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사한 게임 개발자가 너무 유능함-88화 (88/147)

퇴사한 게임 개발자가 너무 유능함 88화

60. 결초보은

[과천 테마파크 인허가 절차 통과!]

[다음 달 초 착공식!]

이 같은 기사에 서울과 과천 일대가 들썩거렸다.

마침내 세계적인 테마파크, 디즈니랜드가 지어지는 것이다.

완공 예상 시기도 굉장히 빠르다.

모든 과정을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하는 게 아니라 기존 공원과 테마파크 부지를 변경하는 작업이었기 때문.

교통, 주차장 등의 편의시설도 이미 모두 갖춰져 있으니 기존 테마파크 공사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단축이 가능했다.

뉴월드 그룹 김종학 부회장은 과천을 세계적인 관광 도시로 만들 것을 선언했다.

허나 이는 분명한 근거가 있는 자신감이었다.

첫째. 테마파크 인근 지역에는 리조트, 쇼핑몰, 돔구장 등, ‘체류형 복합 관광지’가 지어질 예정이었다.

둘째. GTX 노선이 예타 통과가 됐고 공사가 이미 진행 중이라 서울, 인천 공항 접근성이 더 좋아진다.

셋째. 이 거대 프로젝트에 넥플이 함께한다.

이미 모든 계열사가 입주할 수 있는 초대형 신사옥을 짓고 있는 중이다. 또한 자사 IP와 디즈니 IP를 활용해 본격적인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전개할 계획이다.

세계적으로 큰 주목을 받기 시작한 초대형 프로젝트!

여기서 주목할 사람 바로 세 사람이었다.

뉴월드 그룹 김종학 부회장.

넥플 유진성 회장.

그리고 유태연.

‘응? 나?’

“와! 오빠 얼굴 나왔다!”

저녁 뉴스에 등장한 태연의 얼굴에 김윤아가 난리였다.

뉴스를 보던 태연은 당혹감에 이마를 긁적거렸다.

‘저 프로젝트에서 내가 주목받을 이유가 있나?’

테마파크 콘텐츠 기획에 참여할 예정이고, 넥플 대표이사이긴 하지만 파크 전반적인 운영에는 관여하지 않는다. 그쪽은 담당 회사가 따로 있었기 때문이었다.

컨소시엄 그룹들이 공동 지분으로 설립한 운영기관 ‘드림씨어터’였다.

그 안에서 자신은 콘텐츠 개발자 중 한 명일뿐이고, 회사에서 함께 일하는 직원들은 기획안 작성을 위해 자신이 고용한 이들일 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 이름이 거론될 이유가 없는데…….’

정작 주목받아야 할 ‘드림씨어터’의 실무 책임자들은 거론되지도 않았다.

뉴스 엥커의 멘트는 계속 이어졌다.

-총 10조 원이 투입될 이번 프로젝트에서 생산 및 부가가치 유발 효과는 80조에 이를 것이고, 15만 명 이상의 고용효과가…….

* * *

-오늘 저녁 식사 같이 좀 하자.

태연은 김종학 부회장의 연락을 받고 서판교 고급 주택을 방문했다.

“어서 와요!”

김종학 부회장의 아내이자 한때 최고의 미녀배우였던 한설아가 마중 나왔다. 반가워서 찰싹 달라붙는 윤아와 달리 태연은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또 뵙습니다.”

“어휴, 거리감 느껴지게 그러지 좀 말라니까…….”

주방에서는 김종학 부회장이 앞치마 차림으로 요리를 하고 있었다.

“어, 왔어? 앉아 있어. 곧 끝나니까.”

태연은 익숙한 듯 정장 자켓을 벗어 게스트룸 옷걸이에 걸어 놨고, 와이셔츠 위에 앞치마를 두른 뒤 주방에 합류했다.

“괜찮다니까?”

“도와드리겠습니다.”

“야, 고기 냄새 배겨!”

“상관없습니다.”

“거 참…….”

혀를 차면서도 태연을 향한 시선에 미소가 가득하다. 근래에 아내를 위한 요리에 취미가 들린 두 남자였다. 워낙 잘 통하니 주방에서도 형제마냥 사이 좋게 요리를 만든다.

