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사한 게임 개발자가 너무 유능함-98화 (98/147)

퇴사한 게임 개발자가 너무 유능함 98화

65. 쟁탈전(4)

오후 반차를 내고 회사에서 멀리 떨어진 고급 횟집으로 이동했다.

별실에 마주 보고 앉는데 어색한 분위기가 맴돌았다.

‘회장님 얼굴이 오늘따라 많이 복잡해 보이시는군.’

유진성 회장의 첫 질문은 다음과 같았다.

“너, 미국 갈 거냐? 아니, 가고 싶냐?”

머큐리 게임즈를 염두에 둔 질문이었다.

“제가 미국 가겠다는 말씀을 드렸던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만…….”

“뻔하지. 머큐리 게임즈에서 제일 높은 조건 제시했을 거 아니냐? 그 회사가 원래 통 크기로도 유명했고.”

“…….”

“거기가 규모는 압도적이지만 내부적으로 문제가 많아. 특히 게임 운영과 신규 개발 쪽에서. 그런 곳이니 능력이 확실히 입증된 너를 무슨 수를 써서라도 데려가고 싶었을 거다. 분명 상상을 초월할 조건을 제시했겠지. 내 말 틀리냐?”

“맞습니다.”

말을 하면서 어색함이 사라졌는지, 본래의 능청스러움이 돌아왔다. 슥 다가와 조심스레 묻는다.

“솔직히 말해봐. 무슨 조건을 제시했어?”

“…….”

“야. 우리 사이에 숨길 게 뭐 있어? 그리고 내가 뭘 알아야 네가 만족할 수 있을 조건을 제시해 줄 수 있을 거 아니냐!”

“……오프 더 레코드 아시죠?”

“날 바보로 아나? 자식아! 내가 이래 봬도 대기업 회장이야! 날 무슨 싸구려 스피커로 아는 거야?”

태연은 한숨을 슥 내쉬곤 솔직히 대답했다.

“연봉 천만 달러. 집, 차, 기사, 비서 제공.”

“……!”

“성과에 따라 주식, 비지분형 인센티브와 기타 상여금 등등 제공.”

유진성 회장의 입이 점점 벌어진다.

상상을 초월했던 것이다.

“개인적으로 제일 마음에 끌렸던 것은 제가 가장 아끼고 챙겨주고 싶은 이들에게 실력에 걸맞은 대우를 해줄 수 있다는 거였습니다.”

몇몇 사람들은 지금 받는 연봉의 배 이상을 받을 자격이 있는 이들이었다. 하지만 회사 내부 구조와 한국 게임 업계 인식의 한계로 그 이상을 지급하는 게 굉장히 힘들었다.

하지만 억대 연봉자가 넘쳐나는 미국 대기업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특히 홍민석 이영애 부부는 각자 연봉 10억 이상을 받아도 충분한 인재들입니다. 하지만 임원급 아니면 3억 대를 넘기는 것조차 힘든 현실이니…… 프로젝트를 하나 더 맡는다고 연봉이 배가 되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음…….”

“이 부분은 아무리 회장님이라도 어쩔 수 없다는 거 알고 있습니다. 내부에서 반발이 굉장히 심할 테니까요.”

태연도 이런 이유들 때문에 기존 넥플 대표들이 받았던 평균치 이상으로 올려주기가 어려웠다.

‘왜 쟤만 저렇게 대우해 줘?’

사람 심리가 그렇다.

저 사람이 그만한 공을 세웠기 때문이라고, 아무리 논리 정연하게 설명해도 소용없다.

‘그걸 쟤가 혼자 다 한 거야? 다른 사람들이나 우리는 가만 앉아서 놀기만 했고?’

자신들도 그보다 못한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배가 너무나도 아프고 상대적 박탈감이 너무나도 극심해지기 때문에.

연봉이 100억은커녕, 10억대를 넘기는 경영인의 존재도 그리 많지 않은 현실이다.

업계 분위기가 이러니 태연 본인부터가 어느 정도 수준 이상의 대우를 받는 일이 거북하다.

하지만 미국은 다르다.

일단 시장 규모부터가 남다르니 억 소리 나오는 고액 연봉자들의 숫자도 굉장히 많다.

천만 달러?

그들에게도 충분히 큰 액수지만 능력을 충분히 입증한 상황이라면 크게 문제 될 게 없었다.

수백조 자산가들도 존재하는 마당에…….

끙끙대던 유진성 회장이 탁, 테이블을 내려친다.

그리고 외친다.

“야. 나도 그 정도 맞춰줄게. 아니, 내 지분도 빼서 줄 테니까 어디 가지 말고 나랑 같이 넥플 키우자!”

태연이 깜짝 놀랐다.

“괜찮으시겠습니까?”

“넌 신경 쓰지 마. 그냥 회사만 잘 키워. 그렇게 해주면 나머지는 내가 다 알아서 감당할 테니까. 이 정도면 계속 있어 줄 수 있겠냐?”

