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사한 게임 개발자가 너무 유능함-93화 (93/147)

퇴사한 게임 개발자가 너무 유능함 93화

63. 앤드 콘텐츠

조만간 마주하게 될 일이라고 예상했고, 누구나 그렇게 생각했던…… 그러나 막상 부딪히게 되자 당혹스럽기만 한 클레임!

-X망겜. 할 거 X나 없네.

└망겜이 다 그렇죠 뭐.

└만렙 찍고 퀘스트 다 하고 업적작도 다 하고 레이드도 다 돌았고…… 인간적으로 할 거 너무 없는 듯.

콘텐츠 고갈 현상!

“최근 들어 이와 같은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오고 있습니다.”

태연의 진지한 말에 엘크로스 기획자들이 일제히 한숨을 내쉬었다.

기획팀장이 불만을 내뱉는다.

“아무리 생각해도 말도 안 되는 일이에요. 첫 업데이트에 다른 대형 MMORPG 두 배나 되는 콘텐츠 분량을 업데이트했는데…….”

모두가 그 말에 공감했고 태연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콘텐츠 파트장이 탄식한다.

“제가 한국 사람이고 여기가 한국 게임 회사긴 하지만…… 솔직히 RPG 게임류는 한국에서 서비스하기 무서워요. 콘텐츠를 무슨 걸신들린 사람처럼 엄청난 속도로 소모해 버리는 곳이라…….”

“한국 게이머들 진짜 무섭죠.”

“하, 말로만 듣던 이런 날이 나에게도 닥쳐오는구나.”

짤방으로만 보던 이야기가 설마 나에게 벌어질 줄이야!

태연이 한숨 쉬며 말했다.

“이게 해외 게임회사들이 온라인 MMORPG를 잘 만들지 않는 이유 중 하나죠. 하나 만들어 론칭하는 것도 힘들지만 접속자 유지를 위해 꾸준히 업데이트하는 것도 죽을 맛이니까요.”

“음…….”

“전반적인 난이도를 높이면 소모 속도가 줄겠지만 그만큼 유저 풀이 빠지고 신규 유입도 어려워지죠. 그렇다고 난이도를 지나치게 하향시키면 이와 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이와 같은 문제에 당면한 MMORPG 개발팀은 다양한 해결책을 내놓았다.

“앤드 콘텐츠 난이도를 단계별로 구분하고 아이템 파밍 등에 차별을 두는 것도 좋겠죠. 실제 우리도 준비하고 있는 방법이기도 하고…….”

잠시 고민하던 태연이 말했다.

“레이드 몬스터 AI 알고리즘과 시스템을 몬스터 이터, 아틀란시아에서 참고하도록 합시다.”

두 게임 모두 태연이 직접 디렉팅을 했던 게임이라 관련 시스템 구조에 대해서는 바짝 꿰고 있었다.

엘크로스에 맞게 응용해서 적용시키는 건 문제도 아니었다.

“제가 구조 기획서를 만들어 공유할 테니 그것으로 작업해서 다음 업데이트에 적용시키도록 하죠.”

태연이 힘 있게 말했다.

“우리는 스타일리쉬한 액션 MMORPG를 추구하고 있으니 이를 잘 활용하면 색다른 레이드로 발전시킬 수 있을 겁니다. 팀 규모를 늘릴 테니 계속해서 콘텐츠를 개발해 봅시다.”

그리고 또 하나.

“송재희 PD 시절 개발이 중단된 공성전을 다시 개발해 봅시다.”

깜짝 놀라는 사람들.

“뭐, 처음부터 근무하셨던 분들은 알고 있겠지만, 공성전 개발이 중단된 이유는 간단합니다. 개발할 역량이 있었던 멤버들이 모두 빠져나가 버렸기 때문입니다.”

“공성전은 자주 사용되긴 하지만 제대로 개발하려면 상당한 난이도를 요구한다.

송재희 PD가 개발하던 공성전은 상당한 규모를 필요로 하던 게임이었다.

수많은 플레이어와 다양한 병과의 AI 병사들, 그리고 공성 병기까지.

“꿈은 원대했고 기획 자체도 나쁘지 않았지만 기술력의 한계를 고려하지 않았던 점이 패착이었습니다. 사실상 게임을 하나 더 만드는 수준이었더군요.”

“…….”