바비큐 파티였다.

노릇노릇 맛있게 구워진 소고기가 군침을 돌게 한다.

“이렇게 먹으면 훨씬 맛있어.”

태연은 언제나처럼 윤아를 먼저 챙겼고 그것은 김종학 부회장 역시 마찬가지였다.

식사를 마치고 독일에서 건너왔다는 최고급 차를 우려 마시며 본격적인 대화가 시작됐다.

“네가 드림씨어터 대표 해라.”

“쿨럭!”

허를 찔린 태연이 기침을 터뜨렸다. 그 광경을 세 사람 모두가 신기한 듯 쳐다본다.

“태연 씨 저렇게 당황하는 모습 오랜만에 보네.”

“나도 신기하다.”

태연은 붉게 물든 얼굴을 수습하지도 못한 채 당황해서 물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갑자기…….”

“지금 대표가 누군지 알지?”

“네. 뉴월드 그룹 문화 부문을 총괄하던 김영식 상무님 아닙니까?”

혀를 찬다.

“그 인간 잘랐어.”

“……네?”

검지로 목을 그는 시늉을 한다.

“잘랐다고. 외주비 명목으로 돈 챙기려던 거 나한테 딱 걸렸거든.”

“아…….”

“예전부터 그런 기미가 있긴 했는데 능력이 워낙 좋아서 두고 보고 있었어. 너도 몇 번 같이 일해 봤으니 알 거 아냐?”

김영식 상무.

테마파크 프로젝트를 총괄하던, 정말 유능한 리더였다.

모든 분야에 지식이 뛰어났고 컴퓨터를 연상시키는 섬세하고 정교한 프로젝트 컨트롤을 보여주던 사람이었다.

“예전에 몇 번 우회적으로 경고를 했었는데 그때만 잠잠했다가…… 이번에는 선을 좀 세게 넘으려고 하기에 증거 잡아서 족쳐 버렸지.”

“……그분이 아니라도 뉴월드 그룹에는 뛰어난 인재가 많지 않습니까?”

그는 고개를 저었다.

“눈에 차는 사람이 없어.”

“그럴 리가…….”

“정확히 말하면, 목적에 부합하는 책임자가 안 보여. 드림씨어터의 존재 의의가 뭐야? 재미잖아. 관객들에게 일상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놀라운 경험적 선사하는 거 아냐?”

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렇게 생각해. 드림씨어터의 책임자는 무엇보다 ‘재미’에 능통한 사람이어야 한다고.”

“…….”

“단순히 조직 운영과 행정 업무만 잘하는 사람은 그 자리에 앉을 자격이 없어. 야, 너 한 번 생각해 봐. 평생 공부만 하고, 회사 다니던 사람이 갑자기 게임 프로듀서 되겠데. 그게 네 지인이야. 말릴 거야 안 말릴 거야?”

“말리겠죠.”

“그거야. 그래. 뭐 우리 회사에 인재는 많아. 일 맡기면 어느 정도는 해낼 수 있는 사람은 분명히 있어. 그런데 현상 유지 가지고는 안 돼. 큰 그림을 짜고 수만 명씩이나 되는 직원들에게 보다 정교한 내비게이션 역할을 해줄 수 있을 사람이 필요해.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가 시선이 태연을 꿰뚫는다.

“‘우리’가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해. 능력 있고, 스스로의 부족함을 인정할 줄 알며 그것을 메우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할 줄 아는 사람. 그리고 다양한 규모의 조직 경영 능력이 탁월하며 실무 능력도 뛰어난 사람.”

그의 손이 태연을 가리킨다.

“그게 바로 너야. 심지어 대기업 대표이사로서의 경험도 있지. 성과와 내부 평가도 굉장히 좋아.”

어깨를 으쓱한다.

“더 고민할 이유가 없는 거지.”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한설아와 김윤아는 눈치 보며 조용히 차만 마셨다.

오가는 이야기의 규모가 워낙 거대했기 때문이었다.

