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한 게임 개발자가 너무 유능함 96화
65. 쟁탈전(2)
주말 오후.
강남 한정식집에서 머큐리 게임즈 부사장, 실무팀과 만남을 가졌다.
놀랍게도 태연이 아니라 한국까지 방문한 머큐리 게임즈 측에서 대접하는 자리였다.
“이곳이 굉장히 유명한 곳입니다. 드시죠! 하하하!”
검은 정장이 굉장히 잘 어울리는…… 민대머리의 백인 중년인은 화통하게 웃었다. 그리고 수저를 꽤나 잘 쓰며 잘도 식사를 한다.
“잘 드시는군요. 한국과 연이 있었습니까?
“제 와이프가 한국인입니다.”
“아……!”
“연애 초창기 때 한국 문화를 많이 배웠습니다. 그만큼 많이 방문했고요. 그래서 맛집은 제가 꿰고 있습니다.”
그는 씩 웃더니 한국말로 말했다.
“한국 문화에 대해서도 제가 아내보다 더 많이 안다고 자부합니다.”
굉장히 능숙한 발음!
‘지금까지 이런 걸 철저히 숨기고 있었다니…… 이태영 이사님이 알면 기겁하겠군.’
아마 이런 부분까지는 몰랐을 것이다.
그는 다시 영어로 이야기를 했다.
“한국 최고의 게임 기업, 톱 3라는 넥플, 넷펀즈, 네로 소프트. 이 세 기업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한국 개발 문화에서도요. 이것이 제가 당신을 영입하고자 하는 첫 번째 이유입니다.”
“……?”
“당신은 마치 유나 퀸 같은 사람이거든요. 실력 하나만으로 불합리한 뚫고 당당히 홀로 일어선 영웅!”
여기서 태연은 한 가지 궁금해졌다.
‘윤아가 내 아내라는 걸 알고 저런 식으로 비유한 걸까?’
“저는 이 나라의 개발 문화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도 이미 알고 있죠. 아, 뒷조사를 한 건 아닙니다. 그냥 포털 사이트에 이름 한 번 검색했을 뿐인데 정보가 줄줄 나오더군요.”
“개의치 않습니다.”
‘윤아에 대해서도 알고 있겠군.’
방금 가졌던 의문에 대한 해답이 나왔다.
“태연. 당신은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전 당신이 더 엄청난 일을 해낼 수 있는 게임 개발자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눈이 열기를 띤다.
“작은 중소기업의 평사원이었던 사람이 역경과 고난을 뚫고 마침내 대기업 CEO가 됐다. 거기서 만족하지 않고 개발자로서…… 사실상 망했던 게임을 완전히 바꿔 놓아 크게 성공시켰다. 그런데 그 나이가 마흔도 되지 않았다!”
그는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다.
“한국 기업 문화를 생각하면 이게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일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증명하는 것은 하나. 당신은 게임 개발에 대해서는 초일류라는 거죠. 용병, 집단 운용 능력을 포함해서요.”
계속 칭찬을 듣자니 몸이 간지러워졌다.
그래도 태연은 꾹 참았다.
‘이제야 본론이 나오겠군.’
“연봉 천만 달러에 집, 자동차, 기사, 비서 제공.”
“……!”
“머큐리 게임즈 사옥은 총 두 곳에 있습니다. 뉴욕 허드슨 야드와 실리콘 밸리. 다른 곳도 존재하지만 일단 가장 큰 곳이 두 곳입니다.”
머큐리 게임즈는 전 세계적으로 손꼽힐 정도로 거대한 게임 회사였다. 주로 퍼블리싱과 운영 업무를 담당하긴 하지만 자체 개발도 여러 개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그 규모는 국내 3대 게임 업체를 모두 합친 것보다도 몇 배는 거대한 수준!
‘국내와 비교하면 섭섭하지. 단순히 규모만 놓고 보면 중국 재계 1위 청룡 그룹의 자회사 청룡 게임즈를 압도하는데.’
중국 자본력과 내수 시장 규모를 생각하면 이는 정말 거대한 수치였다.
모 회사 머큐리 닷컴이 아니라 자회사인 머큐리 게임즈 규모가 그 정도라는 것이다.
