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한 게임 개발자가 너무 유능함 108화
68. 스타개발자 최종학(2)
돌아오는 길.
최종학은 고민했다.
‘넷펀즈 지분 2만 주에 연봉 4억부터 시작이라고?’
심지어 대표이사 자리.
조건이 좋아도 너무나도 좋다.
‘판데모니움 끝날 때까지 기다려주겠다잖아?’
정신이 아찔해질 정도로 엄청난 제안.
‘원래는 형과의 의리를 지키려고 했는데…… 이렇게 되면 또 이야기가 달라지지.’
태연도 말하지 않았나?
정말 좋은 기회라면 무조건 잡으라고.
‘본인이 넥플 대표이사가 아닌 상태에서 제안을 받았다면 승낙했을 거라고 했을 정도니…….’
끌린다.
그것도 굉장히!
당장에라도 정석환 의장에게 전화를 걸어 그 제안 받아들이겠다고 외치고 싶을 정도였다.
‘그래도 조금 더 고려해 봐야지.’
어두운 강남 거리 하늘을 올려다 본다.
‘형에게도 상의 좀 해보고…….’
너무 엄청난 제안이라, 지금 자신으로서는 멀쩡한 판단을 내리기 어려운 것 같았다.
* * *
“대표이사 제안이라.”
“나 어떻게 할까?”
“조건은?”
“2만 주, 연봉 4억.”
“1년 단위로 재계약이겠지?”
“그건 어쩔 수 없잖아. 내가 창업자가 아닌 이상에야 주식회사 대표이사 자리는 항상 실적을 내고 검증을 받아야 하는 자리인데…… 그건 형도 마찬가지 아니야?”
“그건 그렇지.”
태연의 태연한 얼굴에 최종학이 슥 물었다.
“말 나온 김에 묻자. 형은 지금 받고 있는 대우가 어떻게 돼?”
“연봉 6억.”
“주식은?”
“없어. 넥플 엔터테인먼트 조금 들고 있긴 하지만 그 지분도 대부분 유진성 회장님께 있고.”
“진짜?”
“응.”
“아니, 잠깐만……. 진짜? 연봉 6억이 전부야? 지금까지 형이 끌어올린 매출만 수천억에 이를 텐데……?”
혼란스러운 얼굴.
태연이 작게 미소 지었다.
“대표이사 제안 승낙하고 처음 계약서에 사인했을 때는 무언가 더 요구하기가 어려운 입장이었어. 원래 이 업계 대표이사 초봉 평균이 3, 4억 정도였고, 난 그 직전에 넥플 엔터테인먼트 투자를 받았잖아.”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러니 이제 알겠지? 네가 얼마나 엄청난 제안을 받은 건지.”
“……응. 정석환 의장이 정말 신경 써줬구나.”
“어떻게든 너를 넷펀즈 대표이사 자리에 앉히고 싶다는 뜻이기도 하지.”
“음…….”
“난 좋은 제안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다른 회사도 아니고 무려 넷펀즈야. 네로, 플레이 펀즈, 넥플과 함께 대한민국 4대 게임 회사 중 하나로 꼽히는 대기업.”
“음…….”
“그리고 넷펀즈는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곳으로도 유명해. 성향 자체가 진취적이야. 가장 먼저 모바일 시장에 도전해서 크게 성공한 곳이고, 지금은 소니, 마이크로 소프트, 닌텐도와 같은 독자적인 플랫폼 왕국을 개설하고 싶어 하지. 네 꿈과도 부합하잖아.”
“그렇긴 한데…….”
눈이 가늘어진다.
“형은 왜 그렇게 날 못 보내서 안 달이야? 나 붙잡고 싶지 않아?”
“나는 너에게 정석환 의장 정도의 제안을 해줄 수가 없어.”
“지금 당장이야 그렇겠지만 미래는 또 다를 수도 있잖아. 어쨌든 회사에서 엄청나게 신뢰를 받고 있는 CEO인데…….”