“대우 섭섭하지 않게 잘 해줄 테니 고민해 봐.”

* * *

차를 타고 돌아가는 길.

태연이 물었다.

“어떻게 생각해?”

“오빠 이미 넥플이라는 거대 기업의 대표잖아.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버거울 텐데…… 감당할 수 있겠어?”

“…….”

“오빠가 남다른 면이 있다는 건 알지만…….”

잠시 고민하던 김윤아가 고개를 저었다.

“겸업하기에는 너무 큰 건이야. 난 오빠가 이 이상 무리하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아.”

그녀는 단호했다.

이득을 떠나 오로지 태연의 안위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태연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사실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어. 무엇보다도…….”

태연이 윤아를 보며 미소 지었다.

“무엇보다, 너와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드는 것이 싫어.”

“…….”

아무 말도 못 하는 윤아를 뒤로하고 태연은 김종학 부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담담히 말했다.

“감당하기 어려운 제안입니다. 거절하겠습니다.”

* * *

넥플 판교 본사에 김종학 부회장이 등장했다.

“어? 저 사람, 김종학 부회장 아니야?”

“맞는 것 같은데…… 무슨 일이지?”

등장부터 시선을 사로잡은 그는 태연의 집무실에 도착하자마자 일갈했다.

“너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냉정하냐? 나름 고심해서 던진 제안인데, 좀 생각하는 척이라도 해야 할 꺼 아니야? 무슨 문밖을 나서자마자 거절을 해?”

“부회장님 같은 분에게는 시간이야말로 가장 귀중한 재산 아니겠습니까? 질질 끄는 거 싫어하시기도 하고.”

“그건 그렇지만…….”

“정말 고심해서 내린 제안입니다.”

냉정한 모습에 김종학 부회장이 한숨을 내쉬었다.

“거절 사유나 좀 물어보자. 이유가 뭐야?”

이후 들려온 대답은 그의 예상을 완전 벗어났다.

“윤아와 함께 있는 시간이 줄어드는 게 싫습니다.”

“…….”

그는 스스로의 청력을 의심하며 다시 한번 물었다.

“뭐라고?”

“일만 하다가 청춘 다 보내고 윤아 외롭게 만들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하.”

그는 허를 찔린 얼굴로 한숨을 푹 쉬었다.

“와, 머리가 띵하네. 갑자기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야.”

“죄송합니다.”

“너 처음 봤을 때부터 알아봤어. 내가 제수씨하고 친하다는 사실 알고 부러움을 숨기지 못하고 그러더니…….”

태연도 미소 지었다.

“분명 그랬던 시절이 있었죠.”

“야, 먼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야 몇 년 되지도 않았어. 너 그거 알아? 그사이에 성격도 그렇고 외형도 진짜 많이 변한 거?”

물론 잘 알고 있지만 모르는 척 반문한다.

“그렇습니까?”

“그래서 하는 제안이야. 지금의 너라면 확실히 믿고 의지할 수 있거든.”

“…….”

“이거 진짜 중요한 사업이야. 나도 그렇고 유 선배에게도…… 평생의 꿈이 걸린 일이란 말이야. 그룹의 미래도 좌우된 상황이고.”

이건 또 무슨 일일까?

국내 굴지의 대기업인 뉴월드 그룹의 미래가 달렸다니……?

“아, 너한테 제대로 설명을 못 해줬구나.”

그가 혀를 차며 물었다.

“우리가 뭐하는 회사냐?”

“유통, 패션, 식음료…….”

“그중 가장 중요한 거 하나만 고르면?”

“뉴월드 마트와 물류 유통이겠죠.”

“그래. 바로 그거야. 그런데 요즘 누가 마트 와서 장 보고 그러냐? 다 앱으로 하잖아. 너희 집도 그럴 거 아니야?”

“…….”

“해외 자본이 선점 업체를 무섭게 키워주며 국내 시장에 공격적인 투자를 하는 상황이야. 오프라인 마트가 설 자리가 점점 사라지고 있는 시점에…… 이제는 새 활로를 모색할 때가 됐다 이거지.”

