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사한 게임 개발자가 너무 유능함-97화 (97/147)

퇴사한 게임 개발자가 너무 유능함 97화

65. 쟁탈전(3)

놀랍게도 다음 달 매출도 크게 떨어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올랐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 소식 듣고 결제하는 겁니다. 넥플 해외 계정을 통해서요.”

넥플은 대한민국 최대의 게임 기업.

이미 오래전부터 전 세계 수많은 나라에 게임을 서비스 중이고 공식 홈페이지와 SNS 계정이 연결되어 있었다.

이태영 사업 총괄의 보고가 계속 이어졌다.

“골드 파인애플을 비롯한 해외 스트리머의 라이브 스트리밍과 리뷰가 쏟아지며 입소문을 타는 중입니다.”

그는 당당하게 선언했다.

“엘크로스는 더 이상 흑역사가 아닙니다!”

“오오……!”

임원들에게서 박수가 터져나오려는 찰나.

“흑역사 맞지 무슨…… 그런다고 우리 실책이 지워지나?”

“……!”

“인정할 건 인정하자고. 엘크로스는 분명 우리 실책이 맞아. 송재희 PD만 뭐라고 할 게 아니야. 이번 일은 순전히 태연이 저 녀석…… 그, 이럴 때 젊은 애들이 무슨 표현을 쓰더라.”

옆에 있던 손영상 이사 작게 말했다.

“보통 하드캐리라는 말을 많이 씁니다. 회장님.”

“그래, 맞아! 하드캐리! 이번 일은 태연이 녀석이 혼자서 하드캐리해서 이뤄낸 성과야. 그걸 똑똑히 알아야 해!”

“저 혼자 한 게 아니라 다 같이…….”

“뭐가 혼자 한 게 아니야? 그럼 그 스튜디오 인원들 송재희 PD 시절에는 대체 뭐했는데?”

“그건 송재희 피디의 리딩 문제로 다른 인원들을 탓할 게 아닌…….”

“잘못하면 프로듀서와 최고 경영자들의 책임. 잘하면 모두가 다 함께 잘해서? 야, 그게 정석이라는 거 나도 알긴 아는데 이번 일은 솔직히 네가 다 한 거 맞아. 그냥 엣헴, 헛기침이나 하며 지시만 한 게 아니라 중요 작업을 네가 직접 다 했잖아.”

태연은 아니라고 대답하지 못했다.

사실이었으니까.

그때 한 임원이 말했다.

“그래도…… 부분 유료화였다면 더 크게 성공했을 겁니다.”

일전 부분 유료화 문제로 태연과 얼굴을 붉혔던 임원이었다.

유진성 회장이 혀를 찼다.

“국내 한정이라면 그랬을지도 모르지. 그런데 해외 수출길은 막혔을 거야. 부분 유료화 MMORPG 중에서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린 사례가 있었어?”

“네로 소프트의 신화 온라인 있잖습니까? 그게 지금도 PC 게임 부분 매출 순위 탑 10안에 꾸준히 들고 있습니다!”

사업 총괄 이태영 이사가 나선다.

“그거 90% 이상이 국내 매출입니다. 그중에서도 수억씩, 아무렇지 않게 과금하는 몇몇 헤비 과금러들이 만들어낸 성과고요.”

“…….”

“그리고 신화 온라인의 매출은 정확히 4년 전부터 꾸준히 하락세에 접어들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를 아십니까?”

“그, 글쎄요……?”

“매출 올려주던 헤비 과금러. 고래라고 지칭되는 이들도 질린 겁니다. 최소한 현상 유지라도 해주면 좋겠는데 매출 올리겠다며 계속 뻘짓을 하니까요.”

“…….”

“물론 지금까지 벌어들인 수익만 놓고 보면 대단한 게 맞지만…… 그건 신화 온라인으로 족합니다. 우리는 세계 시장을 노려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유태연 대표의 개발 철학을 존중할 필요가 있어요.”

모두의 시선이 태연에게 쏟아진다.

“처음으로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게임들이 탄생했습니다. 이 기조를 이어가야 해요. 더 투자를 해야 합니다. 그게 우리의 살길이에요.”

이태영 이사의 말에 손영상 이사를 비롯한 몇몇 임원들이 박수를 보냈다.

적극 지지하고 공감한다는 제스처였다.

“으으…….”

이같은 분위기에 해당 임원은 억울해 죽겠다는 얼굴읻지만 일단은 입을 다물었다.

태연이 입을 열었다.

“저는 부분 유료화를 완전히 버릴 생각은 없습니다. 해당 BM을 추구하는 이들도 많고, 선만 잘 지키면 개발사와 유저, 모두에게 좋게 적용될 수 있으니까요.”

“그, 그렇죠?”

“실제 우리 회사에서 가장 큰 수익을 내고 있는 게임이 바로 최종학 PD가 담당하고 있는 일본 IP의 모바일 게임 아닙니까? 이외에도 많은 부분 유료화 게임들이 나름의 성과를 내며 존재감을 드러내는 중입니다. 모두 우리 회사의 큰 자산이자 기둥이라고 할 수 있죠.”