“미래가 어떻게 될지 알고?”
“음.”
“이런 기회는 흔치 않아. 난 너라면 지금 넷펀즈 대표인 김준환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잘 해낼 거라고 믿는다. 일단 넌 기본적으로 나보다 훨씬 엘리트잖아.”
“그게 무슨 상관이야? 현재가 중요하지.”
“기본 바탕이 다르다는 걸 말하고 싶은 거야. 경영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나와는 다르지. 넌 기업가 집안에서 태어났고, 국내 톱 클레스 대학에서 경영학을 배웠지. 머리가 좋아서 내가 가르치는 걸 금방 습득했어.”
“…….”
민망함에 음료만 들이켜는 최종학을 향해, 태연은 미소 지었다.
“난 어느 것도 강요하지 않을 거야. 무엇이 최선의 선택인지 알지 못하니까. 그건 오직 너만이 알 수 있지.”
“최선의 선택이라…….”
고개를 끄덕이며 최종학이 대답했다.
“결국 내가 알아서 해야 한다는 뜻이구먼. 알았어. 조언 고마워.”
태연은 자리에서 일어서는 최종학을 심유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과연 어떤 선택을 할지…….’
* * *
명칭 : ㈜ 넷펀즈
대표 : 김준환
시가 총액 : 8조 1,700억 원.
기업 규모 : 대기업.
“넥플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규모가 참 대단한 곳이란 말이지.”
턱을 괸 채 모니터를 바라보며 중얼거린다.
‘네가 이런 대기업의 대표가 될 수 있다고?’
거기서 정석환 의장과 추구하는 이상도 비슷하다니…… 더할 나위 없지 않나?
‘그런데 이런 곳의 주식 2만 주면…… 얼마야?’
급히 계산을 해보고 헛숨을 들이킨다.
“어마어마하네.”
넷펀즈 관련 최신 기사들을 검색해 본다.
[넷펀즈 김준환 대표. 성수동 모 기업 본사 건물 8,900억 원에 인수!]
[넷펀즈. 일본 NFT 플랫폼에 투자!]
[넷펀즈. 신생 게임사 와플 게임즈에 20억 투자.]
[넷펀즈. 신생 게임사 레드 클라우드 게임즈에 300억 투자.]
[넷펀즈. 신생…….]
“엉망이군.”
버는 건 없으면서 계속 돈만 쓰고 있었다.
주가라도 좋으면 모르겠는데…….
[넷펀즈. 연일 최저가 행진!]
클릭, 클릭.
기사 하나를 확인한다.
[신임 전략 기획 본부장 심유아 선임!]
“이 여자로군.”
김준환 대표로 하여금 조강지처를 버리고, 치마폭에 감싸 은나라 달기 마냥 넷펀즈를 뒤에서 흔들고 있다는 비선실세!
물론 소문뿐이지만, 직원들뿐만 아니라 내부 관계자들까지 입을 모아 하는 말이니 의심의 여지는 충분하다.
지금까지의 이해할 수 없는 투자, 스튜디오 정리 등의 행보가 실은 저 심유아 전략 기획 본부장에게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알고 보면 진짜 문제는 이런 게 아니라는 거지.’
현재 진행 중인 넷펀즈 신규 프로젝트 80% 모바일 게임이었다.
국내 게임 시장이 지나친 과금 유도의 수집형 모바일 판이 된 거?
알고 보면 다 넷펀즈 때문이다.
물론 경쟁사들도 크게 한몫하긴 했지만 적어도 모바일 시장만큼은 넷펀즈가 최강자였다.
‘내 게임의 플레이 방식과 비즈니스 모델도 넷펀즈 스타일에서 많이 따왔지.’
국내 모바일 시장만큼은 넷펀즈의 방식이 레퍼런스임은 누구도 부정 못 할 것이다.
‘그런 개발 스튜디오가 십여 개라는 거지?’
