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한 게임 개발자가 너무 유능함 107화
68. 스타개발자 최종학(1)
“잠깐만요. 저 전화 좀…….”
종학이 휴대폰을 들고 잠시 자리를 떠나자 박명훈이 소곤거렸다.
“요즘 엄청 시달리나 보네요. 역시 스타 개발자!”
홍민석이 씩 웃으며 한마디 한다.
“박명훈 CD님은 그런 일 없다는 듯 말씀하는군요.”
“네? 전 저렇게 시달린 적 없는데요?”
“에이, 저번 주 강남 사거리 카페에서 네로 소프트 관계자와 커피 마시는 거 봤는데요.”
“……!”
흠칫하는 박명훈.
“어제는 판교역에서 조금 떨어진 스타벅스에서 플레이 펀즈 관계자와 만났…….”
“스톱!”
급히 말문을 막아보려고 했지만 이미 늦었다.
함께 식사하던 이영애, 한설아 등의 사람들이 비난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자기도 스카우트 제안 받고 있으면서 그런 일 없다는 듯 동료를 중상모략이나 하고…….”
“와, 박명훈 CD님. 그렇게 안 봤는데…….”
“아, 아니 그게……!”
진땀을 흘리던 박명훈은 한숨을 푹 내쉬며 손을 흔들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못된 놈이었습니다.”
“뱀심 정말 극혐이네요.”
“사람 진짜 못 됐다.”
“네네. 얼마든지 욕하십쇼. 죄를 졌으니 감수해야지…….”
잠시 후 최종학이 돌아와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다.
“뭐야, 분위기 왜 이래요?”
담담한 한마디.
“정석환 의장이 한 번 보자네요.”
그 여파는 남달랐다.
“정석환 의장이라면 넷펀즈 창업자 말하는 거 맞죠? 방금 그 사람이 전화한 거예요? 종학 피디님에게 직접?!
“와, 정석환 의장이 전화를 할 정도라니……!”
한국 게임 업계의 거물 중 한 명.
그를 거론하는 최종학은 퉁명스럽기 그지없다.
홍민석이 관심을 보인다.
“왜 보쟤요?”
“왜겠어요? 저보고 와서 게임 하나 만들어달라는 소리 하려는 거겠지. 요즘 급하잖아요.”
사실 게임 업계 전체가 불황이긴 하다.
신작을 발매하는 족족 실패하고 있었으니까.
넥플만 빼고.
홍민석이 물었다.
“어떻게 할 거예요?”
“뭐…… 일단 만나보기는 해야죠. 어쨌든 그만한 사람이 직접 움직이는 건데.”
대화하는 이들을 보며 태연은 생각했다.
‘정석환 의장이라…….’
* * *
며칠 전, 태연은 정석환 의장과 사석에서 만남을 가졌다.
풍채 좋은 허허로운 인상.
얼핏 보면 보살을 연상케 한다.
그러나 전해지는 소문은 남다른 인물이었다.
‘철혈.’
오늘날, 넷펀즈를 4대 게임 회사 수준으로 키운 인물이었다.
유진성 회장 못지않은 거물이라는 것이다.
“만나줘서 고마워요. 실은 유태연 대표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이렇게 미팅을 요청했어요.”
그는 바로 본론을 꺼냈다.
“넷펀즈 대표이사 자리를 맡아줬으면 좋겠어요.”
예상했던 내용이었다.
“저는 이미 넥플의 대표입니다.”
“평생 그 회사에서만 있을 건 아니잖아요?”
“…….”
“지금 당장 와달라는 게 아니에요. 물론 그게 가능하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태연의 얼굴에 어떤 표정 변화도 없는 것을 보고 빠르게 말을 바꾼다.
“그게 아니라도 시간과 기회는 얼마든지 있는 법 아니겠어요? 저에게나, 유 대표에게나.”
그는 목을 축이고 본격적인 설득을 이어갔다.
“유 대표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을 거예요. 국내 최고의 대우를 해주겠어요.”
그는 자신의 비전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넷펀즈를 세계적인 게임 회사로 만들고 싶어요. 단순히 플랫폼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엑스박스, 닌텐도, 플레이스테이션, 스팀 같은 기업처럼 독자적인 플랫폼과 게임 기기를 구축해서 콘텐츠 왕국을 만드는 꿈을 꾸고 있어요.”
그는 열변을 토한다.
“저 혼자는 불가능하지만, 유 대표가 힘을 실어준다면 이룰 수 있다고 봐요!”
