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한 게임 개발자가 너무 유능함 95화
65. 쟁탈전(1)
[엘크로스 Re 런칭 첫 월 매출 500억 대박!]
[수십만 명의 유저가 선택한 게임!]
[스타일리쉬 액션 MMORPG 엘크로스 Re. 요즘 이 게임 모르면 회사와 학교에서 왕따!]
“하하하!”
회의실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유진성 회장은 여느 때보다도 흥분된 얼굴로, 책상은 탕탕 내려치며 말했다.
“내가 유 대표 밀어줄 때 다들 뭐라고 했어? 정액제는 이미 도태된 BM이라며, 지금이라도 말려보라며 정신 나간 노인네 취급했었지? 엉?!”
“……!”
찔리는 게 있던 임원들은 시선을 피한다.
“그런데 이거 봐. 일 매출 70억. 월 매출 500억 이상! 이 정도면 결과로 증명한 거 아니냐? 내가 보기에 올해 안으로 개발비, 홍보비 다 뽑고 남을 것 같은데…….”
그의 시선이 사업 총괄 이태영 이사에게 향한다.
“내 말 틀리냐?”
“올해가 아니라 이번 분기 안으로 뽑고도 남을 것 같습니다.”
이태영 이사의 눈 역시 유진성 회장 못지않게 흥분으로 가득했다.
“지금 어디를 가든 엘크로스 Re에 대한 이야기뿐입니다. 그냥 히트한 수준이 아니라 메가 히트라고 봐야 합니다. 그리고 이 정도 퀄리티에 정액제라면…….”
목소리가 살짝 떨린다.
“세계시장에서도 승산이 있다고 봐야 합니다.”
“그렇지! 왜냐면 해외에서는 아직도 정통 MMORPG에 대한 수요가 굉장하거든!”
“그것도 그렇지만 BM이 그야말로 완벽한 정액제라는 게 큽니다. 해외, 특히 북미 쪽 유저들은 부분 유료화 모델을 Pay To Win이라고 부르며 질색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건……!”
누가 반박하려 하자 재빨리 보충한다.
“MMORPG를 선호하는 수요층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반문하려던 이의 입이 다물어진다.
유진성 회장이 물었다.
“지금 해외에서 우리 게임에 대한 반응이 어떠냐?”
“좋습니다. 특히 일본, 중국, 대만, 북미 지역에서의 반응이 심상치 않습니다. 사실 500억 매출 중 해외 유저들이 적잖은 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뭐? 정말? 아직 번역도 안 했잖아!”
“하고 싶으니까 하는 거죠.”
이태영 이사가 마치 친아들을 보는 얼굴로 태연을 바라본다.
“이번에 안 사실인데, 이 게임이 한국어를 몰라도 내용을 파악할 수 있도록 잘 구성되어 있더군요. 인터페이스도 쉽고 직관적으로 잘 되어 있고요. 그 덕분에 언어를 몰라도 게임하는 데 문제가 없어서 많은 유저들이 접속 중이랍니다.”
“오호. 그래?”
“그렇습니다. 특히 골드 파인애플이라고, 미국의 세계적인 게임 스트리머가 있는데 OBT 초창기부터 우리 게임에 큰 관심을 보이며 중계를 하던 게 제대로 먹혔습니다.”
“골드 파인애플? 무슨 이름이 그러냐?”
“부모님이 골드 파인애플 농사를 해서 그렇게 지었다더군요. 구독자 수도 굉장하고 실시간 시청자 수도 어마어마한…… 정말 초대형 스트리머입니다.”
“그런 사람이 우리 게임을 플레이한다는 거지?”
“네. 지금도 아마 라이브 스트리밍을 하고 있을 겁니다.”
“그래? 야, 틀어봐! 빔 프로젝트 있잖아!”
잠시 후 회의실 빔 프로젝트로 골드 파인애플 스트리머의 방송이 켜졌다.
금발을 길게 늘어뜨린 백인 꽃미남이었는데, 그는 기사로 파티 플레이를 펼치는 중이었다.
-내가 이 게임 때문에 기존 하던 게임 모두 접었다고! 이유? 지금 보이지 않아? 손맛! 바로 이거라고. 이 게임이 MMORPG에 굉장히 충실하면서도 대전 액션 게임 못지않은 전투 조작감을 구현하는 데 성공했단 말이야! 시나리오도 좋고 그래픽도 끝내줘. 연출은 말할 것도 없어. 그리고 정액제야! 안 할 이유 있어?
쉬지 않고 떠드는 입으로, 엘크로스 Re에 대한 극찬을 쏟아낸다.
유진성 회장과 이태영, 손영상 이사는 흐뭇한 미소를 띤 채 지켜본다.
유진성 회장이 말했다.
“라이브 스트리밍에 후원 기능 있지? 돈 좀 넉넉히 쏴라. 저 친구 마음에 드네.”
“그런 것도 아십니까?”
