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사한 게임 개발자가 너무 유능함-104화 (104/147)

퇴사한 게임 개발자가 너무 유능함 104화

67. 해외 런칭(5)

해외 런칭 시 디렉터 입장에서 가장 신경 서야 할 것 중 하나가 바로 번역 퀄리티 검수.

여기에는 텍스트뿐만 아니라 성우에 대한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그 말인즉, 적용된 게임을 일일이 해보며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넥플에 사람이 없는 건 아니지만, 엘크로스 Re를 굉장히 잘 알고 있으면서 영어 실력도 현지인 수준으로 뛰어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태연은 이런 중요한 일은 남에게 맡기는 것보다는 힘들더라도 본인이 하는 것을 속 편해하는 타입이었다.

“으음…….”

팔지의 효능이 뛰어나긴 하지만 모든 피로를 없애 줄 수는 없다.

특히…….

‘퀄리티가 엉망이군.’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만큼은 무엇으로도 억제할 수가 없었다.

참다못해 태연이 중얼거렸다.

“작업자를 전면 교체해야 했군.”

머큐리 게임즈 일 처리를 믿고 가만히 있다가는 재앙을 맞이하게 될 것 같다.

태연은 키보드에서 손을 떼고 안경을 벗었다.

“후우.”

이 문제로 고생하게 될 것을 생각하니 더 큰 피로가 몰려오는 것 같았다.

* * *

처음에는 머큐리 게임즈 측에 전화해서 좋게 설명했다.

“번역 퀄리티가 마음에 들지 않으니…….”

그런데 퍼블리싱 본부장이라는 사람의 태도가 영 거슬린다.

-우리 회사와 오랫동안 손발을 맞춰 온 곳입니다. 기준이 지나치게 까다로운 것 아닙니까?

“…….”

분명 좋게 말하는데…….

태연은 다시 한번, 화를 억누르고 최대한 좋게 설명했다.

“현지화 검수를 제가 직접 하고 있는데 퀄리티가 전반적으로 너무 떨어집니다. 그러니까…….”

-아, 바꿀 생각 없으니 그렇게 아십시오.

“…….”

-당신은 현지화 퀄리티가 떨어진다고 하지만 우리가 보기에는 아무 문제 없는 일입니다. 그리고 북미 시장에 대해 당신이 알면 얼마나 안다고…….

통화는 그렇게 끝났다.

어이가 없었던 태연이 머큐리 게임즈 부사장에게 문자를 보냈다.

[아무래도 머큐리 게임즈하고는 일을 같이 못 하겠습니다.]

* * *

다음 날 머큐리 게임스 본사는 그야말로 뒤집어졌다.

현시점에서 회사 최고 책임자인 부사장이 임원들을 모아 놓고 브레스를 뿜어냈다.

“대체 어떤 정신 나간 작자가 가장 중요한 거래처의 대표이사에게 그따위 응대를 한단 말인가?”

반쯤 뒤집힌 눈이 자신들을 훑을 때마다 임원들은 숨넘어갈 듯 온몸을 떨었다.

말이 부사장이지, 그는 모회사 머큐리 닷컴 CEO의 절친한 친구이자, 공동 창업자 중 한 사람이다. 머큐리에 한해 그 위상은 황제에 버금가는 수준이었다.

‘저분이 저렇게 화를 내는 경우가 정말 드문데…….’

‘대체 어떤 병신 같은 작자가 저분의 심기를 건드렸단 말인가?’

동석 중인 임원들 중, 머큐리 게임즈 창업 공신만이 공유하는 사실이 있다.

현 부사장은 굉장히 젠틀한 신사의 표본 같은 사람이지만 설립 초창기에는 악마가 따로 없었다는 것.

회사가 커지며 괜찮아졌나 싶었더니 다시 끔찍한 모습이 드러난 것이다.

“당신들 똑똑히 봐. 넥플 대표이사가 어제 나에게 이런 메시지를 보내왔어.”

[아무래도 머큐리 게임즈하고는 일을 같이 못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런 파일도 보내왔지.”

통화 녹취 파일이었다.

-북미 시장에 대해 당신이 알면 안다고…….

“……!”

모두의 이목이 한 사람에게 쏠렸다.

퍼블리싱 본부장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당신이 통화한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도 몰라?”

“저, 저는…… 그, 그냥 엘크로스 Re의 디렉터라고만…….”

“그래. 그 디렉터가 바로 넥플의 대표이사야. 대한민국 대기업 대표이사! 내가 한국까지 쫓아가서 우리 회사 기술 책임자로 모셔오려고 했던 사람이 바로 당신이 무시한 그 사람이란 말이다!”

