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한 게임 개발자가 너무 유능함 92화
62. 환골탈태
-서버 왜 안 열림? -_-
└아직 1시간 남았으니까요. 이 X끼야.;;
└나도 몇 시간 전부터 계속 기다리는 중ㅋㅋㅋ
└시간 왜 이렇게 안 가냐;;;
└시간이 안 가면 안 되는데…… 지금 월요일 오전 8시잖아요;;
└댓글 보다가 혹시 빨간 날인가 싶어서 확인했는데…… 님들 등교나 출근 안 함?;;;
아침부터 많은 게임 커뮤니티가 시끌벅적했다.
오늘이 바로 화제의 그 게임, 엘크로스 Re의 OBT 시작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개발비용에만 500억 이상을 들였고, 신화 온라인 기획팀장 출신 송재희 PD를 비롯, 스타급 개발자 수십 명을 스카우트해 만들었던 대작 게임이었다.
그만큼 큰 이슈를 모았지만 막상 까보니 게임은 생각 이상으로 엉망이었고, 좋던 그래픽도 중반 부분부터는 디테일이 처참한 수준이었다.
넥플이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게임업계 최대의 흑역사가 될 수 있었다.
그랬던 것을 또 다른 스타개발자, 유태연이 지휘봉을 잡게 되며 환불과 서비스 중지, 재개편이라는 강수를 내렸고, 1년이 지나 마침내 오늘에 이르렀다.
이런 드라마를 가진 게임이니 원래 엘크로스에 아무 관심 없던 이들조차도 관심을 모으고 있었다.
-서버 오픈!
└gogogo!
└제발 대기열, 서버렉 같은 거 없이 한 번에 들어갈 수 있기를…….
└제발 프레젠테이션 반만이라도 나와 주기를!
클라이언트 다운로드 용량이 상당했다.
무려 수십 기가!
유저들은 작은 변화도 놓치지 않는다.
-용량이 이전보다 더 늘었네. 이유가 뭘까요?
└쿼터뷰에서 숄더뷰로 바뀌고 특히 전투 쪽에 힘을 줬다니 리소스가 많이 추가된 탓이죠.
└용량이나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고, 전투 재미있고 최적화 잘되어 있고 버그 줄이기만 잘했어도 칭찬해 줄 의향이 있음.
└아무래도 상관없고 게임만 재미있으면 됨.
다운로드를 마치고 접속!
인트로 시네마틱 영상을 조금 보다가 내용이 똑같음을 파악하고 스킵해 버린다.
그러자 드러나는 로그인창.
-제발, 제발…….
대기열이 없기를!
그런데 놀랍게도.
-헉, 대기열 없다!
-뭐…… 이게 무슨 일이냐?;
-접속자가 의외로 없었던 건가?
튜토리얼이 시작된 순간부터 커뮤니티 게시글이 올라오는 속도가 크게 줄었다.
-왜 갑자기 조용해졌어?
모두 게임에 몰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어둡고 으스스한 분위기를 잔뜩 풍기는 숲길!
플레이어가 속한 일개 분대가 이동하는 장면에서 튜토리얼이 시작된다.
기습적으로 튀어나오는 적!
-이봐. 신입! 그럴 때는……!
선임이 상황에 맞는 조작법을 알려주며 동시에 전투 퀘스트를 수행하도록 한다.
자연스럽게 플레이에 필요한 정보를 흡수하고 게임에 금방 몰입할 수 있도록 절묘하게 설계되어 있었다.
거기에 공포, 스릴러 연출까지 포함되니 흡사 잘 만든 콘솔 액션 RPG를 플레이하는 느낌도 든다.
튜토리얼이 끝나고 아군 병영에 도착!
플레이어는 자신을 돕다가 부상을 당한 선임을 치료소에 데려다주고, 배정받은 공동 막사를 안내받으며 자연스럽게 메인 퀘스트로 넘어간다.
접속하기 전까지 온갖 의문과 걱정을 품고 있던 유저들은 어느새 공통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재미있는데?’
* * *
“현재 동접 인원 25만 명입니다. 월요일 오전 아홉 시. 출퇴근 시간 고려하면 상당히…… 아니, 굉장히 높은 수치입니다.”
태연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상황 계속 주시해 주시고 이슈 터지면 바로 알려주세요. 당분간 이곳 스튜디오에서 모든 업무를 진행하며 엘크로스를 우선순위에 둘 테니까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스튜디오 분위기는 굉장히 조용했다.
그러나 오가는 소리가 없을 뿐, 모두가 긴장감에 휩싸여 있고, 업무와 모니터링을 동시에 진행 중이었다.
테연은 그 광경을 스치듯 바라보다가 게임을 주시한다.
특히 채팅창 내용을 유심히 확인했다.
-이게 정말 내가 알던 그 엘크로스가 맞냐? 가슴이 웅장해진다.
