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사한 게임 개발자가 너무 유능함-90화 (90/147)

퇴사한 게임 개발자가 너무 유능함 90화

61. 엘 크로스 재오픈(2)

[비운의 흑역사로 남을 뻔했던 대작 게임 ‘엘 크로스’ 리메이크 버전으로 사내 테스트 시작.]

[국산 MMORPG의 마지막 희망이 될 것인가?]

“…….”

송재희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멍청한 짓을 하는군.’

그의 실력은 인정한다.

하지만 겨우 1년 만에 풀 수 있을 만큼 만만한 문제가 아니었다.

‘중간부터 제대로 꼬여 버렸어.’

실패 사유에 대해 여러 가지 말이 있지만…… 그가 생각하는 이유는 단 하나뿐이었다.

‘전 프로그램 팀장, 파트장들이 나가 버렸기 때문이야. 시스템 파트장을 포함해서.’

그들이야말로 엘 크로스의 핵심 개발자였다.

중요성을 알고 있으니 데려갈 때 연봉도 잘 챙겨줬고, 게임이 성공해서 대표 자리에 오르면 포상도 두둑이 해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퇴사해 버렸다.

네로 소프트에서 다시 그들을 불러들인 것이다.

차기작 디렉터, 투자, 거액의 연봉과 인센티브, 지분 등등.

다양한 조건을 제시하고.

‘그때부터 길이 어긋나기 시작했다는 것을 느꼈지.’

그래도 나름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결과가 이래서야 최선이라는 말도 민망할 지경이다.

‘시작부터 잘못됐어. 그런 작자들을 믿고 일을 벌여서는 안 되는 거였는데.’

한마디로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는 것이다.

그런 건 무슨 수를 써도 안 된다.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어.’

유태연의 명성에 큰 흠집이 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자신은…….

‘나는…….’

그의 망막에 엘 크로스의 첫 티저 영상이 비치고 있었다.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가슴 벅찬 기분에 잠도 들지 못했더랬다.

자신의 오랜 꿈이, 로망이 마침내 펼쳐지기 시작한 순간이었기에.

어쨌든 그도 게임 개발자였고, 누구 못지않게 게임을 즐기고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엘 크로스.

배 아파 낳은 자식과 같은 나의 첫…….

어느새 그는 하염없이 리메이크 버전 홈페이지에 접속해 있었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사내 테스트가 끝나고 내부에서 런칭일이 결정되면 바로 이곳을 통해 개발자 프레젠테이션을 한다고 했다.

이미 업계에 퍼진 소문이었다,

‘엘 크로스. 내 게임…….’

애증이 담긴 시선을 품고서, 송재희는 그 후로 오랫동안 엘 크로스 홈페이지를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 * *

마침내 사내 테스트의 날이 밝았다.

회의실에 모여든 개발자들의 얼굴에 들뜬 기색이 가득했다. 이전에는 불안감뿐이었지만, 지금은 기대감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다.

“우리 진짜 열심히 만들었잖아.”

“솔직히 이번에 정말 재미있게 잘 만들어졌어요.”

“반응 좋긴 할 건데 얼마나 좋을지가 문제네요. 흐흐.”

태연은 그 광경을 지켜보면서도 별말을 하지 않았다.

기껏 오른 기세를 괜히 꺾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서버 오픈까지 앞으로 20분.’

사내 테스트 서버는 10시 정각에 오픈한다.

접속 키를 부여받은 본사 직원들만이 서버에 접속해서 게임을 즐길 수 있었다.

잠깐 업무 준비를 하다 보니 십여 분이 금방 지나갔다.

“5분 남았습니다!”

서버 파트장의 힘찬 외침에 들떴던 분위기가 슬며시 가라앉는다.

개발자들의 모니터에 테스트 빌드 클라이언트가 띄워져 있었다.

“1분 남았습니다!”

카운트 다운 시작.

“10, 9, 8…….”

심장이 점점 크게 뛴다.

태연조차도 이 순간만큼은 설렘과 긴장감을 억누를 수 없었다.

“서버 오픈!”

“접속 가능합니다!”

맑게 울려 퍼지는 키보드 소리.

태연은 직접 사내 인트라넷과 이메일을 통해 테스트 시작 알림에 대한 공문을 보냈다.

[금일 현 시간부로 ‘엘 크로스 Re’의 사내 테스트 시작하겠습니다.]