당시 기획에 참여했던 기획자들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여러분의 잘못이 아닙니다. 송재희 피디가 처음부터 리딩을 엉뚱하게 한 탓이죠. 꿈이 너무 컸습니다. 이건 마치 우리나라에서 마블 히어로 유니버스, 디즈니 애니메이션 제작을 시도한 것과 마찬가지의 난이도였으니까요.”

제작 환경 역시 고려하지 않았다.

이 거대 공성전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본 개발비에 상응하는 수준의 돈과 제작팀 규모가 필요했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예 공성전 전용 개발팀을, 본 개발팀 수준으로 새로 신설해야 작업이 가능한 수준이었다.

“결정적으로, 최적화 설계에 대한 역량이 떨어지는 이전 실력으로는 감당할 수가 없었죠.”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총괄 프로듀서, 디렉터가 바로 태연이었기 때문이었다.

새로 오픈한 엘크로스 Re에서는 최적화 문제로 클레임을 거는 유저들이 거의 없었다.

그만큼 정교하고 영리하게 잘 구성되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게임 전문 뮤튜버 중에서는 엘크로스의 최적화 기법으로 콘텐츠를 구성하는 이들도 있을 정도였다.

“기획 아이디어 자체는 재미있는 게 많습니다. 손을 보면 가성비 좋게 개발할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이어진 말에 기획자들의 근심이 날아갔다.

“이 기획은 제가 알아서 할 테니 여러분은 레이드 개발에만 집중하시면 됩니다.”

시간을 확인하고 태연이 말했다.

“회의 끝! 카페테리아에서 커피라도 마시면서 머리 좀 식히시죠.”

* * *

엘크로스는 20일 만에 OBT를 종료, 정식 서비스 공지를 올렸다.

최초 태연이 예정했던 30일에서 10일을 단축시킨 기간이었다.

여기서 공개된 한 가지 사실이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

바로 부분유료화가 아니라 정액제로 운영되는 것.

-당연히 부분유료화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네;;

└무조건 환영! 유료 가차, 버프 같은 이상한 거 안 나온다는 뜻이잖아.

└우리나라에서도 정액제 온라인 MMORPG가 등장하는구나!

유저들은 이 부분에 대해서는 환영했지만 또 다른 면에 대해서는 우려를 드러냈다.

-벌써 정식 서비스를 한다니…… 콘텐츠 부족 현상 먼저 해결해야 하는 거 아니냐?

└전혀 안 부족한데…….

└부족함. 진짜 할 거 X나 없음.

└그건 님이 겜만 하니까 그런 거고요. 현생을 살면서 적당히 하면 그런 거 느낄 일이 없어요. 난 오히려 할 게 너무 많아서 다른 거 생각할 틈이 없던데…….

└그건 니가 게임을 못해서 그런 거임.

└님 동네가 어디임? 아무래도 할 이야기 많아질 것 같은데…… 얼굴 보며 이야기합시다 ^^

개발팀 내에서도 이슈가 된 적이 있는 콘텐츠 부족 현상이 바로 그것.

그런데 정식 서비스와 함께 또 한 차례의 대규모 업데이트가 진행되며 이 같은 내용이 줄어들었다.

사냥, 퀘스트 등을 통해 수집한 재료들로 내 집과 영지를 마음대로 꾸밀 수 있는 하우징 서비스!

특정 조건을 달성했을 때 얻을 수 있고 능력치 상승 효과도 볼 수 있는 칭호!

방대한 필드 곳곳에 숨겨진 보물을 찾는 보물 탐험!

레이드를 통해 수급할 수 있는 재료들을 활용해 나만의 무기를 제작, 성장시킬 수 있는 ‘성장형 장비 시스템’.

풍성한 효과, 아이템, 룩 등을 얻을 수 있게 해주는 호감도 시스템.

자잘하지만 굉장히 풍성한 콘텐츠들이 정식으로 추가된 것이다!

그런데 유저들의 관심은 전혀 다른 곳에 집중됐다.

대전 액션 모드.

엘크로스 Re의 ‘스타일리쉬한 액션’을 최대한 활용한 모드였다.

참고로 아직 정식으로 도입되지는 않았고, 테스트 서버에만 업데이트 된 시범 콘텐츠였다. 그리고 테스트 서버는 추첨에서 당첨된 1,000명의 유저만이 입장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영상 보면 나쁘지 않아 보이는데…… 해본 사람 후기 좀 올려라.

└MMORPG에 대전 액션 게임이라니…… 뜬금없긴 한데 이 게임 전투 특성 생각하면 의외로 나쁘지 않을 것 같음.

