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한 게임 개발자가 너무 유능함 102화
67. 해외 런칭(3)
골드 파인애플은 굉장히 적극적이었다.
“제가 최후의 승자와 대결을 펼치는 방식은 조금 불공정한 것 같군요. 그러지 말고 그냥 처음부터 저도 섞여서 같이 플레이하는 방식으로 하시죠.”
“괜찮겠습니까?”
“그게 맞죠. 그리고 전 자신 있어요.”
씩 웃고 방송용 카메라에 대고 말한다.
“최소한 엘크로스 Re PVP 콘텐츠만큼은, 아직 저보다 잘하는 사람을 만나보지 못했거든요.”
CF 촬영까지 마친 골든 파일애플은 미국으로 돌아갔다.
넥플 본사에서 진행한 라이브 스트리밍이 세계적으로 게이머들 사이에 꽤나 화제가 되었다. 덕분에 그의 뮤튜브 계정에 업로드된 스트리밍 편집본 반응도 뜨거웠다.
사실 이것만으로도 이미 CF 값어치를 한 셈이었다.
수많은 유저들이 엘크로스 Re를 접하는 계기를 제공했으니.
실제 방송 이후 유저 수도 폭발적으로 늘었다.
-북미 런칭에 박차를 가하겠습니다.
머큐리 게임즈의 다음과 같은 확답도 받았다.
골드 파인애플의 CF는 금방 방송, 인터넷 등을 통해 공개됐다.
그것도 북미와 한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를 통해!
이게 가능했던 것은 애초 CF 제작을 머큐리 게임즈와 공동으로 추진한 덕분이었다.
더욱이 ‘골드 파인애플을 이겨라’ PVP 이벤트가 국제적으로 확장되며 규모를 더 키우게 된 것도 머큐리 게임즈의 영향이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이벤트 규모를 확장해 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예선은 인터넷에서 진행하도록 하고 본선 무대부터 한국에서 개최하는 것으로.
사실 고민이 많았다.
이제 시작한 게임이고 아직 모든 것이 어수선하기만 한 것 같은데…….
그러나 태연의 조심스러운 반응과 달리 넥플 내부적으로는 크게 찬성하는 분위기였다.
“아예 월드 챔피언십으로 주최합시다.”
“드디어 우리 자체 개발작에서도 이런 세계적인 게임이 나오게 되는군요!”
태연과 넥플 임원들은 생각하는 관점이 많이 달랐다.
태연은 개발자, 임원들은 경영자.
유진성 회장은 다음과 같이 충고했다.
“겁먹고 움츠러들면 될 것도 안 되는 거야. 네가 신중한 것도 이해는 해. 하지만 지금은 대표로서 조금 더 멀리, 넓게 봐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결과적으로는 그도 엘크로스 PVP 대회 규모를 키우기를 원한 것이다.
‘아직 해외 서비스는 시작도 안 한 게임을…….’
벌써부터 국제 대회 규모 단위로 확장하라고?
태연은 아이디어 제공자나 다름없는 골드 파인애플의 의중을 물었다.
-제가 보기에는 북미, 유럽 쪽의 반응도 좋은 편입니다. 이미 이런저런 경로로 게임을 즐기는 사람도 많은 듯한데…… 굳이 참가자 범위를 한정 지을 필요가 있을까요?
그의 의견은 간단했다.
-하고 싶은 사람 모두 참가해서 즐기라고 하죠. 뭐, 넥플 정도라면 참가자가 얼마나 됐든 충분히 감당할 역량이 있지 않습니까? 몬스터 이터 때 보니 잘하시던데.
그렇게 이르지만, 엘크로스 PVP 첫 국제 대회 개최가 정해졌다.
* * *
-엘크로스 팀 또 보너스 받았다며?
-골드 파인애플하고 국제 규모 대회도 연다더라. 벌써부터 참가자 문의가 굉장하다던데?
-아직 인센티브는 받지도 않았다며? 내년 연봉 협상 도 굉장히 오를 거라던데…….
근래 한국 게임 업계 최대 이슈는 엘크로스 Re의 대박이었다.
이미 오픈했다가 처참하게 망했던 게임.
500억짜리 흑역사가 불과 1년 만에 전 세계 MMORPG의 빛으로 떠올랐다.
-부럽다. 내년에 인센티브에 연봉 큰 폭으로 인상에…….
-와, 그 팀 진짜 별거 없었는데…… 리더 잘 만나서 한순간에 인생 대박 났네.
-지금이라도 비비고 들어갈 구석 없나?
현 엘크로스 개발자들은 그야말로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한편 중간에 퇴사하고 나온 직원들은 정반대의 상황이었다.
