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한 게임 개발자가 너무 유능함 105화
67. 해외 런칭(6)
정령사 키우기의 진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홍민석과 이영애 부부의 게임 프로그래밍과 기획에 대한 이해도가 생각보다 놀라웠고, 습득력이 빨랐던 덕분이다.
사실 이 부분은 충분히 예상했던 일이다.
원래 이런 일이 익숙한 이들이 아니던가?
그리고 업계 정상이라는 블리자드, 디즈니, 산타모니카 스튜디오의 중심에서 활약한 전적도 있었다.
알고는 있었지만 태연의 실전 과외를 통해 확실히 습득하게 된 수준이었다.
그런데 김윤아의 성장 속도는 예상하지 못했다.
“오빠. 이거 이렇게 하면 되는 거지?”
“으, 으응.”
팔찌의 힘 덕분에, 어지간한 일에는 당황하지 않는 태연조차도 놀랄 정도!
‘천재적인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정말 놀랄 정도로 이해력이 높아.’
이해력이 높으니 응용력 역시 굉장하다.
“하다 보니 재미있네. 오빠가 왜 게임 제작에 푹 빠져 있는지 알겠어.”
자신이 기획한 것이 실제 게임으로 구현되는 과정은 굉장히 경이로운 과정이다. 김윤아는, 그리고 홍민석, 이영애 부부는 정령사 키우기 제작에 푹 빠져들었다.
오죽하면 일 끝나면 모이는 장소가 태연의 집이 될 정도로.
그리고.
“정령은 어디에나 있다는 설정이잖아요?”
“그렇죠.”
“그러면 AR 기능을 넣어서 현실에서도 정령을 찾아 게임을 통해 계약할 수 있다는 설정을 넣는다면 어떨까요?”
이영애의 아이디어에 김윤아의 눈이 번뜩인다.
“예전에 그런 게임 유행하지 않았어? 포켓…… 뭐였는데?”
홍민석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 게임은 지금도 유행하고 있어요. 세계 모바일 게임 매출 순위 리스트를 뽑으면 항상 최상위권에 랭크되어 있거든요.”
“아, 그래요?”
내친김에 거론된 게임을 깔아 작동 방식을 보여준다.
“맞아. 내 동료들도 이 게임 많이 했었어. 연예인 지인들도 그렇고…… 우리도 이런 식으로 게임 만들면 좋겠다. 가능해?”
시선이 태연에게 쏠린다.
태연은 어깨를 으쓱했다.
“어려울 거 없죠. 아주 쉽습니다. 말 나온 김에 같이 만들어볼까요?”
* * *
마침내 엘크로스 Re가 북미에 런칭했다.
이번 런칭을 위해 머큐리 게임즈에서 적잖은 예산을 소요했다.
인기 게임 스트리머 골드 파인애플을 홍보 모델로 전면에 내세웠고, 미국 주요 도시에 팝업 스토어를 마련해 게임을 체험하고 굿즈를 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홍보에 얼마나 힘을 쏟는지, 지켜보던 넥플…… 특히 엘크로스 Re 개발자들이 부담감을 느낄 정도였다.
“저러고도 실패하면 정말 면목 없겠는데?”
“이렇게 된 이상 무슨 일이 있어도 성공해야겠어.”
한편, 엘크로스 Re 담당 운영자, 개발팀이 태연과 함께 미국, 머큐리 게임즈를 방문했다.
운영 노하우, 서비스 준비 현황 점검 등을 비롯한 업무를 처리하기 위함이었다.
여기서 태연은 친분을 다지고 있는 머큐리 게임즈 부사장과 자리를 가졌다.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던 중 E 스포츠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태연이 아니라 부사장이 먼저 꺼낸 이야기였다.
“요즘 우리 직원들 사이에 엘크로스 Re가 굉장히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합니다. 저희들끼리 길드를 만들어 던전을 돌거나 레이드를 뛰기도 하고, 소소하게 PVP 대회를 개최하기도 한다는군요.”
“그렇습니까? 좋은 징조네요. 직원들이 재미있게 즐기는 게임이니 소비자들도 재미있게 즐길 수 있겠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광경을 보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이 게임 흥행 성적이 한국 정도만 나와준다면…… e스포츠화를 추진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그의 눈이 소년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이번 PVP 대회 반응 보고, 나쁘지 않으면 바로 대회 개최를 선포하고 본격적으로 추진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입니다.”
“흥행을 자신하시는군요.”
“물론이죠. 문제는 얼마만큼 성공하느냐 아니겠습니까?
실패는 염두에 두지 않고 있다는 뜻이었다.
또 다른 대화 주제는 ‘정령사 키우기’였다.
“소규모로 제작 중이라고요?”
“원래 혼자 만들던 게임이었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제 아내를 포함해 홍민석, 이영애 AD 부부가 참여하게 되어서…….”
