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한 게임 개발자가 너무 유능함 87화
59. 내조의 왕
근래에 들어 윤아의 대외 활동이 점점 많아지고 있었다.
[김윤아. 세계적인 명품 기업 루X비통 엠버서더 선정!]
[체조 여신의 지상파 나들이! ‘전지적 매니저 시점’ 출연!]
[김윤아. 강원도 산불 피해자들을 위해 1억원 기부!]
이런 거라든지.
“오빠, 나 집에 지인들 데려와도 돼?”
“……네가 지인들도 있어?”
“이거 왜 이래? 나 김윤아야! 친구 많아!”
“농담이야. 네가 집에 사람을 데려온다니 놀라서 그랬지. 언제 초대할거야?”
“내일 점심시간.”
“몇 명?”
“일곱 명. 같이 운동했던 후배들이야. 이전부터 계속 오고 싶어 했는데 더 이상 거절할 명분도 없고 그래서…….”
이런 것들.
아무래도 뭔가 계획하고 있는 것이 있는 모양이다.
태연은 의문을 가슴에 묻어두고 흔쾌히 대답했다.
“초대해도 돼. 단, 앞으로는 하루 전에 미리 알려줘.”
그렇게 말하고 외출 준비를 하는 모습에 그녀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어디 가려고?”
“마트.”
“마트는 왜?”
“냉장고에 우리 먹을 정도의 재료밖에 없어. 설마 손님을 배달 음식으로 대접하려던 건 아니지?”
“…….”
그러려던 모양이다.
태연이 한숨을 쉬자 그녀가 급히 변명했다.
“아니! 요리 준비하지 말라고 했어! 자기들이 알아서 준비해 오겠다며…….”
“아무리 그래도 손님 초대해 놓고 아무것도 준비 안해서야 기본 예의에 어긋나지. 그리고 바로 이것 때문에 하루 전에 말해달라고 한 거야. 넌 이런 부분들이 서투르니까.”
모자를 쓰고, 태연이 말했다.
“다녀올게.”
“어? 가, 같이 가! 나도 갈래!”
마트에서 요리 재료를 잔뜩 구매하고, 집에 돌아와 요리를 시작했다.
통통통!
앞치마를 입고, 능숙하게 칼질을 하며 태연이 말했다.
“내일 아침에 일찍 가봐야 하니 지금 미리 준비해 놓을게. 손님 오기 전에 접시에 담아 전자레인지에 대우기만 하면 돼.”
원래 요리 솜씨가 그렇게 뛰어난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와 연애를 시작하면서 많이 늘었다.
내조를 위해 이런저런 노력을 한 결과였다.
그 성과는 다음 날 드러났다.
“어서 와!”
점심시간.
집에 방문한 일곱 명의 미녀 스포츠 스타들은 두 가지에 놀랐다.
굉장히 고급스럽고 넓은 신혼집의 위엄에.
“아니, 뭘 이렇게 준비를…….”
“이거 설마 언니가 준비한 거예요?”
식탁을 가득 채운 화려한 요리들의 향연에!
김윤아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이거 우리 오빠가 직접 준비한 거야. 어제 밤늦게 마트에 가서 재료 사와서 요리했어.”
“우와…….!”
“굉장하네.”
화려한 비주얼과 침 넘어가는 향기에 이끌려 식탁에 둘러 앉는다.
“잘 먹겠습니다!”
그 맛은……..
“와, 맛있다!”
“요리도 잘하시는구나!”
“윤아 언니가 푹 빠진 이유가 여기 있었네!”
터져 나오는 칭찬에 윤아의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식사가 끝나고 디저트 타임이 시작됐다.
이번에도 역시 태연이 준비한 다양한 간식의 향연들이 펼쳐졌다.
“이거 다 하나 하나 직접 고르신거야?”
“마트에서 산 것도 있고 재료로 만든 것도…… 아, 이거 만들었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간식이야!”
“이런 것들도 만들어주셔요?”
“형부 진짜 굉장하다!”
시간이 훌쩍 지나 어느새 일곱 시.
그녀들은 향긋하고 몸에도 좋다는 귀한 전통차를 마시며 기름진 속을 씻어낸다.
“오빠가 부하 직원한테 선물받은 건데, 그…… 뭐라더라? 태양초 고추장처럼 국내에 시판되지 않고 정말 서로 친한 지인들 사이에만 돌아다니는 특상품이래.”
“어쩐지, 그래서…….”
“어, 이거 정말 내 취향에 딱 맞는에…… 언니 이것 좀 얻어갈 수 있을까요? 조금이라도 좋으니까…….”