그의 눈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무시무시한 박력에 태연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너 지금 고개 끄덕였다? 무르기 없기다?”

“알겠습니다.”

“내가 나 혼자 돈 벌겠다고 이러는 게 아니야. 내 꿈이 넥플을 아시아의 디즈니, 세계 최고의 콘텐츠 회사로 키우는 거였어.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사는 거야. 그걸 이뤄준다면 난 원이 없다. 달라는 거 다 줄게. 회사도 줄 수 있으니까 평생 어디 가지 말고 내 옆에서 같이 넥플 키우자. 응?”

나중에는 애원 조가 되었다.

그것을 보고 태연은 깨달았다.

‘회장님은 꿈에 진심이시구나.’

꿈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것도 던질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이었다.

그것을 확인한 순간.

“알겠습니다. 넥플에 계속 남아 있겠습니다.”

“진짜지?”

“이렇게까지 하시는데, 저도 각오를 보여야죠.”

태연의 눈빛도 번뜩였다.

“회장님이 말하신 대로 저를 도와주신다면, 저 역시 제 인생을 걸고 넥플을 세계적인 게임 회사, 미디어 콘텐츠 회사로 성장시키겠습니다.”

“좋아!”

그는 직접 고급 전통주를 잔에 채워주며 말했다.

“이거 마시면 진짜 무를 수 없으니 마지막으로 잘 생각해 봐. 정말 한국에 남을 건지, 아니면 미국에 갈 건지.”

태연은 주저 없이 잔을 들이켰다.

빤히 보던 유진성 회장이 크게 웃었다.

“그래. 좋다, 좋아!”

근심 걱정을 모두 벗어던진 듯한 얼굴!

“넌 잘하는 일에만 집중해. 나머지는 내가 다 알아서 감당해 줄 테니까.”

“회장님만 믿겠습니다. 그러니까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아주십시오.”

“네가 말 안 해도 그렇게 할 거야. 오늘부터 술 담배 다 끊고 운동도 열심히 할 거다!”

“정말이십니까?”

“얼마나 걸릴지 모르는데, 건강을 유지해야 내 꿈이 이뤄지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거 아니겠냐? 야, 이럴 게 아니라 이 자리에서 각서 쓰자! 너도, 나도 나중에 절대 다른 소리 못하도록! 공증도 받고 다 하자!”

아이처럼 들뜬 모습에 태연 역시 웃을 수밖에 없었다.

다음 날.

태연은 머큐리 게임즈를 비롯, 스카우트 제안을 건넸던 이들에게 연락을 돌렸다.

용건은 다음과 같았다.

“건네주신 제안은 고맙지만 전 한국에, 이 회사에 남아 있겠습니다.”

특히 머큐리 게임즈는 몇 번이나 거듭 제안을 했다.

쉽게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으니 태연이 내심 감동하면서 다음과 같은 제안을 했다.

“그러면 이렇게 하시죠.”

-어떻게……?

공동 개발 제안!

머큐리 게임즈의 숙원은 자사의 이름을 걸고 만든 게임으로 인정받는 것이다.

“판테온과 판데모니움의 개발이 완료되고 서비스가 시작된 이후, 공동 개발팀을 꾸려 서울에 합작 스튜디오를 만드는 겁니다. 그리고 함께 콘텐츠를 개발하는 거죠.”

합작 개발 회사 제안.

“제가 직접 총괄하겠습니다. 어떻습니까?”

머큐리는 버리기 아까운 패였다.

어떻게든 협력 관계를 유지하거나 가능하다면 더 가까운 관계가 되어야 한다.

‘세계 시장 진출의 전략적 파트너로 만들어야 해. 관계를 내가 리드할 수 있다면 더욱 좋고.’

그래서 착안한 아이디어가 합작 개발사 설립!

-굉장히 좋은 아이디어군요! 진지하게 검토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당장 결정을 내리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가, 제가 하는 걸 충분히 지켜보고 확신이 들면 그때 결정하셔도 됩니다.”

-오오……!

얼핏 보면 상대를 배려하는 말처럼 보이지만…….

‘이런 걸 지금 당장 결론짓는 건 성급한 일이지. 나중에 더 좋은 파트너가 등장할 수도 있잖아.’

게임에 칼을 갈고 있는 거대 기업은 머큐리만이 아니다.

그에 준하는, 어떤 면에서는 훨씬 능가하는 글로벌 거대 괴수들이 많다.

그들도 상황에 따라서는 좋은 동맹 관계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태연은 빙긋 웃으며 머큐리 게임즈 부사장에게 말했다.

“우리는 더 좋은 관계로 발전할 수 있을 겁니다.”

* * *

최종학, 박명훈, 한설아.

현재 넥플에서도 요직을 맡고 있는 과거의 개발 동료가 찾아와 말했다.

“우리 오랜만에 점심 식사 좀 같이 합시다.”

“듣고 싶은 말도 좀 있고…….”

“하고 싶은 말도 있고…….”