만들게 된 과정과 내용을 설명하니 그가 호기심을 보인다.
“지금 볼 수 있습니까?”
“아직 완성되지 않았지만 그거라도 괜찮다면…….”
“보여주십시오!”
AR 포획 기능이 적용된 빌드 버전이었다.
완성된 정령 캐릭터는 네 개 정도.
땅, 불, 바람, 물.
이 네 가지 대 원소를 관장하는 ‘하급 정령’이었다.
“오오…… 캐릭터들이 귀엽네요!”
카툰 렌더링으로, 애니메이션 캐릭터처럼 다듬어진 정령 캐릭터들이 곳곳을 날아다니고 있었다.
푸른색의 거북이 캐릭터는 태연의 커피잔 속에서 헤엄을 치고 있었다. 갈색의 새끼 강아지는 머큐리 게임즈 부사장 팔에 머리를 부비적거린다.
“확장성이 좋군요. 어디에나 정령이 깃들어 있고, 등급이 나뉘어져 있어 형태와 능력치가 모두 달라진다니…….”
“맵에 표기된 장소를 찾아가 정령을 찾아 포획한다. 여기서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무력으로 진압을 하거나, 아니면 정령이 주는 퀘스트를 받아 수행하며 호감도를 올리거나.”
무력 진압이 쉽기는 하지만 강제로 포획한 거라 정령의 협조를 온전히 받아내기가 어렵다.
호감도 작업을 해야 하는데 이 과정이 굉장히 까다롭다.
“결국 퀘스트를 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똑같지만, 난이도와 정령의 반응이 달라지겠죠.”
“다양한 정령을 수집하는 재미도 있겠군요!”
“획기적인 뭔가를 보여주려고 만드는 게임이 아닙니다. 그냥 소소하게 다양한 정령을 수집하고, 육성하고, 함께 무언가를 이뤄내는 경험을 주기 위함이죠.”
“아주 좋습니다. 전 사실 그런 게임을 더 좋아해요. 미국에서도 성공할 겁니다.”
“그렇습니까?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큰 걸 바라고 만드는 게 아니라…….”
머큐리 게임즈 부사장의 눈빛이 가늘어졌다.
“그거 혹시 넥플에서 발매할 겁니까?”
고민해 보던 태연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그 어디에도 귀속되지 않은…… 저만의 게임 개발 스튜디오를 만들어 서비스하려고 합니다.”
“그렇다면 글로벌 퍼블리싱은 우리에게 맡기는 게 어떻습니까?”
태연은 그를 바라보다가 담담하게 말했다.
“말씀드렸지만 성공을 노리고 만든 게임이 아닙니다. 흥행도 보장할 수 없어요. 왜냐면 이미 비슷한 게임들이 많이 나왔을 테니까요.”
“물론 알고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 회사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은 컨셉의 게임이 몇 개 서비스되고 있지요. 하지만 중요한 건 컨셉이나 규모 같은 게 아닙니다. 만드는 사람이죠.”
“…….”
“그래요. 당신 말대로 그 게임은 큰돈이 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전 그 게임에 흥미가 갑니다. 왜냐면 당신이 만들었으니까. 당신이라며 규모도 작고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는 게임이라도 제대로 만들겠죠. 하나의 완성된 작품으로!”
아!
태연은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전 작품을 수집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잘 만든 작품을 보면 가치를 떠나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은…… 그런 욕심이 있어요.”
“음…….”
“당신은 작품을 만들 줄 아는 장인입니다. 그런 사람의 작품이라면…… 뭐가 됐든 수집해야죠. 그게 바로 저라는 사람입니다. 제가 살아가는 이유 중 하나죠.”
거짓말은…… 아니군.
태연은 그의 눈에서 신념을 볼 수 있었다.
작품을 수집한다.
세계 제일의 시가총액을 자랑하는 머큐리닷컴의 공동 창업자. 그가 편한 길을 버리고 고생길을 자처하는 이유가 이거였다.
“부사장님은 별종이군요.”
“그렇습니까? 그런데 제 눈에는 당신도 그렇게 보입니다.”
동류.
그 사실을 처음으로 확인한 두 사람은 기분 좋은 미소를 교환했다.
* * *
[엘크로스 Re 북미 런칭 대박! 첫날 동접자 백만 명 돌파!]
[일 매출 2,000만 달러!]
한국 게임 업계가 난리가 났다.
엘크로스 Re가 런칭 첫날 기록적인 매출을 달성한 것이다.
넥플에서는 웃음꽃이 피었고 머큐리 게임즈에서는 환호성을 터뜨렸다.
하지만 단 한 사람, 태연만큼은 긴장감을 늦추지 않았다.
‘북미 유저들은 굉장히 까다롭고 눈 높은 것으로 유명하지. 언제 어떤 이슈가 터질지 모를 일이니 긴장해야겠어.’