그러나 태연은 무반응이었다.
힘이 빠진 얼굴로 묻는다.
“유 대표는 이미 마음이 확고하군요.”
“그렇습니다.”
“넥플이 대체 무엇을 약속했기에…….”
태연은 대답 대신 물을 한 잔 마셨다.
그것까지는 말하고 싶지 않다는 뜻이다.
“알겠어요. 더 이상은 의미 없는 대화일 것 같군요.”
그는 자리에서 일어서는 순간 예약한 음식이 나왔다.
식당 종업원이 당황했지만 그는 말없이 자리를 떠났다.
어쩔 줄 몰라 하는 종업원에게 태연이 말했다.
“음식 세팅 부탁드립니다.”
* * *
점심 식사 후 최종학이 개인 면담을 요청했다.
“형 혹시 정석환 의장 만났어?”
“응. 이미 이야기 끝냈다.
“무슨 이야기 한 거야?”
“대표이사로 와달라는 이야기.”
“거절했나 보네. 하긴, 머큐리 게임즈 제안조차도 거절한 양반인데 무슨 제안을 받아도 성에 안 차겠지.”
그러면서 슬그머니 묻는다.
“솔직히 말해봐. 이번 미국 출장 때 머큐리 게임즈 부사장으로부터 어떤 수준의 제안까지 받았어?”
최종학은 형제나 다름없는 사이였다.
숨길 게 없다는 뜻이다.
“천만 달러 이상의 연봉에 머큐리 게임즈 지분, 집, 차, 비서…….”
어깨를 으쓱거린다.
“세계적인 IT 재벌로 만들어주겠다고 호언장담을 하더군.”
“와…….”
입을 쩍 벌리는 최종학.
“그런데 그 사람이라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아서…… 왜냐면 이미 세계적인 부자니까.”
“하긴, 넘사벽 시가총액의 머큐리 게임즈 공동 창업자라는데…….”
최종학이 묘한 웃음을 띠며 묻는다.
“나 어떻게 할까? 사실 넷펀즈 대표이사라면 굉장히 좋은 자리잖아. 당장 가도 되는 게 아니라면 판데모니움 런칭 성공시키고 가도 될 것 같은데. 그러면 몸값도 훨씬 높아져 있을 테고.”
“그렇겠지.”
아직 마스 게임즈 대표직 제안을 꺼내지 않은 상태였다.
“나 가도 뭐라고 안 할 거지.”
“물론. 누가 봐도 좋은 자리니까.”
“정말 그렇게 생각해? 나 가도 섭섭해하지 않을 자신 있어?”
“너와 내 관계가 그깟 일로 서운해질 정도로 얇지는 않잖아?”
그 말에 최종학이 씩 웃는다.
“그렇지. 우리는 피만 이어지지 않을 뿐 친형제나 다름없잖아!”
“만약, 내가 넥플 대표이사가 아닌 상태에서 그 제안을 받았다면 뒤도 안 돌아보고 승낙했을 거다.”
태연의 어조에 진심이 담겨 있었다.
넷펀즈는 국대 4대 게임회사로 꼽힐 만큼 거대하고, 정석환 의장은 맨손에서 그 기업을 일궈낸 시대의 거인이니까. 그 사람과 함께라면 너도 얻을 수 있는 게 많겠지.“
“그렇단 말이지? 흐음…….”
고민하던 최종학이 씩 웃는다.
“마음 정했어!”
태연은 굳이 묻지 않았다.
‘마스 게임즈 대표 자리보다 훨씬 좋은 기회일 수도 있지. 마스는 이제 시작이지만 넷펀즈는 이미 거대한 기반을 다진 곳이니까.“
* * *
최종학이 넷펀즈 정석환 의장과 만났다.
“처음 뵙겠습니다. 최종학입니다.”
“넷펀즈 정석환이에요. 갑작스러운 만남 요청에도 흔쾌히 응해줘서 정말 고마워요.”
식사가 시작됐다.
“요즘 어때요? 듣기로 넷펀즈에 새 프로젝트로 들어갔다던데…….”
“판데모니움이라고, 원래 태연이 형과 제가 같이 기획하던 게임이 있어요.”
“아, 저도 들었어요. 지금 유 대표가 직접 디렉팅 중인 판테온과 세계관을 공유한다죠?”
“맞아요. 만신전 판테온, 만마전 판테온. 두 세력이 처음에는 따로 독자적인 이야기를 진행하다가 어느 정도 물이 오르면 서로 크로스 오버시켜보자는 아이디어에서 시작된 게임이에요.”