“물론이지! 줄게!”
“어? 정말요? 그래도 되는 거예요?”
“사실 차 마셔보고 마음에 들어하면 조금씩 선물해 주라고, 오빠가 미리 포장도 해줬어. 기다려봐!”
총총걸음으로 테이블을 벗어나는 김윤아.
그 뒷모습을 보며 그녀의 후배들이 입을 모았다.
“언니 진짜 결혼 잘한 것 같아.”
“난 사실 언니가 남자에게 반해서 결혼하는 모습 자체를 상상도 못 했어. 우리 사이에서도 여신 그 자체였잖아!”
“저런 언니를 꽉 잡을 정도라니…… 형부는 대체 어떤 분이지? 오늘 만날 수 있을까?”
만날 수 있었다.
오후 여덟 시.
-띵동!
“아! 오빠 왔다! 기다려. 여기 앉아 있어!”
쪼르르 달려나간 김윤아는 잠시 후.
“……!”
한 남자와 등장한다.
처음에는 여신의 은총을 받은 세상에서 가장 운이 좋은 남자라는 소리를 들었던.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그 평가를 완전히 바꿔 버리고 있는 재계의 스타!
“오빠. 인사해. 내가 제일 좋아하는 동생들이야.”
키가 크고 어깨가 굉장히 넓은 냉랭한 인상의 남자가 흐릿한 미소로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윤아 남편이자 게임 개발자 유태연입니다.”
“다음에 또 올게요 형부!”
“오늘 너무 고맙고 즐거웠어요!”
“다음에 볼 때는 편하게 이름으로 불러주세요!”
일곱 명의 미녀 스포츠 스타들은 밤 열 시가 되어서야 떠났다.
태연이 호출해 준 택시를 타고!
차를 타고 온 이들도 있었지만 술을 한가득 마셨기에 운전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으아아…… 정신 하나도 없어. 힘들어.”
김윤아는 그대로 소파 위로 늘어졌지만 태연은 달랐다.
앞치마를 두르고, 고무장갑을 착용한 뒤 설거지를 시작한 것이다.
청소기를 돌리고 물걸레질까지 완벽히 끝내고서야 태연은 비로소 휴식을 얻을 수 있었다.
윤아가 미안한 얼굴로 말했다.
“오빠, 정말 힘들었지? 나 다음부터 손님 안 데려올래.”
태연은 고개를 저었다.
“그럴 필요 없어. 얼마든지 데려와. 이런 일은 회사 관리하는 것에 비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니까.”
“정말?”
“기껏해야 집 한 채와 열 명 남짓의 인원을 컨트롤하는 게 어려울까? 아니면 수천 명의 인력을 컨트롤하고 도합 수조 원 규모의 프로젝트들을 리딩하는 쪽……?”
“……오빠, 회사 사람들이 오빠 은근히 잘난 척하는 거 좋아하는 스타일이라는 거 알아?”
“당연히 모르지. 네 앞에서만 보여주는 거야.”
“그렇지?”
그녀는 햇살처럼 환한 미소를 지으며 오른팔을 끌어안고 품에 기댄다.
그리고 가까이에서 태연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그거 알아?”
“뭐?”
“쟤네들 나 못지않고 도도하고 사람 엄청 가리고 눈도 진짜 높아서 웬만한 사람들은 상대조차 해주지 않거든.”
“너하고 친한 이유가 있었구나.”
“…….”
“농담이니 화 풀어. 그래서?”
“아무튼, 우리는 만나도 남자 이야기, 누구 뒷담화…… 이런 것도 잘 안 해. 그런데 처음으로 모임 내내 오빠 이야기만 잔뜩 했어! 애들이 오빠가 엄청 마음에 든 것 같아. 내 남편 아니었으면 자기들끼리 전쟁 났을 거라고 막 그러는 거 있지?”
태연은 아이처럼 들떠서 마구 수다를 떠는 김윤아를 조용히 바라본다.
갈라쇼 이후로, 그녀가 또다시 살아나고 있었다.
‘역시 대외적으로 활동을 하고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게 좋을 것 같아.’
집순이로 유명하고, 평상시 그쪽이 체질이 맞다며 말을 해왔지만, 실상은 조금 다른 것 같다.
자신이 그렇듯, 그녀 역시 대중 앞에 섰을 때 가장 빛나고 또 활력이 생기는 타입이었다.
‘대중의 우상이 될 팔자를 타고났군.’
태연이 물었다.
“지상파 방송 출연 요청이 많이 왔지?”
“응? 으응.”
“집에 찾아오고 싶다는 사람도 많고.”
“응.”