“그게 과천을 중심으로 지금 추진 중인 복합 문화 산업입니까?”

“마트보다는 체류형 문화 공간으로, 더 발전된 개념을 도입해서 자리 잡아야 하는 상황이라는 거야. 원래 우리가 목표로 잡았던 곳은 미국 월마트였거든. 그런데 지금 시점에서는 아무래도 그게 힘들 것 같더라고. 우리나라는 인터넷 쇼핑몰이 워낙 발달하고 있어서…….”

“음…….”

“복합 문화. 여러 가지가 있지? KPOP.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스포츠, 게임, 리조트, 테마파크……. 이걸 아우를 수 있는 새로운 리더가 필요한 시점이야. 그리고 기업도 상생해서 새 길을 모색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지.”

“그 파트너가 넥플이었다는 것이군요.”

“믿을 수 있는 사람이 기업 수장이고 돈도 많고 나와 이해관계도 완벽히 맞아떨어지고…… 최고의 파트너지.”

“그렇군요.”

“그리고 그 새로운 리더로 나와 유 선배는 너를 점찍고 있었단 말이다. 젊지, 능력 있고 유능하지. 바탕은 청렴하지만 기업, 사람의 생리를 잘 파악할 줄도 알고 이용할 줄도 알고…….”

“…….”

“진짜 너밖에 믿을 사람이 없어서 그래. 우리가 팍팍 밀어줄 테니까 한 번 해보자. 응?”

진정성에 호소하는 김종학 부회장의 모습에 태연은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그 점을 포착한 김종학 부회장이 더욱 애절하게 호소했다.

“게임? 좋지! 그게 네 정체성이라면 계속 해. 그런데 언제까지 그 게임 개발을 모니터에서만 한정시킬 셈이냐? 현실에서, 정말 규모를 제대로 키워서 해볼 생각은 없어?”

그 말에 태연의 심장이 간질거리기 시작했다.

‘현실 심시티라…….’

심시티 같은 게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해봤던 생각 아닌가?

나에게 돈이 많다면, 도시를 개발할 수 있는 공간과 여력이 주어진다면……?

‘조금…… 끌리는군.’

살짝 마음이 기울어지려는 시점에 또 한 번 귀신같이 파고드는 김종학 부회장이었다.

“이렇게 하자!”

“…….?”

“너 언제까지 넥플 대표이사 자리에만 있을 생각은 없지?”

“아무래도 그렇겠죠?”

“지금 당장 힘들다면 일단은 CTO에 이름 올려놓고, 기술 개발에 관여하고 조언해 주는 일을 좀 해줘. 그렇게 바쁘지는 않을 거야.”

“음…….”

“그러다 나중에, 드림씨어터가 손이 부족해지거나, 위급해지거나, 혹은 너에게 여력이 생겼을 때 적극적으로 관여해서 일을 도와줘. 그 정도라면 네 시간을 많이 빼앗지는 않을 거야.”

단호했던 방금 전까지와 다르게, 심사숙고하는 모습에 김종학 부회장이 마무리를 가했다.

“야. 형 좀 도와줘라. 진짜 내 필생의 소원이야.”

“……!”

관계가 깊어지며 사석에서는 정말 형제처럼, 친구처럼 편하게 지내게 된 두 사람이었다.

그가 자신에게 베풀어 준 배려.

무엇보다도…….

‘윤아를 만나게 해준 은인이기도 하지.’

소중한 반려를 소개시켜 줬던 일까지 고려하면…….

‘더 이상 외면할 수가 없군.’

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야, 이…… 그래야지! 하하하!”

그는 굉장히 기뻐했다.

“야, 너 이번 주말에 시간 좀 내라. 부부 동반으로 야구장 가자. 우리 팀 이번에 시합 있어.”

야구팀 뉴월드 워리어스를 말하는 것이다.

스포츠 게임을 좋아하니 당연히 현실 스포츠 경기도 좋아하는 편이다.

“알겠습니다.”

“너 무르기 없기다? 내일 보도 자료 낼 거야. 알았어?”

대기업 부회장답지 않은 모습에 그만 그는 피식 웃고 말았다.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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