세 명의 어조로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그렇게 하시죠.”

태연은 이를 승낙하며 첨언했다.

“저도 할 말이 있으니 다른 분도 함께하시면 좋겠군요.”

홍민석, 이영애 부부도 함께하게 된 점심 식사.

“여러분이 궁금한 것은 최근 돌고 있는 이직설에 대한 내용이겠죠?”

“바로 그거야. 사실 나도 궁금했는데 뭔가 아직 정리가 안 된 눈치라서 입 다물고 있었거든. 그런데 최근 형이랑 회장님 표정 보니 뭔가 해결된 듯 보여서…….”

가장 가깝게 지내는 동생인 최종학이었기에 판단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태연은 솔직히 시인했다.

“맞아. 다 깔끔하게 정리 끝났어.”

“그러면 이제 말 좀 해줘. 안 그래도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란 말이지. 형에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일이 어떻게 마무리됐고?”

최종학은 친형제나 다름없는 관계였고 이곳에 있는 이들은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동료들이었다.

‘평생을 함께할지도 모를 이들이니 솔직히 말해주는 게 좋겠지.’

물론 어떤 대우를 받기로 했는지까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겠지만.

“미리 말해두지만 금액적인 이야기는 하지 않을 거야.”

“그야 당연하지. 그런 건 프라이버시잖아! 형도 내가 얼마 받고 있는지는 모를 테…….”

말을 하다 맑고 민망한 듯 머리를 긁적거리는 최종학이다.

“아니지. 이제 대표니까 내 연봉 같은 거 다 알고 있겠네. 아무튼!”

최종학은 하던 말을 마무리했다.

“금액적인 거 빼고, 대략적으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무슨 결정을 했는지 정도만 알려주면 돼. 맞죠?”

“세부적인 사항까지는 알고 싶지 않아요. 우리가 궁금한 건 유 피디님의 행보거든요!”

이영애 AD의 말에 모두 공감하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다면…….”

태연은 그동안의 일들을 대략적으로 설명했다.

퍼블리셔 협상 과정에 있었던 일들.

개인적인 만남. 스카우트 제안…….

담담하게 요점만 풀어 설명했을 뿐이지만 사람들은 그간의 고뇌를 짐작할 수 있었다.

특히 감동받은 부분은 자신들을 더 챙겨줄 수 있기 때문에 제안에 흔들렸다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유진성 회장님이 말씀하시더군요. 달라는 거 다 줄 수 있으니 넥플을 세계적인 게임, 콘텐츠 회사로 성장시켜 달라고. 그게 젊은 시절부터의 꿈이었다고.”

“…….”

“저 역시 마음이 일치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약속하실 정도면, 굳이 머큐리에 가지 않아도 여러분을 챙겨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남기로 결정했습니다.”

경과 설명은 끝났다.

다들 심상치 않은 눈빛을 주고 받는 상황 속에서, 태연은 최종학에게 물었다.

“이 시점에서 내가 가장 궁금한 건 네 입장이다.”

“왜?”

“어떻게 할 거냐? 내 옆에 남아서 같이 회사를 키워볼 거냐, 아니면 일전에 언급했던 것처럼 투자받아서 너만의 회사를 차릴 거냐. 어떻게 할 거야?”

최종학은 넥플에서 가장 많은 돈을 벌어다 주고 있는 게임의 프로듀서였다.

그의 행보는 넥플뿐만 아니라 업계 전체의 최대 관심사였다.

최종학이 입을 뗐다.

“원래는 투자받아서 내 회사 차리는 쪽에 마음이 많이 기울었었는데…….”

태연을 보며 씩 웃는다.

“지금은 마음이 바뀌었어. 형 옆에 남아 있는 게 훨씬 더 재미있을 것 같거든. 더 큰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최종학은 태연이 인정하는 최고의 게임 프로듀서였다.

런칭 첫해 총매출 6,000억!

이것은 앞으로도 깨지기 힘든, 대한민국 게임 사상 최고의 단일 매출 신기록일 터였다.

그가 함께해 준다면 태연 입장에서는 엄청난 아군을 얻는 셈이다.

“그러면 네가 판데모니움 런칭과 디렉팅을 맡아라. 원래 네가 기획 전반을 맡았던 게임이니 잘해낼 수 있겠지.”

“오, 안 그래도 그거 신경 쓰였는데……. 나에게 맡겨 주는 거야?”

“네가 적임자지. 나를 제외하면 그 게임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니까.”

“그야 당연하지.”

“직후에 맡기고 싶은 일이 몇 가지 있는데 그 이야기는 나중에 차차 하기로 하자.

떠오른 것은 머큐리 게임즈와 구두로 약속한 합작 회사였다.

아직 추진 여부는 결정되지 않았지만 만약 이루어진다면…….

‘합작 회사의 대표로 종학이를 앉혀두면 되겠군.’

이들과 함께 이뤄나갈 여러 가지 일을 떠올리며 태연은 씩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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