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사한 게임 개발자가 너무 유능함-94화 (94/147)

퇴사한 게임 개발자가 너무 유능함 94화

64. 이제 진짜 시작이다

엘크로스는 본래 부분 유료화 모델이 적용된 게임이었다. 하지만 실패했다. 부분 유료화라서? 천만에, 그냥 게임이 재미없어서였고 이는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이다.

엘크로스 Re 내부 테스트 반응은 놀랄 만큼 좋았다.

그런 상황에 해당 게임을 정액제로 서비스하겠다고 발표했을 때 모두가 놀랐다.

국내 게임 업계에서 정액제는 사실상 도태된 비즈니스 모델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를테면 월세와 같다.

누가 한 달 동안 계속 돈을 지불하면서 살고 싶을까? 내 집 마련, 최소한 전세를 살고 싶지.

플레이를 대가로 한 달에 고정 비용을 지출해야 한다는 것은 적잖은 부담 요소였다.

부분 유료화 모델이 흥하고, 정액제가 도태된 결정적 이유였다.

부분 유료는 베이스가 ‘무료’였으니까.

사람이 무료를 좋아하는 건 당연한 습성 아닌가?

이런 위험 요소를 근거로 든 만류에도 불구, 태연은 결국 정액제를 추진했다.

“부분 유료화는 결국 게임의 세계관 설정까지 망가뜨릴 수 있습니다. 이는 몰입감을 크게 해치고 완성도를 떨어뜨리는 요소입니다. 유저를 계속 붙잡아둘 수 있다면, 완성도를 떨어뜨리지 않고 안정적 수입을 얻을 수 있는 정액제는 분명 큰 장점이 될 수 있습니다.”

여기서 포인트는 유저를 계속 붙잡아두는 것.

그리고 이것이 가능하려면 세계관, 메인 시나리오를 기반으로 한 각종 콘텐츠의 완성도를 유지하며 몰입도를 끌어올리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것이 가능하려면 정액제가 필수였다.

부분 유료화 모델로 캐시 아이템을 판매하다보면 정말 온갖 디자인의 모델들이 출시된다.

중세 배경에 스팀펑크 디자인의 무기, 혹은 SF 스타일의 바이크, 자동차 같은 것들이 지나다니게 되는 것이다.

태연이 이것이 너무나도 끔찍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시작한 건 아니지만, 어쨌든 내 이름으로 손을 대고 런칭한 게임에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지.’

내가 만드는 게임이 시간이 자났을 때 흐름에 뒤쳐진 ‘구식’ 따위가 아닌 ‘클래식’으로 남을 수 있기를.

그래서 미국인들에게 스타워즈가 그러하듯, 모든 세대가 함께 공감하며 계속 사랑할 수 있는 게임이 되기를.

이것이 온라인 MMORPG 엘크로스 Re에 정액제를 도입한 근본적인 이유였다.

* * *

신념을 갖는 것은 좋다.

그러나 그것이 불이익을 초래해서 집단이 해를 끼친다면 차라리 없는 것만 못한 결과가 나올 수 있다.

‘그러니까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태연이 엘크로스 Re의 재런칭에 갖는 근본적인 부담감이었다. 게임에 대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신념과도 직결된 문제였다.

이것을 지켜가며 계속 게임 개발자로 활동할 수 있기 위해서는 신념에 상응하는 결과가 나와야 한다.

‘첫달 매출이 중요해. 앞으로의 흥행 분위기를 좌우할 테니까.’

뒤늦게 반응이 와서 갑자기 급부상하는 경우도 있지만 정말 흔치 않은 일이다. 그런 걸 기대해서는 안 된다. 정석은 첫 매출에서 모두를 놀라게 만들 수 있을 정도의 결과가 나와야 하고, 그것을 토대로 해외 대형 퍼블리셔들과 접촉해서 유리한 방향으로 런칭을 진행하는 것이다.

* * *

정식 서비스 전.

유진성 회장이 물었다.

“너 엘크로스 Re 희망 성적을 어느 정도로 잡고 있냐?”

회의실 내 임원, 프로듀서들의 시선이 태연에게 주목됐다.

태연은 담담하게 말했다.

“동접 7만 명에 월매출 50억입니다.”

여기저기서 탄성, 혹은 탄식이 터져 나왔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중얼거리기도 했다.

“목표가 너무 소박한 거 아니야?”