얼굴이 더더욱 질렸다.

디렉터라기에 그냥 개발자 중 한 사람인 줄로만 알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냥 아무 힘도 권한도 없는 개발자라도…… 퀄리티 문제로 합당한 이유를 제시하며 시정을 요청하는데, 그딴 식으로 응대하는 게 말이나 되는 일이야?”

“……!”

“심지어 퍼블리싱 본부장이라는 작자가…… 당신 그 자리에 왜 있어? 그런 일 제대로 맡아서 처리하고 비싼 연봉 주며 자리에 앉혀 놓은 거 아니야!”

친분이 깊던 동료 임원들의 눈초리도 싸늘했다.

“나, 나는…….”

“당신이 책임지고 마음 돌려놔!”

자상하던 부사장의 눈동자에 지옥의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내일 아침까지 결과 보고해!”

* * *

-제, 제가 사람을 몰라뵙고…… 그, 그러니 제발…….

“일없습니다.”

차갑게 전화를 끊어 버리고 태연이 말했다.

“회의 계속 진행하시죠.”

회장까지 모인 임원 회의장이 차갑게 얼어붙었다.

태연의 지금 행동에서 우러나는 분위기가 몹시 차가웠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런 걸 그냥 지나칠 유진성 회장이 아니었다.

“야, 대체 뭣 때문에 찬바람을 일으키는 거야?”

“…….”

“궁금해서 죽겠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잖아. 이대로는 회의 집중 못 해. 일과 관련된 이야기면 공유 좀 해봐.”

“……사실.”

가볍게, 어젯밤에 있었던 통화에 대한 내용을 털어놨다.

유진성 회장의 눈동자가 뒤집어졌다.

“뭐라? 그 미친놈 누구야? 내가 당장……!”

“이건 우리 회사가 무시당한 겁니다!”

“가만 놔두면 안 됩니다!”

“하도 애원하기에 계약해 줬더니 이제 와서 감히 누구에게 갑질을……!”

“…….”

그런데 그보다 듣고 있던 임원들이 더 분개했다.

정당한 사유로, 굉장히 정중하게 요구했는데 그런 식의 응대를 받았으니…… 더욱이 자신들의 대표가 아닌가?

이는 단순히 태연 개인의 문제가 아닌 회사 차원의 일이었다.

젊은 시절 개발 마왕이라는 별명으로 불린 적도 있다던 손영상 이사가 특히 분을 토했다.

“이건 우리를 철저히 을로 생각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당장 정중한 사과와 합당한 대가를 받아내야 합니다!”

얼마나 기세가 살벌했는지, 임원들과 유진성 회장조차도 잠시 숨을 못 쉴 정도였다. 굉장히 인자했고, 은퇴만을 간절히 바라는 노년의 황희 정승 같았던 얼굴은 말 그대로 마왕의 흉상이었다.

“여기서 얕보이면 안 되니…….”

우웅우웅!

때마침 전화가 걸려 왔다.

‘음?’

머큐리 게임즈 부사장이었다.

유진성 회장이 눈치 빠르게 나섰다.

“스피커 모드로 받아 봐.”

“네.”

-우리 퍼블리싱 본부장이 큰 실수를 저질렀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대신 사과하겠습니다!

“…….”

이 자리에 영어 못하는 이는 없었다.

다 알아듣고 있다는 뜻이었다.

-우리 측에서 큰 실수를 저질렀는데 이 정도로 마음이 풀릴 리가 없죠. 제가 바로 한국으로 가서 다시 정식으로 사과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정말 죄송합니다.

그렇게 통화가 끝났다.

유진성 회장이 물었다.

“야, 태영아. 방금 전화한 이 사람…… 대단한 사람 아니냐?”

“대단한 거 맞죠. 머큐리 게임즈 부사장 이전에 모회사 머큐리 닷컴 공동 창업자이고 현 CEO와 절친한 친구 사이니까요.”

태연도 익히 아는 사이였기에 덤덤했지만 다른 임원들은 반응이 달랐다. 세계 최고의 시가 총액을 자랑하는 기업의 공동 창업자라니, 그야말로 위세가 대단한 사람이 아닌가?

그런 그가 직접 날아와서 사과하겠다고 말할 정도라니…….

그런데 유진성 회장의 얼굴은 찝찝했다.

“이 인간, 이거 빌미로 태연이한테 개수작 부리려는 거 아닌가 몰라?”

“에이,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경우 없는 사람은 아닙니다.”

“정말? 확신해?”

“…….”