이 방식을 안착시킨 사람이 바로 정석환 의장이다.
철혈.
사실 이 외에 또 다른 별명이 하나 있다.
돈미새.
간단히 말해 돈에 미친 X끼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발매한 게임들 모두 그래픽과 내용만 조금씩 다를 뿐, 플레이 방식, 비즈니스 모델은 다 같았으니까.
‘소니, 닌텐도, 마이크로소프트, 스팀…… 이라.’
그런 기업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독자적인 플랫폼을 지닌 기업.
‘가능한가?’
이미 지나친 과금 유도의 수집형 모바일 게임으로 지금 위치에 도달한 기업인데.
문득, 무언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정석환 의장이 나에게 진짜 바라는 게 뭐지?’
단순히 김준환 대표가 망쳐놓은 회사의 정상화를 바라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런 걸 정확히 알아봐야겠군.’
* * *
강남 고급 일식집.
“제가 넷펀즈에서 정확히 무엇을 해주기를 원하는지, 의장님의 의중을 알고 싶습니다.”
정석환 의장은 허허 웃으며 말했다.
“간단히 말하면 유태연 대표 같은 일을 해주기를 원하는 거죠.”
“자세히 풀어 말씀해 주십시오.”
“우리 회사가 어떤 회사입니까?”
“게임 회사죠.”
“세부적으로 파고들면?”
“모바일 게임 전문 회사죠.”
“바로 그겁니다.”
그는 당당히 말했다.
“저는 넷펀즈가 세계 제일의 모바일 게임 왕국이 되기를 원합니다.”
아, 이걸 먼저 들었어야 했구나.
정석환 의장은 자신의 꿈을 설파했다.
“유태연 대표는 대표이사직을 수행하며 게임 디렉터로서 히트작을 만들고 있지 않습니까?”
“네.”
“똑같이 해주시면 됩니다. 대표이사로서 회사를 경영하며 디렉터로서 게임을 만들어 주시면 됩니다.”
눈빛이 반짝인다.
“최종학 피디가 넥플에서 만들어서 대박 친 그 모바일 게임 있지 않습니까? 바로 그런 거요.”
“아…….”
“6,000억 대박까지는 바라지 않습니다. 물론 그렇게 해주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제가 현실감각이 떨어지는 사람이 아닙니다. 허허허.”
“…….”
“최종학 피디가 만든 모바일 게임을 실제로 플레이해 보고, 매출 현황을 파악하며 생각했어요. 아, 내가 원하는 게 바로 이런 거였구나!”
그의 눈동자에 야망이 보인다.
“전권을 줄게요. 힘을 실어줄 테니 개발 중인 모바일 게임에 적극 관여해서 성공적인 길을 갈 수 있도록 이끌어 주세요. 지금 유태연 대표가 하는 것처럼!”
“하하…….”
최종학은 웃고 말았다.
‘이제 보니 2만 주와 4억 연봉이 엄청난 게 아니었네.’
그 정도 대우에 들떠서 좋아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대답 됐어요?”
“네. 말씀 감사합니다!”
“자, 지지부진한 이야기 그만하고 한껏 먹어 봅시다!”
“네. 그렇게 하죠.”
“하하하!”
정석환 의장의 눈빛이 굉장히 따스하고 정감이 가득했다.
최종학이 이미 자신의 사람인 것을 확신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최종학은 심정이 복잡했다.
‘모바일이라…….’
‘같은 꿈을 꾸는 게 아니었군.’
자신이 넥플에 와서 모바일 게임을 만들었던 이유는 별거 없었다. 그래야 만들고 싶은 거 만들 수 있도록 투자해 준다고 했기 때문에.
그리고 처음으로 디렉팅을 해볼 수 있는 기회여서.
모바일 게임을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계속 모바일만 건드리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난 콘솔용 트리플 A게임을 만들고 싶었으니까.’