유진성 회장이 이태영 사업총괄 이사를 보며 말했다.

“너는?”

“100억 이상!”

이번에는 탄성이 대부분, 고개를 끄덕이며 깊이 공감하는 이들도 있었다.

최소한 그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유진성 회장의 얼굴이 흥미진진해졌다.

“이렇다는데, 어떻게 생각해?”

태연은 회의실 내 임원들의 표정을 살폈다.

실망, 기대감, 무언의 책망 등등. 다양한 감정이 섞여 있었다. 손영상 이사의 경우 지금이라도 빨리 목표를 상향하라는…… 말은 안 했지만 분명 그런 의미를 담긴 표정을 보내고 있다.

“대박은 특정 개인의 역량만으로 어찌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닙니다. 운이 크게 작용해야 가능한 거죠. 제가 희망하는 목표치는 최대한 현실을 반영한 겁니다.”

“하지만 월 수천억도 버는 게임이 있는데…….”

누군가의 반문이었다.

태연은 그를 보며 말했다.

“그런 건 부분 유료화 모델을 적용한 모바일 게임이 대부분이죠.”

“그러니까 제가 하고 싶은 말이 그거예요. 우리도 부분 유료화를 적용했어야 했다니까요?”

그의 표정이 사납게 돌변했다.

“정액제는 이미 도태된 모델이라고 제가 몇 번을 말하지 않았습니까? 그 잘난 네로소프트에서조차도 정액제로 런칭했던 게임들을 불과 몇 년 만에 부분 유료화로 변경했어요. 정말 돈을 많이 벌고 싶었다면 부분 유료화로 했었어야죠!”

많은 이들이 그의 주장에 공감한다.

사실 현시점에 정액제를 주장하는 사람은 태연 한 명뿐이고, 이를 대놓고 지지하는 이들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연이 정액제를 추진할 수 있었던 것은 세 가지 이유였다.

대표이사였고, 게임 총괄 프로듀서였으며 몬스터 이터라는 정액제 게임으로 대박을 낸 경험이 있었다.

오픈 첫날 100억이라는 기록은 지금도 업계에서 회자되고 있는 전설적인 기록이었다.

태연의 침묵이 불편하게 느껴졌던 걸까?

“후우.”

그는 사나운 표정을 풀고 다시 설득을 시작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부분 유료화로 진행합시다. 벌 수 있을 때 벌어야죠. 그게 아니면 최소 몬스터 이터 정도의 매출은 보장해 주시던가요. 그 정도는 해야 우리 회사의 면이 섭니다.”

기업은 돈을 벌어야 한다.

이 지극히 단순한 진리를 생각하면 그의 설득은 나름 타당했다. 현시대에 돈을 많이 버는 게임은 대부분 부분 유료화를 적용한 게임이었다.

미친 듯이 돈을 쓰도록 만들고, 그것으로 유저를 붙잡아 두는 그런 게임들이 매출 순위를 장악 중이었다.

자신을 향한 시선들, 그 속에 담긴 분위기를 읽은 태연이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제 리딩이 탐탁지 않은 모양이군요.”

“아, 그, 그게 아니라…….”

기미는 예전부터 있었다.

자신들을 제치고, 애송이에 불과한 자신이 대표가 된 순간부터 적대감, 경계 같은 감정들은 더욱 심해졌다.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으려고 하거나, 감정을 흔들어 실수를 유발시키는 등의 방식으로 견제를 해오고 있다.

이런 것 하나 하나가 스트레스였다.

꼬우면 내려놓고 꺼지라는 의도일 수도 있겠다.

‘오래 해먹을 일은 아니군.’

아무리 팔찌의 힘으로 변했다고는 하지만 천성은 게임 마니아였다. 이런 정치 싸움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딱 질색이었다.

‘그렇다고 의도대로 끌려가는 것은 사양이야.’

태연이 허리를 펴고 물었다.

“여기서 저보다 게임 잘 만드는 사람 있습니까?”

“무, 무슨…….”

“저보다 게임 개발 잘하는 사람이 있고 성공 경력도 많은 분이 있다면 그분이 저보다 전문가라는 거겠죠. 그렇다면 그 충고를 따르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어디 말해보시죠.”

태연의 지독스러울 정도로 싸늘한 눈빛, 묵직한 카리스마가 회의실을 얼려 버렸다.

“저보다 게임에 대해 잘 아는 사람 있습니까?”