-와씨……진짜 많이 바뀌었네.;
-저도 게임 하면서 계속 놀라는 중입니다. 이건 내가 아는 그 엘크로스가 아닌데…… 바뀌어도 너무 바뀌었는데…….
아직은 평가가 좋은 편이지만 안심할 수 없다.
‘이제 시작일 뿐이니까.’
세상에 완벽한 게임은 없다.
물론 항상 그런 게임을 목표로 개발하지만, 막상 유저들에게 선보일 때는 생각지도 못한 이슈가 마구 터지는 게 현실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
언제 어디서, 어떤 이슈가 발생할지 아무도 모르니 집중해야 한다.
‘아마 최소 한 달 이상은 긴장한 채 상황을 주시해야겠지.’
* * *
엘크로스를 주시하는 사람은 태연 한 명뿐이 아니었다.
개발 스튜디오와 수많은 넥플 임직원, 유저, 그리고 언론들이 그랬다.
한국 게임 사상 굉장히 이례적으로 최단 기간 환불 및 리메이크, 재오픈을 감행한 게임!
아무리 그래도 겨우 1년 만에 뭐가 얼마나 바뀌었을까 했지만…….
[엘크로스 Re. 1년 만에 환골탈태한 모습으로 유저들에게 공개!]
[액션, 스릴러, 공포, 퍼즐…… 다양한 장르를 망라할 MMORPG 게임이 등장했다? 엘크로스 Re는 어떤 게임인가.]
바뀌어도 굉장히 바뀌었다.
기사뿐만 아니라 각종 커뮤니티의 반응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진짜 게임이 미쳤음. 어제 오픈 직후부터 며칠 밤 새면서 계속 달리고 있는 중.
└게임 자체가 완전히 변했음. 프레젠테이션 때 그렇게 ‘전투’와 ‘연출’에 힘을 주더니…… 그렇게 열을 올렸던 이유가 있었다.
압도적인 호평!
오리지널 버전의 흔적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신에 성공했다는 평가였다.
-내가 전투를 하면서 이 게임 어디서 해본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몬스터 이터였음. 전투 쪽으로는 끝판왕 게임…… 공동 프로듀서가 바로 유태연 피디님이잖음;;
└자신이 맡았던 게임뿐만 아니라 여러 유명 게임들의 장점을 잘 흡수한 게 곳곳에 보임. 개인적으로 튜토리얼이 정말 성공적인 리뉴얼이었다고 봄. 공포에 호위에…… 정말 온갖 요소를 잘 버무렸음.
└ㅇㅇ 튜토리얼에서 이 게임이 추구하는 방향을 굉장히 잘 드러낸 것 같음.
극찬하는 사람이 많아지며 넥플 엔터테인먼트 전체의 분위기가 크게 올라갔다.
태연이 걱정했던 돌발 이슈는 특별히 발생하지 않았다. 그만큼 태연이 리메이크 기획, 설계를 철저히 짜놓았던 것. 그리고 MMORPG는 태연의 주특기인 장르였다.
‘자신감은 있지만 사람 일이라는 게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터질 줄 모르지.’
당장은 안정적이고 분위기가 좋다고 안심해서는 안 된다.
실제 크리티컬한 이슈는 없지만, 자잘한 제보는 날아오는 중이다. 태연과 개발팀의 꼼꼼한 검수로도 미처 걸러내지 못한 요소들이 있었던 것이다.
현재 개발팀은 업데이트 콘텐츠를 만드는 중이고, 몇 달이라는 기한이 있다지만 작업 폼을 생각하면 여유 부리고 있을 틈이 없었다.
‘정석이라면 개발팀이 유지 보수 업무까지 담당하는 게 맞지만…….’
그렇게 되면 거대한 작업폼을 감당할 수 없는 사태가 생긴다.
‘일단 정식 서비스 오픈까지 지켜보고, 분위기가 좋아지면 따로 유지 보수팀을 만들던가 해야겠군.’
이 역시 파격적인 결정이지만, 퀄리티 유지, 그리고 세계 진출이라는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필요한 결정이다.
태연은 그렇게 판단을 내렸다.
* * *
근래에 들어 한두 시간씩 야근을 하고 돌아가는 태연이었다. 그리고 집에 도착하면…….
“오빠 왔어? 식사했어? 밥 차려줄까?”
“난 괜찮아. 게임 플레이 상황은 어때?”
“재미있어! 나 게임을 이 정도로 몰입해서 해보기는 처음이야!”
윤아가, 대한민국이 자랑스러워하고 전 세계가 우러러보는 체조 여신이 거실 PC로 게임을 하고 있다.
다름 아닌 엘크로스 RE를 말이다!
태연으로서도 신기한 광경이었다.
이전에도 태연이 만들었던 게임을 종종 플레이하기는 했지만 지금처럼 오래 몰입했던 적이 없었다.
윤아 옆자리에 앉아 그녀가 플레이하는 모습을 지켜본다.
25레벨의 마법사.
진행 속도가 빠르다고 볼 수 없었지만 그녀는 온라인 게임 자체가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이 정도면 정말 몰입해서 열심히 하고 있다는 뜻이다.