* * *

‘시작이군!’

태연의 공문을 받은 손영상 회장은 떨리는 마음으로 게임에 접속했다.

‘제발 아무 이상 없기를…….’

엘 크로스는…… 자신의 실책이다.

안목이 없어서 디렉터 자격이 없는 이를 밀어줬다.

500억이라는 거액까지 쏟아부어 가며.

엘 크로스가 이대로 망한다면 개발 총괄로서 회사 모두에게 면목이 없게 되는 것이다.

평생의 마음의 짐!

그것을 짊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이번 사내 테스트에서 좋은 평가를 받아야 했다.

오프닝 시네마틱 화면은 예전 그대로.

세계관을 설명하는 내용이었고, 그때 당시 수억에 달하는 돈을 쏟아부어 만들었기에 퀄리티는 여전히 굉장하다.

패치 파일 다운로드가 끝났다.

시네마틱 영상이 끝나지는 않았지만 스킵을 클릭해서 로그인 화면으로 전환된다.

중세풍 왕국 수도 광장 한복판에 군대가 도열한 광경이었다.

당시 국내에서 손꼽히는 톱 일러스트레이터가 특별히 작업한 것이기에 역시 퀄리티는 상당하다.

여기까지는 이전과 같다.

그런데 접속 이후부터 완전히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숄더뷰로군.’

핵앤슬래시 쿼터뷰를 버리고 완전히 다른 진행 방식을 택한 것이다.

-이봐, 신입! 정신 똑바로 차려! 언제 어디에서 적이 튀어나올지 몰라. 사주 경계 똑바로 해!

튜토리얼 내용도 완전히 바뀌었다.

이전에는 훈련소에서 허수아비를 때리며 간단한 조작법을 배우고 훈련단장으로부터 시나리오와 세계관에 대해 간단히 접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두운 숲길.

분대 단위로 작전을 수행하며 바로 메인 시나리오를 접하고, 급박한 환경 속에서 조작법을 터득하는 방식이었다.

‘이쪽이 훨씬 현장감이 넘치는구만!’

-매복이다!

-내가 뭐라고 했어? 이쯤에서 나타날 것 같다고 했지?

-릭! 신입 잘 챙겨! 나머지는 훈련한 대로 적을 상대한다!

그리고 시작되는 적과의 첫 조우.

그리고 전투!

손영상 이사가 택한 것은 나이트였다.

시작할 때마다 화면이 정지하고, 선임 기사 릭이 기초부터 응용 조작법을 차근차근 알려준다.

-내가 붙잡을 동안 강력한 한 방으로 적의 급소를 날려 버리라고!

타닥! 탁!

손영상은 화면을 노려보며 정신없이 키보드를 두드렸다.

액션이 강화되고 타격감이 증폭된 덕분에 조작에 온 신경이 쏠린 것이다.

-하앗! 탓!

퍼엉! 퍼어엉!

스킬을 적중시키고 크리티컬 히트가 터질 때마다 발생하는 타격 이펙트! 그리고 적의 피격 모션이 짜릿한 쾌감을 선사한다.

-언제까지 적 한 명을 상대하고 있을 거야? 또 다른 적이 몰려오기 전에 빨리 이 지역을 벗어나야지!

-릭이 부상당했어! 신입, 네가 부축하며 선임을 보호해라. 너 챙기다가 그렇게 된 거니까!

그리고 자연스럽게 발생한 선임병의 부상 이벤트와 함께, 호위 퀘스트가 진행된다.

어두운 숲속에서 갑자기 맹수, 혹은 적의 공격이 튀어나온다.

-막아!

-방패 들어! 급소를 보호해!

사방에서 비명이 터져 나온다.

“……!”

온몸이 오싹오싹.

침을 계속해서 삼키며 언제 어디에서 튀어나올지 모를 적을 상대하고, 선임 기사 릭을 보호하기 위해 전력을 다한다.

그리고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

-다들 수고했어!

-우리 분대의 작전은 성공했지만 진짜 임무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이봐, 신입. 릭을 치료소로 데려가! 너도 치료 좀 받고!

“흐아아……!”

튜토리얼이 끝났을 뿐인데 어느새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십여 분 동안 정말 정신없이 플레이했어.’

플레이에 이렇게 몰입해 보기는 정말 오랜만이다.