“야, 내가 명색이 게임 회사 회장이야. 그런 것도 모르면 이 자리에 있을 자격이 없지 않겠냐?”
“역시 회장님. 대단하십니다.”
“아부 집어치우고 빨리 후원 좀 해. 저 친구 게임이 뭔지 아는 친구야. 마음에 들어.”
이태영 이사는 과감하게 만 달러를 후원했다.
대형 스트리머인 그에게도 결코 적지 않은 금액이었을 텐데 반응이…….
-엌! 중요한 순간이었는데 이게 뭐야?! 아! 안 돼! 잠깐만! 이거 무효야! 무효…… 아아악악!
화면을 가렸다며 비명을 지른다.
돈보다 플레이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재미있는 친구네. 허허허.”
빔 프로젝트를 종료하고 유진성 회장이 물었다.
“태연아, 해외 수출 빨리빨리 진행시키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어떻게 하고 있어?”
“해외 퍼블리셔와 계약을 마치는 대로 바로 작업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아직 계약 안 끝냈어?”
“상세 조건을 조율 중입니다.”
담당인 이태영 이사가 받았다.
“해외 대형 퍼블리셔들 공통점이, 게임을 자기 마음대로 주무르고 서비스도 무책임하게 엉망으로 하려는 경향이 강합니다. 더욱이 먼저 제안을 걸어온 회사들 대부분이 유 대표가 디렉팅했거나 준비 중인 차기작도 같이 넘겨받고 싶어 해서…….”
“구체적으로 어떤 걸 말하는 거야?”
“아틀란시아, 판테온, 판데모니움 세 가지입니다.”
“아틀란시아야 뭐 이미 보여주는 게 있으니 그렇다 치고, 판테온과 판데모니움은 출시되려면 멀었잖아.”
“유 대표가 그동안 디렉터로서 보여준 게 있고 이번 엘크로스 Re에서 방점을 찍으니 믿음이 생긴 모양입니다. 특히 판테온에 기대가 크더군요.”
“그건 그럴 만하지. 무려 우리 회사의 비밀병기잖아.”
부담스러운 시선에 태연은 가볍게 헛기침을 터뜨렸다.
“유 대표가 정말 고생 많이 했습니다. 대단한 일을 해냈고요. 회사 차원에서 확실히 보상을 해줘야 합니다. 어디 못 도망가게 묶어놔야죠.”
태연을 향한 이태영 이사의 발언과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그것을 감지한 유진성 회장의 눈이 가늘어졌다.
“뭐야, 나 모르는 사이 무슨 일 있었어?”
“아무 일 없었습니다.”
태연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부정했지만…….
“이 이사가 아무 이유 없이, 그것도 이런 공석에서 설레발 칠 사람이 아니야. 무슨 일 있지?”
“정말 아무 일 없었습니다.”
“흐음…….”
미심쩍게 바라보던 유진성 회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회의 여기까지만 하자고. 다들 나가 봐. 손, 이만 나 따라오고.”
유진성 회장 개인 집무실에 손영상, 이태영 이사가 모였다.
유진성 회장이 목소리에 힘을 줬다.
“자, 이제 말해봐. 아까 그 이야기 대체 뭐야?”
“이번에 접촉해 온 회사들 공통점이 뭐냐면 태연이가 우리 회사에서 직접 디렉팅한 게임 모두를 원한다는 겁니다.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차기작을 포함해서요. 그게 무슨 뜻이겠습니까?”
“태연이를 그만큼 높게 평가한다는 뜻이겠지.”
“그 해외 퍼블리셔 대다수가 우리 회사보다 훨씬 몸집이 큰…… 진정한 의미의 공룡 기업들입니다.”
“서론 집어치우고 본론만 말해. 어디야? 어떤 놈이 태연이에게 눈독을 들이는 거야?”
“머큐리 게임즈에서 태연이에게 CTO직을 제안했습니다. 백지수표를 내밀면서요.”
“……!”
그 자리에 있던 유진성 회장, 손영상 이사가 화들짝 놀라 태연을 바라본다.
“머큐리 게임즈?”
“으음……!”
심상치 않게 변하는 표정.
이태영 이사의 목소리도 진중해졌다.
“머큐리닷컴이 뭐하는 기업인지는 잘 아시죠?”
“이게 날 바보로 아나. 시가 총액 세계 1위의 인터넷 플랫폼 기업이잖아.”
머큐리 닷컴.
온라인 쇼핑몰로 시작해 전 세계 오프라인 소매시장의 강자들을 줄줄이 나락으로 보내고 종합 물류, 게임, 소프트웨어, 클라우드, 드론, 자율주행 차량 등등. 안 건드리는 게 없는 공룡 기업으로 성장했다.
서버 임대 분야에서도 압도적 1위를 고수하고 있고 수많은 게임을 전 세계에 배급,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머큐리 게임즈 부사장이 실무단을 직접 끌고 한국까지 찾아왔었습니다.”