‘어떤 점이 끌렸던 걸까?’
물어보려다가 입을 닫았다.
“…….”
그녀가 어느새 게임에 몰입해 있었다.
‘지켜보면 알 수 있겠지.’
그녀는 텍스트 지문을 열심히 읽고 작은 정보도 놓치지 않는다.
‘마치 영화나 드라마를 감상하듯 게임을 즐기는군.’
다른 것보다 시나리오와 메인 퀘스트, 전반적인 연출이 그녀를 사로잡은 모양이다.
‘특별히 신경을 쓴 보람이 있었군.’
태연은 미소 지었다.
개발 모든 요소에 관여했지만, 해당 부분은 특히 더 신경을 썼던 내용이다.
기존 시나리오 퀘스트 기획자들이 존재했지만 그들은 태연이 만족할 수 있는 이야기의 흐름과 캐릭터 구성, 연출을 만들어낼 능력은 없었다.
본래 엘크로스 세계관과 메인 퀘스트를 만들어냈던 이는 진즉 네로 소프트로 재이직한 상황이었고, 후임 담당자는 오픈 후 욕을 진탕 먹고 멘탈이 나가 퇴사를 해버렸다. 남은 이들은 창작보다는 데이터 테이블 관리에 더 특화된 사람들이었다.
그러니 태연이 창작에 관련된 부분을 전담해야 했다.
윤아는 차를 마시며 플레이에 대한 피드백을 해줬다.
“튜토리얼부터 이어지는 긴장감과 흐름이 계속 이어지는 것이 큰 장점인 것 같아.”
“캐릭터들이 매력적인 건 좋은데 개성들이 워낙 강해서 가끔 시선이 분산될 때가 있는 것 같아. 그러니까 주인공이 여러 명 있는 드라마를 보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태연은 생각보다 꼼꼼한 피드백에 내심 놀랐다.
‘책을 굉장히 좋아하고 드라마와 영화도 많이 보더니…… 이야기를 보는 눈이 남다르구나.’
분명 참고할 만한 내용도 있었다.
그런 부분은 출근해서 나름의 방식으로 반영했다.
OBT 일주일째.
개발 총괄 손영상 이사가 물었다.
“정식 서비스 전환을 빠르게 해도 될 것 같은데…… 원래 예정 기간이 언제까지였지?”
“30일간이었습니다.”
“너무 긴 거 아냐?”
“그 정도 기간은 있어야 만렙 이후 앤드 콘텐츠까지의 데이터를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말에 손영상은 자신의 사무용 책상, 모니터에 띄워진 엘크로스를 바라봤다.
만렙 캐릭터들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그 생각 지금도 변함이 없냐?”
“…….”
태연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여튼 이놈의 한국 유저들…….’
개발자 예측을 벗어나는 짓도 좀 적당히 해야지.
아무리 레벨 설계를 철저하게 해두면 뭐하나?
어떤 식으로든 빠른 길을 알아내서 도장 깨기를 하듯 콘텐츠들을 격파해버리는데.
“그래도 어쩔 수 없습니다. 데이터는 아직 수집 중이고 그것을 토대로 작업하고 충분히 테스트할 기간도 고려해야 하니까요.”
“유지보수팀 따로 만든다고 하지 않았냐?”
“그 기간은 단축시킬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우선 회사 내부에서 전환 배치 지원자를 받고, 그 이후 남은 TO는 신규 채용으로 충원하려고 합니다.”
“운영팀도 늘려야 하지 않겠냐? 그쪽도 죽어나는 것 같던데.”
“안 그래도 충원 지시를 내렸고 면접 준비 중입니다. 본래 오픈 후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면 동접률이 서서히 빠지기 마련인데…….”
“유입률이 오히려 늘고 있잖아.”
“그것도 제 예상을 한참 벗어난 수치입니다.”
“너도 설마 이 정도로 반응이 뜨거울 줄은 몰랐지?”
“그렇습니다.”
손영상 이사가 슥 웃었다.
“내 경험에 의하면, 지금 이 상황이 절대 최고점이 아니야. 오히려 시작일 뿐이지.”
“…….”
“서두르는 게 좋을 거야. 유지 보수 팀 설립이든 운영팀 충원이든 뭐든.”
자리로 돌아온 태연은 엘크로스 Re 채팅창을 확인했다.
-무슨 게임이 이렇게 할 게 없냐.
-콘텐츠 좀 충분히 만들어두지.
자기들이 미친 듯이 게임만 하고 있다는 생각은 안 하는 모양이다.
‘앞으로 1년 동안은 죽었다 생각하고 운영, 신규 콘텐츠 개발에 매진해야겠군.’
최대한 많은, 그리고 오래 갈 수 있는 놀 거리를 만들어 공급해야 한다. 그래야 이 인기가 계속 유지될 수 있다.
눈앞이 깜깜해지는 기분에 태연은 절로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