└일단 큰 기대는 하지 않으려고. 그래도 어느 정도 손맛만 보장되면 열심히 즐겨볼 생각. 워낙 대전 액션 게임을 좋아해서…….

└흠, 별거 없을 것 같은데…….

곧 후기 영상이 하나씩 업로드되기 시작했다.

유명 게임 뮤튜버들이 어떻게 해서든 테스트 서버 로그인 아이디를 얻어내서 영상을 제작한 것이다.

고성방가와 오두방정 리액션으로 유명한 유명 게임 스트리머는 다음과 같은 소감을 남겼다.

-솔직히 이거 별거 없을 줄 알았거든? 그런데 생각보다 재미있어! 솔직히 깊이감은 여타 인기 대전 액션 게임들에 비해 떨어지는 편이지만 대신 입문 장벽이 낮아. 누구나 쉽게 익힐 수 있어!

엘크로스 Re 유저들이라면 누구나 부담 없이 한판 즐길 수 있는 게임!

이것이 공통된 평가였다.

물론 부족하고 아쉬운 점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정식 버전도 아니고, 이제 갓 테스트를 시작한 시범 단계에 있는 게임이다. 버그 제보는 꾸준하고 대응도 즉각적이니 발전의 여지는 확실했다.

다만 그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건 전혀 엉뚱한 사안이다.

이를테면 패치 노트에 공개된 다음과 같은 워딩!

[이 대전 액션 모드는 상황에 따라 정식 서버에 적용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업데이트 계획 자체를 없애 버린다는 뜻이었다.

-에이 설마…….

└평가가 나쁘지 않으니 없애지는 않을 듯.

└아직 안심할 수는 없지. 유태연 PD 굉장히 까다롭고 단호하기로 소문나서……. 심지어 이제는 넥플 대표잖아. 평가가 좋아도 본인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과감하게 날려 버릴 사람임.

└어…… 그러면 안 되는데……;;

누군가의 예측 그대로.

현재 테스트 서버 상황을 모니터링 중인 태연은 대전 액션 모드에 대해 조금은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아무래도 기존 대전 액션 게임들에 비해 너무 깊이감이 떨어지는 것 같은데…….’

어려서부터 게임 마니아였던 그는 대전 액션 게임도 굉장히 좋아했다.

스트리트 파이터라든가 철권이라든가.

실력이 굉장히 뛰어난 편은 아니지만 특유의 조작감과 숨 막힐 듯한 긴박감, 승리했을 때의 쾌감 같은 것들을 굉장히 선호했고 또 좋아했다.

그런 그에게 전투팀의 요청, 제안을 승낙하여 탄생하게 된 이 대전 액션 모드는 솔직히 그리 탐탁지 않았다.

‘차라리 대전 액션 모드에만 치중할 게 아니라 스타일리쉬한 공성 모드로 변형, 확장시켜서 적용하는 게 더 나았을 수도 있어.’

실제 그 부분에 대한 내용도 기획이 준비 중이었다.

하고 싶은 대로 해보라고 했더니 정말 자기들끼리 열심히 준비하는데…… 의지를 꺾을 수 없는 노릇이니 응원하는 마음으로 지켜는 보고 있다.

‘내 취향이 아니라고 외면하기만 해서는 안 되지.’

승승장구했을 때가 가장 위험하다.

자신의 취향이, 생각이 정답이라고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처음 제국의 검, 한계돌파가 성공했을 때 그런 생각을 가질 뻔했지만 강건 대표의 진상을 보고 정신을 차렸었다.

그때의 일을 경험 삼아, 태연은 자신의 취향이 아니라도 개발팀의 열정이 있고, 기획 준비가 잘되어 있으면 언제든 도전을 시킬 의향이 있었다.

바로 이번 일처럼.

‘이번 일이 좋은 선례로 남았으면 좋겠군.’

시키는 일만 잘하는 사람보다.

먼저 나서서 일을 추진하고, 성과를 내서 합당한 대가를 받아가는, 그런 개발 문화가 정착되기를 바랐다.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일이라면…….”

전반적인 애니메이션, 이팩트 등의 디테일을 최대한 살리고 파워 밸런스를 세밀하게 조절해서 조작감을 끌어 올리는 것.

가만히 지켜보기만 해서야 총괄 프로듀서, 디렉터 자격이 없겠지.

할 수 있는 최대한 지원해서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한다.

‘그래야 후발 주자들도 의욕을 갖고 아이디어를 낼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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