“야, 왜 대답이 없어? 시선 피하지 말고 나 똑바로 봐봐. 진짜 확실해?”

“크흠.”

궁지에 몰린 이태영 이사는 헛기침을 터뜨리고 조용히 말했다.

“빨리 다음 안건으로 넘어가도록 하지.”

* * *

다음 날, 정말 머큐리 게임즈 부사장이 찾아왔다.

“퍼블리싱 본부장을 해고했습니다.”

“…….”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교육 똑바로 시킬 것이니 믿고 맡겨주시기 바랍니다.”

눈에 의지가 가득했다.

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머큐리 게임즈가 아니라 부사장님을 믿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 유태연 대표님 관련 업무는 제가 전담할 테니 저에게 직접 연락해 주시면 됩니다.”

“피곤하시지 않겠습니까? 제가 듣기로 요 근래 머큐리 닷컴의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인 ‘머큐리 프리미어’도 맡게 되셨다고 들었는데…….”

머큐리 닷컴은 글로벌 괴물 기업이 많기로 유명한 미국에서도 ‘괴물’로 통하는 기업이다. 문어발식 사업 확장이 많은데, 문제는 그 사업들의 타율이 굉장히 높다는 것이다.

그런데 의외로 온라인 스트리밍 시장에서 주춤했다. 이에 최근, 머큐리 닷컴은 계속되는 오리지널 콘텐츠 투자 실패의 책임을 물어 기존 대표이사와 주요 경영진을 해고하고 그 자리에 현 머큐리 게임즈 부사장을 앉혔다.

“사실 이 문제 때문에 유태연 대표님을 CTO로 모시려는 의도도 있었습니다. 게임즈를 맡아주신다면 제게 정말 큰 힘이 될 것 같았으니까요.”

“음…….”

“저는 게임 전문가가 아닙니다. 우리 회사에 게임 전문가는 많지만 경영 능력과 탁월한 리더십까지 겸비한 인재는 드뭅니다. 그런 이들은 지금도 충분히 많은 일을 맡고 있죠. 혹은 다른 회사에 있거나.”

뭔가 대화가 또 이상한 방향으로……?

태연은 찻물을 마시며 점점 뜨거워지는 그의 시선을 애써 외면했다.

하지만 그의 말은 계속 이어진다.

“한평생 넥플에만 계실 건 아니지 않습니까?”

태연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유진성 회장은 계속 있어주기를 원했고 당시에는 그렇게 하겠노라 대답하기는 했지만…… 사람 일은 아무도 모르는 것 아닌가?

“우리 ‘머큐리’의 문은 항상 열려 있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 * *

‘퀄리티가 거짓말처럼 올라갔군.’

머큐리 게임즈 부사장은 확실히 약속을 지켰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검수 파일이 도착했는데 이전과 질이 천지 차이였던 것이다.

‘내가 손댈 게 보이지 않을 정도야.’

추가로, 다음과 같은 말을 전해왔다.

-내부 조사 결과 퍼블리싱 본부장과 기존 현지화 작업 외주 업체 사이에 커넥션 현황이 발견되었습니다. 고소 고발을 진행 중이니 조만간 결과 알려드리겠습니다.

굉장히 흡족한 대처였다.

사실 태연도 굳이 퀄리티가 떨어지는 업체를 퍼블리싱 본부장이 고집했을 때 비슷한 의심을 했다.

잠시 고민하던 태연은 영문으로 몇 가지 글을 적어 메시지를 보냈다.

자신이 넥플에 있으며 때려잡았던 외주를 비롯, 사내 비리 현황 추적, 조사, 처벌에 대한 내용이었다.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하니…… 이거라면 큰 도움이 되겠지.’

그 일이 있고 얼마 후.

-감사합니다. 덕분에 제가 우리 회사에 대해 얼마나 무관심한 상태였는지를 깨달았습니다.

머큐리 게임즈 부사장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알려주신 정보를 토대로 열심히 청소 중입니다. 쑤시면 쑤시는 대로 뭔가 쑥쑥 나오더군요.

“도움이 된 것 같으니 기분이 좋군요. 쓸데없는 참견을 한 게 아닌가 내심 걱정했는데…….”

-쓸데없는 참견이라니요? 이런 정보라면 얼마든지 알려주셔도 됩니다! 덕분에 시선이 닿지 않았던 구석진 곳까지 깨끗이 청소 중입니다!

그의 음성이 이글거리는 듯했다.

기분이 좋아진 태연이 말했다.

“알려드린 것 말고도 많은 정보를 알고 있습니다. 차차 공유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해주신다면 감사할 따름이지요.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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