-중간에 런한 개발자들 진짜 불쌍하다.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닌데 지금 시점에서 보면 최악의 결정이었던 거잖아.
-리메이크가 결정된 시점에 퇴사한 사람이 제일 불쌍하지. 계속 버텼으면 좋은 일이 있었을 텐데…….
-퇴사자들은 자기들이 버린 게임이 승승장구하는 거 보면서 어떤 기분이려나?
요즘 송재희 PD는 하루하루가 죽을 맛이었다.
하루에도 수십 통씩, 과거 함께 일했던 사람들로부터 원망의 메시지를 받고 있었다.
[피디님 때문에 이게 뭐예요? 요즘 제가 주위에서 얼마나 조롱받는 줄 알아요? 제 인생 어떻게 할 거예요?]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소문에 의하면 넷펀즈에서 차기작 준비 중이시라던데…… 망해도 인맥 학벌이 짱짱하니 좋네요. 우리는 지금 님 프로젝트에 참여했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죽을 맛인데…….]
누가 보냈지는 알 도리가 없다.
익명으로 보냈기 때문이었다.
오죽했으면 전화번호를 바꾸고 주위, 극소수의 사람들에게만 공유했을까?
‘왜 나를 탓하지? 결국 자기들 판단이었으면서…….’
오리지널 버전이 망한 건 서글픈 일이었다.
히지만 자신은 끝까지 최선을 다했다.
결과가 그리 나온 걸 어쩌란 말인가?
[번호 바꾸면 모를 줄 알았죠?]
[적당히 하고 끝내려고 했는데 반성하는 기미가 없으니.. 어디 한 번 X돼봐라.]
참 끈질긴 사람들이다.
‘아마도 넷펀즈 인트라넷에 업데이트된 전화번호를 알아낸 것 같은데…….’
추측은 맞았다.
새롭게 교체한 휴대폰 번호를 넷펀즈 포함, 어디에도 업데이트하지 않고서야 익명의 메시지들이 더 이상 귀찮게 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 제풀에 지쳐 알아서 사그라들겠지.’
뭐, 이런 건 크게 중요한 일이 아니다.
그의 멘탈을 흔들 정도도 아니었다.
정말 큰 문제는 그를 밀어주고 넷펀즈로 당겨준 사업팀장, 전준영이 가져왔다.
-오늘 저녁 술 한 잔 하자.
이런 식으로 만남 약속을 잡는 친구가 아니었다.
최소한 언제 시간이 되냐고 스케줄부터 물어왔고, 술부터 들이밀 성격이 아니었다.
‘어째 쎄한데…….’
강남의 조용한 바에서 전준영과 만났다.
머뭇거리던 그가 이상한 이야기를 꺼낸다.
“조건이 조금 바뀌었어.”
원래 넷펀즈가 제시하는 IP로 스마트폰 게임을 만들어 런칭하는 것을 조건으로 투자를 받아 새 게임을 만들기로 했었다.
‘설마…… 아니겠지?’
불쑥 치켜드는 나쁜 생각을 애써 억누르며 귀를 기울인다.
전준영 사업팀장이 칵테일 한잔을 단번에 비우고는 말을 이어간다.
“지금 우리 회사 사정이 좋지 않아. 재작년에 회사 대표가 된 김준환…… 알지?”
“……알지. 우리 선배잖아.”
카이스트 출신, 네로 소프트 신화 온라인 서버 팀장이었던 사람이다. 그가 넷펀즈로 이직해서 신화 온라인을 레퍼런스로 한 모바일 게임을 출시해서 대박을 터뜨렸다. 그 공을 인정받아 승승장구하다가 결국 대표이사 자리에 올랐다.
“사실 그 인간이 실시간으로 회사 말아먹고 있던 중이었어.”
게임 대박으로 인생까지 대박이 난 직후 사람이 변했단다.
함께 고생했던 이들뿐만 아니라 조강지처까지 쳐냈다고 한다.
“그리고 뜬금없이 외부에서 한 여자를 데려와서 고위직에 앉혔는데, 지금 완전히 그 여자 손에 놀아나는 중이야.”
씁쓸한 얼굴로 송재희 PD를 보며 본론을 꺼내 든다.
“근데 아무래도 그 여자 눈에 네가 좀 거슬리나 봐. 얼마 전 회의 자리에서 이런 말을 했었거든. 애초 신화 온라인 주역이라고는 하지만 디렉터도 아니었고, 500억 프로젝트를 크게 실패한 사람의 어딜 보고 투자를 결심한 거냐며…….”
“……!”
굳어지는 송재희 PD.
“그 한 마디 때문에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어 버렸어. 결국 어제 날 불러서 말하더라. 투자, 없었던 일로 해야겠다고.”