모두 공감하듯 고개를 끄덕인다.

“가장 좋은 예로 최종학 피디는 부분 유료화, pay to win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보란 듯 이겨내며 국내외에서 많은 마니아들을 양산하는 중입니다. 그리고 저 역시 부분 유료화 모델의 모바일 게임을 구상 중입니다.”

“오오……!”

“정말입니까?”

“유태연 대표의 부분 유료화 모바일 게임이라니……!”

회의실이 술렁인다.

유진성 회장이 크게 관심 갖고 묻는다.

“그게 정말이야? 지금 발표된 차기작 말고 또 다른 게 있다고?”

“네.”

“장르는?”

“현재 최원목 피디의 디렉팅으로 배틀 시티 2가 비밀리에 제작 중이라는 사실을 모두 알고 계실 겁니다.”

다들 고개를 끄덕인다.

“PC, 콘솔 플랫폼 원본 소스는 해당 팀에게 넘겼고, 제가 따로 모바일 버전 개발을 준비 중이었습니다.”

“아, <배틀 시티 2>가 그러면 PC, 콘솔, 모바일, 세 개의 플랫폼으로 나오는 거야?”

“정확히 말씀드리면 <배틀시티 외전>으로, 사실상 별개의 시리즈가 되는 셈이죠. 그래야 부분 유료화로서 수익 극대화를 노릴 수 있으니까요. 정액제에 거부감이 있는 유저들도 무료로 유입시킬 수 있을 테고요.”

“오오……!”

다들 표정이 밝아진다.

배틀 시티2는 판테온, 판데모니움과 함께 넥플에서 가장 신경 쓰고 있는 신작 게임이었다. 해당 스튜디오는 개발자를 백 명 규모로 늘렸는데, 이 개발과 인사에 태연이 적극적으로 관여하는 중이었다.

직책은 총괄 프로듀서.

“보시다시피 저는 정액제에 집착하고 부분 유료화를 배척하는 그런 사람이 절대 아닙니다. 몬스터 이터는 원래 정액제였고 엘크로스 Re는 해외 시장에서 더 크게 흥행할 수 있는 MMORPG를 만들기 위한 선택이었을 뿐이죠.”

태연의 눈이 확신으로 번뜩였다.

“게임을 BM에 맞추면 안 됩니다. BM이 게임에 맞춰야죠.”

“…….”

“간혹, 재미있는 소식을 듣습니다. 어떤 곳은 개발팀보다 사업팀 힘이 더 강하다더라. 그쪽에서 시키면 입 다물고 따라야 한다더라.”

모두의 이태영을 비롯한 사업 관련 인물들의 눈치를 본다.

“우리 회사는 그런 거 없습니다. 일단 재미있는 게임을 만드는 게 최우선입니다. 여기에 다른 이해관계 따위는 필요 없습니다.”

다들 침만 꿀떡 삼킨다.

마치 이태영 이사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 같지 않나?

그런데.

끄덕.

그가 깊게 공감하듯 고개를 끄덕인다.

이런 상황인데 누가 뭐라고 할 수 있을까?

회의는 그렇게 끝났다.

* * *

드림 소프트, 블레스 재직 시절 태연에게는 한 가지 별명이 있었다.

유지 보수의 달인.

서비스 중인 게임의 유지 보수를 굉장히 잘한다는 데서 붙여진 별명이었다.

“고객으로부터 운영 잘한다는 소리 듣는 비결은 간단합니다. 친절하게, 정확하게, 빠르게!”

거대한 회의실에 운영자들이 모여 태연의 특강을 듣고 있었다.

“물론 여러분들도 그렇게 하고 싶었을 겁니다. 하지만 다양한 돌발 상황들이 그 뜻을 가로막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죠. 개발자들이 저지른 사고를 어떻게든 수습해야 하는 경우라든지, 물론 여러분 본인이 실수를 저지를 때도 있겠고 정확히 이해가 가지 않는 이슈를 처리해야 하는 상황이라든가.”

운영자들은 공감하듯 고개를 끄덕인다.

“이외에 여러분의 열정을 사그라들게 만드는 몇 가지 요소들도 존재할 겁니다. 상대적으로 낮은 연봉과 인센티브, 차별적인 시선들…….”

고개 끄덕이는 속도가 빨라진다.

“그동안 여러 가지로 바빠서 운영 쪽에 많은 신경을 써주지 못해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제 때가 됐고 여력도 어느 정도 생긴 듯하니 운영팀을 전반적으로 개편하겠습니다.”

몇 가지 사항이 발표됐다.

가장 먼저 연봉 인상과 인센티브 제도 개편,

“스타 개발자는 있지만 스타 운영자가 존재한다는 소리는 못 들어 본 것 같습니다. 대우가 박하고 나설 기회도 없고 인식도 상대적으로 안 좋기 때문이겠죠.”