“윤아 하고 싶은 거 다 해.”
눈치를 보며 묻는다.
“정말 그래도 될까?”
“안 될 게 뭐 있어? 하고 싶은 대로 해. 내가 내조해 줄 테니까.”
“……오빠가 내 내조 같은 거나 해주고 있을 만큼 한가한 사람도 아니잖아.”
“윤아 내조해 주는 게 뭐 어때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야. 잘 하고 나면 뿌듯하기도 하고.”
다양한 감정이 듬뿍 담긴 표정으로 태연을 바라보던 윤아는 말없이 품에 파고들었다.
태연은 그녀의 머리카락을 조용히 쓸어주며 말했다.
“하고 싶은 거 있으면 모두 다 해.”
태연의 눈동자에 촉촉이 젖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윤아의 모습이 새겨져 있었다.
“내가 윤아의 뒤를 받쳐 줄 테니까.”
“……..”
그 말에 기폭제가 되었던 걸까?
“나 못 참겠어.”
벌떡 일어선 윤아의 눈에 불꽃이 튀고 있었다. 그녀는 태연의 손을 잡고 놀랄 만큼 강한 악력으로 끌어당기며 말했다.
“오빠 오늘 각오해. 가만 안 놔둘 테니까.”
* * *
그날부로 김윤아는 본격적인 방송 출연을 시작했다.
[김윤아. 전지적 매니저 시점 고정 출연!]
[넷플러스 다큐멘터리 ‘체조 여신’ 제작 결정!]
김윤아의 목적은 명백했다.
“나, 대한민국 체조 문화를 발전시키고 싶어.”
김윤아라는 불세출의 슈퍼스타를 배출하긴 했지만 체조 종목 자체의 인기는 그리 높지 않다. 실제 김윤아 은퇴 후 대한민국 체조는 세계 선수권, 올림픽 등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갈라쇼가 월드 투어를 성공적으로 마칠 정도로 흥행할 수 있었던 것은 올스타 이상으로 김윤아 개인의 영향이 컸다.
“그래도 갈라쇼 이후 체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어. 자금 형편이 어려워서 체조를 관둬야 하는 처지에 있던 후배들에게도 도움을 줄 수 있었고.”
이번에 그녀는 새로운 목표를 세웠다.
“재단을 세워서 체조 꿈나무를 위한 기금을 마련하고, 국제 대회 위상 못지않은 세계적인 규모의 대회를 바로 우리나라에서 성공적으로 개최해 보일 거야.”
“김윤아 배 체조 선수권이 세워지겠군.”
“이상해?”
“전혀. 아주 훌륭한 목표라고 생각해. 그런데 거기서 끝은 아니겠지?”
“응?”
“윤아의 이름을 딴 선수권을 개최하겠다는 것까지는 좋아. 그런데 거기서 끝나면 허전하고 아쉽지.”
“……그래? 그러면 어떻게 하지? 그 이상은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그녀의 표정이 당황이 가득하다.
태연은 자신이 생각한 바를 이야기했다.
“그 올스타 갈라쇼를 이용하도록 하자. 선수권 우승자는 올스타 갈라쇼의 일원이 되어 세계를 돌아다니며 공연을 할 수 있고 체조를 활용한 콘텐츠 기획에도 적극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거지.”
“아……!”
“단순한 체조의 한계를 벗어나 다양한 시도를 접목한 올스타 갈라쇼는 내가 보기에도 굉장히 멋진 공연 콘텐츠야. 규모를 더 키워서 체계적으로 발전시키면 굉장히 훌륭한 전통으로 자리 잡을 수 있어. 체조 선수라면 모두가 갈망하는 그런 곳으로…….”
생각지도 못한 제안에 김윤아는 큰 깨달음을 얻은 얼굴이었다.
“할 수 있는 가장 크고 원대한…… 생각만으로도 심장이 뛰게 만드는 목표를 설정해. 내가 도와줄 테니 뒷감당 걱정은 하지 말고.”
“어떻게 도와주려고?”
태연은 씩 웃었다.
“잊었어? 나 재계 서열 15위 대기업의 대표 이사야.”
“그래 봐야 월급쟁이 사장이면서…….”
“어허!”
꺄르르 웃음을 터뜨리는 김윤아의 표정이 잔뜩 들떠 있었다.
마침내 인생 두 번째 장의 목적지를 찾았기 때문이리라.
“그러면 나 정말 오빠만 믿고 저지른다?”
“그래.”
무관심하게 느껴질 만큼 무덤덤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 모습에 김윤아의 눈에 또 다시 불꽃이 튀겼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 오빠, 나 좀 따라 와.”