“…….”
“투자 조건 없이 디렉터로 들어와서 게임 만들겠다면 그건 생각해 보겠대.”
그냥 다른 생각 말고 자신들이 바라는 게임이나 만들며 월급만 받아가라는 뜻이었다.
“그…….”
목이 막혀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잘 마시지도 못하는 칵테일을…… 알콜을 들이킨 뒤 애써 입을 열었다.
“준환 선배가 저번 달까지만 해도 열심히 해보자며 문자를 보냈는데 그건…….”
“그건 그때 일이지.”
“…….”
“말했잖아. 준환 선배 지금 웬 낯선 여자 치마폭에 휩싸여서 정신 못 차린…… 아니지, 대표이사 된 직후부터 맛탱이가 갔구나.”
“그게 무슨……?”
“애초 대박도 운이 좋아서 터뜨렸던 거고, 사실 디렉팅 능력이나 경영, 그룹 리딩 능력 자체가 없는 사람이야. 그렇다고 현자처럼 정세를 잘 읽거나 사람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사람도 아니야. 그건 너도 잘 알잖아?”
부정을 못 하겠다.
실제 그는 그런 사람이니까.
그래도 승승장구를 하며 사람의 기질도 달라진 줄 알았다. 실제로 더 너그러워진 듯 보였었고.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을 믿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고?’
그 표정을 보고 신경질적으로 새 칵테일을 원샷 한 전준영이 물었다.
“너 유태연 대표 봤을 거 아니냐. 준환 대표가 그 사람보다 게임 잘 만들어?”
생각할 필요도 없다.
“그건 아니지.”
“유태연 대표보다 팀 관리 잘해?”
고개를 젓는다.
“인망이 두터워? 회사에서 전폭적인 신뢰를 받고 있어? 경영 능력이 뛰어나?”
모두 유태연 대표 쪽이 압도적으로 우월하다.
“그런 거야.”
“…….”
“지금 정석환 의장이 어떻게 자를지만 고민 중이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것과 별개로 너에 대한 신뢰는…… 지금으로써는 제로야.”
“…….”
“사실 현 대표의 무능력과 별개로, 그 여자가 한 말이 모두의 심금을 울리기는 한 모양이야. 네가 신화 온라인 주역 중 한 사람이라고는 하지만 디렉터급은 아니었고, 그 다음 500억 투자받은 대작은 완전히 실패했고…… 실질적으로. 보여준 게 없잖아.”
점점 힐난으로 가는 어조에 송재희의 눈빛에 매서워진다.
“너…….”
“화나? 겨우 이 정도로? 야, 널 밀었다가 공식 석상에서 계속 면박당하는 내 심정은 어떨 것 같아?”
순간 말문이 막혔다.
“지금 내 입지도 위험하다고. 그래도 친구라고…… 난 정말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어. 너에게 기회를 딱 한 번만 더 달라고 애원하기도 했어. 네가 나에게 화를 낼 상황이 아니라는 거야. 고마워해야지.”
맞는 말이다.
순간적으로 가슴이 서늘해지며 달궈졌던 머리가 식었다.
“그러면 어떻게 해?”
“나도 모르지.”
차가운 답변.
그도 지친 얼굴이었다.
그동안 내색을 안 했을 뿐, 자신과 관련해 회사에서 모진 고초를 겪었던 모양이다.
‘그걸 이제야 알다니…….’
자책감이 들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마음이 급해졌다.
믿고 있던 구원줄 하나가 끊겨 버린 셈 아닌가?
“내 생각인데…….”
머뭇거리다가 말한다.
“넷펀즈 오지 마. 지금 상황이 말이 아니야. 내 생각에는…… 넥플로 돌아가는 게 최고의 수야.”
“넥플로?”
“지금 승승장구하는 중이잖아. 다시 돌아가는 게 민망할 수도 있겠지만…… 앞으로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곳이라 어떻게든 틈을 비집고 들어가서 비벼 봐. 기회가 올지도 몰라.”
“…….”
“그게 어려우면 네로 소프트로 다시 돌아가. 네 고향과 같은 곳이잖아. 넥플과 달리 안 좋게 나온 것도 아니니.”
“그렇지.”
“인맥과 실적이 그대로 남아 있으니 기회 한 번은 더 줄 거 아니냐. 네가 어떻게든 해보면…….”
남은 칵테일을 털어 넘기고, 자리에서 일어선다.
“아무튼 난 분명히 전했어. 다시 말하지만 우리 회사하고는 그냥 끝났다고 생각하고 네 살길을 도모해. 전달 끝! 나 간다.”
홀로 남겨진 송재희는 힘든 얼굴로 입을 열었다.
“난 끝장이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