“그랬어? 그러면 퍼블리셔를 머큐리 게임즈로 정한 거야?”
“조율 중입니다만 인프라, 제시 조건…… 모든 면에서 타 압도적인 조건을 제시했기에 계약이 진행될 것 같습니다. 아무튼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거기 부사장이 현장에서 스카우트를 제안했었습니다.”
유진성 회장이 분통을 터뜨린다.
“덩치도 크고 돈도 많고 인재도 이미 많이 확보했으면서 왜 남의 인재를 탐내는 거야? 뭐가 부족해서? 머큐리 게임즈에 비하면 우리 회사는 사실상 구멍가게나 다름없는 수준인데…….”
“에이, 아무리 그래도 우리 회사가 그 정도는 아니죠. 구멍가게가 뭡니까?”
“시끄러워! 아무튼, 그래서 어떻게 됐어? 태연이가 제안 수락했어? 그게 아니면 생각해 보겠대?”
“아니요. 거절했습니다.”
“뭐야…… 그랬어?”
“네. 태연이 이 녀석 굉장히 단호하더라고요. 오죽하면 저를 포함해서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당황했으니까요.”
당장에라도 상대를 잡아먹을 기세였던 유진성 회장의 표정이 풀어진다.
“그러면 끝난 거 아니야?”
“그쪽에서 백지수표를 내밀었습니다. 원한다면 지분도 쪼개서 주겠다며…….”
“뭐라고? 백지수표? 지분?!”
다시 펄쩍 뛰는 유진성 회장.
벌게진 얼굴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그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뭐야?! 우리 쪽에 온 지도 얼마 안 됐는데……!”
“그 얼마 안 된 시간 동안 보여준 퍼포먼스가 워낙 압도적이었으니까요.”
“뭐?”
“그리고 우리 회사에서 받고 있는 연봉이라고 해봐야 넥플 엔터테인먼트 2억 포함해서 6억 아닙니까?”
“처음부터 10억 이상을 줄 수도 없는 노릇 아니냐. 일단 CEO 업계 평균 정도로 맞춰서 시작해야 뒷말이 없으니까 그렇게 책정한 거지.”
현재 국내 게임 업계에서 태연의 위상은 스타 개발자 그 이상이었다. 처음에야 우려가 많았지만, 현시점에서는 절대 놓쳐서는 안 될 핵심 인재로 되어 있었다.
유진성 회장이야 이렇게 되리라는 걸 믿고 있었고 처음부터 좋은 대우를 해주고 싶었지만 세상일은 순서라는 게 있는 법 아닌가?
“이번에 누가 뭐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좋은 성과를 냈으니 내년 협상 때 그에 합당한 대우를 해주려고 했어.”
그런데 멀찍이서 지켜보던 업계 공룡들이 갑자기 몰려든 것이다.
태연이라는, 업계에 보기 힘든 스타 개발자이자 경영 능력도 갖춘 인재를 자기편으로 만들기 위해.
“아니,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태연의 위상이 왜 갑자기 이렇게 높아진 거야?”
“그거야 넥플 주가만 봐도 알 수 있는 일 아니겠습니까? 태연이가 대표로 취임한 직후부터 주가가 줄곧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리며 치솟는 중인데요. 특히 이번 엘크로스 Re 매출 대박으로 미친 듯이 널뛰기하는 중입니다.”
이태영이 말했다.
“연봉 6억짜리 CEO가 정말 어마어마한 일을 해내고 있다는 거죠.”
“야이…… 그렇게 말하면 내가 악덕 회장이 된 것 같잖아!”
“아무튼 모든 것은 시장 상황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게임 프로듀서뿐만 아니라 경영자로서도 능력이 특출나요. 태연이가 회사를 담당하고 짧은 사이에 직원들의 평가가 완전히 반전됐습니다. 요즘 업계인들이 다들 우리 회사에서 근무하고 싶어 해요.”
“으음…….”
“특히 요 근래 부실 운영으로 엄청나게 지탄을 받고 있는 머큐리 게임즈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영입해야 할 인재로 비춰졌을 겁니다.”
“머큐리 게임즈는 그렇다 치고, 다른 회사 상황은 어때? 태연이 탐내는 게 거기 하나뿐만은 아니라면서.”
“스웨덴에 본사를 둔 유럽 최대의 게임 기업 엠파이어스에서 저와 있을 때는 대놓고 말은 안 했지만 따로 만남을 갖자고 했으니 아마…….”
“야! 그걸 가만 놔두면 어떻게 해? 걔들 얼마나 탐욕스러운 애들인데 무슨 짓 할 줄 알고……!”
“그러면 제가 뭐 어떻게 합니까? 따로 만나서 술 한잔 하고 싶다고 요청하는데.”
“그래도 인마……!”
“아마 저 모르는 동안, 여러 곳에서 접촉을 해왔을 겁니다. 어쩌면 머큐리 게임즈 이상으로 상상을 초월하는 곳에서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