그런 걸 만드는 전문 회사를 세우고 싶었다. 그러자면 일단 게임으로 돈을 벌어 최대한 많은 투자를 이끌어내야 했다.
한 마디로, 모바일 게임을 만든 것은 꿈을 위한 타협이었던 것이다.
‘내가 넷펀즈 대표이사가 된다면……?’
영영 꿈에서 멀어지게 된다.
넷펀즈가 추구하는 페이 투 윈 모바일 게임을 양산해야 한다. 그 공장장이 되어 품질 검수나 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도 돈은 많이 벌 거란 말이지.’
정석환 의장은 통이 큰 사람이다.
원래 첫 대표 선임에 많은 것을 줄 수 없는 법인데도 2만 주 배당을 약속했던 게 그 증거였다.
이건 태연조차도 받지 못했을 정도로 큰 대가였다.
첫 임기 1년을 잘 보내고 계약 갱신에 성공하면 그 다음부터는 받는 대가가 크게 뛸 것이 분명하다.
‘그래도…….’
어두운 밤하늘을 바라본다.
‘내 꿈은…….’
꿈꾸는 소년은 장성해 어른이 됐지만, 여전히 그 눈빛만큼은 반짝거리고 있었다.
* * *
“거절하겠습니다.”
“…….”
정석환은 굉장히 놀란 표정이었다.
충격을 수습하지 못해 더듬거리던 그는 물을 몇 잔이나 마시고서야 겨우 입을 뗄 수 있었다.
“아니, 어째서…….”
“제가 만들고 싶은 것은 트리플 A게임이거든요. 혹시 갓 오브 워라던가, 라스트 오브 어스 같은 게임 해보셨어요?”
“아, 아니…… 말만 들어봤지 해보지는 못했…….”
최종학은 말없이 미소 지을 뿐이었다.
한참을 고민하던 정석환 의장이 말했다.
“생각이 바뀌면 언제라도 연락줘요. 최종학 피디하고의 인연을 겨우 이 정도의 일로 끝내고 싶지는 않군요.”
“네.”
그렇게 대화가 끝났다.
이후 최종학은 태연을 찾아가 말했다.
“형. 나 거절했어.”
“……왜?”
“추구하는 방향이 다르더라고. 그쪽은 모바일 왕국을 건설하고 싶어하던데?”
“아, 너에게 실패하지 않는 공장장 포지션을 요구했군. 하지만 너는 갓 오브 워. 이런 트리플 A 게임을 만들고 싶어 하잖아.”
“역시 형하고는 말이 통하네. 나보고 넥플에서 만든 모바일 게임 것들을 쭉쭉 뽑아내 주면서, 지금 개발 중인 다른 신작 스튜디오의 게임들도 그런 게임으로 양산해 주기를 원하더라고.”
“음, 어찌 보면 네 능력에 적합한 포지션이긴 하군. 너라면 아마 누구보다도 훌륭한 공장장이 되었을 거야. 그게 나쁜 건 아니지. 그리고 정석환 의장이라면 그런 너를 크게 아끼며 엄청난 부를 안겨줬을 테고.”
“그래도 어쩌겠어? 내가 추구하는 건 그게 아닌데. 아무튼 그렇게 됐어.”
후련한 얼굴로 기지개를 켜는 최종학.
물끄러미 바라보던 태연이 물었다.
“그러면 이번에는 내가 색다른 제안을 해볼까?”
“응?”
“너, 마스 게임즈 대표가 돼라.”
“마스…… 그건 또 뭐야?”
이 건은 아직까지는 임원들만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태연은 간단히 설명했다.
“넥플과 머큐리 게임즈의 합작 회사.”
“……뭐?”
“지금은 내가 만든 게임들의 북미 유지 보수를 전담하는 회사지만, 추후 두 게임사의 합작 오리지널 게임 개발을 전담하는 곳으로 성장할 거다.”
“……!”
소스라치게 놀라는 최종학에게 태연은 아무렇지 않게 물었다.
“이런 곳인데, 할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