이 문제 때문에 회사와 집에 양해를 구하고 미국에 체류 중이었다. 계속 머큐리 게임즈 본사에 출근하며 현장을 지켰다.
‘운영팀이 많이 미숙한 게 문제야.’
사람은 많은데 한국 운영팀만큼 숙달된 인력은 드물었다. 업무에 임하는 마인드도 많이 달랐다. 처음에는 이 문제 때문에 많이 부딪혔다.
‘이걸 고치지 못하면 아무것도 소용없어.’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열심히 해봐야 월급은 정해져 있고 그마저도 굉장히 짜다는 것. 운영팀에 대한 대우가 그다지 좋지도 않았고 인센티브 같은 것도 없다.
다들 하나같이 세월아 네월아……시간 죽이기 식으로 일을 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니지만…… 그래도 기본적인 대우는 해줘야지.’
하지만 자신의 방식을 퍼블리싱에 강요하기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태연이 내린 결정은 다음과 같았다.
‘우리가 고용해서 월급을 주고 대우해 주면 되지.’
상태창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있으니 운영 능력이 좋은 사람들을 선별하는 것도 쉬웠다.
이것이 태연이 미국에 남아 있는 이유였다.
처음 이 안건을 들었을 때 머큐리 게임즈 간부들은 난색을 표했다.
운영팀에 그렇게까지 할 이유가 있냐는 것이다.
하지만 단 한 사람, 부사장만큼은 진지하게 반문했다.
“꼭 필요한 일입니까?”
“전 그렇게 생각합니다. 실제로 한국 넥플에서는 그런 식으로 해서 운영팀의 업무 능력을 크게 끌어올렸습니다.”
모두 태연을 바라본다.
동양에서 온 저 젊은 인재는 참 묘한 카리스마가 있는 존재였다.
“디즈니랜드 캐스터들은 자신의 직업을 자랑스러워하며 그것을 평생 직업으로 삼고 싶어 한다고 하죠. 물론 모두가 그런 건 아니겠습니다만…… 그런 마음이, 열정이 들 수 있게 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줬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으음……!”
몇몇 사람들이 신음을 흘린다.
부사장이 픽 웃으며 말했다.
“갑자기 전 직장이 거론되니 놀란 모양이군요.”
“그렇군요. 아무튼, 전 그곳의 근무 환경을 통해 큰 영감을 받았고, 이를 우리 실정에 맞도록 적용하기 위해 노력 중이죠. 꽤 성과가 좋습니다.”
태연이 눈빛이 확신으로 번뜩였다.
“머큐리 게임즈가 어렵다면 넥플이 하겠습니다. 저에게 전권을 주시죠.”
꽤나 자존심이 상하는 일 아닌가?
몇몇 임원들의 얼굴에 그런 감정이 떠올랐다.
부사장이 진지하게 말했다.
“그러지 말고…… 일전에 공동 회사를 만들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그랬었죠.”
“절반씩 지분을 투자해서 회사를 설립하고 운영팀을 정규 직원으로 고용하는 것으로 합시다.
굳이 그렇게 번거롭게 일을 처리할 필요가 있냐는 표정들.
“운영팀 개선 업무를 맡아 달라고 하면…… 거절하시겠죠?”
“그렇습니다.”
“제 입장에서도 부탁하기 어렵습니다. 게임 디렉터이자 무려 거대 기업 수장인 분에게 겨우 운영팀 개선 업무를 부탁하다니…….”
“머큐리 게임즈 내의 일이라면 제가 관여하기 어렵고 그래서도 안 되지만, 그 운영팀이 넥플 아메리카 소속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지기 때문에 그런 부탁을 드린 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면 머큐리 게임즈가 사람 차별한다는 이야기를 듣지 않아도 될 테고요.”
“그럴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덥석 받아들일 수는 없습니다. 퍼블리셔로서 자존심이 있으니까요.”
“음…….”
“그러니 공동 회사를 설립하는 것으로 하시죠. 어차피 엘크로스 Re가 처음이자 마지막 협업도 아니잖습니까? 판테온, 판데모니움 외에 유태연 대표님께서 만든 게임은 모두 우리가 서비스하게 될 텐데…….”
사욕이 잔뜩 섞인 발언.
“유태연 대표님이 만든 게임에 대해서 운영 권한까지 챙겨 드리고, 우리도 명분도 챙기려면 공동 회사 설립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사실 모든 운영팀에게 좋은 대우를 해주는 게 가장 좋겠지만…… 당장 실현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충분히 이해합니다.”
사실 고민할 필요도 없는 문제였다.
태연이 생각하기에도 가장 좋은 방안이었던 것이다.
비용에 대한 부담을 낮추며 협업 명목으로 머큐리 게임즈와 많은 일을 공동 추진할 수 있을 테니까.
태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