전문 인력이 양성되기 힘든 상황이라는 것이다.

“여러분에게 개발자에 상응하는 대우를 해주겠습니다. 연봉, 인센티브뿐만 아니라 전문적인 게임 운영, 개발 기술을 습득할 수 있도록 게임 개발에 대한 교육의 기회 역시 제공하겠습니다.”

이 한마디가 운영자들을 감동시킨다.

“게임 운영자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갖고 살 수 있도록 만들겠습니다.”

아무리 태연이라지만 홀로 모든 것을 케어할 수는 없는법.

강남 사옥 대표 집무실에 손님이 찾아왔다.

30대 초반의 사내들로, 지극히 평범한 인상이었다.

“아이고 대표님!”

“이렇게 불러주시다니요! 영광입니다!”

태연은 활짝 웃는 얼굴로 다가 한 명씩 꽉 끌어안았다.

“와줘서 고마워요. 재원씨, 우혁씨.”

송재원과 박우혁.

블레스 초창기 시절, 한게돌파 운영을 위해 태연이 직접 뽑아 게임 운영과 게임 기획에 대해 가르쳤던 인물들이었다.

퇴사할 때 넥플에 같이 데려갈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당시 넥플은 일의 양이 많고 욕도 많이 먹는 것에 비해 운영팀에 대한 대우가 박한 편이었기 때문이었다.

인맥을 이용해 그들이 충분히 활약할 수 있고 대우도 최대한 잘 받을 수 있는 회사를 골라 그곳에 입사시켰다.

“조금 늦은 감이 있는 것 같기도 하지만…… 지금이 여러분을 부를 적기라고 생각했어요. 늦게 불러서 섭섭했다면 사과할게요.”

“섭섭한 감정 따위 없어요. 기다려 달라며 채팅창에서 몇 번 말씀하셨잖아요.”

“맞아요. 때가 되면 어련히 다시 불러주실까, 믿고 기다리고 있었어요.”

애초부터 원해서 이직한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두 사람은 때가 될 때까지 각자의 위치에서 조용히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각자의 회사에서 운영 총 책임자가 되었고, 간간이 기획 회의에 참여해 개발 아이디어를 제공하기도 했다.

“두 분 퇴사할 때 반응이 어땠어요?”

“어휴, 말도 마세요. 가지 말라고 뜯어말리고…… 난리도 아니었죠.”

“저는 대표님까지 나서서 말리던데요.”

낭중지추라.

인재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결국 두각을 드러낼 수밖에 없는 법이다.

‘미안하게 됐군.’

하지만 자신도 두 사람이 정말 필요한 시기였다.

태연은 그들이 해야 할 일.

그들에게 바라는 일들을 상세히 풀어준 뒤 당부했다.

“두 분에게 운영 1,2본부를 맡길 테니 확실히 틀을 잡아주세요.”

“믿고 맡겨주신 만큼 최선을 다할게요!”

“절대 월급 루팡 소리 듣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업계 운영팀 최초의 억대 연봉자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 * *

이와 별개로 태연은 해외 퍼블리셔들과 미팅을 가졌고, 그때마다 러브콜을 받았다. 유진성 회장은 이 같은 소식을 보고로 접할 때마다 전전긍긍했다.

‘아무래도 불안해서 안 되겠어. 나도 뭔가 조치를 해야지.’

문제는 어떤 조치를 할 것인가.

‘가장 큰 문제는 머큐리 게임즈야. 그쪽에서 계속 접촉하는 분위기라던데…….’

해당 실무팀이 수시로 회사를 방문해서 게임을 이것저것 만져보기도 하고 브리핑을 받기도 한다.

다른 국가의 퍼블리셔들도 나름 적극적이지만, 머큐리 게임즈는 굉장히 열정적이었다.

‘어떤 제안을 받았는지 알 수 없으니…….’

그래야 그에 합당한 조치를 할 텐데.

‘탁 터놓고 물어봐?’

근래에는 이 문제 때문에 잠도 제대로 오지 않을 지경이었다.

자신이 오랫동안 소원하던 일을 이뤄줄 인재가 드디어 나타났는데, 자칫 잘못하면 눈앞에 빼앗기게 생기지 않았나?

만에 하나 태연이 떠나 버리면 그 여파가 심상치 않을 것이다.

‘그저 사람 한 명 떠나고 마는 수준에서 끝날 일이 아니라는 거지.’

그만큼 지금 업계에서 태연이 보이는 행보는 그야말로 압도적이었다.

결국.

‘아무래도 안 되겠다. 녀석 불러서 술 좀 마시며 대화 좀 진지하게 해봐야겠어.’

혼자 고민해 봐야 답이 나오지 않을 문제.

차라리 모든 것을 터놓고 이야기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았다.

유진성 회장은, 처음으로 손가락을 덜덜 떨며 태연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금주 오후 시간 좀 비워 놔라. 술 한 잔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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