그럴 리가.

그런 사람이 왜 여기서 머리 아프게 신경전이나 벌이고 있겠나.

넥플 개발 총괄, 손영상 이사마저도 입을 닫고 있는 마당에 개발에 손조차 대보지 않은 이들이 뭐라고 할 수 있을 리 없다.

“없군요. 그렇다면 제가 여기서 게임 개발 최고 전문가라는 뜻이겠죠?”

“……!”

태연은 자신에게 조언한 임원을 똑바로 보며 일갈했다.

“제가 넥플 간판 프로듀서이며 최고 디렉터이고 또한 대표이사입니다. 제가 베이스를 만들어 공유하면 그것을 바탕으로 전략을 짜고 최선의 업무를 수행하도록 하세요. 그것이 바로 여러분이 이 자리에 있을 이유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으으…….”

창백하게 질리는 얼굴.

볼살이 푸들푸들 떨린다.

분노와 수치심이 섞여 있었다.

태연은 차갑게 그를 외면하고 말했다.

“최선을 다해 만들었고, 분명 좋은 게임입니다.”

그리고 임원들을 대상으로 강하게 말했다.

“성공 못 하거나, 매출이 기대치에 미치지 못한다면 여러분의 무능 탓입니다. 그리고 저는 무능하고 스스로의 능력을 증명하지 못한 주제에 월급만 축내는 무능력자를 가만 놔두지 않습니다.”

북풍한설이 그들의 심장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능력을 증명하세요. 계속 저 혼자 원맨쇼 하게 만들지 말고. 알겠습니까?”

* * *

[정식 서비스 시작! 엘크로스 Re 런칭 첫 일매출 70억, 순항 시작!]

[위기를 기회로! 엘크로스 Re 첫날에 수십만 유료 구독자가 몰리다!]

[스타 개발자 유태연. 스스로의 가치를 다시 한번 증명하다!]

태연의 기대치를 한참 상회한 금액이었다.

‘월 매출 50억을 기대했었는데…….’

불과 하루 만에 목표액을 넘어 버렸다.

사방에서 축하가 쏟아졌지만 태연은 무덤덤했다.

‘이제 시작일 뿐이니까.’

소식을 접하고 들뜬 스튜디오 직원들에게도 한마디 했다.

“다들 소식을 접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일 매출이 예상치를 한참 뛰어넘은 성과가 나왔습니다.”

아직가지는 모두의 얼굴에 설렘이 그득했다.

“수고했다는 말은 아끼겠습니다.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니까요. 왜냐면 그만큼 우리 게임에 대한 기대치가 높다는 뜻인데 그것을 조금이라도 충족시켜 주지 못한다면…….”

여기서부터 진지한 분위기가 맴돌았다.

“이제부터는 테스트가 아닌 정식 서비스입니다. 돈을 받고 상품을 판매하는 입장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이어진 말이 현실을 일깨워준다.

“더 이상 유저들은 너그러워지지 않을 겁니다. 이제는 테스터가 아닌 소비자 입장이 되었으니까요.”

고요한 분위기.

“그동안의 고생과 결과에 상응하는 보너스가 지급될 겁니다. 잠깐은 기쁘겠죠. 하지만 곧 부담감과 책임감을 느끼게 될 겁니다. 지금의 대우를 계속 받으려면, 점점 높아지는 유저들의 요구치를 충족시켜 줘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테니까요.”

태연이 엄숙하게 말했다.

“좋은 게임을 만들어 함께 부자가 되자는 말, 지금도 유효합니다. 하지만 선행되어야 하는 조건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엘크로스 Re의 개발자로서 책임감을 가지고 최선의 역량을 발휘해야 한다는 겁니다. 우리 모두 힘을 합해 유저들을 즐겁게 만들어줘야 합니다.”

태연이 검지를 치켜들었다.

“나머지는 제가 책임질 테니 여러분은 한 가지만 생각해 주시면 됩니다. 최선을 다해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어낼 것.”

태연이 빙긋 웃었다.

“그렇게 해주신다면, 여러분이 엘크로스 Re의 개발자라는 사실에 평생 자부심을 느끼고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 주겠습니다.”

그것은 모두의 가슴에 불을 질렀다.

다시 분위기가 잡힌 것을 확인한 태연이 손뼉을 치며 경쾌하게 말했다.

“자, 게임 만들러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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