“이외에 성과에 따라 주식, 비지분형 인센티브와 기타 상여금 등을 확실하게, 두둑하게 챙겨 드리겠습니다.”
눈빛을 번뜩인다.
“머큐리 게임즈를 단순한 퍼블리셔, 운영사가 아닌 최고의 게임 개발 회사로 만들어 주십시오.”
어마어마한 제안!
태연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런 건 세계 최고의 게임 개발자에게나 가능한 조건 같군요. 전 그렇게 대단한 사람은 아닙니다.”
“지금 그 말씀은 대한민국 게임 업계 위상 전체를 낮추는 발언입니다.”
“……?”
“당신은 이 나라 최고 게임 회사의 CEO이자 최고의 게임 개발자 아닙니까?”
“운이 좋았을 뿐, 실력이 정말 그렇게 대단한 건 아닙니다. 저보다 더 대단한 사람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
퍼특 떠오르는 사람은 없었다.
말문이 막힌 태연에게 씩 웃어 보인다.
“그것 보십시오.”
“…….”
“물론, 단순히 개발 능력만 보면 당신과 비등한, 혹은 그 이상 가는 실력자도 분명 존재하긴 할 겁니다. 하지만 회사라는 거대 집단을 잡음 없이 이끌 수 있을 정도의 능력까지 갖춘 사람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지지요.”
“…….”
“시간이 필요하다면 기다려 드리겠습니다. 진지하게 고민해 보십시오. 기다려드리겠습니다.”
물을 마시는 태연의 얼굴은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 * *
이후로도 해외 퍼블리셔들과 많은 만남을 가졌다.
그중에는 중국에서 건너온 청룡 게임즈도 하오란도 있었다.
“오, 오랜만입니다. 하하…….”
잠깐 사이에 서로의 입장이 상당히 변했다.
태연은 굳이 중국에 게임을 서비스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중국이라는 국가와 기업의 특성을 생각하면 사실상 깡패 집단이나 다름없었다.
돈은 그들이 주는 대로만 받아야 하고 현지의 자세한 정보도 공유받지 못하며 기술이고 뭐고 탈탈 털려서 아류작을 만들어 내고 서비스하는 과정을 눈 뜨고 치켜봐야만 한다.
소송?
아무 의미 없다. 중국은 무슨 일이 있어도 자국 기업 편이니까. 가끔씩 옳은 판결을 할 때도 있지만 그건 해당 기업이 공산당 간부들에게 미움을 크게 미움받았을 때 정도였다.
“청룡 게임즈에게 기회를 주신다면……!”
이것저것 열심히 설명한다.
분배율 올려주고 뭐 해주고 저거 해주고…….
‘크게 달라진 건 없군.’
그래도 끝까지 대화를 들었다. 어쨌든 지금은 비즈니스 자리였으니까.
‘내 설득이 먹히고 있어!’
여기에 자신감을 얻은 하오란이 더욱 열정적으로 설득을 이어갔다.
“……여기까지. 어떻습니까? 계약 하시겠습니까?”
대화가 끝날 무렵, 그의 표정과 말투는 또 달라져 있었다.
돈을 원하면 자신들과 계약하라는 것이다.
왜냐면 자신들이 업계 1위고 최고니까!
너희들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오랜 거래 상대였던 우리뿐이니까!
‘중국인들이 모두 그런 건 아니겠지만…… 계속 이런 사람하고만 마주친다는 것은 참 불편한 일이군.’
태연은 일어서며 말했다.
“진지하게 고민하고 답변 드리겠습니다.”
“어? 잠깐만요. 예약해 놓은 곳이 있는데 나머지는 그곳에 가서…….”
벌써 오후 다섯 시가 넘었다.
‘오늘은 윤아와 같이 마트에서 장을 보기로 했지.’
이보다 중요한 일정은 없다.
태연은 한마디로 일축했다.
“이야기는 충분히 들었습니다. 충분한 검토 후 빠른 시일 내에 제안에 대해 답변을 드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태연은 망연자실한 표정의 청룡 게임즈 사람들을 뒤로하고 자리를 떠났다.
