람이 필요해요. 제가 찾아보니 한국, 미국 문화에 능통하고 넥플에서 인사고과가 굉장히 좋은 사람이 두 분이더라고요. 평도 굉장히 좋았고요.”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니다.
태연이 보기로 종합적인 상태창 능력치가 두 사람이 최상급이었다.
“억지로 보내려는 건 아니에요. 사람이 없어서 임시로 땜빵하려는 것도 아니고. 두 분이라면 저를 대신해 마스 게임즈 아메리카. 두 지부의 인사 관리를 굉장히 잘 해줄 것 같아서 하는 제안이에요.”
그 말인즉.
‘우리를…….’
‘키워주겠다는 거야!’
시선을 마주친 두 사람이 힘차게 대답했다.
“하겠습니다.”
“기회 주시면 몸이 부서져라 일하겠습니다!”
“더 고민해 봐도 되는데…….”
“아니요. 결정했습니다.”
“무조건 가겠습니다! 보내주십시오!”
쩌렁쩌렁 울리는 두 사람의 목소리에 태연이 미소 지었다.
“인수인계 준비 마치는 대로 제 업무실로 찾아와요.”
태연이 나가자 두 명이 비명을 지르며 서로를 끌어안고 방방 뛰었다.
다른 것보다, 존경하는 태연으로부터 인정받고 도약의 기회를 제공받았다는 것이 기뻐서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부럽다.”
“나도 영어 열심히 할걸…….”
둘을 지켜보는 총무과 사람들의 얼굴에 부러움이 가득했다.
* * *
상대를 눈으로 직접 봐야지 상태창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서 태연은 부지런히 판교 본사와 강남 개발실을 돌아다니며 파견자 리스트를 채워갔다.
‘인사 평가, 업무 역량뿐만 아니라 나에 대한 호감도도 높은 사람이어야 해.’
상태창에는 공통적으로 호감도가 표시된다.
지금까지 파견을 확정 지은 이들은 10점 만점에 10점을 모두 채운 이들이었다.
‘나에 대한 호감과 신뢰가 기본 바탕에 깔려 있어야 믿고 함께 일을 진행할 수 있어.’
기준을 모두 충족하는 인재를 찾는 게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대한민국 IT업계 중 규모가 가장 크고 인재도 많기로 유명한 곳이 넥플이었으니까.
* * *
넥플 인력이 본격적으로 미국으로 파견되기 시작하니 업계에서도 마스 게임즈를 주목했다.
[또 한 번 대형 사고 칠 준비하는 넥플. 마스 게임즈로 미국 시장 진출에 박차를 가한다.]
인터뷰가 쏟아졌다.
무려 세계적인 머큐리 게임즈와의 합작 회사가 아닌가?
이 독특한 회사의 설립자이자 총괄이 태연이라는 점도 관심사였다.
이미 넥플 대표 이사를 비롯, 많은 일을 맡고 있지 않은가?
마스 게임즈의 비전은 무엇인가?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가?
전 세계 수많은 이목이 태연에게 쏠렸다.
* * *
외부 이슈와 별개로 게임 개발은 순탄하게 이뤄지고 있었다. 덧붙여 태연이 가장 좋아하며, 또 굉장히 신경 쓰는 업무이기도 했다.
‘난 역시 게임 개발이 체질에 맞아.’
수백, 수천억이 오가는 거창한 일보다, 게임 아이템 하나 만들어 넣는 것이 더 좋다.
그것이 아무 이상 없이 한 번에 작동되었을 때의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결재서류보다 캐릭터 대화가 훨씬 재미있고, 임원들과의 회의보다 개발 회의가 즐겁다.
그래서.
“대표님. 급히 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외부 일로 이렇게 갑자기 불려 나갈 때가 정말 싫어진다.
태연은 함께 회의하던 이들에게 말했다.
“기획팀장이 회의 진행하고 회의록 정리해서 공유해 주세요.”
회의실을 나서며 사업총괄, 이태영 이사에게 물었다.
“이사님이 직접 움직이시다니…… 이게 무슨 일이죠?”
“고용노동부 장관에게서 연락이 왔다.
태연이 순간 자리에서 멈춰 섰다.
“누구라고요?”
“고용노동부 김용환 장관.”
“……직접요?”
“그래. 내가 직접 통화했다. 대한민국 주요 IT 기업 CEO 간담회를 개최할 예정이니 참석해 달라고 하더구나.”
“이런 일이 이전에도 있었나요?”
“아니, 처음 있는 일이야. 그래서 나도 좀 당황스럽다.”
“소집 이유는 짐작하십니까?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짐작 가는 거라면 몇 개 있지.”
근래 IT업계에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몇 가지 이슈가 있었다.
판교 모게임사 사옥에서 발생한 투신자살 사건.
20대 후반의 여성이었고, 직장 내 괴롭힘, 성추행 등에 시달려 온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 내 부조리 센터에 신고했는데 별다른 도움을 받지 못했다. 오히려 낙인만 찍혀 눈총을 샀다고 한다.
괜히 회사를 시끄럽게 만든다며. 혹은 유난 떤다며.
여성은 견디다 못해 유언장을 쓰고 자살했다.
그런데 이 문제가 트리거가 되었다.
갈대나무 숲 등.
다양한 커뮤니티에서 미투가 이어졌고 업계 전체가 소란스러운 형국이었다.
“넥플은 조용하지만 다른 곳은 말도 아니야. 내가 보기에 이 문제에 대한 대책을 강구해서 발표하고 실행하라는 게 소집 첫 번째 이유일 거야.”
“또 다른 이유가 있을 거라는 건가요?”
“뻔하지. 요즘 청년 실업 문제가 심각하잖아.”
“아, 설마…….”
“너희가 책임 좀 지라는 거지.”
“…….”
“내가 보기에는 이 두 안건은 반드시 올라올 테니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대표이사가 되니 별일을 다 겪게 되네요.”
“그냥 대표이사도 아니고 무려 대기업 대표이사잖아.”
“후우…….”
태연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