“호오, 그러면 두 개의 게임이 나중에는 서로 콜라보레이션을 하게 된다는 건가요?”
“이건 아직 비밀인데…… 뭐, 의장님 믿고 말씀드려도 되는 거죠?”
“물론이죠!”
“라그나로크 오리진이라고, 또 하나의 독자적인 게임을 통해 두 세력이 본격적으로 맞붙게 되는 것을, 지상 세계의 종족들을 통해 보여줄 예정이에요. 신과 악마의 싸움에 필멸자들이 휘말리게 되며 벌어지는 이야기죠.”
상상을 초월하는 구성과 아이디어!
정석환이 황급히 물었다.
“그게 누구 아이디어죠?”
“태연이 형 아이디어죠. 제가 사실 그 회사에 계속 남아 있던 것도 라그나로크 오리진까지 만들어보고 싶었던 거였어요.”
“혹시 지금도 그 마음이 남아 있나요?”
“글세요. 아무래도 시간이 많이 지났으니…….”
말끝을 흐리며 씩 웃는 최종학.
거기서 희망적인 메시지를 읽은 정석환 의장이 이때다 싶어서 배팅을 시작했다.
“3자 배당으로 지분 2만 주를 줄게요.”
“……!”
게임 대기업 넷펀즈 지분 2만 주라고?
정신이 번쩍 드는 제안이었다.
“거기에 연봉 4억. 그런데 아시죠? 대표들은 모두 계약직이라 1년에 한 번씩 재계약을 하게 된다는 거.”
“네. 일종의 검증 절차 아닌가요?”
“맞아요. 1년의 과정을 보고, 문제가 없으면 연봉을 계속 올려줄 생각이에요. 최종학 대표가 섭섭한 기분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정석환 의장은 통이 큰 사내였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최종학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내부 사정은 들었을 거예요. 김준환 대표가 회사를 망치고 있어요. 내가 직접 스카우트를 했고 회사에 안겨준 이익도 있으니 어지간하면 끝까지 감싸고 싶었지만…….”
“힘들겠죠. 저도 들었어요. 김준환 대표. 지금 굉장히 심각하다던데요.”
“상상 이상이에요. 완전히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죠. 설마 그 사람이 그렇게까지 막 나갈 줄은 몰랐어요.”
힘들어 보이는 얼굴.
최종학은 내심 놀랐다.
‘소싯적 철혈이라 불리던 사람이 이런 표정을 지을 정도라니…….’
마음고생이 생각 이상으로 심하다는 뜻이리라.
“여기서 이런 말씀 드리기는 죄송하지만…… 아직 검증되지 않은 건 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디렉팅을 잘하는 것과 회사 경영을 잘하는 건 또 다른 문제라고 보거든요.”
최종학이 물었다.
“제 어디를 보고 영입을 결정하신 건지, 대답을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죠.”
정석환 의장이 미소 지었다.
“일단, 스스로의 부족한 부분들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고, 그로 인해 엄청난 제안을 바로 받아들이지 않고 망설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일이에요. 김준환 대표는 제가 제안했을 때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덥석 받았거든요.”
“아…….”
“사실 최종학 피디에 대해 레퍼런스 체크는 이미 끝마쳤어요. 개발 실력을 더나 내부 평가가 굉장히 좋더군요. 인망이 두텁고 용병술도 뛰어나고 자존심을 세워남을 무시하는 일도 없고…….”
그의 눈빛에 신뢰와 기대감이 반짝인다.
“초록동색이라, 유태연 대표에게 배웠다죠?”
“제 스승이죠. 사실 제 모든 것은 그 형에게서 나온 거예요.”
“그렇게 들었어요. 그리고 지금 유태연 대표의 행보를 보고 있으면…… 그 수제자인 최종학 피디도 충분히 믿을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답니다.”
“민망하면서도 정석환 의장님 같은 굉장한 분이 좋게 평가해 주신다니 기분도 좋고 그러네요.”
“정식으로 제안하죠. 최종학 피디님. 넷펀즈 대표이사직을 맡아주세요.”
“…….”
“당장 결정해 달라는 게 아니에요. 지금 진행 중인 프로젝트를 런칭한 이후라도 좋아요. 전 최종학 피디님 같은 인재를 얻을 수 있다면 그 정도 시간쯤은 충분히 인내하며 기다릴 수 있어요.”
“으음…….”
“기다릴 테니 진지하게 고민해 주세요.”
최종학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진지하게 고민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