* * *
뉴월드 그룹 김종학 부회장 내외와의 저녁 식사 자리.
김종학 부회장이 툭 질문을 던졌다.
“요즘 업계에 너와 관련한 소문이 파다하더라. 머큐리 게임즈 대표가 될지도 모른다며?”
“대표가 아니라 CTO입니다.”
“그거나 저거나.”
“다르죠. 최고 기술 경영자, CEO최고 경영자니까요.”
“네가 잘해서 성과 내면 모회사에서 너를 계속 CTO로 놔둘까? 생각이 있는 놈들이라면 결국 너를 CEO로 추대하고 어디 갈 생각도 못 하도록 이것저것 제시할 거다.”
김윤아가 조심스레 물었다.
“제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그 머큐리 게임즈라는 곳이 정확히 어떤 곳이에요?”
“어떤 곳이냐…… 흠.”
잠시 고민해 보던 김종학 부회장이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뉴월드 그룹보다도 몇 배는 크고 영향력도 굉장한 곳이죠. 우리는 국내에서만 노는 수준이지만 그쪽은 전 세계에서 힘깨나 쓰는 곳이니까요.”
“……!”
“머큐리 닷컴은 알고 있죠?”
“네! 시가총액 1위의 온라인 쇼핑몰 기업이죠? 최근에는 다양한 사업에 손을 대고 있다고…….”
“그곳에서 차기 먹거리로 생각하고 있는 사업이 두 가지 있는데 하나는 OTT를 비롯한 미디어, 또 하나는 바로 게임 산업이에요. 그리고 두 가지 부분에서 엄청난 경쟁력을 갖추며 본인들의 영역을 조금씩 넓혀가고 있는 상황이죠. 최근에는 좀 주춤한 듯 보이지만요.”
“왜 주춤해요?”
“본인들이 큰돈 들여 만들어 서비스한 게임, 혹은 큰돈을 투자한 스튜디오의 차기작 성적이 다 안 좋거든요.”
“아…….”
“CEO를 비롯한 임원들인 게임 개발을 잘 모르는 사업가 출신이기 때문에 게임 회사로서의 성장에 한계가 뚜렷하다는 문제가 제기되는 중이죠.”
“아, 그래서 우리 오빠를 기술 책임자로 영입하려는 것이었군요!”
“맞아요. 저 친구가 게임 만들고 인력 관리하는 것만큼은 기똥 차게 잘하니까요.”
“그렇죠!”
“모르긴 해도 그쪽 분야로는 세계 최고일 겁니다. 그러니까 저런 거대 기업들도 그렇게 나서는 거죠.”
“와아……!”
“태연 씨 이제 보니 굉장한 사람이었네!”
식탁에 앉아 있는 모두가 부담스러운 얼굴로 바라보니 태연은 민망함에 한숨을 내쉬었다.
김종학이 이런 분위기에 계속 불을 지폈다.
“그쪽에서 무슨 제안 했어?”
아주 잠깐 고민하다가 사실대로 말했다.
“연봉 천만 달러에…….”
줄줄 쏟아지는 제안에 다들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번만큼은 김종학 부회장도 마찬가지였다.
“아주 그쪽에서 작정을 했구나. 널 반드시 영입해야 할 인재로 보고 있어.”
“그런 것 같았습니다.”
“어떻게 할 거야?”
“일단 생각 좀 해보겠다고 대답은 했지만…….”
“나 같으면 무조건 받는다.”
“……네?”
예상치 못한 대답에 태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너 언제까지 남 좋은 일만 시켜줄 거냐? 이거 하나만 생각해 보자. 네 덕분에 진성이 형님 재산이 몇 배로 불었을 것 같아?”
“…….”
“그에 비해 넌 연봉이 꼴랑 6억이야. 네 회사라는 넥플 엔터테인먼트도 사실상 그 형님 회사 아니냐? 투자 지분이 너무 높아서.”
“…….”
“그 형님 입장은 이해해. 성과를 반영해서 내년 재협상 때 걸맞은 대우를 해주겠다! 이걸로 부족할 수도 있으니 지분도 적당히 나눠 줄게! 그런데 이게 한계가 있어. 넥플 CEO 연봉 100억? 야,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냐?”