튜토리얼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과정이 굉장히 사실적으로 펼쳐졌고, 긴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제공했다.

호위 퀘스트가 시작되어 어둡고 위험천만한 숲속을 조용히 이동할 때는 자신이 다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끔찍한 몬스터가 무서운 소리와 함께 갑자기 튀어나와 아군을 공격해 올 때는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무슨 게임 연출에 공포 영화에서나 쓸 법한 기법까지…….”

좋아. 어떻게 흘러가는 건지는 파악 끝났으니, 이제부터 제대로 붙어 볼까?

와이셔츠 소매를 걷어 올리고, 본격적으로 플레이를 시작한다.

지금의 그는 은퇴를 갈망하던 노장이 아닌, 게임에 미친 한 명의 유저일 뿐이었다.

* * *

-으아악!

-엄마야!

“흐흐흐.”

“그래. 이쯤에서 비명이 터져 나올 줄 알았다.”

타 스튜디오에서 비명이 들려올 때마다 엘 크로스 스튜디오에 웃음이 번졌다.

의도한 것들이 정확히 맞아떨어지고 있다는 증거였으니까.

말이 액션 MMORPG 게임이지, 온갖 장르적 기법이 망라되어 있었다.

공포, 스릴러, 추리, 밀리터리 등등!

갑자기 무시무시한 것이 튀어나와 심장을 덜컹 내려앉게 만들기도 하고, 어두운 곳을 홀로 탐사·수색하게 만들어서 목을 쉬게 만들기도 한다.

단서를 모아 추리도 하고, 미로 같은 던전을 벗어나기 위해 퍼즐도 풀어야 한다.

이 모든 것이 유저를 역할극에 몰입시키기 위한 노력이었다.

자신이 캐릭터 그 자체임을 인식하게 될 때, 대화하고, 채집하고, 전투하고…… 모든 콘텐츠가 더욱 재미있게 느껴지게 된다.

이 세계에 현실의 많은 시간을 할애하게 된다.

이것이야말로 태연이 추구하는 MMORPG.

태연이 처음 했던 이 말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저는 유저가 현실보다 이 게임 속 세상을 더 사랑했으면 좋겠습니다.’

섬찟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그가 게임에 얼마나 진심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모든 요소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게임. 그런 게임을 만들어 봅시다.’

‘분위기 좋지?’

‘이 반응이라면, 어쩌면…….’

개발자들은 수시로 업데이트되는 인트라넷, 엘 크로스 테스트 전용 게시판을 보며 미소 지었다.

-미치겠다. 아니, 어떻게 불과 1년 만에 게임이 이토록 달라질 수 있나요?

-오전 내내 아무것도 못 하고 오로지 게임 플레이만 했어요. 진짜 미치도록 재미있어요ㅠ.ㅠ

-와, 엘 크로스가 이렇게 변하다니……. 개발자분들, 1년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혹시 지금 살아 있긴 한 건가요?

“하하하!”

누군가의 웃음소리가 모두의 마음을 반영했다.

* * *

그날.

갈대나무 숲 앱에 다음과 같은 글이 올라왔다.

-1년 사이에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 보안 문제로 이 이상 말은 못 하겠는데……. 엘 크로스, 기대해라. 정말 후회 안 할 거다.

└요즘 다른 업무를 못 하고 있음. 엘 크로스 테스트 때문에……. 상상 이상의 MMORPG로 환골탈태함.

└아 진짜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은데 꾹 참겠음.

모두 넥플 직원들이 올린 글이었다.

안 그래도 이목이 쏟아지고 있던 상황에 이와 같은 글이 올라오니 갈대나무 숲 앱은 물론, 일반 게임 커뮤니티까지 난리가 났다.

[대체 뭐가 만들어졌기에 저 난리지? ㄷㄷㄷ]

└환골탈태라니……. 게임이 완전히 바뀌었다는 뜻 아님?

└와씨, 기대되게 만드네ㅠ.ㅠ

└개발자 프레젠테이션한다고 들었는데…… 언제 함?

이 같은 반응을 접한 태연이 지시를 내렸다.

“이번 주 토요일 오후 여섯 시에 라이브 프레젠테이션을 할 수 있도록 준비해 주세요.”

그렇게 엘 크로스 공식 홈페이지에 잠겨 있는 스트리밍 창과 디데이가 업로드됐다.

대한민국 게임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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