“일단…… 무슨 CEO 연봉이 그렇게 많냐며 주주들이 뭐라고 하겠죠.”
“그렇지. 그게 가장 큰 문제지. 참고로 작년 기준으로 100억 찍은 CEO가 꼴랑 두 명이야. 그나마도 전문 경영인이 아니라 오너 일가였고.”
“아…….”
“5억 넘긴 사람이 800명 정도 된다던데…… 업계 평균이 그 정도라는 거야. 너는 신임 CEO니 딱 그 정도에 맞춰준 거고. 그런데 100억? 야, 이거 말 엄청나게 나온다. 장담한다.”
“…….”
“두 번째는 그 형님이 그렇게 많이 챙겨줄 위인이 아니라는 거야.”
“네?”
“넥플은 진작 더 크게 성장할 수 있는 회사였어. 그런데 네 부임 전까지는 계속 그대로였지. CEO 자리도 공석이었고. 이유가 뭘까?”
“……?”
“그만한 대우를 못 받았다고 생각했으니 그런 게 아니겠냐? 그리고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넥플 CEO 자리가 참 위험한 곳이야. 아마 거기가 서성그룹 제외하면 우리나라에서 제일 욕 많이 먹는 회사일 거다.”
그 말에는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담당하기 전까지 넥플은 온 천지가 욕투성이었다.
대한민국 게임이 발전하지 못하는 이유는 네로 소프트와 넥플 때문이었는데 특히 넥플이 더 암적인 존재라고 했다.
Pay To Win의 알파이자 오메가였기 때문이다.
근래에는 태연이 이 같은 문제점들을 전반적으로 뜯어고치는 움직임을 보여 환영을 받고 있지만 이전까지만 해도 독이 든 성배 취급을 받던 곳이었다.
“심지어 거기가 내부 정치도 심하고 유 선배 눈치 심하게 볼 수밖에 없는 곳이잖아. 안 그러냐?”
“영향력이 좀 세긴 하시죠.”
“좀 센 수준이 아니라 신이지 뭐.”
“…….”
“널 마음에 들어 해서 많이 챙겨주고 밀어주고 엉덩이 토닥토닥 해주고…… 그런데 그러면 뭐해? 저쪽은 연봉이 천만 달러에서 시작하잖아. 심지어 애플 CEO가 받는 우대 조건, 다 해주겠다고 약속했다며?”
“잘했을 때 그렇게 해준다는 거였습니다.”
“넌 잘할 거니까 하는 말이지.”
“…….”
“머큐리 게임즈는 노는 물이 달라. 야, 솔직히 내가 네 입장에서 그런 제안 받았다면 당장 이민 수속 절차부터 알아봤다. 더 큰 물에서 놀고 싶지 않냐? 바다 놔두고 어항에 있을 거야?”
“그런데…… 만에 하나, 제가 떠나 버리면 형님 테마파크 사업은 어쩝니까?”
“그건 미국이랑 한국 오가면서도 할 수 있는 일이잖아. 뭐가 문제야?”
“…….”
“머큐리 게임즈라면 네가 해달라는 거 다 지원해 줄 거다. 천문학적인 개발비, 각 분야 세계적인 인재들…… 심지어 네가 아끼는 인재들을 데려가서 엄청난 보상을 제시할 수 있어.”
마지막 말은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이었다.
제일 먼저 떠오른 사람들은 홍민석, 이영애 부부.
‘확실히 능력에 비해 대우가 박한 감이 있지.’
“그리고 미국이 어떤 곳이냐? 세계의 경제와 문화를 움직이는 거물급들의 메인 필드 아니냐? 그곳이라면 제수씨가 하고자 하는 목표에 더 큰 도움을 줄 수가 있지. 머큐리 게임즈에 성공적으로 정착하면 충분히 가능해!”
태연의 시선이 반사적으로 김윤아에게 향했다.
‘확실히…….’
김종학 부회장이 씩 웃는다.
“형으로서 내가 아끼는 동생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하는 조언이야. 잘 생각해 봐.”
‘내 사람들을 더 챙겨줄 수 있다고……?’
태연의 마음이 처음으로 크게 흔들리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